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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다음 시간 <짐멜의 모더니티> 발표순서

<1부> 현대의 단면들
01. 현대 문화에서의 돈 (조)
02. 대도시와 정신적 삶 (황)
03. 유행의 심리학 (송)
04. 장신구의 심리학 (전)
05. 이방인 (김)

<2부 미학의 문제>
06.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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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손잡이, 미학적 접근 (조)
08. 얼굴의 미학적 의미 (황)
09. 양식의 문제 (송)
10. 알프스 여행 (전)

<3부> 사회적 상호 작용의 유형들
11. 식사의 사회학 (김)
12. 감각의 사회학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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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감사, 사회학적 접근 (조)
14. 신의, 사회심리학적 접근 (황)
15. 편지, 비밀의 사회학 (송)

<4부> 인간의 내면적 삶과 형이상학
16. 모험 (전)
17. 부끄러움의 심리학에 대해서 (김)
18. 비밀, 사회심리학적 스케치 (신)
19. 분별의 심리학 (조)
20. 다리와 문 (조)

[02] 총균쇠 요약

13.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 : 기술발전은 각 대륙의 면적, 인구, 확산의 난이도, 식량 생산의 출발 시기 등에 따라 그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인쇄기에서 유리, 증기 기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중요한 기술적 진보는 모두 유라시아인들이 발명했다. 다른 민족보다 유라시아인들이 뛰어난 창의성과 지능을 가져서가 아니라 혁신에 대한 사회 전체의 수용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또 유라시아의 주요 축이 동서 방향으로 넓게 펼쳐져 있어 산맥이나 사막 등의 장애물이 많은 남북아메리카 보다 생태적 지리적 장애물이 비교적 적었기 때문이다. 

14. 평등주의부터 도둑 정치까지 : 인류는 무리사회, 부족사회, 추장사회, 국가의 단계로 발전하며 강력한 통치 체제를 확립했다. 국가로 가는 중앙집권적인 대규모 사회는 지역 인구 증가와 사회적 복잡성을 수반했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을 해결하고 올바른 의사결정, 조화로운 경제 재분배에 성공하면서 더욱 발전해나갔다. 또한 국가는 정치 체제와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확립하여 도둑정치라는 오명을 벗고, 그 통치 권력을 굳건히 확립해 나갔다. 

15. 대륙간 불균형 이론과 원주민들이 낙후된 원인 : 원주민들에게 결함이 있었던 게 아니라면 영국의 백인 이주민들은 불과 몇 십 년 만에 문자를 갖고 식량을 생산하고 산업화된 민주주의 사회를 창조할 수 있었는데, 그 대륙에서 40,000년이 넘도록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여전히 문자를 모르는 유랑형 수렵 채집민으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은 과연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이것이 인간 사회의 진화에 대한, 완벽하게 제어된 하나의 실험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저 간단하게 인종 차별적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단순하다. 영국의 백인 이주민들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문자를 쓰고 식량을 생산하고 산업화된 민주주의 사회를 창조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 사회의 모든 요소들을 오스트레일리아의 외부에서 가지고 들어왔다. 가축, 마카다미아 너트를 제외한 모든 농작물, 야금술 지식, 증기 기관, 총, 알파벳, 정치 제도, 심지어는 병원균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것은 유라시아에서 10,000년에 걸쳐 이루어진 발전의 최종 산물이었다.

 1788년 시드니에 상륙한 이주민들은 지리적 환경이라는 행운을 타고 난 덕분에 그 모든 요소들을 상속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물려 받은 기술 없이 오스트레일리아 또는 뉴기니에서 생존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로버트 버크와 월리엄 윌스는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똑똑한 사람들이었지만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막에서도 생존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하지는 못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사회를 창조한 사람들은 다름아닌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이었다. 물론 그들이 창조한 사회에는 문자도 없었고 식량 생산도 없었으며 산업화도 민주주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오스트레일리아의 환경이 지니고 있는 특징들 때문이었다.

16. 동아시아의 운명과 중국 문화의 확산 : 동아시아 문명을 잉태한 중국의 역할을 과장해서도 안 되겠지만, 그 역할의 큰 기여도를 부인할 수는 없다. 넓은 면적과 다양한 기후에 따른 생태환경에 힘입어 거의 10,000년 전 동아시아 최초의 농경민은 동식물의 가축화/작물화의 업적을 이루어낸다. 유라시아의 가로축과 두 개의 강이 가져다 준 운하와 같은 지리적 요인들로 인해 중국은 일찍 문화적 정치적 통일, 즉 중국화 될 수 있었고, 중국의 중국화와 더불어 광활한 지역은 균일화되었으며 열대 동남아시아의 거주자들이 바뀌고 일본 및 한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17. 동아시아와 태평양 민족의 충돌 : 동아시아 및 태평양 일대 사람들의 경우에도 지리적 환경에 따라 가축화/작물화할 만한 야생 동식물이 각기 달랐고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여건도 달랐다. 그리하여 식량 생산의 여러 가지 선행 조건을 갖추고 아울러 다른 곳으로부터 기술이 확산 되기 좋은 위치에 있던 사람들은 이 같은 이점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교체했다. 그리고 어느 한 부류의 이주민들이 여러 가지 다양한 환경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그 후손들도 각자의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전했다.

18. 남북아메리카가 유라시아보다 낙후됐던 원인 : 인간이 살기 시작한 시기가 유라시아에서 훨씬 빨랐다는 점, 유라시아에는 작물화 할 만한 야생 식물은 물론이고 특히 가축화할 만한 야생 동물이 훨씬 많았으므로 결국 유라시아의 식량 생산이 더 우수했다는 점, 그리고 유라시아에는 대륙 내의 확산을 방해하는 지리적 생태적 장애물이 비교적 적었다는 점 그리고 유라시아가 면적 대비 인구수가 많았으며 서로 더 많이 연결되었다는 점에서 유라시아가 아메리카 원주민보다 유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19. 아프리카는 왜 흑인의 천지가 됐는가 : 백인, 흑인, 반투족, 피그미족, 코이산족 그리고 아시계 출신인들로 구성된 아프리카는 결국 농경민인 반투족의 이동과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의 마다가스카르 진출과 유럽인들의 희망봉 정복으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반투족의 이동에서 우리는 생태 지리적 매커니즘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아프리카가 유라시아에 비해 늦었던 궁극적인 이유는 지리 생태적 요인 때문이었다. 아프리카가 먼저 발전되었지만 유럽과의 식량 생산의 차이가 총균쇠의 체득 속도의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생산량의 차이는 [1] 가축과 작물화 품종의 상대적 열세 [2] 면적에 따른 인구수 부족 [3] 남북축으로 기인한 작물, 가축 및 토기의 느린 전파 속도에 따라 결정된 것이다.

20. 과학으로서의 인류사의 미래 : 환경적 차이가 발달 수준의 차이라는 일반화가 진부한 결론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알리고 싶었던 점은 역사학을 역사적 과학의 수준으로 올리는 과정에서 미래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총균쇠>라는 역사적 과학의 결과물을 이용해서 직접적으로 통찰력을 얻기 위한 전략을 세 가지 문제를 통해 적용해 보았고, 어떻게 연구해야지 인류사에 보탬이 될 수 있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21.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 : 일본 원주민인 조몬인이 현재의 아이누인이며, 야요이 시대에 규슈를 통해 이주한 한국인 농경민과 현지인들의 혼혈이 현재 홋카이도에 거주하는 아이누인을 제외한 모든 현대 일본인에 해당된다. 이주 세력 인원들이 토착 세력들을 교체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로 생태 지리적 환경으로 결정된 것이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