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어떤 어른이 될까

언제 어디서든 배울 수 있다
- 『아홉 살 인생』

이가윤 | 본지 편집장

대상: 중학생∼고 1
함께 읽은 책: 『아홉 살 인생』(위기철 / 청년사)
학습목표
1. 텍스트를 꼼꼼하게 읽고, 객관적으로 독해·추론할 줄 안다.
2. 자기가 만나온 사람들과 겪은 일들을 돌아보고, 거기서 나는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반추해본다. 더불어 '나'는 주위에서 영향을 받고 계속 변화·발전해나가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3. 경험을 적용하는 주체인 자기 자신의 가치관을 다시 점검해본다.

얼마 전 인터넷 토론 광장에 있는 떠 있는 글들을 뒤적이다 인상적인 글을 두 편 보았습니다. 프랑스 폭동 사건에 대해서 현지 유학생들이 쓴 글이었는데, 신문에는 나오지 않는 현지 분위기, 방리유의 '비주류'들이 겪는 설움,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반응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글이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두 글의 결론은 참으로 상이했습니다. 둘 다 우리나라의 외국인 이민자 이야기를 결론에 끌어왔는데, 처음 글은 그들에 대한 제대로 된 복지정책과 확실한 사회통합의 방향을 고민하고 있는 반면, 다음 글은 늘어나는 이민자 수를 억제하고, 이미 있는 이민자들을 격리·통제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있었으니까요. 같은 유학생 입장에서 같은 사태를 접하였는데 이렇게 상반된 결론이 나오다니, 새삼 신기했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똑같은 물도 뱀이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된다'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참 기막힌 비유라고 생각했지요.
모험심 많은 아이들은 가끔씩 '많은 일을 겪고, 많은 사람들 만나고, 그래서 많은 걸 배우고 싶어요'라고 말합니다. 의욕 없이 하루하루 '살아내는' 아이들도 많은데, 참 기특한 생각입니다. 하지만 꼭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사건을 접한다고 해서, 그 경험의 강도나 양에 비례하여 우리가 성숙해진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깊이는 경험의 양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며, 그 경험에서 오는 기쁨 혹은 고통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있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고통 때문에 더 이기적이고 더 얕아지는 사람도 있는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니까요.
제가 존경하는 교사분 하나는 자신의 군대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글 속에서 '나는 군대에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그 고통을 통과하며, 여러 갈래 길로 다르게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어떤 이는 그 고통으로 더 따뜻하고 속 깊은 이가 되었고, 어떤 이들은 악에 대한 예민한 감성을 잃어버린 이가 되었다'고 이야기하더군요.  
그런 면에서 위기철의 자전소설 『아홉 살 인생』은 그리 특별할 것 없는 경험들이 주인공의 인생 속에서 어떤 의미로 자리잡는지 아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텍스트입니다. 주인공 여민이는 아주 속 깊고 심지 굳은 아이입니다. 여민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여민이의 마음 속에 깊게 자리잡는데, 이를 통해 주인공은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느낄 줄 알고, 세상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경험하는 부당함의 기억이나 외로움, 기쁨과 슬픔 등을 어떤 식으로 자기 안에 녹여내고 있을까요? 앞으로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겪는 문제들의 본질을 똑바로 바라볼 줄 알게 하고, 경험을 자기화하는 내면의 힘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아홉 살 인생』은 이미 『배워서 남주자』에서 몇 번 소개했던 텍스트입니다. 하지만 학습 목표와 진행 방향에 차이가 있는 만큼 다시 한번 다루어 보는 것도 의미있다고 생각하여 소개합니다. 『아홉 살 인생』을 주 텍스트로 하되 방향을 달리 한 다른 수업안이 『배워서 남주자』 2005년 10월, 2003년 3월에도 나와 있으니 함께 보시면 좋겠습니다. 소설 줄거리는 생략하겠습니다.)  

마음 열기

너에게 묻는다 _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하기 전 항상 시 한편이나 신문기사 하나 정도를 읽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번에 아이들에게 읽어준 시는 안도현 시인의 아주 짧은 시 「너에게 묻는다」입니다. 짧고 쉬워서 중학생들도 좋아하는 시입니다. '뜨거운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물으니 기계적으로 '희생하는 사람이요~ 봉사하는 사람이요~' 합니다. 그러나 아직 중학생 아이들에게 '희생'이란 단어는 낯설고 멀지요. 조금 더 확장하여 자기에게 돌아올 것을 생각지 않고 남을 위하는 사람, 작더라도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사람을 대하는 이들이 모두 '뜨거운 사람'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니 그제서야 '자기가 그런 사람인지' 살짝 돌아봅니다.
시에 대한 느낌을 물어보니 어려운 말도 없고 길이도 짧은데 이렇게 좋은 시가 나온다는 게 신기하고,  '연탄'이라는 평범한 소재를 갖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답니다. 그 말을 받아서, '특별한 경험을 한다고 해서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평범함 속에서 자기만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해주면서, 오늘 수업은 각자의 경험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건져 올리는 수업이 될 거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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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홉 살 인생』 꼼꼼하게 읽기

핵심 질문: 아래 사람들을 통해 주인공 여민이가 얻은 깨달음은 무엇인가?
엄마 / 아빠 / 기종 / 우림 / 골방철학자 / 검은제비 / 토굴할매 / 담임선생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 입장에 맞춰서 해석하는 게 아니라, 일단 책을 객관적으로 읽고 주인공이 건져 올린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헤아리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오독 사례가 주인공의 절친한 친구인 기종이를 통해서 '기종이는 엄마아빠가 없는데 난 있으니까 행복해' 라는 명제를 건져 올리는 경우입니다. 그렇게 뽑은 아이들에는 '아니야, 여민이가 그렇게 생각하는 장면은 절대 나오지 않아.'라고 책을 다시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여민이는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자기 행복을 실감하는 아이가 아니었고, 오히려 연민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고 있지요.
또 여민이의 엄마 아빠는 이 소설에서 참 이상적으로 그려집니다. 세간의 눈으로 보면 아빠는 전직 조폭에 자식들 달동네에나 살게 하는 무능한 존재일 수 있습니다. 엄마 또한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갖고 있는데, 아이의 눈에는 아주 현명하고 배울 점 많은 사람들로 비치지요. '잘난' 부모를 가진 아이들을 보며 어쩌면 원망할 수도 있는 자신의 부모를 그렇게 존경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아이 안에 있는 힘과 낙천성 덕분일 것입니다.

  여민이가 건져 올린 삶의 의미 (토론 결과)

♡ 엄마  
엄마의 명대사 중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은 스스로를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도 진짜 불쌍하지는 않다. 단지 불쌍하게 보일 뿐이다."를 꼽았다. 현명하고, 너그럽고, 여민이의 마음을 잘 이해해주던 엄마 덕분에 여민이가 따뜻한 마음을 갖게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 아빠
'항상 엄마의 든든한 기사'였던 아빠에게서 여민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태도를 배우게 된다. 아빠가 엄마에게만 친절했던 것은 아니다. 아침마다 힘들게 물을 길어 이웃들에게 나누어주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가족뿐만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또한 배우게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여민이 아빠는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던 풍뎅이 영감을 혼내주면서, '만약 어떤 악당과 싸우게 되면 그 악당보다 훨씬 교활해져야 한다'는 교훈도 함께 남긴다.

♡ 기종
기종이는 '뻥쟁이', '허풍쟁이'다. 아이들은 허무맹랑한 소리만 한다고 기종이를 따돌리지만, 여민이만큼은 기종이에게 등을 돌리지 않는다. 처음엔 동정, 그 다음엔 연민으로 시작했지만 주인공은 기종이와 어린 시절을 함께 하면서, 때로 상상력은 힘든 현실을 버틸 수 있게 하는 강력한 힘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런 깨달음은 나중에 주인공이 소설을 쓰게 하는데 아주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 짐작해본다.  

♡ 우림
우림이는 주인공의 첫사랑이다. 여민이는 변덕쟁이 우림이를 통해서 '여자란 참 복잡한 동물이구나', '사랑은 참 귀찮은 것이구나', '귀찮고 힘들어도 자꾸만 생각나게 되는 것이 사랑이구나' 하는 복잡한 감정을 느껴가게 된다.
  고 1 남자아이에게 '너도 여민이처럼 여자애들이 복잡한 동물이라 생각하니?' 물어보았더니 전혀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합니다. 어떤 때 가장 그러냐고 했더니 "앞에서는 다정하다가 뒤돌아서서 욕하는 게 정말 이상해요. 남자애들은 맘에 안 드는 애가 있으면 앞에서도 싫은 티를 내거든요." 합니다. 또 맨날 '남자가, 사내대장부가 그게 뭐냐' 하면서 반대로 '여자가…'라고 말하면 막 화를 내면서 성차별이라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답니다. 곁에서 듣고 있던 여자애들이 고개를 끄덕끄덕 합니다. 자기들도 할 말이 많았는데 막상 꼽아 보라니 생각나는 게 없다고 합니다.  

♡ 골방철학자
여민이는 골방철학자에게서 얻은 깨달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현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욕망은 우리 마음 속에 고이고 썩고 응어리지고 말라 비틀어져 마침내는 오만과 착각과 몽상과 허영과 냉소와 슬픔과 절망과 우울과 우월감과 열등감이 되어 버린다."
이 말이 좀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골방철학자의 비참한 삶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닫아버린 채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실천 없는 고민만 되풀이하는 것이 사람을 참 피폐하게 만드는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검은제비
그 동네 골목대장이던 검은제비는 아빠의 죽음을 계기로 어린 나이에 취직을 하여, '사회'라는 넓은 세상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게 된다. 하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하층민의 삶, 고된 노동으로 점철된 일상에 그 옛날의 당당한 모습을 잃고 점점 무표정하고 지루한 얼굴로 변해간다. 주인공은 검은제비의 변화된 모습을 통해, 이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빈부격차와 부조리를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나아가 약자의 삶에 대해 연민을 갖게 되어, 이 사회에 있는 무수한 검은 제비들을 따뜻한 눈으로 쳐다보게 된다.  

♡ 토굴할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던 토굴할매의 죽음. 여민이가 최초로 마주치게 된 '죽음'은 참 낯선 느낌을 전해준다. 여민이의 아빠는 그런 여민이에게 "죽음이나 이별이 슬픈 까닭은 우리가 그 사람에게 더 이상 아무 것도 해줄 수 없기 때문이야. 잘해주든 못해주든 한번 떠나버린 사람한테는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지. 사랑하는 사람이 내 손길이 닿지 못하는 곳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슬픈 거야."라고 말한다. 죽음을 생각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토굴할매의 죽음은, 주인공이 유한한 생 속에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 담임선생님
담임선생님은 이 작품 속에서 거의 유일한 악역이다. 아이들에게 있어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그는, 잘 사는 아이와 못 사는 동네 아이들을 차별하고, 무자비한 폭력으로 아이들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긴다. 직접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지만, 그는 주인공에게 있어 "저렇게 월급만 받는 기계는 되지 않겠다.", "저렇게는 살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다. 일종의 '반면교사'라고나 할까.


2. 내 경험 적용시키기

1)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고, 기억에 남는 인물 혹은 사건을 하나만 소개해 보자. 그 인물 혹은 사건을 통해 자신이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재미있게 이야기해 보자.

2) 지금 내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가? 그 사람에게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써 보자.

  꼼꼼한 내용 독해를 통해 어느 정도 준비가 된 덕분에, 따로 시간을 주지 않았음에도 아이들은 자기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을 떠올려보고 거기서 나름대로 인생의 의미라 할 만한 것들을 건져 올릴 수 있었습니다. 고생을 많이 한 사촌을 보면서 그 사람을 존경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생각 없는 친구인줄만 알았는데 어느 날 그 친구가 보이지 않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고 참 많이 울었다는 이야기 등 솔직한 이야기가 많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단지 어렸을 때 어른들에게 차별과 폭력, 부당한 처우를 당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며 '절대 저렇게 살지 말아야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아 안타까웠습니다.

♡ 아이글

중학교를 올라오기 전까지는 딱히 심각하게 생각하고 관심을 가졌던 일은 없는 것 같다. 중학교를 올라와서부터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세계가 아닌 듯 했다. 심한 왕따와 폭력, 친구들의 방황.
현재 중학교에 처음 들어온 나로서는 당황스럽고 충격이었다. 우리 반 몇 명의 친구들은 수업시간에 들어오지를 않거나 아예 학교를 오지 않는다.
며칠 전 일이 터졌다. 친구가 가출을 한 것이다. 그 친구가 너무나 한심했다. 가출… 그냥 가끔 뉴스에서만 들었던 상황이 내 주변에서 일어났다. 다음날 그 친구는 학교에 왔다. 매일 학생부에 불려가 처벌을 받았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 친구는 달라졌다. 수업을 잘 듣고 이젠 나보다 집중을 해서 수업을 듣는다. 쉬는 시간에 책도 많이 읽는다. 며칠 전 엄마와 잠자리에 들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것이 생각난다. 내가 이런 친구들 이야기를 하니까 그런 친구들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난 전혀 아닐 것이라고 부인하며 말했다. 하지만 엄마의 말이 맞았다. 그런 친구들에게도 배울 점이 많았다. (중2 혜영)

중학교 1학년 기말고사 후부터 2학기 중간고사 때까지 내 친구 둘이 싸웠다. 1과 2라는 친구가 있었다. 당시 친구 1에 대한 불만이 친구들에게서 속속 들렸지만 그래도 친하게 지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친구 1은 제 3자들에게 소위 '왕따'를 당하고야 말았다.
그때 꽤 오래 친구 혼자 외로이 학교생활을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잘 해결되어 다행이다. 이때만 해도 그 친구의 입장이 되어본 적이 없어 이해를 못했다. 그러나 우리 반이 이상한건지 셋이 있으면 꼭 하나를 따돌린다. 이런 현상으로 나도 많이 따돌림을 하고 따돌림을 당했다. 항상 따돌림을 가하면 당하는 법이라 나도 당했는데 물론 똑같이 즐기는 상황이니 그때만 기분이 나빴고 다시 친해졌다.
그러나 친구 1은 즐기는 상황이 아니라 고통의 연속이었음에 틀림없다. 내가 기분 나쁠 때의 기분이 한 달 이상 지속됐다니 그때 좀 더 빨리 화해하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 이 일들을 통해 내가 느낀 것은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들 하지만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중2 동현)

옛날부터 아는 한 여자애가 있었다. 그 아이는 내 성격과는 아주 상반되었다. 나는 그때 당시 나와 다른 사람은 싫어하였고, 또 싫어하는 사람한테 직접적으로 내 마음을 밝혔다. 그 아이는 매우 고지식하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오버를 하고 선생님 말은 고분고분 따르는 그런 아이였다. 나는 그 아이가 싫어서 욕도 하고 놀리고 왕따시키고 또 무시하였다. 이런 일들이 엄마들에게 알려져 나는 엄마한테서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그 아이는 나와 다를 뿐 틀리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그냥 다름을 인정하고 그 아이에게는 아무 신경도 쓰지 말라는 거였다. (중2 치헌)

큰할아버지는 내가 3학년 때 돌아가셨다. 큰 병을 앓으신 것도 아니고, 그냥 잠을 주무시다가 평화롭게 돌아가셨다고 한다. 큰할아버지는 정말 좋으신 분이셨다. 추석 때마다 큰댁에 제사를 지내러 가면 항상 많이 반겨주시고, 좋은 것도 많이 해주시고 자상하신 할아버지 이셨다. 아침에 엄마가 전화를 받고 내게 말을 해주었을 때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저녁에 장례식에 가서 절을 하고 국화꽃 한 송이를 올려놓는 순간, 큰할아버지의 사진에서 웃고 있는 큰할아버지의 눈과 마주쳤을 때였다. 그제야 실감이 났는지 나는 펑펑 울었다. 처음으로 죽음을 맞이한지라 실감도 나지 않았고, 처음 가보는 장례식이 그저 신기할 뿐이었는데, 큰할아버지가 잘 해주신 일들이 모두 한꺼번에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면서 큰할아버지를 좀 더 자주 뵙지 못하고, 좀 더 자주 연락드리지 못한 게 죄스럽고 후회스러울 뿐이었다.
그런데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친척들의 행동이었다. 아무리 큰할아버지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셨다고는 하지만, 제사를 지내는 것을 반대하신 적은 없으셨고, 그런 뜻을 내비치신 적도 없으셨는데, 큰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여태까지 추석에 해 오던 제사를 그만두고 기도 추도의식으로 하겠다고 결정을 내린 것이다. 제사가 기독교식은 아니었지만, 종교적인 의미는 거의 없었다. 그저 명절이니 서로 바빠 얼굴 보기도 힘든 친척들 얼굴도 한 번 보고, 안부인사도 나누고, 서로 덕담도 나누고 수다도 떨고,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정을 나누자는 뜻이었는데 한 순간에 바뀌어 버린 것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절에 가시는, 불교를 믿는 작은할머니는 오지 않으시겠다고 하셨고, 다른 상당수의 친척들도 가지 못할 것 같다고 하셨다. 결국 추도회는 소수만 모여 하게 되었고, 우리 가족도 한두 번 가다가 말게 되었다. 친척 분들의 뜻은 잘 알겠지만, 나로서는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서로 얼굴을 보고 정겨운 시간을 갖는 제사가 더 좋았다. 이제 추석에 우리 가족은 친척집에 가지 않는다. 누가 추석에 친척집 가냐고 물어보면, 나는 우리는 친척들끼리 잘 모이지 않는다며 씁쓸한 웃음을 짓곤 한다. (중2 선하)

사람은 혼자 살지 못하고 사회 속에서 더불어 산다. 난 '향수'란 책에 등장하는 그르누이처럼 나 자신의 향기가 없는 사람은 아니지만, 지금껏 만나 온 여러 사람들이 특성이 내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만 13세. 아직 세상의 절반의 절반도 못 산 나이다. 그렇지만 지금 이 만큼 나이를 먹는 동안 내겐 잊지 못할 분들과 그 분들의 생각이 배어 있다. 때론 그 생각을 깊이 새기며 때론 증오한다.
첫 번째, 내 인생의 혼란기는 5~6살에 일어났다. 그 당시 나는 어머니의 훌륭한 지도 아래서 열심히 한글을 공부했다. 제법 글 쓰는 게 익숙해질 무렵, 어머니께선 'ㅋ'자를 써보라고 했다. 그때 나는 삐침 하나를 빼먹어 'ㄱ'자로 쓰고 당당히 내보이다 처음으로 아픔이란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삐침, 그 까짓 획 하나가 내겐 수치를 주었고 부족한 부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 때도 잠시, 시간은 계속 흘렀다. 그 사이에 여러 사건도 많았으나, 얼마 남지 않은 이 종이의 여백도 생각하여 4학년으로 건너뛴다. 그때 나는 영어시험을 보고 있었다. 학원에서였다. 열심히 단어를 써 내려 가는데 시험 후 놀랍게도 점수가 0점이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내 책상에 뭔가 써져 있어 컨닝으로 간주했단 것이었다. 그러나 내 입장에선 그건 연습하려고 대충 휘날려 쓴 것이고 시험 문제의 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많은 아이들 앞에서 수치와 분노를 참고 있었다. 그때 난 그 선생님이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죽이고 싶은 충동마저 느꼈다. 그러나 나는 곧 그런 원망스런 마음 대신 더 철저한 성격과 빈틈없는 준비성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하튼 이렇게 나는 나름대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 증오도 기쁨도 여러 사람들의 가르침도, 과거이면서 한편 지금 현재이고, 미래이기도 할 것이다. 산다는 것은 가르치고 배운다는 말인 것 같다. 가르침이 없으면 과거에 내가 없고 배움이 없다면 미래의 내가 없으니까 말이다. 사소한 만남과 깨달음이 쌓여서 나를 만들어간다고 되새겨 본다. (중2 은유)

마무리

앞으로도 아이들은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인생의 의미를 건져 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힘은 외부가 아니라 결국 내 안에 있음을 앞에서의 여러 사례를 이야기하며 재차 강조하였습니다.
수업 중에 제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풀어낼 수 있었는데, 그것을 정리하면서 저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을 만나겠지만 최소한 타인의 불행과 나의 행복을 대조하며 기쁨을 느끼는 것만은 하지 않고 싶다고, 내가 얻는 행복이 그런 성격의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분명 '이런 사람이 되고 싶고, 이런 사람만은 절대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정리해보는 것이 오늘 마무리 활동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없어 짧게 썼지만, 나온 글들을 보니 아이들이 이 마음 변치 않고 커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아이들의 따끔한 지적을 통해,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우리 어른들이 기본적인 것들을 잊고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가, 부끄러운 마음으로 되돌아보게 됩니다.


♡ 아이글 _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요즘 뉴스나 신문을 보면 정치인들의 비리를 많이 볼 수 있다. 자신보다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에게 뇌물을 먹이고, 올바른 정치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더 챙기는 정치인들이 많이 있다. 때문에 '정치인' 하면 '뇌물이나 받아먹는 인간 쓰레기들'과 같은 인식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심어져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정치를 하는 사람들도 졸지에 나쁜 사람이 된다. 이렇게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자신에게는 이익이 덜 되더라도 남을 위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도 있다.
솔직히 나는 내 모든 걸 바쳐서 남을 위해 사는 삶은 원하지 않는다. 적당히 자기 삶을 즐기면서도 남을 위할 줄 알고 당당한 사람이 되고 싶다. 당당한 사람이 되려면 뇌물 먹는 정치인들처럼 양심에 찔리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 자신에 대해 자만심이 아닌 자부심을 갖고 당당히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고1 유진)

내가 절대 되고 싶지 않는 어른은 이기적인 사람, 눈치없는 사람이다. 여러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어른들이 가장 한심하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자기 기분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사람, '뒷담 안까는' 사람, 적당히 적극적인 사람,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는 사람. 기분이 나빠도 남에게 그 기분을 옮기지 않기 위해선 웃는 얼굴로 대해야 할 필요도 있고, 내가 잘나지도 못했는데 남을 흉보는 것은 참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는 사람… 나는 이게 제일 되고 싶다. 사람의 마음을 잘 알고, 이해하고, 헤아릴 수 있는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 (고2 순원)

요즘은 모든 어른들이 존경받는 것은 아니다. 아주 극소수일 뿐이다. 물론 지금 대부분의 학생들은 커서 저 극소수의 어른이 되고 싶어 할 것이다. 나도 그렇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존경받을 만한 어른은 어떤 사람일까?
내 생각에는 자신이 맡은 일을 최대한 열심히 하는 사람이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다. 물론 이건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새 그 기본적인 일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또한 나는 학벌이 인생을 살면서 약 30% 정도는 영향을 주겠지만 그래도 학벌은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학생이야 학생의 본분이 공부이니 학벌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이다. 요즘은 인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학벌로 유명세를 타는 사람도 많다. 예를 들면 연예인 타블로 같은 사람이드. 스탠포드를 나왔지만 타블로는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지금 맡은 일을 가장 중요시한다. 그래서 나는 타블로를 좋아한다. 타블로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 (고1 수언)

나는 내 이익만을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만은 절대 되지 않을 것이다. 예전부터 계속된 미국의 이라크 침공도 그렇고, 일본이 자신만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생각도 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그들이 돈의 노예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현대 시대에는 돈이면 다 된다는 사고방식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가뜩이나 적막한 우리의 삶을 더욱 황폐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부시나 고이즈미 같은 이기적인 사람들을 더 많이 생기게 하는 꼴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나만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고1 정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