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출논제 해제
- 2006 서울대 서울대 정시

편집부

[논제]
사례 <A>, <B>, <C>는 현실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경쟁의 양상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이 세 가지 경쟁의 성격을 설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쟁의 공정성과 경쟁 결과의 정당성에 대해서 논술하시오. (제시문 <1> ~ <7>을 참고할 것)

【사례 A】
고슴도치와 토끼가 맛있는 음식을 걸고 달리기 시합을 하였다. 고슴도치는 꾀를 써서 몰래 자신과 닮은 아내를 경주의 결승점에 먼저 보냈다. 토끼가 도착하자 고슴도치 아내가 “나는 벌써 와 있다.”하고 말하였다. 결국 고슴도치가 음식을 차지하였다.

【사례 B】
초등학교 축구 팀과 아마추어 성인 축구 팀이 축구경기를 하게 되었다. 심판은 새로운 규칙을 정하여, 초등학생 팀은 11명, 성인 팀은 6명으로 하며, 성인 팀 선수는 상대에게 태클을 할 수 없도록 하였다. 심판은 규칙의 준수 여부를 엄격히 감시하였다.

【사례 C】
새끼고양이 가운데 한 마리가 유난히 작고 허약해서 어미젖을 먹을 때도 다른 형제들에게 밀려 생존이 어렵게 보였다. 주인이 그 고양이에게 먹이를 먼저 주는 등 특별히 돌보고 사랑하여 그 고양이도 다른 고양이들과 마찬가지로 잘 성장할 수 있었다.

【제시문 1】
어떤 마을에 누구나 가축을 방목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는 공동의 땅이 있었다. 이 마을 주민들은 각자 자신의 땅을 갖고 있지만, 이 공동의 땅에 자신의 가축을 가능한 한 많이 풀어 놓으려 한다. 자신의 특별한 비용 부담 없이 넓은 목초지에서 신선한 풀을 마음껏 먹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각 농가에서는 공유지의 신선한 풀이 자신과 다른 농가의 모든 가축들을 기르기에 충분한가 걱정하기보다는 공유지에 방목하는 자신의 가축 수를 늘리는 일에만 골몰하였다. 주민들의 이러한 행동으로 인하여 공유지는 가축들로 붐비게 되었고, 그 결과 이 마을의 공유지는 가축들이 먹을 만한 풀이 하나도 없는 황량한 땅으로 변하고 말았다. (개릿 하딘, 「공유의 비극」)

【제시문 2】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라고 할지라도 인간의 본성에는 분명 연민(憐憫)과 동정(同情)의 원리가 존재한다. 이 원리들로 인해 우리는 인간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자기에게는 별 이익이 없어도 타인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타인의 비참함을 목격할 때 우리는 이러한 연민과 동정을 느낀다. 도덕적이거나 인간미가 풍부한 사람은 물론이고, 무도한 폭한(暴漢)이나 사회의 법률을 극렬하게 위반하는 사람도 이러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아담 스미스, 『도덕감정론』)
【제시문 3】
자본주의의 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전통적 형태의 경쟁이 아니라 신상품·신기술·신공급원·신조직형태 등과 관련한 경쟁이다. 이 경쟁은 비용 또는 품질에서 결정적 우위를 차지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며, 기업의 이윤이나 생산량의 다과(多寡)를 좌우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토대 및 그 생존 자체까지도 좌우한다. 이런 종류의 경쟁은 다른 경쟁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어떤 사업자가 자기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 외부에서는 경쟁압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는 늘 경쟁 상태에 있다고 느낀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결국 완전경쟁 상태와 마찬가지로 행동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경쟁이 독점보다 언제나 바람직하다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적인 혁신자가 차지하는 독점이윤은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요제프 A. 슘페터,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

【제시문 4】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회적 또는 분배적 정의라고 간주되는 것은 인위적인 질서에서만 의미를 가질 뿐이지 자생적인 질서 속에서는 전혀 의미가 없다.
자유의 제한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것 때문에 잃게 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시장 질서에 대한 간섭의 직접적인 효과는 대부분 가시적이며 피부로 느낄 수 있으나, 간접적으로 나타나는 부정적인 효과는 대부분 알기 어렵기 때문에 무시되기 쉽다.
따라서 자유와 간섭 사이의 선택이 그때그때의 편의에 맡겨진다면, 이는 분명히 자유의 점진적인 파괴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자유를 제한하여 야기되는 손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법, 입법, 그리고 자유』)

【제시문 5】
사상 체계의 제1 덕목을 진리라고 한다면 정의(正義)는 사회 제도의 제1 덕목이다. 이론이 아무리 정치(精緻)하고 간명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면 배척되거나 수정되어야 하듯이, 법이나 제도가 아무리 효율적이고 정연한 것일지라도 그것이 정당하지 못하면 개혁되거나 폐기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사회 전체의 복지라는 명목으로도 유린될 수 없는 정의에 입각한 불가침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정의(正義)에 따르면 타인들이 가지게 될 더 큰 선(善)을 위하여 소수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 다수가 누릴 더 큰 이득을 위해서 소수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동등한 시민적 자유란 이미 보장된 것으로 간주되며, 따라서 정의에 의해 보장된 권리들은 어떠한 정치적 거래나 사회적 이득의 계산에도 좌우되지 않는다. 그보다 나은 이론이 없을 경우에만 결함 있는 이론이나마 따르게 되듯이 부정의(不正義)는 그보다 큰 부정의를 피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참을 수 있다. 인간 생활의 제1 덕목으로서 진리와 정의는 지극히 준엄한 것이다. (존 롤즈, 『사회정의론』)

【제시문 6】
경제가 시장기능에만 의존하면 시장이 붕괴될 수 있기 때문에 국가는 경쟁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기업은 경쟁질서에 반하여 행동할 때 경쟁질서를 준수할 때보다 더 큰 이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경쟁질서에 반하는 행위를 하고자 하는 충동을 가지게 된다. 안정을 얻고자 하는 욕구와 권력에의 의지(意志)가 각 개인들에게 경쟁의 자유로운 흐름을 조작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한다. 한번 형성된 경제권력은 시장 자체의 힘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붕괴되기 어렵다. 그런데 강력한 경제권력은 경쟁관계를 마비시키고, 권력구조의 고착화로 인하여 경제적 비효율을 초래하며, 경제의 흐름을 왜곡하여 우수한 시장참여자에게 손해를 끼친다. 그러므로 국가는 경쟁이 그릇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경쟁을 보호할 임무가 있다. 국가는 경쟁의 원칙을 세우고 이를 관철시켜야 하며, 기업은 이러한 틀 안에서 경쟁을 통하여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오토 슐레히트, 『사회적 시장경제』)

【제시문 7】
‘경쟁’이라는 말은 어원적으로 ‘함께 추구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경쟁의 논리가 기술의 진보와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인간의 욕구 수준을 계속 높여감으로써 새로운 진보와 창조를 가능케 한 것이다.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경쟁 심리는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적인 동인(動因)이었다. 정치적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이익집단 또는 정당 간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경쟁은 어원적 의미와는 달리 변질되어 통용된다. 경쟁은 더 이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경쟁은 그 자체가 하나의 범세계적인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았다.
경쟁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승리자와 패배자가 확연히 구분된다. 물론 아무렇게나 경쟁하는 것은 아니다. ‘게임의 법칙’이 공정했을 때 패자도 승부의 결과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지만 경쟁 사회에서는 ‘협상’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거나 타협점을 찾을 여지가 없다. 경쟁에서 상대방을 이기면 된다는 간단한 논리만이 존재할 뿐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경쟁이란 곧 상대의 이익을 빼앗는 과정이다. (리스본 그룹, 『경쟁의 한계』)

논제의 이해

최근 서울대에서 출제하고 있는 논제들을 보면 특정한 분야의 구체적인 쟁점보다는 인간 삶의 각 분야에서 핵심적인 문제를 두고 그에 대한 다양한 쟁점들을 정리해 나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작년 출제된 논제가 ‘진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다룸으로써 인식론에서 가장 포괄적인 논제를 다루고 있다면, 올해 출제된 논제 역시 ‘경쟁’이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는 사회정의의 핵심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사회적인 영역을 다룬 논제에서는 가장 폭넓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논제는 학생들이 접근할 때 할 수 펼칠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는 점에서 손쉬운 측면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폭넓은 영역을 다루다 보면 출제자의 의도와 동떨어진 논지를 펼치기 쉽다는 점에서 까다로운 문제 형식일 수도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유형의 논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요구조건과 문제의 형식을 꼼꼼하게 따져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올해 출제된 논제의 요구조건은 사례 <A>, <B>, <C>는 현실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경쟁의 양상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이 세 가지 경쟁의 성격을 설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쟁의 공정성과 경쟁 결과의 정당성에 대해서 논술하시오. (제시문 <1> ~ <7>을 참고할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첫 번째는 세 가지 경쟁의 성격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경쟁의 공정성과 경쟁 결과의 정당성에 대해 논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요구조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쟁의 형태를 분류하고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학생들이 이 논제에 접근할 때는 두 번째 논제를 먼저 해결함으로써 경쟁의 유형을 설명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두 번째 논제를 해결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경쟁의 공정성'과 '경쟁 결과의 정당성'이 나뉘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경쟁의 공정성'이 주로 경쟁 과정이 얼마나 정의로운 것인가의 문제라면, '경쟁 결과의 정당성'은 경쟁의 결과로 나타나는 차이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논제는 핵심적으로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이 필요하며, 경쟁이 허용될 수 있는 영역은 어디까지인가를 묻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학생들은 먼저 제시문들을 통해서 공정한 경쟁의 조건과 한계를 설정한 후 이에 입각해서 세 가지 사례를 분석하는 방향으로 논지를 펼치면서,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경쟁의 양면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제시문의 이해

(1) 제시문 독해

이 논제는 모두 10개의 인용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7개의 제시문들에 대해서는 '참고할 것'이라는 단서가 붙어있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모두 명시해줄 필요는 없습니다. 제시문들을 모두 명시해주려고 무리하게 노력하면, 이는 오히려 글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시문들의 내용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이 논제에서 제시문을 참조하라고 한 이유는 제시문의 내용이 학생들이 논지를 정하면서 빠뜨리기 쉬운 쟁점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학생들은 7개의 제시문을 모두 자신의 글에 인용할 필요는 없지만 제시문에서 다루고 있는 쟁점들은 반드시 짚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문을 살펴보면 제시문들은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첫째는 경쟁의 부정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는 제시문들입니다. 제시문 1과 제시문 7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제시문 1은 경쟁 자체가 사회전체적인 환경이나 질서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제시문 7은 일견 경쟁이 가져온 긍정적인 면을 말하고 있는 듯 하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경쟁이 타인의 이익을 뺏는 과정이라는 점을 통해 경쟁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측면을 말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경쟁 자체가 가진 부정적인 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경쟁이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으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이 제시문들에 대해 학생들은 크게 두 가지 시각을 갖을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제시문들의 논지를 반박하면서 경쟁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옹호하는 경우이며, 두 번째는 이 제시문들의 논지를 인정하면서 경쟁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 혹은 제한을 주장하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모든 경쟁을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기 때문에(왜냐하면 경쟁을 제한한다는 것은 곧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경쟁의 제한에 대한 기준을 설정해야만 합니다. 여기서 두 번째 내용의 제시문들을 참조할 수 있는데, 그것은 주로 제시문 5와 제시문 6과 같이 경쟁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에 대한 기준과 목적을 설명해놓은 글들입니다. 먼제 제시문 5는 모든 사람은 사회 전체의 복지라는 명목으로도 유린될 수 없는 정의에 입각한 불가침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정의(正義)에 따르면 타인들이 가지게 될 더 큰 선(善)을 위하여 소수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 다수가 누릴 더 큰 이득을 위해서 소수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동등한 시민적 자유란 이미 보장된 것으로 간주되며, 따라서 정의에 의해 보장된 권리들은 어떠한 정치적 거래나 사회적 이득의 계산에도 좌우되지 않는다.는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 소수의 자유, 즉 자유롭게 경쟁할 자유를 억압할 수 없다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소수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주장은 아니며, 오히려 정의에 합당할 경우 자유로운 경쟁에 대한 제한이 합당할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학생들이 경쟁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의 기준을 설명할 때는 반드시 사회정의에 그 개입이 합치되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다음으로 제시문 6은 경쟁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이 경쟁원리와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정한 경쟁원리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학생들이 경쟁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 자체를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제시문 4의 논지와 정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시문 4와 제시문 6 중에서 하나의 입장을 선택하고 다른 하나를 반박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제시문 7의 경우도 경쟁 자체를 본질적으로 악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이 논지와는 상반된 입장이라는 점에서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경쟁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 혹은 제한이 만능의 해결책은 아닙니다. 경쟁이란 본질적으로 제시문 5에서 암시하듯이 인간의 자유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제한은 곧 자유에 대한 권력의 개입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시문 2, 제시문 3, 그리고 4는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경쟁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 혹은 제한에 대한 비판을 다루고 있는 내용입니다. 먼저 제시문 3은 경쟁에 대한 개입의 근거로 흔히 사용되는 독점에 대해 그 역시 자연스러운 경쟁의 보상이며, 독점을 통해 경쟁의 원리가 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들어 경쟁에 대한 개입을 부정합니다. 따라서 학생들이 단순히 독점의 폐해를 들어 경쟁에 대한 제한을 옹호하려고 주장해서는 안됩니다. 그러한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시문 3의 논지를 반박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독점 상태에 있는 기업 역시 경쟁을 하고 있다는 주장은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시문 4는 경쟁에 대한 개입이 보이지는 않지만 더욱 부정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경쟁에 대한 개입을 부정합니다. 하지만 이는 제시문에서 말하고 있는 더욱 부정적인 결과가 무엇인지, 또 그것이 경쟁에 대한 개입을 지키려고 하는 가치와 동일한 것인지에 대한 분석을 통해 반박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시문 2는 이보다 훨씬 간접적이지만 경쟁에 대한 제한이 제도나 권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본성적으로 지닌 동정과 연민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는 사례를 들어 인위적인 개입을 부정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주장 역시 동정과 연민 역시 사회적인 영향으로 형성되거나 부정된다는 점을 들어 반박할 수 있습니다.
제시문들을 통해 학생들은 크게 두 가지 논지를 펼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유 경쟁은 어떠한 경우에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 경우 흔히 경쟁의 과정과 결과의 부정적인 측면이라고 생각되는 점에 대해 반박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경쟁에 대한 제한을 옹호하는 논지입니다. 이 경우 경쟁에 대한 개입을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들을 반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에 대한 개입이 정당화되는 기준(예를 들어 경쟁의 과정에 대해서만 개입해야 하는지, 경쟁의 결과도 조작되어야만 하는지)도 설명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2) 사례 분석

논제에서 다루고 있는 세 가지 사례에 대한 분석 역시 학생들이 펼치는 논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세 가지 사례는 각각 경쟁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의 정도에 차이를 갖고 있는데, 아무런 규제가 없는 경우, 경쟁의 과정에 대해서만 개입하는 경우, 경쟁의 결과에 대해서 개입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서울대에서 발표한 내용에 기반해 각각의 사례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  )은 편집부에서 보충한 내용입니다.)

<사례 A>는 그림(Grimm) 형제 동화집에 나오는 「고슴도치와 토끼」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여기서는 아무런 규제나 제3자의 개입이 없이 오로지 경쟁자 상호간의 경쟁 행위만이 있다. 고슴도치의 행위를 규제가 없는 자유시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불공정 경쟁 상황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이 분석은 경쟁에 대한 제한을 옹호하는 논지에서 분석할 수 있습니다.)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있는 자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혁신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비유한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이 경우는 경쟁에 개입을 부정적으로 보는 논지에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혁신이 일어나고 그 결과 경쟁에서 불리한 자들도 언제나 불리한 결과를 얻게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경제 영역에서 경쟁은 이와 같이 치열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음식 내기라는 점에서 경제 영역에서의 경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경제 영역 이외의 분야에서도 이러한 경쟁 상황을 상정하여 경쟁의 공정성과 정당성 문제를 검토할 수도 있다.

  □ <사례 B>는 초등학교 축구 팀과 성인 축구 팀 사이에 시합을 한다는 가상적 상황을 상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운동 경기는 동일한 조건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그 결과에 승복하여야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 사례는 경쟁자 사이에 현저한 능력 차이가 존재하는 특별한 경우로서, 공정한 경쟁의 조건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는 착안점을 제공하고 있다. 이 사례는 경기 규칙과 심판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사례 A>와 다르다. 그러나 심판은 경기 규칙의 변경을 통하여 경쟁자들이 상호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할 뿐이고, 경기 과정에서 개별적 행위에 대해서는 직접 간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례 C>와 차이가 있다.
경쟁에 개입하되 경쟁의 규칙이라는 틀만을 규제하고, 가능하면 경쟁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자유를 존중한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페어플레이가 강조되는 운동 경기 영역에서 경쟁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다른 영역에서의 경쟁에서도 이러한 경쟁 방식이 이루어질 경우를 상정하여 분석할 수 있다. (이는 제시문 6의 논지와 연결되는데, 이는 입장에 따라서 자유 경쟁에 대한 제한으로 볼 수도 있으며, 자유 경쟁의 형태로 볼 수도 있습니다.)

  □ <사례 C>는 고양이를 키우는 주인이 새끼고양이 형제들 사이의 경쟁에 개입해서 사실상 경쟁을 배제하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사안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규제, 즉 사회복지 정책을 위한 경쟁 제한의 예라고 할 수도 있다. 이 사례가 생존의 문제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러한 온정주의적 개입이 경제 영역과 같은 다른 영역에서도 타당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러한 개입이 다른 고양이에게 피해가 된다는 문제점을 단서로 하여 비판적인 입장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이는 제시문 4와 5의 논지와 관련이 됩니다.)

보다 창의적인 논술을 위하여

최근 서울대에서 출제하고 있는 논제들을 보면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독서와 독해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제시문들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이끌어내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일 수 있습니다. 또한 구체적인 쟁점 대신에 포괄적인 쟁점을 제시함으로써 거시적이고 종합적인 안목을 키운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10개에 이르는 제시문, 혹은 다양한 요구조건이 과연 학생들의 창의적인 사고를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되는지에는 의문의 여지가 남습니다. 오히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제시문의 독해를 통해 출제자가 원하는 답을 짜집기 해내는데 급급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더더구나 걱정되는 것은 학생들의 글에서 무리할 정도로 많은 내용을 요구하면서, 정작 학생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과 가치관, 통찰력 등의 보다 본질적인 요소를 펼칠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논술이 단순히 체계적인 지식을 정리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창의적인 사고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라면, 한정된 분량에 많은 쟁점을 쏟아내도록 요구하기 보다는 하나의 쟁점에 대한 자유롭고 깊이 있는 성찰이 가능하도록 문제가 출제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