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샘 나눔터
“60만 띠잇기 국민선언을 제안합니다”
생명·평화를 화두로 5년째 탁발순례를 하는 도법은 정치인·기자보다 더 많은 현장을 누볐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났다. 종교인이면서 지식인이자 운동가다. 그는 묻는다. “이명박이 대통령 된 게 그리 절망적인가?”
출전 [시사IN38호] 2008년 06월 03일 (화) 10:41:52 박형숙 기자 phs@sisain.co.kr
도법스님은 누구신가?
1949년 출생. 18세에 김제 금산사로 출가. 1995년 남원 실상사 주지로 부임. 1998년 총무원장 권한대행 맡아 조계종 사태 수습. 현재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 생명평화 탁발순례 단장, 사단법인 숲길 이사장. 2008년 포스코청암상 봉사상 수상.
5월29일 오전 7시, 실상사에서 조금 떨어진 화림원으로 향했다. 전날 비가 쏟아진 까닭인지, 지리산 자락에 둘러싸인 실상사 주변은 짙은 안개에 휩싸였다. 숲길을 걸어 올라가다가 지난 1월 실상사를 찾았을 때가 떠올랐다. ‘탁발순례에서 희망을 보셨냐’는 질문에 도법 스님은 “수만명을 만나봤지만 아무도 나만큼 행복한 사람이 없어. 절망뿐이고 희망은 없데. 나밖에 희망이 없어”라고 말했다. 미소가 섞였지만 꾸짖음이 느껴졌다.
도법 스님은 100일여 걸쳐 ‘대운하 반대 4대강 도보순례’를 떠났다가 지난 주말에 돌아와 ‘고향집’인 실상사에서 머물고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휴식은 딱 일주일. 6월2일 다시 탁발 순례를 떠난다. 전국을 다 돌고 이제 남은 건 수도권이다. 인천·경기와 서울을 각각 100일씩 돌고 올 연말 5년에 걸친 대장정을 모두 마친다. 이제까지 지방 순례는 하루 15㎞ 내외를 걸으면서 얻어 자고 얻어먹으며 밤에는 지역 주민과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었지만, 서울에서는 강연과 포럼 등 ‘사회적 대화’ 형태로 진행할 예정이다. 주제도 확대되었다. 한반도 운하라는 현안이 추가되었고, 아수라장이 돼가는 한국 사회 미래를 전망한다. 그의 문제의식은 간명하다. 더 풍요로워졌는데 왜 더 불행해지는가.
“이원론과 이분법으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너는 너! 나는 나! 너 따로 나 따로 사고방식이다. 그러면 너는 나의 경쟁자가 되고 적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상이 그런가. ‘지금, 여기, 나’를 보자. 너와 나는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나에게 온 우주가 관계한다. 하늘 아래, 대지 위에, 산천초목 모든 생물과 부모, 이웃이 그물의 그물코처럼 연결되어 있다. 그물코가 따로따로 떨어져 있지만 전체 그물로 보면 하나다. ‘따로’를 절대화한 게 자본주의이고, ‘함께’를 절대화한 게 자본주의 아닌가. 하지만 실상은 ‘따로’와 ‘함께’가 같이 있다. 함께 살아야 하는 건 운명이다. 그럼 너를 동반자로, 친구로 생각해야 하지 않나.
하지만 어디 현실이 그런가. ‘더불어 삶’을 외치는 사람들도 막상 함께했을 때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다. 경쟁심과 이기심에서 예외가 아니다. 관계가 스트레스다. 도법은 관념화한 지식이 신념이 되면 삶과 진실이 분리된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예를 들었다.
“진보라는 사람들이 반미는 자주적이고, 친미는 종속적이라고 말한다. 사실인지 따져보면, 둘 다 자주적이지 않다. 미국 때문에 안 된다는 거나, 미국이어야만 한다는 거나 미국에 의존하는 사고방식 아닌가.”
도법은 ‘중도’다. 일찍이 붓다는 참된 앎을 ‘중도의 길’이라고 말했다. 불교에서 중도란 사물의 실상을 보는 것이다. 눈 감은 자가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눈 뜬 자가 코끼리를 보는 것의 차이다. 그는 “중도는 실사구시고, 실용이고, 과학적 태도이다. 지식과 논리를 관념이 아닌 구체적인 사실과 진실에 직결시켜서 다루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정치권에서 말하는 중도는 적당주의이고 이명박 대통령의 실용은 편의주의다. 말의 타락이다.
“거리의 촛불은 생명의 몸부림”
“실용은 실제 내용이 현실에서 효과를 내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보자. 이 정부가 선진 사회로 가겠다고 하는데 선진의 내용이 뭔가. 이 대통령이 선망해 마지않는 선진 강대국 정상이 모여서 21세기는 지속 가능한 사회여야 한다고 합의했다. 지난 20세기는 성장과 발전만 해왔지만, 21세기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인류문명이 지속되려면 그 첫째 조건이 뭔가. 자연 생태계가 건재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선진사회는 지속 가능한 사회’라는 말은 말장난이다.”
이명박 정부는 3만 달러 시대를 외친다. 국민을 부자로 만들겠다고 목청을 높인다. 하지만 도법은 묻는다. 부자가 좋은 건가?
“대단히 위험하다. 부자는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편리해지자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지구상에서 가장 부자 나라인 미국처럼 60억 세계 인구가 먹고 쓰고 살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 파멸이다.”
또 묻는다. 부자는 존재할까? 환상이다.
“5년 동안 순례하면서 무수한 사람을 봤지만 ‘나 충분해 부자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못 봤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다 부족하다고 난리다. 남이 볼 때 그만하면 부자다 싶은데 스스로 인정하질 않는다. 실상을 짚어보면 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관념일 뿐이다. 부자는 자기 삶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답은 민주주의로 이어졌다. 도법은 민주주의의 실현이 생태 위기의 답이고 양극화 사회의 답이라고 말한다.
“언젠가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도시를 만든 스웨덴 시장이 그 비결을 묻는 질문에 ‘민주주의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답한 내용이 기억에 남았다. 민주주의는 국민 모두를 잘살게 하는 것이다. 20대80으로 양극화한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민주주의의 실현은 너도나도 주체가 되고 모두가 함께 가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의 삶은 민주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제도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보장됐지만 ‘내 언어가, 내 사고가, 내 생활이 과연 민주적일까’라는 질문에서는 “진보나 보수나 오십보백보”다.
도법스님 순례모습 사진 ⓒ시사IN 한향란
하늘이 다시 열렸다. 165cm 53kg 작은 체구에 늘어진 ‘긴 손수건’이 바람에 살랑인다. “콧물을 많이 흘려. 밥 먹을 때도 흘리고. 손수건은 귀찮아서.” 길 위의 순례자에겐 자꾸 벗겨지는 걸망을 여며주는 끈이기도 하다.
얘기는 현안으로 이어졌다. 한 달째 거리를 밝히는 촛불 민심은 여야, 진보·보수라는 기존 틀로 설명이 잘 안 된다. 시위는 강력하지만 자유롭다. 어지러운 듯하면서도 질서정연하다. 지도부도 없고 대오도 단일하지 않다. 막히면 돌아가고 뚫리면 질주한다. 쇠파이프·화염병이 등장하지 않는 완벽한 비폭력 저항이다. 세대와 성별, 출신과 이념을 초월한 이 거대한 뜨거움의 실체는 뭘까?
“생명에 대한 위기의식이 폭발한 것이다. 운하만 해도 이처럼 민감하지 않았지만 쇠고기는 바로 내 밥상의 문제다. 나와 내 자식, 내 부모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불안과 공포의 문제다. 아주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며 직접적인 분노다. 생명의 몸부림이다. 이념이나 논리가 필요없다.”
간극이 느껴졌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대중의 성장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했다. 또 지난 총선에서는 뉴타운 공약이 서울을 휩쓸어 한나라당이 대승을 거뒀다. 그때 대중의 욕망과 지금 대중의 공포, 그 괴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간은 지혜롭기도 하지만 앞뒤가 안 맞는 모순과 혼란의 존재다. 사실을 따져보면 더 부자 되자는 논리가 내 생명을 파괴하는 것인데 부자에 대한 환상을 그냥 따라간다. 지금 당장은 자기 목숨을 위협하니까 분노하지만 더 부자 되자는 것과 쇠고기 수입이 같은 논리라는 걸 모르는 것이다.”
국민과 정부가 정면충돌한 상황. 퇴로는 없어 보인다. 재협상 말고는. 도법은 “당장 직면한 문제이니 재협상을 통해 바로잡아야겠지”라면서도 “그게 본질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이뤄지는 가치의식과 사고방식은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다. 아이들 역시 오염되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삶에 노출되어 있다. 이 문제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해결되지 않는다. 훨씬 본질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이명박이 굉장한 기회를 준 거다”
도법은 기자에게 “이명박이 대통령 된 게 그리 절망적인가”라고 반문했다. 한참 뜸을 들였더니 그가 답했다.
“기회일 수 있다. 기회로 살려야 한다. 이명박이 등장하면서 평소 우리가 간과해왔던 많은 문제를 생각하게 했다. 생명과 민주주의는 우리사회 미래와 직결된 문제 아닌가. 이번에 종교인이 대운하 반대 4대강 순례를 했는데 언제 종교인이 강에 관심 있었나? 나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 말마따나 명실상부한 선진 사회로 가기 위해 놓쳐서는 안 될 것들을 따져보게 만들었다. 그것도 운동가를 자극한 게 아니라 저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건 굉장한 것이다. 이 위기가 전화위복이 될 수 있도록 잘 살려내야 할 텐데….”
촛불을 어떻게 한 계단 승화시킬 수 있을까? 거리의 촛불은 야당의 지원도, 운동권의 지도에 대해서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고민은 이미 구체적인 아이디어에 닿아 있었다. 그는 “이명박 정부를 상대로 싸움박질만 할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주권 행사를 해버리면 어떤가”라며 이런 제안을 했다. ‘60만명 인간띠 잇기’라는 형식에, ‘한반도는 생명평화 공동체의 땅’이라는 내용을 담은 ‘국민 선언’이다.
“내가 종교인 강 순례단에 제안하기도 했는데 좀더 확대, 구체화해봤다. 대운하가 540㎞니까 60만명이면 충분하다. 한 사람당 1m 잡으면 된다. 한강부터 낙동강까지 60만명이 인간띠를 만들면 일단 그 자체로 대운하는 안 된다는 선언이 된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방향과 비전을 담아야 한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내용을 담아 대안문명 사회로 가기 위한 대전환이 필요하다. 한반도는 생명평화 공동체의 땅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국민이 직접 하자. 운동권이 나서면 또 죽쑨다. 우리 모두 생태주체가 되는 것이다. 가령 문경 지역 낙동강에 사는 버드나무를 주체로 내세워 ‘나는 문경의 버드나무로 살고 싶다’라는 피켓을 드는 거다. 또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어느 동네 누구로 살고 싶다’는 피켓을 들 수 있다. 인간 중심성을 초월해 전 지역에서, 모든 생명체가 참여하는 축제다. 세계가 주목하는 굉장한 장관이 될 것이다.”
도법은 “그러면 새로운 국면이 열리지 않겠냐”라며 눈을 반짝거렸다. 이같은 ‘대국민 번개’ 날짜로 개천절을 제안했다. 10월3일이면 시간도 충분하고 ‘새로운 한반도의 하늘을 연다’는 의미도 담을 수 있다면서. ‘60만 인간띠 잇기 국민선언.’ 그는 <시사IN>에도 제안했다. “한번 ‘올인’해봐.” 독자님들은 어떠신가?
생명·평화를 화두로 5년째 탁발순례를 하는 도법은 정치인·기자보다 더 많은 현장을 누볐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났다. 종교인이면서 지식인이자 운동가다. 그는 묻는다. “이명박이 대통령 된 게 그리 절망적인가?”
출전 [시사IN38호] 2008년 06월 03일 (화) 10:41:52 박형숙 기자 phs@sisain.co.kr
도법스님은 누구신가?
1949년 출생. 18세에 김제 금산사로 출가. 1995년 남원 실상사 주지로 부임. 1998년 총무원장 권한대행 맡아 조계종 사태 수습. 현재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 생명평화 탁발순례 단장, 사단법인 숲길 이사장. 2008년 포스코청암상 봉사상 수상.
5월29일 오전 7시, 실상사에서 조금 떨어진 화림원으로 향했다. 전날 비가 쏟아진 까닭인지, 지리산 자락에 둘러싸인 실상사 주변은 짙은 안개에 휩싸였다. 숲길을 걸어 올라가다가 지난 1월 실상사를 찾았을 때가 떠올랐다. ‘탁발순례에서 희망을 보셨냐’는 질문에 도법 스님은 “수만명을 만나봤지만 아무도 나만큼 행복한 사람이 없어. 절망뿐이고 희망은 없데. 나밖에 희망이 없어”라고 말했다. 미소가 섞였지만 꾸짖음이 느껴졌다.
도법 스님은 100일여 걸쳐 ‘대운하 반대 4대강 도보순례’를 떠났다가 지난 주말에 돌아와 ‘고향집’인 실상사에서 머물고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휴식은 딱 일주일. 6월2일 다시 탁발 순례를 떠난다. 전국을 다 돌고 이제 남은 건 수도권이다. 인천·경기와 서울을 각각 100일씩 돌고 올 연말 5년에 걸친 대장정을 모두 마친다. 이제까지 지방 순례는 하루 15㎞ 내외를 걸으면서 얻어 자고 얻어먹으며 밤에는 지역 주민과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었지만, 서울에서는 강연과 포럼 등 ‘사회적 대화’ 형태로 진행할 예정이다. 주제도 확대되었다. 한반도 운하라는 현안이 추가되었고, 아수라장이 돼가는 한국 사회 미래를 전망한다. 그의 문제의식은 간명하다. 더 풍요로워졌는데 왜 더 불행해지는가.
“이원론과 이분법으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너는 너! 나는 나! 너 따로 나 따로 사고방식이다. 그러면 너는 나의 경쟁자가 되고 적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상이 그런가. ‘지금, 여기, 나’를 보자. 너와 나는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나에게 온 우주가 관계한다. 하늘 아래, 대지 위에, 산천초목 모든 생물과 부모, 이웃이 그물의 그물코처럼 연결되어 있다. 그물코가 따로따로 떨어져 있지만 전체 그물로 보면 하나다. ‘따로’를 절대화한 게 자본주의이고, ‘함께’를 절대화한 게 자본주의 아닌가. 하지만 실상은 ‘따로’와 ‘함께’가 같이 있다. 함께 살아야 하는 건 운명이다. 그럼 너를 동반자로, 친구로 생각해야 하지 않나.
하지만 어디 현실이 그런가. ‘더불어 삶’을 외치는 사람들도 막상 함께했을 때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다. 경쟁심과 이기심에서 예외가 아니다. 관계가 스트레스다. 도법은 관념화한 지식이 신념이 되면 삶과 진실이 분리된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예를 들었다.
“진보라는 사람들이 반미는 자주적이고, 친미는 종속적이라고 말한다. 사실인지 따져보면, 둘 다 자주적이지 않다. 미국 때문에 안 된다는 거나, 미국이어야만 한다는 거나 미국에 의존하는 사고방식 아닌가.”
도법은 ‘중도’다. 일찍이 붓다는 참된 앎을 ‘중도의 길’이라고 말했다. 불교에서 중도란 사물의 실상을 보는 것이다. 눈 감은 자가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눈 뜬 자가 코끼리를 보는 것의 차이다. 그는 “중도는 실사구시고, 실용이고, 과학적 태도이다. 지식과 논리를 관념이 아닌 구체적인 사실과 진실에 직결시켜서 다루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정치권에서 말하는 중도는 적당주의이고 이명박 대통령의 실용은 편의주의다. 말의 타락이다.
“거리의 촛불은 생명의 몸부림”
“실용은 실제 내용이 현실에서 효과를 내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보자. 이 정부가 선진 사회로 가겠다고 하는데 선진의 내용이 뭔가. 이 대통령이 선망해 마지않는 선진 강대국 정상이 모여서 21세기는 지속 가능한 사회여야 한다고 합의했다. 지난 20세기는 성장과 발전만 해왔지만, 21세기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인류문명이 지속되려면 그 첫째 조건이 뭔가. 자연 생태계가 건재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선진사회는 지속 가능한 사회’라는 말은 말장난이다.”
이명박 정부는 3만 달러 시대를 외친다. 국민을 부자로 만들겠다고 목청을 높인다. 하지만 도법은 묻는다. 부자가 좋은 건가?
“대단히 위험하다. 부자는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편리해지자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지구상에서 가장 부자 나라인 미국처럼 60억 세계 인구가 먹고 쓰고 살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 파멸이다.”
또 묻는다. 부자는 존재할까? 환상이다.
“5년 동안 순례하면서 무수한 사람을 봤지만 ‘나 충분해 부자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못 봤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다 부족하다고 난리다. 남이 볼 때 그만하면 부자다 싶은데 스스로 인정하질 않는다. 실상을 짚어보면 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관념일 뿐이다. 부자는 자기 삶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답은 민주주의로 이어졌다. 도법은 민주주의의 실현이 생태 위기의 답이고 양극화 사회의 답이라고 말한다.
“언젠가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도시를 만든 스웨덴 시장이 그 비결을 묻는 질문에 ‘민주주의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답한 내용이 기억에 남았다. 민주주의는 국민 모두를 잘살게 하는 것이다. 20대80으로 양극화한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민주주의의 실현은 너도나도 주체가 되고 모두가 함께 가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의 삶은 민주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제도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보장됐지만 ‘내 언어가, 내 사고가, 내 생활이 과연 민주적일까’라는 질문에서는 “진보나 보수나 오십보백보”다.
도법스님 순례모습 사진 ⓒ시사IN 한향란
하늘이 다시 열렸다. 165cm 53kg 작은 체구에 늘어진 ‘긴 손수건’이 바람에 살랑인다. “콧물을 많이 흘려. 밥 먹을 때도 흘리고. 손수건은 귀찮아서.” 길 위의 순례자에겐 자꾸 벗겨지는 걸망을 여며주는 끈이기도 하다.
얘기는 현안으로 이어졌다. 한 달째 거리를 밝히는 촛불 민심은 여야, 진보·보수라는 기존 틀로 설명이 잘 안 된다. 시위는 강력하지만 자유롭다. 어지러운 듯하면서도 질서정연하다. 지도부도 없고 대오도 단일하지 않다. 막히면 돌아가고 뚫리면 질주한다. 쇠파이프·화염병이 등장하지 않는 완벽한 비폭력 저항이다. 세대와 성별, 출신과 이념을 초월한 이 거대한 뜨거움의 실체는 뭘까?
“생명에 대한 위기의식이 폭발한 것이다. 운하만 해도 이처럼 민감하지 않았지만 쇠고기는 바로 내 밥상의 문제다. 나와 내 자식, 내 부모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불안과 공포의 문제다. 아주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며 직접적인 분노다. 생명의 몸부림이다. 이념이나 논리가 필요없다.”
간극이 느껴졌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대중의 성장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했다. 또 지난 총선에서는 뉴타운 공약이 서울을 휩쓸어 한나라당이 대승을 거뒀다. 그때 대중의 욕망과 지금 대중의 공포, 그 괴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간은 지혜롭기도 하지만 앞뒤가 안 맞는 모순과 혼란의 존재다. 사실을 따져보면 더 부자 되자는 논리가 내 생명을 파괴하는 것인데 부자에 대한 환상을 그냥 따라간다. 지금 당장은 자기 목숨을 위협하니까 분노하지만 더 부자 되자는 것과 쇠고기 수입이 같은 논리라는 걸 모르는 것이다.”
국민과 정부가 정면충돌한 상황. 퇴로는 없어 보인다. 재협상 말고는. 도법은 “당장 직면한 문제이니 재협상을 통해 바로잡아야겠지”라면서도 “그게 본질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이뤄지는 가치의식과 사고방식은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다. 아이들 역시 오염되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삶에 노출되어 있다. 이 문제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해결되지 않는다. 훨씬 본질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이명박이 굉장한 기회를 준 거다”
도법은 기자에게 “이명박이 대통령 된 게 그리 절망적인가”라고 반문했다. 한참 뜸을 들였더니 그가 답했다.
“기회일 수 있다. 기회로 살려야 한다. 이명박이 등장하면서 평소 우리가 간과해왔던 많은 문제를 생각하게 했다. 생명과 민주주의는 우리사회 미래와 직결된 문제 아닌가. 이번에 종교인이 대운하 반대 4대강 순례를 했는데 언제 종교인이 강에 관심 있었나? 나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 말마따나 명실상부한 선진 사회로 가기 위해 놓쳐서는 안 될 것들을 따져보게 만들었다. 그것도 운동가를 자극한 게 아니라 저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건 굉장한 것이다. 이 위기가 전화위복이 될 수 있도록 잘 살려내야 할 텐데….”
촛불을 어떻게 한 계단 승화시킬 수 있을까? 거리의 촛불은 야당의 지원도, 운동권의 지도에 대해서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고민은 이미 구체적인 아이디어에 닿아 있었다. 그는 “이명박 정부를 상대로 싸움박질만 할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주권 행사를 해버리면 어떤가”라며 이런 제안을 했다. ‘60만명 인간띠 잇기’라는 형식에, ‘한반도는 생명평화 공동체의 땅’이라는 내용을 담은 ‘국민 선언’이다.
“내가 종교인 강 순례단에 제안하기도 했는데 좀더 확대, 구체화해봤다. 대운하가 540㎞니까 60만명이면 충분하다. 한 사람당 1m 잡으면 된다. 한강부터 낙동강까지 60만명이 인간띠를 만들면 일단 그 자체로 대운하는 안 된다는 선언이 된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방향과 비전을 담아야 한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내용을 담아 대안문명 사회로 가기 위한 대전환이 필요하다. 한반도는 생명평화 공동체의 땅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국민이 직접 하자. 운동권이 나서면 또 죽쑨다. 우리 모두 생태주체가 되는 것이다. 가령 문경 지역 낙동강에 사는 버드나무를 주체로 내세워 ‘나는 문경의 버드나무로 살고 싶다’라는 피켓을 드는 거다. 또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어느 동네 누구로 살고 싶다’는 피켓을 들 수 있다. 인간 중심성을 초월해 전 지역에서, 모든 생명체가 참여하는 축제다. 세계가 주목하는 굉장한 장관이 될 것이다.”
도법은 “그러면 새로운 국면이 열리지 않겠냐”라며 눈을 반짝거렸다. 이같은 ‘대국민 번개’ 날짜로 개천절을 제안했다. 10월3일이면 시간도 충분하고 ‘새로운 한반도의 하늘을 연다’는 의미도 담을 수 있다면서. ‘60만 인간띠 잇기 국민선언.’ 그는 <시사IN>에도 제안했다. “한번 ‘올인’해봐.” 독자님들은 어떠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