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3 -뮌헨,  독일에 대한 나의 이미지 그대로

브뤼셀에서 민휀으로 오는 길에 문제가 생겼다. 런던에서 브뤼셀까지는 유로스타를 탔지만 이제부터는 미리 예매를 해 둔 유로레일을 타야되기 때문에 브뤼셀에 도착하자마자 역무원에게 유로레일 사용에 대해 말했다. 돈도 따로 받고 표도 주면서 기차를 타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기차에서 표검사를 하던 역무원은 표에 도장이 안 찍혔다며 중간역에 내리란다. 전후사정을 말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결국 나는 짐을 지키고 있고 딸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도장을 받아왔는데 기차는 이미 떠나버렸다. '이 브뤼셀 인간들! 끝까지 말썽이야' 욕을 바가지로 하면서 두 시간을 다시 기다려 다음 기차를 탔다.
뮌헨 중앙역에 내리니 깜깜한 밤이었지만 호텔이 가깝고 찾기 쉬워 다행이었다. '큰 짐을 가지고 다닐 때는 반드시 숙소를 역 가까이에 정할 것' 여러 책자에서 누누이 보았던 것인데 과연 그렇다. 브뤼셀처럼 무섭지도 않아 보여 짐을 풀고 다시 나와 들어갈 때 보아둔 역 근처 상점에서 먹을 것을 샀다. 소시지와 뭔가 알 수 없는 것이 잔뜩 들어있는 샐러드, 그리고 빵, 물, 오렌지와 사과까지 사들고 들어가 저녁으로 먹었다. 아무리 먹어도 뭔가 부족한 느낌, 또다시 뜨뜻한 국물 생각이 났지만 종일 기차에 지친 딸을 보며 그저 맛나게 먹었다.
지도대로 정확하게 걸어가서 마리엔 광장에 다달았다. 서울의 강남역이나 명동 정도 되는 듯, 광장을 중심으로 상점도 많고 사람들도 많았다. 거리도 깨끗하고 사람들의 표정이 무척 밝아 보기 좋았다. 일단 상점 순례부터 시작했다. 이건 스무살 딸의 강렬한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곳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됐다. 이쁘고 새로운 물건에 대한 우리 딸의 호기심은 끝이 없다. 그래도 종일 열십자 형으로 된 거리를 누비며 돈 계산을 열심히 하면서 나름대로 알뜰한 쇼핑을 하는 듯 해서 그냥 아무소리 않고 따라다녔다.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이곳은 모두 세일기간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미친듯이 물건을 사러 다니는 것 같았다. 상점마다 사람들로 북적였다. 견물생심, 딸을 따라다니며 보다보니 나도 사고 싶어져 몇가지 샀다.
뮌헨은 그저 그런 평범한 도시인 듯하다. 마리엔 광장과 광장에 있는 시청사, 그리고 성모교회가 볼만한 건물인데 이미 런던과 브뤼셀에서 보았던 형태와 비슷하여 큰 감흥이 없었다. 무슨 자동차 관련 박물관도 있다는데  둘 다 별 관심이 없어서 안가기로 했다.
책에서 본 맥주집을 찾아가 보았다. '호프브로이'.  책마다 한 번 들러 보라고 했는데 그건 밤에 이루어지는 일 같았다. 낮에 그 앞에 가서 보니 그저 그렇다. 술을 마시는 대신 그 옆에 있는 일식당에 들어갔다. 바깥에 세워둔 메뉴판에 김치우동이 있어서였다. 뜨거운 국물과 김치에 대한 간절함, 토마토스프와 빵, 감자, 그리고 소시지에 느글느글해진 속을 달래고 싶은 그 간절함이 독일에서 일식당을 찾게 했다. 뭐 그리 칼칼하진 않았지만 아쉬운 대로 한 사발이나 되는 국물을 다 들이켰다.
여행은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 낯설음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물도 설고 낯도 설고 말조차 낯설은 곳에서 몸도 마음도 몹시 긴장해서 그런지 여행 일주일 째, 딸도 나도 몸살이 났다.  날마다 서너시간, 어떤 때는 다섯시간이 넘도록 걸어다녔으니 어깨, 허리, 골반..... 어디 안 아픈 곳이 없다. 사실 뮌헨에서 조금 떨어진 퓌센이란 곳에 가 보고 싶었는데 욕심을 버리고 하루쯤 숙소에서 푹 쉬자는 결론을 내렸다.
여행을 다 끝내고 뒤돌아보니 이곳의 호텔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역과 중심가에서 가까워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되었고 시끄럽지도 않았고 깨끗했으며 무엇보다 아침식사가 그중 나았다. 그때는 런던과 브뤼셀, 두 곳만 지나온 뒤라 잘 몰랐지만 나중에는 달랑 마른 빵이랑 우유, 커피만 주는 곳도 있었기 때문에 몇 가지 종류의 빵, 스크램블드 애그, 소시지, 그리고 오이피클,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토마토, 여러 가지 음료수...... 마지막 프랑스에서는 뮌헨의 호텔이 그립기까지 했다.
이번 여행에서 제일 아쉬운 것이 책을 많이 가져오지 않은 것이었다. 가져온 책은 벌써 다 읽어버렸다. 마리엔 광장에도 서점이 있었다. 딸은 거기서 영어로 된 책을 사서 읽는데 한글로 된 책을 어디서 산단 말인가. 할 수 없이 읽었던 책을 또 읽었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개의 찬란한 태양', 비행기 안에서 단숨에 다 읽었는데 다시 읽어도 눈물이 났다.
마리엔 광장 포장마차에서 산 샌드위치와 새콤달콤한 체리를 먹으며 종일 뒹굴었다. 사실, 밥하고 먹이고 치우고 쓸고 닦고..... 끝없이 반복되던 일상을 떠나 일어나서 잠자리도 정리하지 않고 몸만 정리하고 나갔다 오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고 시원찮지만 차려진 밥을 먹기만 하면 되는 날을 일주일 넘게 살아보니 좋기도 하다. 손을 쓸 일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손도 보들보들해졌다.
다음 행선지는 프라하인데 계획대로라면 뮌헨에서 밤기차를 타고 가서 다음날 아침에 프라하에 도착하는 거였다. 그런데 역에 가서 표를 달라고 하니 밤기차가 없단다. 나중에 보니 얼마전부터 밤기차가 없어진 거였는데 이 사람들은 전후 그런 자세한 사정을 이야기 해 주지 않고 무조건 없단다. 독일사람과 한국사람이 서로 제나라 말이 아닌 영어로 소통을 하려니 영어가 젤로 고생인 듯 했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되서 역 창구가 일곱 개 였는데 딸이 창구마다 가서 다시 물어 보았다. 그런데 창구마다 다른 말을 했다. 아예 프라하 가는 기차가 없다고 하는 사람, 세 번 갈아타라면서 표는 첫 번째 경유지까지만 있다는 사람, 국경까지 가서 다시 표를 사서 체코로 가야된다는 사람, 유로레일표로는 못가니 표를 다시 사라는 사람......
그 일곱사람의 말을 종합해 보니 아마 체코가 유로연합에 포함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되었다. 창구의 사람들은 제각각 자기가 알고 있는 것 만 되풀이해서 말할 뿐 여행자의 입장에 대해서는 모르쇠였다. 결국 낮에 가는 기차, 유로레일이 아니고 그냥 국경을 지나 프라하로 가는, 돈을 별도로 내는데 좌석표도 없이 그냥 타는 기차가 있는 걸 알았고 그 표를 샀다.
정확하긴 한데 별로 친절하지 않은 정보를 알려주고 뒤도 안 돌아보는 사람들. 호텔의 주방 아줌마 (주방 아줌마는 몹시 부지런했다. 사람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계속 문에 기대서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보고 있다가 뭔가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다 싶으면 번개같이 달려와서 해결을 해 주었다. 그러나 한 번도 웃지 않았다.) 와 역 창구의 일곱 사람을 통해 나에게 새겨진 독일인은 몹시 전형적이었다. 정확하고 깔끔하게 자신의 일을 잘 하지만 결코 친절하지 않은 그들의 모습은 다소 딱딱한 어투와 함께 영화 따위를 통해 가졌던 이미지와 많이 비슷했다. 어쨌건 뮌헨은 여정의 삼분의 일 즈음에 잘 먹고, 잘 쉬었다 떠나는 곳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