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사 강의 나눔터
11월 22일 나무날 역사논술 4강
초기고대국가의 성립과 사회의 모습
먼저 지도를 그린 후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마한, 진한, 변한의 위치를 적어 넣다.
지도를 직접 그려 봄으로써 선생님뿐만 아니라 아이들에도 나라의 위치를 파악하면서 자연환경을 예측할 수 있다. 또한 시대마다 지도를 그려보는 것이 중요하며, 국경이 어디까지 였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중학교 올라가서는 아이들이 경도 위도를 고려하여 세계지도를 그려야 하기에 먼저 익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말씀하셨다.
당시 청동에서 철기로 넘어가면서 도구의 발달을 통해서 농사짓기가 안정이 되어간다.
농경에 관한 생산활동을 통해서 무엇이 중요하게 되는가
종교의식과 왕의 역할
자연조건에 따른 인간의 사회에 미치는 영향
고대국가로 형성되어가는 과정에서 공통적인 의식세계와 면모를 이해해야 한다.
고구려를 이해하는 것은 자연환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안된다.
-> 현대사회로 갈수록 과학기술 발달로 자연환경에 둔화되어 가고 있다.
* 3모둠으로 나뉘어 부여, 고구려
옥저,동예
삼한 에 대하여 토론하고 발표하는 시간을 갖다.
1. 부여, 고구려
지형적으로 산악지대였으며 한나라에서 철기 들어와 무기로 발달하게 됨
이는 소 부족을 복속시키는 배경이 되기도 함
고구려가 졸본에 수도를 세운 이유는 깊은 골짜기와 산세가 험하나
산악 지대안에 평야가 있어서 천연요새였기 때문이다.
자연환경 -농사지을 땅이 부족하고 추워서 자연 목축이 발달하였다.
목축일은 힘이 필요하기에 자연 정복 근성도 키워졌다.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연맹이 결성되다.
경제 :- 다른 민족과 혼인할 때 데릴사위제, 아는 사위를 데려온다는 의미는
노동력이 부족한 집안에 출가하여 아이를 낳을 때까지 노동력 손실 보상하려 는 의미
조선의 후예라는 의식이 투철했다. 타부족에 비해서 융합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제천행사 - 동맹 (시조신 제사) , 10월에 행하였으며 이는 제의식을 통해서 공동운명체 임을 인식시키고, 부족의 힘을 결합하고 단결하는 축제의 의미이다.
부여는 송화강 유역에서 일어나 만주의 평야지대에서 터를 잡았고
목축을 키우기에 적당하다.
농사는 오곡은 자라나 오과는 생산되지 않았다.
관료의 명칭이 마가, 우가 저가, 구가로 호칭을 사용했다는 것만 보아도 목축이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형사취수제 -전쟁에 나가 남편이 죽으면 처자식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힘은
가족공동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또 다른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로 공동책임의 의미가 있다.
이슬람 문화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제천행사 - 영고, 12월에 열렸으며 목축과의 관계로 새로운 겨울을 준비하는 의미이다.
문화 - 순장제도가 행해졌다.
부여는 고구려보다 먼저 국가를 이루고 국가 규모도 컸음에도 불구하고 부여가 고구려 에게 패한 이유는 고구려가 부여보다 중앙집권체제를 빨리 갖추었기 때문이다.
2. 옥저, 동예
부여와 고구려보다 좀더 자급자족할 수 있는 자연 환경으로 옥저는 해안가에서 소금을 채취하고, 동예는 단궁, 반어피, 과하마등이 있었다.
옥저는 민며느리제가 있었는데 이는 다른 나라처럼 전쟁을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노동력을 더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동예에는 족외혼과 책화가 있었다.
문화적으로는 옥저에 가족공동묘가 있었고, 동예에는 무천이 있었고 10월에 있었다.
옥저와 동예가 고구려에 복속된 이유는 ?
나라라기 보다 연맹의 성격이 더 강했으며 통치할 수 있는 왕의 권력이 없었다.
3. 삼한
부족이 발달했으며 땅이 비옥하고 물이 풍부하여 벼농사에 적합했다. -저수지 발달
백성들은 비단과 베를 짤 줄 알았으며 나라에서는 철이 생산되어 수출까지 하였다.
또한 농기구도 철기로 대체하기도 하여 더욱 농사짓기에 용이했다.
문화로는 제천행사로 5월과 10월에 있었으며 소도라는 별읍이 있어 천신의 제사를 지내 는 사람을 천군이라 했으며 이는 제사장이 독립되어 있다.
이 때는 인간이 자연 재해를 극복하는 대책( 예를 들어 저수지)을 세우기 시작하므로
하늘만을 신성시하는 부분이 약해지기 시작한다.
솟대 -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매개자 역할을 하며 보통 오리로 표현한다.
제단 앞에서는 신의 모습으로, 촌락에서는 수호신이나 경계의 상징으로 세웠다.
또한 자신들의 기원이나 바램을 표현하기도 했다
활동으로는 -솟대 만들기를 했으며
우리 부족의 염원을 담은 솟대, 개인의 염원을 담은 솟대에 대한 글을 적어서
역사신문 만들기
초기고대국가의 성립과 사회의 모습
먼저 지도를 그린 후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마한, 진한, 변한의 위치를 적어 넣다.
지도를 직접 그려 봄으로써 선생님뿐만 아니라 아이들에도 나라의 위치를 파악하면서 자연환경을 예측할 수 있다. 또한 시대마다 지도를 그려보는 것이 중요하며, 국경이 어디까지 였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중학교 올라가서는 아이들이 경도 위도를 고려하여 세계지도를 그려야 하기에 먼저 익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말씀하셨다.
당시 청동에서 철기로 넘어가면서 도구의 발달을 통해서 농사짓기가 안정이 되어간다.
농경에 관한 생산활동을 통해서 무엇이 중요하게 되는가
종교의식과 왕의 역할
자연조건에 따른 인간의 사회에 미치는 영향
고대국가로 형성되어가는 과정에서 공통적인 의식세계와 면모를 이해해야 한다.
고구려를 이해하는 것은 자연환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안된다.
-> 현대사회로 갈수록 과학기술 발달로 자연환경에 둔화되어 가고 있다.
* 3모둠으로 나뉘어 부여, 고구려
옥저,동예
삼한 에 대하여 토론하고 발표하는 시간을 갖다.
1. 부여, 고구려
지형적으로 산악지대였으며 한나라에서 철기 들어와 무기로 발달하게 됨
이는 소 부족을 복속시키는 배경이 되기도 함
고구려가 졸본에 수도를 세운 이유는 깊은 골짜기와 산세가 험하나
산악 지대안에 평야가 있어서 천연요새였기 때문이다.
자연환경 -농사지을 땅이 부족하고 추워서 자연 목축이 발달하였다.
목축일은 힘이 필요하기에 자연 정복 근성도 키워졌다.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연맹이 결성되다.
경제 :- 다른 민족과 혼인할 때 데릴사위제, 아는 사위를 데려온다는 의미는
노동력이 부족한 집안에 출가하여 아이를 낳을 때까지 노동력 손실 보상하려 는 의미
조선의 후예라는 의식이 투철했다. 타부족에 비해서 융합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제천행사 - 동맹 (시조신 제사) , 10월에 행하였으며 이는 제의식을 통해서 공동운명체 임을 인식시키고, 부족의 힘을 결합하고 단결하는 축제의 의미이다.
부여는 송화강 유역에서 일어나 만주의 평야지대에서 터를 잡았고
목축을 키우기에 적당하다.
농사는 오곡은 자라나 오과는 생산되지 않았다.
관료의 명칭이 마가, 우가 저가, 구가로 호칭을 사용했다는 것만 보아도 목축이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형사취수제 -전쟁에 나가 남편이 죽으면 처자식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힘은
가족공동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또 다른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로 공동책임의 의미가 있다.
이슬람 문화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제천행사 - 영고, 12월에 열렸으며 목축과의 관계로 새로운 겨울을 준비하는 의미이다.
문화 - 순장제도가 행해졌다.
부여는 고구려보다 먼저 국가를 이루고 국가 규모도 컸음에도 불구하고 부여가 고구려 에게 패한 이유는 고구려가 부여보다 중앙집권체제를 빨리 갖추었기 때문이다.
2. 옥저, 동예
부여와 고구려보다 좀더 자급자족할 수 있는 자연 환경으로 옥저는 해안가에서 소금을 채취하고, 동예는 단궁, 반어피, 과하마등이 있었다.
옥저는 민며느리제가 있었는데 이는 다른 나라처럼 전쟁을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노동력을 더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동예에는 족외혼과 책화가 있었다.
문화적으로는 옥저에 가족공동묘가 있었고, 동예에는 무천이 있었고 10월에 있었다.
옥저와 동예가 고구려에 복속된 이유는 ?
나라라기 보다 연맹의 성격이 더 강했으며 통치할 수 있는 왕의 권력이 없었다.
3. 삼한
부족이 발달했으며 땅이 비옥하고 물이 풍부하여 벼농사에 적합했다. -저수지 발달
백성들은 비단과 베를 짤 줄 알았으며 나라에서는 철이 생산되어 수출까지 하였다.
또한 농기구도 철기로 대체하기도 하여 더욱 농사짓기에 용이했다.
문화로는 제천행사로 5월과 10월에 있었으며 소도라는 별읍이 있어 천신의 제사를 지내 는 사람을 천군이라 했으며 이는 제사장이 독립되어 있다.
이 때는 인간이 자연 재해를 극복하는 대책( 예를 들어 저수지)을 세우기 시작하므로
하늘만을 신성시하는 부분이 약해지기 시작한다.
솟대 -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매개자 역할을 하며 보통 오리로 표현한다.
제단 앞에서는 신의 모습으로, 촌락에서는 수호신이나 경계의 상징으로 세웠다.
또한 자신들의 기원이나 바램을 표현하기도 했다
활동으로는 -솟대 만들기를 했으며
우리 부족의 염원을 담은 솟대, 개인의 염원을 담은 솟대에 대한 글을 적어서
역사신문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