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나서
차베스에서 21세기형 사회주의를 찾다
“소련과 공산주의 이래 미국에 대한 가장 큰 위협” 볼리바르주의 혁명은 어떻게 성공했나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나는 우리의 외교를 조용하면서도 효과적인 외교라고 부르고 싶다. 국민들을 돕는 데 초점이 맞춰진 외교,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외교, 아메리카 대륙 국민들의 엄청난 열정을 제대로 표현해내기 위한 외교라고….”
지난 3월10일 우루과이를 방문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타바레 바스케스 대통령과 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3월8~14일 브라질·우루과이·콜롬비아·과테말라·멕시코로 이어지는 남미 5개국 순방외교에 나선 터였다. 그의 이번 1주일간의 남미 순방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USA투데이〉는 “남미 각국에선 부시 대통령의 이번 순방을 두고 지난 세월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시키는 동시에 늘어만 가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영향력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한데…, 이를 어쩐다! 차베스 그분,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부시, ‘차베스’는 입에 올리기도 싫다?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거센 반미시위가 벌어지는 가운데 우루과이를 방문한 부시 대통령은 바스케스 대통령의 휴양지인 안코레나 공원에 자리한 대통령 별장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무역과 이민 규정 등 양국 현안이 주요 쟁점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회담 사이에 짬을 내 ‘아사도’라고 부르는 우루과이 전통 바비큐 요리를 맛봤고, 그림같이 펼쳐진 플라테강에서 25분가량 보트를 타는 여유도 즐겼다.
비슷한 시각 부시 대통령의 순방외교에 맞서 ‘반미투어’에 나선 차베스 대통령은 볼리비아를 방문하고 있었다. 그는 물난리로 폐허가 된 트리니다드 지역을 찾아 이재민들을 위로하고, 1500만달러의 긴급자금을 지원할 것임을 밝혔다. 미국이 지원하기로 한 150만달러의 10배에 이르는 금액이다. 이에 앞서 차베스 대통령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대규모 반미집회에 참석해 “제국의 보스께선 우리 아메리카의 영웅적 땅에서 아무런 볼일이 없으실 것”이라며 “미국 양반은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시라”고 야유를 퍼붓기도 했다.
차베스 대통령의 첫 방문지였던 파라과이에선 수도 아순시온의 미 대사관 앞에서 그를 지지하는 집회가 열렸다. 부시 대통령의 첫 번째 방문국인 브라질에선 6천여 명의 반미시위대가 최루탄과 곤봉으로 무장한 경찰에 맞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부시 대통령이 다녀간 과테말라의 유적지 ‘익심체’에선 마야 부족 지도자들과 원주민들이 나서 ‘정화의식’까지 거행했다. 15세기 무렵 강성했던 카구치캘족의 왕도였던 이곳은 스페인 정복군에 맞서 싸웠던 원주민들이 장렬한 최후를 맞은 곳으로 유명하다.
“부시 대통령의 남미 5개국 순방길을 동행 취재한 기자단은 어떻게든 그의 입에서 차베스 대통령의 이름이 나오게 하려고 갖은 애를 썼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순방국에서 한 인터뷰나 각종 브리핑 자리에서 기자단은 모두 11차례 차베스 대통령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차베스 대통령의 이름을 끝내 입에 올리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의 순방을 정리하는 3월15일치 기사에서 <뉴욕타임스>는 “심지어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누구냐’고 직접 묻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한 때도 있었을 정도”라고 밝혔다. 차베스 대통령은 이미 여러 차례 부시 대통령을 툭하면 ‘거짓말쟁이’ ‘악마’ ‘정치적 송장’ 등으로 불러왔으니,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싫은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부시 대통령으로선 이래저래 이번 순방길에 심사가 편하지는 않았을 게다.
노무현 발목을 잡은 건 조·중·동‘뿐’이었지
“소련과 공산주의 이래 미국에 대한 가장 큰 위협.” 미 국방부가 차베스 대통령을 가리켜 한 말이다. 인구 2700만 명, 2005년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55위, 연간 국방 예산이 미국의 0.3% 수준에 불과한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에게 미 국방부는 왜 그토록 긴장하는 걸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젊은 연구자 7명이 내놓은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시대의 창 펴냄)는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책이다.
“혁명은 미풍처럼 스며들고, 개혁은 폭풍처럼 몰아친다”고 했던가? 지난해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한 번 재선에 성공한 차베스가 ‘21세기형 사회주의’를 찾아가는 과정을 ‘선거를 통한 합법혁명’으로 규정한 지은이들은 △혁명의 배경 △민중권력 형성 과정 △베네수엘라식 참여민주주의 △공동경영 제도와 협동조합 확산 △석유산업 개혁 과정 △대안적 지역협력체 등으로 나눠 세밀하게 분석의 잣대를 들이댄다.
차베스의 정치 실험을 끊임없이 한국 사회에 빗대보는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이를테면 “조·중·동 등 발목을 잡는 언론 때문에 개혁이 어렵다”는 노무현 정부의 ‘자기 변명’에 대해선 이런 반박을 내놓는다. “차베스 집권 당시 5개 주요 상업방송 전부와 10개 전국적 주요 일간지 가운데 9개가 노골적인 반차베스 진영이었다. 이들 언론은 심지어 2002년 4월 반차베스 군부 쿠데타를 직접 홍보하고 함께 모의까지 했다. 이들 반차베스 언론의 대부 격인 시스네로스 그룹의 매출액은 조선일보의 10배 규모이고, 중남미 전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준이다.”
더 아픈 지적도 있다. “후보 시절 ‘사진 찍으러 미국에 가지는 않겠다’고 호언했다가 정작 당선되고 나서는 상당한 저자세로 미국을 다녀온 노무현 대통령에 비해, 차베스는 유엔총회 연설장에서 부시를 ‘악마, 독재자’로 부르며 훌닦을 정도로 강경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미국과의 교역량을 늘리는 실용성을 결코 잃지 않는다.” 책 말미에 부록으로 실린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헌법’ 전문 번역본은 베네수엘라 정치 실험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히는 ‘헌법을 통한 합법 혁명’의 의미를 가늠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차베스 대통령 개인에 관심을 집중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지난해 9월 출간된 <민중의 호민관 차베스>(리처드 고트 지음·당대 펴냄)를 들춰볼 일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라틴아메리카 특파원을 지낸 지은이는 안데스산맥 끝자락의 광활한 오리노코 분지 가장자리인 시골 마을 바리나스에서 출발해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대통령 관저 ‘라 카소나’에 이르기까지 차베스의 일생을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치밀하게 추적했다. 차베스 본인과의 토론을 통해 “확실히 그는 유토피아적 비전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매사가 그렇듯이 그의 꿈이 결국은 좌절될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럼에도 그는 “어쩌면 이 위대한 혁명이 때 아닌 중단을 경험할지도, 모두의 눈물 속에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차베스의 여러 제안과 그의 ‘볼리바르주의 혁명’은 더 좋은 결말을 기대해볼 만하다”고 적었다.
차베스가 ‘라 카소나’에 이르기까지
온라인 연구모임에서 출발해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베네수엘라혁명연구모임 엮음, 시대의 창 펴냄)란 책까지 펴낸 겁없는 젊은이들이 전하는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굴레를 벗고 자주의 새 역사를 여는 베네수엘라”를 읽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 이 책은 “역사의식과 민중애 강한 군인”이던 차베스가 불발된 쿠데타와 투옥 생활을 거쳐 마침내 ‘선거혁명’에 성공하기까지의 과정과 ‘쿠데타(2002년 4월)-자본 파업(2002년 11월)-소환투표(2004년 8월)’로 이어진 반대파의 세 차례 ‘도발’을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외국 서적과 뉴스 기사, 인터넷 자료만으로도 비교적 충실히 정리해놨다.
“소련과 공산주의 이래 미국에 대한 가장 큰 위협” 볼리바르주의 혁명은 어떻게 성공했나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나는 우리의 외교를 조용하면서도 효과적인 외교라고 부르고 싶다. 국민들을 돕는 데 초점이 맞춰진 외교,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외교, 아메리카 대륙 국민들의 엄청난 열정을 제대로 표현해내기 위한 외교라고….”
지난 3월10일 우루과이를 방문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타바레 바스케스 대통령과 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3월8~14일 브라질·우루과이·콜롬비아·과테말라·멕시코로 이어지는 남미 5개국 순방외교에 나선 터였다. 그의 이번 1주일간의 남미 순방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USA투데이〉는 “남미 각국에선 부시 대통령의 이번 순방을 두고 지난 세월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시키는 동시에 늘어만 가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영향력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한데…, 이를 어쩐다! 차베스 그분,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부시, ‘차베스’는 입에 올리기도 싫다?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거센 반미시위가 벌어지는 가운데 우루과이를 방문한 부시 대통령은 바스케스 대통령의 휴양지인 안코레나 공원에 자리한 대통령 별장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무역과 이민 규정 등 양국 현안이 주요 쟁점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회담 사이에 짬을 내 ‘아사도’라고 부르는 우루과이 전통 바비큐 요리를 맛봤고, 그림같이 펼쳐진 플라테강에서 25분가량 보트를 타는 여유도 즐겼다.
비슷한 시각 부시 대통령의 순방외교에 맞서 ‘반미투어’에 나선 차베스 대통령은 볼리비아를 방문하고 있었다. 그는 물난리로 폐허가 된 트리니다드 지역을 찾아 이재민들을 위로하고, 1500만달러의 긴급자금을 지원할 것임을 밝혔다. 미국이 지원하기로 한 150만달러의 10배에 이르는 금액이다. 이에 앞서 차베스 대통령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대규모 반미집회에 참석해 “제국의 보스께선 우리 아메리카의 영웅적 땅에서 아무런 볼일이 없으실 것”이라며 “미국 양반은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시라”고 야유를 퍼붓기도 했다.
차베스 대통령의 첫 방문지였던 파라과이에선 수도 아순시온의 미 대사관 앞에서 그를 지지하는 집회가 열렸다. 부시 대통령의 첫 번째 방문국인 브라질에선 6천여 명의 반미시위대가 최루탄과 곤봉으로 무장한 경찰에 맞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부시 대통령이 다녀간 과테말라의 유적지 ‘익심체’에선 마야 부족 지도자들과 원주민들이 나서 ‘정화의식’까지 거행했다. 15세기 무렵 강성했던 카구치캘족의 왕도였던 이곳은 스페인 정복군에 맞서 싸웠던 원주민들이 장렬한 최후를 맞은 곳으로 유명하다.
“부시 대통령의 남미 5개국 순방길을 동행 취재한 기자단은 어떻게든 그의 입에서 차베스 대통령의 이름이 나오게 하려고 갖은 애를 썼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순방국에서 한 인터뷰나 각종 브리핑 자리에서 기자단은 모두 11차례 차베스 대통령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차베스 대통령의 이름을 끝내 입에 올리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의 순방을 정리하는 3월15일치 기사에서 <뉴욕타임스>는 “심지어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누구냐’고 직접 묻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한 때도 있었을 정도”라고 밝혔다. 차베스 대통령은 이미 여러 차례 부시 대통령을 툭하면 ‘거짓말쟁이’ ‘악마’ ‘정치적 송장’ 등으로 불러왔으니,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싫은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부시 대통령으로선 이래저래 이번 순방길에 심사가 편하지는 않았을 게다.
노무현 발목을 잡은 건 조·중·동‘뿐’이었지
“소련과 공산주의 이래 미국에 대한 가장 큰 위협.” 미 국방부가 차베스 대통령을 가리켜 한 말이다. 인구 2700만 명, 2005년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55위, 연간 국방 예산이 미국의 0.3% 수준에 불과한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에게 미 국방부는 왜 그토록 긴장하는 걸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젊은 연구자 7명이 내놓은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시대의 창 펴냄)는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책이다.
“혁명은 미풍처럼 스며들고, 개혁은 폭풍처럼 몰아친다”고 했던가? 지난해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한 번 재선에 성공한 차베스가 ‘21세기형 사회주의’를 찾아가는 과정을 ‘선거를 통한 합법혁명’으로 규정한 지은이들은 △혁명의 배경 △민중권력 형성 과정 △베네수엘라식 참여민주주의 △공동경영 제도와 협동조합 확산 △석유산업 개혁 과정 △대안적 지역협력체 등으로 나눠 세밀하게 분석의 잣대를 들이댄다.
차베스의 정치 실험을 끊임없이 한국 사회에 빗대보는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이를테면 “조·중·동 등 발목을 잡는 언론 때문에 개혁이 어렵다”는 노무현 정부의 ‘자기 변명’에 대해선 이런 반박을 내놓는다. “차베스 집권 당시 5개 주요 상업방송 전부와 10개 전국적 주요 일간지 가운데 9개가 노골적인 반차베스 진영이었다. 이들 언론은 심지어 2002년 4월 반차베스 군부 쿠데타를 직접 홍보하고 함께 모의까지 했다. 이들 반차베스 언론의 대부 격인 시스네로스 그룹의 매출액은 조선일보의 10배 규모이고, 중남미 전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준이다.”
더 아픈 지적도 있다. “후보 시절 ‘사진 찍으러 미국에 가지는 않겠다’고 호언했다가 정작 당선되고 나서는 상당한 저자세로 미국을 다녀온 노무현 대통령에 비해, 차베스는 유엔총회 연설장에서 부시를 ‘악마, 독재자’로 부르며 훌닦을 정도로 강경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미국과의 교역량을 늘리는 실용성을 결코 잃지 않는다.” 책 말미에 부록으로 실린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헌법’ 전문 번역본은 베네수엘라 정치 실험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히는 ‘헌법을 통한 합법 혁명’의 의미를 가늠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차베스 대통령 개인에 관심을 집중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지난해 9월 출간된 <민중의 호민관 차베스>(리처드 고트 지음·당대 펴냄)를 들춰볼 일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라틴아메리카 특파원을 지낸 지은이는 안데스산맥 끝자락의 광활한 오리노코 분지 가장자리인 시골 마을 바리나스에서 출발해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대통령 관저 ‘라 카소나’에 이르기까지 차베스의 일생을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치밀하게 추적했다. 차베스 본인과의 토론을 통해 “확실히 그는 유토피아적 비전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매사가 그렇듯이 그의 꿈이 결국은 좌절될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럼에도 그는 “어쩌면 이 위대한 혁명이 때 아닌 중단을 경험할지도, 모두의 눈물 속에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차베스의 여러 제안과 그의 ‘볼리바르주의 혁명’은 더 좋은 결말을 기대해볼 만하다”고 적었다.
차베스가 ‘라 카소나’에 이르기까지
온라인 연구모임에서 출발해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베네수엘라혁명연구모임 엮음, 시대의 창 펴냄)란 책까지 펴낸 겁없는 젊은이들이 전하는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굴레를 벗고 자주의 새 역사를 여는 베네수엘라”를 읽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 이 책은 “역사의식과 민중애 강한 군인”이던 차베스가 불발된 쿠데타와 투옥 생활을 거쳐 마침내 ‘선거혁명’에 성공하기까지의 과정과 ‘쿠데타(2002년 4월)-자본 파업(2002년 11월)-소환투표(2004년 8월)’로 이어진 반대파의 세 차례 ‘도발’을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외국 서적과 뉴스 기사, 인터넷 자료만으로도 비교적 충실히 정리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