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제시문은 인간의 가치 관념과 행위 성향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한 가지 견해를 담고 있는 글의 일부이다. 이 제시문을 읽고 물음에 답하라. [96 서울대]

  인간의 가치 관념은 대개의 경우 어떤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절차를 따라 스스로 검토하여 마련한 것이 아니라, 비판적?합리적 사고 능력이 미처 갖추어지지 않은 성장기에 거의 일방적으로 주입된다. 이것이 효과적으로 주입되면 될수록 심리적 성향 속에 깊숙이 융합되어 내면적인 성품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일단 인간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잡은 가치 관념은 좀처럼 의식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고 일생 동안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작용한다.

  비교적 행동 반경이 좁고 사고 기능이 단순한 유년기에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관념이 행위의 지침을 위하여 대단히 유용하며 효과적이다. 이러한 지침은 구체적인 행위 하나하나에 선과 악의 구분을 제시하게 되는데, 아직 미숙한 행위의 주체자는 심성의 발달 과정에서 그것을 자기의 성품 속에 융합시켜 나가게 된다. 그리고 이 행위 지침은 대부분의 경우 인간이 지닌 본능적인 행위 성향, 특히 이기적인 행위 성향에 수정을 가하여 더 폭넓은 사회 생활에 적합하도록 성품을 개조시켜 나간다. 이렇게 형성된 선과 악의 관념은 지능이 성숙해지는 성장기 말기에 가서 다소 주체적인 반성 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대체로 큰 수정 없이 일생을 지배하게 된다.

  이러한 선과 악의 관념에 비하여, 우리 편과 상대 편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구획 관념은 더 깊숙이, 인간의 본능 속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인간의 조상이 다른 동물들, 특히 유지해 온 진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우리 편과 상대 편의 철저한 구분 의식이 대단히 유용한 역할을 했으리라는 점이 쉽게 짐작된다. 외부의 적과 대결하는 데에 집단적인 협동을 중요한 무기로 사용해 온 인류의 조상은 이러한 집단 구획 의식을 본능 속에 간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단 본능 속에 새겨진 이러한 성향은 비교적 짧은 문화 발전의 과정에서는 특별히 수정을 받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현대 이전에는 특히 맹수들과의 경쟁 속에서 성공적인 민족의 생존을 위하여 이것이 유용한 방향의 기능을 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성향은 현대에 접어들어 제국주의의 팽창이나 민족 간의 갈등의 심화와 같은 역기능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보면 집단 구획 의식은 비교적 이른 유년기에 이미 발현되기 시작하며, 이것이 곧 선과 악의 관념과 결합하여 좋은 편과 나쁜 편을 구분하는 사회 의식으로 발전한다. 이 의식은 크고 작은 사회 집단 사이에 대립과 갈등을 낳고, 나아가 민족간?국가간의 갈등까지도 빚어내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좋은 편과 나쁜 편을 구분하는 이러한 사회 의식은 근본적으로 그 바탕에 깔린 본능적 구획 성향과 함께 일생 동안 인간의 사고 및 행위 양식을 지배하게 된다.




  문제 1. 다음은 위 제시문이 들어 있는 글의 한 대목이다. 스포츠가 지니는 이러한 특징 때문에 “스포츠가 집단 구획 의식이 주는 현실적 독소를 대부분 중화시키면서 인간이 지닌 이러한 본능적 욕구를 채워 준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100자 이내로 쓰라.

  우리는 운동 경기라는 특별한 행위 양식을 통하여 본능적 집단 구획 의식이 묘한 절충을 이루어 내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른바 스포츠라는 일견 무의미해 보일 수도 있는 행위 양식이 현대 사회에서 불길같이 번져 나가고 있는 것은, 바로 스포츠가 집단 구획 의식이 주는 현실적 독소를 대부분 중화시키면서 인간이 지닌 이러한 본능적 욕구를 채워 주기 때문이라고 이해될 수 있다.


  문제 2. 인간 사회에서 집단 간 갈등은 빈번히 일어날 뿐 아니라 해결하기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제시문의 논지를 지지하거나 반박하고, 각자의 경험에 비추어 집단 간 갈등의 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논술문을 작성하라.


  ☞ 준수 사항
  ㄱ. 제시문의 논지를 지지하거나 반박하는 근거를 명확히 밝힐 것
  ㄴ. 집단 간 갈등의 해결이 어려운 이유를 명확히 밝힐 것
  ㄷ. 집단 간 갈등의 해결책에 대해서는 쓰지 말 것


  ☞ 작성 요령

  ㄱ. 제목과 신원을 나타내는 내용은 쓰지 말 것
  ㄴ. 어문 규정과 원고지 사용법을 지킬 것
  ㄷ. 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000자 이내(800자 이상 1,000자 이하)로 쓸 것




  본보기

<문제1>

  스포츠는 편을 나누어 겨루는 일종의 편싸움이지만, 일정한 규칙과 방법에 의해 진행되기 때문에 집단 구획 의식의 현실적 독소를 중화시키면서 본능적인 집단 구획 의식을 충족시켜 준다.

  <문제2>

  1. 제시문에 대한 지지

  인간의 역사는 집단 간의 분규, 종족 간의 전쟁, 계급 간의 투쟁으로 점철되어 왔다. 몇 해 전에 우리 사회를 떠들석하게 한 한의사와 약사 간의 분규, 미국의 로스엔젤레스에서 일어난 흑인 폭동, 봄이면 해마다 터져 나오는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투쟁 등 이러한 분쟁들이 우리 사회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심성 내부에 집단 구획 의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비판적 의식을 갖추기 이전의 어린 나이에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관념을 주입받는다. 도둑질은 나쁘다는 의식, 여자는 순결해야 한다는 의식,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의식은 아무런 비판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그대로 우리에게 주입되어 일생 동안 우리의 도덕 관념을 지배하게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집단 구획 의식이다. 어렸을 때 주입되는 집단 구획 의식은 성장해서도 커다란 변화를 보이지 않은 채 인간의 행위를 지배한다. 예컨대 어렸을 때부터 배우는 북한에 대한 경계 의식은 오늘날 4천만 한국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집단 구획 의식은 집단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작게는 지역 간의 분쟁을 유발하기도 하거니와 크게는 민족 간의 전쟁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집단 구획 의식은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무의식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어 좀처럼 변화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의 역사에서 수없이 출몰하는 집단 간의 갈등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2. 제시문에 대한 반론

  제시문에 의하면 인간의 집단 구획 의식이 집단 갈등의 원인이라고 한다. 성장기에 형성된 집단 구획 의식은 우리 집단과 다른 집단을 구분하게 하고, 나아가 집단 갈등을 조장하는 한 요인으로 작용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간의 역사에 출현한 민족 간의 크고 작은 전쟁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분규 등이 모두 인간의 집단 구획 의식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는 것은 집단 갈등의 역사적 사회적 조건을 무시한 것이다.

  예컨대 제2차 세계 대전의 과정에서 독일인과 프랑스 인이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적대 의식이 전쟁을 추동한 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범지구적 집단 갈등이 인간의 내면에 형성된 타고난 집단 구획 의식 때문에 발생했다고 보는 것은 일차적으로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만일 집단 구획 의식 때문에 세계 대전이 발생하였다면, 그 전쟁은 18, 19세기 내내 적대 관계를 형성해 온 영국과 프랑스 간의 전쟁이었어야 했다. 또 일본과 미국은 상호 간에 적대 감정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대전에서 적대국이 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전혀 해명하지 못한다.

  집단 간의 갈등이 역사 속에서 끊이지 않는 원인은 인간의 의식에서가 아니라 인간 집단 간에 형성되어 있는 이해 차이에서 찾아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라면 예외 없이 발생하는 노사 갈등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계급 의식 때문이 아니라, 두 계급이 안고 있는 적대적 이해 관계 때문에 발생한다. 또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지역 감정 역시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들 내면에 형성되어 있는 집단 구획 의식에 연원하였다기보다는, 경제 성장을 둘러싼 이해의 차이 또는 정치적 권력을 둘러싼 지역적 이해 차이에서 연원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집단 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는, 결국 물질적 토대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러 집단의 이익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집단 간의 갈등과 대립을 해결하는 길은 사회적인 원인은 파악하고 이를 최소화하거나 제거하도록 노력하는 것뿐이다. 그렇지 않고, 이러한 갈등의 원인을 인간의 본능에 기반을 둔 집단 구획 의식으로 파악할 경우, 집단 간의 갈등과 대립은 더욱 해결이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같이 생각해 봅시다]

  다음은 97년도 서울대 문제이다. 이 논제는 제시문 분석이 매우 중요하다. 고전을 통해 현실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에 대해 같이 생각해 보자.




  □ 현대 사회에서 개인은 거대한 조직에 속해 있으면서 대부분이 익명의 존재로 방치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다음 글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과 개인 사이의 참다운 정서적 유대 관계의 형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첫째,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가 어떠한 사회적 조건에서 비롯된 것인가를 간략히 밝히고, 둘째, 그러한 사회적 조건에 비추어 볼 때 참다운 인간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이 글에서 암시하고 있는 개인적 차원의 노력이 어떠한 의의와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라. [97 서울대]




“안녕.” 여우가 말했다.

“안녕.” 어린 왕자가 공손히 대답하고 둘러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 여기 있어. 사과나무 아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넌 누구니? 참 이쁘구나.”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나는 여우야.”

“이리 와서 나하고 놀자. 난 아주 쓸쓸하단다.”

“난 너하구 놀 수가 없어. 길이 안 들었으니까.”

“그래? 미안해.” 조금 생각하다가 어린 왕자가 덧붙였다.

“길들인다는 게 무슨 말이니?”

“넌 여기 사는 아이가 아니구나. 무얼 찾고 있니?”

“사람들을 찾고 있어. 그런데 길들인다는 게 무슨 말이니?”

“사람들은 총으로 사냥을 해. 대단히 귀찮은 노릇이지. 하지만 사람들은 닭을 기르기도 해. 사람이란 그저 한 가지밖에 쓸모가 없으니까. 너두 닭이 필요하니?”

“아니, 난 친구를 찾고 있어. 도대체 길들인다는 게 무슨 말이냐구.”

“모두들 잊고 있는 건데,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란다.” 여우가 대답했다.

“관계를 맺는다구?”

“응. 지금 너는 다른 애들 수만 명과 조금도 다름없는 사내애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네가 필요없구, 너는 내가 아쉽지도 않은 거야. 네가 보기에 나도 다른 수만 마리의 여우와 똑같잖아? 그렇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 아쉬워질 거야. 내게는 네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것이구, 네게도 내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될 거야.”

“이젠 좀 알아듣겠어. 나에게 꽃이 하나 있는데, 그 꽃이 나를 길들였나 봐.”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지구에는 없는 게 없으니까.”

“아니, 지구에 있는 게 아니야.”

“그럼, 다른 별에 있어?”

“응.”

“그 별에는 사냥꾼이 있니?”

“아니.”

“야, 거 괜찮은데! 그럼, 닭은?”

“없어.”

“그래, 완전한 곳은 절대로 없다니까.” 여우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여우는 자기 이야기로 말머리를 돌렸다.

“내 생활은 늘 똑같애. 나는 닭을 잡구, 사람들은 나를 잡는데, 사실은 닭들은 모두 비슷비슷하구, 사람들도 모두 비슷비슷해. 그래서 나는 좀 따분하단 말이야. 그렇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내 생활은 달라질 거야. 난 보통 발소리하고 다른 발소리를 알게 될 거야. 보통 발자국 소리가 나면 나는 굴 속으로 숨지만, 네 발자국 소리는 음악 소리처럼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리고 저기 밀밭이 보이지? 난 빵을 안 먹으니까 밀은 나한테는 소용이 없구, 밀밭을 보아두 내 머리에는 떠오르는 게 없어. 그게 참 안타깝단 말이야. 그런데 너는 금발이잖니. 그러니까 네가 나를 길들여 놓으면 정말 기막힐 거란 말이야. 금빛깔이 도는 밀밭을 보면 네 생각이 날 테니까. 그리고 나는 밀밭을 스치는 바람소리까지도 좋아질 거야.”

여우는 말을 그치고 어린 왕자를 한참 바라보더니,

“제발, 나를 길들여 줘.”라고 말했다.

“그래. 그렇지만 나는 시간이 별로 없어. 친구들을 찾아야 하거든.” 어린 왕자가 대답했다. 여우는 힘없이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무얼 알 시간조차 없어지고 말았어. 사람들은 다 만들어 놓은 물건을 가게에서 산단 말이야. 그렇지만 친구는 파는 데가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게 되었단다. 친구가 필요하거든 나를 길들여.”

“어떻게 해야 되는데?”

“아주 참을성이 많아야 해. 처음에는 내게서 좀 떨어져서 그렇게 풀 위에 앉아 있어. 내가 곁눈으로 너를 볼 테니 너는 아무 말도 하지 마. 말이란 오해의 근원이니까. 그러다가 매일 조금씩 더 가까이 앉는 거야.”

이튿날 어린 왕자가 다시 찾아오자 여우가 말했다.

“시간을 약속하고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네가 오후 네 시에 오기로 했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졌을 거구, 네 시가 되면 안절부절 못 하구 걱정했을 거야. 행복이 얼마나 값지다는 걸 알게 되었을 거란 말이야. 그러나 네가 아무 때나 오면 나는 언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지 알 수 없잖아? 무언가 정해 놓을 필요가 있어.”

“무얼 정해 놓는다구?”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것도 요즈음은 잊고 사는 거란다. 어떤 날을 다른 날들과, 어떤 시간들을 그 외의 시간들과 다르게 만드는 거야. 예를 들어 사냥꾼들은 목요일마다 동네 아가씨들하구 춤을 춘단 말이야. 그래서 내게 목요일은 기막히게 좋은 날이지. 포도밭까지 소풍을 가기도 하구. 그런데 사냥꾼들이 아무 날이나 춤을 춘다고 생각해 봐. 그저 그날이 그날 같을 게고, 나는 휴가라는 게 영 없을 거 아냐?”

이렇게 해서 어린 왕자는 여우를 길들였다.

어린 왕자가 떠날 시간이 가까워지자 여우가 말했다.

“난 아무래도 눈물이 날 것 같애.”

“그건 너 때문이야. 나는 너를 괴롭힐 생각이 조금도 없었는데, 네가 길들여 달라구 그랬잖아.”

“그래.”

“그런데 눈물이 날 것 같다면서?”

“그래.”

“그러면 손해만 본 셈이구나.”

“아니, 이득이 있어. 저기 밀밭 빛깔 말이야.” 여우가 말했다.

“장미꽃 밭에 다시 가 봐. 네 장미꽃이 딴 꽃들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리구 나한테 작별 인사를 하러 오면 선물로 비밀 하나를 가르쳐 줄게.”

어린 왕자는 장미꽃들을 다시 만나러 갔다.

“너희들은 내 장미꽃하구 전혀 달라. 너희들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도 너희를 길들이지 않았잖아. 내 여우도 전에는 너희나 마찬가지였어. 다른 여우들하고 똑같은 여우였어. 그렇지만 그 여우를 내 친구로 삼으니까 지금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되었어.”

그러니까 장미꽃들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어린 왕자는 또 이런 말을 했다.

“너희들은 곱긴 하지만 속이 비었어. 누가 너희들을 위해서 죽을 수는 없단 말이야. 물론 보통 사람들은 내 장미도 너희들과 비슷하다구 생각할 거야. 그렇지만 그 꽃 하나만 있으면 너희들을 모두 당하구두 남아. 그건 내가 물을 주고, 고깔도 씌워 주고, 병풍으로 바람도 막아 주었으니까. 내가 벌레를 잡아 준 것도 그 장미꽃이었어. 나비를 보여 주려구 두세 마리는 남겨 두었지만. 그리고 원망이나 자랑이나 모두 들어 준 것도 그 꽃이었으니까. 그건 내 장미꽃이니까.”

어린 왕자는 여우한테 다시 와서 작별 인사를 했다.

“잘 있어.”

“잘 가. 이제 내 비밀을 가르쳐 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세상을 잘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거지. 제일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거든.”

“제일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어린 왕자는 그 말을 되뇌였다.

“네가 그 장미꽃에 바친 시간 때문에 그 장미꽃이 그렇게 중요하게 된 거야.”

“내 장미꽃에 바친 시간 때문에…….”

어린 왕자는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되풀이해서 말했다.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어버렸어. 하지만 너는 잊어버리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영원히 네가 책임을 지게 되는 거야. 너는 네 장미꽃에 대해서 책임이 있어.”

“나는 내 장미꽃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

어린 왕자는 머리에 새겨 두기라도 하듯이 다시 한 번 말했다.




  ☞ 유의 사항

  ① 제목을 쓰지 말 것

  ② 자신의 신원을 드러내는 표현은 쓰지 말 것

  ③ 한 편의 완결된 글로 쓸 것

  ④ 어문 규정과 원고지 작성법에 따를 것

  ⑤ 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600자 내외(±200자 허용)로 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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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 보장제를 강화하여 소외된 인간 관계를 복구하자

  버스를 탈 때, 우리는 운전 기사의 수고에 대한 보답으로 ‘감사의 마음’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승차 비용으로 버스표 하나를 지불한다. 백화점에서 옷을 살 때, 옷을 만드는 과정에 들어간 수많은 노동자의 노동과 인격적 교감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옷값을 치르는 것으로 끝난다. 이처럼 너와 나의 인격적 관계가 상품 관계, 나아가 화폐 관계로 대체되는 사회가 바로 자본주의 사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 관계는 타인과 다정한 교감을 나누는 정서적 유대 관계를 상실하고, 그 대신 하나의 상품 소유자가 다른 상품 소유자와 물건을 주고받는 상품 관계로 전화한다.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개인의 이해 관계를 넘어서 헌신과 봉사, 애정과 사랑의 인간 관계를 전혀 누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이해 관계를 넘어선 사랑의 인간 관계를 가족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부모는 자식에게 아무런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며, 자식은 부모에게 끝없는 효도를 한다. 또 이러한 공동체적 관계를 우리는 몇몇 친지들과 나눌 수 있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친구를 위하여 나의 땀과 정성을 들이면, 또 그 친구는 애가 어려울 때 나를 도와 주는 경우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이처럼 개인적 차원에서 참다운 정서적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노력과 실천은 그 자체로 삶의 빛이 되어 우리에게 귀중한 행복의 원천이 된다.

  하지만 개인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참된 유대 관계의 형성 노력은 근본적인 제약을 안고 있다. 나의 모든 생활이 이미 상품 관계, 화폐 관계 안에 포섭되어 버린 상황에서 상품 관계를 넘어선 인간 관계를 유지하려는 시도는 달걀로 바위를 깨려는 시도처럼 허망하게 끝날 가능성이 높다. 내가 생산한, 나의 피와 땀이 들어 있는 고귀한 노동의 산물을 이웃에게 대가 없이 나누어 주면 좋겠지만, 이는 곧 나의 굶주림과 경제적 파탄을 낳을 뿐이다. 또 모든 사람이 상품 관계 안에서 더 많은 물질을 모으려고 생활하고 있는데, 나만 이웃에게 봉사하는 삶을 영위하는 것은 오히려 ‘상식 없는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을 여지가 크다. 한마디로 말하여 개인적 차원에서 참된 인간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노력은 가족과 몇몇 친구의 범위를 넘어서면 거의 실현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모든 인간의 관계가 이처럼 상품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너와 나 사이를 잇고자 하는 노력이 소기의 성과를 얻으려면, 경쟁 만능 사회의 이기주의적 풍토를 개선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오로지 개인의 운명을 개인이 책임져야 하며,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은 비참한 운명을 감수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가 여러 유형의 불행한 개인들에게 각자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회 보장 제도를 마련해 준다면, 사회의 분위기를 일신할 수 있을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생존만을 도모하며 살아 왔던 많은 사람들의 눈에 ‘사회의 고마움’을 일깨워 줄 수 있을 것이며, ‘사회를 위한 봉사’의 정신을 격려하여 줄 것이다. 소외된 계층을 향한 정부의 적극적인 복지 정책은 세상에는 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해 주는 한 계기가 될 것이다.




2. 공동체 운동으로 소외된 삶을 극복해 나가자

  현대인들은 익명성의 시대를 살고 있다.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오늘날 비슷비슷한 사람들과 비슷비슷한 물건 속에서 늘 똑같은 생활을 반복함으로써 서로가 어떤 친밀한 관계도 맺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익명성과 인간 관계의 소외는 자본주의라는 삶의 조건에서 기인한다. 즉 비슷비슷한 생활을 하면서 오로지 자기에게 필요한 물건에만 관심을 가지는 물질주의가 서로를 소외시킨다. 물질주의에 기인한 익명성은 우리 모두의 삶을 파편화함으로써 현대인들이 저마다의 생활에만 몰두하는 개인주의를 낳았다.

  이런 인간 소외의 현실에서도 참다운 인간 관계를 형성하려는 노력이 있다. 고아원이나 양로원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나, 공동체를 만들어 나병 환자나 정신 박약아를 돌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노력은 여우와 어린 왕자의 이별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애틋한 인간성을 회복하고,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긍정적인 세계관을 기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자기가 길들인 것, 즉 자기가 개인적으로 애정을 가지는 것에 대한 책임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나아가 한 개인의 헌신적인 노력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저마다 그것을 본받는다면, 그 노력은 이 사회를 사랑이 넘치는 사회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성 회복을 위한 개인적 차원의 노력은, 그것이 개인적이기 때문에 필연적인 한계가 있다. 어린 왕자는 자기가 길들인 꽃에만 관심을 가지고 다른 수많은 꽃들은 무시하였다. 마찬가지로 개인적 차원에서의 노력은 자기 주변만 돌보기 쉽고, 그것은 다른 수많은 이웃을 도외시하고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기 쉽다. 현대 사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가족 이기주의나 혈연?지연?학연에 의해 끼리끼리만 뭉치는 현상이 이를 잘 보여 준다. 따라서 개인적 차원의 노력은 사회적 조건으로 인해서 더 큰 소외와 더 큰 집단 이기주의를 낳을 수도 있다.

  현대 사회에서 파괴된 인간 관계를 복구하고자 한다면, 개인적인 차원의 노력뿐만 아니라 집단적인 차원의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집단적인 노력에는 개인들의 결합을 통한 ‘집단적 해결 방안’과 국가에 의한 ‘위로부터의 해결 방안’이 있다. 여기서 아무래도 중요한 것은 집단적 해결 방안이 아닌가 한다. 예를 들면 현대 사회에서 개인들을 상품 소비자로 전락시키는 광고에 대하여 감시하고 시정하는 소비자 운동이나 매체 감시 운동, 진정한 남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여성 운동, 그리고 시민 사회에 ‘공동선’을 확립하기 위한 시민 운동 등이 그것이다. 이들 각 영역이 따로따로 운동을 펼친다면, 그것은 집단 이기주의로 치달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공동선’ 내지 ‘삶의 질’ 회복을 위한 공동 목표를 세우고 서로 연대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제반 영역에 참여하는 참여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면, 이 모든 영역들이 협력하여 인간 관계를 회복하는 참다운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벌이는 ‘위로부터의 해결’도 중요하다. 먼저, 국가는 각종 경제 정책 결정 과정에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참여 민주주의를 구현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 국민 스스로가 서로에 대하여 책임지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건전한 경쟁을 도모하는 복지 사회를 실현해야 한다. 경쟁에서 한 번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가 되는 사회는 그만큼 인간 관계를 각박하게 만든다.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함으로써 누구나 자신의 능력에 맞는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게 한다면, 현대 사회는 참다운 공동체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3.

  ‘어린 왕자’에서 여우와 어린 왕자가 서로 사귀기 전에는, 여우에게는 어린 왕자가 “다른 애들 수만 명과 조금도 다름없는 사내애에 지나지 않으며”, 어린 왕자에게도 여우는 “다른 수만 마리의 여우와 똑같게” 보였다. 즉 서로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따라서 서로의 인격이나 개성에 대한 존중도 없었다. 이렇게 참다운 인간 관계가 형성되지 못하고 개인이 익명적 존재로 방치되어 있는 상태를 인간 소외라고 한다.

  이러한 인간 소외는 현대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병폐로서, 현대 사회의 특징인 관료적 조직과 상품화에서 주로 기인한다. 현대 사회는 효율적인 생산과 일 처리를 위해 대부분 관료적 조직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개인이 거대한 조직의 한 부속품으로 전락한다. 그래서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사람들은 이제 무얼 알 시간조차 없어지고 말았어.”라고 말하듯이, 거대하게 조직화된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처리하기에 바쁘며 따라서 남에 대해 관심을 쏟지 못한다. 또 현대 사회에서는 사물뿐만 아니라 인간조차도 대부분 상품화된다. 따라서 상품적 가치, 즉 화폐적 가치에 의해서 모든 것을 평가한다. ‘어린 왕자’에서 사냥꾼이 여우를 잡고, 여우에게는 밀밭이 소용없다는 것도 모두 실질적이고 효용성 있는 가치만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을 평가할 때도 고유한 인격이나 개성보다는 소유 재산과 같은 물질적 가치가 더 중시된다. 이러한 물질 만능주의 풍토에서는 참다운 인간 관계가 형성될 수 없다.

  ‘어린 왕자’에서 여우와 어린 왕자는 인간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참을성”을 갖고서 “매일 조금씩 더 가까이 앉기”도 하며, 또 만날 시간을 미리 정하는 등 “무언가를 정해 놓음”으로써 그것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동안에 서로를 그리워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이 둘의 관계는 “서로를 아쉬워하고”. 서로를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로 인정해 주는 특별한 관계로 발전하였다. 즉 이 둘은 정신적, 정서적으로 관계가 돈독해지면서 아주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 노력은 많은 한계를 갖고 있다. 개인적 노력으로 주변의 몇 사람과 친분을 쌓아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개인적인 힘만으로 이러한 관계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키기는 힘들다. 그리고 개인적 노력으로 주변의 사람들과 정신적, 정서적으로 인간적 관계를 형성했다고 할지라도 이 관계가 지속되기는 어렵다. 왜냐 하면 사회적, 물질적 조건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러한 정신적, 정서적 유대 관계는 쉽게 약화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거대한 관료 조직에서 상사와 부하의 개인적인 친분은 조직의 논리에 의해서 묻혀질 수밖에 없다. 상사는 조직의 요구에 따라서 부하에게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기에 상사와 부하의 관계는 명령과 복종이라는 삭막한 관계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사회적 조건과 환경의 산물이며, 인간 관계도 사회적 조건과 환경에 의해서 규정된다. 따라서 인간 소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 소외를 발생시킨 관료 조직화와 상품화라는 사회적 조건을 변화시켜야 한다. 조직구조에 있어서 기존의 피라미드적인 명령 체계 대신에 개인이 자율성과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면 개인들의 창조적 아이디어를 잘 반영할 수 있는 팀 모형 제도를 들 수 있다. 여기에서는 여러 분야에 관련된 작업자들이 한 팀을 이루어서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면서 의사를 결정한다. 이렇게 창조성과 자율성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인격과 개성을 존중해 주는 토대가 마련되며 나아가 참다운 인간 관계도 형성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을 상품화하여 인간마저도 물질적 가치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사회적 풍토도 지양되어야 한다. 이제는 개인이 갖고 있는 고유한 개성이나 인격을 그 자체로서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조건과 풍토가 마련될 때, 참다운 인간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개인적 노력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4.

  대량 생산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사회는 수많은 개인들로 하여금 익명적인 존재로 전락하게 하였다. ‘어린 왕자’에서는 여우와 어린 왕자의 대화를 통하여, 이러한 현대사회의 역기능적 측면을 함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현상을 초래한 원인과 그것의 치유 방안까지도 나타나 있다. 이제 이 작품에 나타난 이러한 함축적 의미를 살펴보면서, 조직화된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노력이 어떤 의의와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또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해 보기로 한다.

  현대 대중 사회에서 개인의 익명성을 생겨나게 하는 사회적 조건은, 여우의 “사람들은 이제  무얼 알 시간조차 없어지고 말았어. 사람들은 다 만들어 놓은 물건을 가게에서 산단 말이야. 그렇지만 친구는 파는 데가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게 되었단다.”라는 말에서 대중 사회의 상품화 현상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대중사회는 대량 생산을 특징으로 하는데, 상품을 대량 생산하면 상품은 획일화될 수밖에 없으며, 획일화된 대량의 상품이 나도는 세상에서는 인간도 획일화되고 만다. 따라서, 개성을 상실한 인간이 익명성을 지니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획일화된 사회에서 개인의 정서적 유대 관계 형성을 위한 노력은 비록 미약하나마 상실된 인간성을 회복하여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을 수 있게 할 것이다. 설혹 개인간의 이러한 노력이 현대 사회라는 거대 구조 앞에서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밖에 안 된다고 할지라도 현대 사회가 나아가야 할 이념적 지표 역할을 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정서적 유대 관계 형성을 위한 개인의 노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현대사회는 거대한 사회 조직 내에서 표준적이고 획일적인 통제가 이루어지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몇몇 개인이 열성적으로 정서적 유대 관계의 형성을 주장하고 또 그것을 실천해 나간다 해도 그것은 소집단 내부의 관계에 국한되기 십상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거대 사회의 대중들로부터 오히려 소외당하게 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적 노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는 우선 개인적 노력을 동아리 활동이나 사회적 캠페인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이것은 인간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환경 보전 캠페인이 사회적인 공감대 속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듯이, 인간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적 캠페인도 산업 사회의 인간 소외 현상을 경험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정신 문화를 현대 사회에 적합성을 유지하도록 계승, 발전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의 전통 문화는 ‘정(情)’의 문화라 할 수 있을 만큼 조상들은 인정의 교류를 중요시해 왔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의 모래알과 같이 개성을 잃고 기계의 부품과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는데 이러한 현상이 사회의 발달 단계상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전통적인 정의 문화를 발전적으로 계승하지 못한 탓도 있다고 본다. 전통적인 정의 문화를 현대 사회에 적합성을 지닐 수 있도록 발전적으로 계승해 나간다면 개인간의 인간적 유대 관계의 형성은 사회적 차원의 것으로 승화될 것이다.

  사회는 개인을 단위로 하여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비록 그 한계가 있다고는 하나, 현대 사회의 인간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개인적 자각과 노력이 필요하다. 아울러 이러한 개인적 자각, 노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병행, 실시해 나간다면 현대인의 익명성을 극복하는 데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