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 논술 자료함
2007년 1월 15일 달날 일어난 사건
성균관대 수학자 김명호 교수가 로빈 훗이 즐겨 사용하던 석궁을
사법부 심장이라 불리는 고법부장판사에게 쏜 사건
우리는 이 사건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아래 세 편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이 무엇인지
이 사건을 통해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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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주화 20년과 ‘석궁 테러’ (김철웅 칼럼)
이른바 87년체제의 극복 논의가 활발하다. 금년이 1987년 민주화로부터 만 20년째인 해란 사실도 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도 이 논의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는데 일조했다. 87년체제의 극복을 놓고 거론되는 것은 가령 시장만능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확대, 복지·분배문제 그리고 이를 둘러싼 보수·진보 간의 갈등 등 ‘거대담론’에 속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돌아봐야 할 것이 이런 거대담론의 영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민주화와 진보의 증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동시에 민주화가 아직 먼 분야도 널려 있다. 최근 있었던 한 사건은 이 20년이란 시간을 무색케 할만큼 충격적이다.
지난 주 11년 전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던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 김명호씨(50)가 소송에서 패소한 뒤 담당 판사에게 석궁을 쏘아 상해를 입힌 사건이 발생했다. 김씨는 95년 성대 입시 수학문제의 오류를 지적했으나 오히려 해교행위 등을 이유로 징계를 당했고 이어 96년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다. 이를 대학측의 보복이라며 법정투쟁을 시작한 그는 뉴질랜드와 미국에 살다 2005년 귀국해 다시 교수지위 확인 소송을 냈으나 1·2심에서 잇따라 패소하자 이런 범행을 저질렀다.
-‘패거리주의’사회에 만연-
사건 발생 후 경향신문은 사설을 통해 사법권의 침해를 우려하고 이 사건이 판결에 승복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분명한 원칙에서였다. 그러나 김씨가 ‘석궁 테러’를 저지르기까지 저간의 사정들이 알려지면서 동정 여론이 크게 일기 시작했다. 인터넷에는 노골적으로 김씨를 옹호하고 교수사회의 위선과 사법부의 이중 잣대를 비판하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김씨는 살인미수란 죄목으로 돌아오기 힘든 강을 건너버렸다. 하지만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패거리주의’ ‘크로니즘(연고주의)’에 대한 성찰의 이유를 제공했다고 보고 싶다. 패거리주의는 사건의 곳곳에서 작동한 흔적이 보인다. 입시문제가 생기기 전만 해도 김씨는 부교수 승진 및 차기 학과장이 유력한 수학자였다. 그러나 다른 교수의 출제 오류를 지적하면서 그의 운명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는 동료들로부터 ‘배제’되기 시작했다. 교육자적 자질이 부족한 교수로 낙인찍혔다. 당시 교수들은 ‘한번 찍히면 헤어나기 어렵다. 김씨처럼 도태되지 않으려면 침묵이 최선이다’란 심리에 빠지지 않았을까 싶다. 재판부의 의견 요청을 받은 대한수학회와 고등과학원에서도 이런 패거리의식은 작용했을 듯하다. 이들은 민감한 사안이라며 답변을 회피했다.
유독 성대 교수들만 똘똘 뭉쳐 동료를 낙오시켰다고 볼 수는 없다. 다른 대학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개연성이 있다. 이를테면 자신의 학문적 신념을 지키려는 동료에게 ‘몸 담고 있는 학교에 폐를 끼친다’거나 ‘감히 선배 교수의 명성에 누를 끼쳤다’고 비난하는 식이다. 얼마 전엔 김씨와 유사한 경로를 밟아온 서울 미대 김민수 교수가 7년만에 복직 판결을 받았다. 또 70년대 유신 정권을 비판한 논문을 쓴 재임용 탈락 교수가 법원의 판결로 30년만에 명예를 회복한 경우도 있다. 현재 진행중인 교수 재임용 소송은 120건 쯤 된다고 한다. 이들 중 누군가는 강고한 패거리주의의 벽 앞에서 고통을 겪고 있을지 모른다.
-법조·정계도 고질적 연고주의-
석궁 사건으로 교수사회의 패거리주의가 도마에 올랐을 뿐 법조계는 물론 어느 분야도 이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지역주의야말로 고질적인 패거리주의의 전형이다.
러시아에서 마피아가 번성하게 된 이유는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급속히 이행하면서 사익만을 좇는 불법조직들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국가는 이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할 뿐더러 일부는 권력과 결탁해 청부살인 같은 범죄를 저지른다는 혐의를 받기도 한다. 마피아는 나와 나의 집단의 일이 아니면 철저히 무관심하며 피동적인 생리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라면 법과 도덕, 정의는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다. 이 마피아의 문화는 철저한 연고주의가 바탕이다. 석궁 사건을 접하면서 필자에게 떠오른 것은 엉뚱하게도 마피아와 크로니즘이란 단어였다.
〈김철웅/ 논설위원〉 경향신문 2007년 0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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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악과 법, '석궁 사건'에 대한 상상
이찬수 전 강남대 교수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석궁 피습'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23일에도 전국교수노동조합은 토론회를 열고 "(이번 사건은) 재임용제도를 악용해 온 대학의 몰지각한 행태와 이를 방치한 교육부, 사법부 등 사회 권력이 한 개인에게 가한 폭력의 결과"라고 성토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불상에 절을 했다'는 이유로 재임용을 거부당한 이찬수 전 강남대 교수의 글을 받았다. 다음은 기고문 전문이다. <편집자 주>
성균관대 김명호 교수가 재임용에서 탈락한 뒤 10년을 전전긍긍하다가 자신의 교수지위보전신청을 기각한 부장판사에게 석궁을 쏴 부상을 입힌 뒤 구속 수감되었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은 김 교수가 가방 속에 노끈과 회칼도 소지하고 있었다는 식의, 구독률을 의식한 자극적인 문구로 지면을 장식했고, 독자는 아무리 그래도 사람에게 화살을 겨누다니 말이 되느냐며 이야깃거리로 삼았다.
'상해 가한 행위'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 하지만...
물론 사람을 살상한 행위에 대한 대가는 어떻게든 치러야 한다. 하지만 그 사건을 대하는 순간 김 교수와 비슷한 경험을 해오고 있는 나로서는 저간의 상황에 대한 전체 그림이 대번에 그려졌다. 이 가슴 아픈 일 역시 근본적인 이유는 가려진 채, 자기 일이 아니다 싶으면 무관심 내지 가십거리 정도로 삼거나, 권력과 금력 눈치를 보면서 한 사람이 피해를 뒤집어쓰면 내가 안전해질 것이라는 '속죄양 논리'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변의 허상이어야 할 악을 실상으로 만들어주는 대중적 심리, 사회적 논리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김 교수, 대학, 법원 사이에 벌어진 지난 십여 년의 상황을 일일이 다 알 수는 없지만 상상은 생생하게 되었다. 상상의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가 보자.
일단 드러난 현상은 이렇다. 1995년 김 교수가 수학과목 입시 문제의 오류를 지적했고, 그것 때문에 논쟁이 오갔다. 다음 해 김 교수는 교육자적 자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승진이 거부되고 재임용에서 탈락됐다. 김 교수는 입시 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데 대한 학교측의 보복이라며 불복,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도 학자적 양심과 학문적 능력은 있지만 교육자적 자질이 부족한 이에 대한 재임용 탈락은 정당한 조치라며 학교 손을 들어주었다. 그 뒤 김 교수는 2005년 교수지위보전신청을 내면서 항소했지만 법원은 이를 다시 기각했다. 그런 뒤 '석궁 사건'이 발생했다.
분명히 김 교수와 학교 사이에 벌어진 입시 문제 오류 논쟁을 해결하는 과정에 학교나 동료 교수 사이에 마찰이 생겼을 것이다. 일단 오류가 있었다는 것은 법원도 인정한 부분이었는데, 정말 거기서 출발한 사안이었다면 그 범위 안에서만 해결하면 된다.
석궁 사건에 대한 상상
하지만, 조용히 넘어가도 될 일을 왜 들쑤셔서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킬 필요까지 있겠냐며 학교측에서는 탐탁치 않게 여겼을 것이다. 물론 나의 상상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 학교 내 구성원들 대부분은 그러한 논쟁에 개입하려 들지 않는다. 남의 암병보다 나의 감기를 더 심각하게 느끼는 근시안적 이기주의 때문이다. 같은 과 동료 교수들도 괜히 끼어들지 말자며 몸을 사렸을 것이다.
자기 일이 아니어서 귀찮기도 했겠거니와, 김 교수의 지적이 옳았더라도 공연히 학교 측에 밉보여 언젠간 무슨 불이익을 당하게 되지나 않을까 침묵하는 게 대부분이다. 아니면 힘의 논리에 따라 어떤 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학교 편을 들 수도 있다. 아마도 소수만이 김 교수 편을 들었을 것이다. 김 교수는 그들에게서 위로를 받았겠으나 역시 소수였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도 묻혀버렸을 것이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상처를 더 크게 받았을 것이다.
그러자 김 교수는 감정이 격해지면서 더 과격한 언행을 했을 수도 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치달으면 학교는 점차 교육자로서의 자질 운운하며 감정 섞인 인간적 흠집내기까지 시도했을 공산이 크다. 김 교수가 학교 밖 법정에 호소한 이유인 셈이다. 학교 안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법정소송에 이르면 학교는 사건의 근본 원인은 제쳐놓은 채 힘의 논리에 편승하거나 굴복한 다수 학내 구성원들을 동원해 학교에 유리한 각종 자료들을 만들기 마련이다.
절박한 김 교수는 그 과정을 법원에서 정당하게 판결해줄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법원 역시 비슷한 과정 속에서 판결을 준비했을 것이다. 하루에도 수 십 차례 이상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하는 부산한 법관의 입장에서는 그 엄청난 자료집들을 다 읽어볼 새도 없다. 개인에게는 전 인생이 걸린 문제였지만 법관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격무에 시달리게 하는 피곤한 일거리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을 수 있다.
당연히 법관은 소장에 적힌 사건의 실상을 꼼꼼하게 읽고 판단하기보다는 양방간의 힘의 균형을 재보고 여론을 적당히 봐가며 판례대로 판결하려는 마음이 앞섰을 것이다. 어쩌면 결론을 미리 내고서 소장을 적절히 취합해 판결문을 써나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전 인생을 걸고 자료를 정리해 소장을 제출한 뒤 정당하게 판결해주길 바라던 억울한 이의 마음은 그곳에 반영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위협용이었든 어떻든 석궁을 준비해 판사를 찾아가게 만든 계기가 된 게 아니었을까.
'악'의 문제에 대해
물론 위의 글은 상상에 의한 구성물이되, 나의 비슷한 체험에 근거한 상상적 구성물이다. 교수 사회에서 연구 내지 교육적 성과에 대한 압력은 이전에 비해 급격하게 가중되고 있지만, 정말 결정적인 결격사유가 아니고서는 재임용 탈락까지 가지는 않는다. 같은 대학 안에서 김 교수보다 '교육자적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이 교수로서의 신분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교육자적 자질이라는 추상적이고 내밀한 개념만으로 재임용 거부의 결정적인 사유를 삼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 것은 사실상 재임용을 거부하기로 작정한 뒤 그 거부를 정당화시켜주는 자의적 '수단' 정도에 불과할 때가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상황의 연장선에서 재임용 거부의 '원인'이기보다는 '수단'이었던 항목을 '원인'으로 재둔갑시켜 복잡다단한 인간의 내면까지도 재단하는 법원의 '월권'이 지속된다.
이즈음 내가 말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는 이른바 '악'의 문제이다. 김 교수에게 학교나 법원은 일종의 악의 세력으로 비쳤을 텐데, 이런 사건 역시 악이라는 것이 어떻게 구체화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다시 사건의 근원으로 가보자.
분명히 입시 문제가 잘못 출제되었다는 것은 누군가의 실수였을 것이다. 실수는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다. 따라서 실수를 실수로 인정하면 문제는 비교적 간단히 해결된다. 그러나 대학입시에서 실수가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대학의 명예가 실추되고 학과 내지 교수들의 역량이 의심받게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당사자들에게는 그것을 슬쩍 덮어버리고 싶은 마음도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바로 여기가 악이 힘을 얻게 되는 출발점이다. 만일 그럴 때 굳이 양심이니 정의니 하는 거창한 말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어릴 적 유치원에서 배운 아주 기본적인 자세 하나를 실천에 옮기면 세상에 악이라는 것은 이름조차 내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미안하다며 실수를 실수로 인정할 줄 아는 자세이다. 그것이 인간이, 그것도 교육기관의 정점인 대학이라는 곳에서 취해야 할 기본적인 자세이다.
'악'이 공룡처럼 커가는 과정
그런데 그렇기는커녕 실수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공연히 더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며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악의 세력을 키워가는 주인공이 된다. 이렇게 근본 원인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을 텐데도, 그 아무 것도 아닌 원인을 무마하려는 작은 욕심에 주변이 침묵하거나 자신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쪽 편을 들면서 그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엄청난 힘으로 키워나가는 것이다. 허상이어야 할 악이 공룡처럼 거대해지는 과정은 늘 이런 식이다.
나는 10년 동안 벌어진 김 교수 사건을 일일이 알지 못한다. 그 동안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 고스란히 재생시켜낼 수도 없다. 굳이 양비론적으로 판단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물론 김 교수에게도 문제는 있었을 것이고 여전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근본 원인을 다루어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면 무엇이 진실인지 그려진다. 지금 누군가에게 일시적으로 정당성이 확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실은 밝혀지게 되어 있다. 아니 어쩌면 지금 이미 밝혀져 있다. 우리가 그저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는 작은 일 하나하나를 솔직해야 다루고 행동해야 할 책임과 의무만이 부여되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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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학자는 왜 판사에게 석궁을 쏘았나
[사건의 재구성] 학문적 비도덕이 '석궁 습격' 불렀다
오마이뉴스 김연기(yeonki75) 기자
# 그날 저녁
15일 저녁 6시 30분 서울 송파구 한 아파트 입구. 전직 교수 김명호(50)씨가 1층 계단에 서서 박홍우 부장판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뒤 그 곳에 도착한 박 판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박홍우 판사, 그게 판결이야"라고 외치며 김씨는 박 판사를 향해 석궁을 쏘았다. (김씨는 실랑이를 벌이다 화살이 우발적으로 발사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그로부터 나흘 전
김씨가 성균관대학을 상대로 낸 교수지위 확인소송 항소심 판결이 있기 하루 전날인 지난 11일. 김씨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고등학교 동창 K씨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정신적 공황상태에 와 있다. 내일 판결이 잘못되면 이젠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 그래도 비리만은 반드시 밝히겠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꼭 이슈화를 시키겠다."
# 그날 이후
재판결과 법원은 김씨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언론을 통해 김씨는 판결에 불만을 품고 사건 담당 판사를 습격한 사상 초유의 법관 테러사건의 주인공으로 부각됐다. '석궁테러 살인미수 적용 (국민일보)' '두차례 답사… 살해의도 있었다(헤럴드경제)' '석궁테러… 사법권에 중대 도전(YTN)' '구멍뚫린 총기류 관리… 석궁 범행 잇따라(한국일보)'
불리한 판결에 테러? 아직도 이 사건은 '왜'가 부족하다
한 전직 교수의 양심고백과 10여 년에 걸친 진실투쟁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경찰에 붙잡힌 김씨는 지난 16일 "합법적인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최후의 선택을 했다"며 범행동기에 대해 또렷하게 얘기했다. 그는 또 "이렇게라도 해야 세상이 진실을 알아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다만 "박 판사를 위협하려 했을 뿐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왜'가 부족하다. 전직 교수가 단순히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했다고 판사를 테러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과연'이라는 의문이 남는다.
<오마이뉴스>는 이번 사건의 실체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김씨의 주변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김씨와 공적·사적으로 친분 관계가 있는 몇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이번 사건이 가져다 준 충격에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김씨가 '파국'으로 치닫기까지의 배경에 대해서는 담담하게 과거를 더듬어 나갔다.
당시 김씨 사건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민주화를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김세균 공동상임의장(서울대 정치학), 최영찬 사무처장(서울대 농생명과학), 김씨의 고교·대학동창인 김현광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계승혁 서울대 수학과 교수, 김영식씨(자영업), 여동생 김아무개씨의 증언을 토대로 이번 사건의 출발점인 김씨의 '재임용 탈락'에서부터 최근 '법관 테러'까지의 10여 년간의 시간을 되짚어 봤다.
취재 과정에 만난 김씨 주변 사람들은 먼저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해 불만을 터트렸다. 이들은 "언론이 이번 사건의 본질적 측면인 학계의 학문적 비도덕성과 사학의 재임용 제도의 허점에 대해서는 외면한 채 김씨가 저지른 행위에만 초점을 맞춰 선정적인 방향으로 사태를 몰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지적대로 이번 사건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언론에서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법관 테러'에 관한 문제와 또 하나는 '재임용 탈락'이다.
법관 테러는 앞으로 경찰조사를 통해 시비가 가려지겠지만, 재임용 탈락에 대해서는 누가 옳은지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다. 법관 테러의 직접적 원인이 된 재임용 탈락과 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놓고 당사자들의 주장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왜①] 이번 사건의 발단 '수학문제 오류'의 진실은
이번 사건을 불러온 재임용 탈락을 둘러싼 첫 번째 쟁점은 '수학 문제 오류' 논란이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선 김씨가 몸담고 있던 성균관대의 1995학년도 대학본고사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논란이 된 문제는 100점 만점에 15점이 배정된 '공간 벡터에 대한 증명' 문항이었다. 본고사 채점위원이던 김씨는 채점 도중 이 문제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고 장을병 당시 총장에게 이를 보고했다.
그러나 결과는 엉뚱하게 나타났다. 총장에게 보고하고 며칠이 지난 뒤 수학과 교수들이 그에 대해 징계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김씨는 그해 12월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정직 3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징계사유는 생뚱맞게도 '해교행위'와 '논문 부적격'이었다. 김씨는 이후 95년 부교수 승진 대상에서 제외된 데 이어 재임용에서도 탈락했다. 결국 그는 그해 10월 법원에 '부교수직 직위확인 소송'을 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국내외 수학계에서는 김씨가 지적한 오류에 대해 공감하는 의견이 많았다. 전국 44개 대학 수학과 교수 189명은 김씨의 정당성을 내세우며 '문항의 수학적인 오류'를 지적했다.
당시 김씨 변호에 앞장섰던 계승혁 교수는 "학교 측의 재임용 탈락을 납득할 수 없어 당시 수학과 교수들이 이를 반대하는 서명을 날인해 김씨의 '부교수 지위 확인' 청구소송을 맡고 있던 재판부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국제 수학저널인 <매스 인텔리전서>도 '정직의 대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김씨의 재임용 탈락의 부당성을 다뤘다.
이에 대해 성균관대 측은 "수학문제 오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 재임용에서 탈락했다는 것은 김씨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며 "재임용에서 탈락한 가장 큰 이유는 연구 실적이 미미한데다 교육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왜②] 진실감추기 급급한 대학, 유능한 수학자에 사망선고
그러나 김씨 주변 사람들은 학교 당국이 문제의 오류를 밝히기보다는 진실을 감추는 데 급급했다고 주장했다. 학교 측이 학계의 쓴소리에는 귀를 닫은 채 수험생의 문제제기가 없었다는 이유를 내세워 서둘러 이를 덮으려 했다는 것. 여기에 사법부는 "재임용 거부는 학교의 자유재량에 해당한다"며 김씨가 낸 소송에 대해 학교의 손을 들어줬다.
김세균 민교협 공동의장은 "논문 부적격 평가, 해교행위 등은 재임용에 탈락시키기 위한 재단 측의 방편일 뿐"이라며 "학교는 학문적 소신을 지킨 학자를 궁지로 내몰았고 법원은 교수의 연구실적을 무시한 채 재단에 재임용에 관한 전권을 보장하면서 한 유능한 수학자에게 사망선고를 내렸다"고 말했다.
이후 항소심에서도 잇따라 패소한 김씨는 진실규명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외국으로 떠났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인 2004년 말까지 뉴질랜드와 미국 등에서 무보수 연구교수로 지냈다.
그러나 그 곳에서도 재임용에 탈락한 수학자라는 '꼬리표'가 그를 따라다녔다. 연구 성과를 내더라도 이 때문에 인정을 받지 못했다. 결국 '재임용 탈락'의 멍에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헛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국내로 들어오게 됐다.
그리고 2005년 3월 김씨는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그해 1월 개정된 '사립학교법 및 교육공무원법'은 김씨가 용기를 낸 또다른 이유다. 개정 법률에 따르면 '재임용이 거부된 교원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재심청구나 법원소송 제기도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여기에 김민수 서울대 미대 교수가 재임용 거부처분취소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것도 김씨에겐 희망이었다. 민교협에 있으면서 두 사건 모두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최영찬 사무처장은 "김명호 교수의 경우는 김민수 교수보다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입시 오류 지적에 대한 보복으로 재임용을 거부당했다고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부족해 학교가 재량권을 남용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또 학교 측 손을 들어줬다.
김씨가 이에 굴복해 다시 항소했으나 법원은 지난 12일 이마저 기각했다. 당시 이 사건을 맡은 담당 판사가 이번에 피해를 입은 박홍우 부장판사다.
[왜③] 법원은 과연 사실관계에 근거해 판결했는가
이번 사건을 불러온 재임용 탈락을 둘러싼 또 하나의 쟁점은 법원 심리의 충실성이다. 즉, 법원이 학교측의 재임용 탈락 조치에 대해 얼마나 면밀하게 진위를 가리는 작업을 했느냐는 점이다. 취재 과정에 만난 김씨 주변 사람들과 김씨 본인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점도 바로 이 부분이다.
실제 김씨는 경찰에 체포된 직후 기자들 앞에서 범행 동기에 대해 "법문을 무시하는 판사에게 국민의 마지막 권리로서 국민저항권을 행사하려 했다"며 "법을 무시하는 판사들에 대해서 사법부가 얼마나 썩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김씨는 이번 사건을 저지르기 전 "법원이 사건의 사실관계에 대한 파악 없이 그저 과거 판례에 따라 판결을 내리고 있다"며 "아무리 근거 자료를 모아 제출하더라도 소송 당사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이런 재판에서는 쓸모없는 일"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김씨의 여동생도 "오빠가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것 역시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재판부의 판결문 요지를 살펴보면 "…재임용 심사 과정에 원고가 주장하는 부당한 사유가 있었다 하여도…임용 청약행위에 승낙을 할지 여부가 피고 법인(성균관대)의 전적인 자유재량에 맡겨진 이상 원고(김명호)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적고 있다. 즉 김씨의 재임용 탈락이 부당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재임용 여부는 학교의 재량권에 속한다'는 이유로 학교 측 손을 들어준 것이다.
김세균 민교협 공동의장은 "지난 1987년 대법원의 '대학 교수의 임기만료는 당연 퇴직이고, 임용은 학교의 자유재량행위'이라는 판례 이후 20년 동안 '재임용 소송은 자동패소'라는 등식이 성립됐다"며 법원 심리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김씨가 2005년에 낸 소송 1심 판결이나 항소심 판결은 대법원 판례를 적용하지 않고 사실관계를 따져 판단한 것이다"며 "김씨가 이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왜④] 학문적 비도덕이 '석궁 습격' 불러
우리 학계의 뿌리박힌 학문적 비도덕성에 대해서도 김씨 주변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학문적 양심에 따라 순조롭게 풀려야 할 사건이 '법관 테러'라는 비극으로 확대된 데는 우리 학계의 무관심과 비도덕적인 풍토가 한몫 했다는 것이다.
법원은 재판 과정에서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수학 문제 오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대한 수학회와 고등과학원에 검토를 요구했지만 두 단체는 "한 대학의 재임용과 관련된 문제는 검토할 강제성이 없다"는 내용의 회신을 보냈을 뿐이다.
이에 대해 김도한 대한수학회 회장은 당시의 결정에 대해서는 답변할 처지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 "당시 학회가 답변하지 않은 것은 입시 문제 논란에 개입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 이후 국민들은 '법관 테러' 충격에 휩싸였지만 민교협을 비롯한 학계에서는 '재임용 제도'의 부당성에 눈을 돌리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언론은 한 대학의 진실 가리기와 학계에 뿌리박힌 비도덕적 풍토는 도외시한 채 한 전직 교수의 '법관 테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김세균 민교협 상임의장은 "이번 사건은 강고한 우리 학계의 카르텔 앞에서 진실이 또 한번 작동을 멈춘 결과"라며 "학문의 양심에 따른 정직한 고백이 재임용 탈락의 이유로 작용하는 게 우리의 학문적 풍토라면 대학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이해하려면 핵심을 잘 짚어야 한다. 김씨가 법관을 습격한 것을 비난하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그 과정에서 한 대학의 진실 숨기기, 그리고 그들을 비호하는 사법부를 환기해야 한다.
'석궁 습격'이라는 극단으로 사태를 해결하려 했던 김씨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애초에 김씨가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제도적으로 이를 사전에 방지할 수는 없었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게 또 다른 김씨를 막는 방법이다.
성균관대 수학자 김명호 교수가 로빈 훗이 즐겨 사용하던 석궁을
사법부 심장이라 불리는 고법부장판사에게 쏜 사건
우리는 이 사건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아래 세 편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이 무엇인지
이 사건을 통해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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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주화 20년과 ‘석궁 테러’ (김철웅 칼럼)
이른바 87년체제의 극복 논의가 활발하다. 금년이 1987년 민주화로부터 만 20년째인 해란 사실도 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도 이 논의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는데 일조했다. 87년체제의 극복을 놓고 거론되는 것은 가령 시장만능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확대, 복지·분배문제 그리고 이를 둘러싼 보수·진보 간의 갈등 등 ‘거대담론’에 속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돌아봐야 할 것이 이런 거대담론의 영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민주화와 진보의 증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동시에 민주화가 아직 먼 분야도 널려 있다. 최근 있었던 한 사건은 이 20년이란 시간을 무색케 할만큼 충격적이다.
지난 주 11년 전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던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 김명호씨(50)가 소송에서 패소한 뒤 담당 판사에게 석궁을 쏘아 상해를 입힌 사건이 발생했다. 김씨는 95년 성대 입시 수학문제의 오류를 지적했으나 오히려 해교행위 등을 이유로 징계를 당했고 이어 96년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다. 이를 대학측의 보복이라며 법정투쟁을 시작한 그는 뉴질랜드와 미국에 살다 2005년 귀국해 다시 교수지위 확인 소송을 냈으나 1·2심에서 잇따라 패소하자 이런 범행을 저질렀다.
-‘패거리주의’사회에 만연-
사건 발생 후 경향신문은 사설을 통해 사법권의 침해를 우려하고 이 사건이 판결에 승복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분명한 원칙에서였다. 그러나 김씨가 ‘석궁 테러’를 저지르기까지 저간의 사정들이 알려지면서 동정 여론이 크게 일기 시작했다. 인터넷에는 노골적으로 김씨를 옹호하고 교수사회의 위선과 사법부의 이중 잣대를 비판하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김씨는 살인미수란 죄목으로 돌아오기 힘든 강을 건너버렸다. 하지만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패거리주의’ ‘크로니즘(연고주의)’에 대한 성찰의 이유를 제공했다고 보고 싶다. 패거리주의는 사건의 곳곳에서 작동한 흔적이 보인다. 입시문제가 생기기 전만 해도 김씨는 부교수 승진 및 차기 학과장이 유력한 수학자였다. 그러나 다른 교수의 출제 오류를 지적하면서 그의 운명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는 동료들로부터 ‘배제’되기 시작했다. 교육자적 자질이 부족한 교수로 낙인찍혔다. 당시 교수들은 ‘한번 찍히면 헤어나기 어렵다. 김씨처럼 도태되지 않으려면 침묵이 최선이다’란 심리에 빠지지 않았을까 싶다. 재판부의 의견 요청을 받은 대한수학회와 고등과학원에서도 이런 패거리의식은 작용했을 듯하다. 이들은 민감한 사안이라며 답변을 회피했다.
유독 성대 교수들만 똘똘 뭉쳐 동료를 낙오시켰다고 볼 수는 없다. 다른 대학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개연성이 있다. 이를테면 자신의 학문적 신념을 지키려는 동료에게 ‘몸 담고 있는 학교에 폐를 끼친다’거나 ‘감히 선배 교수의 명성에 누를 끼쳤다’고 비난하는 식이다. 얼마 전엔 김씨와 유사한 경로를 밟아온 서울 미대 김민수 교수가 7년만에 복직 판결을 받았다. 또 70년대 유신 정권을 비판한 논문을 쓴 재임용 탈락 교수가 법원의 판결로 30년만에 명예를 회복한 경우도 있다. 현재 진행중인 교수 재임용 소송은 120건 쯤 된다고 한다. 이들 중 누군가는 강고한 패거리주의의 벽 앞에서 고통을 겪고 있을지 모른다.
-법조·정계도 고질적 연고주의-
석궁 사건으로 교수사회의 패거리주의가 도마에 올랐을 뿐 법조계는 물론 어느 분야도 이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지역주의야말로 고질적인 패거리주의의 전형이다.
러시아에서 마피아가 번성하게 된 이유는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급속히 이행하면서 사익만을 좇는 불법조직들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국가는 이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할 뿐더러 일부는 권력과 결탁해 청부살인 같은 범죄를 저지른다는 혐의를 받기도 한다. 마피아는 나와 나의 집단의 일이 아니면 철저히 무관심하며 피동적인 생리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라면 법과 도덕, 정의는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다. 이 마피아의 문화는 철저한 연고주의가 바탕이다. 석궁 사건을 접하면서 필자에게 떠오른 것은 엉뚱하게도 마피아와 크로니즘이란 단어였다.
〈김철웅/ 논설위원〉 경향신문 2007년 0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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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악과 법, '석궁 사건'에 대한 상상
이찬수 전 강남대 교수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석궁 피습'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23일에도 전국교수노동조합은 토론회를 열고 "(이번 사건은) 재임용제도를 악용해 온 대학의 몰지각한 행태와 이를 방치한 교육부, 사법부 등 사회 권력이 한 개인에게 가한 폭력의 결과"라고 성토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불상에 절을 했다'는 이유로 재임용을 거부당한 이찬수 전 강남대 교수의 글을 받았다. 다음은 기고문 전문이다. <편집자 주>
성균관대 김명호 교수가 재임용에서 탈락한 뒤 10년을 전전긍긍하다가 자신의 교수지위보전신청을 기각한 부장판사에게 석궁을 쏴 부상을 입힌 뒤 구속 수감되었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은 김 교수가 가방 속에 노끈과 회칼도 소지하고 있었다는 식의, 구독률을 의식한 자극적인 문구로 지면을 장식했고, 독자는 아무리 그래도 사람에게 화살을 겨누다니 말이 되느냐며 이야깃거리로 삼았다.
'상해 가한 행위'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 하지만...
물론 사람을 살상한 행위에 대한 대가는 어떻게든 치러야 한다. 하지만 그 사건을 대하는 순간 김 교수와 비슷한 경험을 해오고 있는 나로서는 저간의 상황에 대한 전체 그림이 대번에 그려졌다. 이 가슴 아픈 일 역시 근본적인 이유는 가려진 채, 자기 일이 아니다 싶으면 무관심 내지 가십거리 정도로 삼거나, 권력과 금력 눈치를 보면서 한 사람이 피해를 뒤집어쓰면 내가 안전해질 것이라는 '속죄양 논리'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변의 허상이어야 할 악을 실상으로 만들어주는 대중적 심리, 사회적 논리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김 교수, 대학, 법원 사이에 벌어진 지난 십여 년의 상황을 일일이 다 알 수는 없지만 상상은 생생하게 되었다. 상상의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가 보자.
일단 드러난 현상은 이렇다. 1995년 김 교수가 수학과목 입시 문제의 오류를 지적했고, 그것 때문에 논쟁이 오갔다. 다음 해 김 교수는 교육자적 자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승진이 거부되고 재임용에서 탈락됐다. 김 교수는 입시 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데 대한 학교측의 보복이라며 불복,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도 학자적 양심과 학문적 능력은 있지만 교육자적 자질이 부족한 이에 대한 재임용 탈락은 정당한 조치라며 학교 손을 들어주었다. 그 뒤 김 교수는 2005년 교수지위보전신청을 내면서 항소했지만 법원은 이를 다시 기각했다. 그런 뒤 '석궁 사건'이 발생했다.
분명히 김 교수와 학교 사이에 벌어진 입시 문제 오류 논쟁을 해결하는 과정에 학교나 동료 교수 사이에 마찰이 생겼을 것이다. 일단 오류가 있었다는 것은 법원도 인정한 부분이었는데, 정말 거기서 출발한 사안이었다면 그 범위 안에서만 해결하면 된다.
석궁 사건에 대한 상상
하지만, 조용히 넘어가도 될 일을 왜 들쑤셔서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킬 필요까지 있겠냐며 학교측에서는 탐탁치 않게 여겼을 것이다. 물론 나의 상상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 학교 내 구성원들 대부분은 그러한 논쟁에 개입하려 들지 않는다. 남의 암병보다 나의 감기를 더 심각하게 느끼는 근시안적 이기주의 때문이다. 같은 과 동료 교수들도 괜히 끼어들지 말자며 몸을 사렸을 것이다.
자기 일이 아니어서 귀찮기도 했겠거니와, 김 교수의 지적이 옳았더라도 공연히 학교 측에 밉보여 언젠간 무슨 불이익을 당하게 되지나 않을까 침묵하는 게 대부분이다. 아니면 힘의 논리에 따라 어떤 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학교 편을 들 수도 있다. 아마도 소수만이 김 교수 편을 들었을 것이다. 김 교수는 그들에게서 위로를 받았겠으나 역시 소수였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도 묻혀버렸을 것이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상처를 더 크게 받았을 것이다.
그러자 김 교수는 감정이 격해지면서 더 과격한 언행을 했을 수도 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치달으면 학교는 점차 교육자로서의 자질 운운하며 감정 섞인 인간적 흠집내기까지 시도했을 공산이 크다. 김 교수가 학교 밖 법정에 호소한 이유인 셈이다. 학교 안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법정소송에 이르면 학교는 사건의 근본 원인은 제쳐놓은 채 힘의 논리에 편승하거나 굴복한 다수 학내 구성원들을 동원해 학교에 유리한 각종 자료들을 만들기 마련이다.
절박한 김 교수는 그 과정을 법원에서 정당하게 판결해줄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법원 역시 비슷한 과정 속에서 판결을 준비했을 것이다. 하루에도 수 십 차례 이상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하는 부산한 법관의 입장에서는 그 엄청난 자료집들을 다 읽어볼 새도 없다. 개인에게는 전 인생이 걸린 문제였지만 법관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격무에 시달리게 하는 피곤한 일거리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을 수 있다.
당연히 법관은 소장에 적힌 사건의 실상을 꼼꼼하게 읽고 판단하기보다는 양방간의 힘의 균형을 재보고 여론을 적당히 봐가며 판례대로 판결하려는 마음이 앞섰을 것이다. 어쩌면 결론을 미리 내고서 소장을 적절히 취합해 판결문을 써나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전 인생을 걸고 자료를 정리해 소장을 제출한 뒤 정당하게 판결해주길 바라던 억울한 이의 마음은 그곳에 반영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위협용이었든 어떻든 석궁을 준비해 판사를 찾아가게 만든 계기가 된 게 아니었을까.
'악'의 문제에 대해
물론 위의 글은 상상에 의한 구성물이되, 나의 비슷한 체험에 근거한 상상적 구성물이다. 교수 사회에서 연구 내지 교육적 성과에 대한 압력은 이전에 비해 급격하게 가중되고 있지만, 정말 결정적인 결격사유가 아니고서는 재임용 탈락까지 가지는 않는다. 같은 대학 안에서 김 교수보다 '교육자적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이 교수로서의 신분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교육자적 자질이라는 추상적이고 내밀한 개념만으로 재임용 거부의 결정적인 사유를 삼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 것은 사실상 재임용을 거부하기로 작정한 뒤 그 거부를 정당화시켜주는 자의적 '수단' 정도에 불과할 때가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상황의 연장선에서 재임용 거부의 '원인'이기보다는 '수단'이었던 항목을 '원인'으로 재둔갑시켜 복잡다단한 인간의 내면까지도 재단하는 법원의 '월권'이 지속된다.
이즈음 내가 말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는 이른바 '악'의 문제이다. 김 교수에게 학교나 법원은 일종의 악의 세력으로 비쳤을 텐데, 이런 사건 역시 악이라는 것이 어떻게 구체화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다시 사건의 근원으로 가보자.
분명히 입시 문제가 잘못 출제되었다는 것은 누군가의 실수였을 것이다. 실수는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다. 따라서 실수를 실수로 인정하면 문제는 비교적 간단히 해결된다. 그러나 대학입시에서 실수가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대학의 명예가 실추되고 학과 내지 교수들의 역량이 의심받게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당사자들에게는 그것을 슬쩍 덮어버리고 싶은 마음도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바로 여기가 악이 힘을 얻게 되는 출발점이다. 만일 그럴 때 굳이 양심이니 정의니 하는 거창한 말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어릴 적 유치원에서 배운 아주 기본적인 자세 하나를 실천에 옮기면 세상에 악이라는 것은 이름조차 내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미안하다며 실수를 실수로 인정할 줄 아는 자세이다. 그것이 인간이, 그것도 교육기관의 정점인 대학이라는 곳에서 취해야 할 기본적인 자세이다.
'악'이 공룡처럼 커가는 과정
그런데 그렇기는커녕 실수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공연히 더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며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악의 세력을 키워가는 주인공이 된다. 이렇게 근본 원인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을 텐데도, 그 아무 것도 아닌 원인을 무마하려는 작은 욕심에 주변이 침묵하거나 자신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쪽 편을 들면서 그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엄청난 힘으로 키워나가는 것이다. 허상이어야 할 악이 공룡처럼 거대해지는 과정은 늘 이런 식이다.
나는 10년 동안 벌어진 김 교수 사건을 일일이 알지 못한다. 그 동안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 고스란히 재생시켜낼 수도 없다. 굳이 양비론적으로 판단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물론 김 교수에게도 문제는 있었을 것이고 여전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근본 원인을 다루어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면 무엇이 진실인지 그려진다. 지금 누군가에게 일시적으로 정당성이 확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실은 밝혀지게 되어 있다. 아니 어쩌면 지금 이미 밝혀져 있다. 우리가 그저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는 작은 일 하나하나를 솔직해야 다루고 행동해야 할 책임과 의무만이 부여되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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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학자는 왜 판사에게 석궁을 쏘았나
[사건의 재구성] 학문적 비도덕이 '석궁 습격' 불렀다
오마이뉴스 김연기(yeonki75) 기자
# 그날 저녁
15일 저녁 6시 30분 서울 송파구 한 아파트 입구. 전직 교수 김명호(50)씨가 1층 계단에 서서 박홍우 부장판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뒤 그 곳에 도착한 박 판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박홍우 판사, 그게 판결이야"라고 외치며 김씨는 박 판사를 향해 석궁을 쏘았다. (김씨는 실랑이를 벌이다 화살이 우발적으로 발사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그로부터 나흘 전
김씨가 성균관대학을 상대로 낸 교수지위 확인소송 항소심 판결이 있기 하루 전날인 지난 11일. 김씨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고등학교 동창 K씨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정신적 공황상태에 와 있다. 내일 판결이 잘못되면 이젠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 그래도 비리만은 반드시 밝히겠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꼭 이슈화를 시키겠다."
# 그날 이후
재판결과 법원은 김씨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언론을 통해 김씨는 판결에 불만을 품고 사건 담당 판사를 습격한 사상 초유의 법관 테러사건의 주인공으로 부각됐다. '석궁테러 살인미수 적용 (국민일보)' '두차례 답사… 살해의도 있었다(헤럴드경제)' '석궁테러… 사법권에 중대 도전(YTN)' '구멍뚫린 총기류 관리… 석궁 범행 잇따라(한국일보)'
불리한 판결에 테러? 아직도 이 사건은 '왜'가 부족하다
한 전직 교수의 양심고백과 10여 년에 걸친 진실투쟁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경찰에 붙잡힌 김씨는 지난 16일 "합법적인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최후의 선택을 했다"며 범행동기에 대해 또렷하게 얘기했다. 그는 또 "이렇게라도 해야 세상이 진실을 알아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다만 "박 판사를 위협하려 했을 뿐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왜'가 부족하다. 전직 교수가 단순히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했다고 판사를 테러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과연'이라는 의문이 남는다.
<오마이뉴스>는 이번 사건의 실체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김씨의 주변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김씨와 공적·사적으로 친분 관계가 있는 몇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이번 사건이 가져다 준 충격에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김씨가 '파국'으로 치닫기까지의 배경에 대해서는 담담하게 과거를 더듬어 나갔다.
당시 김씨 사건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민주화를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김세균 공동상임의장(서울대 정치학), 최영찬 사무처장(서울대 농생명과학), 김씨의 고교·대학동창인 김현광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계승혁 서울대 수학과 교수, 김영식씨(자영업), 여동생 김아무개씨의 증언을 토대로 이번 사건의 출발점인 김씨의 '재임용 탈락'에서부터 최근 '법관 테러'까지의 10여 년간의 시간을 되짚어 봤다.
취재 과정에 만난 김씨 주변 사람들은 먼저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해 불만을 터트렸다. 이들은 "언론이 이번 사건의 본질적 측면인 학계의 학문적 비도덕성과 사학의 재임용 제도의 허점에 대해서는 외면한 채 김씨가 저지른 행위에만 초점을 맞춰 선정적인 방향으로 사태를 몰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지적대로 이번 사건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언론에서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법관 테러'에 관한 문제와 또 하나는 '재임용 탈락'이다.
법관 테러는 앞으로 경찰조사를 통해 시비가 가려지겠지만, 재임용 탈락에 대해서는 누가 옳은지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다. 법관 테러의 직접적 원인이 된 재임용 탈락과 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놓고 당사자들의 주장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왜①] 이번 사건의 발단 '수학문제 오류'의 진실은
이번 사건을 불러온 재임용 탈락을 둘러싼 첫 번째 쟁점은 '수학 문제 오류' 논란이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선 김씨가 몸담고 있던 성균관대의 1995학년도 대학본고사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논란이 된 문제는 100점 만점에 15점이 배정된 '공간 벡터에 대한 증명' 문항이었다. 본고사 채점위원이던 김씨는 채점 도중 이 문제에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고 장을병 당시 총장에게 이를 보고했다.
그러나 결과는 엉뚱하게 나타났다. 총장에게 보고하고 며칠이 지난 뒤 수학과 교수들이 그에 대해 징계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김씨는 그해 12월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정직 3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징계사유는 생뚱맞게도 '해교행위'와 '논문 부적격'이었다. 김씨는 이후 95년 부교수 승진 대상에서 제외된 데 이어 재임용에서도 탈락했다. 결국 그는 그해 10월 법원에 '부교수직 직위확인 소송'을 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국내외 수학계에서는 김씨가 지적한 오류에 대해 공감하는 의견이 많았다. 전국 44개 대학 수학과 교수 189명은 김씨의 정당성을 내세우며 '문항의 수학적인 오류'를 지적했다.
당시 김씨 변호에 앞장섰던 계승혁 교수는 "학교 측의 재임용 탈락을 납득할 수 없어 당시 수학과 교수들이 이를 반대하는 서명을 날인해 김씨의 '부교수 지위 확인' 청구소송을 맡고 있던 재판부에 제출했다"고 말했다. 국제 수학저널인 <매스 인텔리전서>도 '정직의 대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김씨의 재임용 탈락의 부당성을 다뤘다.
이에 대해 성균관대 측은 "수학문제 오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 재임용에서 탈락했다는 것은 김씨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며 "재임용에서 탈락한 가장 큰 이유는 연구 실적이 미미한데다 교육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왜②] 진실감추기 급급한 대학, 유능한 수학자에 사망선고
그러나 김씨 주변 사람들은 학교 당국이 문제의 오류를 밝히기보다는 진실을 감추는 데 급급했다고 주장했다. 학교 측이 학계의 쓴소리에는 귀를 닫은 채 수험생의 문제제기가 없었다는 이유를 내세워 서둘러 이를 덮으려 했다는 것. 여기에 사법부는 "재임용 거부는 학교의 자유재량에 해당한다"며 김씨가 낸 소송에 대해 학교의 손을 들어줬다.
김세균 민교협 공동의장은 "논문 부적격 평가, 해교행위 등은 재임용에 탈락시키기 위한 재단 측의 방편일 뿐"이라며 "학교는 학문적 소신을 지킨 학자를 궁지로 내몰았고 법원은 교수의 연구실적을 무시한 채 재단에 재임용에 관한 전권을 보장하면서 한 유능한 수학자에게 사망선고를 내렸다"고 말했다.
이후 항소심에서도 잇따라 패소한 김씨는 진실규명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외국으로 떠났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인 2004년 말까지 뉴질랜드와 미국 등에서 무보수 연구교수로 지냈다.
그러나 그 곳에서도 재임용에 탈락한 수학자라는 '꼬리표'가 그를 따라다녔다. 연구 성과를 내더라도 이 때문에 인정을 받지 못했다. 결국 '재임용 탈락'의 멍에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헛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국내로 들어오게 됐다.
그리고 2005년 3월 김씨는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그해 1월 개정된 '사립학교법 및 교육공무원법'은 김씨가 용기를 낸 또다른 이유다. 개정 법률에 따르면 '재임용이 거부된 교원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재심청구나 법원소송 제기도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여기에 김민수 서울대 미대 교수가 재임용 거부처분취소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것도 김씨에겐 희망이었다. 민교협에 있으면서 두 사건 모두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최영찬 사무처장은 "김명호 교수의 경우는 김민수 교수보다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입시 오류 지적에 대한 보복으로 재임용을 거부당했다고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부족해 학교가 재량권을 남용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또 학교 측 손을 들어줬다.
김씨가 이에 굴복해 다시 항소했으나 법원은 지난 12일 이마저 기각했다. 당시 이 사건을 맡은 담당 판사가 이번에 피해를 입은 박홍우 부장판사다.
[왜③] 법원은 과연 사실관계에 근거해 판결했는가
이번 사건을 불러온 재임용 탈락을 둘러싼 또 하나의 쟁점은 법원 심리의 충실성이다. 즉, 법원이 학교측의 재임용 탈락 조치에 대해 얼마나 면밀하게 진위를 가리는 작업을 했느냐는 점이다. 취재 과정에 만난 김씨 주변 사람들과 김씨 본인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점도 바로 이 부분이다.
실제 김씨는 경찰에 체포된 직후 기자들 앞에서 범행 동기에 대해 "법문을 무시하는 판사에게 국민의 마지막 권리로서 국민저항권을 행사하려 했다"며 "법을 무시하는 판사들에 대해서 사법부가 얼마나 썩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김씨는 이번 사건을 저지르기 전 "법원이 사건의 사실관계에 대한 파악 없이 그저 과거 판례에 따라 판결을 내리고 있다"며 "아무리 근거 자료를 모아 제출하더라도 소송 당사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이런 재판에서는 쓸모없는 일"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김씨의 여동생도 "오빠가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것 역시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재판부의 판결문 요지를 살펴보면 "…재임용 심사 과정에 원고가 주장하는 부당한 사유가 있었다 하여도…임용 청약행위에 승낙을 할지 여부가 피고 법인(성균관대)의 전적인 자유재량에 맡겨진 이상 원고(김명호)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적고 있다. 즉 김씨의 재임용 탈락이 부당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재임용 여부는 학교의 재량권에 속한다'는 이유로 학교 측 손을 들어준 것이다.
김세균 민교협 공동의장은 "지난 1987년 대법원의 '대학 교수의 임기만료는 당연 퇴직이고, 임용은 학교의 자유재량행위'이라는 판례 이후 20년 동안 '재임용 소송은 자동패소'라는 등식이 성립됐다"며 법원 심리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김씨가 2005년에 낸 소송 1심 판결이나 항소심 판결은 대법원 판례를 적용하지 않고 사실관계를 따져 판단한 것이다"며 "김씨가 이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왜④] 학문적 비도덕이 '석궁 습격' 불러
우리 학계의 뿌리박힌 학문적 비도덕성에 대해서도 김씨 주변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학문적 양심에 따라 순조롭게 풀려야 할 사건이 '법관 테러'라는 비극으로 확대된 데는 우리 학계의 무관심과 비도덕적인 풍토가 한몫 했다는 것이다.
법원은 재판 과정에서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수학 문제 오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대한 수학회와 고등과학원에 검토를 요구했지만 두 단체는 "한 대학의 재임용과 관련된 문제는 검토할 강제성이 없다"는 내용의 회신을 보냈을 뿐이다.
이에 대해 김도한 대한수학회 회장은 당시의 결정에 대해서는 답변할 처지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 "당시 학회가 답변하지 않은 것은 입시 문제 논란에 개입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 이후 국민들은 '법관 테러' 충격에 휩싸였지만 민교협을 비롯한 학계에서는 '재임용 제도'의 부당성에 눈을 돌리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언론은 한 대학의 진실 가리기와 학계에 뿌리박힌 비도덕적 풍토는 도외시한 채 한 전직 교수의 '법관 테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김세균 민교협 상임의장은 "이번 사건은 강고한 우리 학계의 카르텔 앞에서 진실이 또 한번 작동을 멈춘 결과"라며 "학문의 양심에 따른 정직한 고백이 재임용 탈락의 이유로 작용하는 게 우리의 학문적 풍토라면 대학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이해하려면 핵심을 잘 짚어야 한다. 김씨가 법관을 습격한 것을 비난하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그 과정에서 한 대학의 진실 숨기기, 그리고 그들을 비호하는 사법부를 환기해야 한다.
'석궁 습격'이라는 극단으로 사태를 해결하려 했던 김씨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애초에 김씨가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제도적으로 이를 사전에 방지할 수는 없었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게 또 다른 김씨를 막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