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샘 나눔터
향단이와 돌쇠
향단이는 눈이 크고 맑아서 무척 똘망똘망한 녀석입니다. 여덟 해를 살면서 세 번 몸을 풀었는데 세 번 모두 자녀 셋씩을 얻었습니다.
처음 몸 풀 때는 향단이가 무척 긴장하고 있어서 오늘내일 하는 것을 눈치 채었지요. 그래서 몸 풀 날을 온 식구가 기다렸습니다. 봄 볕이 깊고 따뜻하여 온 누리에 초목들이 생기 있게 자라고 화려한 꽃을 피우던 날 그녀는 흰 눈처럼 곱디고운 강아지 셋을 낳았습니다. 향단이는 정성껏 어린 것들을 핥고 빨면서 보살폈습니다. 눈물겨웠습니다. 어미의 정성이 사람보다 결코 뒤지지 않다는 것을 증명이나 하듯이 지극정성을 어린 자식들에게 쏟아부었습니다.
열흘이 지날 즈음 어린 새끼들이 눈을 뜨고 조금씩 걸어다니면서 집안은 온통 환한 빛으로 가득했습니다. 꼬물거리던 몸짓, 힘껏 어미 젖을 빨고나서 곤하게 누워 자는 모습은 천사처럼 평화롭고 아늑했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조금씩 성장하면서 각각 자신들이 살아야 할 곳으로 갔습니다.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잠시 가족여행을 떠났습니다. 동해를 찾아서 텅빈 겨울바다와 그 위를 넘실거리는 거친 파도를 보며 한가롭게 바닷가를 거닐기도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붉게 타오르며 아침바다를 화려하게 물들이던 광경도 가슴 벅차게 맞이하였습니다.
사흘 동안의 겨울 여행을 마치고 우리 가족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깜딱 놀랐습니다. 향단이가 아기들을 또 낳은 것입니다. 물론 임신한 것은 알았지만 이번에는 날짜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는데 우리가 집을 비운 사이 그 추운 날 혼자서 몸을 푼 것이지요. 그런데 더 놀란 것은 향단이에게 깔아 주었던 세 겹 천으로 만들어진 솜 방석이 엑스(X)자 모양으로 정교하게 찢어져 있었고 방석 안에 있던 솜들이 곱게곱게 풀어져 어린 강아지들이 그 위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향단이는 몸을 풀기 전 스스로 방석을 찢어 어린 강아지를 맞이할 준비를 한 것이었습니다. 어찌 이런 생각을 향단이가 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니 참 놀랍고 신비로운 어미의 능력이 그저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녀석 중 돌쇠란 놈이 있었습니다.
왜 돌쇠인고 하니 이 녀석은 천방지축 그대로입니다. 목줄을 풀어 놓으면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자기 세상을 만끽합니다. 향단이는 용변을 예쁘게 가려 할 줄 아는 데 비해 이 돌쇠란 놈은 시도때도 없이 싸고 아무데나 저질러 놓는 것이어서 왠만하면 집 안에서 목 줄을 풀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다가 이 녀석은 수놈이라 힘이 여간나지 않아서 닥치는 대로 물어뜯고 헤짚어 놓아서 집안을 늘 엉망으로 만들어 놓아 온 가족이 그 녀석 뒤치다꺼리 하느라 여간 바빠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돌쇠가 태어난 지 스무날이 지났을 즈음 제 아내가 강아지 집을 청소하며 강아지 밥을 챙겨 주다가 아내 뒷걸음질에 그만 돌쇠가 깔리고 말았습니다. 돌쇠는 죽는 소리를 내며 하루 종일 끙끙거리며 신음을 쏟아내었습니다. 처음에는 숨도 쉬지 않아서 아내가 인공호흡을 몇 번이나 했었지요. 돌쇠가 다른 녀석들보다 몸집도 왜소하고 먹는 것도 시원찮아서 늘 눈에 걸렸는데 이런 낭패를 겪다보니 더 측은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녀석들을 모두 다른 집으로 시집보낼 때 이 돌쇠녀석은 가족 모두가 보낼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일치단결해서 우리 가족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한 살이 지나면서 돌쇠는 우리 나라 토종 강아지 삽살개처럼 털이 부숭부숭 많아지고 허리가 늘씬한데다가 눈이 보이지 않을 만큼 머리 털이 길어서 정말 삽살개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만큼 비슷해졌습니다. 더구나 날렵하면서도 우리 가족에 애교가 많아 가족들 모두 돌쇠를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였습니다.
가끔씩 집 가까이에 있는 한강변으로 돌쇠와 향단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향단이는 늘 제 곁에서 종종걸음으로 발발거리며 따라오지만 돌쇠는 있는 힘껏 멀리 달아났다가 흘끔 뒤돌아보다가 저랑 눈이 마주치면 또 있는 힘껏 달려옵니다. 그런 돌쇠가 참 귀엽고 사랑스러웠지요.
향단이는 전형적인 발바리 토종 똥개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이 생각하기엔 무척 영리하고 마음이 여려 애틋한 연민을 불러 일으키는 묘한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족이 오랫동안 외출을 하고나서 집에 돌아오면 향단이 밥그릇엔 밥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인이 없어서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가 하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밥을 먹지 않은 것은 똥을 누지 않으려고 한 것 같았습니다. 우리 가족이 집에 돌아왔을 때 밥을 다시 먹고 한꺼번에 엄청난 양의 똥을 누는 것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 집에 둘째 딸이 태어났습니다. 큰 딸이 12살 초등 5학년 때 일이지요. 막내 딸은 언니가 다 커서 태어나 우리 부부의 끔찍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막내가 자라는 과정에 우리 집 강아지 향단이와 돌쇠는 어린 딸 건강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강아지에게서 나오는 미세한 털이나 진드기, 정체모를 균들이 딸아이를 괴롭힐 수 있다는 판단이 슬금슬금 우리 가족을 시름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이런 걱정이 조금씩 피어오를 즈음 ‘어린이식물연구회’ 한동욱 샘께서 아기가 있는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고려해 보라고 심각하게 충고를 보내왔습니다. 한동욱 샘은 경희대 한의대에서 한약을 전공하셔서 한의학적 판단을 하신 것 같았고, 전문가 견해에 오금을 못 쓰는 지식인 습성을 가진 우리 부부는 그만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이런저런 걱정에 빠져있던 터라 우리 가족은 눈물을 머금고 향단이와 돌쇠를 서산에 살고 있는 동생 집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서산 동생은 한적한 시골마을에 작업실을 가지고 있어서 강아지들이 살아가기엔 더할나위 없는 천국이었으므로 한결 마음을 쓸며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그만 향단이와 돌쇠는 그 곳에서 어이없는 변을 당하고 모두 이승을 떠났습니다.
향단이와 돌쇠가 우리 곁을 떠난 지 네 해가 지났지만 우리 가족 마음 속에는 늘 향단이와 돌쇠가 아롱거리며 장난치는 밝은 모습이 남아있습니다. 집 주변을 산책하다가 향단이와 돌쇠를 닮은 강아지를 마주칠 때마다 그 녀석들에 대한 그리움은 더 깊어만 갑니다. 중3이나 된 큰 딸은 지금도 향단이 돌쇠 이름만 나와도 눈물을 그렁거리며 아직 한 시간은 족히 흑흑거리며 이별을 아쉬워합니다.
이제 다시 또 다른 향단이와 돌쇠를 만나고 싶습니다. 둘째 딸이 이제 다섯 살을 먹으면서 조금씩 의젓해졌고, 강아지랑 함께 살아도 몸을 지킬 수 있을 만큼 컸다는 생각이 듭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착하고 예쁜 강아지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향단이는 눈이 크고 맑아서 무척 똘망똘망한 녀석입니다. 여덟 해를 살면서 세 번 몸을 풀었는데 세 번 모두 자녀 셋씩을 얻었습니다.
처음 몸 풀 때는 향단이가 무척 긴장하고 있어서 오늘내일 하는 것을 눈치 채었지요. 그래서 몸 풀 날을 온 식구가 기다렸습니다. 봄 볕이 깊고 따뜻하여 온 누리에 초목들이 생기 있게 자라고 화려한 꽃을 피우던 날 그녀는 흰 눈처럼 곱디고운 강아지 셋을 낳았습니다. 향단이는 정성껏 어린 것들을 핥고 빨면서 보살폈습니다. 눈물겨웠습니다. 어미의 정성이 사람보다 결코 뒤지지 않다는 것을 증명이나 하듯이 지극정성을 어린 자식들에게 쏟아부었습니다.
열흘이 지날 즈음 어린 새끼들이 눈을 뜨고 조금씩 걸어다니면서 집안은 온통 환한 빛으로 가득했습니다. 꼬물거리던 몸짓, 힘껏 어미 젖을 빨고나서 곤하게 누워 자는 모습은 천사처럼 평화롭고 아늑했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조금씩 성장하면서 각각 자신들이 살아야 할 곳으로 갔습니다.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잠시 가족여행을 떠났습니다. 동해를 찾아서 텅빈 겨울바다와 그 위를 넘실거리는 거친 파도를 보며 한가롭게 바닷가를 거닐기도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붉게 타오르며 아침바다를 화려하게 물들이던 광경도 가슴 벅차게 맞이하였습니다.
사흘 동안의 겨울 여행을 마치고 우리 가족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깜딱 놀랐습니다. 향단이가 아기들을 또 낳은 것입니다. 물론 임신한 것은 알았지만 이번에는 날짜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는데 우리가 집을 비운 사이 그 추운 날 혼자서 몸을 푼 것이지요. 그런데 더 놀란 것은 향단이에게 깔아 주었던 세 겹 천으로 만들어진 솜 방석이 엑스(X)자 모양으로 정교하게 찢어져 있었고 방석 안에 있던 솜들이 곱게곱게 풀어져 어린 강아지들이 그 위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향단이는 몸을 풀기 전 스스로 방석을 찢어 어린 강아지를 맞이할 준비를 한 것이었습니다. 어찌 이런 생각을 향단이가 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니 참 놀랍고 신비로운 어미의 능력이 그저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녀석 중 돌쇠란 놈이 있었습니다.
왜 돌쇠인고 하니 이 녀석은 천방지축 그대로입니다. 목줄을 풀어 놓으면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자기 세상을 만끽합니다. 향단이는 용변을 예쁘게 가려 할 줄 아는 데 비해 이 돌쇠란 놈은 시도때도 없이 싸고 아무데나 저질러 놓는 것이어서 왠만하면 집 안에서 목 줄을 풀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다가 이 녀석은 수놈이라 힘이 여간나지 않아서 닥치는 대로 물어뜯고 헤짚어 놓아서 집안을 늘 엉망으로 만들어 놓아 온 가족이 그 녀석 뒤치다꺼리 하느라 여간 바빠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돌쇠가 태어난 지 스무날이 지났을 즈음 제 아내가 강아지 집을 청소하며 강아지 밥을 챙겨 주다가 아내 뒷걸음질에 그만 돌쇠가 깔리고 말았습니다. 돌쇠는 죽는 소리를 내며 하루 종일 끙끙거리며 신음을 쏟아내었습니다. 처음에는 숨도 쉬지 않아서 아내가 인공호흡을 몇 번이나 했었지요. 돌쇠가 다른 녀석들보다 몸집도 왜소하고 먹는 것도 시원찮아서 늘 눈에 걸렸는데 이런 낭패를 겪다보니 더 측은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녀석들을 모두 다른 집으로 시집보낼 때 이 돌쇠녀석은 가족 모두가 보낼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일치단결해서 우리 가족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한 살이 지나면서 돌쇠는 우리 나라 토종 강아지 삽살개처럼 털이 부숭부숭 많아지고 허리가 늘씬한데다가 눈이 보이지 않을 만큼 머리 털이 길어서 정말 삽살개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만큼 비슷해졌습니다. 더구나 날렵하면서도 우리 가족에 애교가 많아 가족들 모두 돌쇠를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였습니다.
가끔씩 집 가까이에 있는 한강변으로 돌쇠와 향단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향단이는 늘 제 곁에서 종종걸음으로 발발거리며 따라오지만 돌쇠는 있는 힘껏 멀리 달아났다가 흘끔 뒤돌아보다가 저랑 눈이 마주치면 또 있는 힘껏 달려옵니다. 그런 돌쇠가 참 귀엽고 사랑스러웠지요.
향단이는 전형적인 발바리 토종 똥개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이 생각하기엔 무척 영리하고 마음이 여려 애틋한 연민을 불러 일으키는 묘한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족이 오랫동안 외출을 하고나서 집에 돌아오면 향단이 밥그릇엔 밥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인이 없어서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가 하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밥을 먹지 않은 것은 똥을 누지 않으려고 한 것 같았습니다. 우리 가족이 집에 돌아왔을 때 밥을 다시 먹고 한꺼번에 엄청난 양의 똥을 누는 것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 집에 둘째 딸이 태어났습니다. 큰 딸이 12살 초등 5학년 때 일이지요. 막내 딸은 언니가 다 커서 태어나 우리 부부의 끔찍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막내가 자라는 과정에 우리 집 강아지 향단이와 돌쇠는 어린 딸 건강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강아지에게서 나오는 미세한 털이나 진드기, 정체모를 균들이 딸아이를 괴롭힐 수 있다는 판단이 슬금슬금 우리 가족을 시름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이런 걱정이 조금씩 피어오를 즈음 ‘어린이식물연구회’ 한동욱 샘께서 아기가 있는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고려해 보라고 심각하게 충고를 보내왔습니다. 한동욱 샘은 경희대 한의대에서 한약을 전공하셔서 한의학적 판단을 하신 것 같았고, 전문가 견해에 오금을 못 쓰는 지식인 습성을 가진 우리 부부는 그만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이런저런 걱정에 빠져있던 터라 우리 가족은 눈물을 머금고 향단이와 돌쇠를 서산에 살고 있는 동생 집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서산 동생은 한적한 시골마을에 작업실을 가지고 있어서 강아지들이 살아가기엔 더할나위 없는 천국이었으므로 한결 마음을 쓸며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그만 향단이와 돌쇠는 그 곳에서 어이없는 변을 당하고 모두 이승을 떠났습니다.
향단이와 돌쇠가 우리 곁을 떠난 지 네 해가 지났지만 우리 가족 마음 속에는 늘 향단이와 돌쇠가 아롱거리며 장난치는 밝은 모습이 남아있습니다. 집 주변을 산책하다가 향단이와 돌쇠를 닮은 강아지를 마주칠 때마다 그 녀석들에 대한 그리움은 더 깊어만 갑니다. 중3이나 된 큰 딸은 지금도 향단이 돌쇠 이름만 나와도 눈물을 그렁거리며 아직 한 시간은 족히 흑흑거리며 이별을 아쉬워합니다.
이제 다시 또 다른 향단이와 돌쇠를 만나고 싶습니다. 둘째 딸이 이제 다섯 살을 먹으면서 조금씩 의젓해졌고, 강아지랑 함께 살아도 몸을 지킬 수 있을 만큼 컸다는 생각이 듭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착하고 예쁜 강아지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