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류상현

마음에도 눈이 있다면
어디에다 그려야 할까 당연히 손바닥이지
이제까지 하릴없이 시간만 보내다가
이제와서 아이들을
무엇으로 가르친단 말인가

그래도 아이들 생각나면 자다가도 눈이 번쩍 뜨이고
나도 모르던 힘이 펄펄 솟는다
이거이 진정일까
마음에도 눈이 있어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손바닥 잔주름을 보며
열심히 해보자 그러면 길이 열리겠지
생각한다
어눌한 말솜씨에 아이들 쉬운 말도
못 알아듣는 우둔함을 알기에
그러나 슬며시 겁이 난다

갈팡질팡 여린 마음
손바닥에 달려 있으면 좋으련만
야구 방망이로 멀리 날려버리게

아이들은 잘 웃는다
화가 나도 돌아서서 웃고
달려가다 넘어져 무르팍이 깨져도
금방 배시시 웃는다

열심히 읽고 쓰고 그리고
열심히 아이들 생각하고 달려보자
착하고 아름다운 아이들이 내게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너의 행로>
-오아름

그 처음에 난 무엇을 쥐었을까
아마도 나는 한 웅큼의 울음소리를 잡는데
맨 처음 그 처음에 내 손을 사용했겠지
엄마 머리카락을 쥐며 장난도 쳐보았겠지

그 어린 날 기도란 걸 배우고 나서는
어쩌면 나는 두 손을 모으고 마음 다해 기도를 했을지도 몰라
이제 조금 커서는
연필을 쥐고 이름을 썼겠지
그러다 학교에 가서는 문제도 풀고 채점도 하고
그리고 어떤 때는 손을 떨다가 시험지를 구겨버리기도 했을 거야
책장을 넘기고 일기를 쓰고
교복을 입고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 안경을 올려쓰고

하루 하루 하루 하루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빠져나가
손가락 친친 감은 서늘한 냉혈무쇠 뱀 반지가 번쩍일 때도 있었지
열개의 손톱에는 온통 다른 색깔
네 마음의 혼돈 위를 덧칠했겠지
그 때쯤에 나는 아마 숟가락보다 맥주잔을 쥔 날이 더 많았겠지
책장을 넘기고 일기를 쓰고
히피 옷을 입고
머리카락을 물들이고 렌즈를 끼고

흘러 흘러 흘러 흘러
대학졸업장을 받아들고나서는
밤새도록 클릭하며 이력서를 보내다가
그러다가 면접을 볼 때는 살짝 손장난을 했을지도 몰라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결과를 기다리지 않아도 될 즈음엔
밤새도록 자판을 두드리며
다른 사람을 위한 글을 쓰며 그렇게 나를 위한 돈을 벌기도 했었어
그 때 무인자동화기기 앞에서 빼어들던 지폐들은
무엇을 위해 이 손 위를 스쳐 어디로 사라져갔을가

차츰 차츰 차츰 차츰
내 손의 행적이 기억나지 않아
너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어제 어제 오늘 내일
보드마카를 쥐고 칠판 앞에 있구나

아마 한 번 아니 몇 번
어떤 때는 얼굴을 가리고 운 적도 있었어
아니 그런 적은 없었어

너도 늙고 나도 늙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