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앎에 대하여
윤은미 논술교사
yuneunmee@hanmail.net

대상 _ 고등학생
수업시간 _ 1차시 (90분)
수업 목표 _
1. 우리는 왜 논술을 해야만 하는가?
2. 진정한 앎에 이르는 길은 무엇일까?
3. 논술에서 지향하는 생각의 형태는 무엇일까?

각 대학에서 합격생 발표가 마무리되면서 고등부의 학생들은 입시가 이젠 남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인지 논술 수업에 모인 고1학생들은 수시 입학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온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첫 수업에 임하는 태도가 무척 긴장된 것도 그 탓인 것 같습니다. “무엇 때문에 논술을 하려고 하니?”라는 질문엔 “대학 가려고요.”라는 동일한 답변을 내놓습니다. 이들에 비해 중학생들의 “글쓰기를 잘하려고요.”, “사고력을 높이려고요.”하는 답변은 무척 여유롭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등부 학생들은 대학을 가는 통로로서의 논술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지니는 또 다른 특징은 논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다는 것이지요. “저는 글쓰기를 잘 못하는데…….”, “책을 많이 안 읽어서…….” 등이 그 이유입니다. 사실 학원의 빡빡한 체제에 밀리며 중학 시절을 보내온 아이들에겐 책 읽기란 도리어 사치스러운 부분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책 안 읽기에 익숙해져 있는데 이젠 대학을 가려면 책을 읽고 구조적 사고를 해야 한다고 하는 현실 앞에서 두려움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 일 겁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기에 첫 시간에는 우선 마음의 긴장을 풀기 위한 자기소개와 ‘논술 수업의 목적은 무엇이며 그것을 통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그리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진정으로 알아야 할 앎의 형태는 무엇인가?’ 등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나를 소개하기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에는 ‘나와 주변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소개하기를 진행합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일상적 삶의 패턴으로 고착시켜온 아이들은 주변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진정으로 어둡습니다. 특히 입시를 목적으로 중학교시절부터 달려온 터라 그들에겐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주변이 다 경쟁자들인데 어떻게 관계 속의 나를 생각해요?” 이렇게 교사의 요구에 황당한 얼굴로 질문하는 녀석들에게 “논술은 관계를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단다. 대학 논술 시험의 기본 구조도 관계성 파악이란다.”라고 일침을 놓지요. 그러면 아이들의 태도는 금세 적극적으로 바뀝니다. 대입 시험과 관계가 있다니 그럴 수밖에요.
아이들에게 시 한 편을 나누어 주고 나는 주변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발표하라고 했지요.

→ 나의 관계성 파악을 돕기 위한 시 한 편

나 / 김 광 규

살펴보면 나는
나의 아버지의 아들이고
나의 아들의 아버지고
나의 형의 동생이고
나의 동생의 형이고
나의 아내의 남편이고
나의 누이의 오빠고
나의 아저씨의 조카고
나의 조카의 아저씨고
나의 선생의 제자고
나의 제자의 선생이고
나의 나라의 납세자고
나의 마을의 예비군이고
나의 친구의 친구고
나의 적의 적이고
나의 의사의 환자고
나의 단골술집의 손님이고
나의 개의 주인이고
나의 집의 가장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들이고
아버지고
동생이고
형이고
남편이고
조카고
아저씨고
제자고
선생이고
납세자고
예비군이고
친구고
적이고
환자고
손님이고
주인이고
가장이지
오직 하나뿐인
나는 아니다

과연
아무도 모르고 있는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누구인가


→ 아이들은 주로 부모와 친구, 교사 그리고 친척관계까지로 관계의 범위를 한정시켰습니다.
교사 : 나의 관계를 알고 보니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무어라고 답할 수 있겠니?
인엽 :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잠시도 살 수 없는 존재요.
예림 : 그래도 도와줄 수도 있잖아요. 내 동생에게 공부도 가르쳐 주고, 엄마 심부름도 하는데…….
지원 : 그래도 아직은 도움을 주기보다는 받는 경우가 더욱 많아요.
교사 : 왜 도움을 주기보다는 도움을 받는 존재니?
준연 : 세금을 안 내잖아요.
사빈 : 군대도 안 갔잖아요.
교사 : 그래 너희는 아직은 도움을 주기 보다는 받는 경우가 더 많단다. 세상은 이처럼 거미줄처럼 얽힌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공동체란다. 그 관계가 잘 이루어질 때 공동체는 균형이 잘 맞는 살기 좋은 곳이 된단다. 그런데 그 관계가 깨지고 나면 그 공동체는 사람이 살기 힘든 불행한 삶터가 되고 말지. 우리 비디오 한 편을 보면서 관계의 균형이 깨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여러 각도에서 알아보도록 하자.

단편 영화 <밸런스>

영화 내용 : 사각 판에 번호가 쓰인 검정 외투의 사나이들 5명이 등을 돌린 채 밖을 보며 서 있다. 누군가가 낚싯줄을 밖으로 던져 박스 하나를 건지는데, 그것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제 사나이들은 이 음악 박스를 차지하려고 싸움을 한다. 자신에게 그 박스를 가까이 끌고 오면 다른 사람들은 반대편에 몰려 있어야 사각 판의 균형이 잡힌다. 그러나 서로 그것을 가지려는 욕심 때문에 결국 밖으로 타인을 밀어내고 한 명만이 그 박스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사나이도 결국 판의 균형을 잡기 위해선 그 박스를 소유하지 못한 채 박스가 놓인 반대편에 서서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 인물의 생김새에 대한 느낌
인엽 : 어두운 얼굴이에요. 기분 나빠요
사빈 : 냉정해 보여요.
준현 : 도시적인 것 같아요.
지원 : 유령들 같아요.
 
★ 균형이 깨어지기 시작한 동기가 무엇인가?
지원 : 뮤직박스 같은 것을 가지려는 욕심이 생겼어요.
준현 :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욕심이요.

★ 왜 하필 돈도 아니고 빵도 아니고 뮤직박스일까?
사빈 : 음악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예술성 때문인가요?
인엽 : 그것 때문에 생명 걸고 싸우는 것은 지나쳐요. 다른 의미는 없을까요?
준현 : 모르겠어요. 어려워요.
교사 : 사람들은 가끔 생존과는 관계없는 것 즉 별 가치 없는 것에 집착하여 싸운다.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차지하려는 욕심 때문에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아닐까? 저 영화에서는 인가의 욕심이 상품의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 마지막 장면을 관계성과 연관하여 설명할 것.
지원 : 박스를 얻으려면 그것에서 멀어져야 해요.
예림 : 박스가 내 곁에 오는 만큼 사람들은 나로부터 멀어져야 해요.
인엽 : 욕심을 부리면 원하는 것을 아무도 가지지 못해요.
준현 : 서로 도와야 원하는 것도 가질 수 있지 싸우면 안 돼요.
교사 : 어떤 사람이 박스를 가지려면 누군가가 있어서 균형을 잡아 주어야 한다. 즉 내 욕망의 방해물들이 결국 내 욕망을 이루어줄 통로라는 것이지. 그러니 세상은 관계가 파괴되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 아니겠니?

관계로 얽힌 사회 속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지식

교사 : 우리는 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란다. 그런데도 우리는 혼자만의 이익을 추구하느라 상호관계를 단절하고 살아갈 때가 무척 많다. 너도나도 이런 실수를 번번이 저지르면서 살아간단다. 이것을 막으려면 우리가 가진 지식의 방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앎’의 형태는 무엇일까? 이것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줄까? 제시문을 독해해 보면서 알아보자.


앎의 형태를 알기 위한 탐색 1

아래 이화여자대학교 교훈을 읽고 내 생각을 제시해 보자

이화가 지향해야 할 최상의 가치 이념들을 진(眞), 선(善), 미(美)라는 간결한 표어로 정의한다.
진은 지(知), 즉 학문의 전당으로서 이화가 추구해야 할 구체적인 가치를 나타낸다. 대학이 지식의 탐구를 게을리하면 그 존재 가치를 상실하고 만다. 더구나 지혜의 원천이며 지식의 근본이 되는 하나님의 진리에 기초한 이화여자대학교는 지식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최대한으로 충족시켜 줄 수 있는 학문 연구의 전당이 되어야 한다.
선은 덕(德)이다. 지식은 인간에게 선하게 사용될 때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지니고 있는 지고지순의 아름다운 덕성, 그것은 사랑의 정신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국만리 타향의 벽안의 이방인들을 통하여 이 땅에 실현되었다.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데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소외된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이웃과 하나 되는 것이며, 공동체 사회와 인류사회의 영원한 평화를 이룩하고자 하는 염원이다. 이화인들은 이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 자신을 지혜롭게 갈고 닦으며, 나아가서 책임 있는 지식인으로서 사회에 헌신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미는 조화(調和)를 의미한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예술적 정서이다. 모든 인간에게 내재하는 창조주의 형상을 회복하고,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자유와 독특한 개성을 최대한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이화가 추구하는 미(美)의 참된 개념이다. 이화는 전방향의 교육을 통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경영해 나갈 창조적인 지식인을 양성할 것을 중요한 목표로 설정한다.
풍부한 지혜와 지식, 아름다운 덕성과 정서를 조화롭게 지닌 인성교육은 이화가 추구하는 전인교육 이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회가 최상의 가치로 삼아온 진선미는 하늘에 속한 것인 동시에 인간이 반드시 도달해야 할 목표이기도 하다. 이화의 교훈은 1930년 무렵 당시 문과 교수이던 김상용(金尙鎔) 선생이 간결하고 명확한 ‘진선미’를 제안하였고, 교수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이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제정되었다.
 
★ 이화여자대학교가 노리는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일까?
인엽 : 아름다운 지성인일 것 같아요.
지원 : 창조적 인간이요.
준현 : 자유와 개성이 강한 인간이요.
사빈 : 진, 선, 미를 갖춘 인간이요. 그러니까, 완전 괜찮은 인간이요.
교사 : 인류와 세계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랑의 정신을 기반으로 지식을 탐구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담긴 참된 자유와 개성을 발휘함으로써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이끌어나갈 창조적 지식인을 양성한다. 그러니 진선미를 갖춘 완전 괜찮은 인간이 맞겠구나.


앎의 형태를 알기 위한 탐색 2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쉴 새 없이 배우고, 배운 지식을 활용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렇게 얻은 ‘앎’은 쌓이고 이어지며 인류 역사를 이끌어 온 원동력이 되었다. 이렇게 현대 문명의 근간을 형성해 온 앎이라는 말에는 매우 다양한 쓰임이 있다. 친구 이름을 기억하는 것도 앎이고, 거스름돈을 계산하는 것도 앎이고, 사과가 떨어지는 원인을 설명하는 것도 앎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이 앎을 바탕으로 수력 발전소를 세우거나, 우주선을 올리는 거대한 발전을 이룬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사는 지혜도 앎이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얻는 깨달음 등 관계를 이끌어가는 힘 또한 앎에 의한 것이다.

★ 다음 네 편의 글에 나타난 ‘앎’을 개념화하여 설명하고, 현대문명사회에서는 어떤 앎이 더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서로 비교하여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 근거를 제시하여 보시오.

(1) 과학은 이 세상의 어떤 부분에 대한 믿을 만한 지식을 추구하고, 그런 지식을 이용해서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과학의 핵심은 자연은 물론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간섭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티리언 퍼플의 색깔이 어떤 분자에서 비롯된 것이고, 어떻게 그 분자를 변형시켜서 더 밝은 자주색이나 파란색을 얻을 수 있을까를 알아내려는 노력이 바로 그런 관찰에 해당한다.
과학자들의 세계는 모든 복잡성이 분해되어 단순화된 세계이다. 이것을 수학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자는 흔히 발견이나 창조의 과정에서 자신만의 연구 세계를 명확하게 정의한다. 그 한정된 세계 안에서는 자신의 결과가 흥미롭고 놀라운 것이며, 모든 것이 분석 가능하다. 그런 세계에서는 언제나 답이 존재한다. 로열 퍼플 염료 분자의 구조를 밝힐 수도 있고, 동물원에 갇힌 팬더가 번식을 잘하지 못하는 이유도 알아낼 수 있다. 과학자들은 하나의 관찰 또는 현상에 기여하는 요인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복잡하다고 하더라도 재능 있고 잘 훈련된 과학자라면 분리해서 분석할 수 있다고 믿는다.

(2) 섹스투스에게서는 친절을 배웠다. 또 그로 인해 부성애로 다스려지는 가정의 전형을 알게 되었다.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사상을, 거만에 물들지 않은 근엄함을, 친구의 생각을 중히 여기고 그 희망을 따르는 마음씨를 배웠다. 그리고 무식한 무리들에 대해서도 관대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3) 子曰 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공자가 말하였다. “유야! 네게 안다는 것을 가르쳐 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곧 아는 것이다.”

(4) 로마인들은 도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즉 도로를 어떻게 닦고 어디에서 어디로 연결해야 할지 그리고 그것들을 오래 유지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로마 도로의 영구성은 오늘날에도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20세기를 넘어서까지 계속해서 사용해 왔는데도 수백 마일의 로마 도로는 여전히 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예를 들어, 로마의 남쪽에서부터 나폴리와 브린디쉬까지 갈 수 있는 아피아 가도는 오늘날에도 많은 자동차들이 달리고 있을 정도로 견고하다.
로마인들은 집요한 끈기를 가지고 도로를 건설했는데, 배수구를 만들기 위해 땅을 깊이 파고 모래와 자갈 그리고 잘게 부순 돌로 도랑을 채웠다. 그 다음에 도로의 중앙부는 돌을 잘라서 만든 벽돌로 딱 맞게 짜 맞추어 사람, 말, 마차의 바퀴가 밀리지 않도록 했다. 아직도 남아 있는 벽돌은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에도 도로의 포장 재료로 쓸 수 있을 만큼 단단하다.


질문 1) 각 제시문의 앎을 개념화하기.

질문 2) 현대문명사회에서 어떤 앎이 더 필요하고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 근거를 제시하여 보시오. (600자 )


학생이 쓴글

현대 문명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무엇보다도 제시문 1과 같은 과학적 앎이 중요하다. 그 이유는 발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생활도 과학적 발전이 없었으면 이룰 수 없었고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만드는 전기, 자동차, 컴퓨터도 과학적인 발전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지금까지 과학은 이 세상의 어떤 부분에 대한 믿을 만한 지식을 추구하고, 그런 지식을 이용해서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다음이 제시문 4인 실용적 앎이다. 로마인의 예를 들면 그들은 집요한 끈기를 가지고 도로를 건설했는데, 배수구를 만들기 위해 땅을 깊이 파고 모래와 자갈 그리고 잘게 부순 돌로 도랑을 채웠다. 그다음에 도로의 중앙부는 돌을 잘라서 만든 벽돌로 딱 맞게 짜 맞추어 사람, 말, 마차의 바퀴가 밀리지 않도록 했다. 아직도 남아 있는 벽돌은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에도 도로의 포장 재료로 쓸 수 있을 만큼 단단하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가본 이탈리아의 아피아가도는 2000년 전에 로마인들이 만들었던 도로였는데, 지금도 그 도로로 차가 달릴 수 있을 정도로 튼튼했다. 이렇게 실용성이 높은 문명을 탄생시킨다는 것은 인류 발전에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것들을 잘 유지하려면 제시문 3의 성찰적 앎이 중요하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곧 아는 것이다,라고 한 성현의 말처럼 모든 상황을 정직하게 돌아볼 수 있는 겸손한 태도가 있어야 싸움도 줄고 살기 좋게 만든 것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준현, 부명고 1)

현대 사회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편리한 것도 많고 발전한 것들도 많은데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 싸이코 패스같은 연쇄 살인범들이 등장하여 두려움을 만들고 정신 병원에는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런 사회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제시문 4의 성찰적 앎이 중요하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고 편리한 실용기구가 만들어 진다고 해도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인간의 관리 능력이 없다면 세상은 불행해 질 것 같다. 성찰적 앎은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삶이라고 한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으려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 속에는 현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없다.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자신부터 정확히 평가하고 고쳐 나가는 성찰적 앎이야말로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다음에 과학이 이루는 제시문 1의 과학적 앎과 제시문 4의 실용적 앎이 중요하다. 나의 건강한 삶이 유지되려면 나를 돌아보고 또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도 필요하다. 그리고 서로 관계를 유지하는 삶의 지혜가 따라야 한다. 편리한 생활 속에서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행동이 있으면 세상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 될 것이다. (한지원, 부천 고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