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 논술 강의 나눔터
오늘은 김형준 강사님을 처음 뵙는 날이었습니다.
앗! 큰 키에 두리두리한 덩치, 저는 '골리앗' 샘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느릿느릿한 말씀으로 수업을 진행하던 박형만 선생님과는 반대로 많은 내용을 다뤄야 하는 관계로
속사포처럼 빠른 속도로 수업을 진행했지요.
(저도 말이 빠른 관계로 잘 알아들었습니다 - 내용이 좀 벅차기는 했지만요 ^^)
오늘 수업 내용중에 '데카르트'에 대해 나왔습니다. 시대별 특징을 얘기하다보니
자연스레 철학까지 나오게 된 거지요.
그러다 데카르트를 어떤 학자(직업?)로 규정지어야 할지 약간 이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의 짧은 식견에는 그를 철학자 또는 수학자로 알고 있었거든요.
고등학교 수학 자습서에 유명한 수학자의 한사람으로서 데카르트의 얼굴이 터억~하니
실려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 길을 파는 요즘 학자와는 달리 옛날 학자들은 철학과 자연과학, 수학, 의학.. 이런 분야를
종횡무진 누비며 연구를 했기에 이런 혼란이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데카르트에 대해서
다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철학을 전공하신 분께서 데카르트의 (직업)이 수학자가 아니라
가정교사였다고 했는데, 제가 보기론 수학자라고 해도 무리는 아닐 듯 싶은데요.
가정교사로서 일하면서 철학,수학,자연과학 이런 과목을 가르쳤을 수 있잖아요.
어쨌든 역사나 철학 이런 것에 어두운 저에겐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관심 있는 '철학'을 전공하신 빵빵한 도반님이 계시니 언제고 궁금한 게 있을 땐
물어볼 수 있잖아요. ^^
** 검색한 것 중 일부를 올립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발췌)
<데카르트>
원어명 Ren Descartes
별칭 근대철학의 아버지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철학, 과학
출생지 프랑스 투렌라에
주요저서 《우주론》《방법서설》(1637) 《성찰록》(1641)
투렌라에 출생. 근세사상의 기본틀을 처음으로 확립함으로써 근세철학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그는 세계를 몰가치적(沒價値的)·합리적으로 보는 태도(과학적 자연관)를 정신의 내면성의 강조(정신의 형이상학)와 연결지워 이를 이원론(二元論)이라고 하였다. 이원론은 동시에 근세사상 전체에 통하는 이원성의 표현이다. 프랑스 중부의 관료귀족 집안 출신으로 생후 1년 만에 어머니와 사별하고 10세 때 예수회의 라 플레슈학원에 입학, 프랑수아 베롱에게 철학을 배웠다. 1616년 푸아티에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학교에서 배운 스콜라적 학문에 불만, 세상을 통해 배울 것을 결심하고 여행에 나섰다. 1618년에는 지원장교로서 네덜란드군에 입대했다. 수학자 베이크만과 알게 되어, 물리수학적 연구에 자극을 받아 ‘보편수학(普遍數學)’의 구상에 이르렀다. 1620년 군대를 떠나 유럽 각지를 전전하다가 1625년부터 파리에 체재, 광학(光學)을 연구한 끝에 ‘빛의 굴절법칙’을 발견하였다
1629년 이후에는 네덜란드에 은거하며 철학연구에 몰두하여 형이상학 논문 집필에 종사하였으나, 같은해 3월 제자로부터 환일(幻日) 현상의 해명을 요청받고 중도에 자연연구로 전향, 결국 자연학(自然學)을 포괄하는 《우주론 Le Traitéde la monde》의 구상으로 발전하였다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카르트는 수학자로서는 기하학에 대수적 해법을 적용한 해석기하학의 창시자로 알려졌다. 물체에는 무게라는 실재적 성질이 있기 때문에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하는 스콜라적 자연학에 만족하지 못하고, 물리 수학적 연구를 통하여 물질, 즉 연장(延長)이라는 기계론적 자연관으로 이끌려 갔다. 그의 형이상학적 사색은 이른바 방법적 회의(懷疑)에서 출발한다.
학문에서 확실한 기초를 세우려 하면, 적어도 조금이라도 불확실한 것은 모두 의심해 보아야 하는데, 세계의 모든 것의 존재를 의심스러운 것으로 치더라도 이런 생각, 즉 의심을 하는 자신의 존재만은 의심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근본원리가 《방법서설》에서 확립되어, 이 확실성에서 세계에 관한 모든 인식이 유도된다. 의심하고 있는 불완전한 존재에서 무한히 완전한 존재자의 관념이 결과할 리가 없다는 데서 신의 존재가 증명되고, 신의 성실이라는 것을 매개로 하여 물체의 존재도 증명된다.
앗! 큰 키에 두리두리한 덩치, 저는 '골리앗' 샘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느릿느릿한 말씀으로 수업을 진행하던 박형만 선생님과는 반대로 많은 내용을 다뤄야 하는 관계로
속사포처럼 빠른 속도로 수업을 진행했지요.
(저도 말이 빠른 관계로 잘 알아들었습니다 - 내용이 좀 벅차기는 했지만요 ^^)
오늘 수업 내용중에 '데카르트'에 대해 나왔습니다. 시대별 특징을 얘기하다보니
자연스레 철학까지 나오게 된 거지요.
그러다 데카르트를 어떤 학자(직업?)로 규정지어야 할지 약간 이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의 짧은 식견에는 그를 철학자 또는 수학자로 알고 있었거든요.
고등학교 수학 자습서에 유명한 수학자의 한사람으로서 데카르트의 얼굴이 터억~하니
실려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 길을 파는 요즘 학자와는 달리 옛날 학자들은 철학과 자연과학, 수학, 의학.. 이런 분야를
종횡무진 누비며 연구를 했기에 이런 혼란이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데카르트에 대해서
다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철학을 전공하신 분께서 데카르트의 (직업)이 수학자가 아니라
가정교사였다고 했는데, 제가 보기론 수학자라고 해도 무리는 아닐 듯 싶은데요.
가정교사로서 일하면서 철학,수학,자연과학 이런 과목을 가르쳤을 수 있잖아요.
어쨌든 역사나 철학 이런 것에 어두운 저에겐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관심 있는 '철학'을 전공하신 빵빵한 도반님이 계시니 언제고 궁금한 게 있을 땐
물어볼 수 있잖아요. ^^
** 검색한 것 중 일부를 올립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발췌)
<데카르트>
원어명 Ren Descartes
별칭 근대철학의 아버지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철학, 과학
출생지 프랑스 투렌라에
주요저서 《우주론》《방법서설》(1637) 《성찰록》(1641)
투렌라에 출생. 근세사상의 기본틀을 처음으로 확립함으로써 근세철학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그는 세계를 몰가치적(沒價値的)·합리적으로 보는 태도(과학적 자연관)를 정신의 내면성의 강조(정신의 형이상학)와 연결지워 이를 이원론(二元論)이라고 하였다. 이원론은 동시에 근세사상 전체에 통하는 이원성의 표현이다. 프랑스 중부의 관료귀족 집안 출신으로 생후 1년 만에 어머니와 사별하고 10세 때 예수회의 라 플레슈학원에 입학, 프랑수아 베롱에게 철학을 배웠다. 1616년 푸아티에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학교에서 배운 스콜라적 학문에 불만, 세상을 통해 배울 것을 결심하고 여행에 나섰다. 1618년에는 지원장교로서 네덜란드군에 입대했다. 수학자 베이크만과 알게 되어, 물리수학적 연구에 자극을 받아 ‘보편수학(普遍數學)’의 구상에 이르렀다. 1620년 군대를 떠나 유럽 각지를 전전하다가 1625년부터 파리에 체재, 광학(光學)을 연구한 끝에 ‘빛의 굴절법칙’을 발견하였다
1629년 이후에는 네덜란드에 은거하며 철학연구에 몰두하여 형이상학 논문 집필에 종사하였으나, 같은해 3월 제자로부터 환일(幻日) 현상의 해명을 요청받고 중도에 자연연구로 전향, 결국 자연학(自然學)을 포괄하는 《우주론 Le Traitéde la monde》의 구상으로 발전하였다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카르트는 수학자로서는 기하학에 대수적 해법을 적용한 해석기하학의 창시자로 알려졌다. 물체에는 무게라는 실재적 성질이 있기 때문에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하는 스콜라적 자연학에 만족하지 못하고, 물리 수학적 연구를 통하여 물질, 즉 연장(延長)이라는 기계론적 자연관으로 이끌려 갔다. 그의 형이상학적 사색은 이른바 방법적 회의(懷疑)에서 출발한다.
학문에서 확실한 기초를 세우려 하면, 적어도 조금이라도 불확실한 것은 모두 의심해 보아야 하는데, 세계의 모든 것의 존재를 의심스러운 것으로 치더라도 이런 생각, 즉 의심을 하는 자신의 존재만은 의심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근본원리가 《방법서설》에서 확립되어, 이 확실성에서 세계에 관한 모든 인식이 유도된다. 의심하고 있는 불완전한 존재에서 무한히 완전한 존재자의 관념이 결과할 리가 없다는 데서 신의 존재가 증명되고, 신의 성실이라는 것을 매개로 하여 물체의 존재도 증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