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나서
사티아그라하 - 김우희 개포고2
간디의 사상인 ‘사티아그라하’는 사티아(진리)의 그라하(파악 ·주장)를 뜻한다. 간디의 사티아그라하 운동은 허위와 부정에 항거하고 진리와 정의를 지키기 위한 운동이었다. 진리를 삶의 원리로 삼는 사람의 비폭력은 불의와 악 앞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으며, 스스로 고통을 감수함으로써 적대자의 이성과 양심에 호소하는 것이다. 이것을 간디는 ‘적에게 고통을 가함으로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고통을 가함으로서 진리를 옹호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간디의 이러한 주장에 옹호한다. 영국이 제국주의에 물들어 인도를 수탈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무차별적 폭력을 휘둘렀던 당시 상황으로서는 그렇게 했던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영국이 인도에 가한 폭력은 지배층의 폭력이다. 이것은 규모가 크고 체계적, 지속적이며 법, 제도 등에 의해 구조적으로 자행된다. 그래서 심각한 폭력성을 내포해도 당연한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간디의 관점에서 볼 때, 무엇보다 큰 폭력은 인간의 근원적인 영혼의 요구에 대해서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물질적 이득의 끊임없는 확대를 위해 착취와 억압의 구조를 제도화한 서양의 산업 문명이었다. 나도 이 당시 모든 악의 근원은 서양의 제국주의 야욕이라고 생각한다. 간디의 사티아그라하 운동과 대립되는 개념인 피지배층의 폭력은 소규모이고 국지적이지만 쉽게 눈에 띄고 불법행위로 간주되기 쉽다. 또 지배층의 폭력에 동등하게 맞설 수도 없을뿐더러, 이것은 지배층의 폭력을 정당화, 합리화시킬 수도 있다. 만약 인도인들이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지 않고, 그에 무력으로 맞섰다면 어땠을까? 오히려 영국을 더 자극하여 더욱 극악한 폭력을 불러왔을 것이며, 인도인들도 스스로 이성을 잃어 한마음으로 단합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도인들은 ‘비폭력 불복종 운동’은 선택했다. 이것은 결코 수동적인 저항은 아니었다. 그것은 악에 대한 보답을 악으로 하지 않고 사랑으로 해야 한다는, 불가사의하게 깊고 부드러운 영혼 속에서 우러나오는 실천적 행동이었다. 이와 비슷한 예수의 사상으로 ‘원수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이 있듯이, 이것은 종교를 초월한 만인의 진리였다. 폭력에 비폭력으로 맞선다는 것은, 승패가 뚜렷한 전쟁, 비논리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인도가 사티아그라하를 선택함으로써 물리적으로는 패배했지만 정신적으로는 불굴의 의지와 정신력으로 영국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한다. 사티아그라하는 산업 문명이 인간을 지배하고, 힘의 논리에 순응하며 불평등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교훈을 준다.
간디의 사상인 ‘사티아그라하’는 사티아(진리)의 그라하(파악 ·주장)를 뜻한다. 간디의 사티아그라하 운동은 허위와 부정에 항거하고 진리와 정의를 지키기 위한 운동이었다. 진리를 삶의 원리로 삼는 사람의 비폭력은 불의와 악 앞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으며, 스스로 고통을 감수함으로써 적대자의 이성과 양심에 호소하는 것이다. 이것을 간디는 ‘적에게 고통을 가함으로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고통을 가함으로서 진리를 옹호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간디의 이러한 주장에 옹호한다. 영국이 제국주의에 물들어 인도를 수탈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무차별적 폭력을 휘둘렀던 당시 상황으로서는 그렇게 했던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영국이 인도에 가한 폭력은 지배층의 폭력이다. 이것은 규모가 크고 체계적, 지속적이며 법, 제도 등에 의해 구조적으로 자행된다. 그래서 심각한 폭력성을 내포해도 당연한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간디의 관점에서 볼 때, 무엇보다 큰 폭력은 인간의 근원적인 영혼의 요구에 대해서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물질적 이득의 끊임없는 확대를 위해 착취와 억압의 구조를 제도화한 서양의 산업 문명이었다. 나도 이 당시 모든 악의 근원은 서양의 제국주의 야욕이라고 생각한다. 간디의 사티아그라하 운동과 대립되는 개념인 피지배층의 폭력은 소규모이고 국지적이지만 쉽게 눈에 띄고 불법행위로 간주되기 쉽다. 또 지배층의 폭력에 동등하게 맞설 수도 없을뿐더러, 이것은 지배층의 폭력을 정당화, 합리화시킬 수도 있다. 만약 인도인들이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지 않고, 그에 무력으로 맞섰다면 어땠을까? 오히려 영국을 더 자극하여 더욱 극악한 폭력을 불러왔을 것이며, 인도인들도 스스로 이성을 잃어 한마음으로 단합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도인들은 ‘비폭력 불복종 운동’은 선택했다. 이것은 결코 수동적인 저항은 아니었다. 그것은 악에 대한 보답을 악으로 하지 않고 사랑으로 해야 한다는, 불가사의하게 깊고 부드러운 영혼 속에서 우러나오는 실천적 행동이었다. 이와 비슷한 예수의 사상으로 ‘원수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이 있듯이, 이것은 종교를 초월한 만인의 진리였다. 폭력에 비폭력으로 맞선다는 것은, 승패가 뚜렷한 전쟁, 비논리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인도가 사티아그라하를 선택함으로써 물리적으로는 패배했지만 정신적으로는 불굴의 의지와 정신력으로 영국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한다. 사티아그라하는 산업 문명이 인간을 지배하고, 힘의 논리에 순응하며 불평등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교훈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