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비 고1 도반들~!

현대문명 이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다루고 나서 도반들에게 내어 준 논술과제입니다. 결석한 도반을 위해 논술과제를 올려 두니 참고하여 꼭 풀어 오시기 바랍니다.


※ 다음은 황순원의 단편소설 <송아지>의 전문(全文)이다. 이 글을 읽고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현대인의 삶에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를 논제로 삼아 자신의 견해를 1600자 내외로 논술하시오. (쓴 글은 우리반 과제함에 올려주셔요)

< 제 시 문 >

<<돌이네가 송아지를 사온 것은 삼학년 봄방학 때였습니다.>>

아주 볼품없는 송아지였다. 왕방울처럼 큰 눈에는 눈곱이 끼고, 엉덩이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볼기짝에는 똥딱지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어디 이따위 송아지가 있어. 돌이는 아버지가 몇 해를 두고 푼돈을 아껴 모아 사온 송아지가 기껏 이런 것이었나 싶어 적잖이 실망과 짜증이 났다.
그래도 한 달 남짓 콩깍지와 사초를 잘게 썰은 여물에 콩도 한 줌씩 넣어 먹였더니 좀 송아지꼴이 돼갔다.
그동안 돌이는 아침마다 송아지를 마당비로 쓸어주었다. 어머니가 외양간이나 안뜰에서 쓸면 털이 장독에 날아든다고 하여 집 뒤 도토리나무 밑으로 가 쓸어주곤 했다.  처음에는 나무에 고삐를 매고 쓰는데도 이리저리 날뛰던 것이 차차 익어져서 이제는 제법 의젓하게 가만히 서있다. 아마 비로 쓸어줄 때의 시원한 맛을 아는 모양이었다. 이따금 큰 귀를 쭝긋거리면서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있는 것이다. 똥딱지가 깨끗이 떨어져나간 볼기짝을 꼬리로 슬슬 치면서.

  어느 날 송아지의 코뚜레를 꿰주었다. 코뚜레감은 벌써 아버지가 장만해둔 게 있었다. 노가주나뭇가지를 잘라다 불에 고리처럼 휘어가지고 지붕 위에 올려 말려서는 칼로 껍질을 벗기고 옹이를 다듬고 하여 아주 매끈하게 만들어두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앞집 아저씨와 함께 송아지를 데리고 방앗간으로 갔다. 거기서 뒷허리와 목을 방앗간 도리에다 잡아매고는 앞집 아저씨가 엄지손가락과 둘째손가락으로 송아지의 코를 그러쥐었다. 송아지는 큰 눈을 희번덕거릴 뿐 고개짓도 못했다. 아버지가 신꼬챙이를 송아지 코로 가져갔다. 코를 뚫을 참인 것이다.
돌이는 여기까지 보다가 그만 돌아서고 말았다. 매애매애애 하는 송아지의 코멘 소리가 들렸다. 조금 후 코뚜레 꿰는 일이 끝난 듯하여 돌아다보니, 송아지 코에서 피가 흐르고 눈에는 눈물이 괴어있었다. 저것두 사람처럼 눈물을 다 흘린다!
집으로 돌아온 돌이는 떡갈잎으로 코피를 닦아주려 했다. 송아지가 겁을 먹고 눈 흰자위를 드러내며 고개를 내둘렀다. 임마, 널 좋게 해줄려구 그러는데 왜 이래.
저녁때 여물은 어른들 몰래 콩을 몇 줌 더 갖다 넣었다.
뜯어먹을 만한 풀이 돋자 <<돌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대로 송아지를 데리고 방죽으로 나갔다가 저녁때가 되어야 돌아오곤 했어요.>> 돌아오는 길에 언제나 방죽 밑으로 내려가 강물을 먹였다. 한번은 물을 먹여가지고 다시 방죽 위로 올라오니까 고삐가 팽팽해졌는데도 송아지가 자꾸만 앞서 가기에 코뚜레 꿴 코가 아플 것 같아 고삐를 놓아준 일이 있었다. 그랬더니 막 달려서 혼자 집을 찾아가는 게 아닌가.

그로부터 돌이는 강물을 먹여가지고 방죽 위에 올라서서는 고삐를 놓아주고 집까지 달음박질 경주를 하곤 했다. 언제나 이 경주에서 돌이가 졌다. 동네치고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집까지의 언덕배기를 송아지는 단숨에 껑충거리며 달려 올라가는 것이다. 이럴 때 송아지 꼬리가 약간 뻗쳐지는 것을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돌이는 경주에 지고서도 만족해했다.
  방죽 안쪽은 논밭이었다. 그 낟알 잎을 송아지가 뜯어먹는 수가 있었다. 그러면 돌이는 고삐를 바투 쥐고 송아지의 따귀를 때린다. 힘껏 때리는 시늉을 하지만 실제는 가볍게 툭 소리가 날 뿐이다. 임마, 그건 먹음 못써, 다시 그런 짓 했단 알지? 이렇게 몇번 따귀를 맞고 타이름을 받고 나서도 송아지는 어쩌다 돌이가 한눈파는 틈을 타서는 슬쩍 혀끝으로 낟알잎을 감아들이는 수가 있었다. 돌이는 여전히 시늉만인 센 따귀를 때리면서 뇌까리는 것이다. 임마, 그건 먹음 못쓴대두, 다시 또 그럴 테야 정말?
그런 지 얼마 후부터는 낟알 잎을 안 먹게 됐다.

<<고삐를 놓고 돌이는 방죽에 앉아 숙제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때로는 누워 잠이 들기도 했다. 잠결에 목이 선뜩거려 눈을 뜨면 저녁그늘이 내린 속에 송아지가 혀로 목을 핥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집에 가자는 듯. 방죽에 내려가 물을 먹이고는 언제나처럼 집까지 달음박질 경주.

<<그 무시무시한 6·25가 일어났습니다.>>
군대가 한 차례 밀려 내려왔다가 밀려 올라갔다. 그동안에 동네에서는 한 집이 비행기 폭격을 맞아 홀랑 날아가는 바람에 일가가 몰살을 당하고, 동네사람 하나는 포탄 파편에 맞아 다리 하나를 못 쓰게 됐다. 그리고 군대들이 동네에 들를 적마다 곡식을 모아가고, 닭과 개와 돼지를 잡아가고, 소를 끌어갔다.
돌이네 집에 와서 송아지를 끌어가려 했다. 돌이가 송아지 목을 그러안고 놔주지 않았다. 송아지와 함께 얼마를 질질 끌려갔다. 군인이 총부리를 들이댔다. 그래도 돌이는 송아지의 목을 꼭 안은 채 떨어져나가지를 않았다. 지독한 놈이라고 하면서 군인이 그냥 가버렸다.
겨울철에 들어서자 북으로 올라갔던 군대가 도로 밀려 내려왔다. 그 뒤로 중공군이 구름처럼 몰려 내려온다는 풍문이 돌았다. 사실 북쪽에서 먼 천둥같은 폿소리가 들려왔다. <<온 동네가 피난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곡식을 거둬가고, 짐승을 끌어가는 것은 둘째로 하고 저번에 집과 사람이 한꺼번에 날아가버린 일과 다리 하나를 못 쓰게 된 사람의 일이 남의 일같지가 않은 것이었다.

<<돌이네도 피난가야 했습니다.>>
떠나는 날 새벽 돌이는 아버지에게, 「송아지두 데리구 가지?」 했다.
아버지는 그냥 짐만 꾸릴 뿐 대답이 없었다.
돌이가 재우쳐 물었다. 그제야 아버지는 손만을 잠깐 멈추고 돌이는 돌아보지도 않고, 「안된다, 강 얼음이 아직 엷어서 ...... 사람이나 겨우 밟구 건널까 말까 한데 소야 되나,」 하고 한숨을 짓는 것이다.
어제 누구넨가도 소가 미끄러지지 않게끔 얼음 위에 흙과 재를 깔아놓고 나서도 종내 얼음이 엷어 사람만 피난간 일이 있는 걸 돌이도 알고 있었다.
할 수 없었다. 돌이는 콩을 담뿍 넣어 쑨 여물을 송아지에게 잔뜩 먹여가지고 예전과 같이 집 뒤 도토리나무 밑으로 가 마당비로 쓸어주고는 도로 외양간에 들여다 매었다. 그리고 콩깍지를 몇 아름이고 안아다 주고, 구유에다는 물을 가득 부어놓았다.
이걸 보고 있던 어머니가,
「그렇게 해놔두 소용없다. 콩깍진 이제 밟게 되면 못 먹게 되구, 물두 얼면 못 먹을걸.」

문득 돌이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방으로 들어가 공책뚜껑을 뜯더니 그 뒷면 한복판에다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큼직한 글씨로 이렇게 썼다.
<이 송아지에게 콩깍지와 물을 좀 주세요.>
떠날 채비를 다 하고 난 아버지가 곰방대에 담배를 담으며,
「이제 군대가 들어오면 대번 잡아먹구 말 텐데 ......」
돌이는 다시 연필에 침을 묻혀가지고 좀더 큰 글씨로 한옆에 썼다.
<군인 아저씨 꼭 부탁합니다.>
그리고는 칡에 꿰어 송아지 목에 매달았다.
간단히 꾸린 짐을 아버지는 지고, 어머니는 이고, 돌이는 조그만 보따리를 하나 지고 집을 나섰다. 나서기 전에 돌이는 송아지를 향해 말했다. 내 곧 데리러 올께 응.
방죽을 내려 강에 들어서며 돌이는 발로 얼음을 굴러보았다. 딱딱했다.
앞섰던 아버지가 돌아보며,
「살살 걸어, 가운데루 갈수록 살얼음이니까」
강 한가운데는 어른의 한 길이 넘는다. 어서 거기까지 꽝꽝 얼어 도로 와서 송아지를 데려갈 수 있게 됐으면 오죽 좋을까 하고 돌이는 생각했다.


강을 반 남아 건넜을 즈음 돌이는 무심코 집 쪽을 돌아다보았다. 뜻밖에도 송아지가 외양간에서 나와 싸리울타리 너머로 이 쪽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별안간 송아지가 버둥거리는 것 같더니 싸리울타리를 뚫고 달려 나오는 게 아닌가. 고삐를 끊은 것이다.

송아지는 쏜살같이 언덕배기를 내려 이리 달려오는 것이었다. 먼발치로도 꼬리가 뻗쳐져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야, 빠르다, 빠르다. 방죽을 지나 얼음판에 들어섰다. 요행 흙과 재를 깔아놓은 데로 달려오긴 하지만 저러다 미끄러져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돌이는 송아지가 달려오는 쪽으로 마주 걸어나갔다.
뒤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돌이야, 돌이야, 하는 째진 목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그러나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그냥 마주 걸어 나가는 돌이의 얼굴을 환히 웃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이제 조금만 더.

송아지와 돌이가 서로 만났는가 하는 순간이었다. 우저적 얼음장이 꺼져 들어갔다.
한동안 송아지는 허우적거리며 헤엄을 치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얼음물 속에서 사지가 말을 안 듣는 듯 그대로 얼음장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러한 송아지의 목을 돌이가 그러안고 있었다.    

1961 시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