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 논술 강의 나눔터
혜진 샘이 후반부에 필기를 거두시고 '존재형 학습'으로서 수업에 집중하신 터라 강의의 구체적 내용 설명이 많이 간추려졌습니다. 화순 샘,현옥 샘,영숙 샘...결석 샘들 보시라고 민주주의 역사,개념 관련 강의만 제가 좀 보충 정리해봅니다. 도움 되시길 바라고 담시간엔 얼굴들 보여 주시어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주권재민(demo 민중+ cracy 권력)의 정치 형태. 이때 '권력'은 사회적 결정을 누가 어떻게 하는가를 담보함으로써 모든 정치의 핵심이 된다.
->'인민people의, 인민에 의한,인민을 위한 정치'라는 링컨의 말은 민주주의 정신을 잘 표현한다.(이때 우리가 흔히 '국민'이라고 번역한 것은 오역이다. 국민은 국가에 종속된 구성원으로서 민주주의 이념 표현에 적절하지 않다.)
*여러 가지 사회 구성원 개념 비교
국민-국가에 소속
인민-여기 존재하는 대다수 사람. 대중과 비슷한 개념
대중-익명적,수동적 성향 반영
민중-무상계급(프롤레타리아트, 다수 피지배 계층) /다중-공통점,지향점 없이 모여만 있는 사람들
민초-민중의 역동적 개념이 빠지고 '무기력'이 반영된 개념
백성-봉건 시대의 개념
<민주주의 개념의 형성 과정>
-> 시민혁명(명예혁명,대혁명,미국 독립전쟁)을 통해서. 이때 '시민'은 인민,국민적 개념이 아니라 '부르조아'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러한 민주주의는 '권력,계급의 이동'이지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아니다!
->근대 사회:왕,귀족-특권층
시민(부르조아)-경제력을 갖춘 신흥 세력
진짜 시민(민중)-정치,경제적 권력 무
위 세 계급간 대립이 존재했고,부르조아와 민중 간도 실은 대립관계였다. 그런데 이 둘 간의 연대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요컨대 부르조아의 필요에 의해서였다. 중세 봉건 사회는 귀족을 복속시켜 왕권을 유지,강화하려는 차원에서 '사교문화'가 발달하였다. 노는 것은 곧 필수적인 권력 유지 방식이었다. 사치가 점점 심해지고 봉건 사회 후기엔 가속도까지 붙어 파멸로 치닫고 있었다.(베르사이유 궁,루이 15세나 마리 앙뜨와네트의 사치스런 삶을 연상해 보라) 그런데 이 과정에서 왕,귀족의 사치품을 공급하는 부르조아는 급속히 성장했다. 그리고 동시에 왕권의 희생양이 됐다. 세금이 부족할 때 왕정은 부르조아 중 한 명을 지목하여 살해하고 재산을 몰수하는 방식으로 재정을 채워나갔다. 부르조아는 당연히 반발했다. 그래서 '천부인권'(개인의 생명,재산은 누구도 침탈할 수 없다!)을 기치로 왕권에 대항하는 혁명을 시도했다. 이것이 프랑스 혁명의 명분이요 부르조아의 이러한 명분에 동원된 자들이 진짜 시민 개념인 민중,소수자를 총괄한 '민중'이었다. 계급 연합이 이루어지는 역사적 대목이다. 그러나 도망가던 왕을 단두대에서 처형하고 왕권이 전복된 뒤 두 계급은 분열하게 된다.->부르조아는 분배를 원치 않았다. 민중은 분배를 요구했다. ->우파 자코뱅 당과 좌파 지롱드 당의 대립)
->프랑스 혁명의 영향:봉건 사회인 서구 대다수 국가는 두려움을 느끼고 방어했다. 이것은 러시아 혁명을 저지하려는 움직임으로도 이어진다. 그래서 프랑스를 침략하게 되는데 군인 집단의 지배 세력이던 귀족들이 도망가는 바람에 '나폴레옹'이라는 포병장교가 영웅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는 성벽을 부수는 수법으로 쏘고 진군하고를 반복하는 식의 현대전을 적용하여 대대적인 연승을 거두고 마침내 독재자가 됨으로써 '왕정복고'를 이룬다.(베토벤의 5번 교향곡 원제는 '나폴레옹'이었는데 그의 배신에 치를 떤 베토벤이 진정한 영웅을 갈망하는차원에서 '영웅'으로 개명했다고 함) 그러나 나폴레옹은 '프랑스 대혁명을 널리 퍼뜨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유럽 대장정에 나서고 러시아도 침공한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역설적이지만 어떻게 보면 진정한 혁명 정신과 연결되기도 한다.(신분에 따라 지배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에 따라 지배자가 되어야 한다.)
->프랑스의 왕정복고 이후 유럽 세계는 '신성동맹'을 맺어 1830~40년대 제 2차 자유주의 운동,즉 '부르조아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게 된다. 이것이 곧 '형식적 민주주의'이다. 서구 부르조아들은 "사람들에게,우리들에게 권력을 준다"라는 매우 미묘한 말로 실제 그들 자신이 권력을 잡았다.
<현대 민주주의>
->민주주의 :형식적 민주주의 (부르조아에 의한 시민혁명으로 달성)/
현대적 민주주의 (소수,피지배계급이 부르조아에 도전함으로써 달성 내지 추구됨:챠티스트
운동,여성해방운동,사회주의 운동->결정판이 '러시아 혁명')
->현대적 민주주의는 계급이 존재하는 한 완성될 수 없다. 결국 민주주의는 지배계급을 위한 것이다. 한국의 국외 구성을 보라, 주부,학생,민노당 의원이 과연 몇명이나 있는가? 극소수이다. 우리 사회 역시 계급 사회이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20세기 중반에 여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했다. 미국에서 국민=납세자이다.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사회주의 운동이 가장 활발하던 독일 사회에서 최초로 '사회보험'을 실시했다. 이것은 민중 계급을 현혹하려는 일종의 '당근'이다. ( 오스트리아도 이를 모방했는데 '변신'의 작가 카프카는 공교롭게도 보험회사 직원이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흉칙한 벌레는 당시 그가 직장에서 접하던 산재노동자들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형상화한 것일 수 있다.)
->자본주의 초기 부르조아의 노동자 착취의 강도는 우리가 흔히 심각했던 것으로 아는 한국 60~80년대 착취와는 엄청난 차이가 나는 수준이었다. 어린 아이들이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단명하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형성) '에서 근검,절약하기에 부자가 된다는 억측을 제시하여 당대 부르조아의 사회적 입지를 공고히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인클로서 운동,사치와 같은 역사적 흐름에 의해 자본가가 형성되었다. 막스 베버 사상은 이제 구시대적 유물이 되었다.
->사회주의는 실제 민주주의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20세기 초 구소련 해체,즉 사회주의 붕괴를 민주주의의 승리로 오해해선 안 된다. 민주주의 진영은 끊임없이 사회주의를 두려워했을 따름이다. 사회주의의 존재로 그나마 부르조아가 지배하는 형식적 민주주의 사회가 민중 계급에게 양보했던 가치,즉 사회 정의 차원에서 그나마 추진했던 분배의 형평성을 다시 거두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이다. (한국의 IMF 원인을 이러한 세계 구도,흐름의 맥락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남한의 존재는 동북아에서 사회주의에 대항하는 민주주의 사회로서의 상징성을 띄었고 이것은 미국의 계산이었다. 남한의 고도 압축 성장은 필연적으로 대환란을 맞게 되나 시기적으로 냉전이 해체된 후라 미국의 입장에서 남한은 더 이상 전시용 가치가 없었기에 우리 사회의 경제 위기에 적극적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자신들이 필요해서 통통하게 살찌운 송아지가 병이 나자 마침 필요도 없어지고 해서 버리는 격이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
->민주주의의 명분:봉건사회-신권
근대의회정치-투표권(사회계약설에 따른 동의)
->외면적 민주주의:동의에 의한 절차성 준수/진정한 주권재민 아님
내면적 민주주의:진정한 주권재민 실현 추구
->외면적 민주주의에 그치고 있는 한국의 현실:지역구 주민은 투표로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권리를 누리나 실제 국회의원이 당선되고 나서 맘대로 하는 정치를 단죄하지 못한다. 이유는 "니가 이 사람 뽑지 않았는냐? 뽑았단 것은 이 사람의 모든 권리 행사에 동의한단 뜻 아니었느냐?" 이다. 이것이 간접민주주의의 한계이다. 간접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민주주의가 아니다. '주민소화제' (국회의원 실책을 엄정하게 따지고 축출할 수도 있는 제도,직접민주제의 가미 효과)실시는 이래서 유의미하다.
->민주주의 기본 전제:개인의 이성 신뢰(개인은 저마다 주체적 결정이 가능한 존재란 믿음)
그러나 이 전제 자체가 거짓말이다. 개인은 주체가 아니다. 데카르트식의 선험적 인식
은 결코 선험적이지 않고 개별적,경험적인 그래서 다양할 수밖에 없는 주체적 판단을
획일화하는 오류를 범했다.
(예:주사파는 국회의원이 될 수 없다 <-우리의 주체적 판단이 아니라 사회분위기에
따른 판단일 뿐임
국정교과서,지배적 언론사들 <-학생,구독자가 주체가 아니라 이들이 주체가 되어
대상자들의 의식을 지배해옴)
->민주주의는 이데올로기화 되는 경향이 있다. (지배층<->피지배층:계급 대립의 부재는 불가능) 따라서 상대 계급이 독주,횡포를 막으려는 적극적인 상호 견제 노력 및 중립적 태도가 필요하다. (예:헌법에서 인정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언론의 자유 등->다양성,차이를 인정하려는 움직임 반영)
<한국의 현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완성 단계이다. 그러나 시민 사회적 다원성이 부족하다. (예:지역주의,그와 결탁한 보스정치...)
->민주주의의 핵심적,내적 가치는 '인간 존중' 사상이다. 주권이 중요한 것은 인간 저마다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인민이 사회의 주인이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이 존엄한 존재이기에 서로 평등해야 하며 결코 차별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 존중 사상에 이어 그 후속 가치로 자유와 평등이 강조된다.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중시된다.(국회의원들간의 갈등,싸움을 볼 때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봐선 안된다. 치고 박고 싸워서라도 각자 진실이 드러나게 해야 하고 이 진실로 국민 개개인이 진정한 주체적 결정을 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다. 단 우리는 그 싸움의 목적과 깊이를 냉철하게 볼 줄 알아야 한다.)
<아이들과는 어떻게>
->쟁점을 던지라:예-악법도 법이다?
가정 내에서 민주주의는 실현되고 있나 안 되고 있나?
->그래서 궁극적으로 아이들이 자기 일상 속에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잣대로 점검해 볼 수 있게 하라.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주권재민(demo 민중+ cracy 권력)의 정치 형태. 이때 '권력'은 사회적 결정을 누가 어떻게 하는가를 담보함으로써 모든 정치의 핵심이 된다.
->'인민people의, 인민에 의한,인민을 위한 정치'라는 링컨의 말은 민주주의 정신을 잘 표현한다.(이때 우리가 흔히 '국민'이라고 번역한 것은 오역이다. 국민은 국가에 종속된 구성원으로서 민주주의 이념 표현에 적절하지 않다.)
*여러 가지 사회 구성원 개념 비교
국민-국가에 소속
인민-여기 존재하는 대다수 사람. 대중과 비슷한 개념
대중-익명적,수동적 성향 반영
민중-무상계급(프롤레타리아트, 다수 피지배 계층) /다중-공통점,지향점 없이 모여만 있는 사람들
민초-민중의 역동적 개념이 빠지고 '무기력'이 반영된 개념
백성-봉건 시대의 개념
<민주주의 개념의 형성 과정>
-> 시민혁명(명예혁명,대혁명,미국 독립전쟁)을 통해서. 이때 '시민'은 인민,국민적 개념이 아니라 '부르조아'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러한 민주주의는 '권력,계급의 이동'이지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아니다!
->근대 사회:왕,귀족-특권층
시민(부르조아)-경제력을 갖춘 신흥 세력
진짜 시민(민중)-정치,경제적 권력 무
위 세 계급간 대립이 존재했고,부르조아와 민중 간도 실은 대립관계였다. 그런데 이 둘 간의 연대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요컨대 부르조아의 필요에 의해서였다. 중세 봉건 사회는 귀족을 복속시켜 왕권을 유지,강화하려는 차원에서 '사교문화'가 발달하였다. 노는 것은 곧 필수적인 권력 유지 방식이었다. 사치가 점점 심해지고 봉건 사회 후기엔 가속도까지 붙어 파멸로 치닫고 있었다.(베르사이유 궁,루이 15세나 마리 앙뜨와네트의 사치스런 삶을 연상해 보라) 그런데 이 과정에서 왕,귀족의 사치품을 공급하는 부르조아는 급속히 성장했다. 그리고 동시에 왕권의 희생양이 됐다. 세금이 부족할 때 왕정은 부르조아 중 한 명을 지목하여 살해하고 재산을 몰수하는 방식으로 재정을 채워나갔다. 부르조아는 당연히 반발했다. 그래서 '천부인권'(개인의 생명,재산은 누구도 침탈할 수 없다!)을 기치로 왕권에 대항하는 혁명을 시도했다. 이것이 프랑스 혁명의 명분이요 부르조아의 이러한 명분에 동원된 자들이 진짜 시민 개념인 민중,소수자를 총괄한 '민중'이었다. 계급 연합이 이루어지는 역사적 대목이다. 그러나 도망가던 왕을 단두대에서 처형하고 왕권이 전복된 뒤 두 계급은 분열하게 된다.->부르조아는 분배를 원치 않았다. 민중은 분배를 요구했다. ->우파 자코뱅 당과 좌파 지롱드 당의 대립)
->프랑스 혁명의 영향:봉건 사회인 서구 대다수 국가는 두려움을 느끼고 방어했다. 이것은 러시아 혁명을 저지하려는 움직임으로도 이어진다. 그래서 프랑스를 침략하게 되는데 군인 집단의 지배 세력이던 귀족들이 도망가는 바람에 '나폴레옹'이라는 포병장교가 영웅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는 성벽을 부수는 수법으로 쏘고 진군하고를 반복하는 식의 현대전을 적용하여 대대적인 연승을 거두고 마침내 독재자가 됨으로써 '왕정복고'를 이룬다.(베토벤의 5번 교향곡 원제는 '나폴레옹'이었는데 그의 배신에 치를 떤 베토벤이 진정한 영웅을 갈망하는차원에서 '영웅'으로 개명했다고 함) 그러나 나폴레옹은 '프랑스 대혁명을 널리 퍼뜨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유럽 대장정에 나서고 러시아도 침공한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역설적이지만 어떻게 보면 진정한 혁명 정신과 연결되기도 한다.(신분에 따라 지배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에 따라 지배자가 되어야 한다.)
->프랑스의 왕정복고 이후 유럽 세계는 '신성동맹'을 맺어 1830~40년대 제 2차 자유주의 운동,즉 '부르조아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게 된다. 이것이 곧 '형식적 민주주의'이다. 서구 부르조아들은 "사람들에게,우리들에게 권력을 준다"라는 매우 미묘한 말로 실제 그들 자신이 권력을 잡았다.
<현대 민주주의>
->민주주의 :형식적 민주주의 (부르조아에 의한 시민혁명으로 달성)/
현대적 민주주의 (소수,피지배계급이 부르조아에 도전함으로써 달성 내지 추구됨:챠티스트
운동,여성해방운동,사회주의 운동->결정판이 '러시아 혁명')
->현대적 민주주의는 계급이 존재하는 한 완성될 수 없다. 결국 민주주의는 지배계급을 위한 것이다. 한국의 국외 구성을 보라, 주부,학생,민노당 의원이 과연 몇명이나 있는가? 극소수이다. 우리 사회 역시 계급 사회이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20세기 중반에 여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했다. 미국에서 국민=납세자이다.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사회주의 운동이 가장 활발하던 독일 사회에서 최초로 '사회보험'을 실시했다. 이것은 민중 계급을 현혹하려는 일종의 '당근'이다. ( 오스트리아도 이를 모방했는데 '변신'의 작가 카프카는 공교롭게도 보험회사 직원이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흉칙한 벌레는 당시 그가 직장에서 접하던 산재노동자들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형상화한 것일 수 있다.)
->자본주의 초기 부르조아의 노동자 착취의 강도는 우리가 흔히 심각했던 것으로 아는 한국 60~80년대 착취와는 엄청난 차이가 나는 수준이었다. 어린 아이들이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단명하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형성) '에서 근검,절약하기에 부자가 된다는 억측을 제시하여 당대 부르조아의 사회적 입지를 공고히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인클로서 운동,사치와 같은 역사적 흐름에 의해 자본가가 형성되었다. 막스 베버 사상은 이제 구시대적 유물이 되었다.
->사회주의는 실제 민주주의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20세기 초 구소련 해체,즉 사회주의 붕괴를 민주주의의 승리로 오해해선 안 된다. 민주주의 진영은 끊임없이 사회주의를 두려워했을 따름이다. 사회주의의 존재로 그나마 부르조아가 지배하는 형식적 민주주의 사회가 민중 계급에게 양보했던 가치,즉 사회 정의 차원에서 그나마 추진했던 분배의 형평성을 다시 거두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이다. (한국의 IMF 원인을 이러한 세계 구도,흐름의 맥락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남한의 존재는 동북아에서 사회주의에 대항하는 민주주의 사회로서의 상징성을 띄었고 이것은 미국의 계산이었다. 남한의 고도 압축 성장은 필연적으로 대환란을 맞게 되나 시기적으로 냉전이 해체된 후라 미국의 입장에서 남한은 더 이상 전시용 가치가 없었기에 우리 사회의 경제 위기에 적극적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자신들이 필요해서 통통하게 살찌운 송아지가 병이 나자 마침 필요도 없어지고 해서 버리는 격이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
->민주주의의 명분:봉건사회-신권
근대의회정치-투표권(사회계약설에 따른 동의)
->외면적 민주주의:동의에 의한 절차성 준수/진정한 주권재민 아님
내면적 민주주의:진정한 주권재민 실현 추구
->외면적 민주주의에 그치고 있는 한국의 현실:지역구 주민은 투표로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권리를 누리나 실제 국회의원이 당선되고 나서 맘대로 하는 정치를 단죄하지 못한다. 이유는 "니가 이 사람 뽑지 않았는냐? 뽑았단 것은 이 사람의 모든 권리 행사에 동의한단 뜻 아니었느냐?" 이다. 이것이 간접민주주의의 한계이다. 간접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민주주의가 아니다. '주민소화제' (국회의원 실책을 엄정하게 따지고 축출할 수도 있는 제도,직접민주제의 가미 효과)실시는 이래서 유의미하다.
->민주주의 기본 전제:개인의 이성 신뢰(개인은 저마다 주체적 결정이 가능한 존재란 믿음)
그러나 이 전제 자체가 거짓말이다. 개인은 주체가 아니다. 데카르트식의 선험적 인식
은 결코 선험적이지 않고 개별적,경험적인 그래서 다양할 수밖에 없는 주체적 판단을
획일화하는 오류를 범했다.
(예:주사파는 국회의원이 될 수 없다 <-우리의 주체적 판단이 아니라 사회분위기에
따른 판단일 뿐임
국정교과서,지배적 언론사들 <-학생,구독자가 주체가 아니라 이들이 주체가 되어
대상자들의 의식을 지배해옴)
->민주주의는 이데올로기화 되는 경향이 있다. (지배층<->피지배층:계급 대립의 부재는 불가능) 따라서 상대 계급이 독주,횡포를 막으려는 적극적인 상호 견제 노력 및 중립적 태도가 필요하다. (예:헌법에서 인정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언론의 자유 등->다양성,차이를 인정하려는 움직임 반영)
<한국의 현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완성 단계이다. 그러나 시민 사회적 다원성이 부족하다. (예:지역주의,그와 결탁한 보스정치...)
->민주주의의 핵심적,내적 가치는 '인간 존중' 사상이다. 주권이 중요한 것은 인간 저마다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인민이 사회의 주인이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이 존엄한 존재이기에 서로 평등해야 하며 결코 차별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 존중 사상에 이어 그 후속 가치로 자유와 평등이 강조된다.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중시된다.(국회의원들간의 갈등,싸움을 볼 때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봐선 안된다. 치고 박고 싸워서라도 각자 진실이 드러나게 해야 하고 이 진실로 국민 개개인이 진정한 주체적 결정을 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다. 단 우리는 그 싸움의 목적과 깊이를 냉철하게 볼 줄 알아야 한다.)
<아이들과는 어떻게>
->쟁점을 던지라:예-악법도 법이다?
가정 내에서 민주주의는 실현되고 있나 안 되고 있나?
->그래서 궁극적으로 아이들이 자기 일상 속에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잣대로 점검해 볼 수 있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