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서 남주자 다시보기
하늘의 연에 담아 날린 내 마음
- 낙산공원에서 연날리기 수업
|하정숙 글샘 공부방 교사|
연을 날려 볼까?
12월이 되면서 공부방으로 들어오는 아이들의 얼굴이 어둡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들에게도 시험은 수능시험만큼이나 무거운 바윗돌이 되어 누르나 봅니다.
"시험이 너무 많아요. 성취도 평가, 수학경시대회, 영어 경시대회…"
아이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시험에 대한 불만부터 이야기합니다.
"시험이 언제야?"
"다음 주요."
대답하는 아이들의 맥없는 소리에 선생님도 힘이 좀 빠집니다. 다음 주 시험이 끝나고 '글샘 공부방'으로 오면 분명 아이들은 지난 밤 늦은 시간까지 공부한 피로에, 그동안의 긴장이 풀려서 한 녀석 두 녀석 눈을 무겁게 껌뻑일 것이며 하품을 해댈 것입니다.
"우리, 다음 주 연 날리러 갈까?"
선생님의 깜짝 제안에 아이들의 눈에 생기가 반짝입니다.
"네, 네, 좋아요. 좋아요."
눈이 내린 낙산공원에 가서…
12월 6일, 아이들이 시험이 끝날 시간에 맞추어서 학교 앞으로 갔습니다. 그날따라 겨울바람이 매서웠습니다. 단단히 채비를 하라고 오라고 했지만 이 찬 바람에 산꼭대기에서 연을 날릴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이 앞서 걷습니다. 대설추위에 내린 눈도 꽁꽁 얼어붙어서 여기저기가 희끗희끗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연을 만들면서,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전쟁에서 질것이다.'라는 소문이 돌자, 방패연을 만들어서 그 꼬리에 횃불을 달아 날렸다는 김유신 장군의 이야기도 해주고 싶었고, 균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시험 준비에 바빴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문방구에서 연을 준비했습니다.
학교 앞에서 가방을 멘 채 혜화동 뒤에 있는 낙산 공원에 올랐습니다.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가에는 며칠 전 내린 눈이 그대로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그 눈을 보며 그대로 지나갈 녀석들이 아닙니다. 벌써 한 움큼씩 쥐고 던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장갑은 이미 젖어버렸습니다. 낙산 공원 꼭대기에 오르니 산으로 둥그렇게 쌓인 서울 사대문 안이 다 들어옵니다. 이곳은 조선 태종 때부터 서울을 둘러싼 성곽을 만들었던 곳입니다. 하늘에는 전깃줄도 없고 높은 건물도 없어 연날리기 안성맞춤입니다.
아이들이 연을 달라고 조릅니다. 선생님이 연줄을 하나씩 매는법을 가르쳤더니 아이들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듭니다.
"선생님, 저희 매듭 묶을 줄 몰라요."
이미 눈싸움을 하느라 아이들 손이 얼어서 가는 줄을 묶기에는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어려운 수학 문제는 척척 풀어도 아직 매듭을 묶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이 할 수 없이 얼레와 연을 묶어 하나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연줄 묶는 것을 기다리는 사이에도 아이들은 발을 동동 구릅니다.
하늘로 솟아오르는 아이들의 꿈과 의지
대부분 처음 연을 날려보는 아이들입니다. 1학년 때 학교 운동장에서 날려 보았다고 하는데 그 때는 연을 질질 끌고 다녔다고 했습니다.
"연, 어떻게 날려요?"
"연 들고 이렇게 뛰어 봐. 그러면 날아."
누군가의 조언에도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해 합니다. 선생님에게 날려달라고 들고 오는 녀석이 한둘이 아닙니다.
"연을 아기 달래듯이 살살 달래면서 하늘에 띄워 봐."
연줄을 짧게 잡은 아이들이 연줄을 살살 잡아당기며 달래기 시작합니다. 바람이 불어서 연은 금방 하늘에 떴습니다. 아이들의 입에서 함성이 터져 나옵니다.
"와, 떴다. 떴다."
연은 엉덩이를 살래살래 흔들며 하늘의 바람을 타고 둥실둥실 떠오릅니다. 가느다란 연줄에 매달린 채 하늘로 날아오르는 연이 신통하기도 합니다. 하늘 가운데 자리를 잡은 연이 의젓하기까지 합니다. 아이들의 손끝에서 풀려나온 연줄의 힘이 아닌 하늘을 날게 하고 싶은 아이들의 의지가 연줄을 통해 하늘을 날아오르나 봅니다.
친구들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맺지 못해 걱정인 두현이가 연을 못 날립니다. 아니 연줄을 풀지 못합니다. 연이 하늘로 날아가 버릴까봐 얼레를 소중히 붙잡고 있습니다. 그러면 연은 바람을 타지 못하고 금방 떨어져 버리는데도 연줄을 풀지 못합니다. 선생님이 연줄을 더 풀어보라고 해도 고개만 흔듭니다. 성질 급한 녀석 두 명이 연줄을 다 풀었다가 매듭을 묶지 않은 실이 얼레 끝에서 달아나 버린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얼레 맨 안쪽에 달린 연줄을 찾아내어 얼레에 단단히 묶어 주자 그제서야 두현이는 연줄을 풀기 시작합니다. 연은 긴 꼬리를 흔들며 멀리 멀리 올라갑니다. 낙산공원의 맨 꼭대기 하늘에 여덟 개의 연이 춤을 춥니다. 운동을 하러 온 사람들이 몰려들고, 높은 나무위의 둥지에서 추위를 피하던 까치도 가지 위로 나와 봅니다.
아이들은 하늘을 보라고 하지 않아도 하늘을 봅니다. 눈을 가득 품었는지 무거운 빛의 구름이 머무르고 있는 하늘을 고개 아픈 줄도 모르고 봅니다. 얼음바람이 귀를 할퀴고 가도, 뺨을 문지르고 가도 아이들은 하늘을 봅니다. 이제까지 본적 없을 아주 먼 하늘의 끝을 바라봅니다. 오래 바라봅니다.
수업 시간에 제일 조용하고 내성적인 현호와 순원이의 태도가 사뭇 다릅니다. 연줄도 시원스레 풀어놓고 친구들과 연싸움을 해보기도 합니다. 연줄을 이리저리 흔들며 연을 조정하는 모습이 아주 용감해 보입니다. 이런 적극성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귀가 빨갛게 얼어서 안쓰러운데도, 장갑이 젖어 손이 얼 텐데도 연날리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추워서 도무지 안되겠는지 목도리를 귀에 둘러달라고 왔습니다.
윤선이는 성격이 차분한 것처럼 연도 차분히 날립니다. 연줄을 끝까지 풀어 연이 아스라이 보일만큼 멀리 띄워 놓았습니다.
"선생님, 제 연이 제일 높지요?"
"그러네. 차분한 윤선이답게 연도 차분히 날리는구나."
암과 투병하시는 아버지에 대한 걱정도 저만치 풀어놓았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저기서 연줄이 얽혀서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들이 늘어납니다. 혜선이의 연줄이 많이 얽혀 버렸습니다. 연은 한 번 다른 줄과 얽히면 바느질을 하듯 아래로 내려갔다가 한 번 감고 다시 위로 올라오며 연줄을 더욱 얽히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할 수 없이 연줄을 끊고 다시 묶어 주었습니다.
순원이의 연이 나무에 걸렸습니다. 처음에 성급한 마음으로 연줄을 다 풀어놨다가 얼레 끝에서 연줄이 날아 가버렸던 순원이는 긴장했습니다. 선생님과 조심조심 연줄을 달래고 살살 흔들어서 나무에서 떼어놓았습니다. 다시 순원이의 연이 하늘을 납니다.
"선생님, 까치가요 연 때문에 놀랐나 봐요. 푸드덕 날아요."
근혁이가 와서 이야기합니다. 정말 까치가 놀란 것 같습니다. 커다란 봉황 여덟 마리가 하늘을 날자 독수리라도 난 줄 알았나 봅니다. 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 위에서 안절부절입니다.
선생님 뱃속에 손을 녹이고
어쩐지, 날이 더 추워지는 것 같습니다. 영지와 나빌레라가 더 이상 못 견디겠는지 준비해 온 코코아를 마십니다. 남자아이들은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고 연줄을 잡고 있습니다. 세 시간은 넘게 연을 날렸습니다. 주위가 어두컴컴해지고 날이 더 흐려졌습니다. 찬바람이 더 매서워졌습니다. 나빌레라와 혜선이가 꽁꽁 언 손을 모으고 왔습니다. 작은 두 손을 잡아 보았더니 얼음덩어리라도 된 것 같습니다.
"선생님 뱃속에라도 넣을래?"
나도 모르게 저절로 이 말이 툭 튀어 나왔습니다.
"선생님 뱃속에요?"
잠깐 망설이던 혜선이와 나빌레라가 선생님 품속으로 손을 넣습니다. 두 녀석의 싸늘한 냉기에 잠시 움츠려졌습니다. 곧 선생님의 체온이 아이들의 손을 녹입니다. 어색해할 줄 알았던 두 녀석의 얼굴에도 따스한 웃음이 퍼집니다.
"선생님 뱃속, 엄마 뱃속 같아요."
선생님도 어렸을 적 할머니 품에, 어머니 품에 이렇게 손을 녹였더랬습니다. 아무래도 추위를 녹이는 것은 서로의 따뜻한 체온이지 싶습니다.
이제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순원이와 현호는 내려갈 마음이 없습니다.
"조금만 더요, 조금만 더요."
눈을 하늘 높이 떠 있는 연에 고정시키고 간절히 말합니다. 연줄을 도통 감을 기색이 없습니다. 오늘은 한 번도 친구들과 툭탁거리지 않고 세 시간동안 연만 날린 두현이의 연이 뒷심을 받았는지 끝까지 날아올랐습니다. 미리 연줄을 감은 아이들이 두현이 주위로 몰려들었습니다. 모두 한 곳을 바라봅니다. 두둥실 두둥실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아무것도 기댈 곳 없는 높은 하늘에서 자신들의 손끝에서 나온 힘으로 자기 자리를 만들고 있는 연을 바라봅니다.
날아가라 아이들아
아이들도 그렇게 자기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만들어갈 자기 자리는 곧은 기둥, 단단한 기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도 연처럼 놓치지 않는 가느다란 줄만 있으면 자기 자리를 만들어 이 세상에 우뚝 서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기도 하겠고 가끔은 떨어져 곤두박질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끊어지지 않는 연줄 하나만 있다면 다시 세상을 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글방에서 수업을 했더라면 이렇게 밝고 행복한 표정으로 시험 본 하루를 보낼 수 있었을까요? 아마, 시험 본 대가로 컴퓨터 게임을 실컷 할 것을 요구했겠지요? 선생님 마음 한구석이 아립니다. 연날리기도 수업으로 해야만 이렇게 모여서 할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 참 슬픕니다. 바람이 불어와도 연을 들고 뛰쳐나갈 곳도, 시간도 없는 우리 아이들 모습에 마음이 아픕니다.
연을 날리고 내려오는 길, 아이들의 재잘거림만은 봄 햇살 아래 돋아난 연둣빛 새싹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쓴 시를 읽으며 아이들의 마음을 만져보다
한 주가 다시 흐르고 아이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연날리기를 했던 날 밤 기침 때문에 잠을 잘 못 이루었다고 하기도 하고 열이 났다고도 합니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떠올리기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다시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머뭅니다. 생각만 해도 신이 나는 모양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써 낸 시에는 선생님이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연과 씨름했던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숨어 있어서 재미있었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놀이를 했는데도 우리 아이들은 모두 다른 마음,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몰랐습니다. 연을 날리며 전학 간 친구가 그리웠는지, 겨우 연이 날았는데 선생님이 집에 가자고 했는지, 꼬리 다친 연이 다시 용감하게 나는 것을 보며 아픔을 참는 것을 배웠는지 말입니다. 아이들이 써내고 간 시를 보며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내가 과연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하고.
- 낙산공원에서 연날리기 수업
|하정숙 글샘 공부방 교사|
연을 날려 볼까?
12월이 되면서 공부방으로 들어오는 아이들의 얼굴이 어둡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들에게도 시험은 수능시험만큼이나 무거운 바윗돌이 되어 누르나 봅니다.
"시험이 너무 많아요. 성취도 평가, 수학경시대회, 영어 경시대회…"
아이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시험에 대한 불만부터 이야기합니다.
"시험이 언제야?"
"다음 주요."
대답하는 아이들의 맥없는 소리에 선생님도 힘이 좀 빠집니다. 다음 주 시험이 끝나고 '글샘 공부방'으로 오면 분명 아이들은 지난 밤 늦은 시간까지 공부한 피로에, 그동안의 긴장이 풀려서 한 녀석 두 녀석 눈을 무겁게 껌뻑일 것이며 하품을 해댈 것입니다.
"우리, 다음 주 연 날리러 갈까?"
선생님의 깜짝 제안에 아이들의 눈에 생기가 반짝입니다.
"네, 네, 좋아요. 좋아요."
눈이 내린 낙산공원에 가서…
12월 6일, 아이들이 시험이 끝날 시간에 맞추어서 학교 앞으로 갔습니다. 그날따라 겨울바람이 매서웠습니다. 단단히 채비를 하라고 오라고 했지만 이 찬 바람에 산꼭대기에서 연을 날릴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이 앞서 걷습니다. 대설추위에 내린 눈도 꽁꽁 얼어붙어서 여기저기가 희끗희끗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연을 만들면서,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전쟁에서 질것이다.'라는 소문이 돌자, 방패연을 만들어서 그 꼬리에 횃불을 달아 날렸다는 김유신 장군의 이야기도 해주고 싶었고, 균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시험 준비에 바빴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문방구에서 연을 준비했습니다.
학교 앞에서 가방을 멘 채 혜화동 뒤에 있는 낙산 공원에 올랐습니다.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가에는 며칠 전 내린 눈이 그대로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그 눈을 보며 그대로 지나갈 녀석들이 아닙니다. 벌써 한 움큼씩 쥐고 던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장갑은 이미 젖어버렸습니다. 낙산 공원 꼭대기에 오르니 산으로 둥그렇게 쌓인 서울 사대문 안이 다 들어옵니다. 이곳은 조선 태종 때부터 서울을 둘러싼 성곽을 만들었던 곳입니다. 하늘에는 전깃줄도 없고 높은 건물도 없어 연날리기 안성맞춤입니다.
아이들이 연을 달라고 조릅니다. 선생님이 연줄을 하나씩 매는법을 가르쳤더니 아이들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듭니다.
"선생님, 저희 매듭 묶을 줄 몰라요."
이미 눈싸움을 하느라 아이들 손이 얼어서 가는 줄을 묶기에는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어려운 수학 문제는 척척 풀어도 아직 매듭을 묶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이 할 수 없이 얼레와 연을 묶어 하나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연줄 묶는 것을 기다리는 사이에도 아이들은 발을 동동 구릅니다.
하늘로 솟아오르는 아이들의 꿈과 의지
대부분 처음 연을 날려보는 아이들입니다. 1학년 때 학교 운동장에서 날려 보았다고 하는데 그 때는 연을 질질 끌고 다녔다고 했습니다.
"연, 어떻게 날려요?"
"연 들고 이렇게 뛰어 봐. 그러면 날아."
누군가의 조언에도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해 합니다. 선생님에게 날려달라고 들고 오는 녀석이 한둘이 아닙니다.
"연을 아기 달래듯이 살살 달래면서 하늘에 띄워 봐."
연줄을 짧게 잡은 아이들이 연줄을 살살 잡아당기며 달래기 시작합니다. 바람이 불어서 연은 금방 하늘에 떴습니다. 아이들의 입에서 함성이 터져 나옵니다.
"와, 떴다. 떴다."
연은 엉덩이를 살래살래 흔들며 하늘의 바람을 타고 둥실둥실 떠오릅니다. 가느다란 연줄에 매달린 채 하늘로 날아오르는 연이 신통하기도 합니다. 하늘 가운데 자리를 잡은 연이 의젓하기까지 합니다. 아이들의 손끝에서 풀려나온 연줄의 힘이 아닌 하늘을 날게 하고 싶은 아이들의 의지가 연줄을 통해 하늘을 날아오르나 봅니다.
친구들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맺지 못해 걱정인 두현이가 연을 못 날립니다. 아니 연줄을 풀지 못합니다. 연이 하늘로 날아가 버릴까봐 얼레를 소중히 붙잡고 있습니다. 그러면 연은 바람을 타지 못하고 금방 떨어져 버리는데도 연줄을 풀지 못합니다. 선생님이 연줄을 더 풀어보라고 해도 고개만 흔듭니다. 성질 급한 녀석 두 명이 연줄을 다 풀었다가 매듭을 묶지 않은 실이 얼레 끝에서 달아나 버린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얼레 맨 안쪽에 달린 연줄을 찾아내어 얼레에 단단히 묶어 주자 그제서야 두현이는 연줄을 풀기 시작합니다. 연은 긴 꼬리를 흔들며 멀리 멀리 올라갑니다. 낙산공원의 맨 꼭대기 하늘에 여덟 개의 연이 춤을 춥니다. 운동을 하러 온 사람들이 몰려들고, 높은 나무위의 둥지에서 추위를 피하던 까치도 가지 위로 나와 봅니다.
아이들은 하늘을 보라고 하지 않아도 하늘을 봅니다. 눈을 가득 품었는지 무거운 빛의 구름이 머무르고 있는 하늘을 고개 아픈 줄도 모르고 봅니다. 얼음바람이 귀를 할퀴고 가도, 뺨을 문지르고 가도 아이들은 하늘을 봅니다. 이제까지 본적 없을 아주 먼 하늘의 끝을 바라봅니다. 오래 바라봅니다.
수업 시간에 제일 조용하고 내성적인 현호와 순원이의 태도가 사뭇 다릅니다. 연줄도 시원스레 풀어놓고 친구들과 연싸움을 해보기도 합니다. 연줄을 이리저리 흔들며 연을 조정하는 모습이 아주 용감해 보입니다. 이런 적극성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귀가 빨갛게 얼어서 안쓰러운데도, 장갑이 젖어 손이 얼 텐데도 연날리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추워서 도무지 안되겠는지 목도리를 귀에 둘러달라고 왔습니다.
윤선이는 성격이 차분한 것처럼 연도 차분히 날립니다. 연줄을 끝까지 풀어 연이 아스라이 보일만큼 멀리 띄워 놓았습니다.
"선생님, 제 연이 제일 높지요?"
"그러네. 차분한 윤선이답게 연도 차분히 날리는구나."
암과 투병하시는 아버지에 대한 걱정도 저만치 풀어놓았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저기서 연줄이 얽혀서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들이 늘어납니다. 혜선이의 연줄이 많이 얽혀 버렸습니다. 연은 한 번 다른 줄과 얽히면 바느질을 하듯 아래로 내려갔다가 한 번 감고 다시 위로 올라오며 연줄을 더욱 얽히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할 수 없이 연줄을 끊고 다시 묶어 주었습니다.
순원이의 연이 나무에 걸렸습니다. 처음에 성급한 마음으로 연줄을 다 풀어놨다가 얼레 끝에서 연줄이 날아 가버렸던 순원이는 긴장했습니다. 선생님과 조심조심 연줄을 달래고 살살 흔들어서 나무에서 떼어놓았습니다. 다시 순원이의 연이 하늘을 납니다.
"선생님, 까치가요 연 때문에 놀랐나 봐요. 푸드덕 날아요."
근혁이가 와서 이야기합니다. 정말 까치가 놀란 것 같습니다. 커다란 봉황 여덟 마리가 하늘을 날자 독수리라도 난 줄 알았나 봅니다. 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 위에서 안절부절입니다.
선생님 뱃속에 손을 녹이고
어쩐지, 날이 더 추워지는 것 같습니다. 영지와 나빌레라가 더 이상 못 견디겠는지 준비해 온 코코아를 마십니다. 남자아이들은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고 연줄을 잡고 있습니다. 세 시간은 넘게 연을 날렸습니다. 주위가 어두컴컴해지고 날이 더 흐려졌습니다. 찬바람이 더 매서워졌습니다. 나빌레라와 혜선이가 꽁꽁 언 손을 모으고 왔습니다. 작은 두 손을 잡아 보았더니 얼음덩어리라도 된 것 같습니다.
"선생님 뱃속에라도 넣을래?"
나도 모르게 저절로 이 말이 툭 튀어 나왔습니다.
"선생님 뱃속에요?"
잠깐 망설이던 혜선이와 나빌레라가 선생님 품속으로 손을 넣습니다. 두 녀석의 싸늘한 냉기에 잠시 움츠려졌습니다. 곧 선생님의 체온이 아이들의 손을 녹입니다. 어색해할 줄 알았던 두 녀석의 얼굴에도 따스한 웃음이 퍼집니다.
"선생님 뱃속, 엄마 뱃속 같아요."
선생님도 어렸을 적 할머니 품에, 어머니 품에 이렇게 손을 녹였더랬습니다. 아무래도 추위를 녹이는 것은 서로의 따뜻한 체온이지 싶습니다.
이제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순원이와 현호는 내려갈 마음이 없습니다.
"조금만 더요, 조금만 더요."
눈을 하늘 높이 떠 있는 연에 고정시키고 간절히 말합니다. 연줄을 도통 감을 기색이 없습니다. 오늘은 한 번도 친구들과 툭탁거리지 않고 세 시간동안 연만 날린 두현이의 연이 뒷심을 받았는지 끝까지 날아올랐습니다. 미리 연줄을 감은 아이들이 두현이 주위로 몰려들었습니다. 모두 한 곳을 바라봅니다. 두둥실 두둥실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아무것도 기댈 곳 없는 높은 하늘에서 자신들의 손끝에서 나온 힘으로 자기 자리를 만들고 있는 연을 바라봅니다.
날아가라 아이들아
아이들도 그렇게 자기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만들어갈 자기 자리는 곧은 기둥, 단단한 기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도 연처럼 놓치지 않는 가느다란 줄만 있으면 자기 자리를 만들어 이 세상에 우뚝 서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기도 하겠고 가끔은 떨어져 곤두박질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끊어지지 않는 연줄 하나만 있다면 다시 세상을 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글방에서 수업을 했더라면 이렇게 밝고 행복한 표정으로 시험 본 하루를 보낼 수 있었을까요? 아마, 시험 본 대가로 컴퓨터 게임을 실컷 할 것을 요구했겠지요? 선생님 마음 한구석이 아립니다. 연날리기도 수업으로 해야만 이렇게 모여서 할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 참 슬픕니다. 바람이 불어와도 연을 들고 뛰쳐나갈 곳도, 시간도 없는 우리 아이들 모습에 마음이 아픕니다.
연을 날리고 내려오는 길, 아이들의 재잘거림만은 봄 햇살 아래 돋아난 연둣빛 새싹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쓴 시를 읽으며 아이들의 마음을 만져보다
한 주가 다시 흐르고 아이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연날리기를 했던 날 밤 기침 때문에 잠을 잘 못 이루었다고 하기도 하고 열이 났다고도 합니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떠올리기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다시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머뭅니다. 생각만 해도 신이 나는 모양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써 낸 시에는 선생님이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연과 씨름했던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숨어 있어서 재미있었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놀이를 했는데도 우리 아이들은 모두 다른 마음,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몰랐습니다. 연을 날리며 전학 간 친구가 그리웠는지, 겨우 연이 날았는데 선생님이 집에 가자고 했는지, 꼬리 다친 연이 다시 용감하게 나는 것을 보며 아픔을 참는 것을 배웠는지 말입니다. 아이들이 써내고 간 시를 보며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내가 과연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