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 논술 자료함
존엄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나오면서 이 문제에 대한 쟁점이 불붙고 있다. 주로 보수 신문들과 의사들 견해는 허용하자는 관점을 보이고 있는데 비해 종교단체와 인권단체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다음 자료를 읽고 존엄사를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보자.
1. 존엄사란 무엇인가?
출전: 이덕환, " 의료행위와 법", 1998.
* 의의
존엄사란 단지 생명유지장치에 의하여 인공적으로 연명할 뿐 다시 소생할 가능성이 없는 혼수상태나 뇌사상태의 환자가 품위있게 죽을 수 있도록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하여 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존엄사는 세계적으로 크게 주목받는 바 있던 미국 뉴저지주의 퀸란양 사건 이래 치료가능성이나 소생가능성이 없어 죽음에 직면한 환자가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하고 가족과 의사의 치료의무를 해방시켜 준다는 의미에서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견해가 주장되고 있다.
존엄사는 환자의 고통이 그다지 문제되지 않으며 환자 자신이 의식불명으로 인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안락사와 구별된다.
* 뇌사와의 상관성
뇌사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국가에서 뇌사자는 사체로 취급되므로 뇌사 이후의 의료행위는 법률상의 진료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뇌사를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국가에서는 식물상태나 뇌사상태에 있는 자는 모두 생존한 인간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뇌사환자에 대한 생명유지치료의 거부는 원칙적으로 의사의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되며, 생명유지치료의 중지는 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구성요건에 해당되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의사의 연명조치의 거부·중단행위에 대한 위법성은 식물인간은 뇌사자가 의식불명상태이므로 존엄사 문제로 귀착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식물인간·뇌사자의 사전동의가 있는 경우에는 그들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존엄사를 인정함이 타당하며, 이 경우 의사의 행위는 적법한 것으로 된다.
* 존엄사의 윤리적 배경
존엄사는 인간의 존엄에서 발상된 것이다. 즉 인간은 의식적으로 모든 가치를 추구하고 높은 정신활동을 향유하는 자유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사물이나 생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존엄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명은 단지 생명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이러한 정신적 인격적인 삶을 실현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의미가 존중되는 데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존엄사 발생의 윤리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존엄의 핵심은 자유로운 자기결정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자기결정권은 삶과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에도 행사할 수 있으며, 누구나 자기의 생의 종말은 자기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하여 결정할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것이다.
* 존엄사의 동의 문제
동의능력이 있는 환자가 자기의 건강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음을 알고서 예외적인 방법을 통하여 자기의 생명을 인공적으로 연장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그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의사의 환자에 대한 연명조치도 진료계약의 내용에 포함되는 것이므로 환자는 자신의 연명조치에 대하여 동의 또는 거부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가지게 된다. 또한 응급의료 등 긴급상태에서 진료가 행해질 경우에는 환자 자신이 연명조치를 거부한다면, 그 의사에 반하여 이를 행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존엄사가 문제가 되는 대부분의 경우는 환자 자신이 동의능력이 없는 의식불명이든지 혹은 미성년자나 정신장애자이기 때문에 연명조치를 계속할 것인가의 여부를 환자 자신의 의사에 따라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경우 동의의 대리권자에 의하여 연명조치를 중지하는 의사결정에 따른 존엄사의 인정여부가 문제된다. 대리동의권은 원칙적으로 환자의 이익보호에 필요한 한도에서만 행사될 수 있는 것이며, 환자 자신의 죽음을 초래할 수 있는 치료법의 선택이나 치료거부 등을 대리행사 할 수는 없는 것이다.
* 존엄사의 형법적 문제
존엄사의 형법상 불가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의견이 있다.
1. 죽음이 불가피한 생명을 인공적으로 연장시킬 법적 의무가 없기 때문에 그 행위는 구성요건해당성이 없다는 견해.
2. 살해금지규범의 보호목적을 고려하여 의사에게 자연적인 사망을 방지할 책임까지 물을 수는 없으므로 구성요건해당성이 없다는 견해 .
3. 헌법상 프라이버시의 권리를 근거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함으로써 연명장치의 제거가 위법하지 않다는 견해.
4. 불치병 말기환자에 대한 생명유지조치는 과잉치료이며, 식물인간에 대한 생명유지조치는 과잉치료의 극치라는 견해.
* 죽을 권리와 법률
인간의 생명은 본질적으로 존엄하기 때문에 만인에게 존중을 요구하고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윤리적 개념이다. 그러나 최근 인간에게 죽을 권리가 있는 가?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으며, 죽을 권리를 인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California Death Act를 비롯하여 Arkansas 등의 주에서 이미 죽을 권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시행중에 있다. 이러한 법률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자기결정권의 존중이며, 현대의 의료기술의 진보에 따른 생명연장에 대한 무의미한 의료를 거부할 권리를 인정하는 데 그 초점을 두고 있다. 죽을 권리의 인정은 오늘날 안락사·존엄사를 합리화함에 있어서 그 전제가 되고 있다.
□ 샌프란시스코선언
1978년 11월 9일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제2회 국제 "안락사 회의"가 개최되었으며, 이 회의에서는 말기환자의 죽음을 연장하는 무의미한 의료를 거부할 권리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1. 질병이 불가역적으로 악화되어 죽음의 과정에 들어선 경우에는 단지 죽음의 경과를 연장하는데 불과한 의료를 중지시킬 권리가 개인에게 주어져 있다.
2. 이러한 권리는 구두, 문서 또는 정식으로 선임된 대리인의 의사표시에 의하여 의료의 계속여부가 결정되어야 한다.
3. 참가국은 그 나라의 의사회 및 의사들에게 말기환자의 치료에 관한 윤리규정 및 지도요청의 확립을 장려할 것이며, 말기환자의 증상이 죽음을 향하여 불가역적으로 악화되어 이에 대한 의료가 실질적으로는 죽음의 경과기간을 연장하는 데 지나지 않는 경우에는 그 의료의 계속적인 실시를 전술한 윤리규정 및 지도요령에 입각하여 중지시킨다.
이 선언은 의미없는 인간의 연명조치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선언한 것으로 소극적 안락사를 정착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본인의 생전의 의사표시에 의하여 연명적 의료를 거부·중지하여도 좋다는 것을 입법화함으로써 소극적 안락사가 완전히 정착된 것이다.
□ 죽을 권리의 입법화
1. California 주법
미국에서 가장 먼저 제정된 것으로 1977년 1월 1일부터 자연사법(Natural Death Act)이라는 형식으로 죽을 권리에 관한 법이 실시된 것이다. 이 법률은 단지 죽음의 과정만을 연장하는 데 지나지 않는 의료조치는 불필요한 것으로 불치의 환자가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확립하고 보호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법률에서는 18세 이상의 시민은 의사에 대한 지시서를 작성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고 있으며, 이 지시서의 내용은 환자가 말기증상을 보이는 경우에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연명장치의 제거에 관한 권리를 위임한다는 것이다.
2. Arkansas주법
이 주의 법률은 말기의 미성년 환자와 같이 자기 스스로 문서를 작성할 능력이 없는 자의 경우에는 그 친권자가 법정대리인으로서 이를 대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개인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문서에 의하여 내과적·외과적 조치를 요청 또는 거부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이 법률이 다른 주의 것과 다른 점은 일단 작성된 문서를 취소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는 점이며, 말기 환자라는 의사의 증명은 미성년자 및 무능력자를 제외하고는 요구하지 않다는 점이다.
3. Idaho주법
이 주의 법률은 성년자의 경우에 말기증상이 나타나면 자기의 담당의사에게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할 수 있는 지시서를 작성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의사에 대한 지시서는 그 개인이 말기증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진단이 내려진 후에 작성된 것이라야 법적 구속력이 있다. 또한 그 지시서는 해당 환자가 혼수상태나, 기타 원인으로 의사에게 자기의 의사를 전달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그 효력을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4. New Mexico 주법
이 주의 법률은 California 주법과는 달리 주민은 말기증상이 되기전이라도 언제든지 법적 구속력을 지닌 문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두명의 의사에 의하여 그 환자가 말기적 증상에 이르렀으며, 생명유지를 위한 의료가 그 환자의 생명회복에는 도움이 도지 못하고 단지 연장에 그친다는 증명이 있음으로써 환자가 이미 작성한 지시서는 유효하게 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법률에서는 미성년자를 대신하여 문서를 작성할 것을 허용하고 있으며, 또한 대행할 수 있는 가족의 순서까지도 상세하게 정하고 있고, 해당 미성년자의 부모중 어느 한쪽이 반대하는 경우에는 그 문서는 효력을 발생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5. North California 주법
이 주의 법률은 뇌사의 규정과 죽을 권리의 개념을 최초로 결부시킨 것이다. 즉, 뇌가 기능을 정지한 경우라 할 지라도 환자의 호흡작용과 혈액순환을 계속시키기 위한 기계적 장치를 제거하기 위한 법적조치를 취한 것이다. 의사는 환자의 지시문서를 행하는데 있어서 광범위한 자유재량을 부여받고 있다. 말기현상 및 불치의 병이라는 진단은 담당의사 이외의 다른 의사의 진단을 요구하고 있다.
6. Texas 주법
이 주에서는 죽을 권리에 관한 법률을 "자연사법"이라고 명명하고 환자의 의사에 대한 지시서를 환자의 의무기록의 일부로 다루고 있다. 즉 말기증상의 진단은 두명의 의사에 의하여 각각 이루어져야 하며, 지시서는 두명의 증인을 요하고 그 증인은 공증인 앞에서 선서후에 서명한 것이라야 한다. 임신한 경우에 지시서는 무효로 되며 신청자의 의사 번복 또는 의사표시의 철회로도 지시서는 무효로 된다. 그리고 지시서대로 행하지 아니한 의사의 민사상 또는 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2. 존엄사 허용, 생각해 볼 때다 (중앙일보사설 2007.08.11)
뇌사 상태 아들의 인공호흡기를 의사 몰래 떼어내 숨지게 한 아버지가 살인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사건이 존엄사(尊嚴死)에 관한 오랜 논쟁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결론부터 말해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존엄사 허용을 논의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다. 인간의 생명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지만 인간으로서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할 권리도 존중하는 게 옳다는 판단에서다. 사실 존엄사를 찬성하건 반대하건 양측 입장의 근거는 모두 생명의 존엄성이다. 하지만 회복 가능성 없이 무의미한 삶을 연장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삶을 마칠 수 있게 하는 것이 오히려 인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결과일 수 있다. 게다가 가족들의 정신적 고통과 경제적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 가족에게 고통을 주는 걸 견디지 못해 먼저 존엄사를 요청하는 환자도 있다.
세계적으로도 존엄사를 인정하는 추세다. 프랑스·홍콩·대만은 존엄사를 법과 제도로 인정하고 있다. 영국·네덜란드는 약물 등으로 중환자가 편안하게 숨을 거둘 수 있게 하는 안락사(安樂死)까지 허용한다. 미국 대법원도 지난해 안락사를 돕는 의사들을 무조건 처벌하는 조치가 잘못됐다고 판결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안락사를 지지했다.
우리 사법 당국도 6월 소생 가능성 없는 환자의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청한 자녀와 집행한 의사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려 처음으로 존엄사를 인정했다. 하지만 2004년 보호자 요구로 환자를 퇴원시켰다 사망케 한 의사가 살인방조죄로 확정 판결을 받은 뒤 대부분 의사가 ‘방어 진료’에 매달리는 형편이다. 이제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네덜란드 식 안락사는 아니더라도 회생 불가능한 환자에게 품위 있게 인생을 정리할 기회는 줘야 한다. 중환자실에서 각종 기계장치에 의존한 상황에서는 그럴 틈이 없다.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의사를 무조건 처벌하는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 대상과 절차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뒤 본인 또는 가족의 의사를 존중해 존엄사를 허용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3. 뇌사자 존엄死, 권리인가 살인인가(경향신문 기사 2007년 08월 28일)
지난 8일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는 아들의 인공호흡기를 뗀 광주에 사는 한 아버지가 살인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이후 ‘존엄사’를 둘러싼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KBS2 ‘추적 60분’은 29일 오후 11시5분 방송되는 ‘존엄사 논란, 어느 아버지의 선택’ 편은 대학병원 중환자실 2곳을 1주일 동안 관찰하고 존엄사 논란을 집중 조명한다.
존엄사는 소생 가능성이 없고 연명 가능성 또한 짧은 경우,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 등의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을 가리킨다. 소생 가능성은 없지만 연명 가능성이 높은 환자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시키는 안락사와는 다른 개념이다. 현행법으로는 존엄사와 안락사 양쪽 다 불법이다. 문제는 최근 말기암 환자와 뇌졸중 환자가 급증하면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고민이 더 이상 특별한 사람들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프로그램에는 아들의 인공호흡기를 뗀 아버지 윤씨가 출연한다. 올해 스물아홉인 큰아들 석천씨는 열살 때부터 근육이 점점 없어지는 희귀병을 앓아왔다. 지난 7월,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고 심폐소생술을 받고 살아났지만 식물인간이 됐다. 아버지 윤씨는 오랫동안 투병해온 아들을 편히 보내주고 싶었다고 했다.
4. ‘죽을 권리’ 美보수의 역설 (경향신문 기사 2005년 03월 25일)
15년간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온 미국의 테리 시아보(41·여)가 25일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사실상 최종적인 사망 선고를 받았다. 미 대법원 전원 재판부는 시아보의 생명 튜브를 다시 연결토록 해 달라는 테리 부모의 청원을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몇 시간 뒤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가 테리의 보호권을 남편에서 주(州)로 이관해 달라고 낸 청원도 그 자리에서 기각했다. 이로써 입법부와 대통령까지 나서 사법부의 결정을 뒤집으려 했던 사상 초유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시아보에게 ‘죽을 권리’가 있다며 생명 튜브를 떼자는 시아보의 남편과, 산 사람을 어떻게 죽일 수 있느냐며 튜브를 떼서는 안 된다는 시아보의 부모가 10년 이상 벌여온 법정다툼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주 법원과 연방법원은 10여번의 심리에서 남편의 손을 들어줬으나 미 보수층의 지지를 받는 정치권은 특별법을 2번 만들면서까지 생명을 연장시키려 애썼다.
이번 사건을 지켜보며 두 가지 의아스러운 점이 있다. 미국 보수층이 보여준 이율배반적 행동이다. 먼저 ‘위선적인 생명관’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라크 전쟁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살상당하는 것에는 눈을 감고, 학교 총기 난동으로 어린 학생들이 죽어가도 총기소유 규제에는 반대하는 게 미 보수층이다. 그런데도 15년 식물인간이 죽게 내버려두자는 데 대해선 모든 수단을 써서라도 막아보려는 ‘휴먼 드라마’를 만들려고 했다.
‘사법부의 배반’이란 점도 생각게 한다. 현재 미국 대법원은 단연 보수성향이다.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을 비롯한 7명의 대법관은 공화당 임명자들이다. 이 대법원이 보수 기독교단체와 공화당 정치인들의 요망을 외면하고 “시아보의 존엄사”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번 결정의 배경에는 1990년 ‘낸시 크루전’이라는 여성의 사건에서 내린 판례가 있다. 당시 대법원은 생존시 본인이 존엄하게 죽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는 증거가 있으면 ‘죽을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결정했고, 그 원칙이 확립됐다고 본다. 이번 결정에 대해 보수층 인사들은 “사법부는 너무 많은 힘을 갖고 있다”며 사법부를 약화시켜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5. 日여당 ‘존엄死’ 인정 법안 내기로 (경향신문 기사 2005년 01월 03일)
일본 여당 국회의원들이 소생할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존엄사’를 인정하는 내용의 법안을 올 정기국회 회기중 제출할 예정이라고 도쿄신문이 3일 전했다.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의 의원입법으로 발의될 이 법안은 ▲불치병 환자가 인공호흡기 등으로 생명을 유지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를 가지며 ▲환자의 뜻에 의해 연명조치를 중단한 의사는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존엄사는 환자를 ‘인위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안락사와는 구별된다
6. 존엄사, 제도적·법적 본격 논의 필요
조선일보칼럼 “의사들이 쓰는 병원 이야기”: 민건식·변호사
2007.09.17
특히 75세 이상의 황혼기에 접어든 고령자에게는 남의 일로 치부될 수 없는 공통적인 고뇌와 번민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죽음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더욱 감명 깊었다. 최근 뇌혈관 질환으로 입원 경력이 있는 친지가 존엄사 선언을 문서화할 수 있는 방법을 문의해와 주위 친지들에게 의견을 구해보니 대다수가 “필요성을 느낀다”는 의견이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노인들도 병원에서 삶의 마감이 이뤄지고 있다. 그렇다보니 환자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하는 의사의 마음가짐이 더더욱 중요하다.
의사는 “인간의 생명은 지구와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이라는 직업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환자들을 대한다. 이들의 헌신적인 공헌 덕에 오늘날의 고령화사회가 가능해진 것인지도 모른다.그러나 식물상태나 뇌사 상태에 빠져 있는 말기 환자들에게 기관 절제 수술 후 인공호흡기장치나 식도 절제 후 영양 공급 등 연명 조치를 해서 살아 있다고 한들, 이것이 과연 살아있다고 할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죽음 이야기는 누구나 말하기를 꺼린다. 그렇다고 마냥 침묵할 수만도 없다. 많은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온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품위 있게 죽고 싶어한다. 병원 이야기를 쓴 김범석 의사는 “그동안 얼마나 ‘보호자 편의’ 위주로 진료를 해 왔는지 돌이켜 보게 되었다.… 환자와 치료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나누고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 진료의 기본이다”라고 끝맺었다.
바로 이것이 존엄사다. 외국은 23개국이나 존엄사협회가 있다. 죽음의 권리는 인간 존엄성과 인격권의 헌법적 보장이기도 하다. 김 의사의 문제제기를 계기로 존엄사에 대한 제도적·법률적 검토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7. 산소호흡기 떼낸 의사 ‘무혐의’ 될까 (한겨레 기사 2007-06-10)
최원형 기자,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circle@hani.co.kr
경찰, 의협에 자문…“말기암 합병증 사망 과실 인정 안돼”
검찰, ‘소극적 안락사’ 결론여부 주목…의료계선 사실상 허용
말기암 환자의 산소호흡기를 떼어 ‘안락사’시킨 의사가 살인 혐의로 고소됐으나, 경찰이 검찰의 지휘를 받아 ‘무혐의’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아직 최종 결론을 내리지 않았으며, 곧 결론을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산소호흡기를 떼는 식의 ‘소극적 안락사’에 대해선 아직 대법원 판례가 없는 상황이어서, 검찰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살인” 대 “사망 원인 아니다”=2002년 간경화 진단을 받은 김아무개(45)씨의 어머니(당시 68살)는 뒤 병세가 악화해 지난해 3월 ㅅ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석달 뒤 주치의 박아무개(30)씨는 김씨 누나의 동의를 얻어 산소호흡기를 뗐다. 김씨는 “계속 진료했어야 함에도 이를 포기하고 산소호흡기를 제거한 것은 살인행위”라며 지난해 12월 박씨 등 의사 2명과 누나를 고소했다.
그러나 박씨는 “환자가 평소에 자신의 딸과 나에게 ‘이상한 기구를 달고 죽고 싶지 않다. 깨끗하게 죽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숨지기 일주일 전 간경변의 마지막 단계인 ‘간신증후군’(간질환 때문에 콩팥이 망가지는 현상)이 왔기 때문에 산소호흡기를 떼지 않았더라도 24시간을 넘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 방배경찰서는 사건 당사자들의 진술만으로는 판단이 어려워, 대한의사협회에 진료기록 등을 보낸 뒤 자문을 구했다. 의사협회에서는 ‘김씨의 어머니가 간경화로 말미암은 합병증으로 숨졌으며 산소호흡기 대체가 사망의 직접 원인이 아니다’는 감정 결과를 보내왔다. 방배경찰서 박정수 강력4팀장은 “의사협회 감정 결과에서 의사의 과실이 인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법원·의료계 인정 추세=안락사 인정 여부는 전세계적인 관심사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면으로 쟁점화한 적이 없다. 법 규정도 없고, 대법원 판례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2004년 이른바 ‘보라매병원 사건’ 항소심 판결에서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불치 상태의 환자 스스로 진지하게 치료 중지를 요구하고 병원윤리위원회 등 검증 절차를 거쳐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될 경우 소극적 안락사 등 치료의 중지를 제한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고 밝힌 적이 있을 뿐이다. ‘보라매병원 사건’은 입원한 뇌출혈 환자를 가족 요구에 따라 퇴원시켜 숨지게 한 의사 2명에게 살인방조죄가 적용된 것으로, 사건 자체는 안락사와 관련이 없다.
불치병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해 숨지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와 달리, 소극적 안락사는 ‘존엄사’로도 불리며 일본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인정되고 있다. 의사협회에서도 2002년 의사윤리지침을 통해 이를 사실상 허용했다. 이윤성 서울대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객관적인 판단에 따라 회복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판단되는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 등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이 사건에서 의사의 판단은 의사협회 윤리 규정에도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의료정책팀 정준섭 사무관은 “생명 존중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연명 치료 중단에 반대하는 등 사회적 공감대가 충분히 모아지지 않은 상태”라며 “공감대가 모아진 뒤 관련 입법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역별로 짚어 보는 존엄사 논쟁과 생명윤리
중앙일보 교육정보 2007.07.03
참으로 존엄한 게 생명이다. 목숨을 해치는 것은 그래서 악이다. 그런데 여기까지 읽고 끄덕인 사람에게 질문 하나 던진다. “그렇다면 생존 가능성 없이 산소호흡기로 잠시 연명하는 환자에게도 이 원칙이 적용돼야 할까?” 존엄사 찬성자는 ‘고통스러운 연장보다 편안한 임종이 낫다’고 주장한다. 최근 이를 실천해 환자를 사망케 한 의사 두 명이 무혐의 처분을 받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교과서의 실마리…‘인간 존엄성은 절대가치’ 곳곳서 강조
교과서는 안락사 등 생명윤리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생명 존엄을 강조하며 이것이 어떤 이유로도 침해받아선 안 된다는 주장이 자주 등장한다. 인간 존엄을 가장 강조한 곳은 『철학』(대한교과서)의 ‘생명의 가치’ 단원이다. 존엄에 대한 믿음에서 생명 존중 의식이 생기고 도덕성의 기초도 만들어진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시민과 윤리』(교육인적자원부) ‘생명 존중과 윤리’엔 좀 더 실천적 내용이 담겨 있다. 인간은 생명의 무한한 가치를 깨닫고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교과서는 강조한다. 또 이런 자세를 인류가 갖출 때 삶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과목엔 이 문제의 현실 적용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법과 사회』(교학사)의 ‘국가 생활과 법’은 소극적 안락사의 현실적 필요와 부작용을 동시에 다룬다. 삶의 질을 높이고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소극적 안락사가 필요하지만 허용할 경우 비윤리적 악용이나 생명 경시로 나타날 수 있다며 ‘생명’이란 절대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과목은 인류가 물질 문명 발전을 위해 생명을 경시하고 희생시킨 경향이 있었다며, 미래는 생명 윤리의 강화를 통해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생물II』(대한 교과서)의 ‘생물과 인간 미래’ 는 생명 윤리를 분명히 깨닫고 연구해야 인간복제ㆍ유전자 조작ㆍ안락사 등 생명 문제를 올바로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법학▶쉽게 허용하기보다는 신중한 태도로 접근해야 / 김민호 교수(성균관대ㆍ법학)
존엄사는 생명에 대한 가치 판단적 개념이다. 따라서 주관적 의미를 담은 존엄사는 법적 측면에서 큰 의미가 없다. 법은 ‘행위’에 대한 법적 평가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본인 스스로 존엄한 죽음을 선택했는지 여부는 판단의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그보다 어떠한 행위가 생명을 중단시켰는지가 의미를 갖는다.
예컨대 의사가 소생 가능성 없는 환자에 대해 인위적으로 생명 연장 장치를 제거해 생명을 단축ㆍ중단시키는 행위는 형법상 살인죄ㆍ자살방조죄 등에 해당할 수 있다. 설사 그 동기가 환자나 가족이 겪어야 할 고통을 덜어주는 것일지라도 그 결과가 생명을 끊는 것이기 때문이다.
법률상 ‘생명’은 절대적이며 동일한 가치다. 형법은 ‘생명’이라는 표현 대신 ‘사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사람’이란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는 시기(始期)부터 더 이상 사람으로 볼 수 없는 종기(終期)까지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 여기서 종기는 사망 시기로 그 판단은 아주 엄격한 논의와 연구를 거쳐 사회적 합의로 결정된다. 환자가 회복 가능성이 없거나 의미 없이 고통스러운 삶을 연명해도 생명의 절대 가치와 법률 적용은 달라지지 않는다. 만약 현실적 필요나 상황에 따라 생명 침해 행위를 차별적으로 허용한다면 생명의 존엄성이 무너질 수도 있다. 따라서 존엄사 인정은 원칙에 대한 예외로서 쉽게 허용하기보다 신중한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존엄사 여부를 결정하는 의학적 판단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인간다운 죽음을 악용한 범죄나 비도덕적 행위를 막는 현실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법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생명 존엄성‘이라는 자연법적 가치를 수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명’에 대한 절대 존중’은 사회의 올바른 유지를 위해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다.
※ 존엄사를 허용할 경우 어떤 비윤리적 악용 사례가 있을 지 밝히고 부작용을 막을 제도적 장치에 대해 말해 보라.
의학▶무의미한 치료보다는 의사의 양심에 맡겨야 /윤영호 부장 (국립암센터 암관리사업부)
생명과 건강은 모두에게 소중하다. 특히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연장하고 고통에서 구하도록 교육받았기에 더 그렇다. 그런 의료인이 왜 죽음을 앞둔 환자의 생명 연장 치료를 중단하자고 주장하는가. 우선 최근의 흐름을 살펴보자. 의료 기술 발달로 감염성 질환이나 사고에 따른 사망은 줄었다. 반면 암ㆍ고혈압ㆍ당뇨 등 만성질환 증가로 의료의 역할이 완치에서 간호(care)로 바뀌었다. 그리고 인공영양ㆍ인공호흡기ㆍ심폐소생술ㆍ신장투석 등 생명유지 기술은 회복 불능 말기 환자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지연시켰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생명유지 기술이 오히려 환자의 고통과 죽음만을 연장할 뿐이며 환자 가족들도 어려움에 시달리게 한다는 점이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존엄사 허용에 대한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존엄사’란 최선을 다했음에도 죽음이 임박했을 때 ‘무의미한 치료’ 를 중단하고 품위 있는 죽음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한계를 수용하는 것으로 ‘소극적 안락사’와 다르다. 소극적 안락사는 희박하지만 회복 가능성 있는 상황에서 심폐소생술 같은 의미 있는 치료를 하지 않음으로써 생명을 단축하는 행위다. 따라서 의료계는 ‘소극적 안락사’를 명백하게 반대한다. 반면 존엄사는 환자에게 선을 베풀고 손해를 피한다는 ‘선행의 원칙’과 ‘악행 금지의 원칙’에 충실한 것이다. 따라서 존엄사 여부를 환자가 미리 정하는 사전의사결정(Advance directives)과 편안한 임종을 위한 ‘호스피스 완화 의료’로 환자가 자율적 선택을 통해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말기 환자에게 정말 필요한 일은 고통스러운 생명 연장이 아닌 편안한 죽음일 수 있다. 병을 고치는 의사가 ‘존엄사’를 찬성하는 이유는 환자에게 정말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깊은 고민에서 출발한 것이다.
※ 존엄사를 허용할 경우 ‘무의미한 치료 중단’이라는 의사의 판단이 결정적이다. 의사의 판단 오류나 악용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 장치는 무엇이 있을까
사회▶소극적 안락사·존엄사 수용한 나라 늘어 / 이종수 교수(한성대ㆍ대한의사회 국민의학지식향상위원)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한 간경변증 환자의 산소공급을 중단해 사망하게 한 의사 2명이 최근 경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존엄사’를 인정한 사법당국의 첫 판단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불과 3년 전 대법원은 뇌출혈 환자를 아내의 요구로 퇴원시켜 숨지게 한 의사 2명에게 살인방조죄를 적용해 처벌했다.
안락사(euthanasia)는 ‘좋은(eu: good)’ ‘죽음(thanasia: death)’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안락사는 소생 가망이 희박한 말기 환자가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행위를 말한다.
안락사의 개념은 소극적 안락사와 적극적 안락사로 나눌 수 있다. 적극적 안락사는 말기 환자에게 독극물 등을 인위적으로 주입해 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루게릭병 환자에게 독극물을 투입해 자살을 도운 죄로 8년여를 복역한 미국의 잭 케보키언 박사의 사례가 적극적 안락사에 해당된다. 소극적 안락사와 존엄사는 각각 ‘회복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나 ‘회복 불가능한’ 이에게 고통을 덜거나 품위 있게 임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세계적 추세는 존엄사와 소극적 안락사를 점차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의사윤리지침 제30조는 ‘회생 가능성 없는 환자’에 대한 존엄사를 긍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1978년 본인이 동의한 경우 불치의 말기환자에 대한 존엄사를 허용하는 안락사법을 제정했다. 이후 미국의 다른 주와 유럽 여러 나라로 이 같은 움직임은 확산됐다. 그러나 적극적 안락사를 제도적으로 허용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네덜란드와 스위스, 벨기에 등 일부 국가만 이를 인정하고 있다.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서는 오리건 주만이 유일하다. 우리나라 대한의사협회가 제정한 의사윤리지침 제58조도 적극적 안락사를 금지하고 있다.
※ 수년 동안 키운 반려 동물이 불치병에 걸려 극심한 고통을 당할 경우 안락사를 시킬지 말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보라
철학▶칸트 윤리는 반대입장 … 공리주의는 허용 / 김상배 교수(서울시립대ㆍ철학)
안락사에 대한 찬반 논쟁은 생명의 신성불가침과 자기결정권이라는 대립에서 출발한다. 생명의 신성성은 그 기원이 기독교에 있다. 생명은 신의 영역으로, 위탁관리자인 인간은 아무 권한이 없다. 이 같은 생각이 오늘날 생명존중 사상으로 일반화돼 세속 윤리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했다.
이런 입장에서 생명권은 근본적으로는 타인에게 죽음을 당하지 않을 권리다. 따라서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따라서 안락사는 절대 허용될 수 없다. 이와 유사한 입장을 보인 근대의 대표적 철학자는 칸트다.
칸트는 도덕규칙이 만족시켜야 할 조건으로 세 가지 형식의 정언명법을 제시하고 있다. 정언명법에서 추론해 낼 수 있는 실천규칙은 생명을 자의적으로 단축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생명을 수단화하지 말고 목적으로서 존중하라는 것 등이다.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입장은 근세 자유주의 이념에서 뚜렷하다. 이 입장은 자율성 존중의 원칙에 입각할 때, 고통스러운 생명의 존속 여부 결정은 전적으로 생명 소유자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발적 의사에 따른 것인 한 안락사는 허용될 수 있다.
근대에 가장 큰 영향력을 보인 공리주의는 이 문제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다. 공리주의는 신성 불가침과 자기 결정권에 관한 논변은 다루지 않는다. 행위가 낳은 결과에 입각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뿐이다. 공리주의 관점에서 안락사는 ‘욕구의 최대만족과 최소좌절’을 가져올 때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 된다. 따라서 회생 불가능한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보다 죽음으로써 더 많은 개인적·사회적 욕구가 달성될 경우 안락사는 허용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비자의적 안락사도 욕구 충족 결과가 크게 나타날 때에는 당연히 허용될 수 있다.
따라서 자의적ㆍ비자의적ㆍ반자의적 안락사의 구분은 아무 의미가 없다. 공리주의에서 모든 것은 오직 그 결과에 의해서만 도덕적으로 옳으냐, 그르냐가 판가름날 뿐이다.
※ 칸트의 도덕규칙과 공리주의 철학을 정리해 안락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라.
1. 존엄사란 무엇인가?
출전: 이덕환, " 의료행위와 법", 1998.
* 의의
존엄사란 단지 생명유지장치에 의하여 인공적으로 연명할 뿐 다시 소생할 가능성이 없는 혼수상태나 뇌사상태의 환자가 품위있게 죽을 수 있도록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하여 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존엄사는 세계적으로 크게 주목받는 바 있던 미국 뉴저지주의 퀸란양 사건 이래 치료가능성이나 소생가능성이 없어 죽음에 직면한 환자가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하고 가족과 의사의 치료의무를 해방시켜 준다는 의미에서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견해가 주장되고 있다.
존엄사는 환자의 고통이 그다지 문제되지 않으며 환자 자신이 의식불명으로 인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안락사와 구별된다.
* 뇌사와의 상관성
뇌사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국가에서 뇌사자는 사체로 취급되므로 뇌사 이후의 의료행위는 법률상의 진료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뇌사를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국가에서는 식물상태나 뇌사상태에 있는 자는 모두 생존한 인간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뇌사환자에 대한 생명유지치료의 거부는 원칙적으로 의사의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되며, 생명유지치료의 중지는 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구성요건에 해당되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의사의 연명조치의 거부·중단행위에 대한 위법성은 식물인간은 뇌사자가 의식불명상태이므로 존엄사 문제로 귀착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식물인간·뇌사자의 사전동의가 있는 경우에는 그들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존엄사를 인정함이 타당하며, 이 경우 의사의 행위는 적법한 것으로 된다.
* 존엄사의 윤리적 배경
존엄사는 인간의 존엄에서 발상된 것이다. 즉 인간은 의식적으로 모든 가치를 추구하고 높은 정신활동을 향유하는 자유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사물이나 생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존엄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명은 단지 생명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이러한 정신적 인격적인 삶을 실현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의미가 존중되는 데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존엄사 발생의 윤리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존엄의 핵심은 자유로운 자기결정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자기결정권은 삶과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에도 행사할 수 있으며, 누구나 자기의 생의 종말은 자기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하여 결정할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것이다.
* 존엄사의 동의 문제
동의능력이 있는 환자가 자기의 건강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음을 알고서 예외적인 방법을 통하여 자기의 생명을 인공적으로 연장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그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의사의 환자에 대한 연명조치도 진료계약의 내용에 포함되는 것이므로 환자는 자신의 연명조치에 대하여 동의 또는 거부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가지게 된다. 또한 응급의료 등 긴급상태에서 진료가 행해질 경우에는 환자 자신이 연명조치를 거부한다면, 그 의사에 반하여 이를 행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존엄사가 문제가 되는 대부분의 경우는 환자 자신이 동의능력이 없는 의식불명이든지 혹은 미성년자나 정신장애자이기 때문에 연명조치를 계속할 것인가의 여부를 환자 자신의 의사에 따라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경우 동의의 대리권자에 의하여 연명조치를 중지하는 의사결정에 따른 존엄사의 인정여부가 문제된다. 대리동의권은 원칙적으로 환자의 이익보호에 필요한 한도에서만 행사될 수 있는 것이며, 환자 자신의 죽음을 초래할 수 있는 치료법의 선택이나 치료거부 등을 대리행사 할 수는 없는 것이다.
* 존엄사의 형법적 문제
존엄사의 형법상 불가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의견이 있다.
1. 죽음이 불가피한 생명을 인공적으로 연장시킬 법적 의무가 없기 때문에 그 행위는 구성요건해당성이 없다는 견해.
2. 살해금지규범의 보호목적을 고려하여 의사에게 자연적인 사망을 방지할 책임까지 물을 수는 없으므로 구성요건해당성이 없다는 견해 .
3. 헌법상 프라이버시의 권리를 근거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함으로써 연명장치의 제거가 위법하지 않다는 견해.
4. 불치병 말기환자에 대한 생명유지조치는 과잉치료이며, 식물인간에 대한 생명유지조치는 과잉치료의 극치라는 견해.
* 죽을 권리와 법률
인간의 생명은 본질적으로 존엄하기 때문에 만인에게 존중을 요구하고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윤리적 개념이다. 그러나 최근 인간에게 죽을 권리가 있는 가?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으며, 죽을 권리를 인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California Death Act를 비롯하여 Arkansas 등의 주에서 이미 죽을 권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시행중에 있다. 이러한 법률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자기결정권의 존중이며, 현대의 의료기술의 진보에 따른 생명연장에 대한 무의미한 의료를 거부할 권리를 인정하는 데 그 초점을 두고 있다. 죽을 권리의 인정은 오늘날 안락사·존엄사를 합리화함에 있어서 그 전제가 되고 있다.
□ 샌프란시스코선언
1978년 11월 9일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제2회 국제 "안락사 회의"가 개최되었으며, 이 회의에서는 말기환자의 죽음을 연장하는 무의미한 의료를 거부할 권리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1. 질병이 불가역적으로 악화되어 죽음의 과정에 들어선 경우에는 단지 죽음의 경과를 연장하는데 불과한 의료를 중지시킬 권리가 개인에게 주어져 있다.
2. 이러한 권리는 구두, 문서 또는 정식으로 선임된 대리인의 의사표시에 의하여 의료의 계속여부가 결정되어야 한다.
3. 참가국은 그 나라의 의사회 및 의사들에게 말기환자의 치료에 관한 윤리규정 및 지도요청의 확립을 장려할 것이며, 말기환자의 증상이 죽음을 향하여 불가역적으로 악화되어 이에 대한 의료가 실질적으로는 죽음의 경과기간을 연장하는 데 지나지 않는 경우에는 그 의료의 계속적인 실시를 전술한 윤리규정 및 지도요령에 입각하여 중지시킨다.
이 선언은 의미없는 인간의 연명조치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선언한 것으로 소극적 안락사를 정착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본인의 생전의 의사표시에 의하여 연명적 의료를 거부·중지하여도 좋다는 것을 입법화함으로써 소극적 안락사가 완전히 정착된 것이다.
□ 죽을 권리의 입법화
1. California 주법
미국에서 가장 먼저 제정된 것으로 1977년 1월 1일부터 자연사법(Natural Death Act)이라는 형식으로 죽을 권리에 관한 법이 실시된 것이다. 이 법률은 단지 죽음의 과정만을 연장하는 데 지나지 않는 의료조치는 불필요한 것으로 불치의 환자가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확립하고 보호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법률에서는 18세 이상의 시민은 의사에 대한 지시서를 작성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고 있으며, 이 지시서의 내용은 환자가 말기증상을 보이는 경우에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연명장치의 제거에 관한 권리를 위임한다는 것이다.
2. Arkansas주법
이 주의 법률은 말기의 미성년 환자와 같이 자기 스스로 문서를 작성할 능력이 없는 자의 경우에는 그 친권자가 법정대리인으로서 이를 대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개인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문서에 의하여 내과적·외과적 조치를 요청 또는 거부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이 법률이 다른 주의 것과 다른 점은 일단 작성된 문서를 취소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는 점이며, 말기 환자라는 의사의 증명은 미성년자 및 무능력자를 제외하고는 요구하지 않다는 점이다.
3. Idaho주법
이 주의 법률은 성년자의 경우에 말기증상이 나타나면 자기의 담당의사에게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할 수 있는 지시서를 작성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의사에 대한 지시서는 그 개인이 말기증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진단이 내려진 후에 작성된 것이라야 법적 구속력이 있다. 또한 그 지시서는 해당 환자가 혼수상태나, 기타 원인으로 의사에게 자기의 의사를 전달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그 효력을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4. New Mexico 주법
이 주의 법률은 California 주법과는 달리 주민은 말기증상이 되기전이라도 언제든지 법적 구속력을 지닌 문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두명의 의사에 의하여 그 환자가 말기적 증상에 이르렀으며, 생명유지를 위한 의료가 그 환자의 생명회복에는 도움이 도지 못하고 단지 연장에 그친다는 증명이 있음으로써 환자가 이미 작성한 지시서는 유효하게 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법률에서는 미성년자를 대신하여 문서를 작성할 것을 허용하고 있으며, 또한 대행할 수 있는 가족의 순서까지도 상세하게 정하고 있고, 해당 미성년자의 부모중 어느 한쪽이 반대하는 경우에는 그 문서는 효력을 발생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5. North California 주법
이 주의 법률은 뇌사의 규정과 죽을 권리의 개념을 최초로 결부시킨 것이다. 즉, 뇌가 기능을 정지한 경우라 할 지라도 환자의 호흡작용과 혈액순환을 계속시키기 위한 기계적 장치를 제거하기 위한 법적조치를 취한 것이다. 의사는 환자의 지시문서를 행하는데 있어서 광범위한 자유재량을 부여받고 있다. 말기현상 및 불치의 병이라는 진단은 담당의사 이외의 다른 의사의 진단을 요구하고 있다.
6. Texas 주법
이 주에서는 죽을 권리에 관한 법률을 "자연사법"이라고 명명하고 환자의 의사에 대한 지시서를 환자의 의무기록의 일부로 다루고 있다. 즉 말기증상의 진단은 두명의 의사에 의하여 각각 이루어져야 하며, 지시서는 두명의 증인을 요하고 그 증인은 공증인 앞에서 선서후에 서명한 것이라야 한다. 임신한 경우에 지시서는 무효로 되며 신청자의 의사 번복 또는 의사표시의 철회로도 지시서는 무효로 된다. 그리고 지시서대로 행하지 아니한 의사의 민사상 또는 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2. 존엄사 허용, 생각해 볼 때다 (중앙일보사설 2007.08.11)
뇌사 상태 아들의 인공호흡기를 의사 몰래 떼어내 숨지게 한 아버지가 살인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사건이 존엄사(尊嚴死)에 관한 오랜 논쟁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결론부터 말해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존엄사 허용을 논의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다. 인간의 생명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지만 인간으로서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할 권리도 존중하는 게 옳다는 판단에서다. 사실 존엄사를 찬성하건 반대하건 양측 입장의 근거는 모두 생명의 존엄성이다. 하지만 회복 가능성 없이 무의미한 삶을 연장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삶을 마칠 수 있게 하는 것이 오히려 인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결과일 수 있다. 게다가 가족들의 정신적 고통과 경제적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 가족에게 고통을 주는 걸 견디지 못해 먼저 존엄사를 요청하는 환자도 있다.
세계적으로도 존엄사를 인정하는 추세다. 프랑스·홍콩·대만은 존엄사를 법과 제도로 인정하고 있다. 영국·네덜란드는 약물 등으로 중환자가 편안하게 숨을 거둘 수 있게 하는 안락사(安樂死)까지 허용한다. 미국 대법원도 지난해 안락사를 돕는 의사들을 무조건 처벌하는 조치가 잘못됐다고 판결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안락사를 지지했다.
우리 사법 당국도 6월 소생 가능성 없는 환자의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청한 자녀와 집행한 의사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려 처음으로 존엄사를 인정했다. 하지만 2004년 보호자 요구로 환자를 퇴원시켰다 사망케 한 의사가 살인방조죄로 확정 판결을 받은 뒤 대부분 의사가 ‘방어 진료’에 매달리는 형편이다. 이제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네덜란드 식 안락사는 아니더라도 회생 불가능한 환자에게 품위 있게 인생을 정리할 기회는 줘야 한다. 중환자실에서 각종 기계장치에 의존한 상황에서는 그럴 틈이 없다.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의사를 무조건 처벌하는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 대상과 절차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뒤 본인 또는 가족의 의사를 존중해 존엄사를 허용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3. 뇌사자 존엄死, 권리인가 살인인가(경향신문 기사 2007년 08월 28일)
지난 8일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는 아들의 인공호흡기를 뗀 광주에 사는 한 아버지가 살인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이후 ‘존엄사’를 둘러싼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KBS2 ‘추적 60분’은 29일 오후 11시5분 방송되는 ‘존엄사 논란, 어느 아버지의 선택’ 편은 대학병원 중환자실 2곳을 1주일 동안 관찰하고 존엄사 논란을 집중 조명한다.
존엄사는 소생 가능성이 없고 연명 가능성 또한 짧은 경우,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 등의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을 가리킨다. 소생 가능성은 없지만 연명 가능성이 높은 환자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시키는 안락사와는 다른 개념이다. 현행법으로는 존엄사와 안락사 양쪽 다 불법이다. 문제는 최근 말기암 환자와 뇌졸중 환자가 급증하면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고민이 더 이상 특별한 사람들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프로그램에는 아들의 인공호흡기를 뗀 아버지 윤씨가 출연한다. 올해 스물아홉인 큰아들 석천씨는 열살 때부터 근육이 점점 없어지는 희귀병을 앓아왔다. 지난 7월,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고 심폐소생술을 받고 살아났지만 식물인간이 됐다. 아버지 윤씨는 오랫동안 투병해온 아들을 편히 보내주고 싶었다고 했다.
4. ‘죽을 권리’ 美보수의 역설 (경향신문 기사 2005년 03월 25일)
15년간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온 미국의 테리 시아보(41·여)가 25일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사실상 최종적인 사망 선고를 받았다. 미 대법원 전원 재판부는 시아보의 생명 튜브를 다시 연결토록 해 달라는 테리 부모의 청원을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몇 시간 뒤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가 테리의 보호권을 남편에서 주(州)로 이관해 달라고 낸 청원도 그 자리에서 기각했다. 이로써 입법부와 대통령까지 나서 사법부의 결정을 뒤집으려 했던 사상 초유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시아보에게 ‘죽을 권리’가 있다며 생명 튜브를 떼자는 시아보의 남편과, 산 사람을 어떻게 죽일 수 있느냐며 튜브를 떼서는 안 된다는 시아보의 부모가 10년 이상 벌여온 법정다툼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주 법원과 연방법원은 10여번의 심리에서 남편의 손을 들어줬으나 미 보수층의 지지를 받는 정치권은 특별법을 2번 만들면서까지 생명을 연장시키려 애썼다.
이번 사건을 지켜보며 두 가지 의아스러운 점이 있다. 미국 보수층이 보여준 이율배반적 행동이다. 먼저 ‘위선적인 생명관’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라크 전쟁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살상당하는 것에는 눈을 감고, 학교 총기 난동으로 어린 학생들이 죽어가도 총기소유 규제에는 반대하는 게 미 보수층이다. 그런데도 15년 식물인간이 죽게 내버려두자는 데 대해선 모든 수단을 써서라도 막아보려는 ‘휴먼 드라마’를 만들려고 했다.
‘사법부의 배반’이란 점도 생각게 한다. 현재 미국 대법원은 단연 보수성향이다.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을 비롯한 7명의 대법관은 공화당 임명자들이다. 이 대법원이 보수 기독교단체와 공화당 정치인들의 요망을 외면하고 “시아보의 존엄사”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번 결정의 배경에는 1990년 ‘낸시 크루전’이라는 여성의 사건에서 내린 판례가 있다. 당시 대법원은 생존시 본인이 존엄하게 죽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는 증거가 있으면 ‘죽을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결정했고, 그 원칙이 확립됐다고 본다. 이번 결정에 대해 보수층 인사들은 “사법부는 너무 많은 힘을 갖고 있다”며 사법부를 약화시켜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5. 日여당 ‘존엄死’ 인정 법안 내기로 (경향신문 기사 2005년 01월 03일)
일본 여당 국회의원들이 소생할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존엄사’를 인정하는 내용의 법안을 올 정기국회 회기중 제출할 예정이라고 도쿄신문이 3일 전했다.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의 의원입법으로 발의될 이 법안은 ▲불치병 환자가 인공호흡기 등으로 생명을 유지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를 가지며 ▲환자의 뜻에 의해 연명조치를 중단한 의사는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존엄사는 환자를 ‘인위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안락사와는 구별된다
6. 존엄사, 제도적·법적 본격 논의 필요
조선일보칼럼 “의사들이 쓰는 병원 이야기”: 민건식·변호사
2007.09.17
특히 75세 이상의 황혼기에 접어든 고령자에게는 남의 일로 치부될 수 없는 공통적인 고뇌와 번민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죽음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더욱 감명 깊었다. 최근 뇌혈관 질환으로 입원 경력이 있는 친지가 존엄사 선언을 문서화할 수 있는 방법을 문의해와 주위 친지들에게 의견을 구해보니 대다수가 “필요성을 느낀다”는 의견이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노인들도 병원에서 삶의 마감이 이뤄지고 있다. 그렇다보니 환자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하는 의사의 마음가짐이 더더욱 중요하다.
의사는 “인간의 생명은 지구와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이라는 직업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환자들을 대한다. 이들의 헌신적인 공헌 덕에 오늘날의 고령화사회가 가능해진 것인지도 모른다.그러나 식물상태나 뇌사 상태에 빠져 있는 말기 환자들에게 기관 절제 수술 후 인공호흡기장치나 식도 절제 후 영양 공급 등 연명 조치를 해서 살아 있다고 한들, 이것이 과연 살아있다고 할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죽음 이야기는 누구나 말하기를 꺼린다. 그렇다고 마냥 침묵할 수만도 없다. 많은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온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품위 있게 죽고 싶어한다. 병원 이야기를 쓴 김범석 의사는 “그동안 얼마나 ‘보호자 편의’ 위주로 진료를 해 왔는지 돌이켜 보게 되었다.… 환자와 치료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나누고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 진료의 기본이다”라고 끝맺었다.
바로 이것이 존엄사다. 외국은 23개국이나 존엄사협회가 있다. 죽음의 권리는 인간 존엄성과 인격권의 헌법적 보장이기도 하다. 김 의사의 문제제기를 계기로 존엄사에 대한 제도적·법률적 검토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7. 산소호흡기 떼낸 의사 ‘무혐의’ 될까 (한겨레 기사 2007-06-10)
최원형 기자,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circle@hani.co.kr
경찰, 의협에 자문…“말기암 합병증 사망 과실 인정 안돼”
검찰, ‘소극적 안락사’ 결론여부 주목…의료계선 사실상 허용
말기암 환자의 산소호흡기를 떼어 ‘안락사’시킨 의사가 살인 혐의로 고소됐으나, 경찰이 검찰의 지휘를 받아 ‘무혐의’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아직 최종 결론을 내리지 않았으며, 곧 결론을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산소호흡기를 떼는 식의 ‘소극적 안락사’에 대해선 아직 대법원 판례가 없는 상황이어서, 검찰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살인” 대 “사망 원인 아니다”=2002년 간경화 진단을 받은 김아무개(45)씨의 어머니(당시 68살)는 뒤 병세가 악화해 지난해 3월 ㅅ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석달 뒤 주치의 박아무개(30)씨는 김씨 누나의 동의를 얻어 산소호흡기를 뗐다. 김씨는 “계속 진료했어야 함에도 이를 포기하고 산소호흡기를 제거한 것은 살인행위”라며 지난해 12월 박씨 등 의사 2명과 누나를 고소했다.
그러나 박씨는 “환자가 평소에 자신의 딸과 나에게 ‘이상한 기구를 달고 죽고 싶지 않다. 깨끗하게 죽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숨지기 일주일 전 간경변의 마지막 단계인 ‘간신증후군’(간질환 때문에 콩팥이 망가지는 현상)이 왔기 때문에 산소호흡기를 떼지 않았더라도 24시간을 넘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 방배경찰서는 사건 당사자들의 진술만으로는 판단이 어려워, 대한의사협회에 진료기록 등을 보낸 뒤 자문을 구했다. 의사협회에서는 ‘김씨의 어머니가 간경화로 말미암은 합병증으로 숨졌으며 산소호흡기 대체가 사망의 직접 원인이 아니다’는 감정 결과를 보내왔다. 방배경찰서 박정수 강력4팀장은 “의사협회 감정 결과에서 의사의 과실이 인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법원·의료계 인정 추세=안락사 인정 여부는 전세계적인 관심사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면으로 쟁점화한 적이 없다. 법 규정도 없고, 대법원 판례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2004년 이른바 ‘보라매병원 사건’ 항소심 판결에서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불치 상태의 환자 스스로 진지하게 치료 중지를 요구하고 병원윤리위원회 등 검증 절차를 거쳐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될 경우 소극적 안락사 등 치료의 중지를 제한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고 밝힌 적이 있을 뿐이다. ‘보라매병원 사건’은 입원한 뇌출혈 환자를 가족 요구에 따라 퇴원시켜 숨지게 한 의사 2명에게 살인방조죄가 적용된 것으로, 사건 자체는 안락사와 관련이 없다.
불치병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해 숨지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와 달리, 소극적 안락사는 ‘존엄사’로도 불리며 일본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인정되고 있다. 의사협회에서도 2002년 의사윤리지침을 통해 이를 사실상 허용했다. 이윤성 서울대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객관적인 판단에 따라 회복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판단되는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 등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이 사건에서 의사의 판단은 의사협회 윤리 규정에도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의료정책팀 정준섭 사무관은 “생명 존중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연명 치료 중단에 반대하는 등 사회적 공감대가 충분히 모아지지 않은 상태”라며 “공감대가 모아진 뒤 관련 입법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역별로 짚어 보는 존엄사 논쟁과 생명윤리
중앙일보 교육정보 2007.07.03
참으로 존엄한 게 생명이다. 목숨을 해치는 것은 그래서 악이다. 그런데 여기까지 읽고 끄덕인 사람에게 질문 하나 던진다. “그렇다면 생존 가능성 없이 산소호흡기로 잠시 연명하는 환자에게도 이 원칙이 적용돼야 할까?” 존엄사 찬성자는 ‘고통스러운 연장보다 편안한 임종이 낫다’고 주장한다. 최근 이를 실천해 환자를 사망케 한 의사 두 명이 무혐의 처분을 받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교과서의 실마리…‘인간 존엄성은 절대가치’ 곳곳서 강조
교과서는 안락사 등 생명윤리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생명 존엄을 강조하며 이것이 어떤 이유로도 침해받아선 안 된다는 주장이 자주 등장한다. 인간 존엄을 가장 강조한 곳은 『철학』(대한교과서)의 ‘생명의 가치’ 단원이다. 존엄에 대한 믿음에서 생명 존중 의식이 생기고 도덕성의 기초도 만들어진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시민과 윤리』(교육인적자원부) ‘생명 존중과 윤리’엔 좀 더 실천적 내용이 담겨 있다. 인간은 생명의 무한한 가치를 깨닫고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교과서는 강조한다. 또 이런 자세를 인류가 갖출 때 삶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과목엔 이 문제의 현실 적용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법과 사회』(교학사)의 ‘국가 생활과 법’은 소극적 안락사의 현실적 필요와 부작용을 동시에 다룬다. 삶의 질을 높이고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소극적 안락사가 필요하지만 허용할 경우 비윤리적 악용이나 생명 경시로 나타날 수 있다며 ‘생명’이란 절대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과목은 인류가 물질 문명 발전을 위해 생명을 경시하고 희생시킨 경향이 있었다며, 미래는 생명 윤리의 강화를 통해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생물II』(대한 교과서)의 ‘생물과 인간 미래’ 는 생명 윤리를 분명히 깨닫고 연구해야 인간복제ㆍ유전자 조작ㆍ안락사 등 생명 문제를 올바로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법학▶쉽게 허용하기보다는 신중한 태도로 접근해야 / 김민호 교수(성균관대ㆍ법학)
존엄사는 생명에 대한 가치 판단적 개념이다. 따라서 주관적 의미를 담은 존엄사는 법적 측면에서 큰 의미가 없다. 법은 ‘행위’에 대한 법적 평가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본인 스스로 존엄한 죽음을 선택했는지 여부는 판단의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그보다 어떠한 행위가 생명을 중단시켰는지가 의미를 갖는다.
예컨대 의사가 소생 가능성 없는 환자에 대해 인위적으로 생명 연장 장치를 제거해 생명을 단축ㆍ중단시키는 행위는 형법상 살인죄ㆍ자살방조죄 등에 해당할 수 있다. 설사 그 동기가 환자나 가족이 겪어야 할 고통을 덜어주는 것일지라도 그 결과가 생명을 끊는 것이기 때문이다.
법률상 ‘생명’은 절대적이며 동일한 가치다. 형법은 ‘생명’이라는 표현 대신 ‘사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사람’이란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는 시기(始期)부터 더 이상 사람으로 볼 수 없는 종기(終期)까지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 여기서 종기는 사망 시기로 그 판단은 아주 엄격한 논의와 연구를 거쳐 사회적 합의로 결정된다. 환자가 회복 가능성이 없거나 의미 없이 고통스러운 삶을 연명해도 생명의 절대 가치와 법률 적용은 달라지지 않는다. 만약 현실적 필요나 상황에 따라 생명 침해 행위를 차별적으로 허용한다면 생명의 존엄성이 무너질 수도 있다. 따라서 존엄사 인정은 원칙에 대한 예외로서 쉽게 허용하기보다 신중한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존엄사 여부를 결정하는 의학적 판단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인간다운 죽음을 악용한 범죄나 비도덕적 행위를 막는 현실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법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생명 존엄성‘이라는 자연법적 가치를 수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명’에 대한 절대 존중’은 사회의 올바른 유지를 위해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다.
※ 존엄사를 허용할 경우 어떤 비윤리적 악용 사례가 있을 지 밝히고 부작용을 막을 제도적 장치에 대해 말해 보라.
의학▶무의미한 치료보다는 의사의 양심에 맡겨야 /윤영호 부장 (국립암센터 암관리사업부)
생명과 건강은 모두에게 소중하다. 특히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연장하고 고통에서 구하도록 교육받았기에 더 그렇다. 그런 의료인이 왜 죽음을 앞둔 환자의 생명 연장 치료를 중단하자고 주장하는가. 우선 최근의 흐름을 살펴보자. 의료 기술 발달로 감염성 질환이나 사고에 따른 사망은 줄었다. 반면 암ㆍ고혈압ㆍ당뇨 등 만성질환 증가로 의료의 역할이 완치에서 간호(care)로 바뀌었다. 그리고 인공영양ㆍ인공호흡기ㆍ심폐소생술ㆍ신장투석 등 생명유지 기술은 회복 불능 말기 환자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지연시켰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생명유지 기술이 오히려 환자의 고통과 죽음만을 연장할 뿐이며 환자 가족들도 어려움에 시달리게 한다는 점이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존엄사 허용에 대한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존엄사’란 최선을 다했음에도 죽음이 임박했을 때 ‘무의미한 치료’ 를 중단하고 품위 있는 죽음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한계를 수용하는 것으로 ‘소극적 안락사’와 다르다. 소극적 안락사는 희박하지만 회복 가능성 있는 상황에서 심폐소생술 같은 의미 있는 치료를 하지 않음으로써 생명을 단축하는 행위다. 따라서 의료계는 ‘소극적 안락사’를 명백하게 반대한다. 반면 존엄사는 환자에게 선을 베풀고 손해를 피한다는 ‘선행의 원칙’과 ‘악행 금지의 원칙’에 충실한 것이다. 따라서 존엄사 여부를 환자가 미리 정하는 사전의사결정(Advance directives)과 편안한 임종을 위한 ‘호스피스 완화 의료’로 환자가 자율적 선택을 통해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말기 환자에게 정말 필요한 일은 고통스러운 생명 연장이 아닌 편안한 죽음일 수 있다. 병을 고치는 의사가 ‘존엄사’를 찬성하는 이유는 환자에게 정말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깊은 고민에서 출발한 것이다.
※ 존엄사를 허용할 경우 ‘무의미한 치료 중단’이라는 의사의 판단이 결정적이다. 의사의 판단 오류나 악용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 장치는 무엇이 있을까
사회▶소극적 안락사·존엄사 수용한 나라 늘어 / 이종수 교수(한성대ㆍ대한의사회 국민의학지식향상위원)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한 간경변증 환자의 산소공급을 중단해 사망하게 한 의사 2명이 최근 경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존엄사’를 인정한 사법당국의 첫 판단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불과 3년 전 대법원은 뇌출혈 환자를 아내의 요구로 퇴원시켜 숨지게 한 의사 2명에게 살인방조죄를 적용해 처벌했다.
안락사(euthanasia)는 ‘좋은(eu: good)’ ‘죽음(thanasia: death)’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안락사는 소생 가망이 희박한 말기 환자가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행위를 말한다.
안락사의 개념은 소극적 안락사와 적극적 안락사로 나눌 수 있다. 적극적 안락사는 말기 환자에게 독극물 등을 인위적으로 주입해 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루게릭병 환자에게 독극물을 투입해 자살을 도운 죄로 8년여를 복역한 미국의 잭 케보키언 박사의 사례가 적극적 안락사에 해당된다. 소극적 안락사와 존엄사는 각각 ‘회복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나 ‘회복 불가능한’ 이에게 고통을 덜거나 품위 있게 임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세계적 추세는 존엄사와 소극적 안락사를 점차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의사윤리지침 제30조는 ‘회생 가능성 없는 환자’에 대한 존엄사를 긍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1978년 본인이 동의한 경우 불치의 말기환자에 대한 존엄사를 허용하는 안락사법을 제정했다. 이후 미국의 다른 주와 유럽 여러 나라로 이 같은 움직임은 확산됐다. 그러나 적극적 안락사를 제도적으로 허용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네덜란드와 스위스, 벨기에 등 일부 국가만 이를 인정하고 있다.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서는 오리건 주만이 유일하다. 우리나라 대한의사협회가 제정한 의사윤리지침 제58조도 적극적 안락사를 금지하고 있다.
※ 수년 동안 키운 반려 동물이 불치병에 걸려 극심한 고통을 당할 경우 안락사를 시킬지 말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보라
철학▶칸트 윤리는 반대입장 … 공리주의는 허용 / 김상배 교수(서울시립대ㆍ철학)
안락사에 대한 찬반 논쟁은 생명의 신성불가침과 자기결정권이라는 대립에서 출발한다. 생명의 신성성은 그 기원이 기독교에 있다. 생명은 신의 영역으로, 위탁관리자인 인간은 아무 권한이 없다. 이 같은 생각이 오늘날 생명존중 사상으로 일반화돼 세속 윤리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했다.
이런 입장에서 생명권은 근본적으로는 타인에게 죽음을 당하지 않을 권리다. 따라서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따라서 안락사는 절대 허용될 수 없다. 이와 유사한 입장을 보인 근대의 대표적 철학자는 칸트다.
칸트는 도덕규칙이 만족시켜야 할 조건으로 세 가지 형식의 정언명법을 제시하고 있다. 정언명법에서 추론해 낼 수 있는 실천규칙은 생명을 자의적으로 단축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생명을 수단화하지 말고 목적으로서 존중하라는 것 등이다.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입장은 근세 자유주의 이념에서 뚜렷하다. 이 입장은 자율성 존중의 원칙에 입각할 때, 고통스러운 생명의 존속 여부 결정은 전적으로 생명 소유자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발적 의사에 따른 것인 한 안락사는 허용될 수 있다.
근대에 가장 큰 영향력을 보인 공리주의는 이 문제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다. 공리주의는 신성 불가침과 자기 결정권에 관한 논변은 다루지 않는다. 행위가 낳은 결과에 입각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뿐이다. 공리주의 관점에서 안락사는 ‘욕구의 최대만족과 최소좌절’을 가져올 때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 된다. 따라서 회생 불가능한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보다 죽음으로써 더 많은 개인적·사회적 욕구가 달성될 경우 안락사는 허용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비자의적 안락사도 욕구 충족 결과가 크게 나타날 때에는 당연히 허용될 수 있다.
따라서 자의적ㆍ비자의적ㆍ반자의적 안락사의 구분은 아무 의미가 없다. 공리주의에서 모든 것은 오직 그 결과에 의해서만 도덕적으로 옳으냐, 그르냐가 판가름날 뿐이다.
※ 칸트의 도덕규칙과 공리주의 철학을 정리해 안락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