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논술 강의 나눔터
<어린이 논술교육에 노작활동이 미치는 영향>
초등논술 22기(에세이.2편)
보낸날짜 2003년 11월 27일 목요일, 오전 10시 00분 01초 +0900
보낸이 "김미선" 받는이 phmany07@hanmail.net
노작이라는 용어는 독일어 Arbeit를 번역한 말이다. 노작이란 힘껏 자신의 힘과 정열과 노력을 기울여 창조와 창작을 하는 육체와 영혼의 결합과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노작활동이 어린이 논술교육과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 것인지 처음에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해오름에 논술 공부를 하러 초등논술 지도자 과정을 신청했을 때에는 사실 노작이 무엇인지 개념조차 알지 못한 상태였다. 논술공부가 현실적인 논술시험에 대비하기 위한 글쓰기나 논리력 향상을 위한 연마라고 생각될 정도였고 대부분의 학부모나 학생들은 거의 그런 생각을 갖고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하지만 이제 어린아이가 세상에서 첫걸음을 떼듯 나도 논술교육이 어떤 것인지 미약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논술교육은 교육의 주체로서의 어린이가 이 세계를 온전하게 바라보고 만나게 되는 만남의 과정이다. 독서를 많이 하여 알지 못하던 세상과 만나게 된다든지, 자연과 교류하여 온갖 사물과 생명들에 대해 알게 된다면, 그만큼 그 어린이는 사고의 범위도 넓어지고, 자기가 속한 우주 공간과 자기자신에 대한 인식 또한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안다는 것은 단지 추상적으로 그 존재에 대한 설명이나 완전한 이해만은 아닌 것 같다. 인류 역사에서 문명의 발달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고, 이 문명의 원류는 노동이었다. 노동, 즉 노작활동 없는 문명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의 피라밋은 유명한 인류문명의 산물이다. 하지만 무수한 손과 발이 없었던들 이 피라밋이 파라오 한사람이나 귀족들만의 생각으로 쌓아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슈타이너 선생님은 사람은 육체와 영혼과 정신이 결합한 존재라고 했다. 특히 어린이 시절에 육체의 본능적인 움직임과 손과 발의 동작을 통하여 외부 세계의 사물과 상호작용을 하여 영혼과 정신을 일깨우는 과정은 곧 노작활동과 일맥상통한다.
무엇인가 목표한 물건이나 사물을 직접 만든다는 것은, 여러 가지 절차가 필요하다.
나무를 이용해 주사위를 만들 때, 일단은 주사위를 만들 재료를 구해야 한다. 나무를 구하기 위해 조금만 노력한다면 우리는 주변에 쓸모 없이 버려진 나무 조각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나무 조각은 어쩌면 우리와 만나지 않았다면, 어느 쓰레기 하치장에서 소각될 운명에 처하게 됐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와의 운명적인 만남은 그를 새로운 삶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시키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일단 구해진 나무는 적당한 크기로 잘라야 한다. 나무를 톱이나 줄로 자르는 과정과 잘라진 나무의 단면을 잘 관찰하는 것도 노작활동의 일부이다. 내가 해오름에서 노작수업을 받을 때는 선생님이 구해서 잘라주신 나무를 이용했기 때문에 그 과정은 체험하지 못했다. 육면체의 나무 조각을 모래 종이에 가는 과정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짧게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표면이 나무 결을 잘 살리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 나게 정신을 집중해서 갈아야 정육면체의 모양이 완성된다. 조금만 딴 데 정신을 쏟아도 모양이 흐트러지게 된다.
주사위를 정성껏 다 만들고 난 후에 몇 시간을 몸과 마음을 집중했던 나 자신이 뿌듯하기 조차했다. 물론 결과물이 다른 사람 눈에는 조잡하기 이를 때 없을 지라도 정말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어린이들은 노작활동을 통해 많은 경험을 쌓게 된다. 이러한 경험들이 축적되기 위해서는 노작을 우리 교육 현장에서 필수적인 과목으로 만들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해본다. 노작으로 인한 다양한 경험과 손의 수고로움은 단지 머리로만 알고 있던 세상과 교류 할 수 있게 만들고, 논술교육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논술교육 또한 세상과 만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흙피리를 만들러 양평의 후두둑 선생님의 작업장에 갔을 때 흙피리를 찻숟가락으로 열심히 문지르던 아이들의 손놀림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예뻤다. 그리고 흙피리를 다 구워서 완성품이 나왔을 때 기뻐하며 짐짓 흥분한 표정은 그들에게 또 선생님들에게 정말 잊혀지지 않는 경험이 될 것이라는 깊은 인상을 주었다. 주입식 교육으로는 논술교육의 성과를 단기간에는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때뿐인 반짝 교육이 될 것이다. 논술교육은 어린이들이 우리 실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삶 속에서 육체를 통한 창조적 활동으로 영혼과 정신을 키워 나갈 때, 인간과 자연의 조화,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기쁨을 맛보게 될 때, 진정 빛을 발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논술교육에 있어 노작활동은 필수적인 과정이며 건강한 사회로의 밑거름이 될 것 같다.
초등논술 22기(에세이.2편)
보낸날짜 2003년 11월 27일 목요일, 오전 10시 00분 01초 +0900
보낸이 "김미선" 받는이 phmany07@hanmail.net
노작이라는 용어는 독일어 Arbeit를 번역한 말이다. 노작이란 힘껏 자신의 힘과 정열과 노력을 기울여 창조와 창작을 하는 육체와 영혼의 결합과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노작활동이 어린이 논술교육과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 것인지 처음에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해오름에 논술 공부를 하러 초등논술 지도자 과정을 신청했을 때에는 사실 노작이 무엇인지 개념조차 알지 못한 상태였다. 논술공부가 현실적인 논술시험에 대비하기 위한 글쓰기나 논리력 향상을 위한 연마라고 생각될 정도였고 대부분의 학부모나 학생들은 거의 그런 생각을 갖고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하지만 이제 어린아이가 세상에서 첫걸음을 떼듯 나도 논술교육이 어떤 것인지 미약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논술교육은 교육의 주체로서의 어린이가 이 세계를 온전하게 바라보고 만나게 되는 만남의 과정이다. 독서를 많이 하여 알지 못하던 세상과 만나게 된다든지, 자연과 교류하여 온갖 사물과 생명들에 대해 알게 된다면, 그만큼 그 어린이는 사고의 범위도 넓어지고, 자기가 속한 우주 공간과 자기자신에 대한 인식 또한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안다는 것은 단지 추상적으로 그 존재에 대한 설명이나 완전한 이해만은 아닌 것 같다. 인류 역사에서 문명의 발달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고, 이 문명의 원류는 노동이었다. 노동, 즉 노작활동 없는 문명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의 피라밋은 유명한 인류문명의 산물이다. 하지만 무수한 손과 발이 없었던들 이 피라밋이 파라오 한사람이나 귀족들만의 생각으로 쌓아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슈타이너 선생님은 사람은 육체와 영혼과 정신이 결합한 존재라고 했다. 특히 어린이 시절에 육체의 본능적인 움직임과 손과 발의 동작을 통하여 외부 세계의 사물과 상호작용을 하여 영혼과 정신을 일깨우는 과정은 곧 노작활동과 일맥상통한다.
무엇인가 목표한 물건이나 사물을 직접 만든다는 것은, 여러 가지 절차가 필요하다.
나무를 이용해 주사위를 만들 때, 일단은 주사위를 만들 재료를 구해야 한다. 나무를 구하기 위해 조금만 노력한다면 우리는 주변에 쓸모 없이 버려진 나무 조각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나무 조각은 어쩌면 우리와 만나지 않았다면, 어느 쓰레기 하치장에서 소각될 운명에 처하게 됐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와의 운명적인 만남은 그를 새로운 삶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시키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일단 구해진 나무는 적당한 크기로 잘라야 한다. 나무를 톱이나 줄로 자르는 과정과 잘라진 나무의 단면을 잘 관찰하는 것도 노작활동의 일부이다. 내가 해오름에서 노작수업을 받을 때는 선생님이 구해서 잘라주신 나무를 이용했기 때문에 그 과정은 체험하지 못했다. 육면체의 나무 조각을 모래 종이에 가는 과정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짧게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표면이 나무 결을 잘 살리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 나게 정신을 집중해서 갈아야 정육면체의 모양이 완성된다. 조금만 딴 데 정신을 쏟아도 모양이 흐트러지게 된다.
주사위를 정성껏 다 만들고 난 후에 몇 시간을 몸과 마음을 집중했던 나 자신이 뿌듯하기 조차했다. 물론 결과물이 다른 사람 눈에는 조잡하기 이를 때 없을 지라도 정말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어린이들은 노작활동을 통해 많은 경험을 쌓게 된다. 이러한 경험들이 축적되기 위해서는 노작을 우리 교육 현장에서 필수적인 과목으로 만들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해본다. 노작으로 인한 다양한 경험과 손의 수고로움은 단지 머리로만 알고 있던 세상과 교류 할 수 있게 만들고, 논술교육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논술교육 또한 세상과 만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흙피리를 만들러 양평의 후두둑 선생님의 작업장에 갔을 때 흙피리를 찻숟가락으로 열심히 문지르던 아이들의 손놀림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예뻤다. 그리고 흙피리를 다 구워서 완성품이 나왔을 때 기뻐하며 짐짓 흥분한 표정은 그들에게 또 선생님들에게 정말 잊혀지지 않는 경험이 될 것이라는 깊은 인상을 주었다. 주입식 교육으로는 논술교육의 성과를 단기간에는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때뿐인 반짝 교육이 될 것이다. 논술교육은 어린이들이 우리 실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삶 속에서 육체를 통한 창조적 활동으로 영혼과 정신을 키워 나갈 때, 인간과 자연의 조화,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기쁨을 맛보게 될 때, 진정 빛을 발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논술교육에 있어 노작활동은 필수적인 과정이며 건강한 사회로의 밑거름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