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학교 학원화 공작 말고 국공립대평준화를 연구하라


                                                   하재근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    



  26일 아이들살리기운동본부 출범식에서 발표된 ‘입시교육 실태에 대한 고등학생 의식 조사’에 따르면 성적이나 입시 스트레스로 건강을 해친 적이 있다는 학생이 38.5%다. 성적, 입시 스트레스로 우울증이나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는 학생이 32%, 좌절감을 느끼거나 의욕상실에 빠진 적이 있다는 학생이 64.9%다.
  
  성적, 입시 스트레스로 학교를 그만 두고 싶은 적이 있었던 학생이 45.6%, 약 절반이다. 가출 충동을 느꼈던 학생은 22.4%, 자살 충동을 느꼈던 학생은 20.2%, 자살을 실제로 시도해 본 적이 있는 학생은 무려 5%다.
  
  우울증, 정신적인 어려움의 경우 서울 강남 학생들 중 37.4%가 그렇다고 대답한 반면 중소도시는 29.7%여서 강남 지역 아이들이 좀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살 충동의 경우 강남은 23.9%, 중소도시는 18.2%였다. 자살기도는 강남이 7.7%, 중소도시가 4.0%였다.
  
  강남과 중소도시의 차이는 입시 교육의 강도가 가중될수록 아이들의 고통이 가중된다는 상식이 수치로 드러난 것이다. 결국 강남이나 중소도시나 할 것 없이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입시 경쟁의 지옥 속에 있는 우리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당연히 세계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세상에 살고 있다. 약 40%가 건강을 해쳐가며, 약 65%가 좌절감을 느끼며, 그 중 5%는 자살까지 기도해가며 지옥을 해쳐나가고 있다. (굶어죽는 나라는 논외다)
  
  나는 도대체 이런 살인적인 입시 경쟁체제가 우리 대한민국의 교육경쟁력, 국가경쟁력에 무슨 보탬이 되는지 묻고 싶다. 당연히 아무도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런 뻔한 것을 굳이 묻는 이유는 정말 이상하게도, 정말 이상하게도, 대한민국이 정부와 일류 대학들은 이런 살인적, 망국적 입시 경쟁체제를 옹호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부가 입시 개혁안이라고 내놓은 2008년 입시안에 대해선 학생들의 입시부담을 가중시킬 뿐이라는 대답이 84.1%로 압도적이었다. 정부가 의기양양해 하는 내신등급제라는 것. 하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차갑다. 정부가 아무리 내신을 통해 기회균등을 넓힌다고 우겨도, 강남과 특목, 자사고만 불리할 뿐 지방, 강북은 이익이라고 우겨도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다.
  
  서울 강남 학생의 경우 2008년 입시안에 대한 거부감이 86%다. 당연히 평균을 상회한다. 그런데 중소도시의 경우도 83.6%다. 정부는 도저히 이해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집권민주화 세력의 교육개혁은 이렇게 정부만 스스로 도취할 뿐 정부가 주장하는 그 수혜자들조차도 적의를 갖는 공상적 유토피아일 뿐이다.
  
  학생들은 내신성적 향상을 위해선 정규수업과 개인과외가 가장 효과가 크다고 답했다. 그런데, 수능성적 향상을 위해선 EBS 수능강좌와 과외, 학원이 가장 효과가 크다고 답했다. 그리고 대학별 논술고사를 위해선 단과학원과 개인과외가 가장 효과가 크다고 답했다.
  
  결국 정부가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것이다. “너희들은 학교 수업을 모두 잘 듣고, 학교 시험에 매번 최선을 다하며, 학교가 파하면 EBS 수능강좌를 챙기고, 또 학원을 가 수능 준비에 만전을 기할 것이며, 또 시간과 돈을 더 짜내 과외선생이나 명문 단과 학원을 찾아 논술 준비를 해야 한다.”
  
  죽으라는 소리다. 당연히 사교육비가 치솟고, 그것이 사회문제가 되니까 학교를 학원으로 만들 방책을 내놓고 있다. 방과후학교, 공영형혁신학교, 교장공모제, 성과급차등지급, 교원평가 등등등. 모두 학교를 입시 학원으로 만들고 교육을 고사시킬 내용들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학교가 모두 24시간 학원으로 변해도 살인적 경쟁으로 인한 학생들의 고통엔 변함이 없다. 물론 학교가 학원이 되선 안 된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미 학교라든가, 교육이라든가 하는 사치스러운 것들은 포기한지 오래인 것 같으니 암담할 뿐이다. 그런데 정부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처럼 학교를 24시간 학원으로 만들어도 사교육비 문제는 결국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렇다. 정규수업효과가 가장 크다는 내신성적 항목을 보면, 서울 강남만은 그 비율이 58.5%에 불과하다. 중소도시는 72.1%다. 이것이 무얼 말하는가. 내신조차도 여건만 된다면 사교육을 통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중소도시는 돈도 없고, 사교육 인프라도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후진’ 학교에 의존하는 것이다. 결국 모든 학교가 24시간 입시학원으로 변해도 사교육은 여전히 번창할 것이다.
  
  우리 정부가 입시경쟁체제를 옹호하는 것 같다는 것은 왜 이렇게 뻔한 사실을 정부는 애써 왜면하냐는 거다. 정부는 바보인가?
  
  일류대들이 이런 체제를 선호하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이런 체제야말로 그들의 기득권을 지켜주는 체제기 때문이다. 그들 기득권의 원천이 어디인가? 바로 대학서열체제다. 1등 대학, 2등 대학 하는 것들은 서열체제라는 구조 위에서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서열체제는 입시경쟁을 통해서만 유지되고, 입시경쟁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그래서 학생의 생명과 부모의 재산을 건 총력경쟁이 되면 될수록 강고해진다. 그렇게 걸러진 1등대, 2등대, 3등대의 서열은 신성불가침의 권위를 갖는다. 그러므로 일류대들이 살인적 입시경쟁을 선호하는 것은 합리적 선택이다.
  
  그런데 정부는 왜 그런 것일까? 정부는 기득권 수호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걱정해야 하지 않는가. 왜 대한민국 정부는 기득권만을 수호하며 공동체를 망국으로 이끄는 교육정책을 고집하는 것일까?
  
  대학서열체제를 위한 입시경쟁은 망국경쟁이고 살인경쟁이다. 정부는 대학서열체제에는 털끝만큼도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단지 그 서열체제에 초중등교육을 맞추려고 할 뿐이다. 내신을 추가한 2008년 입시안도 대학서열체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만 그 서열에 편입되기 위한 살인적 경쟁에 내신이라는 종목을 하나 더 추가한 것뿐이다. 상상해보라. 지금 죽어라 뛰고 있는데 옆에 새로 만든 코스 하나를 더 뛰라고 요구하는 주최 측을. 남는 것은 원한뿐이다.
  
  학생들의 행동이 날로 흉폭해지고 비공동체 혹은 반공동체적으로 변하고, 비인간적으로 변하고, 몰정치적으로 변하고, 개인적, 이기적으로 변하는 것은 사회가 그 아이들에게 계속 그런 환경만을 마련해줬기 때문이다. 죽을 때까지 뛰고 또 뛰고, 옆의 애들을 낙오시키라는데 인성이고, 공동체정신이고 뭐가 남겠는가. 그러니까 대학생들 사이에서 한나라당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한나라당 만들기 교육체제를 만들어가고 있다.
  
  아이들을 고통으로부터 구해내고, 교육을 제자리로 돌릴 길은 대학서열체제를 폭파하는 길밖에 없다. 대학서열체제 혁파만이 교육개혁의 알파요 오메가다. 승자독식사회, 승자독식 입시구조가 살인적, 망국적 무한경쟁을 낳는다. 그 구조의 엔진은 대학서열체제다. 대학서열체제가 그 모든 악덕의 근원이다.
  
  대학을 평준화하는 순간 입시 지옥은 사라지고 다양화 교육, 진정한 수월성 교육, 특성화 교육이 살아난다. 뿐인가 정부가 오매불망 원하는(진짜로 원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만) 고등교육의 경쟁력 향상도 대학 평준화가 그 출발이다. 서열이 사라져야 학문적 경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죽건 말건 그렇게나 경쟁 좋아하는 정부가 정작 학문적 경쟁을 원천봉쇄하는 대학서열체제를 놔두고 있다.
  
  물론 당장 대학평준화하기 힘들다. 할 수 있는 일은 정부의 모든 교육개혁프로그램을 지금 당장 멈추는 것이다. 그리고 국공립대평준화부터 정책연구를 시작하라. 한미FTA를 위한 국민과의 전쟁 같은 데 국력을 낭비하지 말고 국공립대평준화안부터 차근차근 만들어나가라. 그 일만 시작해도 참여정부는 청사에 길이길이 이름을 남길 것이다. 한미FTA같은 악명 말고.


글 출전 : 2006년07월28일 ⓒ민중의 소리  http://www.voiceofpeopl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