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 논술 자료함
공공연한 비밀조직
강미노 (이방인 논객) 씨네 21 칼럼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19세기 중반,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내전에서 패배한 남부의 백인 장교 6명은 비밀조직을 결성했다. 이 조직은 남부지역에서 많은 회원을 얻어 세력을 확장했다. 그리고 남북전쟁 이후에 시민권을 부여받은 흑인들을 해치는 전통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투표권 등을 가지게 된 흑인들을 위협, 납치, 폭행, 살인하는 등 온갖 폭력을 휘둘렀다. 이들의 테러 대상에는 흑인뿐만 아니라 북부군에 협력한 ‘친북파’ 여기서 더 나아가 시민권운동자, 유대인, 공산주의자까지 다양했다.
독자들이 이미 짐작했겠지만 이 비밀결사는 바로 미국의 쿠 클럭스 클랜(Ku Klux Klan)이다. ‘쿠 클럭스’는 그리스어의 ‘퀴클러스’ 즉 ‘원’(圓)이라는 뜻에서 유래하며, 원(circle)은 비밀결사를 의미한다.
KKK 구성원들은 신분을 감춘 채 암호를 사용하고 비밀회의를 진행했으며,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지지와 당국 관계자들의 방관 아래 흰 제복과 뾰족한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어두운 밤거리에서 공격의 대상을 찾아내 이들을 폭행하곤 했다.
쿠 클럭스 클랜은 18세기 말에 이미 해체됐지만, 20세기 초에 재건설 시도가 있었다. 다양한 소문과 설에 의해 전해진 것과 달리 이 테러단의 활동은 처음에만 극단적으로 폭력적이었으며, 이후에는 사람들을 위협하기만 했을 뿐 직접적으로 해친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폭력적인 전과는 폭력을 가하지 않더라도 피해자들을 떨게 만들었으며, 옹호자들에게는 큰 지지를 받는 효과를 낳았다.
한국에도 비밀조직은 있다.
그 역사는 훨씬 더 짧지만 진상규명위원회에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처럼 다양한 폭력 기록을 보면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흰 제복 대신에 검은 양복, 모자 대신 선글라스(?)를 끼고 다녔지만, 나타나기만 하면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던 것이 비슷하겠다.
물론 국가정보원이 1961년에 설립된 이래 많이 바뀌었고 개혁돼서 KKK와 비교할 만한 테러단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최근까지 끊이지 않는 사건들을 보면 국정원의 활동은 아직도 위협의 수준에 머물고 있고 정상적인 정부기관과는 사뭇 다르다.
김종길 교수가 심문을 받다가 옥상에서 ‘떨어져서’ 죽은 남산 분청사는 최근에 세계의 배낭여행객을 잠재워주는 국제 유스호스텔로,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갇혀 있었고 박종철씨가 고문받다가 죽은 남영동 대공분실은 인권센터로, 이문동 안기부 종합청사는 한국종합예술학교로 탈바꿈한 것만 보면 민주화가 됨에 따라 국정원에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빨갱이’나 ‘간첩’들을 쫓기보다 산업스파이를 잡는 데 집중하라는 목소리가 커져, 안기부는 어쩔 수 없이 중앙정보부에서 국가안전기획부로 결국 국가정보원으로 개명해서 정보시대에 맞춰서 “선진 정보기관”이 되려고 한다.
하지만 몇년 전까지만 해도 국정원 홈페이지에 제시된 간첩요령은 ‘생리대나 화장사용에 서툰 여자’, ‘북한 용어를 쓰는 사람’, ‘의심할 만한 팩스를 보내는 사람’ 등을 제시했지만, 최근에는 인터넷, KTX, 전자편지, PC방, 프록시서버 등을 ‘수상하게’ 이용하는 사람을 간첩으로 의심하라 권고한다.
기술적인 면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용어도 혁신적으로 개혁되었다. “외국인 신분으로 입국했음에도 우리말을 능숙히 구사하며 한국의 정치·군사에 관심이 많고, 진보지식인, 학원·노동운동권 세력과 접촉을 시도하는 사람”에 대한 묘사가 대체없이 삭제되고, ‘자본주의 부정’을 ‘자유민주주의 부정’으로 대체하고, ‘반미시위 주변을 배회’하거나 ‘우리민족끼리를 유난히 강조하는 사람’ 등등을 추가해 간첩식별 용어를 업데이트했다. 최근 ‘간첩단’ 사건에 대한 수구세력들의 반응도 역시 이런 국정원의 논리선상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KKK의 원(圓)과 국정원의 ‘院’이 다른 만큼 두 비밀조직이 다르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들을 지지하고 이용하기도 하는 일정한 이해집단, 이들이 자행하는 인권유린, 공포조작, 자의성, 비관용성 등에 공통점이 존재하는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노력은 보이지만 아직까지는 국정원의 개혁은 역부족이다.
국가보안법은 국정원의 핵심 상징이며 실질 무기이다. 국보법부터 걷어야 국정원의 병든 부위를 잘라낼 수 있다.
2006.12.01 출전 씨네21 칼럼 글 : 강미노 (이방인 논객)
강미노 (이방인 논객) 씨네 21 칼럼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19세기 중반,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내전에서 패배한 남부의 백인 장교 6명은 비밀조직을 결성했다. 이 조직은 남부지역에서 많은 회원을 얻어 세력을 확장했다. 그리고 남북전쟁 이후에 시민권을 부여받은 흑인들을 해치는 전통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투표권 등을 가지게 된 흑인들을 위협, 납치, 폭행, 살인하는 등 온갖 폭력을 휘둘렀다. 이들의 테러 대상에는 흑인뿐만 아니라 북부군에 협력한 ‘친북파’ 여기서 더 나아가 시민권운동자, 유대인, 공산주의자까지 다양했다.
독자들이 이미 짐작했겠지만 이 비밀결사는 바로 미국의 쿠 클럭스 클랜(Ku Klux Klan)이다. ‘쿠 클럭스’는 그리스어의 ‘퀴클러스’ 즉 ‘원’(圓)이라는 뜻에서 유래하며, 원(circle)은 비밀결사를 의미한다.
KKK 구성원들은 신분을 감춘 채 암호를 사용하고 비밀회의를 진행했으며,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지지와 당국 관계자들의 방관 아래 흰 제복과 뾰족한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어두운 밤거리에서 공격의 대상을 찾아내 이들을 폭행하곤 했다.
쿠 클럭스 클랜은 18세기 말에 이미 해체됐지만, 20세기 초에 재건설 시도가 있었다. 다양한 소문과 설에 의해 전해진 것과 달리 이 테러단의 활동은 처음에만 극단적으로 폭력적이었으며, 이후에는 사람들을 위협하기만 했을 뿐 직접적으로 해친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폭력적인 전과는 폭력을 가하지 않더라도 피해자들을 떨게 만들었으며, 옹호자들에게는 큰 지지를 받는 효과를 낳았다.
한국에도 비밀조직은 있다.
그 역사는 훨씬 더 짧지만 진상규명위원회에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처럼 다양한 폭력 기록을 보면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흰 제복 대신에 검은 양복, 모자 대신 선글라스(?)를 끼고 다녔지만, 나타나기만 하면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던 것이 비슷하겠다.
물론 국가정보원이 1961년에 설립된 이래 많이 바뀌었고 개혁돼서 KKK와 비교할 만한 테러단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최근까지 끊이지 않는 사건들을 보면 국정원의 활동은 아직도 위협의 수준에 머물고 있고 정상적인 정부기관과는 사뭇 다르다.
김종길 교수가 심문을 받다가 옥상에서 ‘떨어져서’ 죽은 남산 분청사는 최근에 세계의 배낭여행객을 잠재워주는 국제 유스호스텔로,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갇혀 있었고 박종철씨가 고문받다가 죽은 남영동 대공분실은 인권센터로, 이문동 안기부 종합청사는 한국종합예술학교로 탈바꿈한 것만 보면 민주화가 됨에 따라 국정원에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빨갱이’나 ‘간첩’들을 쫓기보다 산업스파이를 잡는 데 집중하라는 목소리가 커져, 안기부는 어쩔 수 없이 중앙정보부에서 국가안전기획부로 결국 국가정보원으로 개명해서 정보시대에 맞춰서 “선진 정보기관”이 되려고 한다.
하지만 몇년 전까지만 해도 국정원 홈페이지에 제시된 간첩요령은 ‘생리대나 화장사용에 서툰 여자’, ‘북한 용어를 쓰는 사람’, ‘의심할 만한 팩스를 보내는 사람’ 등을 제시했지만, 최근에는 인터넷, KTX, 전자편지, PC방, 프록시서버 등을 ‘수상하게’ 이용하는 사람을 간첩으로 의심하라 권고한다.
기술적인 면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용어도 혁신적으로 개혁되었다. “외국인 신분으로 입국했음에도 우리말을 능숙히 구사하며 한국의 정치·군사에 관심이 많고, 진보지식인, 학원·노동운동권 세력과 접촉을 시도하는 사람”에 대한 묘사가 대체없이 삭제되고, ‘자본주의 부정’을 ‘자유민주주의 부정’으로 대체하고, ‘반미시위 주변을 배회’하거나 ‘우리민족끼리를 유난히 강조하는 사람’ 등등을 추가해 간첩식별 용어를 업데이트했다. 최근 ‘간첩단’ 사건에 대한 수구세력들의 반응도 역시 이런 국정원의 논리선상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KKK의 원(圓)과 국정원의 ‘院’이 다른 만큼 두 비밀조직이 다르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들을 지지하고 이용하기도 하는 일정한 이해집단, 이들이 자행하는 인권유린, 공포조작, 자의성, 비관용성 등에 공통점이 존재하는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노력은 보이지만 아직까지는 국정원의 개혁은 역부족이다.
국가보안법은 국정원의 핵심 상징이며 실질 무기이다. 국보법부터 걷어야 국정원의 병든 부위를 잘라낼 수 있다.
2006.12.01 출전 씨네21 칼럼 글 : 강미노 (이방인 논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