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착취 시스템
강준만칼럼
한겨레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①1995년 외무부 외시 출신 외교직 730여명 가운데 80%. ②1960년대 이후 1990년대까지 중앙지 편집국장 184명 중 77%. ③2001년 한 해 동안 7개 중앙일간지에 칼럼을 실은 외부 기고자의 73%. ④김영삼 정부 각료의 68.1%. ⑤2004년 전국 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상 127명 가운데 87.4%. ⑥2005년 청와대 중앙 행정부처의 1급 이상 302명의 66.9%. ⑦2005년 전체 장·차관급 공무원의 62.2%. ⑧2002년부터 2005년까지 사법연수원 입소자의 63.1%. ⑨2006년 국내 4대 그룹의 사장급 이상 주요 경영자의 65.8%. ⑩2007년 국내 1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68.8%.

무슨 통계인가? 이른바 ‘스카이’(SKY·서울-고려-연세) 대학 출신 비중이다.(④⑤는 서울대 출신만의 비율이다)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스카이 출신은 상층부의 50∼90%를 점하고 있다. 사정이 이와 같으니, 한국의 학부모가 목숨 걸다시피 하면서 자식을 스카이에 보내려고 하는 건 매우 합리적인 현상이다.

스카이는 그런 현상에 ‘무한팽창 전략’으로 부응하고 있다. 연세·고려대는 재학생 수에서도 각각 2만6442명과 2만6304명으로 국내 대학 중 1·2위를 차지했다.(2006년 4월1일 학부생 기준) 서울대는 어떤가? 정운찬씨는 서울대 총장 시절인 2005년 1월 “현재 서울대는 학부생 2만1000명에 대학원생이 1만1000명 가량 됩니다. 전체 3만2000명인데, 아주 많은 것이죠. 이것은 하버드대의 2배, 예일대의 3배, 프린스턴대의 5배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인구 2억8천만명인 미국의 상위 10개 대학 졸업생이 매년 1만명에 불과한데, 인구 4700만명인 한국에서는 스카이에서만 1만5000명의 졸업생이 나온다고 지적하면서, 형평성, 효율적인 학교 운영, 연구와 교육의 질 등을 위해 스카이의 정원 대폭 감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나는 정 총장의 주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스카이 출신의 사회 요직 독과점이 한국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사교육 과잉과 입시전쟁의 주범이라는 주장을 해왔다. 나중엔 어떻게 될망정 자녀를 둔 학부모는 일단 스카이를 목표로 하는 사교육비 지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카이 정원을 단계적으로 대폭 줄여 소수정예주의로 가게 만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이는 모두에게 좋다. 국내에서 존경을 누리면서 국내가 아닌 국외를 대상으로 경쟁을 하게 만들면 스카이에도 좋고, 스카이의 기존 인해전술이 사라진 공백을 놓고 다른 대학들이 치열한 경쟁을 함으로써 범국민적 차원의 ‘패자부활전’이 가능해진다. 즉, 스카이를 향한 기존 입시 ‘병목 현상’이 크게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나는 어느 글에서 정 총장을 ‘애국자’라고 칭송했지만, 그의 주장은 서울대 총장이라는 사회적 위상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지 못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기존 입시전쟁으로 인한 민중의 피폐한 삶에 가장 신경을 쓴다고 주장하는 진보파들도 정 총장의 주장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본질과는 무관한 이념적인 문제에만 매달려 왔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한국의 진보파 지도자·명망가·논객들의 학벌을 보면 답이 나온다. 한국에선 말 좀 하는 진보가 되기 위해서도 반드시 스카이를 나와야만 한다. 한국의 입시전쟁은 보수·진보가 묵계적으로 담합한 사교육 착취 시스템이다. 사교육비를 통한 착취를 하기 때문에 모든 건 ‘사회’가 아닌 ‘개인’ 탓으로 돌려질 수 있다. 죽어나는 건 스카이 근처에도 갈 수 없으면서 스카이용 사교육비를 대는 서민들이다. 한국의 사교육비 문제는 ‘이념’이 아닌 ‘과학’으로 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