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멜라스: 바닷가에 위치한 아름다운 곳으로 시민들이 즐거움과 행복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번영을 누리는 이상적인 도시

떠나다: 계약에 의한 모든 혜택을 거부하고 현재 있는 곳을 벗어나 돌아오지 않는다.

계약: 관련되는 사람이나 조직체 사이에서 서로 지켜야 할 의무에 대하여 글이나 말로 정하여 둠. 또는 그런 약속.

희생양: 불만해소나 이익 추구 등의 목적을 위해 희생을 강요받거나 강자에게 이용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공공선: 개인을 포함하는 사회 전체 또는 온 인류를 위한 선(善)으로 개인을 위한 선에 상대되는 말로 용어 정의하겠습니다.

 

오멜라스는 축복받은 도시입니다. 왕도, 사제도 없으며 권력의 상징인 군인과 노예도 없는 풍요롭고 안락한 이상적인 도시입니다. 이 도시의 안정적인 모습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가치관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라인홀트 니버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인간’이라는 책에서 개인과 집단 즉 가족의 범위를 넘어서는 큰 사회집단인 공동체, 민족 등은 개인과는 다른 도덕적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회에 요구할 수 있는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정의’이고 개인을 중심에 놓고 볼 때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이타심입니다. 그러나 사회는 여러 면에서 어쩔 수없이 도덕성이 높은 사람들은 결코 승인하지 않을 강제적, 이기심을 사용해서라도 종국적으로는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선’인지 판단해야 할 때 개인과 집단에 대해서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합니다.

오멜라스와 같은 사회에서는 다수가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지속되어야 ‘정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팀은 <오멜라스를 떠나야 한다>는 논제에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반대합니다.

첫 번째 다수의 행복을 위한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합니다.

오멜라스는 자유 시장체제인 현대 사회의 모습입니다. 자본주의에서 기업의 목적은 이윤 극대화이고 그 목표는 주주가치 극대화입니다.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개인의 이익과 사회전체의 이익을 조화시키기 위한 시도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인 공리주의가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임의의 요소로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회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하실에 갇힌 아이는 다수의 잘못이 아니라 임의적으로 갖게 된 요소들로 그러한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보면 ‘희생양’이라고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는 소수의 고통은 불가피합니다.

두 번째 공동선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다수의 행복을 위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개인의 존엄성보다 공동의 이익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6.25전쟁 당시 북한의 전차를 격파할 군장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일순간에 국군과 민간인이 섬멸된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육탄전으로 수류탄을 들고 열 명의 군인이 적의 전차 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임무를 수행한 군인들은 대부분이 사망하였지만 그들 덕분에 많은 민간인과 국군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다소 진부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렇게 공동체의 삶을 위해서 개인이 희생되는 경우는 많습니다. 그들의 희생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소그룹 단위나 개인적인 상황에서 생명을 함부로 여기는 행동은 도덕적으로 용납이 안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 전체 구성원의 삶을 보장하고 유지시켜 줄 수 있다면 공동의 선을 우선시하여 선택하는 것이 정의하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유지시켜야 합니다.

사회는 구조적으로 지배자와 피지배자, 생산자와 자본가 등으로 수직화, 구조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주의 이전의 봉건사회나 제국주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사회에 밝은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어두운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체제가 안정이 되어야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인간 삶의 조건들이 한결 같을 수는 없습니다. 기후, 태생, 환경, 교육 등 어차피 차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조건 안에서 사회의 안녕과 다수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는 이와 같이 흘러왔기 때문입니다.

아주 이상적인 법이나 제도가 만들어져서 모든 개인의 행복이나 이익이 전체의 이익과 최대한 조화를 이룰 수 있다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의 욕구와 추구하는 가치의 방향이 틀린 현대 사회에서 모두를 충족시키는 완벽한 제도를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결국 사회구성원들이 개인의 행복과 전체이익의 관계에 있어서 사회의 보편적 행복을 달성하기 위한 끊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깨닫고 부정적인 행동보다는 긍정적인 사고의 전환을 통하여 나보다는 우리라는 공존의 의미에 비중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오멜라스를 떠나야 한다>는 논제에 반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