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 논술 자료함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
- 왜 우리는 경제학을 공부하는가-
정운영(전 서울대 교수, 경제학)
경제학은 우울한 학문?
J양에게!
“중국에 대해 기행문을 쓸려거든 그곳에 도착한 지 사흘 이내에 쓰시오.”라는 어느 서양 사람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사흘이 지나면서 중국이라는 거대한 문물과 조금씩 친숙해지면 오히려 점점 더 당황하게 되어, 마침내는 붓조차 들지 못한 채 그 시도를 포기하게 되는 경우를 염려해서 일러 준 말이겠지요. J양이 잡지사로 보낸 편지를 전해 주면서 편집자는 나에게 ‘가장 자상하고 가장 친절한’ 말하자면 최상급의 형용사가 두 번이나 반복되는 회답을 부탁했지만, 아무래도 이 편지가 수신인을 잘못짚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편지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건대 J양은 아마 대학 입시를 앞둔 학생으로서 경제학이란 그 ‘삭막한’ 느낌의 학문을 - 실제로 토마스 카알라일은 “경제학은 우울한(dismal)학문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 전공으로 선택해도 좋은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중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생이라는 나무는 그것을 가꾸는 고민에서 쉽게 도피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과 적극적으로 대결하십시오. 내용은 다르나 내게도 지금 그와 비슷한 고민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경제학을 하나의 ‘직업’으로 삼고 있는 나로서는 예컨대 한 권의 소설책을 덮으면서 던질 수 있는 ‘재미있다’거나 ‘지루하다’라는 식의 즉흥적인 감상을 그대로 경제학에 옮기는 일이 결코 용이하지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중국에 대해 기행문을 써야 할, 한 서양인의 당혹과 곤란이 ‘잘못된 수신인’에게 하나의 현실로서 다가선 셈입니다.
밥, 생산, 노동
경제학이라는 말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대상은 아마 ‘밥’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밥-그것이 빵이나 스파게티라도 마찬가지입니다만-과 관련되는 여러 가지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 경제학입니다. 루드비히 포이에르 바하라는 철학자는 “인간이란 요컨대 먹는 존재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만, 실상 이 지극히 평범한 발견이야말로 경제학이 성립하는 바탕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블라디미르 두진체프의 소설 제목은 아주 지당하고 매력적인 말씀이나 “밥 없이 살 수 있는 녀석이 있으면 나서 보라.”는 투박한 항의 또한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이미 짐작했으리라 믿으나 밥은 그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한 보따리의 소비재일 수만은 없습니다. 오히려 밥은 한 사회의 발전과 쇠퇴를 규정하는 최초의 요인입니다. 따라서 그 밥을 어떻게 만들고 또 어떻게 나누느냐는 방식에 따라 그 사회의 문화가 형성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밥을 만드는 행위를 경제학에서는 ‘생산’이라고 합니다. 이 생산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토지나 천연 자원과 같은 ‘노동대상’이 있어야 하고, 또한 이 대상을 가공할 수 있는 시설이나 기계와 같은 ‘노동도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일정한 조직과 통제 아래서 이들 생산수단(노동대상과 노동도구)을 실제로 사용하는 ‘노동력’의 역할입니다. 이렇게 생산의 원천을 노동이라 할 때, 경제학은 ‘태초에 노동이 있었으니 거기서 생산이 비롯되었느니라.’고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토지와 같은 노동대상은 자연에 의해 이미 ‘주어진 것’으로서, 인간의 노동과는 무관하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든 자연에는 인간의 노동이 부가되어야만 그것이 경제적 의미를 가집니다. 냉장고 속의 작은 얼음 한 조각에는 신경을 쓰면서도 북극의 빙산에 무관심한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이유는 그 자연의 결정에 인간의 노동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일상적으로 자본이라고 부르는 생산 설비와 같은 노동도구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이전에 인간의 수고와 노력이 만들어낸 노동의 집적이며 그 결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강조합니다만 노동력은 토지나 자본에 선행하는 생산요소입니다. 그러므로 생산의 주요 요소는 자연, 자본, 노동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것은 노동대상, 노동도구, 노동력이며 그 중에서도 노동력이 가장 본원적인 요소라고 고쳐 말해야 됩니다.
소외를 극복하는 학문
나는 위에서 밥을 어떻게 생산하느냐는 문제가 곧 그 사회의 문화적 형태와 깊은 관련을 가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J양이 써 보낸 대로 경제학이란 요컨대 “한 사람의 위대한 시인보다 한 개의 발전소를 건설을 더 소중하게 여기지나 않는지요.” 라는 우려에 대해 얘기해 보지요. 인간이 처음으로 경제 생활을 시작하면서 노동력은, 구체적으로 그 노동력을 지니고 노동하는 사람은 노동대상과 노동도구를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사유 재산이란 개념이 도입되면서 노동력은 먼저 노동대상을 잃게 됩니다. 예컨대 힘세고 욕심 많은 어느 한 사람이 자연이 하사한 광활한 토지에 사유의 울타리를 둘러치면서부터, 다른 사람들을 여태까지 함께 열매를 거두던 땅에서 물러나야 했으며 또 지금까지와 같이 고기를 잡던 다가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회가 점점더 발전하여 자본주의 단계로 들어오면 노동력은 다시 노동도구와 분리됩니다. 현대의 어떤 노동자도 자기가 일할 공장을 스스로 짓거나 자기가 사용할 기계를 스스로 지고 일터로 가지는 않습니다. 경제학이란 ‘프리즘’을 통해 볼 때, 인류의 역사란 한마디로 인간의 노동에 의해 생산이 되풀이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노동의 주체인 인간은 자연(노동대상)이나 자본(노동도구)을 차례로 잃게 됩니다. 주인이어야 할 노동력이, 즉 인간이 오히려 그 도구에 예속되는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소외’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현대의 경제학이 이 소외의 문제를 ‘대단히 소홀하게’ 다루는 것은 사실이고, 바로 그런 점에서 크게 비판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경제학이 이 소외로부터의 인간 해방이란 그 본연의 시평을 끝끝내 포기할 수는 없기에, 아마 멀지 않은 장래에 경제학은 다시 J양이 걱정하는 그 시인에게 진정으로 용기 있는 역할을, 주인의 자리를 빼앗은 노예를 고발하고 노예가 된 주인을 분발하도록 만드는 힘찬 노래의 제작을 요청하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분배, 잉여, 계급
이미 만들어 놓은 밥을 어떻게 나누느냐는 문제, 즉 ‘분배’에 대해서도 같은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나눈다는 행위는 그에 앞서 각기 이해가 대립되는 집단을 상정하게 만듭니다. 만약 서로 많이 가지려고 경쟁하지 않고, 서로 적게 가지려고 노력한다면 경제학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이해 대립의 집단을 경제학에서는 ‘계급’이라고 부릅니다. 예컨대 고대 사회에서는 노예가 생산한 결과를 귀족이 채찍을 휘둘러 빼앗았으며, 중세 사회에서는 노동자는 생산물의 일부를 임금으로 받고 나머지는 자본가가 이윤으로 차지합니다. 계급이란 이렇게 밥의 생산과 분배에 참여하는 사람과 사람-즉 노예와 귀족, 농노와 영주,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를 가리키는데, 그것은 사실상 노동대상과 노동도구를 차지한 집단과 노동력만을 지닌 집단의 갈등 위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 사회가 존속할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은 투입보다 산출이 커야 한다는 단순한 산술에 의거하는데, 이 산출과 투입의 차액을 잉여라고 부릅니다. 만약 누가 100원을 비용으로 들여(투입) 120원을 수입으로 얻었다면(산출), 그는 이 사업에서 20원의 잉여를 낸 셈이 됩니다. 그런데 이 잉여를 소비하는 용도도 시대에 따라 각기 달랐습니다 이를테면 노예제 사회에서는 노예가 창출한 이 잉여를 귀족이 피라미드를 만드는 데에 탕진하고, 봉건제 사회에서는 농노로부터 수취한 지대를 영주는 고딕 사원을 세우는 일에 낭비해 버렸습니다. 모두 다 비생산적으로 소비한 셈이지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잉여는 투자라는 생산적 소비에 지출됨으로써 더 많은 잉여의 발생을 노리게 됩니다. 물론 나는 이 이윤이라는 단어가 매우 건조한 느낌과 황폐한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던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윤이 때때로 아주 고약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점도 모르지 않습니다. 적어도 그 말은 J양 나이의 세대가 평가하는 가치 서열에서는, 예컨대 삶이니 사랑이니 혹은 휴머니즘이니 하는 개념들보다 훨씬 아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 한 번 냉정하게 생각해 봅시다. 예를 들어 J양이 사회의 정신 건강을 위해 아주 높은 우선 순위를 부여하고 있는 미술관의 건립도 사실은 두부 공장의 건설과 마찬가지로 이 사회가 축적한 이윤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결국 이윤으로 표현되는 이 잉여가 경제 발전을 규정하는 가장 주요한 요인이고 또한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그 사회의 문화 형태까지도 결정한다는 설득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그 잉여의 생산과 분배가 전혀 정의롭지 못한 관계와 방법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아무튼 이와 같이 밥을 만들고 나누는 가장 구체적인 현상에서 시작하여 그 밥을 만들고 나누는 사람들의 관계로 관심을 돌릴 때, 경제학은 ‘밥과 사람의 관계’를 따지는 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거기에 내재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밝히는 학문으로 그 본연의 사명을 회복하게 됩니다.
인류의 진보, 세 개의 사과
바로 그 사람이라는 문제에 관하여 현대 경제학이 표상하고 있는 ‘경제인(meconomicus)’ 또한 그렇게 애착이 가는 인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온통 도시를 압도하는 그 육중한 건물 안에서 하루 종일 자신의 머리를 컴퓨터의 단말기처럼 증권 시세표로 꽉 채우고 있는 비정한 표정의 금융인 이나, 혹은 ‘하늘의 별을 헤아리기보다는 주머니 속의 화폐를 셈하기에 바쁜’ 메마른 심성의 기업가에게서 “한줌의 매력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J양의 지적을 굳이 탓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경제학이 그토록 약삭빠르기만 해서 항상 현실에 안주하거나 주변과의 타협 속에 연명해온 것도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경제학은 중세의 봉건 사회를 지배해 온 자연법사상에 대한 처절한 항거에서 싹텄다는 사실이나 혹은 마르크스 이래의 정치경제학이 자본주의 제도에 내재된 온갖 모순의 극복을 위해 여전히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다는 사정을 기억해 두십시오. 이제 그 경제학이 지닌 현실개혁의 자세랄까 혹은 장래의 각오랄까에 관해 얘기해 보도록 하지요. 이 대목에서 내 개인의 기억을 한 섞는 것을 양해하십시오. 벌써 한 20여 년 전, 그러니까 대학에 입학해서 첫 오리엔테이션을 받을 때의 일입니다. 경제학이 얼마나 ‘훌륭한’ 학문인가에 대해 추호의 의문이 없도록 처음부터 신입생의 머리를 철저하게 훈련시켜야 할 ‘중대한’ 사명을 띠고 우리 앞에 나선 한 선배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엉뚱하게도 그것은 인류의 진보를 가져온 세 개의 사과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우선 아담이 먹었다는 창세기의 사과는 인간으로 하여금 신의 계명을 거역하고 자유의지를 선택하게 한 최초의 상징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뉴턴이 보았다는 사과는 자연의 공포로부터 인간이 지식과 이성의 독립을 선언한 찬란한 기록이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윌리엄 텔이 쏜 사과는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인간의 압제를 전복하고 자유와 사랑을 실현하게 만든 위대한 승리의 표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얘기는 그 선배의 창작인지 아니면 타인의 작품을 도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내용은 확실히 산뜻한 재치 못지 않게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요컨대 이 아담의 사과, 뉴턴의 사과 그리고 텔의 사과를 거치면서 인간은 차례로 신과 자연과 인간의 폭력으로부터 그 ‘자유의 영역’을 확대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경제학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
그런데 아담의 사과에 대해서는 철학의 영역에서 그 시비가 가려지고, 뉴턴의 사과가 자연과학 분야에서 논의되어야 한다면, 텔의 사과는 필경 사회과학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겠지요. 사실 18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소위 계몽사상은 바로 인간의 해방에 대한 최초의 자각이랄 수 있는데, 그 중요한 계기는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의 발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니까 1776년 아담 스미드의 『국부론』의 출판으로부터 현재까지 경제학 200여 년의 역사는, 실상 밥을 만들고 밥을 나누는 자유를 독점하려는 집단과 그 독점을 저지하려는 집단이 벌인 처절한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미 지적한 대로 자연법 질서에 대항해 1770년대 ‘고전파 경제학’이 태동되었습니다. 그 후 1870년대에 들어와 이 고전파 경제학이 지나치게 급진적이란 이유로 ‘신고전파 경제학’이 이의를 제기했고, 반대로 그것이 너무 보수적이란 이유로 ‘마르크스 경제학’이 도전한 것이지요. 그리고 이 신고전파 경제학이 지닌 이론과 정책의 오류에 대한 반동으로 1930년대에 ‘케인즈 경제학’이 성립되었습니다. 나는 이들 여러 이론이 실현하려고 애썼던 자유의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쓰지 않겠습니다. 다만 새로운 주장이 예전의 생각을 계승하기보다는 거부한 면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에, 새 이론이 옛 이론의 ‘발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것과의 ‘대결’이란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말하자면 경제학은 J양이 여러 차례 우려했듯이 현실에 자족하는 무기력한 학문이 아니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혁명하는’ 학문이란 뜻입니다.
냉철한 지식과 열렬한 애정으로
위에서 나는 경제학이 밥과 사람의 관계에서 시작하여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해명하는 학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만, 앞의 관계는 한 마디로 풍족한 밥에 대한 요구이고, 뒤의 관계는 자유의 영역 확대에 대한 집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경제학을 통해서 ‘밥과 자유’라는 우리의 삶의 가장 중요하고, 가장 근본적인 두 측면을 규명할 수 있게 됩니다.
J양! 앨프리드 마셜은 경제학자들에게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함께 지니도록 당부한 적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J양이 냉철한 지식(이론)과 열렬한 애정(실천)을 가지고 자신과 이웃의 밥을 얻고 자유를 찾는 일에 동참하기를 원한다면, 경제학을 선택하는데 주저하지 마십시오. 결코 자상하지도 못하고 또 친절하지도 않은 이 회신이 J양이 ‘미래’를 선택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출전 :『함께 걷는 이 길은』(한샘미네르바 문고3,)
1. 인간은 경제적인 토대 위를 벗어나서는 생존을 유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경제적 요소는 무엇인지 토론해 보자.
2. 인용글의 저자는 ‘자신과 이웃이 밥을 얻고 자유를 찾는 일에 동참하기를 원한다면’ 경제학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한다. 이는 학문을 바라보는 실용적인 입장이라고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학문 탐구의 목적은 진리 탐구 자체인가, 그렇지 않다면 실용적인 목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