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나서
“서울을 떠나라” / [일다 2005-05-10 05:21]
서울에서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3~4월의 황사는 날로 강도가 심해지고 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서울의 대기 오염이 점차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 서울의 대기 상태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물론 군데군데 대기 오염을 측정하는 센서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파편적인 수치들을 가지고 서울이 당면한 상태를 진단하기란 어려운 노릇이다.
생태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초록정치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석훈씨가 쓴 <아픈 아이들의 세대>는 부모들에게 아이를 위한다면, 어서 빨리 서울을 떠나라고 권유한다. 현 상태대로 개발이 진행된다면, 새로 태어날 아이들이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아토피를 비롯한 각종 유아질환에 시달릴 “아픈 아이들의 세대”가 된다는 것이다.
서울을 떠나라는 갑작스런 권유는 당혹스럽다. 그러나 지은이는 그에 대한 근거를 조목조목 제시한다. 이 책의 장점은 환경오염의 구체적인 정도를 서울, 나아가서 한국 전체에서 이루어지는 건설 및 경제정책의 문제점과 연결 지어 쉽게 설명한다는 것이다.
도시건설은 ‘생명 없는 발전’
우선 지은이는 피엠텐(PM10) 수치를 설명한다. 피엠텐은 10마이크로미터 미만의 미세입자들로, 주로 자동차 배기가스에 섞여있고 공사장 주변에서 날아오기도 한다. 지은이는 집에서 기르던 화분들이 집단폐사상태에 처한 사건 때문에 서울 피엠텐 현상의 심각성을 깨닫게 됐다. 화분들은 수건으로 닦아주자 다시 살아났다. 피엠텐은 기준치에 도달해야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오염물질과는 달리, 아무리 미량이라도 인체에 축적돼 보건상의 피해를 낳는 무서운 물질이다.
지은이는 피엠텐 현상이 심각할 수밖에 없는 서울의 환경 상태를 둘러본다. 서울은 피엠텐 오염도가 OECD 가입국 중에 단연 1등이다. 서울의 인위적인 녹지란 녹지로서의 기능을 거의 가지고 있지 못한다. 서울시에서 생태 운운하며 실시한 청계천 복원사업은 위험하기 그지없다. 상류지역의 복원이 없는 만큼 청계천에는 고도 처리한 생활하수와 지하철 역사에서 나오는 지하수가 흐르게 되는데, 이 생활하수에는 ‘환경 호르몬’에 해당하는 수많은 물질들이 섞여 있다.
또한 청계천 인근은 모두 고밀도 개발이 이루어질 예정인데, 이 재개발은 엄청난 피엠텐을 양산할 것이다. 현재 서울시는 각 구청마다 25개의 뉴타운 사업과 8개의 강남북 ‘균형발전 촉진지구’가 동시에 착공할 예정이다. 여기에 1천 개에 달하는 소규모 재개발사업까지 진행된다면, “서울에서 아이를 키워도 좋은 곳은 없다”.
‘서울형 스모그’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지은이는 다양한 부분에서 환경오염의 원인을 찾는다. 크고 넓고 편리한 ‘뉴욕 스타일’이 추구되다 보니 한정된 생태조건을 지닌 서울이 과부하를 겪는다. 또한 아파트를 선호하는 한국만의 특수한 스타일은 도시건설자본의 고층 아파트 건설 및 상업용지 전환을 촉진한다.
무늬만의 녹지를 남겨놓은 채 아파트가 계속 늘어나는 서울. 지은이는 이를 가리켜 ‘생명 없는 발전’이라고 비판한다. 서울은 강원도의 댐에서 물을 공급 받고, 서해안 근처에 쓰레기를 매립하며, 도시 외부의 생명을 끊임없이 위협할 뿐만 아니라, 무분별한 개발 때문에 내부의 생명까지도 위협하는 공룡과도 같다는 것이다.
생명을 화두로 삼은 경제론 필요
도시개발만이 문제가 아니다. 지은이는 이경해 전 한국농업경영인 중앙연합회 회장의 자살 이후, 농림부가 농민을 “달래기” 위해 실시한 농촌정책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음을 폭로한다. 농림부는 세계화 시대의 경쟁에 뒤쳐지지 않게 ‘전문농업’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 주장과 함께 농지법을 개정해 전체 농지의 50%정도만 절대농지로 보전하고 나머지 땅에는 전면적인 개발을 허용하려고 한다. 그러나 개발 허용은 골프장과 카지노 건설로 이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물론 건설경기가 살아나야 경제가 나아진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지은이는 건설과 빈곤과의 관계를 설명하여 뉴딜정책의 허구성을 폭로한,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쿠즈네츠의 이론과 그에 기반한 통계수치를 빌어서 그 같은 관념을 반박한다. 국내 총생산(GDP) 가운데 대부분의 정상적인 국가들이 8~15%를 건설부분에 사용하는 데 반해 한국은 24%나 사용한다.
그런데 1인당 국민소득과 국내 총생산 대비 건설업 매출 비율을 살펴보면, 건설업 매출이 과도할 경우 경제위기가 발생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 한국 상황은 부동산 투기 붐이 일어났던 미국의 대공황 직전과 오히려 유사하므로, ‘한국형 뉴딜’ 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은 억지다.
지은이는 현 한국사회의 경제 담론이 “외형적으로는 뉴욕의 맨해튼에 근무하는 금융기업 종사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내용상으로는 악덕 부동산업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고 비판한다. 때문에 건설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경제를 위해서라도 ‘생명’을 화두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생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체들은 환경질환으로부터 아이를 지키고자 하는 어머니들이다. 지은이는 어머니들이 이 시대의 모순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지적하며, 아버지 또한 생명의 감수성을 가지고 ‘생명’을 지키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늘어나는 평균수명에 대책을 세우자고 호들갑을 떠는 한편 살아있는 동안 며칠이나 아프지 않을까를 생각해야 하는 다음 세대를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사회”라는 지은이의 지적이 통렬하게 다가온다.
* '일다'에 게재된 모든 저작물은 출처를 밝히지 않고 옮기거나 표절해선 안 됩니다.
ⓒ www.ildaro.com 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윤은미 기자
서울에서 아토피로 고생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3~4월의 황사는 날로 강도가 심해지고 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서울의 대기 오염이 점차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 서울의 대기 상태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물론 군데군데 대기 오염을 측정하는 센서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파편적인 수치들을 가지고 서울이 당면한 상태를 진단하기란 어려운 노릇이다.
생태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초록정치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석훈씨가 쓴 <아픈 아이들의 세대>는 부모들에게 아이를 위한다면, 어서 빨리 서울을 떠나라고 권유한다. 현 상태대로 개발이 진행된다면, 새로 태어날 아이들이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아토피를 비롯한 각종 유아질환에 시달릴 “아픈 아이들의 세대”가 된다는 것이다.
서울을 떠나라는 갑작스런 권유는 당혹스럽다. 그러나 지은이는 그에 대한 근거를 조목조목 제시한다. 이 책의 장점은 환경오염의 구체적인 정도를 서울, 나아가서 한국 전체에서 이루어지는 건설 및 경제정책의 문제점과 연결 지어 쉽게 설명한다는 것이다.
도시건설은 ‘생명 없는 발전’
우선 지은이는 피엠텐(PM10) 수치를 설명한다. 피엠텐은 10마이크로미터 미만의 미세입자들로, 주로 자동차 배기가스에 섞여있고 공사장 주변에서 날아오기도 한다. 지은이는 집에서 기르던 화분들이 집단폐사상태에 처한 사건 때문에 서울 피엠텐 현상의 심각성을 깨닫게 됐다. 화분들은 수건으로 닦아주자 다시 살아났다. 피엠텐은 기준치에 도달해야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오염물질과는 달리, 아무리 미량이라도 인체에 축적돼 보건상의 피해를 낳는 무서운 물질이다.
지은이는 피엠텐 현상이 심각할 수밖에 없는 서울의 환경 상태를 둘러본다. 서울은 피엠텐 오염도가 OECD 가입국 중에 단연 1등이다. 서울의 인위적인 녹지란 녹지로서의 기능을 거의 가지고 있지 못한다. 서울시에서 생태 운운하며 실시한 청계천 복원사업은 위험하기 그지없다. 상류지역의 복원이 없는 만큼 청계천에는 고도 처리한 생활하수와 지하철 역사에서 나오는 지하수가 흐르게 되는데, 이 생활하수에는 ‘환경 호르몬’에 해당하는 수많은 물질들이 섞여 있다.
또한 청계천 인근은 모두 고밀도 개발이 이루어질 예정인데, 이 재개발은 엄청난 피엠텐을 양산할 것이다. 현재 서울시는 각 구청마다 25개의 뉴타운 사업과 8개의 강남북 ‘균형발전 촉진지구’가 동시에 착공할 예정이다. 여기에 1천 개에 달하는 소규모 재개발사업까지 진행된다면, “서울에서 아이를 키워도 좋은 곳은 없다”.
‘서울형 스모그’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지은이는 다양한 부분에서 환경오염의 원인을 찾는다. 크고 넓고 편리한 ‘뉴욕 스타일’이 추구되다 보니 한정된 생태조건을 지닌 서울이 과부하를 겪는다. 또한 아파트를 선호하는 한국만의 특수한 스타일은 도시건설자본의 고층 아파트 건설 및 상업용지 전환을 촉진한다.
무늬만의 녹지를 남겨놓은 채 아파트가 계속 늘어나는 서울. 지은이는 이를 가리켜 ‘생명 없는 발전’이라고 비판한다. 서울은 강원도의 댐에서 물을 공급 받고, 서해안 근처에 쓰레기를 매립하며, 도시 외부의 생명을 끊임없이 위협할 뿐만 아니라, 무분별한 개발 때문에 내부의 생명까지도 위협하는 공룡과도 같다는 것이다.
생명을 화두로 삼은 경제론 필요
도시개발만이 문제가 아니다. 지은이는 이경해 전 한국농업경영인 중앙연합회 회장의 자살 이후, 농림부가 농민을 “달래기” 위해 실시한 농촌정책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음을 폭로한다. 농림부는 세계화 시대의 경쟁에 뒤쳐지지 않게 ‘전문농업’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 주장과 함께 농지법을 개정해 전체 농지의 50%정도만 절대농지로 보전하고 나머지 땅에는 전면적인 개발을 허용하려고 한다. 그러나 개발 허용은 골프장과 카지노 건설로 이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물론 건설경기가 살아나야 경제가 나아진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지은이는 건설과 빈곤과의 관계를 설명하여 뉴딜정책의 허구성을 폭로한,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쿠즈네츠의 이론과 그에 기반한 통계수치를 빌어서 그 같은 관념을 반박한다. 국내 총생산(GDP) 가운데 대부분의 정상적인 국가들이 8~15%를 건설부분에 사용하는 데 반해 한국은 24%나 사용한다.
그런데 1인당 국민소득과 국내 총생산 대비 건설업 매출 비율을 살펴보면, 건설업 매출이 과도할 경우 경제위기가 발생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 한국 상황은 부동산 투기 붐이 일어났던 미국의 대공황 직전과 오히려 유사하므로, ‘한국형 뉴딜’ 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은 억지다.
지은이는 현 한국사회의 경제 담론이 “외형적으로는 뉴욕의 맨해튼에 근무하는 금융기업 종사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내용상으로는 악덕 부동산업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고 비판한다. 때문에 건설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경제를 위해서라도 ‘생명’을 화두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생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체들은 환경질환으로부터 아이를 지키고자 하는 어머니들이다. 지은이는 어머니들이 이 시대의 모순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지적하며, 아버지 또한 생명의 감수성을 가지고 ‘생명’을 지키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늘어나는 평균수명에 대책을 세우자고 호들갑을 떠는 한편 살아있는 동안 며칠이나 아프지 않을까를 생각해야 하는 다음 세대를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사회”라는 지은이의 지적이 통렬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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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ww.ildaro.com 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윤은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