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 논술 자료함
현대 사회에서의 참된 지식인으로서의 역할 진선여고3 안현경
우리 사회에는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지식인이 존재해 왔다. 흔히 사람들은 ‘지식인’하면 엘리트나 부르주아 계층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런 엘리트 계층들 중에서도 체 게바라나 워싱턴처럼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위인들도 있지만 황우석 교수같이 지식인으로서의 본분을 다 하지 못한다고 비난을 받는 사람도 있다.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사람들은 전자에게는 참된 지식인이라 부르며 존경하지만 후자에게는 사이비 지식인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참된 지식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세를 갖추어야 하는 것 일까?
제시문에는 지식인이 갖추어야 할 자세에 대해 나와 있다. 제시문의 요지를 보면 지식인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서 능동적으로 변화하여 행동해야 하고, 지식인의 역할이 구체적으로 변화함에 따라서 그들의 정치적 역할이 증대하게 되었는데 그들의 이론을 무조건 배척하지만 말고 담론효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지식인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작업하고 옳지 않은 진리가 있으면 싸우며 진리체계를 세워야 한다고 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지식인의 자세도 제시문에 나타난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점점 전문화되고 복잡해 졌다. 그에 따라서 지식들도 더욱더 깊어지고 세분화 되었다. 변화된 사회만큼 지식인들도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능동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 조선시대 말 그때의 지식인 계층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유학자들이였다. 이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쇄국정책을 지지하였다. 하지만 이들이 참된 지식인이라 불릴 수 없는 이유는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 이다. 과거보다 더 급변화 되고 경쟁 사회인 지금은 더욱더 지식인들에게 사회 변화에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력층의 압박에 의해서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는 지식인은 권력의 하수인으로 대중들을 교란시키는 역할밖에 할 수 없을 것 이다. 그리고 대중들과 소통할 수 없는 지식인은 현실과 동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 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대중들에게서 소외된 채 문제만 제기하고 해결책은 제기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 것 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지식인이 되기 위해서는 권력층의 대변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항상 대중의 의견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이다. 우리는 지식인이 연구하는 진리가 어려운 것으로만 생각한다. 지식인은 이러한 진리를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체계를 세우는 역할도 해야 한다.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지식인은 주로 부르주아 계층에서 나와 대중들에게 많이 외면 받아 왔다. 하지만 지식인들이 대중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면 대중들과의 소통을 통해 사회를 올바르게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1495자
진리와 지식인 / 광 남 고3 조 영 수
지식인은 우리 사회에서 권위를 인정받아 온 상위계층에 속해왔다. 지식인은 오직 진리만 외쳐왔으며, 모든 사람의 의식과 양심의 지표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이러한 역할을 맡지 않게 되었다. 고차원적이고 원론적인 진리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생활에 얽혀있는 문제들에 관여하게 된 것이다. 지식인들에 대한 재정의가 크게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다.
그러나 지식인들의 권위가 떨어지긴 했지만 그들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다. 정치, 경제, 사회, 과학 등 특정 학문과 관련된 구체적 지식인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 일을 대신 도맡아 하겠는가? 또 이들 지식인이 자신의 주장을 통해 개인적 이데올로기를 퍼뜨린다는 구실로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다. 지식인은 자신이 생각하는 진리체계를 바탕으로 주장을 펼쳐나가고 있으며 여전히 사회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식인의 진리도 타당한 논리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리는 세상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것이 아닌 현실에 맞게 정제된 하나의 논리체계로 구분 지을 수 있다. 사회가 은연중에 받아들이는 담론의 방식을 바탕으로 정치, 경제적 동기에 의해 사회현실을 반영한 진리가 형성된다. 따라서 진리란 권력을 지배하는 것도, 권력에 지배당하는 것도 아니다. 꼭 맞추어진 여러 제약조건 등을 통하여 생산되는 것이다. 진리체계는 우리 사회의 구조 및 기능과 본질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지식인은 이 가운데서 작업하고 싸우는 존재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인을 무작정 배척하기 보다는 하나의 당연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일반 대중들과 조화를 꾀하는 존재로 봐야 마땅하다.
지식인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대중들과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국가 구성원인 것이다. 그러면 진정한 지식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지식인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이 필요하다. 알 지(知), 알 식(識)이라는 낱말로 구성된 ‘지식인’이라는 한 단어는 그리 간단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인들의 참된 역할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단지 아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몸으로 느끼고 순수하게 이해하려는 기본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근본적으로 지식인은 반성할 줄 아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박식함과 그리고 일반 대중들보다 높은 지위를 이용해 악영향을 끼치는 지식인은 사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망가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언행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인지 계속 되새겨 보면서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만약 지식인들이 개과천선한다면 대중들도 마땅한 호응을 보일 것이고 두 계층의 관계도 좀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다. 호혜적인 관계로의 진전을 보인다면 부정적인 요소로 가득 찬 사회를 개혁하는데 일조할 수 있음을 확신한다. 1438자
광남고3 임명수
지식인들은 참 어중간한 사회적 위치에 있다. 그들은 기득권층에서 길러졌음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층을 비판해야 하고 하층민들을 위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하층민들은 그들을 기득권층의 한 사람으로만 볼 뿐이다. 기득권층은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반감시키는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도구로 만들려고 잔뜩 돈을 들여 놨더니 배신을 한 것이다. 하층민들은 그들이 기득권층에서 나왔기 때문에 자식들의 이익을 대변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지식인은 언제나 보편적인 원리만 제시하는 고리타분한 사람들일 뿐이다. 이런 이유에서 지식인의 위치는 고립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고독하다.
어렸을 때부터 기득권층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인 지식인들은 점점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면서 진정한 지식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키워준 기득권층이 아니라 기득권층에게 피와 살을 뜯기고 있는 하층민을 위하여 서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하층민들은 그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들은 ‘사이비 지식인’들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사이비 지식인’들은 자신이 구세주인양 자신의 잘못된 지식으로 하층민들을 유혹한다. 뭔가 믿을 것이 필요한 하층민들은 잘못된 지식이 자신들을 구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하층민들은 사회 구조와 문제에 대해 잘못된 시각을 갖게 된다. 그들의 지식이 뭔가 잘 못됬다는 것을 깨닳았을 때 그들은 생각한다. ‘지식인들은 이 사회의 기생충 같은 놈들이야. 세상에서 사라져야해.’ 진정한 지식인들도 사이비 지식인들과 동일시 되어버린다. 이렇기 때문에 사이비 지식인들은 진정한 지식인들의 진정한 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이비 지식인의 예의 하나로 친일파를 들 수 있다. 그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앞장서서 들여왔다. 그들은 사회의 배웠다는 지식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청년들을 일본의 전쟁으로 내모는 등 잘못된 지식을 전파함으로서 우리나라를 불행으로 빠트렸다. 진정한 지식인의 예로는 체 게바라를 들 수 있다. 그는 의사 출신의 기득권층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을 위해 공산주의 운동을 하였다. 대중의 입장에서는 사이비 지식인과 참된 지식인을 구별할 줄 알고 참된 지식인은 믿고 따라갈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다. 자신들의 입장에 서줄 지식인이 없다면 결국 불리한 것은 그들이 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인들과 대중의 관계는 점점 유기적이 되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보편’, ‘모범’ ‘모든이들을 위한 진리와 정의’의 자격으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장에서 일함으로서 생생한 현실인식을 얻고, ‘비보편적인’문제들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구체적’ 지식인들은 그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정치적 역량 경제적 역량이 증가하게 된다. 진리는 정치적 경제적 동기에 의해 대규모로 확산되고 소비된다. 이러한 상황과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이용하여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려 할 때 지식인은 사이비가 되어 버린다. 그들은 이데올로기를 제시해줄 수는 없지만 현대사회의 구조에 대한 진실은 이야기 해 줄 수 있다. 사회와 관련되지 않는 진리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필요가 없다.
지금은 지식인들의 역할이 매우 절실히 필요해지는 때이다. 지식인들은 단지 아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몸으로 느끼고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지식인들의 정치적 경제적 역량이 증가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중요시 되는 이 시점, 그들은 계속 반성할 줄 아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줄 아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참 진리라는 짐을 등진 새 지식인 경기고3 최우영
보편적인 진리와 정의의 대변인으로서 권위를 갖고 있던 지식인들은 다변화된 사회 속에서 실직적인 일상생활을 하게 됨에 따라 더 이상 예전의 의무감 같은 것들을 강요받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실직적인 일상생활에 얽혀있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정치적 책임이 커진 지식인들은 세상에 속해있는 올바른 진리를 주창하는 존재가 되었다.
예전의 지식인들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과는 달리 오늘날 대중들은 지식인이라 함은 끝에 ‘사’가 붙은 전문직 종사자들이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이러한 대중들의 인식 변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지식인들은 사회 속에서 점점 재정의 되어가고 있다. 오늘날의 지식인들은 대중매체와 통신의 발달로 인하여 예전보다 더 대중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이러다 보니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사회 전체의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정치적 영향력이 예전보다 커지면서 이에 대한 책임도 커지게 되었다.
지식인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과 지위가 변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본질적인 지식인의 정신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의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느 정도 유연성을 가지되 변질되어서는 안 되고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리란 권력에 얽매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 나름대로의 정치체제 속에서 성립되는 것이다. 국민들이 잘 살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참된 진리가 사회 속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하지만 여러 개인 간, 집단 간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자본주의, 개인주의, 자유주의 사회에서 참된 진리가 만족스럽게 실현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못해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참된 진리 실현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마냥 사회의 흐름대로 순응하며 살아간다면 이 사회는 적지 않은 혼란과 갈등을 겪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지식인들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지식인들은 사회 속에서 생겨나는 부조리와 모순 등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그것들을 고치기 위하여 능동적으로 사회에 참여해야 한다. 오늘날의 지식인은 정치적 책임이 커진 만큼 이러한 역할을 더욱더 충실히 수행해 나가야 한다. 오늘날의 지식인들이 삶의 편의만 중요시 하여 대충 사회 속에 얽혀 안주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순간, 그 지식인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몇 몇 사람들은 오늘날 지식인들이 대중 속으로 점점 스며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지식인의 종말’, ‘지식인의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앞으로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현 시대는 각 나라마다 있는 헌법만이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모두 해결해 줄 수 없다. 법은 민주주의, 자본주의 원칙에 입각해 있는 것이므로,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해 줄 수도 없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회 속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갈등을 전부다 해결해 줄 수도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지식인의 본래 역할을 점점 그 중요성을 더해간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대중들 앞에서 터놓고 옳은 말을 하기란 쉽지 않다. 여러 집단들은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것이 있으면 그것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는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배척하고 없애려고만 한다. 이 과정에서 지식인들은 사방의 적군과 싸워야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하지만 지식인들은 결코 이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참된 역할이 오늘날의 냉철하고 비정한 사회를 올바른 길로 유도할 수 있는 한줄기의 빛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역할 언남고3 변지현
많은 사람들에게 지식인이라는 개념은 생소하다. 그리고 지식인이라는 개념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현실과 동떨어져서 연구를 하고 거기에서 나온 결과를 이용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에 가깝게 만들려는 사람들로 인식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식인들이 현재 처해있는 위치는 우리가 생각해왔던 모습과 다르다. 그들의 일부는 권력과 특정 영역에서 관계를 맺고 정치적 영향력과 그에 따른 책임을 행사하기도 한다. 현재, 그들의 진리는 현실이라는 이름 아래에 지배되고 생산이 되는 것이다.
사회에서는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한 부류는 사회를 잘 돌아가게 하고 모순 된 점이나 잘못된 점을 고치고 소외된 계층을 살펴주는 참된 지식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계층이다. 다른 한 부류는 그 사회의 기득권층의 논리를 옹호하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지만 겉으로는 아닌 척 해 사람들을 기만하는 사람들, 즉 사이비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부류이다. 이 두 부류로 나눈 지식인들 중 사이비 지식인들은 그럴듯한 주장을 내세워 대중이나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 사회의 문제점이 없음을 말하고 겉으로는 기득권층의 논리가 잘못되었다고 지직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지 않고 말끝을 돌림으로써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는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이비 지식인과 참된 지식인의 명확한 차이점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의 잘못이 들어나면 참된 지식인 까지 같은 취급을 받아 진정한 지식인의 행동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이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진정한 지식인들도 역시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와 정치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래 지식인들의 역할이 진리를 찾아서 그 결과물로써 좀 더 사회를 이롭게 만드는 역할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문제와 정치권력의 유혹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선까지는 저항을 해야 한다고 본다. 끊임없는 자아성찰을 통해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일과 한 일에 대해서 고찰을 하고 잘못된 점이 있어 비판을 받으면 거기에 대해 생각하고 잘못되었으면 고쳐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식인들은 사이비 지식인이 아니라 참된 사회를 이루어나가기 위한 진정한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
요즘 우리가 원하는 직업은 대부분 전문직이다. 전문직도 일종의 지식인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전문직들은 다른 사람들이 쉽게 알거나 접하지 못하는 고도의 전문적인 지식들을 배우고 그 지식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직업 특성상 일반 사람들은 이들이 직업 활동을 할 때 쓰는 지식이 올바른지 그른지 모른다. 그리고 이들은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하지만 전문직을 가지려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단순히 전문직이 일하기 편하고 보수를 많이 받기 때문에 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위해서라도 전문직들은 자신들도 지식인이기 때문에 더 편한 생활을 영위하려고 기득권층의 이익을 옹호해 사이비지식인이 되지 말고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참된 지식인이 되어 우리 사회를 더 좋은 사회로 만들 수 있게 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는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지식인이 존재해 왔다. 흔히 사람들은 ‘지식인’하면 엘리트나 부르주아 계층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런 엘리트 계층들 중에서도 체 게바라나 워싱턴처럼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위인들도 있지만 황우석 교수같이 지식인으로서의 본분을 다 하지 못한다고 비난을 받는 사람도 있다.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사람들은 전자에게는 참된 지식인이라 부르며 존경하지만 후자에게는 사이비 지식인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참된 지식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세를 갖추어야 하는 것 일까?
제시문에는 지식인이 갖추어야 할 자세에 대해 나와 있다. 제시문의 요지를 보면 지식인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서 능동적으로 변화하여 행동해야 하고, 지식인의 역할이 구체적으로 변화함에 따라서 그들의 정치적 역할이 증대하게 되었는데 그들의 이론을 무조건 배척하지만 말고 담론효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지식인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작업하고 옳지 않은 진리가 있으면 싸우며 진리체계를 세워야 한다고 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지식인의 자세도 제시문에 나타난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점점 전문화되고 복잡해 졌다. 그에 따라서 지식들도 더욱더 깊어지고 세분화 되었다. 변화된 사회만큼 지식인들도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능동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 조선시대 말 그때의 지식인 계층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유학자들이였다. 이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쇄국정책을 지지하였다. 하지만 이들이 참된 지식인이라 불릴 수 없는 이유는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 이다. 과거보다 더 급변화 되고 경쟁 사회인 지금은 더욱더 지식인들에게 사회 변화에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력층의 압박에 의해서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는 지식인은 권력의 하수인으로 대중들을 교란시키는 역할밖에 할 수 없을 것 이다. 그리고 대중들과 소통할 수 없는 지식인은 현실과 동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 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대중들에게서 소외된 채 문제만 제기하고 해결책은 제기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 것 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지식인이 되기 위해서는 권력층의 대변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항상 대중의 의견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이다. 우리는 지식인이 연구하는 진리가 어려운 것으로만 생각한다. 지식인은 이러한 진리를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체계를 세우는 역할도 해야 한다.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지식인은 주로 부르주아 계층에서 나와 대중들에게 많이 외면 받아 왔다. 하지만 지식인들이 대중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면 대중들과의 소통을 통해 사회를 올바르게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1495자
진리와 지식인 / 광 남 고3 조 영 수
지식인은 우리 사회에서 권위를 인정받아 온 상위계층에 속해왔다. 지식인은 오직 진리만 외쳐왔으며, 모든 사람의 의식과 양심의 지표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이러한 역할을 맡지 않게 되었다. 고차원적이고 원론적인 진리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생활에 얽혀있는 문제들에 관여하게 된 것이다. 지식인들에 대한 재정의가 크게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다.
그러나 지식인들의 권위가 떨어지긴 했지만 그들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다. 정치, 경제, 사회, 과학 등 특정 학문과 관련된 구체적 지식인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 일을 대신 도맡아 하겠는가? 또 이들 지식인이 자신의 주장을 통해 개인적 이데올로기를 퍼뜨린다는 구실로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다. 지식인은 자신이 생각하는 진리체계를 바탕으로 주장을 펼쳐나가고 있으며 여전히 사회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식인의 진리도 타당한 논리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리는 세상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것이 아닌 현실에 맞게 정제된 하나의 논리체계로 구분 지을 수 있다. 사회가 은연중에 받아들이는 담론의 방식을 바탕으로 정치, 경제적 동기에 의해 사회현실을 반영한 진리가 형성된다. 따라서 진리란 권력을 지배하는 것도, 권력에 지배당하는 것도 아니다. 꼭 맞추어진 여러 제약조건 등을 통하여 생산되는 것이다. 진리체계는 우리 사회의 구조 및 기능과 본질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지식인은 이 가운데서 작업하고 싸우는 존재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인을 무작정 배척하기 보다는 하나의 당연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일반 대중들과 조화를 꾀하는 존재로 봐야 마땅하다.
지식인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대중들과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국가 구성원인 것이다. 그러면 진정한 지식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지식인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이 필요하다. 알 지(知), 알 식(識)이라는 낱말로 구성된 ‘지식인’이라는 한 단어는 그리 간단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인들의 참된 역할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단지 아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몸으로 느끼고 순수하게 이해하려는 기본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근본적으로 지식인은 반성할 줄 아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박식함과 그리고 일반 대중들보다 높은 지위를 이용해 악영향을 끼치는 지식인은 사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망가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언행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인지 계속 되새겨 보면서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만약 지식인들이 개과천선한다면 대중들도 마땅한 호응을 보일 것이고 두 계층의 관계도 좀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다. 호혜적인 관계로의 진전을 보인다면 부정적인 요소로 가득 찬 사회를 개혁하는데 일조할 수 있음을 확신한다. 1438자
광남고3 임명수
지식인들은 참 어중간한 사회적 위치에 있다. 그들은 기득권층에서 길러졌음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층을 비판해야 하고 하층민들을 위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하층민들은 그들을 기득권층의 한 사람으로만 볼 뿐이다. 기득권층은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반감시키는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도구로 만들려고 잔뜩 돈을 들여 놨더니 배신을 한 것이다. 하층민들은 그들이 기득권층에서 나왔기 때문에 자식들의 이익을 대변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지식인은 언제나 보편적인 원리만 제시하는 고리타분한 사람들일 뿐이다. 이런 이유에서 지식인의 위치는 고립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고독하다.
어렸을 때부터 기득권층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인 지식인들은 점점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면서 진정한 지식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키워준 기득권층이 아니라 기득권층에게 피와 살을 뜯기고 있는 하층민을 위하여 서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하층민들은 그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들은 ‘사이비 지식인’들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사이비 지식인’들은 자신이 구세주인양 자신의 잘못된 지식으로 하층민들을 유혹한다. 뭔가 믿을 것이 필요한 하층민들은 잘못된 지식이 자신들을 구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하층민들은 사회 구조와 문제에 대해 잘못된 시각을 갖게 된다. 그들의 지식이 뭔가 잘 못됬다는 것을 깨닳았을 때 그들은 생각한다. ‘지식인들은 이 사회의 기생충 같은 놈들이야. 세상에서 사라져야해.’ 진정한 지식인들도 사이비 지식인들과 동일시 되어버린다. 이렇기 때문에 사이비 지식인들은 진정한 지식인들의 진정한 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이비 지식인의 예의 하나로 친일파를 들 수 있다. 그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앞장서서 들여왔다. 그들은 사회의 배웠다는 지식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청년들을 일본의 전쟁으로 내모는 등 잘못된 지식을 전파함으로서 우리나라를 불행으로 빠트렸다. 진정한 지식인의 예로는 체 게바라를 들 수 있다. 그는 의사 출신의 기득권층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을 위해 공산주의 운동을 하였다. 대중의 입장에서는 사이비 지식인과 참된 지식인을 구별할 줄 알고 참된 지식인은 믿고 따라갈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다. 자신들의 입장에 서줄 지식인이 없다면 결국 불리한 것은 그들이 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인들과 대중의 관계는 점점 유기적이 되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보편’, ‘모범’ ‘모든이들을 위한 진리와 정의’의 자격으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장에서 일함으로서 생생한 현실인식을 얻고, ‘비보편적인’문제들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구체적’ 지식인들은 그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정치적 역량 경제적 역량이 증가하게 된다. 진리는 정치적 경제적 동기에 의해 대규모로 확산되고 소비된다. 이러한 상황과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이용하여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려 할 때 지식인은 사이비가 되어 버린다. 그들은 이데올로기를 제시해줄 수는 없지만 현대사회의 구조에 대한 진실은 이야기 해 줄 수 있다. 사회와 관련되지 않는 진리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필요가 없다.
지금은 지식인들의 역할이 매우 절실히 필요해지는 때이다. 지식인들은 단지 아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몸으로 느끼고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지식인들의 정치적 경제적 역량이 증가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중요시 되는 이 시점, 그들은 계속 반성할 줄 아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줄 아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참 진리라는 짐을 등진 새 지식인 경기고3 최우영
보편적인 진리와 정의의 대변인으로서 권위를 갖고 있던 지식인들은 다변화된 사회 속에서 실직적인 일상생활을 하게 됨에 따라 더 이상 예전의 의무감 같은 것들을 강요받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실직적인 일상생활에 얽혀있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정치적 책임이 커진 지식인들은 세상에 속해있는 올바른 진리를 주창하는 존재가 되었다.
예전의 지식인들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과는 달리 오늘날 대중들은 지식인이라 함은 끝에 ‘사’가 붙은 전문직 종사자들이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이러한 대중들의 인식 변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지식인들은 사회 속에서 점점 재정의 되어가고 있다. 오늘날의 지식인들은 대중매체와 통신의 발달로 인하여 예전보다 더 대중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이러다 보니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사회 전체의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정치적 영향력이 예전보다 커지면서 이에 대한 책임도 커지게 되었다.
지식인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과 지위가 변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본질적인 지식인의 정신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의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느 정도 유연성을 가지되 변질되어서는 안 되고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리란 권력에 얽매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 나름대로의 정치체제 속에서 성립되는 것이다. 국민들이 잘 살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참된 진리가 사회 속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하지만 여러 개인 간, 집단 간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자본주의, 개인주의, 자유주의 사회에서 참된 진리가 만족스럽게 실현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못해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참된 진리 실현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마냥 사회의 흐름대로 순응하며 살아간다면 이 사회는 적지 않은 혼란과 갈등을 겪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지식인들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지식인들은 사회 속에서 생겨나는 부조리와 모순 등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그것들을 고치기 위하여 능동적으로 사회에 참여해야 한다. 오늘날의 지식인은 정치적 책임이 커진 만큼 이러한 역할을 더욱더 충실히 수행해 나가야 한다. 오늘날의 지식인들이 삶의 편의만 중요시 하여 대충 사회 속에 얽혀 안주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순간, 그 지식인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몇 몇 사람들은 오늘날 지식인들이 대중 속으로 점점 스며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지식인의 종말’, ‘지식인의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앞으로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현 시대는 각 나라마다 있는 헌법만이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모두 해결해 줄 수 없다. 법은 민주주의, 자본주의 원칙에 입각해 있는 것이므로,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해 줄 수도 없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회 속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갈등을 전부다 해결해 줄 수도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지식인의 본래 역할을 점점 그 중요성을 더해간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대중들 앞에서 터놓고 옳은 말을 하기란 쉽지 않다. 여러 집단들은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것이 있으면 그것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는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배척하고 없애려고만 한다. 이 과정에서 지식인들은 사방의 적군과 싸워야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하지만 지식인들은 결코 이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참된 역할이 오늘날의 냉철하고 비정한 사회를 올바른 길로 유도할 수 있는 한줄기의 빛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역할 언남고3 변지현
많은 사람들에게 지식인이라는 개념은 생소하다. 그리고 지식인이라는 개념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현실과 동떨어져서 연구를 하고 거기에서 나온 결과를 이용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에 가깝게 만들려는 사람들로 인식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식인들이 현재 처해있는 위치는 우리가 생각해왔던 모습과 다르다. 그들의 일부는 권력과 특정 영역에서 관계를 맺고 정치적 영향력과 그에 따른 책임을 행사하기도 한다. 현재, 그들의 진리는 현실이라는 이름 아래에 지배되고 생산이 되는 것이다.
사회에서는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한 부류는 사회를 잘 돌아가게 하고 모순 된 점이나 잘못된 점을 고치고 소외된 계층을 살펴주는 참된 지식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계층이다. 다른 한 부류는 그 사회의 기득권층의 논리를 옹호하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지만 겉으로는 아닌 척 해 사람들을 기만하는 사람들, 즉 사이비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부류이다. 이 두 부류로 나눈 지식인들 중 사이비 지식인들은 그럴듯한 주장을 내세워 대중이나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 사회의 문제점이 없음을 말하고 겉으로는 기득권층의 논리가 잘못되었다고 지직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지 않고 말끝을 돌림으로써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는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이비 지식인과 참된 지식인의 명확한 차이점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의 잘못이 들어나면 참된 지식인 까지 같은 취급을 받아 진정한 지식인의 행동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이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진정한 지식인들도 역시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와 정치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래 지식인들의 역할이 진리를 찾아서 그 결과물로써 좀 더 사회를 이롭게 만드는 역할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문제와 정치권력의 유혹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선까지는 저항을 해야 한다고 본다. 끊임없는 자아성찰을 통해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일과 한 일에 대해서 고찰을 하고 잘못된 점이 있어 비판을 받으면 거기에 대해 생각하고 잘못되었으면 고쳐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식인들은 사이비 지식인이 아니라 참된 사회를 이루어나가기 위한 진정한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
요즘 우리가 원하는 직업은 대부분 전문직이다. 전문직도 일종의 지식인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전문직들은 다른 사람들이 쉽게 알거나 접하지 못하는 고도의 전문적인 지식들을 배우고 그 지식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직업 특성상 일반 사람들은 이들이 직업 활동을 할 때 쓰는 지식이 올바른지 그른지 모른다. 그리고 이들은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하지만 전문직을 가지려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단순히 전문직이 일하기 편하고 보수를 많이 받기 때문에 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위해서라도 전문직들은 자신들도 지식인이기 때문에 더 편한 생활을 영위하려고 기득권층의 이익을 옹호해 사이비지식인이 되지 말고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참된 지식인이 되어 우리 사회를 더 좋은 사회로 만들 수 있게 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