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샘 나눔터
이 땅에 살기 위하여
박노해
찬 시멘트 바닥에 스치로폴 깔고
가면 얼마나 가겠나 시작한 농성
삼백일 넘어 쉬어터진 몸부림에도
대답 하나 없는 이 땅에 살기 위하여
일본땅 미국땅까지 원정투쟁을 떠나간다
이 땅에 발 딛고 설 자유조차 빼앗겨
지상 수십미터 아찔한 고공농성
지하 수백미터 막장 봉쇄농성
식수조차 못 먹고 말라 쓰러져가며
땅속에다 허공에다 울부짖는다
이 땅에 살기 위하여,
햇살 가득한 거리에 숨어 숨어
수배자로 쫓기고 쇠창살에 갇혀가며
우리는 절규한다 기꺼이 표적이 되어
뜨거운 피를 이 땅위에 쏟는다
우리가 태어나고 자라온 이 땅
우리의 노동으로 일떠세운 이 땅에
사람으로 살기 위하여 사랑으로 살기 위하여
저 지하 땅끝에서 하늘 꼭대기까지
우리는 쫓기고 쓰러지고 통곡하면서
온몸으로 투쟁한다 피눈물로 투쟁한다
이 땅의 주인으로 살기 위하여
2009년 1월 20일,
막막한 생존의 벼랑 끝에 떠밀려 목숨을 잃은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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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시를 읽으며
어쩌면 이리도 20년 전, 30년 전, 아니 일백년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현실이 우리 일상을 뒤덮쳐 온다는 말인가?
생각한다.
용산 철거를 앞둔 텅빈 상가
차가운 옥상 콘크리트 바닥에 농성텐트를 치고
살아보겠다고 서로의 어깨를 보듬던 늙은이와 중년들과 아저씨들과 그 아들들이
그 속에 맑은 눈망울처럼 반짝거리며 서로의 숨결을 나누던
우리들이
거친 화염에 휩싸여 울부짓다가 산화했다.
스러지는 가슴과 마음들이
미친 불길처럼 활활 제 몸을 사르며
이 험하고 몰상식한 세상을 온 몸으로 타올랐다.
가슴 섬뜩한 이 소식을 전해들으며
온 몸에 모든 피가 빠져나가는 듯한 허탈감과 분노를 느낀다.
딴나라당부자당몰염치당몰상식당연당정권이 집권한 지 채 한 해가 되기도 전에
쌓인 눈물과 한숨과 목숨들이
켜켜이 성을 톺아 올린다.
민초들 삶이 어찌되든 제 배만 불리고 욕심 채우기에 혈안이 된
이 저열한 칼부림이 제 가슴과 목숨을 겨누고 있다는 것을
알리 없는 이들이 불쌍하다.
한많은 생명을 수없이 짓이기고 깔아뭉개며 갈취하는 이들,
전혀 죄의식 느낄 수 없는 집단이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라면
차라리 그들은 조직적인 범죄집단과 다를바 무엇이 있으랴.
야차와도 별반 다르지 않은 이 지배집단무리들에게
우리 앞 길과 재산과 생명을 담보로 해야하는 도박을 이어간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노예임을 자임하는 것에 다름없다.
국가권력을 대행하는 이들이
엄숙한 국가의 이름으로 국민 생명과 기운과 희망과 일상을
주리틀고 약탈하며 숨결조차 틀어막으려는 행위는
가장 정확한 범죄이며 극악무도한 범죄집단에 불과하다.
모든 생명이 고귀하고 인간존재가 존엄하며 아름다운 것은
그것을 지키려는 의지와 노력과 사랑이 극진할 때
가능함을 역사를 통해 배웠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스스로의 존엄을 포기하지 않고
인간됨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의식을 배반하지 않는다면
여섯 고귀한 생명이 어이없는 불길에 사그라진 것
그들의 비명과 절규를 들으며
내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 엄동설한에
생명을 앗아간 무뢰배들 모두 모아놓고
스물다섯시간 발가벗겨 꽁꽁 얼린뒤에
반성문 2500자 원고지 이만오천장을
쓰게 하고
논어맹자노자장자 모두 외우게 하여
저들의 범죄행위가 얼마가 땅과 하늘에 사무치는 것인지를
깨우치게 하고 싶다. 간절하게.
미치도록 간절하게...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됨을 사랑한다는 것이며
상식을 존중한다는 것이며
일상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이며
나처럼 남을 아낀다는 것이며
....
평화를 사랑한다는 것은
불의를 미워한다는 것이며
불의를 제거하기 위해 싸움도 불사한다는 것이며
불의가 발병하지 못하게 하도록 철저하게 감시하고
그 싹을 잘라낸다는 것이며
인권을 존중한다는 것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며
나처럼 남을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내것을 남과 더불어 함께 나눈다는 것이며
서로의 숨결을 보듬고 안는다는 것이며...
가슴이 떨리고
온 몸에 화기가 감싸고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가
하늘을 향해 뻗쳐 오른다.
그대들 편히 쉬시라.
그대 영혼들 이제는 두발뻗고 편히 주무시라.
그대 아들들 아낙들 형제들
이제는 평화로운 곳에서 안식하시라.
남은 이 땅의 눈물과 한숨과 절규를 우리가 대신 하리니...
많은 분들이 우려하듯이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인 듯 하여 암담하군요.
언론 보도를 보면 한겨레만 [시민]이라 하고 다른 언론은 [철거민]이라고 보도하는 형편입니다.
이제 언론마저 무너지면 어찌될까 참담합니다.
용산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