
한국사 강의 나눔터
<6강 향랑, 산유화로 지다 - 세미나 수업>
--- 발제 내용과 선생님들의 토론 내용을 연결시켜 정리해 보았습니다.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1. 향랑의 계모는 부정적 캐릭터로 그려졌다. 계모는 과연 가부장제의 희생자라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같은 외국 동화 속 계모들은 왜 악인으로 그려졌던 걸까?
-- 17세기 이후는 장자 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에 재산상속 역시 장자 우선이였다. 따라서 전실 자식과 계모와의 마찰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후기로 갈수록 이분법적인 생각이 자리 잡아 선인 대 악인이라는 대결구도가 생기게 된다. 따라서 여성의 지위 또한 낮아지고, 계모는 악인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게 된다.
신데렐라나 백설공주의 원전에서는 친엄마인데, 후에 계모로 바뀌었다. 구전내용이 정착된 시기가 18세기 즈음이었다. 근대적 사회에서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계모가 악인으로 정형화 되었음을 알 수 있다.
2. 향랑은 왜 죽음을 택했을까? 그녀의 죽음은 어떤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가?
-- 소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의견을 전달한 것을 보면 자기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방법으로 죽음을 선택했던 것이다.
여자 혼자 살아가기 힘든 시대였기에 다른 선택의 방법이 없었다.
향랑의 죽음은 복수였다. 사법 제도가 있었음을 알았기에 시댁식구들이 처벌받을 것을 예상했을 것 같다.
3. ‘향랑’을 소재로 하여 많은 학자들이 글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당대 여성들은 왜 침묵하고 있었을까?
-- 조선에는 유명한 여성 성리학자들도 있었다. 결코 침묵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역사기록의 주체가 남성이였기에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고 손실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4. 여성과 남성의 지위, 이혼과 재혼에 대한 생각 등이 시대에 따라 계속 변화되어왔다. 가치라는 것이 관습이나 제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인가?
-- 반공 이데올로기를 예로 들자면, 개화기 이전에는 이런 의식 조차 없었다. 한국 전쟁이후 생성된 것이다. 따라서 의식이나 가치도 사회적, 역사적 구성물이다.
5. 고대 삼국 때부터 조선 초까지 이어져왔던 처가 살이, 이 때는 남성들의 지위도 낮았고, 매맞는 남편들도 많았다. 이 또한 남녀 불평등 아닌가? 실제 남성들의 능력이 낮았던 것일까?
-- 처가살이를 하는 남자들의 경제력은 매우 낮았다. 계속 공부만 하는 가난한 선비가 대부분이였다. 율곡의 집도 대대로 처가살이를 하였다.
하지만 처가로 들어온 남편은 아버지와 같은 지위를 부여받았다.
--- 발제 내용과 선생님들의 토론 내용을 연결시켜 정리해 보았습니다.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1. 향랑의 계모는 부정적 캐릭터로 그려졌다. 계모는 과연 가부장제의 희생자라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같은 외국 동화 속 계모들은 왜 악인으로 그려졌던 걸까?
-- 17세기 이후는 장자 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에 재산상속 역시 장자 우선이였다. 따라서 전실 자식과 계모와의 마찰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후기로 갈수록 이분법적인 생각이 자리 잡아 선인 대 악인이라는 대결구도가 생기게 된다. 따라서 여성의 지위 또한 낮아지고, 계모는 악인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게 된다.
신데렐라나 백설공주의 원전에서는 친엄마인데, 후에 계모로 바뀌었다. 구전내용이 정착된 시기가 18세기 즈음이었다. 근대적 사회에서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계모가 악인으로 정형화 되었음을 알 수 있다.
2. 향랑은 왜 죽음을 택했을까? 그녀의 죽음은 어떤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가?
-- 소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의견을 전달한 것을 보면 자기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방법으로 죽음을 선택했던 것이다.
여자 혼자 살아가기 힘든 시대였기에 다른 선택의 방법이 없었다.
향랑의 죽음은 복수였다. 사법 제도가 있었음을 알았기에 시댁식구들이 처벌받을 것을 예상했을 것 같다.
3. ‘향랑’을 소재로 하여 많은 학자들이 글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당대 여성들은 왜 침묵하고 있었을까?
-- 조선에는 유명한 여성 성리학자들도 있었다. 결코 침묵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역사기록의 주체가 남성이였기에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고 손실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4. 여성과 남성의 지위, 이혼과 재혼에 대한 생각 등이 시대에 따라 계속 변화되어왔다. 가치라는 것이 관습이나 제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인가?
-- 반공 이데올로기를 예로 들자면, 개화기 이전에는 이런 의식 조차 없었다. 한국 전쟁이후 생성된 것이다. 따라서 의식이나 가치도 사회적, 역사적 구성물이다.
5. 고대 삼국 때부터 조선 초까지 이어져왔던 처가 살이, 이 때는 남성들의 지위도 낮았고, 매맞는 남편들도 많았다. 이 또한 남녀 불평등 아닌가? 실제 남성들의 능력이 낮았던 것일까?
-- 처가살이를 하는 남자들의 경제력은 매우 낮았다. 계속 공부만 하는 가난한 선비가 대부분이였다. 율곡의 집도 대대로 처가살이를 하였다.
하지만 처가로 들어온 남편은 아버지와 같은 지위를 부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