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문을 참고로 아래의 지시 사항에 따라 논술하라.

  (가) 인류의 지난 역사를 보았을 때, 인류의 역사가 진보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인간은 경제적인 면에서 비약적인 생산력의 발전을 통해 인류 생존의 최대 난제인 빈곤에서 해방되었다. 물론 아직도 굶주림에 허덕이는 인류가 전 세계적으로는 5억 이상이 된다고 하지만, 지금부터 약 200년 전의 상황과 비교해 보았을 때 분명히 진보하였다. 또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다수의 국가에서는 이제 신분 제도에 근거한 전제적 군주제가 사라졌다. 더 이상 한 인간 집단이 다른 인간 집단을 ‘말하는 도구’로 억압하고 착취하는 현상은 거의 사라졌고, 이런 면에서도 인류의 역사는 분명히 진보했다고 볼 수 있다.

  (나)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보면, 인류의 역사가 진보했다는 주장에 많은 회의가 든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가난과 질병, 고통에서 해방시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과학 기술의 발전은 동시에 인류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가고 있다. 두 번에 걸친 세계 대전에서 벌어진 인류에 대한 대규모 학살은 과학 기술이 발전하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 원자 폭탄과 수소 폭탄이 만들어진 지금,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제3차 세계 대전은 인류를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할지도 모른다. 또 산업 혁명과 과학 기술의 발달로 확립된 자본주의는 인류에게 전에 없었던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자본주의는 인류에게 많은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 자본주의 사회에는 어디를 가나 빈부 격차의 문제가 심각하게 되어, 사회 계급 간의 갈등과 대립이 늘 존재한다. 또한 물신 숭배, 황금 만능주의는 전 사회에 퍼져 나가, 돈이 사람들의 사고와 행위를 평가하는 척도가 되었다. 인간의 끊임없는 물질적인 욕구는 자연에 대한 대규모 파괴를 초래하여 이제는 인간의 생존 자체마저 위협하고 있다. 이처럼 여러 가지 면을 종합해 볼 때 인류의 역사는 자기 파멸의 역사였고, 따라서 역사가 진보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다음을 논제로 삼아 논점에 대한 분명한 입장이 드러나게 논술하라.

  [논제] 지난 시기 인류의 경험을 근거로 할 때, 인류의 역사는 진보의 역사였는가?

  논점 1. 진보 또는 퇴보(정체 포함)를 평가하는 기준

  논점 2. 진보 내지는 퇴보(정체 포함)의 과정

  ☞ 유의 사항

  ① 제목을 쓰지 말 것
  ② 자신의 신원을 드러내는 표현은 쓰지 말 것
  ③ 한 편의 완결된 글로 쓸 것
  ④ 어문 규정과 원고지 작성법에 따를 것
  ⑤ 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600자 내외(±200자 허용)로 쓸 것


  예시글

**** ‘역사는 진보한다’는 입장에 찬성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슈펭글러는 ‘서구의 몰락’이라는 역사책을 썼다. 여기에서 그는 이제 서구의 역사는 몰락에 접어들었다는 것,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강력한 지도자의 등장처럼 새로운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슈펭글러의 이러한 주장은 전에 없던 대규모 인명 살상과 문명의 파괴를 몰고 온 세계 대전의 충격에서 나온 것으로, 그의 눈에는 이제 인류의 역사는 진보의 역사라고 할 수 없었다. 이처럼 인류 문명의 대파괴 이후에 인류 역사의 진보를 부정하는 주장은 자주 등장했다.

그런데 역사는 진보한다는 견해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 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음의 두 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평가의 내용과 관련된 것으로, 역사를 물질적 삶과 정신적 삶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 근거하여 평가해야 한다. 둘째는 시간과 관련된 것으로, 역사를 평가할 때에는 장기적 관점과 단기적 관점 모두에서 평가해야 한다. 이 두 가지 기준에 근거할 때 우리는 인류의 역사가 진보의 역사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먼저 물질적 삶과 관련해서 보면, 초기 인류에게는 빈곤과 추위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절대 절명의 과제가 주어졌다. 이 과제는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거의 달성되었다. 한국을 예로 들어 보자. 우리 나라는 한국 전쟁 이후 파괴된 국토를 다시 건설하고, 동시에 전 국민을 가난과 질병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무거운 과제를 짊어졌다. 비록 지난 몇 년간 국제금융기구(IMF)의 구제 금융을 받기는 하였지만, 이제 그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제가 아니게 되었다. 곧 국민의 물질적 삶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거대한 진보를 이룩하였다.

  또 정신적 삶과 관련해서 보아도 인류의 역사는 진보의 역사였다. 어떤 사람은 현대를 ‘인간성 황폐화의 시대’로 규정하고서 인류의 역사가 진보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전 시대의 상황을 무시한 결과에서 나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고대 사회에는 노예 제도가 있었지만 인간 소외 등의 문제는 없었기 때문에 인간의 정신적 삶이 지금보다 좋았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이다. 왜냐 하면 노예는 ‘말하는 도구’로 취급되었는데, 이런 도구를 상대로 인간성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현대의 인간 소외 운운은 이전의 신분 제도 속에서의 인간성 황폐화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이 같은 면에서 인간의 정신적 삶도 전보다는 훨씬 발전했다.

  시간과 관련된 측면에서 보면 어떤가? 단기적 관점에서는 인류의 역사가 종종 후퇴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대규모 인명 살상과 문명 파괴를 초래한 두 번의 세계 대전 직후에 인류 역사를 보았다면, 우리는 역사가 진보했다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인간성 존중이나 물질 문명의 회복은 전쟁 직후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면에서 인류의 역사는 단순히 직선적인 발전 과정을 밟는 것이 아니라 나선형식의 발전 과정을 밟는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단기적인 관점에서, 또 현재의 문제점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해서 인류 역사의 진보를 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인류의 역사는 진보의 역사였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종종 인류의 역사가 퇴보 또는 정체한 적도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단기적인 역사의 퇴보나 정체를 막고 역사가 지속적으로 진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 ‘역사가 진보하지 않는다’는 입장에 찬성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인간 삶의 참된 의미를 찾고, 바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다. 이런 측면에서 역사에 대한 평가는 동시에 인간 삶의 의미에 대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역사를 평가할 때 중요한 것은, 어떤 삶이 참된 의미의 인간다운 삶인가 하는 평가 기준을 분명히 제시하는 일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인간에게 의미 있는 삶이란 다음 두 가지에 따라 인도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곧 그것은 이웃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 정신’과 자연과 함께 사는 ‘조화 정신’에 따라 인도되는 삶이다.

  이 두 가지 정신에 비추어 보면 지난 인류의 역사는 결코 진보했다고 볼 수 없다. 먼저 공동체 측면에서 역사를 평가해 보자. 인류는 산업 혁명과 자본주의 체제의 수립 이후에 엄청난 물질적 풍요를 이룩하였다. 그래서 지구상의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는 이제 먹고 사는 문제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가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과’는 동시에 커다란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것이다. 곧 이 과정에서 인간 삶의 참된 의미를 부여하는 공동체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자본주의는 개인적인 소유 제도와 시장 원리에 따라 운영된다. 그 결과 개인들은 좀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다른 개인과 심각한 경쟁에 들어갔고, 그 과정에서 물질 숭배, 인간성 소외 등의 문제를 유발시켰다. 그래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최고이고, 인간은 돈을 위한 수단으로, 인간 관계는 금전 관계로 전락했다. 동시에 사회는 돈을 많이 가진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으로 나뉘어 갈등과 대립이 끊일 날이 없다. 이러한 현대 사회에서는 더 이상 ‘우리’도 없고 ‘정’도 없다. 다만 ‘나’와 ‘돈’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이제 돈에 허우적거리는 삶, 남과의 전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삶으로 전락했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인류의 역사가 진보했다고 할 수 없다.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는 또 어떤가? 인간은 원래부터 자연의 한 구성 요소이다. 따라서 인간 삶도 당연히 자연과의 친화?조화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하여 옛날에는 인간 삶이 ‘조화 정신’에 의해 인도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자연은 인간의 물질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대상으로 전락하여, 자연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울 정도로 파괴되었다. 인간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과학 기술은 인간 삶의 토대인 자연을 파괴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지금 현대 사회에서는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조화 정신’은 사라지고 대신 ‘파괴 정신’만이 판을 치고 있다. 그 결과 인간은 참된 의미의 인간 삶은 고사하고, 그냥 되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삶 그 자체가 파괴될지도 모르는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런 면에서 보아도 또한 인간의 역사가 진보했다고는 볼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인간 삶의 참된 의미를 찾고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우리가 역사를 평가할 때에도 이 같은 관점에 입각해야 한다. 곧 ‘공동체 정신’과 ‘조화 정신’에 다라 인도되는 인간의 삶을 참된 것으로 보고, 지난 인류 역사가 이것을 얼마나 달성했는가를 기준으로 역사를 평가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결코 지난 인류의 역사가 진보했다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이러한 지금까지의 역사를 바꾸고, 역사가 정말로 진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무거운 과제가 주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