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둘러싼 논쟁
- 자주국방의 진실과 오해

※ 다음 글들은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둘러싼 논쟁을 담고 있다. 각각의 글들에서 제시하고 있는 핵심 주장을 찾아내어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어떻게 보아야 할 지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제시해 보시오.

1. 작전통제권 이양배경 제대로 보자 /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한국군의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특히 쟁점이 되는 부분은 한국군의 작전통제권 환수가 미국과의 동맹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의 문제다. 보수신문들은 북한문제와 관련해서 미국과 원만하지 못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참여정부가 작전통제권을 환수하는 것은 한-미 동맹의 약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 행정부는 작전통제권을 한국정부에게 돌려준다고 하더라도 동맹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오히려 작전통제권을 돌려줄 구체적인 일정표까지도 제시하였다. 작전통제권의 반환은 주한미군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것인데도 왜 미국 정부는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첫째, 미국 정부의 처지에서 볼 때 더는 한국 정부의 비이성적 행동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가 되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승만 정부의 북진 통일론과 박정희 정부의 북한 보복공격 주장은 미국의 동북아 정책 전체를 파탄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1953년 반공포로 석방과 66~67년 한국군의 비무장지대내 보복공격을 경험했던 주한미군 사령관은 두 정부의 대북정책을 신뢰하지 못했다. 68년 안보위기 때 방한했던 당시 미국 대통령 특사 사이러스 밴스는 정일권 국무총리에게 한국이 당하는 입장이 되어야만 미국이 한국을 도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만약 미국이 한국을 돕지 못하는 처지가 될 때 일본의 안보 역시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한국이 민주화하면서 미국은 더는 한국군이 미국의 동북아 정책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둘째, 미국의 국외 군사 재배치 계획에 따라 작전통제권 환수가 추진되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미국 행정부 내에서 주한미군의 감축 또는 철수가 계획될 때마다 한국군의 작전통제권 문제가 고려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63년 11월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가 내놓은 ‘미군 및 한국군 감축을 위한 계획’이라는 문서다. 이 문서는 유사시 핵무기 사용을 전제로, 주한미군의 규모를 5만7천명에서 4만명 수준으로 줄일 것을 검토하였다.
그런데 이 문서에서 지적한 문제의 하나는 주한미군의 규모를 너무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만약 한 사단 이하로 주한미군이 감축될 경우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적은 수의 미군으로는 한국군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과 명분을 모두 잃게 된다는 것이다. 사단 이하의 규모로 주한미군이 축소된다면, 주한미군 사령관의 계급 역시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상의 두 가지 문제는 미국 쪽이 한국군의 작전통제권 환수에 크게 반대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90년대 초 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한 문제가 한국과 미국 정부에 의해 논의되었던 것 역시 당시 미국 행정부가 국외 주둔 미군의 재편을 고려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현재 주한미군은 신속기동군으로 전환될 참이다. 주한미군의 규모도 축소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군의 전시 작전통제권을 갖는다는 것은 미국으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이며, 현실적이지도 못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왜 이 문제를 제시했는지를 생각해 보지도 않고, 무조건 우리의 처지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지난 60여년 간의 한-미 관계를 돌아보면 이런 경우가 적지 않았다. 미국 쪽 정책에 대한 분석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우리 처지에서만 한-미 관계를 재단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제 주먹구구식 계산법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2. 전시 작통권 환수가 제공한 기회 / 정태익 -전 주러시아 대사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문제가 초미의 안보 현안으로 대두되었다. 국가 운명을 좌우하는 전시 작통권 환수문제는 찬반의 이분법적 시각에서 피상적으로 다루어져서는 아니되며 심도있는 논의를 통해 균형있고 냉철한 접근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첫째, 애초 작통권 이양조처는 국가의 초비상 상황에서 이루어진 초헌법적 소지가 있는 조처였음으로 언젠가는 환수을 통해 정상화되어야 할 문제였다. 역사상 우리나라는 임진왜란 때 명군에, 한국전쟁 때는 미군에 군지휘권을 맡겨 국가의 생존권을 지켰다. 국가를 보위할 수 있는 국방력의 부재로 국난 때 국가 운명을 외국 군대에 맡기는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명제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둘째, 국제정치는 힘의 세계이므로 패권국가가 등장할 때마다 변화된 국제질서에 대응하지 못한 국가는 안위가 흔들리고 소멸까지 했다는 것을 세계사는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동북아 질서 주도국가인 미국이 바라는 전시 작통권에 대한 자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9·11사태 이후 테러와 대량살상무기 확산 등 새로운 안보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해외 주둔군의 신속군화가 필요하게 되었다. 미국은 21세기의 신동맹정책에 따라 우리의 전시 작통권 환수문제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참여정부의 전시 작통권 환수 방침과 미국의 이양 방침은 환수문제를 돌이키기 어려운 문제로 만들었다.
셋째, 북한이 국력 쇄락과 고립으로 더욱 증대된 안보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핵과 미사일 등을 개발하고 있다. 핵 위협이라는 안보 취약시기에 전시작통권 환수가 추진돼 위기의식이 팽배하므로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이 있어야 한다. 향후 동북아와 한반도는 북한의 핵 위협, 패권적 국가 등장, 테러와 사이버 침투, 안전한 해상로 확보 등 다양한 형태의 안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위협 유형별 복합 지휘체계 구조를 가지는 포괄적 한-미 공동방위대책 방안에 대해서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넷째, 전시 작통권 환수 절차는 본래적인 군 통수권의 회복조처이므로 대통령의 환수조처로 충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다만 환수 조처가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환수에 따른 막대한 방위비 추가소요 등 국민부담 문제에 대해서는 국회가 국정감사와 예산심의를 통해 환수 정책의 적합성과 안보비용 부담에 대한 적정성 여부를 따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환수문제에 대한 국민투표는 정치적 결단으로 실시될 수 있으나 법적 요건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다섯째, 우리 군의 독자적 작전능력 부족 문제와 관련하여 대북 군사 억지전력과 첨단 정보시설 등 하드웨어 확보문제와 억지전략화 전쟁기획, 정보수집 및 분석 능력 등 소프트웨어 습득 문제는 실용적으로 접근하여야 한다. 환수 과정에서 제기되는 모든 안보현안을 원활하게 협의하기 위해 한-미 양국의 외무, 국방부 장관이 참여하는 4자 협의기구를 새롭게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전시 작통권 환수는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해결원칙에 힘을 실어, 남북한 대화의 재개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촉진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또한 환수를 계기로 미-북 실질협상 부재로 정체되고 있는 6자회담을 활성화하여 북핵문제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나아가 개선된 남북관계가 군비통제와 군축으로 이어지도록 하여 막대한 방위비 부담을 서로 완화시키는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전시 작통권 환수가 제공하는 평화의 기회를 살리는 외교전략의 수립에 비중이 주어져야 한다. 한반도의 미래는 오늘의 통찰력 있는 전략적인 비전과 과감한 실행에 달려 있다.

정태익 / 경남대 초빙교수·전 주러시아 대사
3. 균형 찾아야 할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논란  / 한겨레 사설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은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독립적인 전시 작전통제권에 대한 한국 정부의 열망을 절대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작전통제권이 이양되면 해체될 가능성이 높은 한-미 연합사령부의 사령관이기도 하다. 앞서 미국 국방부 고위 관계자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이처럼, 미국 정부 주요 당국자 가운데 작전통제권 이양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이들이 보기에도, 지금 한국에서 이 문제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은 뭔가 정상이 아니다.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은 한·미 두 나라가 상당히 질서있게 협의 중인 사안을 야당과 일부 세력이 왜곡해 정치적 쟁점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작전통제권이 환수되면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한-미 동맹도 와해될 것처럼 주장하는 건 무책임한 선동이다. 미국은 이 문제와는 별개로 국외주둔 미군을 재편하고 있다. ‘한반도 방위의 한국화’는 미국이 20년 전쯤부터 얘기해 온 것이다. 물론 작전통제권 환수를 통한 군사주권 회복은 그보다 상위 개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제 〈연합뉴스〉와의 특별회견에서 “동북아 평화구조나 남북관계 안정을 위해서도 (작전통제권 환수가) 꼭 필요하다”고 한 것은 타당하다. 일부 언론의 안보 상업주의를 지적한 대목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몇몇 발언은 또다른 측면에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의 초점을 빗나가게 함으로써 논란을 잠재우기보다 복잡하게 만들어 유감이다.
우선 노 대통령이 언급한 ‘세계 최고 수준 군대 육성’은 작전통제권 환수와 필수적 인과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현실성도 없다. 대규모 군비증강은 새 시대에 맞는 안보개념 아래 동북아 평화공존 흐름을 주도해야 할 우리의 중장기 국가전략과도 상충된다. 작전통제권 환수 시기와 관련해 ‘지금도 할 수 있다’고 한 것도 국군통수권자로서 발언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잠재 역량을 현실화하고 체제를 바꿔 정착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다뤄온 여러 당국자를 제치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공세적으로 얘기할 필요가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비판의견 가운데도 들을 만한 얘기가 없지 않을 텐데, 미리 봉쇄해 버리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이 옳다고 믿더라도 국민의 다양한 여론을 수렴해 적절하게 반영할 의무가 있다.




4. 라스베이거스에서 본 전시 작통권 /  권용립 경성대 교수·국제정치
  
미국의 군사 전문가 로버트 캐플런이 <애틀랜틱 먼슬리> 최근호에 쓴 기사 ‘라스베이거스의 탈레반 사냥’의 내용이다. 카지노 호텔이 즐비한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내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넬리스 공군기지가 있다. 영내에는 위장막을 친 군용 트레일러들이 있는데, 트레일러마다 2인 1조로 편성된 미국 공군의 A-10과 F-15 조종사들이 헬파이어 공대지 미사일을 실은 무인 정찰기 MQ-1B, 일명 ‘약탈자’(프레디터)를 24시간 조종한다. 유럽에 설치한 군용 안테나와 대서양의 해저 케이블을 통해 전송된 이 무인 정찰기의 실시간 영상을 컴퓨터 화면으로 보면서 한 트레일러에서는 이라크 전쟁을, 그 옆의 트레일러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소탕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그래서 트레일러 바깥은 미국 본토, 곧 북부사령부 관할 지역이지만, 트레일러 안은 중동 지역을 관장하는 중부사령부 작전 지역이다. 언젠가 태평양사령부가 관할하는 한반도용 트레일러도 그 옆에 생길지 모른다.
미국이 주도하는 21세기의 군사기술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특히 무인 항공기를 이용한 원격 전쟁 기술의 발달은 군사작전의 개념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 이미 미국은 낙타와 인공위성을 결합시킨 정보 기동전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선보였지만, 지상 전투를 대체할 무인 공격 기술이 발달할수록 전통적인 작전 개념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종전의 기지 중심에서 소규모 기동군 중심 편제로 온세계의 미군을 재배치하는 미국의 계획(GPR)도 군사기술 혁신에 따른 새로운 작전 개념에 기대어 추진되고 있다. 생각이 기술을 바꾸는 게 아니라 기술이 생각을 바꾼다. 비 군사 전문가의 순진한 예측일 수도 있겠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작전을 지휘하는 원격전이 보편화하면 ‘누가 지휘하는가’를 결정하는 작전통제권(작통권)보다 ‘어떻게 지휘하는가’를 결정할 군사 기술력이 중요해진다. 작전 통제의 의미가 병력 통제에서 기술 통제로 이동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을 앞세운 안보론과 명분을 앞세운 자주론이 맞붙은 근래의 전시 작통권 환수 논쟁은 철저히 ‘근대전의 추억’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작통권 이양 이후에도 주한미군 주둔과 유사시 지원 전력을 보장한다는 미국 대통령의 말에 이어 미국 국방장관도 2009년까지 작통권을 반환하겠다고 나선 배경에는 정치·경제적 고려도 있겠지만 작전 개념의 탈근대적 변환에 대한 비전도 있을 것이다. 이미 주한미군도 작전 범위나 작전 능력 면에서 한국군보다 월등한 해군과 공군 위주로 재편되고 있으며, 한-미 연합사를 대체하게 될 공동방위 체제도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운용될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군사 기술력의 불가피한 차이 때문에 유사시 양국의 작전 범위가 기술적으로 구별될 개연성도 있다. 전시 작통권을 단순히 지휘권 소재 문제로만 볼 수 없는 구체적인 정황이다.
한국 국방부 장관이 북한의 핵 보유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뉴스를 그냥 넘길 만큼 온 나라가 21세기형 상품권 도박 추문의 볼모로 붙잡힌 상황이지만, 작통권 문제를 이해하는 생각의 틀은 여전히 20세기에 머물러 있다. 작통권 환수 논쟁이 예법을 둘러싼 조선시대의 당쟁과 다른 생산적 논쟁이 되려면, ‘자주’나 ‘안보’의 의미까지 변화시킬 구체적 기술 문제까지 포괄하는 논쟁이 되어야 한다. 작통권 논쟁이 각각 명분과 현실만 내세운 정치적 대결로 끝나서는 안 될 이유는 이것이다. (오마이 뉴스)
5. 럼스펠드 발언과 한나라당의 ‘안보 장사’ / 한겨레 사설 2006년8월29일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엊그제 “솔직히 북한이 한국의 당면한 군사적 위협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니 미국 정부의 공식 견해라고 봐도 된다. 그간 북한 군사력의 취약성을 지적하는 관련 전문가들의 언급은 종종 있었으나 미국의 국방 책임자가 이런 전략적 판단을 공식화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럼스펠드 장관의 발언은 전시 작전통제권(작통권) 이양 문제와 관련이 있다. 미국이 작통권 조기 이양에 적극적인데는, 주한미군을 붙박이가 아닌 기동군으로 바꿔가는 데 유리하다는 판단과 함께 북한의 잠재 위협 감소에 대한 현실적 평가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계속된 북한 경제난과 지난 30여년 동안 남한의 절반 수준이었던 북한 국방비 규모 등을 생각하면 이런 평가는 타당성을 지닌다.
그런데 한국국방연구원도 지적했듯이, 우리 정부는 여전히 한국군이 북한보다 열세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왜 미국 쪽과 이렇게 인식 차이가 나는지를 국민에게 소상히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는 전시 작통권 환수를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수백조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국방개혁 2020’도 북한의 잠재 위협에 대한 설득력 있는 평가가 선행돼야 국민의 이해와 참여를 끌어낼 수 있다. 통일 이후 상황 변화까지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고만 할 일이 아니다.
더 한심한 것은 다음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작통권 문제를 의제로 삼지 말 것을 포함해 작통권 환수 협의 중단을 요구하는 한나라당이다. 안보 불안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국민의 합리적 판단을 흐리고 안보불안 심리를 들쑤시는 것은 바로 한나라당 자신이다. 한 의원은 “정부내 친북세력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작통권 환수를 추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을 버젓이 방송에서 했다. 수구정당이 ‘안보 장사’로 국민을 현혹하던 냉전 시대로 돌아간 느낌마저 든다.
미국은 냉정한 판단에 따라 작통권을 넘겨주려 하는데, 한나라당과 일부 보수세력은 불안감을 조성하고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미국에 매달릴 것을 요구한다. 지금까지 미국과 벌여 온 협의를 원점으로 돌리고 바짓가랑이부터 잡고보자는 식이다. 나라의 꼴은 어떻게 되든 정파적 이익만 챙기면 된다는 태도로 볼 수밖에 없다.





6. '국방원로'들이여, 안보 논할 자격 있던가

[유창선 칼럼] 미국의 말조차 듣지않는 작통권 환수 반대론자들 / 유창선(yucs) 기자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관련한 전 국방장관들의 모임이 10일 오전 서울 신천동 향군회관에서 열렸다. 전직 국방장관들은 회의를 마친 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언제라도 좋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결코 이 발언에 동의할 수 없다"며 "국민적 합의를 형성하기 위한 국회 동의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간 성명서를 발표했다.  
진풍경이다. 역대 국방장관들이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에 반대하며 집단행동에 나선 것. 도대체 이런 경우가 어디 있던가. 과거 정권의 장관들이 나서가지고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압박을 가하는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여러모로 온당치 못하다.
어디 떳떳한 정권의 장관들이기나 했나.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군의 정치적 중립을 파괴했던 독재정권 혹은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장관직을 지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시대의 잣대를 가지고 오늘의 국방정책을 심판하려는 만용을 이들은 부리고 있다. 마치 자신들이 아직도 국방정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세력인 것처럼 말이다.
'원로'들이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는 것이야 뭐라 할 바 아니지만, 전직 장관들이 국가정책에 대해 이런 식으로 집단적 압력을 넣는 행동을 하는 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일이다. 자신들의 위치를 잘못 생각한 행동이다.

국방원로의 의견 무시해도 좋은 이유
그러면 그들의 목소리는 '원로'들의 고견으로 과연 존중되어야 할까. 그들의 의견을 무시해도 좋은 몇 가지 이유를 밝혀보자. 먼저 이날 회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면면이다. 유신독재 아래에서 줄곧 여당 의원하다가 민정당 대표를 지냈고 마침내 부정축재로 물러났던 인사, 12·12 쿠데타에 가담했던 인사들, 12·12 쿠데타 때 반란군 진압의 임무를 팽개치고 사라졌던 인사, 5·17에 가담하고 국보위에 참여했던 인사들, 율곡비리로 구속되었던 인사들….
우리 군을 독재정권의 사병으로 전락시켰거나, 국기를 무너뜨리는 하극상의 행동을 했거나, 신성한 국방의 책임을 비리로 오염시켰던 인사들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집단행동에 나선 역대 국방장관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렇게 떳떳치 못한 전력을 갖고 있다.
그런 전력의 소유자들은 안보를 무너뜨리거나 위협하는 행동을 했던 사람들이다. 과연 이들이 '원로'라는 이름을 내걸고 나라를 지키는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자격이 있을까. 안보를 논할 자격이 있을까. 아무리 세월이 많은 것들을 잊게 해준다 해도, 우리 군의 역사에 오점을 남긴 그들이 안보의 수호자처럼 나서는 모습은 납득할 수가 없다.
도덕적인 자격의 문제뿐만 아니다. 이들의 주장은 이율배반적이다. 작전통제권 환수가 노태우 정부, 김영삼 정부 아래에서도 추진되었음은 여러 자료들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평시' 작전통제권 뿐 아니라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까지도 계획했었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는 노무현 정부의 돌출적인 정책이 아니라, 역대 정권들의 공통의 목표였음이 확인되고 있다.
몇몇 인사들의 경우, 과거에는 자신들도 작전통제권 환수에 나섰으면서도 정작 현정부의 같은 정책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신들이 하면 '자주국방'이요, 노무현 정부가 하면 '한미동맹 파괴'가 되는 것이다. 1994년 평시 작전통제권이 환수되자 '자주국방을 향한 일보전진'이라며, 전시 작전통제권도 빨리 환수되어야 한다던 언론들이 이제와서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과 닮은꼴이다.
결국 문제는 작전통제권 환수라기보다는, 그것을 추진하는 주체가 노무현 정부라는데 있는 것이다. 같은 정책을 갖고도 어떤 정권이 추진하느냐에 따라 '전진'이 되기도 하고, '파괴'가 되기도 하는 셈이다.

미국이 국내 반대론자 설득하는 모양새
그렇다면 철저한 정치논리이며 정치적 논란이다. 국방의 미래를 내다보며 걱정하는 우국충정보다는, 집권세력에 대한 적대적 태도가 이들의 집단행동을 낳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게 되어있다.
미 국방부와 벨 주한미군 사령관은 한·미 동맹은 굳건히 유지될 것이며, 한국의 전시 작권통제권 환수를 적극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이드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장도 "한국군이 여러 방면에 있어 상당한 궤도에 올랐고, 작전통제권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이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미국이 노무현 정부에 불만이 있어 전시 작전통제권을 넘기는 게 아니고, 양국의 장기적 관계 설정에 꼭 필요해서 한다는 것이 미 국방부의 설명이다.
이제 미국이 나서서 한국 내의 반대론자들을 설득하는 모양이 되고 있다. 전시 작전통제권 이양이 해외주둔미군 재배치계획(GPR)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미국 정부가 누누이 설명해도 국내의 반대론자들은 마이동풍이다. 굳건한 한·미동맹론자들이 미국정부의 말조차도 들으려하지 않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소동이다. 과거 국방장관을 지냈다는 사람들이 나서서 한미 양국 정부의 설명은 들으려조차 하지 않고 안보불안 심리를 자극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역대 국방장관들은 오늘(11일) 보수단체들이 주최하는 집회에 참석하여 거리로 나설 것이라 한다.

지난날 그리고 오늘, 정말로 안보를 흔들었고 흔들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였던가를 반문하게 된다. 자기나라의 군사주권마저도 저토록 당당하게 부정하는 오늘의 이 부끄러운 장면을, 우리는 역사에 또 어떻게 기록해야 할 것인가.  (2006년 8월11일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