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샘 나눔터
우리는 지금 공포사회 전형을 마주 대하고 있다.
외부로부터 강압적으로 주어지는 공포,
점층적으로 심화되어만 가는 공포,
한 두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을 넘어서 불특정 다수 아니 공동체 모두에게 덮어씌우듯 몰아닥쳐오는 공포이다.
정부가 바뀌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주입되는 이러한 공포는 요즘 그 극치를 달리고 있다.
인수위 때부터 영어몰입교육공포를 시작으로 열린 공포 주머니들이 촌각을 다투며 확장되면서 열리고 있다. 교육자율화로 대변되는 교육현장의 완전 시장화, 살인적인 대학등록금,죽음으로 내모는 경쟁, 국민건강보험제 완화 및 폐지로 치닫고 있는 당연지정제 축소와 선택진료제 확장, 상수도 민영화에 따른 수도요금 상승, 공공기업 민영화로 촉발되는 시민부담 가중, 이제 쓰레기 처분용이거나 육골분 사료용으로나 쓰일 미국쇠고기 무분별 수입.... 열거할 수조차 없을 만큼 우리들 촉각을 자극하고 정서를 파괴하는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아, 그리고 대운하 추진....
정신을 차릴 사이도 한숨 돌릴 여유조차 없이 이리저리 휘둘리고 내몰리는 우리들 삶은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게 되면서 마치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이명박정부 정책에 일방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그 중에 가장 격렬하게 시민적 저항에 부딪힌 것은 미친소로 의심받는 미국쇠고기 수입의 굴욕적 수입확대이다. 이 문제에 대해 설왕설래가 많으나 최근 차분한 논조로 이 문제를 분석한 글이 있어 읽어 보았다. 함께 읽으면서 우리가 어찌 해야할까를 고민해 본다.
제목 : 광우병에 대한 진실 혹은 거짓말
출전/ 창비주간논평. 2008-05-07 김종엽 /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에 대한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이를 둘러싼 의혹들을 딸과 아빠의 가상대화 형식으로 쉽게 풀어보았다.
딸 아빠,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인간 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있다며… 게다가 광우병에는 약도 없다며?
아빠 그렇다고 하는데 미국산 쇠고기가 인간 광우병을 유발하는지는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단다.
딸 그런데 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거지?
아빠 90년대 중반에 유럽, 특히 영국에서 인간 광우병 환자가 많이 발생했는데, 그후 인간 광우병을 유발하는 원인이 쇠고기로 상품화되지 않은 잔여부위들을 다른 소의 사료로 사용한 때문으로 추정되었지. 그후 유럽에서는 이런 사료가 금지되었단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런 사료를 금지하지 않고 소의 내장 같은 걸 닭이나 돼지에게 먹이고 닭과 돼지의 잔여부위들을 다시 소에게 사료로 먹인단다. 언론에서 말하는 교차감염의 위험이 늘 있는 거지.
인간 광우병 위험은 괴담이다?
딸 인간 광우병 위험은 추정일 뿐이네? 그럼 인간 광우병에 대한 학교친구들 이야기가 정부나 몇몇 신문의 말대로 괴담인 거야?
아빠 추정일 뿐이라…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 하지만 우리가 과학적이라고 하는 지식은 대부분 추정일 뿐이란다. 과학의 세계에서 완전히 입증된 사실은 오히려 희소하지. 하지만 추정 또는 가설이 상당한 근거가 있고, 그것을 반박할 결정적인 근거가 없다면 그 가설은 지식으로 통용된단다. 만일 우리가 입증된 사실에 근거해서만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을 거야. 게다가 인간 광우병처럼 결과가 인류에게 치명적이라면 사소한 의혹조차 추정이라는 이유로 무시할 수는 없지. 비근한 예로 지구온난화를 생각해보렴. 이십여년 전만 해도 지구온난화는 입증된 사실이 아니라 논란이 있는 추정이었어. 하지만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결과가 너무 엄청났기 때문에, 이런 추정만으로도 오존층 파괴물질을 규제하기 위해 1987년에 몬트리얼의정서라는 국제적 협약이 맺어졌고, 그것이 이산화탄소를 규제하는 추가적인 국제협정으로 이어졌단다.
딸 그렇구나. 하지만 어떤 신문 보니까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담배를 피우다가 암에 걸릴 확률이나 자동차사고 위험에 비하면 무시해도 좋을 정도라고 하던데… 아빠처럼 담배 피우는 사람이 광우병 위험 어쩌고 하는 건 우스운 거 아니야?
아빠 일리가 없지는 않은데, 인간 광우병은 잠복기가 워낙 길어서 현재의 확률만 가지고 확률 운운하는 건 확률을 남용하는 거지. 그리고 아빠가 담배를 끊어야겠지만, 아빠가 담배를 피우는 것하고 인간 광우병 위험에 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담배 피우는 사람은 이제 그것이 어떤 위험을 가지는지 알고 있고, 담배갑에도 경고문이 붙어 있잖니?
미국산 쇠고기를 사먹지 않으면 된다?
딸 그 말 들으니 앞으로 미국산 쇠고기에도 포장에 “이 고기를 드시면 불치의 인간 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문구가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
아빠 그렇게라도 되면 좋겠다. 아무튼 담배 같은 건 내가 스스로 감수한 위험이고 내가 끊으면 피할 수 있지만, 인간 광우병은 내가 스스로 감수한 거라고 할 수는 없잖아? 이런 차이는 요즘 미국 소가 인간 광우병을 야기한다는 건 괴담일 뿐이라고 하는 중앙일보도 예전에는 신문에 기사로 썼었지. (중앙일보 2001년 2월 12일)
딸 그렇네… 게다가 스스로 감수하지 않은 것일 뿐 아니라 피할 수도 없는 것 같아. TV 보니까 쇠고기의 쓰임새가 워낙 넓어서 우리가 먹는 알약 껍질이나 조미료에도 쓰이고, 내가 좋아하는 라면의 수프에도 들어간다더라고. 생리대에도 들어가고 말이야. 그러니 학교급식이나 군대의 급식만 문제인 게 아닌가 봐. 하지만 말이야, 아빠. 그런데도 왜 우리 정부가 30개월 넘은 미국산 쇠고기에 광우병 위험물질까지 수입하겠다고 하는 거지?
아빠 한미FTA를 체결하려고 하는데, 미국에서 선결조건으로 자국산 쇠고기 수출을 허용하라고 요청하니까 그런 거지.
딸 한미FTA가 이런 위험을 감수할 만큼 필요한 일이야?
아빠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현 정부에는 다수이고, 우리 사회 전반에도 꽤 있단다. 그런 사람들은 아둔한 자기확신에 빠진 사람이거나 한미FTA를 통해서 자기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지. 생각해보렴, 한미FTA를 하면 누가 이익을 볼지. 아마도 미국에 수출하는 기업이겠지. 이런 기업들이 대부분 대기업이고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힘은 매우 크단다. 이에 비해 손해를 볼 사람들, 아빠가 보기엔 이런 사람들이 다수인데, 이들은 그렇게 힘있는 사람들이 아니지. 그리고 한미FTA는 광우병 문제를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변화, 아마도 다수에게는 아주 고통스런 변화를 가져올 것 같아.
국민이 반대하는데 정부가 수입을 강행할까?
딸 하지만 미국 쇠고기 수입은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잖아. 나는 못 나갔지만, 지난 주말에 친구들이 나한테 광화문에서 모이자는 문자를 많이 보냈어. 신문에 보니 광화문 촛불시위에 모인 사람들이 2만명이래. 이명박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인터넷 서명에 참여한 사람도 1백만명이 넘고. 이렇게 국민들이 반대하면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철회하지 않을까?
아빠 아마 그러기 어려울 거야. 엄청난 이익을 본 미국이 절대로 협상을 물리려 하지 않을 거고, 협상을 타결하고 나서 곧장 번복한다면 그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웃음거리가 되겠지. 더구나 그렇게 된다면, 정부는 자신들이 무능하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그리고 다른 나라에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꼴이 된단다. 임기를 막 시작한 정부가 곧장 레임덕에 빠질 일을 하려고 하지는 않겠지.
딸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국가와 정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건데, 다수 국민이 반대할 일을 하고, 그 일에 대한 국민들의 반대가 이토록 공공연히 표현되고 있는데도 그걸 깔아뭉개려 할 수 있지?
아빠 안타깝지만 광화문에 2만이 아니라 100만 명쯤 모이지 않는 한, 정부는 수입을 강행할 거고, 다음달엔 통관을 마친 미국산 쇠고기가 정육점에 깔릴 것 같구나.
딸 너무해. 이건 배신 아니야? 정부가 국민을 배신한 거 아니야?
국가와 정부의 본성에 대하여
아빠 …… 그렇구나. 어른으로서 할 말이 없구나. 그래도 아빠는 너희 세대 청소년들이 인터넷에서 토론을 주도하고 또 광화문 촛불시위에 나서는 걸 보면서 희망을 갖는단다. 그리고 이 기회에 너희 세대가 국가와 정부의 본성에 대해 생각해보길 바란다.
딸 그게 무슨 이야기야?
아빠 아빠 세대의 사람들이 젊었을 때 정말로 충격적이었던 일은 광주민주화운동에서 보듯이 국가가 자신들의 국민을 총으로 쏴 죽였다는 사실이었다. 그건 정말로 큰 상처였지. 그리고 아빠 세대는 그런 폭압적인 국가를 민주화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지. 하지만 아빠 세대가 애써온 민주화가 많이 모자랐는지, 이번엔 세계화 속에서 정부가 국민을 배신하는 일이 생기는구나. 이 상처와 고통을 너희 세대가 잘 새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국가와 정부의 본성이나 민주주의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를 바란다. 정부가 소수의 특권층을 위해서 다수 국민을 배신하지 않는 것은 다수 국민들이 양떼처럼 지배당하지 않으려는 단호한 의지를 가질 때만, 다수 국민들이 사태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질 때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란다.
딸 아빠 세대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 잘 몰랐어요. 하지만 알겠어요. 무섭고 화나는 일이지만 이번 일을 친구들과 열심히 이야기해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게요.
2008.05.07 ⓒ 김종엽
외부로부터 강압적으로 주어지는 공포,
점층적으로 심화되어만 가는 공포,
한 두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을 넘어서 불특정 다수 아니 공동체 모두에게 덮어씌우듯 몰아닥쳐오는 공포이다.
정부가 바뀌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주입되는 이러한 공포는 요즘 그 극치를 달리고 있다.
인수위 때부터 영어몰입교육공포를 시작으로 열린 공포 주머니들이 촌각을 다투며 확장되면서 열리고 있다. 교육자율화로 대변되는 교육현장의 완전 시장화, 살인적인 대학등록금,죽음으로 내모는 경쟁, 국민건강보험제 완화 및 폐지로 치닫고 있는 당연지정제 축소와 선택진료제 확장, 상수도 민영화에 따른 수도요금 상승, 공공기업 민영화로 촉발되는 시민부담 가중, 이제 쓰레기 처분용이거나 육골분 사료용으로나 쓰일 미국쇠고기 무분별 수입.... 열거할 수조차 없을 만큼 우리들 촉각을 자극하고 정서를 파괴하는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아, 그리고 대운하 추진....
정신을 차릴 사이도 한숨 돌릴 여유조차 없이 이리저리 휘둘리고 내몰리는 우리들 삶은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게 되면서 마치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이명박정부 정책에 일방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그 중에 가장 격렬하게 시민적 저항에 부딪힌 것은 미친소로 의심받는 미국쇠고기 수입의 굴욕적 수입확대이다. 이 문제에 대해 설왕설래가 많으나 최근 차분한 논조로 이 문제를 분석한 글이 있어 읽어 보았다. 함께 읽으면서 우리가 어찌 해야할까를 고민해 본다.
제목 : 광우병에 대한 진실 혹은 거짓말
출전/ 창비주간논평. 2008-05-07 김종엽 /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에 대한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이를 둘러싼 의혹들을 딸과 아빠의 가상대화 형식으로 쉽게 풀어보았다.
딸 아빠,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인간 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있다며… 게다가 광우병에는 약도 없다며?
아빠 그렇다고 하는데 미국산 쇠고기가 인간 광우병을 유발하는지는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단다.
딸 그런데 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거지?
아빠 90년대 중반에 유럽, 특히 영국에서 인간 광우병 환자가 많이 발생했는데, 그후 인간 광우병을 유발하는 원인이 쇠고기로 상품화되지 않은 잔여부위들을 다른 소의 사료로 사용한 때문으로 추정되었지. 그후 유럽에서는 이런 사료가 금지되었단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런 사료를 금지하지 않고 소의 내장 같은 걸 닭이나 돼지에게 먹이고 닭과 돼지의 잔여부위들을 다시 소에게 사료로 먹인단다. 언론에서 말하는 교차감염의 위험이 늘 있는 거지.
인간 광우병 위험은 괴담이다?
딸 인간 광우병 위험은 추정일 뿐이네? 그럼 인간 광우병에 대한 학교친구들 이야기가 정부나 몇몇 신문의 말대로 괴담인 거야?
아빠 추정일 뿐이라…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 하지만 우리가 과학적이라고 하는 지식은 대부분 추정일 뿐이란다. 과학의 세계에서 완전히 입증된 사실은 오히려 희소하지. 하지만 추정 또는 가설이 상당한 근거가 있고, 그것을 반박할 결정적인 근거가 없다면 그 가설은 지식으로 통용된단다. 만일 우리가 입증된 사실에 근거해서만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을 거야. 게다가 인간 광우병처럼 결과가 인류에게 치명적이라면 사소한 의혹조차 추정이라는 이유로 무시할 수는 없지. 비근한 예로 지구온난화를 생각해보렴. 이십여년 전만 해도 지구온난화는 입증된 사실이 아니라 논란이 있는 추정이었어. 하지만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결과가 너무 엄청났기 때문에, 이런 추정만으로도 오존층 파괴물질을 규제하기 위해 1987년에 몬트리얼의정서라는 국제적 협약이 맺어졌고, 그것이 이산화탄소를 규제하는 추가적인 국제협정으로 이어졌단다.
딸 그렇구나. 하지만 어떤 신문 보니까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담배를 피우다가 암에 걸릴 확률이나 자동차사고 위험에 비하면 무시해도 좋을 정도라고 하던데… 아빠처럼 담배 피우는 사람이 광우병 위험 어쩌고 하는 건 우스운 거 아니야?
아빠 일리가 없지는 않은데, 인간 광우병은 잠복기가 워낙 길어서 현재의 확률만 가지고 확률 운운하는 건 확률을 남용하는 거지. 그리고 아빠가 담배를 끊어야겠지만, 아빠가 담배를 피우는 것하고 인간 광우병 위험에 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담배 피우는 사람은 이제 그것이 어떤 위험을 가지는지 알고 있고, 담배갑에도 경고문이 붙어 있잖니?
미국산 쇠고기를 사먹지 않으면 된다?
딸 그 말 들으니 앞으로 미국산 쇠고기에도 포장에 “이 고기를 드시면 불치의 인간 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문구가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
아빠 그렇게라도 되면 좋겠다. 아무튼 담배 같은 건 내가 스스로 감수한 위험이고 내가 끊으면 피할 수 있지만, 인간 광우병은 내가 스스로 감수한 거라고 할 수는 없잖아? 이런 차이는 요즘 미국 소가 인간 광우병을 야기한다는 건 괴담일 뿐이라고 하는 중앙일보도 예전에는 신문에 기사로 썼었지. (중앙일보 2001년 2월 12일)
딸 그렇네… 게다가 스스로 감수하지 않은 것일 뿐 아니라 피할 수도 없는 것 같아. TV 보니까 쇠고기의 쓰임새가 워낙 넓어서 우리가 먹는 알약 껍질이나 조미료에도 쓰이고, 내가 좋아하는 라면의 수프에도 들어간다더라고. 생리대에도 들어가고 말이야. 그러니 학교급식이나 군대의 급식만 문제인 게 아닌가 봐. 하지만 말이야, 아빠. 그런데도 왜 우리 정부가 30개월 넘은 미국산 쇠고기에 광우병 위험물질까지 수입하겠다고 하는 거지?
아빠 한미FTA를 체결하려고 하는데, 미국에서 선결조건으로 자국산 쇠고기 수출을 허용하라고 요청하니까 그런 거지.
딸 한미FTA가 이런 위험을 감수할 만큼 필요한 일이야?
아빠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현 정부에는 다수이고, 우리 사회 전반에도 꽤 있단다. 그런 사람들은 아둔한 자기확신에 빠진 사람이거나 한미FTA를 통해서 자기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지. 생각해보렴, 한미FTA를 하면 누가 이익을 볼지. 아마도 미국에 수출하는 기업이겠지. 이런 기업들이 대부분 대기업이고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힘은 매우 크단다. 이에 비해 손해를 볼 사람들, 아빠가 보기엔 이런 사람들이 다수인데, 이들은 그렇게 힘있는 사람들이 아니지. 그리고 한미FTA는 광우병 문제를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변화, 아마도 다수에게는 아주 고통스런 변화를 가져올 것 같아.
국민이 반대하는데 정부가 수입을 강행할까?
딸 하지만 미국 쇠고기 수입은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잖아. 나는 못 나갔지만, 지난 주말에 친구들이 나한테 광화문에서 모이자는 문자를 많이 보냈어. 신문에 보니 광화문 촛불시위에 모인 사람들이 2만명이래. 이명박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인터넷 서명에 참여한 사람도 1백만명이 넘고. 이렇게 국민들이 반대하면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철회하지 않을까?
아빠 아마 그러기 어려울 거야. 엄청난 이익을 본 미국이 절대로 협상을 물리려 하지 않을 거고, 협상을 타결하고 나서 곧장 번복한다면 그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웃음거리가 되겠지. 더구나 그렇게 된다면, 정부는 자신들이 무능하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그리고 다른 나라에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꼴이 된단다. 임기를 막 시작한 정부가 곧장 레임덕에 빠질 일을 하려고 하지는 않겠지.
딸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국가와 정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건데, 다수 국민이 반대할 일을 하고, 그 일에 대한 국민들의 반대가 이토록 공공연히 표현되고 있는데도 그걸 깔아뭉개려 할 수 있지?
아빠 안타깝지만 광화문에 2만이 아니라 100만 명쯤 모이지 않는 한, 정부는 수입을 강행할 거고, 다음달엔 통관을 마친 미국산 쇠고기가 정육점에 깔릴 것 같구나.
딸 너무해. 이건 배신 아니야? 정부가 국민을 배신한 거 아니야?
국가와 정부의 본성에 대하여
아빠 …… 그렇구나. 어른으로서 할 말이 없구나. 그래도 아빠는 너희 세대 청소년들이 인터넷에서 토론을 주도하고 또 광화문 촛불시위에 나서는 걸 보면서 희망을 갖는단다. 그리고 이 기회에 너희 세대가 국가와 정부의 본성에 대해 생각해보길 바란다.
딸 그게 무슨 이야기야?
아빠 아빠 세대의 사람들이 젊었을 때 정말로 충격적이었던 일은 광주민주화운동에서 보듯이 국가가 자신들의 국민을 총으로 쏴 죽였다는 사실이었다. 그건 정말로 큰 상처였지. 그리고 아빠 세대는 그런 폭압적인 국가를 민주화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지. 하지만 아빠 세대가 애써온 민주화가 많이 모자랐는지, 이번엔 세계화 속에서 정부가 국민을 배신하는 일이 생기는구나. 이 상처와 고통을 너희 세대가 잘 새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국가와 정부의 본성이나 민주주의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를 바란다. 정부가 소수의 특권층을 위해서 다수 국민을 배신하지 않는 것은 다수 국민들이 양떼처럼 지배당하지 않으려는 단호한 의지를 가질 때만, 다수 국민들이 사태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질 때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란다.
딸 아빠 세대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 잘 몰랐어요. 하지만 알겠어요. 무섭고 화나는 일이지만 이번 일을 친구들과 열심히 이야기해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게요.
2008.05.07 ⓒ 김종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