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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다음 시간 <프레임 전쟁> 발표순서

00. 왜 이 책을 쓰는가? (조)
01. 승리와 패배 (조)
02. 이중개념주의 (전선*)
03. 프레임과 두뇌 (신)
04. 가정으로서의 국가 (전영*)
05. 도덕성과 시장 (전선*)
06. 근본적 가치 (라)
07. 전략적 의안 (정)
08. 논증의 기술 (조)

[02] 융합적 사고를 얻기 위한 인식의 도구

가. 데카르트의 눈 by [방법적 회의를 통해 명증/분해/종합/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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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카르트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의심했다. 너무 의심한 나머지 눈앞의 현실조차도 의심했다. 눈앞에 사과가 있다고 치자. 그럼 데카르트는 내 눈앞에 있는 사과가 과연 진실일까 의심했다. 그는 실은 꿈을 꾸고 있을 뿐이고, 사과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되면 무엇을 봐도 그것이 진실이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면, 수학이나 논리는 어떨까? 이런 것은 누구나 올바르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까? 아니, 수학이나 논리를 의심하는 것도 가능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꿈을 꾸고 있을 때 논리적으로 이상한 일이 일어나도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학이나 논리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저 착각일지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면 수학이나 논리도 확실히 올바르다고 말할 수 없다. 

 이렇게까지 의심해버리면 이제는 올바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데카르트는 더욱 의혹을 증폭시켰다. 심지어 그는 '악의에 찬 악령'이라는 존재까지 가정하기 시작했다. 이 악령은 인간에게 환영으로 보이고 악의 있는 조소를 보내는 초자연적 존재다. 이런 존재까지 언급된다면 "알겠어, 이러이러한 것이 진리야"라고 무슨 말을 한들 "아니야, 악령이 그렇게 믿게 만든 것인지도 몰라"라며 얼마든지 의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솔직히 말해서 데카르트는 의심이 너무 심했다. 

 명백한 의심의 과잉. 그런데도 데카르트는 철저히 의심을 이어갔다. 그럴 때의 그는 틀림없이 '세계 제일의 진리를 추구하고 세계 제일의 진리를 의심한 철학자'였다.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의심한다면 과학도 논리도 수학도, 그 무엇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완전한 폭거. 하지만 의심의 과잉이라는 폭거가 기적을 만들어냈다. 어느 날 아침저녁 없이 오로지 의심만을 이어가던 데카르트에게 갑자기 하늘의 계시 같은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의 인식은 모두 거짓일지 모른다. 그리고 모든 것을 의심하는 일이 생긴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의심한다 해도 그것을 '의심하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만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지 않은가! 만약 '의심하는 나'의 존재를 의심한다고 해도, 역시 '의심하는 내'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꿈(허위)이었다 해도, 그 꿈을 꾸면서 이것이 꿈은 아닐까 의심하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그 사실 자체는 결코 의심할 수 없다. 환영으로 보이는 악령도 처음부터 '환영을 보는 행위'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환영으로 보일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어떤 의혹에도 끄덕 없는 것, 그것은 바로 '의심하고 있는 자기 자신'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모든 것이 거짓이라 해도 그것이 거짓이 아닐까 '내(자신)가 생각하는' 이상, '내(자신)가 존재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의심할 수 없는 진리'를 도출한다.

나. 니체의 심장 by [영성을 회복해서 자신의 처지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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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을 지어 구분하기 좋아하는 인간은 세속의 가치를 좇아 자기 자신이기를 포기한 채로 살아가는 시간들을 긍정한다. 성공이란 기치 아래, 남들에게 이름을 얻기 위해 혹은 이름을 알리기 위해, 온갖 고통과 시련을 참아내고 견뎌내고 살아가는 시간들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철학과 종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실존적 무아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신 앞에 가로 놓여 있는 삶은 사유와 신앙만으로 감당해내기에는 버거운 것 또한 현실이다.
  
  니체는 자아를 하나의 상품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세상의 가치에 부합하고자, 청춘들은 취업난 속에서도 부단히 자신을 타자의 시선에 노출시키며, 자신의 사용가치를 피력한다. 자신을 살아갈 것이냐 세상을 살아갈 것이냐, 선택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하지만 절충적인 대안 정도는 한 번쯤 고민을 해야 할 문제이다. 행복의 기준은 언제나 욕망의 기준에 근접해 있는 법, 욕망이 자신의 것이냐 세상의 통념이냐는 행복의 실존까지도 결정하기 때문이다.

다. 라캉의 입 by [무의식은 대타자의 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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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캉에 의하면 가면 뒤에 자신의 진짜 얼굴이 있는 게 아니다. 그곳엔 텅 빈 공백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자아라는 것은 차라리 벗어 던진 가면에 묻어 있는 성질이다. 가면을 벗으면 또 가면이 있고, 정작 벗어낸 가면이 진정한 나의 얼굴이었을 수 있다. 라캉 노선에서는 다소 부정이 되는 ‘주체’ 개념이다. 그것은 내가 지닌 속성이 아니라, 차라리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적 조건의 속성이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관계’의 연장에 있는 페르소나를 자아로 인식할 뿐이다. 

  무의식마저도 함께 살아가는 타자들이 존재할 때 의식적으로나마 돌아보는 것들이다. 우리에게서 반복되고 있는 속성은 ‘나’가 아니라, 타자들에게 비춰지는 ‘너’인 것이다. 나를 바라보는 것들은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것들이 나를 존재케 하는 것들이다. '너'와 '나'는 서로를 비추는 빛인 동시에 거울이다. 하여 ‘투명사회’는 곧 ‘거울사회’이고, '가면사회'이기도 하다.

[03] 제시문 독해의 기술

(1) 독해 3단계 이론

가. [문제제기 - 의미찾기] 기표가 함의하고 있는 기의 찾기 
-> '문장 = 문자 + 의미'에서 나에게 다가오게 만들어서 '의미'를 추출한다. 

나. [문제분석 - 의미망 구성] 텍스트를 형성하는 컨텍스트 찾기 
-> '단락 = 문장 + 문장'에서 의미의 구성요소들을 역사적 맥락에서 조망하며 현재와의 연관성과 가치를 추출한다. 

다. [문제해결 - 분리와 결합] 텍스트 연관성을 확장한 사고 
-> 'Text = 단락 + 단락'에서 정교한 논리 체계로 분리하고 결합하는 기획 과정을 통해, 개별적인 수준을 일반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후, 인과관계를 밝히고 앞으로의 상황을 추론하고 예측하여 해결책을 제시한다. 
 
(2) 독해 3단계 방법론

가. [틀 잡기] 1회독을 통해서 전체의 내용을 스캔한다. 
나. [문장 정리] 2회독을 통해서 단락에서 핵심어와 중심문장을 결합시켜 의도성을 파악한다.
다. [단락 요약] 3회독을 통해서 의도성과 질문 사항과 연결시켜 일반화를 시킨다. 

[04] 프로이드와 라깡

 어떤 사상과 철학이 ‘순수하게 독창적’이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떤 사상이든, 어떤 철학이든 이전의 사상과 철학의 영향을 받고, 이를 계승하거나 비판적으로 수용하기 마련이다. 기존 철학과는 다른 ‘체계’를 구축한 ‘정신분석학’도 예외는 아니다. 프로이트의 뒤를 이은 정신분석학자 라캉 역시 다른 철학을 수용함으로써 정신분석학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라캉의 명제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철학은 ‘언어’학이다. 그리고 이때의 언어학이란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을 칭한다. 라캉은 기표-기의 등 소쉬르의 몇 가지 개념을 차용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의 체계를 정신분석학에 도입했다.

 우리는 라캉이 정신분석학에 기여한 바를 ‘프로이트로의 복귀’로 정리할 수 있다. 라캉은 프로이트 이후의 자아심리학에 맞서 프로이트로의 복귀를 시도했다. 그 복귀란 다수 정신분석 학파에서 치료 과정 중 주체가 보인 신체적 반응들에 부여된 중요성과는 달리 그 동안 종종 과소평가된 말의 실천적 중요성을 되찾는 것이다. 자아심리학은 동일시적인 자아, 통일적 자아를 통해 주체들을 자아라는 틀에 귀속시키고 그를 사회에 통합하려 한다. 그러나 라캉은 정신분석이 역할이 주체를 자아 안에서 대상화하는 상상적 동일시들을 충만한 말을 통해 상징화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정신분석은 주체를 그의 상상적 동일시들로부터 탈-동일시 시켜야 한다. ‘언어’는 이 지점에서 라캉에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정신분석학이 존재한다면 언어란 무엇인가?

 정신분석학이란 무엇인가? 정신분석학이 기존 철학에 파란을 일으킨 이유는 ‘무의식’에 대한 연구 때문이다. 기존 철학은 인간은 자기의식을 가지고 이에 따라 행동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은 인간에게 의식이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사실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무의식이라는 과감한 명제를 제시했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환자 안나 O의 사례분석을 통해 정신분석을 시작했다. 안나 O는 발작증상으로 프로이트에게 치료를 받는데, 놀랍게도 안나 O가 자신이 겪었던 일을(그러나 기억나지 않았던) ‘언어로’ 표현하자 그의 발작증상을 사라졌다. 이를 두고 프로이트는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것이 무의식적 행위, 즉 신체적 증상으로 바뀌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프로이트 역시 무의식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의, 정신분석에 있어서의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 알고 있었다.

 라캉은 ‘프로이트로의 복귀’를 시도하면서 언어를 정신분석학의 핵심 개념으로 내세운다. 프로이트만 해도 무의식이 원초적이거나 본능적인 무엇인가로 보았다. 프로이트의 뒤를 이은 국제정신분석학회의 정신분석학자들이 무의식을 생물학적 결정론, 행태주의로 해석하는 데 어느 정도 단초를 제공했던 셈이다. 라캉은 이에 강력히 반대하며 자신이야말로 프로이트의 진정한 후계자라고 주장한다.

 이런 라캉이 국제정신분석학회의 학자들과 자신을 구별 짓기하며 내세운 것이 바로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명제였다.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고, 언어화된 무의식을 가진 인간은 상징적인 질서, 타자의 질서, 언어적으로 조직된 질서에 편입되어 살아간다. 무의식은 빙산의 일각처럼 의식 아래 잠들어있지 않는다. ‘실재’에 문제가 생길 때, 무의식은 의식 위로 솟아오르며 꿈이나 증후 등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그리고 그 표현방식은 언어의 법칙(환유, 은유 등)을 따르며 우리는 이 언어의 법칙을 분석함으로써 무의식을 읽어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정신분석학에서 언어가 중요한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꿈이나 증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무의식이 언어의 모습으로 현현한다. 둘째, 정신분석의 치료 역시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셋째, 언어란 곧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의 상징계와 같다.『언어의 사랑』이라는 저서를 쓴 밀너가 다음과 같은 질문은 던진 이유는 이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이 존재한다면 언어란 무엇인가?”

 라캉 이전에도 몇몇 인물들이 정신분석학과 언어의 만남을 주관하고자 했다. 구조주의 언어학의 선구자 소쉬르의 둘째 아들 레이몽 드 소쉬르가 그런 인물 중 한 명이다. 레이몽은 제네바대학에서 베버 교수의 지도 아래「정신분석학 방법」이라는 이름의 박사논문을 썼는데, 이 논문을 감수한 이가 바로 프로이트였다. 실제로 레미몽은 그의 박사논문에서 소쉬르의『일반언어학 강의』를 인용하기도 했다. 라캉의 전기학자 루디네스꼬에 따르면 레이몽은 소쉬르의 후계자로 은유-환유에 대해 연구한 언어학자 야콥슨과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레이몽이 야콥슨과 만났을 때 그는 ‘정신분석학과 언어학의 공통된 연구 영역을 개척해보고 싶다’는 의견을 내비추었다고 한다.

 소쉬르의 제자인 쎄셰에 부인은 실제로 언어학과 정신분석학을 연결시키려는 시도를 했다. 그는 저서『한 정신분열증 환자의 일기』에는 ‘상징적 실현’이라는 방법을 통해 환자를 치료했다고 설명한다. 이 책에서 그는 소쉬르의『일반언어학 강의』를 인용하며, 소쉬르가 창안한 개념인 기호나 상징, 기표, 기의, 기표-기의 간 자의성 등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언어학과 정신분석학의 만남을 시도한 장본인은 라캉일 것이다. 그는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을 수용해 정신분석학을 새롭게 정립했다.

[04] 기표와 기의

파롤의 아래에는 랑그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 투쟁을 하던 경상도 사람과 함경도 삶이 만났다고 한다. 함경도 사람이 밀봉된 비밀 편지를 건네주자 경상도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이게 뭐꼬?"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한 함경도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다. "뭐꼬가 무시기?" 역시 경상도 사람도 함경도 사투리를 몰랐다. "무시기가 뭐꼬?" "뭐꼬가 무시기?" 그들은 이렇게 한나절을 서로 묻기만 했다고 한다. 물론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외국어뿐 아니라 한 민족의 언어 내에서도 사투리가 심하면 알아듣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뭐꼬가 무시기?"와 "무시기가 뭐꼬?"라는 말은 사실 같은 뜻의 문장이다. '뭐꼬'나 '무시기'는 모두 '무엇'이라는 뜻의 사투리다. 즉 경상도 사람과 함경도 사람은 서로 "무엇이 무었이냐?"라는 물음으로 일관한 것이다. 그러니 대화가 이어질 리 없겠다. 이렇게 같은 내용의 발언이 사람마다 달라지는 것을 가리켜 소쉬르는 파롤(parole)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 다양한 파롤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을 랑그(langue)라고 부른다. 굳이 번역하자면 파롤은 발언이고 랑그는 언어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파롤은 말하는 사람의 일회적인 발언이다. 따라서 말하는 사람마다 (그뿐 아니라 말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랑그는 변하지 않는다. 높고 새된 목소리의 "난 너를 사랑해."나 낮고 묵직한 목소리의 "난 너를 사랑해." 나, 파롤은 서로 다르지만 랑그는 같다. "낸 니를 사랑한데이."하고 사투리로 말해도 마찬가지다.

 랑그란 발언을 할 때 말하는 사람이 따라야 할, 혹은 적용해야 할 규칙을 가리킨다. 누구든지 같은 언어로 같은 발언을 하는 사람은 모두 같은 랑그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랑그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문법 체계다. 하지만 문법 체계는 랑그와 동일한 게 아니라, 랑그의 일부분이다. 즉, 랑그는 문법을 비롯해 사람들이 언어 사용에 관해 무의식적으로 합의하고 약속한 규칙들의 체계 전체를 가르킨다.

 장기를 둘 때 이따금 작은 말들을 일부 잃어버려 부족한 경우가 있다. 이때 흔히 바둑돌이나 단추 같은 것으로 잃어버린 장기의 말을 대체할 수도 있다. 이처럼 대체 가능한 것이 파롤이다 (뭐꼬와 뭐시기처럼).  하지만 그렇게 대체되었다고 해서 장기판의 규칙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뭐꼬와 뭐시기는 둘 다 무엇이라는 뜻이다). 랑그란 바로 그런 장기판의 규칙과 같다.

 랑그가 없으면 파롤은 존재할 수 없다. 예컨대 "난 너를 사랑해."라는 말을 "사랑 너를 난 해."라고 말하면 알아들을 사람이 거의 없다. 랑그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랑그는 갖가지 특수한 양태의 파롤을 가능하게 해주는 불변의 공통 요소, 바로 파롤의 수면 밑에 있는 '구조'다.

 랑그가 본질이라면 파롤은 현상이다. 본질이 없는 현상이 있을 수 없듯이 랑그가 없다면 파롤은 없다. 반면에 본질은 반드시 현상을 통해서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따라서 랑그 그 자체로는 드러나지 않고 반드시 파롤의 옷을 입고서만 모습을 나타낸다. 랑그는 근본적이며 독자적으로 존재하지만 파롤에 의해서만 드러날 수 있고, 파롤은 표층적이며 랑그에 종속되지만 랑그를 드러나게 하는 창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것이 랑그와 파롤의 기묘한 의존관계다.

 파롤과 랑그가 그런 관계가 있는 것을 안다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외국어를 해득하기 어려운 이유는 명백해진다. "난 너를 사랑해."라는 말을 영어로는 "I love you."라고 할 것이다. 두 가지 모두 파롤이지만 서로 다른 랑그에서 나온 말들이다. 따라서 영어의 랑그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I love you."라는 파롤을 이해할 수 없다.

 사실 여기에는 단순히 영어의 문법 체계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말을 사용하는 맥락, 즉 컨텍스트(context)의 차이도 포함된다. 언표된 내용, 즉 텍스트(text)상으로는 "난 너를 사랑해."와 "I love you."라는 서로 똑같지만 발언의 컨텍스트상으로는 서로 다르다. (쉽게 말해 의미는 같아도 어감은 다르다.) 이를테면 한국인보다는 미국인이 그런 말을 더 자주 사용하는 게 사실이므로, "난 너를 사랑해." 보다는 "I love you."가 더 사용적인 표현이라 할 수도 있고, 낯간지러운 느낌이 덜하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외국어의 정확한 번역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my mother'의 올바른 번역은 뭘까? 나의 어머니? 아니다. '우리 어머니'다. my라는 영어 단어는 분명히 '나의'라는 뜻이지만 우리말에서 그 표현이 사용되는 맥락을 고려한다면 ('내 어머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므로) 'my mother'는 '우리 어머니'라고 해야 옳다. 여기서도 역시 랑그란 단순히 문법 체계로만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기표는 기의의 옷이 아니다

 텍스트의 의미가 컨텍스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랑그와 파롤이 구분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해서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랑그/파롤의 구분을 소쉬르가 그렇듯 장황하게 말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랑그/파롤이 전제되어야만 언어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랑그/파롤이 구분되지 않는다면 언어학은 곧 어학과 같은 것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영어를 분석하는 영어 언어학, 일본어를 다루는 일어 언어학 등등 각 언어마다 언어학이 달라져야 하고 그때마다 언어학의 방법론을 새로이 정립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각 언어의 발언을 파롤로 구분하고 모든 언어의 기저에 놓여 있는 공통 구조를 랑그로 묶어놓으면 그럴 필요가 없어진다. 그러므로 랑그/파롤의 구분은 소쉬르 언어학의 출발점일 뿐 아니라 언어학 자체의 기반이 되는 셈이다.

 소쉬르는 어학자나 어문학자가 아니라 언어학자였으므로, 그가 랑그와 파롤 중 어느 것을 연구 주제로 삼았을지는 뻔하다. 그는 당연히 파롤이 아닌 랑그를 기초로 삼아 언어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에 나선다. 그가 맨 처음 품은 의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언어는 과연 지시 대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걸까?" 또다시 지극히 당연한 물음인 듯하다 (나중에 보겠지만 구조주의의 모토는 '당연시되는 것을 의문시하라.'라는 것이다). 언어와 언어의 의미가 관련이 있는 것은 상식이 아닌가? 그러나 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예를 들어보자. '개'라는 말은 실제로 살아 있는 생물인 개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의성어나 의태어 또는 한자와 같은 상형문자라면 말과 지시 대상의 관계를 어렵지 않게 추리해낼 수 있다. 예컨대 개를 멍멍이라고 부르는 어린아이의 말이나, 개의 모습에서 나온 한자어인 '犬'같은 말은 개라는 생물의 특성(짖는 소리, 모습)에서 나온 것들이다. 하지만 우리말의 '개'와 실제의 '개'는 전혀 관계가 없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영어의 'dog'도 실제 개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 나무라는 말은 실제 나무처럼 생기지 않았으며, 돈이라는 말을 아무리 뜯어보아도 실제 돈과는 닮은 구석이 전혀 없다. 

 사물과 직접 관련된 말이 아닌 경우에는 그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예를 들어 마음, 파란색, 깨끗함 같은 추상적인 말들은 실제 지시 대상과는 무관한(혹은 지시 대상이 고정되어 있지 않은) 언어 기호다. 혹시 '즐겁다는 말을 보면 실제로 즐겁게 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언어생활을 통해 길러진 선입견일 뿐 언어 자체에 그 뜻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생각이나 상식에 따르면, 언어와 지시 대상이 일치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으므로 소쉬르 이전까지는 아무도 그것에 의문부호를 달지 않았다. "개는 개지, 개가 개와 상관없다니 뭔 개소리야?" 그런데 그게 개소리가 아니었다. 언어 기호와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을 별개로 본 것은 혁명과도 같은 발상이었다. 우선 그것은 전통적인 견해에서 고정불변의 것으로 보았던 정의(定義)의 개념을 해체한다.

 정의라면 명백하고 확실해야 한다. 그러나 과연 말의 정의는 그토록 명백하고 확실할까? 예를 들어 국어사전에서 '마음'이라는 말을 찾아보자. 사전에 나오는 마음의 정의는 "사람의 몸에 깃들어 지식/감정/의지 등의 정신 활동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이 정의는 결국 마음이라는 말을 다른 여러 말로 대체한 것일 뿐이다. 사전에 나온 대로 마음이라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정의에 나오는 사람, 몸, 지식, 감정, 의지, 정신 활동 등의 말들을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 물론 사전에서 그 말들의 뜻을 모두 찾아볼 수는 있다. 그러나 어느 단어를 찾아보아도 우리는 마찬가지의 경험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그 가운데 '지식'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대상에 대해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라고 나오는데, 이 정의를 이해하려면 또다시 대상, 실천, 인식, 이해 같은 말들을 찾아보아야 한다. 이렇게 사전 내에서는 말들이 서로 돌고 돌 뿐 그 자체로 정의되는 것은 없다. 

 그렇다면 언어 기호의 본질적 의미, 정체성이란 없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다만 그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정체성을 파악해야 한다. 예전에는 언어 기호 자체에 정의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지만, 소쉬르에 따르면 언어 기호는 다른 요소들과 맺는 관계와 차이에 의해서만 규정될 수 있다. 여기서 소쉬르는 언어 기호를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e)로 나눈다. 기표란 '표시하는 것'이며 기의란 '표시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기표가 언어 기호라면 기의는 언어의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예컨대, '개'라는 말이 기표라면 실제 생물인 '개'는 기의가 된다. 전통적인 해석은 기표가 당연히 기의와 일치한다고 믿었다. 마치 고급 양복점에서 산뜻하게 맞춘 것처럼 기표는 기의의 몸에 꼭 맞는 양복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소쉬르는 그렇게 당연시되었던 기표와 기의의 일치를 거부한다. 기표는 기의의 옷이 아니다! 

 언어 기호는 사실 그것이 지칭하는 대상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개'라는 말이 실제 생물 '개'를 가리키게 된 것은 순전한 우연이다. 양자는 서로 무관한 관계, 더 그럴듯하게 말하면 자의적인 관계다. 오히려 개는 소나 돼지가 아니기 때문에 개다. 예컨대 상병이라는 계급은 그 자체로 정의될 수 없다. 다만 병장과 일병의 중간에 있는 계급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화요일은 월요일과 수요일 사이에 있기 때문에 화요일인 것이며, 봄은 여름, 겨울, 가을과 다르기 때문에 봄인 것이다. 화요일과 봄을 반드시 화요일과 봄이라는 말로 불러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물론 모든 어휘에는 나름대로의 기원을 두고 발전해온 것들도 상당히 있겠지만, 소쉬르는 어떻게 해서 언어가 발생하고 발달해왔는가는 문제시하지 않는다. 그의 용어에 따르면, 그것은 언어의 역사, 즉 통시성(diachronie)인데, 언어학에서 중요한 것은 통시성이 아니라 언어의 규칙과 체계, 즉 공시성(synchronie)이기 때문이다.

차이에 주목하라

 소쉬르의 언어학이 혁명적인 이유는 바로 기표와 기의의 자의성, 즉 언어 기호와 지시 대상이 서로 무관함을 밝혔다는 데 있다. 전통적인 해석에서는 언어 기호 자체 속에 지시 대상의 의미가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았지만, 소쉬르는 양자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앞서 프로이트의 경우에도 현대 지성사에 큰 영향을 미친 부문은 그의 '이론'보다 '방법론'이었다(정신분석학보다는 무의식의 개념이 훨씬 중요했다는 이야기다). 이 점에서는 소쉬르도 마찬가지다. 소쉬르는 자신이 언어학자일 뿐 철학자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의 언어학을 철학으로 연장시키려 하지도 않았지만, 그의 혁명적 발견은 엄청난 철학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전통 철학은 확실성의 철학이며, 동일성의 철학이며, 실체의 철학이었다. 하지만 소쉬르의 언어학적 성과를 반영하면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동일성보다는 차이가, 실체보다는 관계가 훨씬 중요해진다 (이 점에서도 역시 프로이트와의 공통점을 읽을 수 있는데, 두 사람이 거의 같은 시기에 활동했다는 것은 서로 만나거나 이야기한 적이 없다 해도 사상의 동시대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언어 기호의 가치(즉 의미)는 각각의 언어 기호 속에 내장된 게 아니라 그 바깥에서 찾을 수 있다. 한 언어 기호의 의미는 다른 기호들과의 차이에 의해 정해진다. 또한 각각의 언어 기호는 그 속에 고정된 의미를 튼튼히 끌어안고 있는 실체와 같은 것이 아니라, 서로 간에 차이라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 뿐이다. 예컨대 플러스와 마이너스라는 말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실체의 개념이 아니라 서로 대립되는 전기적 속성을 나타내는 '관계'의 개념일 뿐이다. 실체라면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하나가 없으며 다른 하나도 있을 수 없다.

 언어라는 랑그도 역시 독립적인 실체처럼 존재하는 게 아니라 기의와 무관한 기표들로 이루어진 그물일 따름이다. 국어 사전에서 낱말을 찾으면 그 낱말의 본래 뜻 대신 무수히 많은 다른 낱말들도 조합된 그물만을 만나게 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파롤은 발언자 개인이 주체가 되지만 랑그는 그렇지 않다. 랑그는 사회적, 집합적으로 약속된 언어의 규칙 체계이므로 랑그를 이용하기 위해 각 개인은 그 규칙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더군다나 기표와 기의가 서로 무관하기 때문에 각 개인은 실제 사물을 통해서 랑그를 하나하나 배워 나갈 수도 없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랑그와의 관계에서 수동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인간과 언어의 전통적인 관계는 역전된다. 인간 개인은 다만 랑그를 이용해 파롤만을 말할 수 있을 뿐인데, 그 랑그는 인간의 소유가 아니고 마치 독자적인 생명을 지닌 존재처럼 행동한다. 인간이 언어의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언어가 인간의 주인이다. 모든 판단이나 사고는 인간이 능동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구조 속에 내재해 있다 (짧은 메시지 하나를 쓸 때도 애초에 담으려 했던 의미가 도중에 문법이나 문장구조로 인해 변형되는 경험은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인간이 주체가 아니라니? 내가 내 언어의 주인이 아니라 언어가 나의 주인이라니? 무의식이 의식의 주인이라는 프로이트의 암울한 이야기와 더불어 또 하나의 불쾌한 이야기지만, 소쉬르에 따르면 나는 언어의 주인이 아니다.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렇다. 하나의 발언이나 사고 행위를 할 때 우리는 누구나 자연스럽게 (즉 무의식적으로)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언어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우리 스스로 만든 것이 있던가? 우리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언어 구조 속에 혈혈단신으로 뛰어든 처지에 불과하다. 우리는 언어를 사용할 수는 있어도 가질 수는 없다. 집주인은 언제나 언어이고, 우리는 영원한 세입자일 뿐이다.

 인간을 중심에서 끌어내리고 언어 구조를 중심에 가져다 놓았다는 점에서 소쉬르는 구조주의의 기반을 다진 인물로 간주된다. 그리고 소쉬르 이후로 언어학과 언어의 문제는 철학의 가장 중요한 분과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물론 인간 주체를 중심으로 삼고 논의를 전개하는 전통적인 철학도 여전히 큰 발언권을 가지고 있지만, 어쨌든 거기서도 언어를 철학적 주요 테마로 포함시킬 수밖에 없게 된 것(예컨대 하이데거)은 다분히 소쉬르의 덕택이다.
 
그런데 랑그는 인간 주체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철옹성 같은 것일까? 맨 처음 '개'라는 말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그도 역시 인간임에는 틀림없지 않을까?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고 해서, 혹은 특정한 개인으로 못 박을 수 없다고 해서, 랑그가 인간 주체와 무관하다는 주장은 약간 억지스럽지 않을까? 하지만 이 소박한 의문을 해명하지 않는 것은 소쉬르의 책임이 아니다. 소쉬르 자신은 분명히 언어 구조의 역사적 연구, 즉 통시성이 아닌 공시성을 자기 언어학의 대상으로 삼았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소쉬르가 기초공사한 구조주의의 결함이 몰역사성에 있음을 암시한다.

[06] 한국의 이공계 현실

그 대학의 연구실에는 '교수님'이라는 호칭이 없다. 다양한 세미나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실험에 필요한 장비는 연구원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손수 제작하여 사용한다. 이 모든 것이 단 하나를 보호하기 위한 것. 이 대학에서만 여섯 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 데는 이유가 있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특성, 호기심

 미국 조지아 주립대 언어연구소에 있는 수컷 보노보 칸지는 천재 원숭이로 불린다. 생후 9개월 때부터 언어를 배웠고, 렉시그램이라는 소통 도구로 200개 이상의 단어를 익혀 600가지가 넘는 과제를 수행하는 능력을 보였다. 이런 믿을 수 없는 능력을 보여준 칸지가 아직까지 보여주지 않은 게 바로 “왜?”라고 질문하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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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인류의 역사에서 혁명이라 불릴 만한 것들은 모두 이 말에서 시작했다.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은 우연히 푸른곰팡이로 오염된 포도상구균 배양 접시에서 균이 더 이상 자라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다. 실험이 실패했다 여기고 그냥 넘길 수도 있었지만 플레밍은 그러지 않았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호기심의 이유를 파고들었고, 결국 페니실린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전자공학의 혁명을 가져온 트랜지스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뢴트겐의 X선 발견 등도 모두 호기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업적이었다. 이와 같은 호기심의 역사는 지금도 매일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 나노구조물리연구단을 맡고 있는 이영희 교수도 그중 하나다. 이 교수는 탄소나노튜브를 30년째 연구하고 있다. 순전히 연구자로서의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이다. ‘나노’는 10억 분의 1 크기의 아주 미세한 단위를 일컫는다. 이 교수가 연구하는 탄소나노튜브는 지름이 수 나노미터이고 길이는 끝도 없으며, 마치 죽부인처럼 생겼다. 이 교수의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디스플레이 발전이 이어졌다. 이처럼 수많은 과학자들의 호기심 덕분에 2000년대 초반 한국은 나노 강국 5위 안에 진입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호기심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특성"이라고 했다. 아인슈타인은 “나는 천재가 아니다. 다만 호기심이 많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인공지능의 시대, 4차 산업 혁명의 시대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능력에 집중하는 시대다. 호기심의 차이가 개인의 삶의 질을 결정하고, 호기심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미래가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다. 이른바 ‘호기심 격차 시대’라 부를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많은 미래학자들 역시 앞으로 인류 역사를 바꿀 혁명적 변화들이 호기심에서 나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1년에 한 번 전 세계 영재들이 모여 서로의 호기심을 겨루는 국제물리올림피아드를 살펴보자. 2016년 7월,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모교인 스위스의 취리히 대학에 세계 각국의 청소년들이 모였다. 80여 개 국가, 총 400명의 과학 영재들이 참가하는 국제물리올림피아드이다. 우주정거장, 가속기, 반도체, 금속 막의 저항 측정 등 창의성을 요구하는 다양한 문제들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과학 영재들이 모여 창의력이 요구되는 과학 문제를 두고 겨루는 자리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의 실력은 어떠했을까? 우리나라는 참가한 다섯 명 전원이 금메달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며 중국, 대만과 함께 종합 1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다. 이 학생들은 똑똑한 머리만 가지고 있는 것도, 물리학 지식을 많이 습득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래서는 이 대회에서 결코 금메달을 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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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는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문제를 냈다’는 국제물리을림피아드의 출제 의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이 가진 가장 큰 무기는 창의력 그리고 세상을 향한 무궁 무진한 호기심이다. 국내에서 92대 1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국제 대회에 나가 금메달을 목에 건 다섯 명의 학생 모두 과학자가 꿈이라고 했다. 이들에게는 탄소나노튜브를 연구한 이영희 교수처럼, 과학자로서의 순수한 호기심과 연구에 대한 열망이 있다.

 이들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은 국제물리올림피아드뿐 아니라 국제화학올림피아드, 국제생물올림피아드, 국제 지구과학올림피아드 등 과학 분야 국제올림피아드에서 모두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2016년 7월에 열린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서 우리나라는 세 명이 금메달, 한 명이 은메달을 따면서 종합 2위의 성적을 거두었고, 이 대회에서 지난 8년 간 총 23개의 금메달을 땄다. 2016년 8월에 열린 국제지구과학올림피아드에서도 금메달 두 개와 은메달 두 개를 획득해 종 합 3위에 올랐고, 2007년 1회 대회 때부터 2016년까지 한국 청소년들은 종합 1위를 다섯 번, 종합 2위를 세 번이나 차지했다.

과학 영재들의 이유 있는 배신

 그렇다면 이들로 인해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미래가 차곡차곡 준비되고 있다고 봐도 될까? 1998년부터 2015년까지 3대 국제과학올림피아드 수상자들의 대학 진학 현황을 분석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물리는 열 명 중 세 명이, 화학과 생물은 절반 이상이 의학계열로 진학했다. 우리나라 과학의 미래를 책임질 재목들이 과학자의 길을 버리고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화학올림피아드의 '대모'로 불리는 하윤경 홍익대 기초과학과 교수는 2016년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을림피아드 출전자들의 의대 진학이 처음에는 섭섭했지만 점점 당연시되는 터라 이젠 서운한 감정도 없어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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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현상은 국제과학올림피아드 수상자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과학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일반고에 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면서 과학고와 과학영재고를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과학고와 과학영재고에서 의학계열로 진학하는 학생의 비율이 매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2011년부터 2015년에 이르는 5년 동안 영재고 졸업생의 8퍼센트인 154명이, 과학고의 경우 졸업생의 3퍼센트에 해당하는 171명이 의대에 진학했다. 특히 서울과학고는 2015년 무려 졸업생의 20퍼센트가 의대에 진학했다.

 과학고 출신에서 범위를 넓혀도 똑같은 현상이 벌어진다. 2016학년도 입시에서 서울대 전체 합격자 3135명 가운데 346명이 입학을 포기했는데, 이 합격 포기자 가운데 공대가 127명, 자연대가 48명이었다. 이런 현상의 원인 역시 이른바 ‘의대 효과’였다. 이들 진학 포기자 대부분이 의대 진학을 선택했다.

 그렇다고 자연계열로 진학한 학생들이 과학 인재로 성장해 가는 것도 아니다. 2007학년도에 서울대 생명과학부에 입학한 60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현재 진로를 조사한 결과, 재학생 가운데 무려 72퍼센트인 43명이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했다. 동일 계열로 진학한 경우는 13명뿐이었다. 충격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과학고를 졸업하고 자연계열 대학을 거친 이들 대부분이 어째서 의대라는 진로를 택했을까?

 “생명괴학부로 입학했지만 지금은 의대에 편입해서 다니고 있어요. 가면 갈수록 전공으로 먹고 살 확신이 점점 없어졌거든요." “연구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힘든데, 연구 외적으로 불안하게 하는 요소들이 너무 많았어요." "솔직히 자연과학을 계속하면 돈을 벌 기약이 없잖아요. 그래서 일단 의대 편입을 선택했어요." 하지만 이들도 이런 선택을 하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호기심 왕성한 과학 꿈나무들이었다. "과학고는 과학자가 될 꿈을 꾸게 해준 발판이었어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던 3년이었지요." "선생님들이 ‘너희는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발전시킬 아이들이다’라고 말씀하실 때면 뭔가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자부 심이 들었어요."

 과학고 출신 학생들이 의대를 선택하는 건 다름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과학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미래가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과학 영재를 둔 부모들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자식이 지금 과학을 하는 건 좋지만, 이걸 평생 하겠다고 할까 봐 너무 불안하다고 말이다. ‘과학을 해서 남들만큼 잘살 수 있을까?', ‘밥벌이는 될까?' 그게 가장 걱정된다고들 했다. 그렇다 보니 의대가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는 것이다. 도대체 과학자로서의 삶이 어떻기에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열정과 밥벌이 사이에서 고민하는 과학자들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과학자들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현장을 찾아가보자. 서울대 자연과학 연구실. 열네 명의 연구 원이 다양한 유전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실의 막내인 석사 2년차 K씨는 지금 연구하고 있는 ‘예쁜꼬마선충’을 얻기 위 해 벌레 잡는 일에도 아주 열심이다.

 "왜 기초과학을 하느냐고 물으면 궁금하기 때문이죠. 질문을 하기조차, 만들기조차 어려웠던 그런 새로운 질문들을 찾아가고 싶어요." 그는 실험을 한 번 하려면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즐겁다고 했다.

 하지만 선배들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결혼 2년차인 박사후 연구원 A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연구와 현실적인 문제 사이에서 고민이 깊다. 가장 큰 고민은 진로 문제다. 박사후 연구원에게 취업의 벽은 높기만 하다. A씨가 국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는 대부분 1~2년이 지나면 옮겨야 하는 불안한 자리뿐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이공계 박사 졸업자 수는 매년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그에 맞는 박사급 신규 연구개발 일자리 수는 오히려 계속 줄어드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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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이공계 박사 졸업자 수는 매년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그에 맞는 박사급 신규 연구개발 일자리수는 오히려 계속 줄어드는 형편이다. (출처 : 미래창조과학부)

 “가족들은 제가 적절한 자리에서 적절한 연봉을 받으면서 일 하기를 바라죠. 어떤 분야든 그렇겠지만 제가 원하는 자리는 많지 않아요. 저도 과학자가 되어 뭔가를 발견하고 발명하는 일에 대한 설렘이 있어서 긴 목표를 좇아왔던 건데, 그곳은 아무래도 닿을 수 없는 곳인가 싶어요."

 박사논문 준비에 한창인 6년차 연구원 B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연구를 하고 있지만 이것이 좋은 성과로 이어져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고민이 크다. 좀 더 안정적인 연구를 원하는 B씨는 해외 유학을 염두에 두고 있다. “불안함이 계속 있어요. 여기에서는 먼 미래도 아니고 바로 앞의 미래조차 내다보기 힘드니까요." 우리나라 젊은 과학자들은 한국을 떠나고 싶은 이유로 낮은 직업적 안정성과 열악한 연구 환경 그리고 낮은 수입을 꼽았다.

 이런 문제는 연구직을 넘어 자연계열 전체로 확대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2016년 한국고용정보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체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자연계열 졸업자의 비중은 2000년대 중반 15퍼센트 이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으나 이후 꾸준히 감소하여 10퍼센트에 이른다. 2015년 기준 자연계열 졸업자가 많은 업종은 제조업, 숙박 및 외식업, 도매 및 소매업, 교육서비스업 순인데, 이 가운데 숙박 및 외식업의 비중은 2004년 5.9퍼센트에서 2015년 15.2퍼센트까지 상승했다. 취업이 어려워 전공과 일치하지 않은 일자리 영역으로 진입한 결과다. 자연계열 졸업자의 비정규직 취직 비율 역시 2010년 10.2 퍼센트에서 2013년 42.3퍼센트로 꾸준히 늘어났다.

 한국에서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느라 마음껏 연구하기 힘든, 암울하고 험난한 길을 걸어가야 하는 운명처럼 보인다. 국가경쟁력의 중요한 요건이 될 호기심이, 생계의 문제 앞에서 사지의 영역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과학자의 꿈을 꾸고 있던 학생들 앞에 다가온 팍팍한 현실이 이들의 꿈도, 열정도, 호기심도 다 사그라지게 한 것이다.

 우리나라 과학 분야에 대한 우려는 이제 심각한 경고 수준에 이르렀다. “기초과학이 살지 않으면 ‘과학 한국’의 미래는 없다”는 막스플랑크재단 피터 그루스 이사장의 발언이나, “반세기 안에 한국 기초과학은 멸종에 이를 수 있다”는 하버드 의과 대학 유승식 교수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미래창조과학부에서는 2년마다 미래 성장 동력이 될 120개 과학기술 분야에 대해 국가별 순위를 매기고 있다. 기술수준이 도달한 정도에 따라 최고선도추격후발낙후 다섯 단계로 나누는 이 조사에서 2014년 기준 국가별 최고기술 보유 현황을 보면 미국 97개, EU 13개, 일본 9개, 중국 1개다. 한국은 몇 개일까? 0개다. 우리나라는 선도기술 37개, 추격기술 82개 등을 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은 보유하고 있지 않다.

 대부분의 과학기술에서 미국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는 건 오랜 투자의 결실로 볼 수 있다. 실제 오늘날 미국 국내총생산의 50퍼센트는 50년 전 이뤄진 기초과학 투자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기초과학 투자를 늘리면 되지 않을까. 도대체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이 얼마나 적기에 이런 현상이 생길까.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개발 투자국?

 KBS방송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젊은 과학자 100명에게 호기심을 유지하기 어려운 이유를 물었더니 역시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 부족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그런데 놀라운 진실이 있다. 사실 한국은 OECD 35개국 중 GDP 대비 가장 많은 연구비를 연구개발(R&D)에 투입하고 있다. 무려 GDP의 4.29퍼센트를 연구개발비로 쓴다. 그런데 일선의 연구자들은 전혀 그 혜택을 못 받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왜 벌어질까?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송지준 교수의 사례를 통해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송 교수는 미국 유학 중이던 2004년 에이즈 치료와 관련된 단백질을 세계 최초로 발견해 학술지 <사이언스>의 표지 논문으로 선정되는 등 일찌감치 학계의 주목을 받은 촉망받는 과학자였다. 그는 미국에 남으면 무조건 성공할 거라며 한국행을 말리던 지도교수의 만류를 뿌리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도 충분히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이스트에 자리 잡은 지 7년, 안타깝게도 송 교수에게는 그 시절의 의욕이 남아 있지 않다.

 “제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기 위해서 과학을 하는 건데, 왜 ‘연구 하청업’을 하고 있는지 회의가 들어요. 제가 하는 연구 과제와 하청 받은 과제가 딱 맞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까 연구비를 받아서 반은 그쪽 연구를 해주고, 반은 제 연구를 하는 식이죠." 

 송 교수가 말하는 ‘연구 하청업’이란 주제와 목표가 정해진 연구를 대상으로 연구비를 지원하는 ‘기획과제 연구’를 가리킨다. 반면 연구자가 자율적으로 정한 주제의 연구에 비용을 하는 것을 '자유공모 연구'라고 한다.

 정부는 R&D 분야에 2016년 한 해 19조 1000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지만, 이 가운데 자유공모 연구에 지원된 예산은 1조 1000억 원, 즉 5.8퍼센트에 불과했다. 민간기업이 투자하는 연구개발비 역시 한 해 40조 원에 이르지만, 이 역시 대부분 기획과제 연구에 지원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과학자들은 연구 비를 받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연구가 아닌 주어진 연구를 할 수밖에 없다.

 자유공모 연구에 할당된 1조 원은 연구비를 원하는 연구자 수에 비해 너무 적은 금액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합리적 분배가 어려워 5000만 원짜리 소액 과제가 80퍼센트에 이른다. 거기다 우리나라 연구자들의 70퍼센트 정도가 대학에 있지만, 정부 R&D 투자 가운데 대학의 비중은 2008년 11퍼센트에서 2014년 9퍼센트로 오히려 떨어졌다. 소액 과제를 딴다고 해도 간접비 명목으로 학교에 20퍼센트를 내고, 인건비, 소모품 구입 등을 하고 나면 막상 연구비로 쓸 돈은 얼마 남지 않는다. 또 1억 원 이상 과제를 따더라도 3년 이내 단기 과제가 대부분 이고, 정부 R&D 지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5~10년 뒤 기대효과까지 적어야 한다.

 “정부의 연구과제 보고서 양식을 보면, 어떤 것들은 기초과학인데도 수입대체효과를 적어 내야 하는 것도 있어요. 기초과학 연구라도 당장 돈벌이가 되는 산업효과가 있어야 더 나은 연구로 평가받는다는 건데, 그건 기초과학이 아니라 기술개발 이죠."

 게다가 정부의 R&D 투자는 트렌드와 단기성과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녹색’, ‘친환경’, ‘태양광’ 등을 R&D 키워드로 잡아 관련 과제를 양산하더니, 박근혜 정부 역시 2016년 3월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 일주일 만에 2020년까지 1조 원을 투입해 ‘한국형 알파고’를 만든다는 정책을 급조해냈다. 포켓몬고가 유행하자 가상현실에 주목하고, 뇌지도 연구가 부상하니 정부 주도로 한국판 뇌지도 연구 계획을 만드는 식이다. 이렇게 정부가 이끄는 국책연구가 점점 대형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기존의 인공지능, 뇌과학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가 제외되고 연구비 지원에서 배제되는 일도 일어났다.

 서울대 자연과학대 학장 김성근 교수는 2016년 10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돈을 투자할 테니 인공지능을 어서 빨리 개발하라고 정부가 판을 만들어준다고 해서 한국이 갑자기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을 만들 수 없다. 한국의 인공지능 기반이 약한 이유는 기초가 없기 때문이다. 기초연구에 투자하지 않으면 계속 선진국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연구비를 많이 타는 교수들의 특징이 해외 연구를 벤치마킹하는 것인데, 그래서야 따라하기밖에 더 되겠나. 기초라는 건 당장의 사용처를 생각하지 않고 궁극적인 호기심으로 하는 연구다. 이것의 무서운 점은 언젠가 쓸모가 있다는 점’’이라며 추격형 연구, 단기 성과형 연구가 아닌 호기심을 파고드는 창의적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현실을 참다못해 급기야 2016년 9월에는 서울대 의대 생리학교실 호원경 교수를 중심으로 자유공모 방식의 연구비를 늘려달라는 온라인 청원 운동이 일어났다. 494명의 연구자가 자필 서명을 해 국회에 청원서를 접수했고, 1498명의 과학자가 온라인 청원에 동참했다.
 이들은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 지원 확대를 위한 청원서’에서, 정부가 지속적으로 연구개발비 투자를 확대하고 있음에도 기초연구는 점점 위축되는 ‘풍요 속 빈곤’의 위기 상황이라며, 정부의 기초연구 지원이 원천지식의 창출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연구자 주도의 창의적 연구를 지원하는 자유공모 기초연구 지원사업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논문을 바로 쓸 수 없는 주제인 경우 연구할 여건이 안 된다. 거기다 평가 시스템은 논문 수, 산학협력, 기술이전 숫자, 특허 수 등 정량적인 평가를 중시하며, 비전문가가 심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송지준 교수는 카이스트에서 정년을 보장받았지만 한국을 떠날 고민을 하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구조 아래에서는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연구를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연구비 전체 예산이 얼마인가보다 중요하다. 지금처럼 과학자의 창의성과 호기심을 살릴 수 없는 구조 속에서는 기초과학 연구를 위한 토양이 만들어질 수 없다. 덴마크의 과학자 닐스 보어가 1913년 처음 제시한 ‘원자모형’ 이론이 100년 후 반도체, 레이저 등 신산업의 토대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단기간 내에 성과를 내려고 하는 한국의 R&D 투자정책은 당장에도 실패할 뿐 아니라, 미래에 만들어질지 모를 기회조차 없애는 것이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장기적인 지원과 안정된 연구 환경, 그러면서도 창의성을 키우는 과학 연구의 토대를 만들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른 사회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세계 최고의 기초과학연구소이자 과학자들에게 꿈의 연구소로 통한다. 현재 막스플랑크는 독일 전역에서 83개의 연구소를 운영하며, 이곳에서 총 2만 2000명의 과학자들이 기초과학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이 연구소의 여러 장점 가운데서도 가장 큰 것은 도전적이고 독창적인 연구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곳에서 6년째 고체물리학 연구를 하고 있는 카이저 교수는 "이곳의 장점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연구에 대해 완전한 자유가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연구비를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확고히 지키고 있다. 실패에 대한 페널티가 없기 때문에 일단 주제가 선정되면 본인이 좋아하는 연구를 계속할 수 있다.

 독일 정부는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기초과학에 들어가는 연구개발 예산을 매년 꾸준히 늘려 왔다. 독일 연방교육부 차관 게오르그 쉬테는 이렇게 말한다. “기초 연구에 투자하지 않으면 나중에 응용 분야의 연구, 혁신에 근거한 연구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에 손을 댈 수 없을 뿐 아니라 아이디어의 기초를 다 소모하게 됩니다. 경제적인 상황이 좋고 나쁨에 상관없이 아이디어를 채우기 위한 기초 연구에 늘 투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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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정부는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기초과학에 들어가는 연구개발 예산을 매년 꾸준히 늘려왔다. 

 독일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우리나라 돈으로 매년 2조 4000억 원을 막스플랑크 연구소에 투자한다. 세계에서 유일한 연구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지원하며 과학자의 호기심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독일에서 한 해 발표하는 우수 과학 논문의 절반 이상이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나오고 있고, 독일 역대 노벨상 수상자 3분의 1에 해당하는 33명이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배출되었다. ‘기초과학 100년 투자’의 결실을 밝혀주는 수치다.

 한편 영국에는 연구비에 대해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연구자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인 ‘홀에인 원칙(Haldane Principle)'이라는 것이 있다. 영국 왕립학회 벤키 라마 크리슈난 회장은 2016년 10월 방한했을 때 “과학에서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으려면 ‘탑다운(top-down, 상의하달)' 방식이 아닌 ‘바텀업(bottom-up, 하의상달)' 방식의 투자를 해야 한다”며 홀에인 원칙의 중요성에 대해 피력한 바 있다.

 덧붙여 그는 기초과학이 중요한 이유에 대해 “자연 현상, 생체 연구, 우주 연구 등 모든 지식 탐구가 과학이다. 국가의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 동력은 사실상 과학이다”라고 말했다.

 일본은 어떨까? 일본 정부는 1995년 과학기술기본법을 제정하고 이듬해부터 5년 단위로 장기 발전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실용성과 관계없이 다양한 분야의 창의적 연구를 지원하는 문부과학성의 괴학연구비 제도가 기초과학 육성에 큰 역할을 했다. 특히 각 지방의 국공립 대학들은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개발비의 절반 이상을 기초과학 분야에 폭넓게 지원한다. 연구비를 대학 외부에서 경쟁을 통해 획득해야 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의 대학교수들은 40~50퍼센트의 연구비를 학교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다. 미국 역시 정부 R&D의 47퍼센트를 기초연구비에 투자하고, 연구 과제의 대부분을 과학자 스스로 결정하도록 한다.

탈권위주의 문화 속에서 노벨상이 나온다.

 그럼 정부의 R&D 정책만 바뀌면 우리나라의 기초과학이 전할까? 서울대가 2015년 열두 명의 세계적인 석학과 함께 행했던 서울대 자연과학대 평가작업은 이에 대한 의미 있는 답을 보여준다. 이 프로젝트는 정량적, 획일적인 대학평가 방식 대신 해외 유수 대학에서 채택하고 있는 정성적인 대학평가 방식을 도입한 것으로,  2005년 실시된 첫 번째 평가 이후 만에 이뤄진 것이다.

 평가 결과는 냉정했다. 선구자가 아닌 추종자이며, 모험 대신 안주를 택하고, 창의적인 연구 대신 ‘따라 하기’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해외 석학들이 본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현주소였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이자 이번 평가 작업의 총괄 책임 자였던 팀 헌트 교수는 말한다.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 학과의 규모와 영역은 오랫동안 거의 변한 게 없습니다. 학자들이 연구할 때 이미 밝혀진 것을 계속 연구하는 것은 소용이 없어요. 권위에 의문을 가지고 끊임없이 의심해야 거기에서 진정한 과학적 발견이 이뤄지죠. 대학 구조가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함께 변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권위주의의 벽에 부딪혀 창조적 연구가 들어설 자리를 잃었고, 그 결과 연구 성과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평이었다. 또 실력보다 학연으로 후배 전공자를 뽑는 권위주의적 관행이 아직도 만연하다는 부끄러운 평가도 피할 수 없었다. 

 탈권위주의가 얼마만큼 놀라운 성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는 일본 나고야 대학의 사례가 확실히 보여준다. 나고야 대학의 소립자 물리학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다. 이곳의 소립자 물리학 연구실에는 ‘교수님’이라는 호칭이 없고, 다들 서로를 ‘누구씨’라고 부른다. 연구실에서만큼은 누구나 대등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다. 심지어는 제자 두 명을 노벨상 수상자로 키워낸 사카타 쇼이치 교수가 가위바위보에서 진 벌칙으로 학생에게 맞는 사진까지 걸려 있다. 매주 열리는 다양한 세미나에서는 나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은 실험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연구원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손수 제작하는 등 자립적인 연구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핵심 실험 재료인 필름 역시 20년 전 이 연구실의 선배들이 직접 만든 것이다. 

 이런 토대에서 나고야 대학은 일본에서 가장 많은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2000년대 이전까지는 노벨과학상 수상자의 70퍼센트가 미국, 영국, 독일, 단 세 나라에 집중되어 있는데, 2000년대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굳건한 3강 구도에 일본이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일본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는 지난 2016년까지 총 스물두 명으로, 그중 2000년 이후 수상자가 열 일곱 명이다. 21세기 들어서만 따지면 일본이 미국에 이어 세 계에서 두 번째로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많은 나라다. 이 중 나고야 대학 출신이 무려 여섯 명이나 된다. 탈권위주의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앞서 언급했던 일본 정부의 안정적인 지원 속에서 나고야 대학의 과학자들은 호기심에 날개를 달 수 있었다.
 
우리 안에 숨어 있는 호기심을 끄집어낼 때

 일본 에도시대에 크게 유행한 ‘산가쿠(산액, 算額)’라는 것이 있다. 수학문제를 나무판에 새겨 신사에 걸어놓은 것이다. 시가 현에 위치한 미이사는 1300년이 넘는 유서 깊은 절인데, 여기에는 200년 전에 봉납(奉納)된 산가쿠가 걸려 있다. 누군가가 문제를 내면 누구든 문제 풀이에 도전할 수 있었는데, 문제를 풀면 관세음보살에게 알리고 감사를 전하기 위해 나무판에 새겨 사찰에 걸어놓는 식이었다고 한다. 이 절에는 현대식 산가쿠도 전시되어 있다. 교토에 있는 두 개의 중학교에서 산가쿠 대결을 펼친 뒤 봉납한 것으로, 모두 학생들이 독자적으로 만든 문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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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이사에 걸린 산가쿠 왼쪽은 200년 전 봉납된 것이고, 오른쪽은 교토의 중학생들이 독자적으로 만들어 봉납한 현대식 산가쿠다. 

 골치 아프기만 할 것 같은 산가쿠가 왜 이토록 인기가 많았을까. 성별, 나이, 직업에 관계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순수하게 문제를 푸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사람들이 산가쿠를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새로운 문제를 만들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해 경쟁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산가쿠의 수준도 점점 높아졌고, 결국 일본의 독자적인 수학을 만드는 데 결정 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지금도 일본 사람들은 순수한 호기심으로 산가쿠를 즐기고 있다. 심지어 입시에 매달려야 할 고3 학생들도 산가쿠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여해 문제를 직접 만들거나 풀이 방법을 함께 고민하기도 한다. 오로지 산가쿠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 산가쿠 모임에 참여하는 한 학생은 “실제로 대학 입시에 이런 문제들은 나오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좋아하는 일에 열중해서 생각을 발전시켜 간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독일 역시 누구나 호기심을 갖고 즐기는 ‘일상의 과학’을 추구하고 있다. 독일인들에게 과학은 어렵고 복잡한, 나와는 거리가 먼 학문이 아니다. 독일은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결코 눈먼 돈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자연과학 수업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이어진다.

 이런 지원으로 이루어지는 일 가운데 ‘학생을 위한 실험실’이 있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색다른 방식으로 과학을 만날 수 있게 한 것으로, 독일 전역에 330여 개가 활발히 운영 중이며 70만 명의 학생들이 참여한다. ‘학생을 위한 실험실’은 어릴 때부터 기초과학에 대한 흥미와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독일의 특별한 교육법이다.

 그런데 사실 호기심 하면 한국인을 빼놓을 수 없다. 개화기에 한국을 방문한 서양인들의 기록을 보면 한국인들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 호기심이 빠지는 법이 없다. 천주교 선교사 마리 다블뤼는 “조선인들은 호기심이 많아 작은 일 하나도 알고 싶어 한다”고 기록했고, 미국인 선교사 길모어와 미국의 작가 잭 런던도 한국인의 두드러진 특성은 호기심이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은 왜 이런 사회가 되었을까.

 영국의 작가 이언 레슬리는 저서 <큐리어스>에서 호기심이 ‘특질’이라기보다는 ‘상태’라고 말한다. 즉 호기심은 환경이나 상황에 크게 좌우되기에, 사람은 자신의 삶을 호기심에 불을 지피는 쪽으로도, 호기심을 억누르는 쪽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도 양육 습관, 교육 제도, 교육 방식, 사회가 호기심에 보이는 대도 등의 요인에 따라 호기심의 수준이 달라진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달려온 방향은 우리 안에 숨어 있는 호기심을 짓누르는 쪽이었는지 모르겠다. 정해진 목표까지만 힘껏 달리고 그만 멈춰 서버리지 않았는지 되돌아볼 때다.

 한 사회의 성장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다가 어느 순간 정점에 이르고, 정점을 찍은 다음에는 성장세를 유지하거나 도태하는 S자형 곡선을 그린다. 상승세를 계속 이어가려 면 또 다른 성장 사이클인 ‘넥스트 에스커브(Next S-curve)’가 필요하다. 

 넥스트 에스거브를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바로 호기심이다. 호기심은 새로운 분야에 질문을 던짐으로써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혁신을 이끌어낸다. 기초과학에 투자하는 나라는 계속해서 넥스트 에스커브를 만들며 빠르게 성장하고, 그렇지 않은 나라는 얼마 못 가 성장 동력을 잃고 말 것이다. 이런 패턴이 반복된다면 격차는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앞으로 만날 ‘호기심 격차 시대’다. 호기심을 존중하고 투자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고 한 나라의 성패가 좌우되는, 중요한 기로에 우리는 서 있다.
 
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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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걷이가 끝나고 수확한 쌀을 보며 한 농부가 생각한다. “쌀알 10만 8800알을 나눠서 가마니를 만들어야지. 가마니는 창고 옆에 이런 모양으로 쌓을 거야. 맨 아랫줄에 놓일 가마니에는 1000알씩 넣고, 윗줄로 갈수록 한 가마니에 들어가는 쌀알을 40개씩 뺀다고 하면, 가장 아랫줄에 쌓일 가마니는 몇 개가 될까?"

 일하다 말고 이런 생각에 빠져 있는 농부를 본다면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탈곡한 쌀을 대충 비슷한 무게로 나눠 담으면 되지 참 쓸데없는 생각을 하네." 농사를 짓는 것은 수학 문제를 만들고 푸는 것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흔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에도시대에는 이런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수학 문제를 내고 풀었는데, 일부는 목판에 새겨 절에 봉납하기도 했다. 이른바 산가쿠다. 오고가는 사람 누구나 그 문제를 볼 수 있었고, 문제에 대한 논쟁을 펼치면서 문제의 수준이 높아지기도 했다. 주목할 점은 이런 문화가 일부 엘리트 계층에게만 향유된 것이 아니라 농촌 지역 전반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이다. 세금을 계산하거나 무게를 재는 정도의 실용적인 수준을 뛰어 넘는 경우도 많았는데, 에도시대 사람들은 왜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풀었을까?

 촬영 중에 만난 이치노세키 시립박물관 부관장인 소마 미키코씨는 <세이요우산법(精要算法)>이라는 책을 인용해 답해주었다.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 언뜻 보기에는 쓸모없이 보일지라도 가치와 쓸모가 있다는 뜻이다. 에도시대 사람들은 ‘삶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수학 문제를 즐기는 과정에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이를 통해 세상사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쓸모없어 보이는 수학 문제를 만들고 풀었던 사람들의 지적 호기심이 모여 일본의 독창적인 수학 와산(和算 : 재래의 일본 주산)의 발전에 기여했으니 결국은 쓸모가 있었던 셈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혁명이라 부를 만한 것들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을까?'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와 별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것은 아닐까?' ‘빛과 같은 속도로 빛을 쫓아가면 멈춘 것처럼 보일까?' 세상을 바꾼 위대한 질문들도 당시에는 무모해 보일 수 있는 의문이었다. 사회에서 당연히 받아들여 지는 것들에 질문을 던지면 돌아오는 반응은 대부분 비슷하다. '쓸데없는 생각이야!'
 
 그런데 한국의 기초과학 분야를 취재하면서 느낀 점은, 우리 사회는 쓸모 있음에 대한 증명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초과학을 하면 돈이 되나?' ‘연구의 기대효과는 무엇인가?' ‘몇 년 안에 당장 성과가 나을 수 있는가?' 과학자들은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과학에 흥미와 재능이 있는 학생들도 경제적인 이유로 기초과학을 계속 전공으로 삼지 못하는 현실, 연구비를 받기 위해서 진짜 하고 싶은 연구보다는 단기간에 성과가 나을 수 있는 연구 주제를 선택하는 것, 아무도 하지 않는 연구에 도전하기보다는 이미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 분야의 연구를 따라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현실의 벽 앞에서 지적 호기심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런 점에서 독일 기초과학의 사례는 인상 깊은 부분이 많았다.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만난 연구자들은 연구의 자율성이 보장된다고 입을 모았다. 하고 싶은 연구에 대한 완전한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연구의 독립성을 보장받고, 전 세계의 뛰어난 과학자들과 함께 일하며 호기심에 기반을 둔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우선 비전위원회에서 연구 분야를 선정하는데, 큰 틀에서 이미 모두가 하고 있고 할 만큼 진행된 분야보다는 미래 20년 동안에 잠재력이 있는 분야를 골라 투자한다. 어떤 새로운 것을 배울 것인가, 어떤 분야에서 흥미롭고 혁신적인 발전이 나올 것인가 등을 기준으로 큰 방향성을 정할 뿐이다. 연구 주제를 고르는 것은 전적으로 연구자들의 몫이다.

 연구를 시작하면 중간에 추가로 예산을 요청할 필요 없이 약 20년 동안 계속 지원받을 수 있다고 했다. 2~3년마다 국제적 기준의 평가를 받기는 하지만, 이는 결과물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연구의 품질이 이전과 다름없이 진행되고 있는지, 과정에 대한 검증 차원이다. 물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예산을 줄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20년 동안 서너 번에 그쳤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슈투 트가르트에 있는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만난 스테판 카이저 교수는 6년간 고체물리학을 연구하고 있는데, 한두 해 만에 결과를 내야 하는 단기 프로젝트가 아니라 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주고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큰 장점 이라고 했다.

 "이곳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곳입니다. 제가 연구하는 분야는 많은 돈이 들어가는 큰 프로젝트인데 이곳에서 지원하는 예산, 설비, 시간 등이 이런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하죠. 중간중간 연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도 있지만 결국 결과는 마지막에 나온다는 것을 그 들은 알고 있어요."

 이런 생각의 토대 위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자들을 뽑아 최대로 지원하고, 남들이 하지 않는 연구를 창조적으로 해나가도록 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노벨과학상 수상자 배출로 이어졌다. 독일 역대 노벨과학상 수상자 3분의 1이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나왔다. 198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클라우스 폰 클리칭 교수도 그중 하나다. 연구 실에서 만난 백발의 노교수는 전기저항에 대한 자신의 발견이 2018년 킬로그램의 기준을 바꿀 것이라 설명해 주었는데, 마치 어린아이처럼 신나 보였다. 과학이 곧 자신의 취미라며 항상 질문을 하고 밤이든 새벽이든 연구에 몰두한다고 했다. 노벨상을 가져다 준 연구도 새벽 두 시에 연구실에서 이루어졌다며 정확한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발견한 순간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지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알고 싶었던 것을 알게 된 순간의 기쁨은 노벨상을 수상한 기쁨보다 더 커 보였다. 그 스스로도 노벨상 수상이 정말 우연한 것이며, 한 번도 상을 받기 위해 연구한 적 은 없다고 했다.

 한국 과학자들의 실력과 열정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그런 한국인 과학자들을 만나본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아직 노벨 과학상이 나오지 않았음을 의아해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하나다. 뛰어난 인재들이 기초 과학 분야에서 연구를 계속 이어나갈 동기와 환경을 만들 어주는 것이다. 

 기초과학 강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을 통해 볼 수 있듯이, 당장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일지라도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투자한다면 그 결실은 미래에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한국 기초과학의 역사가 50년이라고 한다. 앞으로의 50년은 쓸모없음의 굴레를 넘어 과학자들이 호기심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인류의 지평을 넓히는 과학적 발견이 한국에서도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 앞부분에 나온 쌀가마니 문제는 일본 시가 현에 있는 미이사에 1828년 봉납된 산가쿠 문제로, 답은 16개이다.

[06] 수업 내용 개념 연결 키워드 

01. 해오름 고등 논술 지도자 수업 방향 (융합적 사고) <= 시사적 사건들 소개 
02. 인식의 틀 (데카르트 + 니체 + 라캉) - 프린트
03. 의식과 무의식 (프로이드 + 라캉) - 프린트 
04. 기표와 기의 (소쉬르 + 라캉)
05. 장미전쟁 -> 영국의 키워드 (약탈) vs [팍스 브리타니카]

06. 약탈의 죄책감을 관념으로 극복한다
- 루소부터 롤스까지 <-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로 정리 가능 

07. 절대주의가 상대주의 그리고 다원주의까지 ... 
- 탈근대 (해체주의 -> 다원주의) 위주
- 그래서 미술에서 해체주의 (아트 인문학 확인)

08. 신사회주의 운동을 바라보는 역사적 관점 
(1) 프랑크 푸르트 학파 
(2) 실존주의 (실증주의와 구별)
(3) 6.8 혁명
(4) 히피운동 
(5) 군중의 몰입도

09. 개인 속에 인류의 역사가 진행된다
(1) 청소년 발달사 (르네상스를 중2로 간주)
(2) 함석헌 - 새로 고쳐 쓰는 역사와 연결
(3) 우주의 법칙이 뇌 속에서 작동된다. (가설)
(4) 따라서, 내 안의 신이 존재한다 (가설)

09. 한국의 우주 과학 발전 정도 (위성 위주 -> 자율 자동차에 영향)

10. 한국의 토양이 부족해서 외국으로 나간다
(1) 이공계의 문제 (명견만리)
(2) 외국들의 장학제도 : 일본 / 중국 / 유럽의 기술이민 상황

11. 그래서, 한국의 교육이 변해야 한다.
(1) 거꾸로 수업 (Flipped Learning)
(2) IB 소개 (2017년 경기외고 IB 실험 평가) 
(3) 하지만, 적폐를 청산해야 교육이 바로 선다.
- 세월호편 정리 필요 (나의 한국 근현대사 by 유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