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계절학교 나눔터
한 여름 밤,
밤나방들이 풀풀거리는 숲 속 작은 학교에서 세상이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풀어볼 일이 아무리 생각해도 범상치 않게 다가옵니다.
지난 주말, 서른 명이 넘는 선생님들과 여름학교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아침에 가방 메고 모여 학교가는 길이 설레다 뿐이었겠습니까. 꿈꾸던 일탈, 어쨌든 떠난다는 떨림,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 배우는 쪽의 속편함.....
솔직히 차 안에서 가는 동안 주제에 대한 고민은 조금도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누가 학교 가면서 오늘 배울 공부에 대해서 고민을........
끊어질듯 이어지고 끊어질듯 이어진 둥실둥실한 산, 냇물에 쏟아부운 크고작은 바위와 돌, 그 바위를 돌아 새로운 물길을 내며 흐르는 냇물, 풀숲과 나무숲을 헤집고 다니는 오래 묵은 바람, 산자락 끝에 겨우 물을 모아 막 모내기를 끝낸 무논........ 요 이쁜 것들은 어찌 어찌하다 만들어져서 이 자리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깜빡 졸기도 했습니다.
맨 먼저 <해오름 살림학교>라는 문패가 눈에 쏘옥 들어왔습니다.
전에 시골 고향에 폐교된 모교를 보고 온 적이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내가 낳은 아이들을 셋을 데리고 그곳을 찾았는데 이미 폐교가 된지 여러 해가 흘렀고, 학교 관사 앞에는 머리 긴 남자가 유유히 나무를 깎고 있었습니다. 운동장은 반이 잡초로 뒤덮였고, 움푹 움푹 트럭바퀴자국만 엉크렇게 나 있었습니다. 3학년 교실이었던 곳은 부엌으로 둔갑되어서 스텐 국그릇 부딪히는 소리만 떨그럭거렸습니다. 순간 눈물이 쏟아질 듯 하더니 마구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머리 긴 아저씨나 두건 쓴 아줌마나 모두 쫓아버리고 싶었습니다.
"엄마 울어?" 하던 아이들 목소리가 귀에 선합니다. 그 이후로도 친정에 갈 때 마다 매번 그곳에 가 본답니다. 언제부터인가 그 곳에도 교문 앞에 어떤 문패가 붙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마음이 많이 달라졌지요.
아무도 지켜지 않는 빈집에 누군가가 들어와서 낮에는 연기를 피우고, 밤에는 불을 밝혀준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해오름 살림학교>에 처음 들어설 때, 문득 그 생각이 났습니다. 많은 이들이 나 처럼 이 곳에 찾아왔다가 서러움과 그리움을 안고 돌아갔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맘 한 켠에 미안함이 싸아하게 몰려왔습니다.
1박 2일, 그 편안하고, 우아하고, 맛난 식사 시간, 왜 신께서는 하루에 세 끼만 먹게 만들었나이까!
정말 자연의 선물을 고맙게 받아먹고 왔습니다. 라면만 누가 끓여줘야 맛난 음식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편하게 받아 먹는 즐거움이 익숙한 일이 아니라서 더욱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파리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서도 난리스럽게 쫓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밥상머리 고양이 쫓아내듯이 가끔 휘휘 저을 뿐이었습니다. 그것도 오염이 덜 되었겠지요 아마???
유리드미, 동양적인 색이 보여서 원산지가 궁금했습니다.
왜 유리미드라고 알고 있었을까요? (혹시 나만 유리미드, 유리미드 하고 다닌건 아닐까?^^부끄 부끄^^)
몸으로 무엇인가를 받아들이고, 내보내는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오감으로는 다 느낄 수 없는 그 어떤 기운을 받아들이는 통로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리코더와 피아노도 더 없이 좋았지만 밤벨의 음색은 아주 기막히게 해오름스러웠습니다.
그 어떤 것이든 비어있는 곳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는 귀로 가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바로 가는 모양입니다.
귀가 즐거운 소리보다 마음이 즐거운 소리가 그래서 더 끌리는가 봅니다.
아이들과 모둠 모둠 모여 밤벨을 연주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한 여름 밤에 아이들과 세상이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이야기가 리듬이 되고, 리듬이 몸짓이 되어 하나의 극으로 완성되는 과정이 기대됩니다.
부담은 너무 크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보세요. 아무 생각 없이 학교가는 맘으로 가서 이야기를 리듬으로 익히고, 그 리듬을 몸짓으로 익히고, 그래서 결국 극으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아마 연수 동안 아이들과 어떻게 풀어낼까를 줄곧 고민을 했다면 감동 같은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몸으로 맘으로 맘껏 풀어헤치고 받아들이고 온 것이 적지 않게 다행스럽습니다.
남은 시간,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하는가 보다 이 감동 안에 어떻게 아이들을 끌고 들어올까를 궁리해야겠습니다.
모두 모두 참 반가웠고, 즐거웠고, 감사했습니다.
밤나방들이 풀풀거리는 숲 속 작은 학교에서 세상이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풀어볼 일이 아무리 생각해도 범상치 않게 다가옵니다.
지난 주말, 서른 명이 넘는 선생님들과 여름학교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아침에 가방 메고 모여 학교가는 길이 설레다 뿐이었겠습니까. 꿈꾸던 일탈, 어쨌든 떠난다는 떨림,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 배우는 쪽의 속편함.....
솔직히 차 안에서 가는 동안 주제에 대한 고민은 조금도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누가 학교 가면서 오늘 배울 공부에 대해서 고민을........
끊어질듯 이어지고 끊어질듯 이어진 둥실둥실한 산, 냇물에 쏟아부운 크고작은 바위와 돌, 그 바위를 돌아 새로운 물길을 내며 흐르는 냇물, 풀숲과 나무숲을 헤집고 다니는 오래 묵은 바람, 산자락 끝에 겨우 물을 모아 막 모내기를 끝낸 무논........ 요 이쁜 것들은 어찌 어찌하다 만들어져서 이 자리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깜빡 졸기도 했습니다.
맨 먼저 <해오름 살림학교>라는 문패가 눈에 쏘옥 들어왔습니다.
전에 시골 고향에 폐교된 모교를 보고 온 적이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내가 낳은 아이들을 셋을 데리고 그곳을 찾았는데 이미 폐교가 된지 여러 해가 흘렀고, 학교 관사 앞에는 머리 긴 남자가 유유히 나무를 깎고 있었습니다. 운동장은 반이 잡초로 뒤덮였고, 움푹 움푹 트럭바퀴자국만 엉크렇게 나 있었습니다. 3학년 교실이었던 곳은 부엌으로 둔갑되어서 스텐 국그릇 부딪히는 소리만 떨그럭거렸습니다. 순간 눈물이 쏟아질 듯 하더니 마구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머리 긴 아저씨나 두건 쓴 아줌마나 모두 쫓아버리고 싶었습니다.
"엄마 울어?" 하던 아이들 목소리가 귀에 선합니다. 그 이후로도 친정에 갈 때 마다 매번 그곳에 가 본답니다. 언제부터인가 그 곳에도 교문 앞에 어떤 문패가 붙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마음이 많이 달라졌지요.
아무도 지켜지 않는 빈집에 누군가가 들어와서 낮에는 연기를 피우고, 밤에는 불을 밝혀준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해오름 살림학교>에 처음 들어설 때, 문득 그 생각이 났습니다. 많은 이들이 나 처럼 이 곳에 찾아왔다가 서러움과 그리움을 안고 돌아갔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맘 한 켠에 미안함이 싸아하게 몰려왔습니다.
1박 2일, 그 편안하고, 우아하고, 맛난 식사 시간, 왜 신께서는 하루에 세 끼만 먹게 만들었나이까!
정말 자연의 선물을 고맙게 받아먹고 왔습니다. 라면만 누가 끓여줘야 맛난 음식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편하게 받아 먹는 즐거움이 익숙한 일이 아니라서 더욱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파리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서도 난리스럽게 쫓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밥상머리 고양이 쫓아내듯이 가끔 휘휘 저을 뿐이었습니다. 그것도 오염이 덜 되었겠지요 아마???
유리드미, 동양적인 색이 보여서 원산지가 궁금했습니다.
왜 유리미드라고 알고 있었을까요? (혹시 나만 유리미드, 유리미드 하고 다닌건 아닐까?^^부끄 부끄^^)
몸으로 무엇인가를 받아들이고, 내보내는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오감으로는 다 느낄 수 없는 그 어떤 기운을 받아들이는 통로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리코더와 피아노도 더 없이 좋았지만 밤벨의 음색은 아주 기막히게 해오름스러웠습니다.
그 어떤 것이든 비어있는 곳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는 귀로 가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바로 가는 모양입니다.
귀가 즐거운 소리보다 마음이 즐거운 소리가 그래서 더 끌리는가 봅니다.
아이들과 모둠 모둠 모여 밤벨을 연주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한 여름 밤에 아이들과 세상이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이야기가 리듬이 되고, 리듬이 몸짓이 되어 하나의 극으로 완성되는 과정이 기대됩니다.
부담은 너무 크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보세요. 아무 생각 없이 학교가는 맘으로 가서 이야기를 리듬으로 익히고, 그 리듬을 몸짓으로 익히고, 그래서 결국 극으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아마 연수 동안 아이들과 어떻게 풀어낼까를 줄곧 고민을 했다면 감동 같은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몸으로 맘으로 맘껏 풀어헤치고 받아들이고 온 것이 적지 않게 다행스럽습니다.
남은 시간,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하는가 보다 이 감동 안에 어떻게 아이들을 끌고 들어올까를 궁리해야겠습니다.
모두 모두 참 반가웠고, 즐거웠고,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