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오름 고등부 18기.JPG


[00] 다음시간 발제순서


01.  의식주 경제학

의식주 경제.JPG


02. 본성과 양육

본성과 양육.JPG

[01] 본성과 양육 정리 

04. 원인을 둘러싼 광기 정신병의 경우는 본성 이론도, 양육 이론도 원인과 결과를 구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인간의 뇌는 단순한 원인을 찾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것은 우연한 사건들을 피하고 대신 A와 B가 함께 있으면 A가 B의 원인이든지 B가 A의 원인이라고 추론하기를 좋아한다. 이 경향은 정신분열증 환자들에게서 가장 강하게 나타난다. 그들은 아주 명백한 우연 속에서조차 인과 관계를 본다. 그러나 A와 B는 종종 다른 어떤 것의 두 증상일 때가 많다. 흑은 더욱 골치 아프게도 A가 B의 원인이자 결과일 때도 있다. 따라서, 정신분열증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한번 본성과 양육이 아주 평등한 입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05. 4차원 유전자 시간 변수에 따라 유연하게 발현하는 유전자를 기반하고 있는 인간의 인지 발달은 학습과 성숙 둘의 조합인 동시에 성장하는 마음이 외부 세계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지적 발달에 필요한 심적 구조는 유전적으로 결정되지만, 뇌의 발달 과정에는 경험과 사회적 상호작용으로부터 오는 피드백이 필요하다. 따라서 유전가가 양육의 봉사자인 동시에 양육이 유전자의 봉사자이다. 

06. 형성기 각인의 방향성, 성적 지향성 및 언어는 유전적으로 고정된 것도 아니고, 단지 외부 세계로부터 흡수하는 것도 아니다. 언어는 각인된다. 그것은 환경을 경험함으로로써 학습하는 일시적인 능력이고, 양육을 획득하기 위한 선천적 본능이다. 언어를 본성이나 양육으로 극단화하기는 불가능하다.  

[02] 정신분열증 (조현병) 

 조현병(정신분열병)은 망상, 환각, 와해된 언어와 행동 그리고 사회적 직업적 기능상의 심각한 어려움을 초래하는 증상 등의 특징을 지닌다. 

정신 분열증 시작.JPG

증상에 따른 일반적 분류 

2-1. 망상형 (Paranoid type) 피해망상이나 과대망상과 같은 망상이나 환청을 주된 특징으로 하는 정신분열증으로 혼란된 말이나 행동, 둔마된 정동 등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은 특징이 있으며 이들은 상대방에게 항상 긴장되어 있고 의심이 많고 숨기는 것이 많다는 인상을 주고 때로는 상대방에게 적대적이고 공격적일 수 있다. 지능은 정신병으로 장애를 받지 않으며 때로는 그런대로 사회생활을 적절히 영위하기도 하는데 즉, 20대 또는 30대 후반까지 사회생활이 나쁘지 않아서 많은 환자들이 결혼을 하였으며, 직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다른 조현병의 종류보다 퇴행이 덜 일어나는 특징이 있다. 

* 둔마된 정동 (blunted affect) : 정서표현의 강도가 심각하게 둔화되는 정서장애 

2-2. 파괴형 (Hebephrenic type) 파괴형은 망상과 환청이 특정한 패턴이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지만, 발병 연령이 빠르고 서서히 시작된다. 원시적이고 조직화되지 않은 말이나 행동을 특징으로 하며, 부적절한 감정 반응이 두드러지고 현실과 접촉이 극도로 좋지 않다. 예를 들어, 겉모습이 지저분하고 주책이 없으며 어린애 같고, 낄낄거리고 거울을 쳐다보고 웃는 등의 부적절한 감정반응과 이상한 행동을 많이 한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망상형에 비해 파괴형이 가족력이 높고, 예후 (발병 이후에 치료를 하지 않을 경우, 특정한 진행과정)가 좋지 않다. 

2-3. 긴장형 (Catatonia type) 정신운동성 장애가 특징적인 조현병으로서, 극단적 운동과다와 혼미, 또는 자동적 복종과 거부증 등의 양극단이 교차되어 일어난다. 혼미형 긴장형은 겉으로는 혼미상태에 있으며, 자발적 운동이 극도로 감소되어 있는데, 이들은 침묵 상태를 유지하며, 거부증, 상동증, 매너리즘, 반향어, 반향행동 등을 특징으로 보인다. 긴장형 환자들은 극도의 운동저하 상태에 한참 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극도의 폭력을 행사하는 일도 있으며, 이 상황에서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고 뭔가 행동을 계속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러한 행동은 외부에 대한 적절한 반응이라기 보다는 내적 욕구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으로 보이며, 이들은 대체로 파괴적이고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그냥 놔두면 자해 또는 타해를 가하거나 탈진상태에 빠지기 때문에 입원 치료가 필요한 상태이다. 

정신의학적 분류

 DSM은 미국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APA)에서 발간한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 DSM)>책자이다. 이 책자의 목적은 다양한 정신장애를 지닌 정신질환자들의 진단과 분류체계를 보다 효율적으로 적용하고, 연구자간의 합의된 의사소통은 물론 치료와 경과 및 예후를 보다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있다. DSM은 1952년 DSM-1이 처음 출간된 이후, 2013년에는 DSM-5가 출간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시대적 상황이 변화되면서 인간의 정신적 문제도 복잡해지고 새로운 이상행동들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DSM-5는 다양한 증상들(예: 약화된 정신증 증후군, 지속성 복합 사별장애, 자살 행동장애, 자살의도가 없는 자해, 인터넷 게임 장애)이 공식적인 정신장애로 추가되어 있다. 또한, DSM-4에서는 없었던 파괴적 기분조절 곤란 장애, 저장 장애, 피부 벗기기 장애, 회피적/제한적 음식섭취 장애, 초조성 다리 증후군 등까지 포함된다. 

DSM 01.JPG


DSM 02.JPG


DSM 3.JPG


DSM 4.JPG


DSM 5.JPG


 물론, DSM-5는 정신 장애의 진단범위가 넓어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정신질환자로 잘못 진단되어 불필요한 치료를 받게 될 것이라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장애를 이해하고, 판단하고, 치료하고, 경과과정을 살펴보고, 예후를 통계적으로 예측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도구이다. 

[03] 정상과 비정상, 그 모호한 경계

정상과 비정상_위험한 지도.JPG
만프레드 뤼츠 저/배명자 역 | 21세기북스 | 원서 : Irre! Wir behandeln die Falschen (2009) 

 죽을 때까지 평범한 사람들은 정신과의사를 만날 일이 전혀 없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삶은 비극을 낳는다. 정상인들은 평범한 삶이 너무 지루해서 복수, 전쟁, 약탈, 살인, 사기 등으로 긴장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미치도록 정상적인 사람들은 겉으로는 정상으로 보여도 예측불허인 사람들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뉴스를 볼 때면 가끔씩 답답해한다. 뉴스 속에는 전쟁도발자, 테러리스트, 살인자, 경제사범, 냉혈인, 그리고 뻔뻔한 이기주의자들이 가득한데 아무도 그들을 치료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이 정상이란다. 나는 매일 병원에서 치매 환자, 의지가 약한 중독자, 신경이 예민한 정신분열증 환자, 심각한 우울증 및 조울증 환자들을 만난다. 그런데 뉴스를 보고 있으면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의 의심이 저 밑바닥에서 서서히 올라온다. 나는 엉뚱한 사람을 치료하고 있다! 정신병자가 아니라 정상인이 더 문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겐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강박과 집착이 존재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 혹은 소속된 집단과 사회의 전통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특성상 주변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기는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늘 '평범한' 내면을 끄집어내고, '정상'에 집착하게 된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일까? 정상 여부를 가리는 '표준안'이 존재하는 것일까? 다수라고 소수에 대해 '정상이다, 비정상이다'를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길까? 아무리 뛰어난 담론을 소유한 전문가라 할지라도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설명하기 어려우며, 설령 그러한 경계를 만들더라도 그것은 상당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정신병자에 대해 우리는 흔히 '정상이 아니다'라는 선입견을 가진다. 그러면 한 가지 물어보자 "당신은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이 책은 정신의학, 즉 정신병과 그 치료법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동시에 정상과 비정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버리는 우리의 통념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을 던지고 있다. 즉 정신병자에 대한 우리의 편견은 이른바 정상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자기네와 다른 사람들을 틀렸다고, 잘못되었다고, 우리 사회를 위협한다고 낙인 찍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독일의 정신과의사이자 심리치료사이자 이 책의 저자인 만프레츠 뤼츠는 이 책에서 에서 '비정상'은 평범하지 않은 모두를 미친 사람으로 낙인 찍고 싶어 안달이 난 미치도록 정상인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에서 나온 반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오히려 사회를 위협하는 쪽은 정신병자들이 아니라 히틀러와 스탈린, 김정일과 마오쩌둥, 디터볼렌과 패리스 힐튼 등처럼 미치도록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는 다소 위험한 발상을 아주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위험한 정신의 지도'는 도대체 누구를 치료해야 하고, 왜 치료해야 하고,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를 유쾌하게 밝힌다. 

 1부 '정상인이 더 문제다'에서는 히틀러와 스탈린과 같이 미치도록 정상적인 광기, 튀지 않고 회색 쥐로 살아가는 미치도록 정상적인 사람, 디터 볼렌과 패리스 힐튼 같은 극히 정상적인 정신박약자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학살을 자행한 히틀러는 정신병자였을까? 그리고 온갖 이상한 행동을 다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패리스 힐튼은 정신병자일까? 이들의 행동은 정상인으로서는 절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히틀러와 패리스 힐튼은 정신병자가 아니다. 그들은 끔찍할 만큼 정상인이다. 그리고 이 모든 정상인이 우리 사회의 진짜 문제라고 만프레드는 말하고 있다. 2부 '우리는 엉뚱한 사람을 치료하고 있다'에서는 진정으로 치료가 필요한 '미치도록 정상인'?은 치료하지 않은 채, 오히려 독특하고 환상적인 색깔이 있는 사람들을 엉뚱하게 치료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잘못된 진단이 환자의 상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음을 알려준다. 

 "환청을 듣는 한 젊은 만성 정신분열증 환자가 있었다. 환자는 자신의 환청은 뭔가 도움을 청하는 이상한 내용이었지만 참 듣기 좋은 음성이라고 했다. 환자의 진료기록을 상세히 조사해보니 환청을 없애는 처방을 전혀 하지 않았고 처방을 하지 않은 근거 역시 타당성이 없어 보였다. 나는 환자에게 간단히 설명한 후 약을 처방했다. 다음 진료를 받을 때 환자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환자의 상태는 이전보다 훨씬 심해져 있었다. 내가 환청이 그쳤는지 물으니 그쳤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환자는 늘 죽은 선생님의 상냥한 음성을 들었고, 그 선생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기분이 좋아졌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음성이 사라져서 몹시 화가 난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나는 환청을 없애는 방법과 그 방법을 정확하고 성공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배운 대로 환자에게 적용하여 환청을 없애주었는데, 환자는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나를 욕했다." 

 이렇듯 저자는 자신이 만난 유쾌한 환자들에 대한 얘기들을 끊임없이 풀어놓으면서 환자의 섣부른 진단은 위험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환자가 중심이 되는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해준다. 

 3부에서는 뇌졸중, 중독, 정신분열증, 조울증과 우울증 등에 대한 직접적인 치료사례들이 나온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저자는 그 특유의 '따뜻한 유머'를 잃지 않는다. 때문에 자칫 심각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은 유쾌하고 즐겁다. 그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희망차다. 

 정신과 병동의 환자와 특이한 사람들, 그들 대부분이 환자였던 시기는 아주 짧다. 아니 여기서 '그들'은 바로 '우리 모두'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인생의 맨 처음과 전성기, 그리고 말년에 한 번쯤은 정신병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돈의 팔촌까지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친척 중에 정신병을 앓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평생 혹은 아주 짧게 인간의 한계를 경험했던 사람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관심을 갖고 숙고해야 할 때다. 발칙한 정신과의사 만프레드는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정상과 비정상의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르디외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지었다.

브르디외.JPG
『부르디외 사회학 입문(1997)』, 문경자 옮김, 동문선, 2000. (117).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용어로 이루어지는 개별적 요구들의 합리화가 있다. 지식인에게 자유란 생각하고 말할 자유이나, 사장에게 자유란 고용과 해고의 자유이다. 따라서 언어의 근본적 역할을 강조해야 한다 [해석권력]. 이른바 ‘정당한 것’에 대한 정의는 ‘용어논쟁’을 거칠 수밖에 없다 [정의(定義, definition)투쟁]. 하나의 사물 혹은 사람은 - 그냥 절대적으로 단순히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 특정 가치, 입장과 분리 불가능한 ‘보는 자’의 관심, 관점에 의해 관찰될 수 있을 뿐이다 (관점은 관찰, 인식의 가능조건이다). 게다가, 신념의 확산은 또한 제도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나의 제도는 필연적으로 자신과 대립되는 신념에 대한 가치폄하에 기초를 두고 있다. 명명하는 힘(命名力)은 하나의 사물, 사람에 (긍정적 혹은 부정적) 가치를 부여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의견은 푸코의 주장을 확장한 것이다. 푸코는 ‘지식권력‘(power knowledge)이라는 개념을 들어 지식을 통제하는 권한은 곧 타자에게 가하는 권력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누군가를 ‘정상’ 혹은 ‘비정상’으로 지칭하는 일은 상대의 사회적 지위를 정해주는 ‘권력’의 행사일 수도 있다. 

[04] 비트코인 JTBC 토론의 쟁점
 
비트코인.JPG

[이번 토론의 쟁점사항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었던 부분들 중 하나는 아래와 같다]


- 유시민 화폐는 교환의 매개수단이 돼야 하고, 가치가 안정성이 있어야 하며, 가치척도로서의 기능이 필수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은 실제 화폐로 거래의 수단으로 쓰이지 않고 가치측정의 기준이 될 수도 없다. 그래서 비트코인은 화폐가 아니다.
- 정재승 비트코인을 화폐라 보기 어렵다는 핵심은 물물교환의 상황에 나온 경험을 모두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며, 거래소 숫자로만 비트코인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

 따라서, 비트코인에 대한 개발자와 사용자의 관점이 다르니, 화폐로 규정하는 이 해석권력의 주체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05]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눈이 포착하는 지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두 개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데 익숙하다. 사람만이 아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눈이 달린 생명체들 역시 두 개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경우가 많다(물론 예외도 있긴 하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구도는 눈 둘, 귀 둘, 코 하나, 입 하나가 배열된 얼굴이다. 그런데 왜 하필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인 것일까? 그리고 둘 이 낫다면, 왜 셋이나 넷, 혹은 열둘은 아닌 것일까?

 일단 눈이 하나가 아닌 이유는 하나보다는 둘이 낫기 때문이라고 직관적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눈이 두 개이면 하나일 때보다 시야가 더 넓어지는 건 분명하다. 벽에 같은 크기의 창문을 낸다면, 하나보다는 둘이 방 안으로 빛과 바람이 더 잘 통한다는 건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하지만 단지 시야를 넓힐 목적으로 눈이 하나 더 필요했다면, 왜 하필 두 개의 눈이 모두 얼굴 중심부에 모여 있는 것일까? 이왕 두 개가 존재하려면 하나는 얼굴에, 하나는 뒤통수에 존재해야 전후좌우를 살피는 데 더 유리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사람의 두 눈은 모두 얼굴 전면부에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일 때보다 시야는 겨우 4분의 1정도 넓어질 뿐이며 양 쪽 관자놀이 뒤쪽의 시야, 즉 세상의 절반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인다. 눈앞에서 얼쩡대는 모기를 잡으려고 분기탱천해 일어났던 사람들이 잠시 후 눈앞에서 모기가 깜쪽같이 사라지는 황당한 경험을 하고는 허무하게 주저앉게 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모기는 순간적인 회전과 방향 전환에 능수능란한 초소형 비행물체이기에 시야각이 좁은 인간의 눈으로는 눈앞의 모기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덩달아 내 피를 빤 녀석을 겨냥해 가열차게 들었던 손도 힘없이 떨굴 수밖에.
 
 만약 생명을 디자인하는 누군가가 시야의 확장을 위해서 눈이 하나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그의 벤치마킹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토끼나 말과 같은 초식동물이 더 적당할 것이다. 이들의 눈은 얼굴의 정면이 아닌 측면에 존재하고. 있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관자놀이 부근에 각각의 눈이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이렇듯 이들의 눈은 측면에 위치하고 서로의 시야각이 겹치는 범위가 좁기 때문에, 각각의 눈이 가지는 시야의 범위를 최대로 확장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말의 경우는 머리를 고정하고 있을 때에도 뒤쪽 30도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볼 수 있으며, 토끼의 경우 사각지대가 겨우 9도에 불과할 정도로 넓은 시야를 자랑한다. 최대 시야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또 다른 모범 사례는 카멜레온이다. 초식동물이 가장 시야가 넓게 확보되는 위치에 눈을 두어 수동 적으로 시야를 확장시켰다면, 카멜레온은 두 개의 눈을 각각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해 시야에서 사각을 없앴을 뿐 아니라, 필요하면 - 작은 벌레들을 사냥할 때처럼 -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두 눈의 시선을 맞춰 집중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효율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세상을 깊게 보는 두 개의 눈

 비록 시야의 확장 분야에서는 사람의 눈이 말이나 토끼보다 못 하더라도 사람의 시야 효율이 꼭 떨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사람의 경우, 눈이 얼굴 전면에 가깝게 존재하는 덕에 시야는 좁지만 대신 두 눈의 시야가 상당 부분 겹쳐지면서 원근감과 입체감의 판별에 있어 매우 유리하다. 눈이 두 개이고 두 눈이 약 간이라도 떨어져 있다면 각각의 눈에 들어오는 시각 영역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눈앞에 손가락을 하나 세우고 양쪽 눈을 번갈아 윙크하듯 감아보면, 눈을 번갈아 뜰 때마다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하나의 대상에 대해 두 개의 상을 형성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각각의 눈에 들어온 시각 정보를 합쳐 하나의 이미지로 통합하게 된다. 양쪽 눈에서 각각 뻗어 나온 시신경이 뇌로 들어가기 전에 하나로 합쳐지는 이유는 이 때문이며 이렇게 양쪽 시야를 합치는 과정에서 시야에 입체감이 더해진다. 사람의 눈은 비록 시야가 넓은 편이 아니지만, 원근감과 입체감을 판별하는 데 매우 탁월하다.

환각.JPG

마음의 눈.JPG


 사람은 기본적으로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본다. 양팔을 벌린 뒤 한쪽 눈을 감고 손가락 끝을 맞대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한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평평해서 두 손가락의 거리감이 정확히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마음의 눈>(올리버 색스, 알마, 2013)에 등장하는 수전 베리의 사례는 매우 흥미롭다. 신경생물학자인 그녀는 선천적으로 사시를 가진 채 태어났고 어린 시절 몇 차례 수술을 받았으나 증상은 개선되지 않았다. 그녀의 두 눈 중 어느 한쪽에 시력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세상을 한 눈으로밖에는 볼 수 없었다.


수잔베리.JPG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떤 물체를 볼 때 두 눈의 시선을 대상에 일치시켜 본다. 뇌는 양쪽 눈에서 들어온 ‘동일한 대상에 대해 약간 어긋나게 겹쳐지는 장면’을 하나로 인식하고 이를 합쳐 입쳬시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사시를 가진 아이의 경우, 두 눈의 시선이 서로 어긋나기 때문에 뇌가 양쪽 눈에서 받아들이는 영상은 겹치는 정도가 떨어진다. 즉, 두 개의 서로 다른 장면이 양쪽 눈을 통해 뇌로 들어오는 것이다. 심지어 하나의 대상이 두 개로 보이기도 한다.


 카멜레온이라면 문제없을 테지만, 인간의 뇌는 이렇게 서로 다른 정보들을 접하면 혼란에 빠진다. 게다가 실제로도 문제가 된다. 하나밖에 없는 커피잔이 두 개로 보일 때 어떻게 해야 뜨거운 커피에 손을 데지 않고 무사히 잔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선천적으로 사시를 가친 채 태어난 아이들은 시행착오를 거쳐 이를 판별하는 방법을 깨닫는다. 방법은 한쪽 눈을 질끈 감고 다른 한쪽 눈에서 받아들이는 정보만을 받아들이면서 테스트하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주로 보는 눈(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가 있는 것처럼 눈도 주로 사용하는 눈이 있다)에서 들어오는 영상만을 ‘진짜’로 인식하고 다른 눈의 시야는 일괄적으로 무시할 수도 있고 마치 연달아 윙크를 하듯이 양 눈을 번갈아 사용할 수도 있지만, 사시안을 가진 사람들은 한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들에게 세상은 다채롭지만 평평한 TV 화면과 같은 모습으로 비치게 된다.

 수전 베리는 자신이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스무 살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수전은 태어날 때부터 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기에 이것에 익숙해져 남들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본다는 사실을 인식조차 못했다. 성인이 되고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사시를 교정할 수 있었던 그녀는 입체시를 처음 얻게 되었을 때의 심정을 색스에게 보낸 펀지에 이렇게 적었다.

 어느 겨울날, 얼른 점심을 때우려고 교실에서 식당으로 바삐 가고 있었어요. 교실에서 몇 발짝 떼지 않아서, 저는 별안간 걸음을 멈추었어요. 탐스럽고 촉촉한 눈송이들이 저를 둘러싸고 느릿느릿 떨어지고 있었어요. 저는 눈송이들 하나하나 사이의 공간을 볼 수 있었어요. 그 모든 눈송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3차원의 군무를 추고 있었어요. 과거에는 눈이 저보다 조금 앞에 있는 한 장의 평면 안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을 거예요. 저는 제가 떨어져서 내리는 눈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느꼈을 거고요. 하지만 이제, 저는 제 자신이 내리는 눈 속에, 눈송이들 한 가운데에 있다고 느꼈어요. 점심도 잊은 채, 저는 몇 분 동안 내리는 눈을 지켜보았고, 깊은 환희감에 압도되었어요. 내리는 눈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답니다. 특히 생전 처음 볼 때는 말이죠. 
<3차원의 기적> (수전 베리, 초록물고기, 2010)

외눈박이 맹수는 목숨을 잃을 위험이 크다

 수전 베리와는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선을 하나로 통합시킬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입체감을 얻을 수 있다(늘 그래 왔기에 이를 고마워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양안의 시야를 겹쳐 원근감을 살리는 것, 입체시는 흥미롭게도 사냥꾼의 특성이다.

 동물들도 말이나 사슴 같은 초식동물은 얼굴 측면에 따로따로 눈이 존재하지만, 사자나 호랑이와 같은 육식동물의 경우 얼굴 전면 중앙부에 두 개의 눈이 빛나고 있다. 이렇게 눈의 위치가 다른 것은 아마도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숙명 때문일 것이다. 초식동물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천적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다. 천적이 멀리 있는지 가까이 있는지 따지기에 앞서 일단 천적 - 혹은 천적으로 의심되는 존재 - 이 나타나면 무조건 도망쳐야 살아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이들은 눈의 위치를 최대한 멀리 떨어뜨림으로써 각각의 눈이 지닌 시야를 최대 한으로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생존을 도모했다.

 반면 육식동물의 경우, 눈앞의 먹잇감이 하나든 백이든 내 발톱으로 움켜쥐기 전까지는 모조리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단순히 보이는 것보다, 대상과의 거리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거리를 잘못 인식한다면 사냥감을 향해 멋지게 뛰어올랐는데 발톱 한 번 못 써보고 땅바닥에 저 혼자 나뒹구는 낯뜨거운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창피함이나 민망함이 아니다. 이 한 번의 실수는 결정적이다. 이런 요란한 원맨쇼를 시야가 넓은 초식동물들이 못 볼 리 없을 테니 사냥꾼이 실수를 수습할 즈음이면 이미 재빠른 먹잇감들은 저 멀리 달아나 버린 후일 것이다. 그러면 그날의 사냥은 공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음에도 이런 실수가 반복된다면 사냥꾼은 결국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목표가 되는 사냥감의 위치를 정확하게 판별해야 할 뿐 아니라, 이 한 번의 도약으로 사냥감의 목덜미에 정확히 이빨을 박아 넣으리라는 확신을 눈에서 얻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넓은 시야 대신 좁지만 겹쳐지는 시야를 통해 대상과의 거리감과 입체감을 획득한다.

 실제로 야생에서는 한쪽 눈을 다친 맹수들이 사냥에 번번이 실패하고 결국 목숨마저 잃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는 한쪽 눈만으로는 사냥감과의 거리 가늠이 어렵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런 이유에서 무협지에 등장하는 ‘외눈 고수’들의 신화는 상당히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한쪽 눈이 없다면 원근감이 판별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공격과 방어가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일 테니까. 물론 피나는 훈련의 결과로 눈에서 오는 정보의 괴리를 극복하는 ‘마음의 눈’을 얻었다고 가정한다면 할 말 없지만. 어쨌든 사람의 눈은 호랑이처럼 정면 을 향해 있고, 입체감과 원근감을 판별하는 데 뛰어나다. 이러한 눈은 원시시대 우리네 조상들이 채집뿐 아니라 수렵을 통해서도 생을 이어간 사냥꾼이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준다.

평면에서 입체를 만들어내다

 입체시에 익숙하고, 입체적이어야 진짜 같다고 받아들이는 인간의 눈의 특성은 입체경의 개발에서 시작해 3D 영상의 구현으로 이어진다. 인간의 눈은 입체감을 느끼는 데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약간의 조작만으로도 평면을 입체로 인식할 수 있 다.
 
 평면을 입체로 인식시키는 기본 원리는 하나의 대상에 대한 이미지를 특수 안경을 이용해 양쪽 눈이 서로 조금씩 다르게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나머지는 입체시를 인식하는 능력이 뛰어난 뇌에 맡기면 된다. 심지어 사람의 눈은 양쪽 눈이 느끼는 색감의 차이만 있어도 여기서부터 입체감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다.

 어릴 적 어린이용 잡지를 사면 부록으로 심심찮게 들어 있던 빨간색과 파란색 셀로판지가 들어간 종이 안경과 일부러 어긋하게 이중으로 인쇄된 그림들을 떠올려보라. 이 안경을 쓰고 그림을 보면 각각의 셀로판지들이 필터로 작용하면서 색을 걸러내어 이중으로 인쇄된 그림이 하나로 중첩되면서 입체감이 만들어진다. 이 방법은 매우 간단하게 만들 수 있고 값도 저렴 하지만, 색깔 있는 필터를 이용하므로 물체의 색이 왜곡되어 ‘입체감은 느껴지지만 진짜 같지는 않은’ 감각을 선사한다. 따라서 현재의 3D 안경은 한쪽 방향의 빛만 통과시키는 편광필터나 인간의 눈이 인식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양쪽 시야를 번갈아 차단하는 셔터글라스 기법을 이용해 색의 왜곡 없이 평면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개발되고 있다.

잠자리.JPG

 시야의 확장 측면에서건 입체시 획득의 측면에서건 눈이 하나일 때보다 두 개일 때 더 잘 볼 수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하나보다 둘이 더 좋다면 둘보다 셋 혹은 넷이 더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자연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생물체들은 두 개의 눈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곤충은 조금 다르다.
 
 대부분의 곤충은 여러 개의 작은 낱눈이 모인 겹눈 두 개와 세 개의 홑눈을 가진다. 하지만 홑눈은 빛의 명암만을 구별할 수 있어 세상을 '인식'한다는 측면에서 진정한 시각을 가진 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곤충에게 있어서도 색채, 운동하는 물체에 대한 정보, 입체적 감각 등을 담당하는 것은 홑 눈이 아니라 겹눈이다. 사실 곤충의 눈이 굳이 겹눈을 이룰 필요는 없다. 곤충의 겹눈을 이루는 낱눈은 비록 크기는 작아도 저마다 키틴질로 이루어진 볼록렌즈 모양의 각막, 유리체, 시세포로 이루어진 소망막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조그만 눈이다. 이런 조그만 눈들이 모여서 커다란 눈을 이루게 된다. 하나의 겹눈을 이루는 낱눈의 개수는 종류에 따라 달라서 주로 땅 속에서 살고 냄새로 의사소통을 하는 개미의 경우 아홉 개 정도 이지만 나비는 1,500개, 꿀벌은 5,000개로 이루어지며, 곤충 계의 사냥꾼인 잠자리의 경우 무려 2만 8,000개의 낱눈이 모여 하나의 겹눈을 이룬다. 하지만 결국 이들이 형성하는 겹눈의 개수는 두 개다.

 사실 시각적 정보가 우리에게 주는 커다란 가치로 볼 때 눈이 더 많이 존재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만약 눈이 뒤통수에 하나 더 있다면 수평 시야의 사각지대는 사라질 것이고, 머리 꼭대기에 하나 더 추가된다면 시야의 범위는 수직으로도 확장될 것이니 전후좌우상하를 한꺼번에 모두 살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눈의 개수가 늘어나면 각각의 눈이 수집한 정보들을 통합하여 의미 있는 시각적 이미지를 파악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정보처리 능력이 뇌에 요구될 것이다. 지금도 뇌의 상당 부분이 시각피질로 활용되는데 셋, 혹은 네 개의 시야 에서 들어오는 이미지를 통합하려면 뇌가 지금보다 더 커지고 복잡해져야 할 것이다.

 또한 하나의 시야만을 허용하는 뇌의 특성상 추가되는 시야를 처리하는 뇌의 영역이 필요하고 서로 다른 시야의 이미지들을 연합해 처리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뇌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할 뿐 아니라, 뇌 자체의 용적도 더 커지고 복잡해져야 한다. 하지만 뇌는 에너지 측면에서만 본다면 꽤 비싸고 유지가 어려운 존재다.

 평균적으로 체중의 2퍼센트에 불과한 뇌가 우리 몸 전체에서 사용되는 포도당의 1/4을 먹어치울 정도니 가성비가 보통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망막의 에너지 소모량은 뇌의 그것을 능가할 정도다. 뇌와 연합해 자라는 눈이 겨우 두 개뿐 인데도 이런데, 눈의 개수가 더 늘어나 처리해야 하는 정보가 더 늘어난다면 추가된 시야의 유리함보다는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커져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어쩌면 눈에 있어 '2' 란 숫자는 다양한 현실적 요소들을 고려한 최적의 타협수가 아니었을까?
 
 만약 눈이 지금처럼 얼굴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대로 위치를 바꿀 수 있다면 어디에 있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까. 나는 손가락 끝이 가장 효율적이지 않을까 싶다. 손에 눈이 있다면 뒤쪽과 위아래는 물론이고 좁은 틈새 사이로도 얼마든지 손가락을 밀어 넣어 볼 수 있으니 진정한 시야의 사각지대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물론 손가락 끝은 쉽게 다칠 수 있으니 단단한 투명 눈꺼풀의 존재는 필수일 테지만. 그렇게 볼 때 가장 효율적인 눈을 지닌 존재는 영화 <판의 미로>에 등장하는 아이를 잡아먹는 괴물일지도 모른다.
 
보는 것은 눈이 아니라 뇌다

 사람은 오감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지만, 이 다섯 가지 감각이 우리의 인식에 기여하는 정도는 공평하지 않다. 사람의 감각 중 가장 많은 역할을 하는 것은 시각으로, 사람이 습득하는 정보의 80퍼센트는 오로지 시각에 의존한 정보들이다. 대부분의 정보를 시각을 통해 받아들인다는 심각한 시각 의존성은 자연스럽게 시각에 대한 높은 신뢰도로 이어진다. 그래서 치정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눈에 불을 켜고’ 불륜의 증거들을 찾으며 의심이 드는 행동들은 ‘눈을 씻고’ 다시 본다. 그리고 남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기 전까지는 ‘눈을 질끈 감고’ 믿지 않는다. 하지만 수많은 청각 정보(타인의 말)에 흔들리는 와중에도 여전히 남아 있던 한 조각의 믿음은 실제 불륜 광경을 목격하는 순간, 일시에 사라진다. 이제 남은 것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분노해서 ‘내 눈에 눈물 나게 하면 네 눈에는 피눈물이 나게 만든다’는 마음으로 복수의 칼날을 가는 것 뿐. 이 과정을 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역시나 ‘백 번 듣는 것은 한 번 보는 것만 못하구나’ 라고 말이다. 그런데 과연 눈으로 보는 정보들은 다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정말 ‘눈에 보이는 대로’만 존재하는 것 일까?

시각의 인지 경로

 우리는 어떤 경로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일까? 우리는 눈으로 세상을 본다. 우리의 신체는 눈만이 유일하게 빛, 그것도 가시 광선을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진화해왔다. 그래서 눈이 손상되거나 혹은 기타 다른 이유로 기능을 잃게 되면 우리는 그 즉시 빛을 잃고 어둠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눈 자체가 세상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눈의 동공을 통해 안구 안쪽으로 파고든 빛은 망막의 시각 세포들에 의해 전기적 신호로 변환되어 시신경을 통해 눈의 반대편, 즉 뒤통수 쪽에 위치한 뇌의 시각피질로 들어가야만 우리가 비로소 세상을 ‘본다’(고 느낀다).

 여기서 흥미로운 구조는 눈에서 시각피질로 정보가 전달되는 통로, 즉 시신경의 분포 형태다. 눈은 두 개이므로 여기서 나오는 시신경의 다발도 당연히 둘이다. 그런데 이 두 개의 시신경다발은 눈에서 나온 그대로 뇌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하나로 합쳐진다. 하지만 합쳐졌다고 해서 그대로 뇌로 가는 것이 아니다. 합쳐졌던 신경다발은 다시 갈라진다. 즉, 시신경은 하나로 합쳐지는 교차지점을 지나면 다시 두 개의 신경 다발로 분리되어 각각 시각피질의 좌우로 따로 들어간다. 즉 눈에서 시각피질로 가는 길은 11자가 아니라, X자 형대를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어차피 다시 분리될 거라면 애초에 왜 합쳐지는 것일까?

 물론 눈이 있다고 해서 모두 시신경 교차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시각신경의 X자 트위스트는 개구리를 비롯해 파충류와 조류, 포유류와 사람 등 척추동물들의 뇌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개구리와 사람의 시신경 교차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개구리의 경우 시신경은 ‘단지 스칠 뿐’이다. 왼쪽 눈에서 들어온 정보는 몽땅 오른쪽 시각피질로, 오른쪽 눈에서 들어온 정보는 몽땅 왼쪽 시각피질로 들어갈 뿐이기에 시신경의 교차가 그다지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다만 눈과 시각피질을 잇는 시신경의 길이가 더 길어질 뿐이다. 이는 매우 비효율적인 구조로 보인다. 직선으로 가면 더 빠른 길을 왜 굳이 돌아가는 것일까?

시신경 교차.JPG

 여기서 생물의 신비가 모습을 드러낸다. 개구리에게서는 쓸모 없는 시신경의 교차가 사람의 뇌에서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사람의 눈은 그림에서 보듯 각각의 눈에 존재하는 망막의 절반, 즉 두 눈의 망막 왼쪽 편에서 들어온 시신경은 시신경 교차 부위를 지나면서 모두 시각피질의 왼편으로 들어가고, 눈 의 오른편 망막에서 들어온 시신경은 오른편으로 들어간다. 사람의 경우 시신경 교차 부위에서 절반의 시신경들이 자리바꿈을 하는 것이다. 이런 시신경의 스쳐지나감과 자리바꿈은 개구리와 사람에게 서로 다른 시각의 차이로 나타난다. 

 개구리는 두 눈에서 들어온 정보를 따로따로 받아들이기에 입체시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 반면, 사람은 시신경이 자리바꿈을 하면서 통합되기에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양안시가 나타나게 된다. 애초부터 시신경이 효율적인 전달만을 위해 일직선으로 발생되었다면 우리는 세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다. 언제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먼 옛날, 시신경이 따로 떨어진 평행선이 아니라 약간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며 꼬였던 덕에 우리는 세상을 더욱 깊이 있게 보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무주의 맹시.JPG
보인다고 다 보이는 것이 아니다

 경기가 한창이던 농구장. 휘슬이 울리기 직전, 버저 비터를 향한 기대감이 한껏 달아오른 코트 위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선수들의 움직임을 매의 눈으로 감시하던 심판이 갑자기 코트 위에 피를 뿌리며 쓰러진 것이다. 선수들과 관중들이 뜻 밖의 사건에 우왕좌왕하던 사이, 심판은 숨을 거두고 만다. 그의 목덜미는 예리한 칼로 베어져 있었고 흉기도 발견되지 않았기에 정황상 그는 분명히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것도 바로 이 코트 위에서, 방금 전에.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누가 그를 죽였는지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선수와 관중을 비롯해 농구장 안에는 200여 명이 지닌 400여 개의 눈동자가 존재했지만,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아무도 살인자를 본 사람이 없었다. 어떻게?

 다행히도 이 영화 같은 장면은 현실이 아니라 미국 드라마 <퍼셉션>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이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의 기원은 현실이다. 1999년 드라마와 동명의 잡지인(드라마가 더 뒤에 나왔다) <퍼셉션(Perception)>에 <우리 가운데 있는 고릴라>라는 제목으로 실린 논문이 그 기원이다. 이 이야기는 동명의 제목 <보이지 않는 고릴라>(크리스토퍼 차브리스 & 대니얼 사이먼스, 김영사, 2011) 라는 책으로도 나왔다.

 1990년대 말, 당시 하버드대 심리학과 소속의 대니얼 사이먼스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그들은 먼저 흰 셔츠와 검은 셔츠를 입은 학생들 여러 명을 두 팀으로 나누어 같은 편끼리만 이리저리 농구공을 패스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은 뒤, 이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이렇게 주문했다. ‘검은 셔츠를 입은 팀은 무시하고 흰 셔츠를 입은 팀의 패스 횟수만 세어주세요’ 라고. 영상은 1분 남짓에 불과했으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흰 셔츠 팀의 패스 횟수를 맞추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들 중 절반은 왜 이런 간단한 실험을 하는지 목적을 파악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유는 이랬다.
 
 실험 참가자들이 패스 횟수를 세달라는 부탁을 받고 감상한 동영상 중간에 고릴라 의상을 입은 한 여학생이 걸어 나와 가슴을 치고 퇴장하는 장면이 무려 9초에 걸쳐 등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동영상을 본 사람 중 절반은 자신이 고릴라를 보았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나머지 절반은 고릴라를 알아보고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고릴라를 인지하지 못한 이들 중에는 고릴라 등장 사실을 알려 주고 영상을 다시 한 번 보여주자, 분명 이전 동영상에는 고릴라가 등장하지 않았다며 피험자들이 자신을 놀리려고 다른 동영상을 보여준다고 의심할 정도였다. 도대체 왜 이들은 그토록 눈에 띄는 고릴라를 인식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 결과를 두고 사이먼스와 차브리스는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 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시각 기능이 손상되면 당연히 볼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뻔히 눈을 뜨고 못 보기도 한다. 무주의 맹시란, 이처럼 시각적 손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장면이나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두 눈을 멀쩡히 뜨고 있는데 보지 못한다고? 정말로 황당한 소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늘 이런 경험을 한다. 실연한 뒤에는 유난히 행복한 커플의 모습이 눈에 자주 띄어 속을 뒤집어 놓고,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가 늙으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이 짠했던 날에는 유독 나이든 어른들이 눈에 들어 온다. 내 마음이 요동칠 때 어찌나 타이밍도 잘 맞춰 나타나는지. 당연하게도 세상이 내 맘에 맞게 움직여 줄 리는 없다. 고릴라는 어디에나, 언제나 존재한다. 다만 내가 이를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즉, 그들은 새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늘 존재했다. 하지만 주의 깊게 보지 않아서 늘 지나쳤던 것뿐이고 오늘에서야 비로소 뇌가 인지했다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눈에서 뻗어 나와 한 번 교차되면서 자리바꿈을 한 시신경은 시각피질로 들어간다. 이곳은 단일한 부위가 아니라 현재 밝혀진 것만 약 30개의 영역으로 구성된 복합적인 영역이다. 시각 정보를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물체의 기본적인 이미지인 선과 경계, 모서리를 구분하는 역할을 하는 V1, V2 영역을 비롯해 형태를 구성하는 V3, 색을 담당하는 V4, 운동을 감지하는 V5, 이 밖에도 다른 영역들이 조합되어 종합적으로 사물을 인지한다.

 이들은 각각 따로따로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니라, 여러 개의 악기가 모여 각자가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음을 연주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음악을 전해줄 수 있는 오케스트라처럼 모든 영역들이 각자의 역할에 맞게 일시에 조율되어 세상을 바라본다. 아무리 같은 피아니스트가 같은 곡을 동일하게 연주해도 피아노 건반이 몇 개 사라지거나 음이 제대로 조율되지 않으면 결과물이 달라지는 것처럼, 우리의 눈이 같은 것을 보더라도 시각 영역의 각 부분들이 제대로 조율되지 않으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시각 영역의 V4 부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색맹이 아니었던 사람도 세상을 흑백으로 볼 수밖에 없게 된다. 뇌졸증이 V4 영역에 발생해 이 부위의 신경이 손상되었다면, 이 사람은 후천성 색각이상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연속적인 움직임을 보는 V5 부위가 손상되면 질주하는 자동차를 보아도 느리게 움직이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처럼 뚝뚝 끊겨지는 정지화면으로만 보이게 된다.

 하지만 상당히 많은 뇌의 영역들이 오로지 시각이라는 감각 하나에 할당되어 있음에도 세상은 워낙 변화무쌍한지라 뇌는 눈에서 오는 모든 정보들을 빠짐없이 처리하기 어렵다. 그래서 뇌가 선택한 전략은 선택과 집중, 적당한 무시와 엄청난 융통성이다. 우리는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것은 눈에 뻔히 보여도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칠 수 있으며, 쥐꼬리만 봐도 벽 뒤에 숨은 쥐의 전체 모습을 그릴 수 있고, 빨간색과 파란색이 주는 색의 스펙트럼에서 그 색이 주는 이미지와 의미도 읽어낼 수 있다. 우리 눈은 정말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나머지는 눈을 질끈 감고 무시하는 것이다.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정보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제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서 편식하는 것은 뇌의 보편적인 특성으로, 다른 감각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엄마의 잔 소리를 코앞에서 흘려듣는 십대 아이의 귀에 달린 엄청난 필터링 능력은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눈앞에서 딴 전을 피우는 애들의 귀에, 아니 뇌에 소리를 흘려 넣고 싶다면 일단은 그들의 귀에 달콤한 말로 먼저 시작하는 것이 그나마 효과적이다. 눈앞에 뻔히 보이는 고릴라를 보지 못했던 사람은 ‘눈이 삐거나’ 얼빠진 사람이 아니라, 하기 싫은 숙제를 슬쩍 미뤄버리는 아이처럼 중요하지 않은 시각적 정보는 은근슬쩍 뭉개버리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뇌의 활동 결과이다.

 저명한 안과 의사이자 과학 작가였던 올리버 색스의 경험담에 따르면, 우리의 눈은 융통성이 정말 좋다고 한다. 색스는 안구에 생긴 종양을 치료받는 과정에서 망막의 일부가 손상되어 시야에 커다란 검은 맹점을 가지게 된다. 그가 시선을 돌릴 때마다 검은 얼룩은 그의 시야를 따라다니며 시계(視界)를 훼방놓지만 그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나 무늬 없는 벽을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으면, 시야의 커다란 검은 얼룩은 마치 ‘강물이 가장자리에서부터 서서히 얼음이 어는 것’처럼 검은 얼룩의 가장자리가 서서히 주변의 색으로 물드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색스의 뇌는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모두 강물이니 시신경이 파괴되어 맹점이 생긴 부위가 보고 있어야 마땅한 광경 역시 강물이라고 생각해 맹점에 강물 이미지를 채워 넣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파란 하늘을 응시하면 눈앞의 검은 얼룩이 서서히 푸른 하늘의 색에 먹혀서 줄어들고,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는 벽지를 응시하고 있으면 맹점이 패턴으로 채워진다. 색스는 여러 번 이를 테스트한 뒤 주변이 무늬가 없고 색이 일정할수록 맹점이 채워지는 속도가 빠르고, 무늬가 있거나 복잡할수록 느려진다고 말한다. 우리의 뇌는 이 시야에 맹점이 생기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가장 그럴 듯한 광경, 주변과 동일한 색 혹은 패턴으로 맹점을 채워버리는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세상을 보다, 세상을 이해하다

 한글을 배운 어린아이라면 누구나 한글로 쓰여진 전문학술서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아이가 진정으로 책을 읽었다고는 할 수 없다. 아이가 읽은 것은 종이에 쓰여진 낱글자였을 뿐 그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읽어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글을 읽을 때 중요한 건 글자를 읽어내는 능력이 아니라 문장의 뜻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글자를 깨우쳤다고 해도 독해력이 부족하다면 실질적으로는 문맹이나 다를 바 없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의미의 ‘시각’은 단순히 망막에 비치는 형상이 아니라, 그 형상을 읽어내고 판단하고 인식하는 행위까지 모두 포함해야 한다. 그리고 이 해석은 뇌에서 상당히 많은 역량을 요구한다. 사람의 대뇌피질에서 시각 중추가 차지하는 영역이 가장 큰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눈이 아니라 뇌가 본다는 것은 1950년대, 영국의 신경인지 심리학자였던 리처드 랭턴 그레고리[Richard Langton Gregory, 1923~2010) 박사의 'S.B에 대한 사례 연구’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레고리 박사의 보고서에서 S.B라는 이니셜로 등장하는 사람은 20세기 초에 선천성 시각 장애인으로 태어난 뒤 1958년 처음으로 각막이식 수술을 받아 빛을 되찾은 인물이다.
 
 수술 자체는 성공적이었다. 이식받은 각막은 별다른 이상 없이 S.B의 눈에 생착했고, 투명해진 각막은 빛을 받아들여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망막에 상을 맺히게 하는 데 성공했다. 하 지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각막 이식만 받으면 세상을 모두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S.B는 눈을 뜨고도 눈앞의 의사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물론 의사의 얼굴을 처음 보았으니 그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는 건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의사가 말을 걸기 전까지 누군가 자신의 눈앞에 서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그의 눈은 정상적으로 기능했지만 문제는 뇌였다. 반세기 동안 시각을 전혀 이용하지 않은 채 살아왔던 S.B의 뇌에서는 시각 중추가 거의 발달하지 못했기에 눈을 통해 들어오는 이미지들을 그의 뇌가 해석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후 재활 훈련을 통해 ‘보인다’는 감각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점차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늘어났으나 이후로도 그의 시각적 이해도는 매우 떨어졌다고 한다. 이런 결과로 미루어보건대, 심봉사가 부처님의 은덕으로 두 눈이 번쩍 뜨였더라도 뇌의 시각피질과 연동이 되지 않아, 자기 앞에 서 있는 아리따운 여인이 청이라는 것을 알아보기는커녕 딸이 눈앞에 서 있는지도 몰라 청이의 속을 두 번 뒤집어 놨을 듯하다. 뇌와 함께 자라나는 눈. 우리가 보는 것은 곧 우리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인 셈이다.

 쿠션 광고.JPG
법의학자의 눈: 보는 것과 읽는 것

 “이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보이는 것과 읽어내는 것의 차이점을 찾기 위해 법의학자 박의우 교수님의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였다. 교수님은 불쑥 사진 한 장을 내밀며 이렇게 물어왔다. 영문도 모른 채 눈앞의 사진을 보았다. 젊은 여성이 넓은 거실 바닥에 누워 있는 모습이 보였다. 좀 더 자세히 보자 또 다른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마치 갓난아이처럼 팔다리를 구부리고 잔뜩 웅크린 채 등을 대고 누워 있었고, 머리 근처엔 검붉은 얼룩이 넓게 퍼져 있었다. 한눈에도 이건 범죄 현장 사진이고, 여성은 안타까운 희생자임이 분명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진을 보여주면 이 여성이 머리를 맞아서 살해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확신할 수 없습니다. 머리를 누군가가 때렸는지, 사고로 다친 것인지는 사진만으로는 알 수 없고, 저 얼룩이 피인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피일 수도 있지만 그저 우연히 그 자리에 떨어진 색이 짙은 다른 액체일수도 있지요. 또한 머리를 다쳐서 피를 흘린 것일 수도 있지만, 머리에 상처가 없어도 사망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코와 입으로 피처럼 보이는 혈성 분비물이 흘러나오기도 하니 이 역시도 직접 확인해보기 전엔 단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습니다. 사진의 여성은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게 아니며 사망 이후 상당시간 매우 좁은 곳에 방치되어 있다가 이곳으로 옮겨진 것만은 확실합니다.

 사람이 사망하면 직후에는 전신이 이완되어 축 늘어지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사후 경직이 일어나 그 모습 그대로 굳게 된다. 따라서 이 피해자처럼 팔다리를 웅크린 자세로 누워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죽음 이후 사후 경직이 일어나는 동안 팔다리를 구부릴 수밖에 없는 좁은 곳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발견된 장소는 넓은 거실이니 그녀는 여기서 사망한 것이 아니라, 사망 이후 옮겨진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눈에 띄는 것, 혹은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고 자신이 본 것을 진실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많은 것 중에 어떤 것이 정말로 중요한 것이며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경험과 지식이 모두 필요하지요."

 보는 것은 연습이 필요 없지만 읽어내는 것은 분명 연습이 필요하다. 전문가의 눈이란 같은 것을 보아도 숨겨진 이면을 읽어낼 수 있는 눈인 것이다.

 “법의학자의 눈은 쉽게 말해서 인간관계에서 호감을 주는 눈빛과 정반대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법의학자에게 익숙한 죽음은 때가 아닌 죽음입니다. 그러니 법 의학자는 모든 일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되고, 그것이 습관이 됩니다. 보이는 대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숨겨진 것을 보는 것, 뻔해 보이는 것도 의심의 눈초리로 다시 보는 것, 쉽게 보이지 않기에 꿰뚫어보는 눈이 필요하지요. 대강의 감상이 아니라 세밀한 관찰이어야 하고, 현재를 통해 과거를 유추해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야 하고, 꼭 밝혀내고야 말겠다는 강렬한 의지와 관심을 가지고 세심하게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눈을 밝혀주는 길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일평생 본적 없는 것들, 차마 볼 수 없던 것들을 오랫동안 살펴본 법의학자의 눈을 마주보고 온 날, 어쩐지 눈이 트인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세상이 어두운 것은 빛이 부족하거나 눈이 나빠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제대로 볼 수 있는 지식이 부족했고 똑바로 보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타인을 통해 나를 보다
 
 갓 태어난 아기의 얼굴을 바라보던 엄마는 뜬금없이 아기에게 혀를 내밀어 보았다. 아기는 엄마를 보는 건지 안 보는 건지 표정에 별다른 변화가 없다. 한 번, 두 번, 세 번. 같은 행동을 되풀이했지만 여전히 아기의 표정은 물음표다. 갑자기 피식, 헛웃음이 나온다. 아직 배냇저고리도 벗지 못한 신생아에게 대체 뭘 기대한 거지? 그때였다. 아기의 그 조그만 입술이 벌어지고 그 사이로 귀여운 혓바닥이 빼꼼 드러난 것은. 이런, 지금 아기가 날 따라한 건가. 아니, 우연일지도 몰라, 한 번 더 해보자. 놀라움의 표정을 감추고 다시 아기를 바라보며 혀를 내밀자, 아기는 이제 기다렸다는 듯이 단숨에 혀를 내밀어 화답한다. 두 번, 세 번, 네 번. 한 번은 우연일 수 있지만, 반복되는 우연은 의도적이다. 분명 지금 아기는 엄마의 행동을 보고 모방하는 중이었다.

 활자로 읽을 때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들도 막상 눈앞에서 벌어지면 매우 단순한 것도 신기하게 느껴지곤 하는데, 신생아의 ‘메롱’ 역시도 그러했다. 사실 아직 시선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날 쳐다보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갓 태어난 신생아에게 혀를 내밀면서도 아이가 정말로 따라할 것이라고는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아기는 정확히 ‘교과서대로’ 행동했다. 물론 아기와 함께한 첫 메롱 놀이가 성공했을 때 내가 느꼈던 놀라움과 기쁨의 감정은 가설을 실제로 확인했을 때 과학자들이 느끼는 지적 흥분과 다르지 않았다. 

 사실 혀를 내미는 것은 매우 단순한 행동이다. 그저 입 속에 있는 무언가를 밖으로 꺼내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그것이 입술에 묻은 뭔가를 핥아 먹는 목적이 아니라,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타인의 얼굴을 보고 모방하는 경우에는 그리 단순한 과정이 아니게 된다. 이는 신생아의 뇌가 타인(엄마)의 얼굴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혀)을 인식하고, 그 인식된 물체와 동일한 기관이 역시 자신에게도 있음을 인지한 뒤 운동신경과 근육을 의도적으로 미세하게 조절해 혀를 내미는 행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들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모두 갖춰야만 가능한 것이다.

 사람의 육체는 조물주가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빚어낸 것이 아니라, 진화적 과정을 거쳐서 형성된 단백질 덩어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은 사람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혹은 달라야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리고 저마다 나름대로의 답을 제시했는데 이 모든 필사적 노력의 근간을 제시한 다윈 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사람만이 갖는 특성을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동정심’이라 주장했고, 에델만은 ‘우리가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할 수 있는’ 고차원적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물과 구별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최근 과학자들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비밀의 열쇠가 누군가를 따라하는 능력, 즉 모방 능력에 있다고 보고 있다.

 직접 경험해서 몸으로 체득해야만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 배울 수 있고, 나아가 누군가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들을 보고 상대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 마치 거울 이미지처럼 상대의 행동과 표정, 감정을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람은 어떻게 그토록 자유자재로 누군가를 모방할 수 있는 것일까?


거울뉴런.JPG

거울세포의 발견

 20여 년 전, 이탈리아 파르마 대학 연구팀은 돼지꼬리원숭이(Macaca nernestrina)의 뇌에 전극을 꽂아 F5 영역의 신경적 활성화를 확인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원숭이의 F5 영역은 사람으로 치면 신체 운동을 관장하는 전운동피질에 해당하는 부위다. 이들의 실험은 원숭이가 땅콩처럼 작은 먹잇감을 쥐려고 손을 내밀 때 손가락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조절하기 위해 어떤 신경을 활성화시키는지를 찾기 위함이었다. 실험을 하다 보면 의도치 않는 부수적인 결과들이 자주 관찰되곤 하는데 때로는 이 의도치 않는 결과가 더 중요한 의미를 알려주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파블로프의 조건 반사 실험이다. 원래 파블로프는 심리학자가 아니라 소화 과정에 대해 연구하던 생물학자였다. 유명한 ‘종소리를 들으면 침을 흘리는 개’로 대표되는 실험 모델 역시 애초에 소화 과정에 있어서 먹이에 따라 침이 얼마나 분비되는지를 측정하기 위해 고안한 실험 과정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파블로프의 이름과 짝을 지어 기억하는 것은 먹이의 종류에 따라 침의 분비량이 얼마나 늘어나는가가 아니라, 조건자극과 무조건 반사를 연결시켜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반사의 성립과 중요성에 대한 것이다.

 1990년대 초반, 이들 연구자들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여느 때처럼 원숭이들의 신경 반응을 살피던 연구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한 원숭이의 F5 영역에 꽂힌 전극이 반응하고 있었다. 이 신호에 따르면 원숭이는 지금 손을 움직이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 원숭이는 우리 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원숭이 뇌의 F5 영역은 운동 피질이기 때문에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신호가 발생하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장치가 고장난 것일까? 이상하게 생각한 연구자들은 원숭이를 관찰하다가 원숭이의 시선에서 해답을 찾았다.

 원숭이는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었지만, 두 눈동자는 건너편 우리에서 땅콩 그릇을 향해 허우적대는 다른 원숭이의 손동작에 고정되어 있었다. 실제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움직이는 것을 보고만 있는데도 운동 피질의 신경이 활성화된다니, 시각적 정보와 운동 피질이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시각과 운동 사이의 비밀스러운 연결의 열쇠는 나와 다른 개체의 행동을 ‘보고’ 이를 모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거울 신경 세포’가 쥐고 있었다.

 이후 원숭이를 이용한 몇 번의 실험 끝에, 연구자들은 원숭이의 뇌 속에는 타자의 행동을 보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끼는 신경세포가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이런 신경세포에 ‘거울 신경세포(mirror neuron)'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거울을 보고 얼굴을 찌푸리면 거울 속의 내 모습 역시도 똑같이 찌푸린 얼굴로 응수하는 것처럼, 타자의 행동이나 감정을 보는 것을 통해 이를 내가 겪는 일처럼 공감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신경세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앞서 언급했던 ‘손가락을 움직이는 신경’의 경우에는 스스로 손을 움직여 땅콩을 집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원숭이가 땅콩을 집는 것을 보거나 심지어 같은 원숭이가 아닌 연구자인 사람이 땅콩을 움직이는 것만 보아도 활성화되었다. 신경 활성화의 정도만을 놓고 보면 직접 움직이는 것과 타자가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이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즉, 거울 신경 세포에게 있어서 ‘보는 것’은 곧 ‘움직이는 것’이었다.

 또한 간접적으로 관찰한 바에 따르면, 사람의 뇌에서도 비슷한 기능을 하는 부위가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람들의 거울 신경세포는 시각을 담당하는 후두부와 함께 두정엽, 전두엽, 번연계 등에서 발견된다.
 원숭이의 거울 신경세포는 뇌에서 신체 운동을 관장하는 부위에서 주로 관찰되는데, 사람의 거울 신경세포는 운동 영역뿐 아니라 뇌의 많은 부분에 퍼져 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원숭이들의 거울 신경세포가 타자의 움직임을 복제하는 데 익숙하다면, 사람의 거울 신경세포는 행동뿐 아니라 상대의 표정에서 감정을 읽어내고 공감하며, 추상적인 개념들까지도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추측할 수 있다. 결국 가장 많이 공감하고 가장 많이 모방할 수 있는 특성이 바로 인간다움을 만드는 주요한 특징일 수 있다. 이에 과학자 장대익 교수는 “인 간의 모방 능력은 인간이라는 종을 ‘호모 레플리쿠스(모방하는 사람)’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특징적”이라고 말했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거울 속의 내 모습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듯 눈으로 본 타자의 행동과 경험을 내일처럼 느낄 수 있는 능력에 있다는 것이다.
 
보는 것은 하는 것이다

 타인의 경험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탁월한 모방 능력은 우리가 세상 모든 것을 직접 몸으로 경험하지 않아도 간접 경험을 통해 학습이 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또한 타인의 경험을 내 것처럼 느끼는 탁월한 마음 속 거울을 통해 사회적 룰을 만들어 극단적인 상황을 피할 수 있고, 때로는 대리만족이라는 위안을 얻기도 한다. 이는 우리가 ‘먹방쇼’에 등장하는 화려하고 맛깔나 보이는 음식들과 이들을 정말 맛있게 먹는 내가 아닌 누군가의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때의 감정은 ‘그림의 떡’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안타까움 이나 비참함, 나만 소외되어 있다는 감정이 아닌 보기 좋고 맛 좋은 음식을 실제로 먹을 때 느끼는 생물학적 쾌락에 가깝다. 먹거나 맛볼 수 있는 건 고사하고 냄새 분자 하나조차 느낄 수 없지만, 거울 신경세포는 음식의 시각적 이미지만으로도 음식을 먹는 행위가 주는 원초적 기쁨을 그대로 복제할 수 있는 셈이다. 이는 많은 이들이 종족 번식이라는 유전자의 지상 과제에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 일임에도 포르노그라피에 집착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실제로 포르노그라피를 시청하는 사람들의 뇌 활성도와 신체적 변화를 관찰한 실험을 했는데, 포르노그라피는 섹스에 대한 생각을 유발시키는 기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섹스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즉 포르노그라피에 등장 하는 이성의 나체와 성적 행위들은 그저 전자적 이미지들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지만, 이를 보고 있는 이들의 뇌에서는 실제 섹스를 할 때와 거의 동일한 신경작용이 일어난다는 게 확인되었다. 뇌의 반응만 놓고 본다면 ‘보는 것이 곧 하는 것’인 셈이다.

 거울 신경세포의 구체적인 위치와 자세한 행동 양식은 아직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지만, 사람이 타인을 모방하고 감정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 다른 이견이 없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마음의 거울에 비추어 보며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서로의 행동을 모방하고 감정을 공유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거울에도 큰 거울과 작은 거울이 있고 가능한 현실에 가까운 또렷한 이미지를 비춰주는 거울, 이미지를 크거나 작게 혹은 휘어지도록 왜곡시키는 거울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뇌 속에 들어 있는 마음의 거울 역시 모두 다르다. 이는 사람들 사이에 그토록 자주 오해가 반복되고 갈등이 사라지지 않는 하나 의 원인이 된다. 개인차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마음의 거울이 더 예민하고 선명하다. 이는 ‘여자의 육감은 정확하다’ 라는 사회적 믿음을 만들어낸 주요 요인일 뿐 아니라,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로 대표되는 남녀 사이의 근본적 인 갈등의 씨앗을 파생시킨 뿌리가 아닐런지.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Autism Spectrum Disorder) 역시 거울 신경세포의 기능에 이상이 생겨 나타나는 증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즉 자폐 증상이란 거울 신경세포의 기능적 이상으로 인해 타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나타난 신경학적 증상이라는 것이며, 누구나 뇌 속에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마음의 거울이 깨진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자폐 증상을 이처럼 ‘깨진 거울 이론(broken mirror theory)'으로 바라본다면 자폐에 대한 대응법도 어딘가에서 어긋나버린 거울 신경세포들을 찾아내 바로잡는 방식, 즉 깨진 거울 조각들을 모두 모아 매끄럽게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현재까지는 사람의 거울 신경세포, 혹은 이들이 만들어내는 ‘거울 신경계’에 대해 밝혀진 것이 많지 않아 깨진 거울을 어떻게 다시 붙여야 하는지, 혹은 정말로 거울이 깨진 것이 맞는지 조차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자폐를 난치의 영역에서 한 발 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빛이 있으라’가 아니라 ‘눈이 있으라’라는 말로 서두를 시작 했다. 빛이 넘쳐나는 한가운데 서 있더라도 인지할 수 있는 눈이라는 감각기관이 없다면 내게 있어 빛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이다. 그렇게 물리적 에너지를 지닌 빛이라는 존재가 눈이라는 생물학적 감각 기관을 통해 내게 중요한 의미가 되었다면, 뇌 속 거울에 비춰보는 마음의 눈은 타인들의 존재를 내게 의미 있게 하는 사회적 감각기관일 것이다. 유독 사람에게 이런 능력이 발달했다는 것은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신체적 생존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마음의 거울을 의도적으로 덮지 않고 거기서 시선을 돌리지 않는 것은 사람으로 제대로 서기 위한 근본적인 노력이다. 가끔씩 세월과 탐욕이 마음의 거울에 덧씌운 묵은 때를 닦아내고 타인을 제대로 비춰보려고 마음먹어 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야 말로 오랜 세월 우리의 뇌가 시각신경세포와 거울 신경세포를 이어온 노고에 대해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예의 바른 답례가 될 것이다.
 
[06]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정상적인 뇌에 대해 알려주었다.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의 역사적 관점 - <마음의 미래 1장 심화>

 동남아시아에서 병사들은 무덤에 시체만 묻은 게 아니었다. 1942년 2월에 싱가포르를 점령한 일본군은 영국군이 대부분인 포로를 약 10만 명이나 붙잡았는데, 그들이 감당 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규모였다. 일본군은 많은 포로를 ‘죽음의 철도’라고도 부른 버마 철도 건설 현장에 투입해 수천 명을 죽게 했다. 이 계획을 달성하려면 산악 지역의 정글에서 나무를 베어내며 철도를 400km나 깔고, 콰이강 같은 강들 위로 다리를 건설해야 했다. 남은 포로(그중에는 의사도 많이 있었다.)중 대부분은 악명 높은 일본군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창이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영국군 군의관 버나드 레녹스(Bernard Lennox)와 휴 에드워드 드 와드너(Hugh Edward de Wardener)는 자신을 붙잡은 자들이 사실상 섬뜩한 실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건강한 사람들을 골라 한 가지 영양소를 박탈하고는 그들의 뇌가 쇠약해져가는 과정을 관찰했다.

포로수용소의 각기병  

포로수용소에 있던 의사들은 그 경력이 무엇이건 모두 외과의 겸 치과 의사 겸 정신과 의사 겸 검시관으로 일했고,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군대 전체에 창궐한 이질, 말라리아, 디프테리아에 감염되어 고생했다. 그들은 대나무 조각을 깎아 주사 바늘을 만들었고, 낙하산 줄을 풀어 봉합용 견사로 사용했으며, 사람의 위액을 짜내 산으로 썼다. 몬순의 장맛비가 그들의 ‘진료소(대개 막대기 위에 천을 씌워 만든 천막에 불과했지만)’를 뚫고 들어왔고, 일부 의사들은 할당량의 병사를 치료하지 못하면 구타를 당하거나 끓는 기름에 튀기겠다는 협박을 받았다. 경비병들은 환자들에게 회복하려는 ‘동기’를 부여하려고 배급량을 절반으로 줄여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들에게도 음식(대부분 쌀밥)은 충분히 지급된 적이 없었으며, 이것은 각기병의 원인이 되었다.

각기병.JPG

[각기병을 앓던 포로 수용소의 병사들]


 아시아에서 사람들이 쌀을 먹기 시작한 때부터 이곳 의사들은 각기병 환자를 보고해왔다. 각기병에 걸리면 심장 장애, 식욕부진, 눈 씰룩임, 살갗이 터질 정도로 다리가 부어오르는 것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환자들은 또한 발을 질질 끌고 비틀거리며 걸었는데, 현지인들은 그것을 보고 베리(beri), 곧 양을 떠올렸고, 그래서 각기병을 베리베리(beriberi)라 부르게 되었다. 17세기에 유럽인이 동남아시아를 식민지로 만들자, 유럽인 의사들도 각기병 발병 사례를 목격하기 시작했다. 초기의 한 보고서는 훗날 렘브란트(Rembrandt)가 그린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수업>이란 작품으로 영원히 남게 된 네덜란드의 니콜라스 튈프(Nicolaes Tulp)가 작성했다. 그런데 19세기 후반에 증기 방앗간이 아시아에 도입되면서 각기병 발생 건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방앗간에서는 쌀을 도정하면서 겉껍질을 벗겨 흰쌀(백미)로 만든다. 그 당시 사람들은 그 쌀을 도정미라고 불렀다. 값싼 도정미는 농부와 병사와 죄수의 주식이 되었다. 러일 전쟁 동안에만 일본군에서 발생한 각기병 환자는 20만 명이나 되었다.

 과학자들은 마침내 각기병의 원인이 어떤 영양소 결핍 때문에 일어나는 게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고, 특히 비타민 B1(일명 티아민) 결핍을 의심했다. 도정 과정에서 비타민 B1이 들어 있는 쌀의 씨눈이 대부분 떨어져나갔고, 많은 사람들은 채소나 콩, 고기를 통해 티아민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했다. 우리 몸은 탄수화물을 소화하여 얻는 최종 산물인 포도당에서 에너지를 뽑아낼 때 비타민 B1을 사용한다. 특히 뇌세포는 포도당에서 에너지를 얻는데, 다른 당류는 혈액-뇌 장벽을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뇌에서 말이집과 특정 신경전달물질을 만드는 데에도 티아민이 필요하다.

 최초의 각기병 환자는 창이 포로수용소가 문을 연 지 2주일이 지났을 때 술을 마시지 못하게 된 일부 알코올 중독자 가운데에서 발생했다. 한 달이 지나자 더 많은 환자가 발생했다. 의사들은 최선을 다해 환자들을 돌보았고, 때로는 연합군의 전황에 대해 거짓말을 하면서 그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나머지 모든 노력이 실패하자, 몇몇 의사는 환자들에게 살아남지 않으면 군사 재판에 회부하겠다고 명령했다.(이것은 자살을 불법으로 규정한 중세의 법을 연상시키는 협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2년 6월까지 창이 한 곳에서만 발생한 각기병 환자가 약 1000명이나 되었다. 이 유행병에 속수무책이었던 드 와드너와 레녹스는 이 병의 병리학을 연구하기 위해 비밀리에 부검을 하여 각기병 환자의 뇌에서 조직을 적출하기 시작했다.

일본 포로수용소.JPG

[싱가포르에 있던 일본군 포로수용소의 병원]


 이 조직과 부검 기록은 금지 품목으로 간주되었지만, 창이 안에서는 안전했다. 그런데 1943년에 레녹스와 드 와드너는 샴(l939년까지 태국을 일컫던 명칭)에 있던 죽음의 철도 근처의 수용소로 옮겨가게 되어 의료 기록과 조직을 나누어 보관하기로 했다. 레녹스는 몰수를 염려하여 뇌 조직을 수용소 밖으로 밀반출하려고 시도했지만, 열차 사고로 그것을 모두 잃고 말았다. 드 와드너는 무엇보다 중요한 10cm 두께의 문서 기록을 보관했다. 하지만 1945년 초에 전황이 일본 측에 불리하게 돌아가자, 드 와드너는 일본군 지휘관들이 전쟁 포로를 굶어 죽게 한 증거를 곱게 봐주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송 명령이 떨어지자(그리고 이송되는 동료들이 몸수색을 당하는 것을 보고서), 서둘러 결정을 내렸다. 야금 일을 하는 친구에게 자신의 문서를 4갤런짜리 휘발유통에 넣어 밀봉해달라고 했다. 그런 다음, 그 통을 망토에 싸서 죽은 병사를 감시병으로 삼아 새로 판 깊이 90cm의 무덤 속에 묻었다. 무덤이 하도 많았으므로 어느 무덤인지 기억하려고 드 와드너는 몇몇 동료와 함께 근처에 있던 큰 나무 몇 그루의 나침반 방위를 측정했다. 수용소를 떠나면서 드 와드너는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샴의 더위와 부패와 독기가 문서를 부식시키기 않기만을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만약 돌아온다면 말이다.

 그 기록이 소중했던 이유는 뇌와 비타민 Bl과 기억을 둘러싼 50년간의 논쟁을 종식시킬 답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1887년, 러시아 신경과학자 세르게이 코르사코프(Sergei Korsakoff)는 알코올 중독자 사이에서 나타나는 특이한 질병에 대해 기술했다. 그 증상으로는 수척, 비틀거림, 무릎 반사 결여, “진한 차만큼 붉은” 오줌 등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증상은 기억 상실이었다. 코르사코프의 환자들은 체스를 두고, 농담을 주고받고, 재치 있는 말을 하고, 추론을 제대로 할 수 있었지만, 전날의 일이나 심지어 한 시간 전의 일도 기억하지 못했다. 이들은 대화 중에 똑같은 일화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반복했다. 그리고 코르사코프가 잠깐 방을 떠났다가 돌아오면, 똑같은 일화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다시 반복했다, 물론 다른 뇌 질환도 기억 상실을 초래하지만, 코르사코프는 이 사례들에서 특별한 점을 발견했다. 답을 모르는 질문을 받았을 때, 기억상실증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른다고 인정한다. 그런데 코르사코프의 환자들은 절대로 그러지 않았다. 그 대신 거짓말을 했다.

코르사코프 증후군.JPG

 코르사코프 증후군(뇌 손상 때문에 강박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경향)은 오늘날 잘 알려진 질환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 질환은 교수대 유머(심각한 상황에서 빈정거리는 유머)처럼 상당히 재미있는 상황을 빚어낼 수 있다. 마리 퀴리(Marie Curie)가 왜 유명하냐고 묻자, 한 코르사코프 증후군 환자는 “헤어스타일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또 다른 사람은 샤를마뉴 대제가 가장 좋아한 음식이 “옥수수 포리지”이고, 아서 왕이 탔던 말이 “검은색”이라고 주장했다. 환자들은 특히 자신의 개인적 삶에 대해 거짓말을 자주 했다. 한 남자는 30년 전인 1979년 여름 첫날에 자신이 무엇을 입었는지 기억한다고 주장했다. 또 한 남자는 담당 의사에게 연속되는 문장으로 자신이 결혼한 지 넉 달이 되었고, 아내와 함께 네 자녀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재빨리 셈을 해보고는 자신의 성적 능력에 감탄하면서 “꽤 대단한데.”라고 말했다.

 가끔 뮌히하우젠 증후군[Muchhausen syndrome](병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자기도 그 이야기에 도취하는 증상. 1720년에 독일에서 태어난 뮌히하우젠이라는 사람에게서 유래했다. 뮌히하우젠은 하노버에서 군인, 사냥꾼, 스포츠맨으로 자기가 했던 일들을 거짓말로 꾸며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는데, 나중에 그 이야기들이 각색되어 <뮌히하우젠 남작의 모험>이라는 책으로 나왔다.) 환자처럼 터무니없는 허풍을 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코르사코프 증후군 환자는 그럴싸한 거짓말을 하며, 자신의 일상생활을 거짓말로 둘러 댄다. 그 사람이 살아온 이력을 모른다면,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이들은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내보이거나 유리한 위치에 서거나 무엇을 숨기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 다. 그리고 망상을 겪는 사람들과 달리 이들은 지적을 받아도 자신을 격렬하게 변호하지 않는다. 그냥 어깨만 으쓱하고 말 뿐이다. 하지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무리 많이 들통나더라도, 이들은 거짓말을 멈추지 않는다. 뚜렷한 이유나 은밀한 이유 없이 이렇게 거짓말을 하는 것을 작화 또는 작화증이라 부른다.

 코르사코프는 작화의 심리학에 초점을 맞춰 연구했지만, 다른 과학자들은 20세기 초에 그의 연구를 확장해 이러한 심리적 증상을 특정 뇌 손상과 연결 짓기 시작했다. 특히 그들은 환자의 뇌에서 죽은 신경세포 집단뿐만 아니라 미세한 출혈을 발견했다. 병리학자들은 또한 코르사코프 증후군이 베르니케 증후군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실, 베르니케 증후군은 흔히 코르사코프 증후군으로 변하기 때문에, 결국 이 둘을 합쳐 베르니케-코르사코프 증후군이라 부르게 되었다,

 베르니케-코르사코프 증후군의 원인을 밝혀내는 데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1930년대 후반에 일부 과학자는 비타민 B1 결핍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오늘 날에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지만, 알코올은 음식물에 함유된 티아민이 창자에서 흡수되는 걸 방해한다. 비타민 B1 결핍은 뇌에 변화를 가져오는데, 특히 신경아교세포에 변화가 생긴다. 신경아교세포가 하는 일 중에는 신경세포들 사이의 시냅스에서 여분의 신경전달물질을 빨아들이는 것도 있다. 티아민이 부족하면, 신경아교세포는 신경세포를 자극하는 여분의 글루탐산염을 빨아들이지 못한다. 글루탐 산염 과잉으로 신경세포들이 과도한 자극을 받고, 결국 기진맥진하여 흥분 독소 때문에 죽고 만다.

 각기병과 베르니케-코르사코프 증후군은 둘 다 원인이 같은 것 - 비타민 B1 결핍 - 으로 보였기 때문에, 그 증상도 비슷하고 뇌 안에서 비슷한 손상을 초래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1940년대에는 이 둘의 연결 관계를 밝힐 만한 구체적 증거를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한 가지 이유는 베르니케-코르사코프 증후군이 희귀하게 발생했고, 또 주로 알코올 중독자들 사이에서 발생한 데 있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각기병을 연구한 의사들이 뇌 손상이 아니라 신경과 심장 손상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혼란으로 나타났다. 이것들은 한 가지 질병일까, 아니면 두 가지 질병일까? 더 중요한 이유는 생리학과 심리학을 연관 지으려는 노력을 바라보는 우려의 눈길이 점점 강해진 데 있었다. 의사들은 솔직히 단순한 비타민 결핍(분자 차원의 문제)이 많은 단계를 뛰어넘어 작화 같은 복잡한 정신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의심했다.

 창이 포로수용소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1000명이 넘는 각기병 환자 중 수십 명은 작화를 포함해 베르니케-코르사코프 증후군 증상도 나타났다. 한 예로 드 와드너는 증상이 심한 환자에게 그저 정신 상태를 테스트하기 위해 “우리가 브라이턴에서 만난 걸 기억합니까? 나는 흰 말을 탔고, 당신은 검은 말을 탔지요. 같이 해변을 달렸는데,”라고 물었다. 이것은 헛소리였지만, 그 환자는 물론 기억한다고 대답하면서 세부 사항을 덧붙였다. 안타깝게도 이런 상상은 환자의 현실이 될 때가 많았고, 몇몇 사람은 그 상태로 죽어갔다. 그들의 마지막 ‘기억’은 망상과 지어낸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의학적으로 베르니케-코르사코프 증후군이 나타나기 전에 항상 각기병이 먼저 나타난다는 사실과 각기병 증상이 가장 심한 사람이 베르니케-코르사코프 증후군 증상도 가장 심하다는 사실은 두 질환의 원인이 같은 데 있음을 암시했다. 부검 결과가 그 연결 관계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숙달된 병리학자였던 레녹스는 현미경이 없이도 환자들의 뇌에서 특유의 출혈과 죽은 신경세포 부위를 볼 수 있었다. 각기병과 베르니케-코르사코프 증후군은 같은 질환의 두 가지 단계(만성과 급성)로 보였다.

 추가 증거도 있다. 순수한 티아민(일부 의사는 소량의 티아민을 따로 챙겨두었다.)으로 환자를 치료하자, 베르니케-코르사코프 증후군과 각기병 증상이 모두 개선되었는데, 때로는 몇 시간 만에 효과가 나타났다. 드 와드너는 몇 사람이 생기를 되찾아 갑자기 찾아온 허기를 달래려고 밥을 엄청나게 먹은 것을 기억했다.(작화 같은 정신적 증상이 사라지기까지는 몇 주일이 걸릴 수 있다.) 급성이 덜한 경우에 의사들은 음식에 마마이트[Marmite](조미료로 쓰이는 이스트)를 첨가하거나 쌀이나 감자를 발효시켜 비타민 B1이 풍부한 이스트(효모균)를 배양했다. 몇몇 의사는 사람들을 시켜 티아민이 풍부한 히비스커스 잎을 뜯어오게 했다. 영리한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히비스커스를 먹으면 집으로 돌아가 아내나 애인을 만났을 때 정력이 좋아질 거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병사들은 히비스커스 잎을 열심히 먹었다.

 티아민 섭취 부족이 베르니케-코르사코프 증후군을 일으키고, 음식에 티아민을 섞으면 증상이 없어진다는 사실을 통해 레녹스와 드 와드너는 단순한 영양소 결핍이 정말로 진실감처럼 심오한 정신 능력을 파괴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자신들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의학계에 입증해야 했다. 그러려면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아야 할 뿐만 아니라, 부검 결과 기록을 보존해야 했다. 전쟁 지역에서 그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드 와드너가 깨달은 것처럼, 그런 상황에서 문서를 안전하게 보존하는 방법은 땅 속 깊이 묻어두고서 나중까지 남아 있기를 기도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대일본 전승 기념일(일본이 항복 문서에 조인한 9월 2일)이 지난 후, 드 와드너는 방콕에 있는 본부로 가서 보고 하라는 수수께끼 같은 명령을 받았다. 숨겨둔 문서를 하루 빨리 찾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그는 그 여행이 즐거웠다고 기억한다. “나는 모든 일본인이 절을 하는 가운데 지프를 타고 승리자로서 의기양양하게 샴으로 건너갔는데 …… 무척 기분이 좋았습니다.” 놀랍게도 방콕 본부에는 자신이 숨겨둔 문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한 동료가 얼마 전에 창이로 돌아가 삽으로 무덤을 파내 가져온 것 같았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그것은 온전하게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망토는 썩었고, 통을 밀봉한 땜납도 다 부스러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 안에 든 문서는 멀쩡하게 남아 있었는데, 며칠만 늦었더라면 그것마저 훼손되었을 것이다. 레녹스와 드 와드너는 이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1947년에 발표했다.

그럴듯한 거짓말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신경과학자들은 기억의 작용 방식에 대한 통찰을 얻으려고 작화를 계속 연구했는데, 실제로 작화는 풍부한 광맥인 것으로 드러났다. 예를 들어, 작화는 각각의 기억이 컴퓨터 파일처럼 나름의 독특한 타임 스탬프[time stamp] (어떤 기준 시각부터 경과 시간을 수치로 알려주는 문자열)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타임 스탬프는 컴퓨터 파일처럼 오염될 수 있다. 대부분의 작화자는 그럴듯한 거짓말을 한다. 사실, 이들의 잘못된 ‘기억’ 중 많은 것은 어느 시점에 이들에게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작화자는 그 기억이 일어난 ‘시점’을 혼동할 때가 많다. 살아온 인생의 장면들이 엉망으로 뒤섞인 셈이다. 그래서 어젯밤에 송로를 곁들인 오리 요리를 먹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30년 전에 파리로 신혼여행을 떠났을 때 일어난 일이다. 그렇다면 작화는 어떤 의미에서 자신의 삶을 일관성 있게 이야기하는 능력이 고장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거의 모든 작화자의 이마엽에 손상이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마엽은 여러 단계의 과정을 통합 조정하는 일을 돕는데, 기억이 아무 노력 없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여도, 구체적으로 어떤 일(예컨대 지금까지 받은 것 중 최악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억하는 것은 아주 복잡하다. 뇌는 아주 짧은 순간에 보관된 모든 기억을 뒤져 해당 기억을 찾아낸 뒤 그것을 재생하고 적절한 감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 모든 것은 먼저 그 기억이 정확하게 기록되었다는 전제하에 성립한다. 만약 이마엽이 손상되었다면, 이 단계들 중 어느 하나가 잘못될 수 있다. 어쩌면 작화자는 매번 어떤 것을 ‘기억’할 때마다 엉뚱한 기억을 찾아오면서 그 실수를 알아채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일부 과학자는 작화의 원인이 수치심에, 그리고 결함을 숨겨야 할 필요성에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작화자는 일반적으로 도발을 받지 않는 한, 어떤 이야기를 지어내 내뱉지 않는다. 거짓말을 이끌어내려면 먼저 질문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 이론에 따르면, 이들은 어떤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면 속상하고 창피하기 때문에 아는 척한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의사는 처음에 자녀가 몇 명이냐고 물어본다, “몰라요.”라고 인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안녕에 파탄을 가져올 수 있는데, 자신의 자녀가 몇 명인지도 모른다면 그 사람은 도대체 어떤 종류의 괴물이 되겠는가? 요컨대, 작화는 하나의 방어 기제, 즉 자신의 뇌 손상을 자신에게까지 숨기기 위한 방편일 수 있다.

 또 다른 방어 기제로 일부 작화자는 가공의 인물을 지어내고, 자신의 개인적 결함을 그들에게 덮어씌운다. 한 알코올 중독 작화자는 자물쇠를 바꾼 뒤에도 작은 도깨비들이 자기 아파트에 자꾸 침입해 리모컨 같은 물건을 훔쳐간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결국 그는 1월의 추운 밤에 그 도깨비들을 밖으로 집어던졌다. 하지만 죄책감을 느껴 밤늦게 추운 날씨를 무릅쓰고 밖으로 나가 도깨비들 위에 옷을 덮어주고 앰뷸런스를 불렀다. 하지만 실제로 의료진이 발견한 것은 겨울밤에 술에 잔뜩 취한 채 거의 벌거벗은 상태로 밖에 있는 ‘그’였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사실상 즉석에서 우화를 지어냈다. 이것은 뇌 손상을 입은 사람으로서는 아주 놀라운 재주인데, 이 기발한 방법을 통해 그는 자신을 연루시키지 않고 자신의 결함을 더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이 사례가 보여주듯이 작화자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작화자는 태평스럽게도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며, 많은 신경과학자는 코르사코프 증후군 환자가 거짓말을 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아무리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하더라도, 기억의 틈을 메우려고 하는 것은 어느 단계에서는 그런 틈이 존재함을 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것은 이들이 아는 동시에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아주 특별한 수수께끼이며, 자신을 속이는 게 정말로 가능한가라는 질문과 더 넓게는 참과 거짓의 본질에 관한 질문을 포함해 온갖 종류의 어려운 질문을 제기한다. 작화자에게 아침에 무엇을 먹었느냐고 물어보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만약 그가 전혀 모른다면 “먹다 남은 피자를 먹었어요.”라고 대답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아침에 식은 피자를 먹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데, 이 경우에는 그는 진실을 말한 셈이 된다 - 그의 뇌가 의식적으로건 아니건 우리를 속이려고 했더라도 말이다, 이럴 때에는 이런 상황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거짓말을 했다’ 또는 ‘진실을 말했다’라는 말로는 이 상황을 제대로 표현했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은 제대로 표현하기가 까다로운데, 그래서 일부 신경과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정직한 거짓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철학적 난제를 무시한다면, 작화에 대한 연구는 20세기에 기억을 신경과학 분야의 적합한 연구 대상으로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는데, 과학자들이 마침내 기억을 뇌 및 그 생물학과 연결 짓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해도, 지 난 100년 동안 기억 연구에서 일어난 가장 큰 돌파구는 작화자들의 마음에서 나온 게 아니다. 사실, 1950년대까지 기억 연구는 대부분 잘못된 가정에 의존했다. 그 가정이란, 기억을 생성하고 저장하는 데 뇌의 모든 부분이 동등하게 기여한다는 것이었다. 이 개념을 뒤집어엎는 데에는 과감했지만 실패로 끝난 어느 엽 절개술 전문의사의 수술이 필요했다.

기억을 상실한 남자

 1930년대 초에 코네티컷 주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사람이 사내아이를 치었다. 아이는 굴러떨어지면서 머리뼈에 금이 갔다. 순전히 이 사고로 아이에게 뇌전증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아이의 사촌 세 명도 뇌전증이 있었기 때문에, 이 아이는 이미 뇌전증에 걸릴 소질이 있었을지 모른다.), 이 사고가 뇌전증을 촉발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어쨌든 이 아이는 10세 때부터 발작을 일으켰다. 발작은 한 번 시작되면 40초 정도 지속되었고, 그동안 아이는 입을 쩍 벌리고 눈을 굳게 닫은 채 보이지 않는 꼭두각시 조종자가 조종하는 것처럼 팔과 다리를 꼬았다 폈다 했다. 첫 번째 대발작은 하고많은 날 중에서도 열다섯 번째 생일에 부모와 함께 차를 타고 가던 도중에 일어났다. 그 후로 학교와 집에서 그리고 쇼핑을 하는 도중에도 발작이 일어났다. 많게는 하루에 열 번까지 일어났으며, 심한 발작은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일어났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려고 애쓰는 나이에 아이는 불가항력적인 자신의 처지 - 몸을 떨고, 자기 혀를 깨물고,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잃고 오줌을 지리는 - 를 고민하며 살아가야 했다. 사람들의 놀림이 하도 심해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21세가 되어서야 겨우 다른 학교에서 졸업장을 땄다. 결국 집에 틀어박혀 살면서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했다.

 절박한 처지에 몰린 이 젊은이(머지않아 H.M.이라는 이름으로 후세에 길이 전해질)는 수술을 받아보기로 결심했다. 젊은 시절에 H.M.은 신경외과 수술을 하면서 뇌의 작용 방식을 연구하길 꿈꾸었다. H.M.은 어쨌든 신경과학에 큰 기여를 하게 되지만, 자신의 불행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H.M.은 1943년 무렵에 월리엄 스코빌(William Scoville)박사를 찾아갔다. 스코빌은 저돌적인 성격으로 유명하며(에스파냐에서 의학 회의가 열리기 전에 투우장에서 재킷을 벗어 그것을 가지고 황소들과 싸운 적도 있었다.) 위험한 수술도 좋아했고, 미국의 엽 절개술 유행에 일찍부터 뛰어들었다. 하지만 환자의 성격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걸 좋아 하지 않아 들어내는 조직의 양을 줄이는 ‘부분적인’ 엽 절개술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나는 동안 그는 여기서 이 조각, 저기서 저 조각을 떼어내고서 결과를 지켜보는 식으로 조금씩 뇌 주변을 조사해나가다가 마침내 해마에 이르렀다.


편도체와 해마.JPG
 해마는 변연계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 당시 과학자들은 해마가 감정을 처리하는 일을 돕는다고 믿었지만, 그 정확한 기능은 알려지지 않았다. 광견병은 종종 해마를 파괴했고, 제임스 페이프즈는 뇌에서 관심을 집중해야 할 부분으로 해마를 지목했다. (엉터리 시인이기도 했던 페이프즈는 아내를 위해 짤막한 노래 가사를 짓기도 했다: “브로드 스트리트에 사는 내 여자 펄이라오. / 내가 진정으로 그리워하는 사람은 …… 내 해마가 이렇게 말해준다오.") 하지만 스코빌은 해마에 그렇게 큰 매력을 느끼지 않았는데, 해마 손상이 초래하는 정신적 혼란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950년대 초에 몇몇 정신병자의 해마를 제거하는 수술을 하기 시작했다. (해마는 양 반구에 하나씩 있다.) 정신병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확신하긴 힘들었지만, 이들은 수술 후에 별다른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 같지 않았고, 특히 두 여자는 발작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불행하게도 스코빌은 1953년 11월(H.M.에게 수술을 받으라고 설득한 뒤인) 이전까지는 신중한 추적 조사를 게을리했다.

 H.M.의 수술은 1953년 9월 1일에 코네티컷 주 하트퍼드에서 일어났다. 스코빌은 환자의 두피를 벗긴 뒤, 손으로 돌리는 크랭크와 현지 철물점에서 1달러를 주고 산 드릴 톱을 사용해 양 눈 위쪽에서 병마개만 한 크기의 뼈를 잘라냈다. 뇌척수액이 빠지자, 뇌가 두 개강(머리뼈안) 안쪽으로 내려앉으면서 작업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더 생겼다. 스코빌은 길쭉한 구둣주걱처럼 생긴 도구로 H.M.의 이마엽과 관자엽을 살살 밀면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해마는 귀와 비슷한 높이에 자리잡고 있었고, 모양과 지름은 구부린 엄지손가락과 비슷했다. 되도록이면 최소한의 조직을 제거하고 싶었던 스코빌은 먼저 발작의 진원지를 찾으려고 각 해마에 전선을 연결해 전기 자극을 주었다. 운이 따르지 않자, 이번에는 기다란 금속관을 붙잡고 조직을 조금씩 잘라 빨아내기 시작했다, 결국 양쪽 해마에서 약 7.5cm에 해당하는 조직을 제거했다.(자그마한 해마 조직 부위 2개가 남았지만, 스코빌이 두 부위 사이의 연결과 뇌의 다른 부분들도 잘라냈기 때문에, 남은 해마 부위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추가로 편도와 그 옆에 있는 구조들도 제거했다. 이 구조들이 뇌 속에서 얼마나 깊은 곳에 박혀 있는지를 감안한다면, 그것들을 그렇게 정밀하게 제거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신경외과의뿐이었다.

 수술 후 H.M.은 며칠 동안 꾸벅꾸벅 조는 상태에 빠졌지만, 가족을 알아보았으며, 겉보기에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여러 측면에서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H.M.의 성격은 전혀 변하지 않았으며, 발작은 거의 사라졌다(많아야 1년에 두 번 정도). 그리고 뇌전증 증상이 사라지자, 지능지수도 104에서 117로 높아졌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그의 기억이 싹 사라지고 만 것이다. 스코빌 박사가 자신을 수술했다는 사실을 비롯해 몇 가지 기억을 제외하고는 수술 이전의 10년간에 해당하는 기억 전체가 통째로 사라졌다. 이에 못지않게 불행한 사실은 새로운 기억도 생성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는 이제 사람 이름도, 요일도 기억하지 못했다.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했고, 화장실로 가는 방향은 그곳에 갈 때까지는 기억했지만, 나중에 갈 때에는 또 물어봐야 했다. 심지어 식욕도 기억이 사라진 것처럼 누가 말리지 않으면 점심이나 아침을 여러 번 먹기까지 했다. 그의 마음은 구멍이 숭숭 뚫린 체처럼 변했다.

 현대의 지식을 바탕으로 생각하면, H.M.의 이러한 결함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기억 생성에는 여러 단계가 필요하다. 먼저 겉질의 신경세포들이 감각 신경세포들이 보고 듣고 촉각으로 느낀 것을 받아 적어야 한다. H.M.에게 첫 느낌을 기록하는 이 능력은 아직 살아 있었다. 하지만 해변에 휘갈겨 쓴 메시지처럼 이 느낌은 금방 지워졌다. 기억을 지속시키는 일은 그다음 단계에 일어나는데, 여기에는 해마의 신경세포들이 관여한다. 이 신경세포들은 특별한 단백질을 만들며, 이 단백질은 축삭돌기 말단을 크게 부풀어오르게 한다. 그 결과로 축삭돌기는 이웃들을 향해 신경전달물질 거품을 더 많이 흘려보낼 수 있다. 이것은 기억이 와해되기 전에 이 신경세포들 사이의 시냅스 연결을 강하게 한다. 몇 달이나 몇 년이 지나는 동안(첫 느낌이 충분히 강하거나 우리가 그 사건을 때때로 생각한다면) 해마는 그 기억을 겉질로 보내 영구 저장되도록 한다. 요컨대, 해마는 기억의 기록과 저장을 모두 지휘하며, 해마가 없다면 이런 ‘기억 응고화[memory consolidation]’는 일어날 수 없다.

 스코빌은 이 모든 것을 알 수가 없었겠지만, 그는 분명히 H.M.의 기억을 파괴한 게 분명했고,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그래서 몇 달 뒤, 와일더 펜필드가 해마 손상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이 유명한 외과의에게 전화를 걸어 저간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펜필드는 얼마 전에 해마뇌전증을 앓던 두 환자에게 수술을 한 적이 있었다. 안전을 기하고자 그는 한쪽 해마만 잘라냈지만, 두 환자 모두 발작 때문에 나머지 해마가 손상되었다는 사실을 그는 까맣게 몰랐다. 그래서 한쪽 해마 절제 수술을 받은 두 환자는 해마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펜필드가 본 것 중 가장 순수한 기억상실증이 나타났다. 그는 이 사례들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는데, 그 밑에 있던 한 대학원생은 1954년에 시카고에서 열릴 한 과학 학회에 이 사례들을 발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스코빌이 전화를 걸었을 때, 펜필드는 스코빌의 무모한 행동을 심하게 질책하면서 벌컥 화를 냈다고 한다. 하지만 펜필드는 화가 가라앉자(각기 병을 연구한 의사들과 비슷하게) 스코빌이 실제로 아주 중요한 실험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해마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낼 기회를 제공했다. 그 임무의 일환으로 몬트리올에 있던 펜필드의 연구소는 정신외과 수술을 받은 환자들에게 일어난 심리적 변화를 추적했다. 그래서 펜필드는 더 뉴로에서 일하던 브렌다 밀너(Brenda Milner)라는 박사 과정 학생을 코네티컷 주로 파견해 해마 제거 수술을 받은 H.M.을 조사하게 했다,

 H.M.은 기억이 사라진 뒤에 일자리를 잃었고, 부모와 함께 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제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했고, 섹스에 아무 관심이 없었지만, 그것 외에 나머지는 정상으로 보였다. 이웃 사람들에게는 H.M.이 그저 빈등거리며 인생을 보내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H.M.은 파트타임으로 고무풍선을 비닐봉지에 포장하는 일을 했고, 집에서 허드렛일도 했다. (비록 부모가 잔디 깎는 기계를 어디다 두었는지 매번 다시 알려주어야 했지만, H.M.은 잔디를 잘 깎았다. 아직 깎지 않은 잔디가 어디에 있는지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불같이 성질을 내기도 했다. 어머니는 잔소리가 잦았는데, H.M.은 여러 번 어머니를 손바닥으로 때리고 정강이를 걷어찼다. 한번은 자기 집의 총기 수집품 중에서 삼촌이 훌륭한 소총을 꺼내자, H.M.이 버럭 화를 냈다.(그는 기억상실증에도 불구하고 평생 동안 총을 좋아했고 전미 총기협회 회원 자격증을 갱신하는 걸 늘 잊지 않고 기억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날을 십자말풀이 퍼즐을 풀거나 (단서들을 순서대로 체계적으로 생각하면서) 텔레비전 앞에 퍼질러 앉아 주일 미사나 오래된 영화(그에게는 절대로 추억의 영화가 될 수 없는)를 보면서 평화롭게 보냈다. 마치 조기 은퇴자의 삶 같았다. 다만 그를 조사하기 위해 밀너가 오는 날들은 예외였다.

 밀너는 대개 야간열차를 타고 몬트리올에서 출발해 오전 3시쯤에 하트퍼드에 도착했으며, 한번 오면 며칠 동안 H.M.과 지내다 갔다. 그녀가 실시한 검사를 통해 스코빌이 관찰한 기본적인 사실이 금방 확인되었다. H.M.은 과거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었고, 기억을 새로 생성하는 능력도 없었다. 이것만 해도 이미 큰 성과였다. 뇌의 일부 지역, 즉 해마가 뇌의 다른 부위보다 기억을 생성하고 저장하는 데 더 중요한 기여를 한다는 증거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밀너가 발견한 것은 ‘기억’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정의하게 만들었다.

 밀너는 H.M.에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계속 묻는 대신에 운동 기술을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중요했던 테스트는 별 안에 다른 별이 겹쳐져서 별 두 개가 그려진 종이를 H.M.에게 건넨 것이었다. 바깥쪽 별은 폭이 15cm쯤 되었고, 두 별 사이의 간격은 1cm쯤 되었다. H.M.은 별 두 개 사이에 연필로 세 번째 별을 그려야 했다. 한 가지 장애는 H.M.이 두 별을 직접 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밀너는 H.M.이 그림을 직접 보지 못하게 가렸고, H.M.은 거울을 통해 그것을 보아야 했다. 알다시피 거울에 비친 물체는 좌우가 바뀌기 때문에, 본능에 따라 연필을 움직이면 실수를 할 수밖에 없다. 이 거울 테스트를 처음 하는 사람은 누구나 엉망인 결과를 얻는데(연필이 그은 선은 심전도에 그려진 선과 비슷해 보인다.), H.M.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지는 몰라도 H.M.은 갈수록 나아졌다. 그는 밀너가 자신에게 시킨 30차례의 별 그리기 시도 중 어느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무의식 운동 중추는 기억을 했고, 5일이 지나자 그는 거울로 보면서 별을 아주 정확하게 그렸다. 끝날 무렵에는 이런 말까지 했다. “참 재미있군요.…… 나는 처음에 좀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을 텐데, 아주 잘 한 것 같군요."

 밀너는 별 테스트가 유레카 순간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때까지 신경과학자들은 기억을 단일체라고 생각했 다. 즉, 뇌는 기억을 전체 지역에 저장하며, 모든 기억은 본질적으로 똑같다고 여겼다. 그런데 밀너는 이제 서로 분명히 구별되는 두 종류의 기억을 분리했다. 하나는 서술 기억[declarative memory]으로, 이름과 날짜, 사실을 기억하게 하는 기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억’이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기억에는 서술 기억 말고도 절차 기억[procedural memory]이 있다. 자전거 페달을 밟거나 이름을 서명하는 방법 같은 무의식적 기억이 바로 절차 기억이다. 거울을 보고 별을 그리는 테스트는 H.M.이 기억상실증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절차 기억을 생성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따라서 절차 기억은 뇌 속의 독특한 구조에 의존해 일어나 는 게 분명했다.


 절차 기억과 서술 기억(가끔 ‘어떻게 하는 방법을 아는 것[knowing how]`과 ‘어떤 것을 아는 것[knowing that]'이라고 부르는)의 구별은 오늘날 모든 기억 연구의 기초가 되었다. 이것은 또한 정신의 기본적인 발달 과정을 밝히는 데에도 빛을 비춰준다. 아이는 절차 기억이 일찍부터 발달하는데, 이것은 아이가 걷는 법과 말을 비교적 빨리 배우는 이유를 설명 해준다. 서술 기억은 좀 더 나중에 발달하는데, 우리가 아주 어린 시절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밀너의 테스트에서는 또 다른 독특한 종류의 기억이 나타났다. 하루는 밀너가 H.M.에게 무작위로 선택한 수 584를 최대한 오랫동안 기억하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밀너는 H.M.을 15분 동안 혼자 내버려두고 나와 커피를 마셨다. 잠시 후 돌아갔더니 예상과 달리 H.M.은 그 수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는 작은 소리로 그 수를 계속 반복해서 속삭였던 것이다. H.M.은 ‘못 nail’이란 단어와 ‘샐러드salad’란 단어를 몇 분 동안 기억할 수 있었다. 이 경우에는 못이 샐러드에 꽂혀 있다고 상상하고서 못이 꽂힌 샐러드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반복해서 자신에게 되뇌는 방법을 썼다. 그동안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았더라면 그 단어들은 H.M.의 마음에서 깨끗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테스트가 끝나고 5분이 지나자, 무엇을 기억해야 했다는 기억조자 그의 마음에서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M.은 자신의 기억에 집중해 그것을 계속 새롭게 되살림으로써 그 기억을 보존할 수 있었다. 이것은 단기 기억이 존 개한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첫 번째 단서였다. 게다가 이 테스트는 단기 기억(H.M.에게 있던)과 장기 기억(H.M.에게 없던)이 서로 다른 뇌 구조를 사용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밀너의 발견으로 H.M.은 과학계의 유명 인사가 되었고, 다른 신경과학자들도 그의 독특한 마음을 탐구하게 해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했다. H.M.은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수술을 받고 나서 5년이 지난 1958년 4월, H.M.과 부모는 하트퍼드의 작은 방갈로로 이사했다. 1966년에 미국의 몇몇 신경과학자들이 H.M.에게 기억에 의존해 자기 집의 평면도를 그려보라고 요구했다. 그는 그것을 그려냈다. H.M.은 방갈로의 주소도 몰랐지만, 6개의 방을 반복해서 걸어다니는 동안에 그 설계도가 뇌 속에 문신처럼 새겨 졌다. 이것은 정상적으로는 해마에 의존해 작동하는 우리의 공간 기억 시스템이 필요할 경우 그것을 우회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아마도 가까이에 있는 항행 중추[navigation center]인 해마곁이랑을 통해).

 과학자들은 또한 H.M.이 시간의 흐름을 다르게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약 20초까지는 정상인만큼 시간을 정확하게 추정했다.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정상에서 크게 벗어났다. 5분이 흘렀는데도 그가 주관적으로 느낀 시간은 40초에 불과했다. 또, 1시간은 3분으로, 하루는 15분으로 느꼈다. 이것은 뇌가 서로 다른 두 가지 시계를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는 짧은 시간을 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20초가 넘는 나머지 모든 시간을 개는 것이다. H.M.은 두 번째 시계만 고장이 났던 것이다. H.M.은 또 한 번 과학자들에게 한 가지 복잡한 정신 기능을 그 구성 성분들로 분해하고, 그 구성 성분들을 뇌 속의 구조와 연결 짓게 해주었다. 결국 H.M.을 조사한 신경과학자는 100명이 넘어 H.M.은 역사상 가장 많이 연구된 마음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H.M.은 늙어갔다. 적어도 육체적으로는 그랬다. 정신적으로는 1940년대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그 이후의 시간에 일어난 생일과 장례식을 단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의 기억 속에서 냉전과 성 혁명은 결코 기록되지 않았고, 그래놀라(granola)와 자쿠지(Jacuzzi) 같은 새 단어는 영원히 정의되지 않은 채 남았다. 그리고 종종 마음속에서 모호한 불안감이 솟아올랐는데, 그는 그것을 결코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그 느낌은 “아침에 낯선 호텔 방에서 잠이 깼을 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기 전에 느끼는 찰나의 순간”과 같다고 밀너는 보고했다. 다만, H.M.의 경우에는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도 몸이 아파 그를 돌볼 수 없게 되자, H.M.은 1980년에 요양원으로 옮겨갔다. 이제 그는 약간 다리를 절면서 걸었다. 독한 뇌전증 약을 장기간 복용 한 탓에 소뇌가 쇠약해졌는데, 발을 질질 끌며 걷는 걸음걸이는 쿠루병 환자와 비슷했다. 깜빡 잊고 케이크와 푸딩을 한 번 더 먹는 일이 잦다 보니 몸집도 뚱뚱해졌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그는 상당히 정상적인 환자였고, (대개는) 얌전한 삶을 살았다. 테스트가 없는 날에는 시나 총기류 잡지를 읽거나, 지나가는 열차를 바라보거나, 요양원에서 키우는 개와 고양이와 토끼를 만지면서 빈둥거리며 지냈다. 그는 온전하게 남아 있는 운동 기억 덕분에 보행기 사용법을 배웠으며, 1982년에는 35번째 고등학교 동창회에도 참석했다. (그는 그곳에 온 사람들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지만, 다른 참석자들 역시 같은 문제를 겪었다.) 밤에 꾸는 꿈에는 산이 나올 때가 많았다. 힘들여 산을 올라가는 꿈이 아니라, 정상에 도달해 그곳에서 머무는 꿈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변덕이 심해진 H.M.은 이따금 벌컥 화를 냈다. 때로는 약을 먹길 거부했는데, 그러면 담당 간호사가 말을 듣지 않으면 스코빌 박사가 화를 낼 거라면서 그를 꾸짖었다. (스코빌 박사가 이미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H.M.은 항상 그 말에 속아넘어갔다.) 그는 요양원에 있는 다른 사람들하고도 싸웠다. 성질이 고약한 한 여자는 빙고 게임 도중에 그의 빙고 카드를 지우고 그를 놀려댔다. 가끔 이런 일을 당하면 H.M.은 자기 방으로 달려가 머리를 벽에 찧거나 마치 고릴라가 우리를 잡고 흔들듯이 침대를 붙잡고 흔들어댔다. 한번은 너무나도 격렬하게 화를 내 간호사들이 경찰을 불렀다. 이것들은 순수한 동물적 좌절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의 가장 인간적인 측면이 드러나는 순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실에 존재하는 어떤 사람이 따분하고 재미없는 외면을 뚫고 잠깐 침입했고, H.M.은 누가 자신의 인생에 간섭할 때 여느 사람이 그러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반응했다. 즉, 화를 냈다.

 물론 간호사가 그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자마자 그는 고통을 잊어버렸다. 가끔 그렇게 벌컥 화를 내는 순간을 빼고는, 점점 건강이 나빠지면서도 조용한 삶을 살았다. 그는 결국 82세이던 2008년에 호흡 기능 상실로 숨을 거두었다. 그제야 과학자들은 그의 실명이 혠리 구스타브 멀레이즌(Henry Gustav Molaison)이라고 세상에 공개했다.

 신경과학계는 멀레이즌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의 인내심과 친절을 칭송하는 헌사가 숱하게 쏟아졌고, 그가 잊지 못할 존재가 된 것에 대해 말장난도 많이 나왔다. 그의 뇌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그가 머물던 요양원은 그가 죽기 전에 아이스 팩을 미리 준비했다. 그리고 그가 숨을 거두자, 직원들은 그의 머리를 아이스 팩으로 둘러싸 뇌를 신선한 상태로 보존했다. 곧 시신을 인수할 의사들이 달려왔고, 그날 밤 그곳에서 그의 뇌를 촬영하고 머리에서 뇌를 꺼냈다. 그러고 나서 두 달 동안 포르말린 용액에 담가 굳힌 다음, 냉장고에 넣어 비행기로 미국을 횡단해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에 있는 뇌 연구소로 보냈다. 그곳 과학자들은 그것을 설탕 용액에 담가 과다한 수분을 뽑아낸 뒤, 냉동시켜 딱딱한 고체로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베이컨을 얇게 써는 기구 비슷한 것을 사용해 멀레이즌의 뇌를 2401조각으로 잘랐다. 그리고 각각의 조각을 유리판 위에 올려놓고 20배로 확대한 배율로 사진을 찍어 개개 신경세포 자원까지 확대해서 볼 수 있는 디지털 지도를 만들었다. 뇌를 얇게 자르는 과정은 온라인으로 생중계되었고, 40만 명이 그것을 시청하면서 H.M.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뇌 절단.JPG

[H.M.의 뇌를 장래의 연구를 위해 얇게 자르는 장면]


브로카와 탕

 그 남자의 이름과 총으로 자살한 이유(정신 이상? 괴로움? 권태?)는 역사 속에서 실종되고 말았다. 하지만 1861년 초에 파리 근처에서 한 프랑스 남자가 권총을 자기 이마에 갖다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빗나갔지만 완전히 빗나간 것은 아니었다. 앞쪽 머리뼈가 부서지면서 지느러미처럼 위로 솟구쳤다. 하지만 뇌는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았다. 담당 의사는 벌어진 상처를 통해 뇌가 맥동하는 걸 보았는데, 금속 주걱을 쑤셔 넣어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했다.

 그 남자가 정신을 잃을지, 비명을 지를지, 혹은 어쩌면 경련을 일으키며 죽을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의사는 주걱으로 이곳저곳을 살짝 누르면서 느낌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 대답을 기록한 사람은 없지만, 그 남자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제 말 아 라 테트, 독퇴르. 세…(머리가 아파요, 의사 선생님.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의사가 이마엽 뒤쪽의 한 군데를 누르자, 남자는 말을 더듬거리더니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주걱을 떼자, 남자가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사크레 블뢰, 독….(제기랄! 의……)" 의사는 다시 주걱을 눌러 말문을 닫게 했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었다. 주걱을 누를 때마다 남자는 말을 더듬거리다가 입을 다물었다. 검사는 잠시 후에 끝났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 남자는 몇 주 뒤에 죽었다.

 시몽 오뷔르탱(Simon Auburtin)이라는 과학자는 1861년 4월 4일에 파리에서 열린 인류학회 회의에서 이 사례를 발표 했다. 순수한 의도만으로 사례 발표를 한 것은 아니었다. 주걱을 휘두른 의사가 자기 친구였는데, 그를 널리 알리고 싶었고, 게다가 그 사례는 오뷔르탱이 좋아하는 신경과학 이론을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그 이론은 국재화(localization) 이론으로, 뇌에는 각각의 정신 기능을 담당하는 지역이 따로 있다고 주장했다. 오뷔르탱은 특히 언어의 국재화 이론에 큰 매력을 느꼈는데, 그의 장인 역시 그 이론 에 푹 빠져 있었다,(장인은 1830년대부터 뇌의 병터 목록을 작성했는데, 1848년에 이마엽에서 언어 능력 상실을 수반 하지 않는 광범위한 병터를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다는 데 500프랑의 내기를 내걸었다,) 오뷔르탱은 주걱 실험 사례를 뇌에 ‘언어 장소’가 있음을 뒷받침하는 최선의 증거로 사용 했다.

 하지만 국재화 이론을 믿은 오뷔르탱은 동료들 사이에서 주류가 될 수 없었다. 동료들 대부분은 국재화 이론을 제 2의 골상학으로 일축하며 비웃었다. 원조 골상학 운동은 수 십 년 전에 조롱 속에서 사망한 터였다. 오뷔르탱 자신도 골상학자들이 무신론이나 ‘육식 본능’ 같은 것의 원인을 머리의 특정 돌출부에서 찾으려고 한 것은 지나쳤다고 인정했다. 그는 단지 거기서 뇌의 전문화라는 일반적 원리만을 구하고자 했을 뿐이다, 하지만 오뷔르탱이 아무리 신중하게 자신의 개념을 표현하더라도, 여전히 돌팔이 의사의 체취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많은 과학자들은 뇌와 영혼은 더 작은 단위로 쪼갤 수 없다는 형이상학적 믿음을 갖고 있었는데, 국재화 이론이 그 믿음과 어긋난다는 점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그것은 한 시간 만에 해결할 만한 논쟁이 아니었고, 4월 그날의 회의는 말다툼으로 악화되었다.

 그날 오후 회의장에 모인 청중 속에 인류학회 서기인 폴 브로카(Paul Broca)가 앉아 회의 내용을 학회지에 실으려고 필기를 하고 있었다. 군의관 아들로 태어난 브로카는 12년 전에 파리로 왔다. 처음에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세월을 보내다가 교사 자리를 얻었지만 그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는 일이 지긋지긋한 나머지 아메리카로 건녀갈 생각까지 했다. 그러다가 20대 후반에 마음을 잡고 해부학자와 외과의로 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해 한 해 지나갈수록 그는 평생의 열정에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쏟아 부었다. 그 열정은 바로 머리뼈였는데, 브로카는 이미 많은 머리뼈를 수집해놓고 있었다. 더 일반적으로는 브로카는 인류학을 사랑했고, 1850년에 인류학회의 공동 창립자로 참여했다. 그는 뇌의 국재화를 놓고 벌어지는 설전보다는 인류의 기원과 원시 사회(그리고 머리뼈)에 대해 자유로운 토론이 일어나 는 광경을 기대했다. 실제로 브로카는 그 주제에 아무 관심도 없었다. 적어도 탕(Tan)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탕의 진짜 이름은 르보르뉴(Leborgne)였다. 어릴 때부터 뇌전증을 앓은 르보르뉴는 모자 틀을 만드는 일을 하며 살아갔다. 하지만 오랫동안 뇌전증으로 입은 손상 때문에 말하는 능력을 잃었는데, 30세 무렵이 되자 상대의 질문에 할 수 있는 말이라곤 “탕 탕(Tan tan).”뿐이었다. 그래서 별명이 탕이 되었고, 1840년에 더 이상 아무 일도 못하게 되자, 파리 외곽에 위치한 병원 겸 요양원인 비세트르에 수용되었다. 그는 갇혀 지내는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어쩌면 말을 하지 못한다는 좌절감에 휩싸였을 수도 있고, H.M.처럼 다른 환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탕은 비세트르에 수용되고 나서 골칫거리가 되었다. 다른 환자들은 탕이 이기적이고 성질이 나쁘고 복수심이 강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떤 환자들은 탕이 도둑질을 한다고 비난했다. 이상한 일은 탕을 심하게 몰아붙이면, “탕 탕," 외에 다른 말도 한다는 점이었다. 예컨대 상대방 얼굴에 대고 “사크레 농 드 디외!(빌어먹을!)”라고 외쳐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을 분노케 하기도 했다. 하지만 탕은 자기 의지로 욕을 하진 못했고, 오직 분을 참지 못할 때에만 자기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아무리 탕의 성질이 나쁘다 하더라도, 그다음에 그에게 일어난 일은 부당했다. 1850년에 탕은 오른팔 감각이 모두 사라졌다. 4년 뒤에는 오른쪽 다리가 마비되었고, 다음 7년을 침대에 누워 지냈다. 그 당시에는 욕창이 치명적으로 변할 때가 많았는데, 탕은 시트를 더럽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간호사들은 시트를 자주 갈아주거나 그를 자주 돌아 눕히지 않았다. 탕은 오른쪽 옆구리도 감각이 사라졌고, 누가 그의 몸에서 괴저를 발견했을 무렵에는 괴저가 발뒤꿈치에서부터 엉덩이까지 오른쪽 다리를 완전히 잠식한 뒤였다. 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었는데, 1861년 4월 12일에 의사들은 비세트르에 새로 온 외과의 폴 브로카에게 그를 데려 갔다.

 브로카는 탕의 임상 병력을 작성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이름이 뭔가요? “탕." 직업은요? “탕 탕." 어떤 문제가 있나요? “탕 - 탕!" 각각의 ‘탕’은 순수하고 부드럽고 감미롭게 튀어나왔지만(탕의 목소리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브로카에게 우스꽝스러운 대화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다행히도 탕은 그동안 무언극의 대가가 되었기 때문에 손짓 신호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가령, 비세트르에 온 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묻자, 탕은 왼손의 손가락을 다 펼친 채 앞으로 네 번 내뻗은 다음 다시 집게손가락 하나만 세워 왼손을 내 뻗었다. 즉, 21년이라는 대답이었는데, 정확한 답이었다. 혹시나 요행으로 맞힌 게 아닌지 확인하려고 브로카는 다음 날 같은 질문을 했다. 그리고 만전을 기하고자 그다음 날에 다시 같은 질문을 했다, 그러자 탕은 자신이 시험을 받는다는 걸 알아채고는 “사크레 농 드 디외!”라고 외쳤다,(자신의 사례 보고서에 이 욕을 쓸 때, 브로카는 완곡하게 줄표로 표시했다.) 이 면담을 통해 브로카는 탕이 비록 말하는 능력을 잃긴 했지만, 여전히 언어를 이해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자신이 맡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브로카는 탕의 다리를 절단했다. 하지만 탕은 그동안 괴저로 너무 쇠약 해져서 4월 17일 오전에 숨졌다. 24시간이 지나기 전에 브로카는 인류학회에서 ‘언어 장소’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을 생각하면서 탕의 머리뼈를 갈랐다.

 그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좌뇌는 쪼그라들어서 만지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특히 이마엽은 끔찍한 상태였다. 거기에는 ‘달걀만 한’크기의 썩은 공동(空洞)이 있었고, 그 안에는 누런 농장액(묽은 장액성 고름)이 고여 있었다. 그렇게 엉망인데도 브로카의 노련한 눈은 중요한 세부 사항을 놓치지 않았다. 부패는 광범위하게 진행되었지만, 중심점을 향해 다가갈수록 더 심한 것 같았다. 그리고 부패의 중심은 이마엽 뒤쪽 가까운 곳, 사례 보고서에서 그 의사가 주걱을 눌렀다고 한 바로 그 장소에 있었다. 브로카는 이 곳이 최초의 병터라고 추론했다. 탕의 최초 증상은 언어 능럭 상실이었으므로, 이곳이 바로 언어 노드가 틀림없다고 결론지었다, 이 결론을 내리면서 브로카는 사실상 오뷔르탱 과 신新골상희자들의 진영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그의 경력에 큰 오점이 될 수도 있는 모험이었다. 그리고 브로카는 탕의 뇌를 다음번 인류학회 회의 때(4월 18일, 즉 바로 그날 오후에)보여주기로 결정함으로써 그보다 더 위험한 모험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날 회의는 극적인 과학 드라마의 요소를 다 갖추고 있었다. 브로카는 막 해부한 탕의 신선한 뇌를 가지고 회의장에 들어섰다. 그는 회의적인 청중과 맞닥뜨렸지만, 뇌의 국재화를 뒷받침하는 최초의 구체적 증거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진화론을 놓고 벌어진 혁슬리(Huxeley)와 윌버포스(Wilberforce)의 대결을 연상시 킬만큼 중요한 대결이었을 수도 있는데, 실제로 훗날 브로카의 추종자들은 그날 브로카가 한 연설에 초자연적인 중요성을 부여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날 브로카가 한 것이라곤 뇌를 보여주고 탕의 병력을 요약 소개한 것밖에 없었다. 언어 노드에 관한 자신의 결론은 아주 짧게 언급했고, 강조하지도 않았다, 잠재적인 적들은 대부분 하품을 했고, 브로카가 연설을 마치자마자 인종과 뇌 크기와 지능에 관한 훨씬 흥미진진한 토론에 빠져들었다.

 인종과 뇌 크기와 지능은 브로카도 큰 관심을 가진 주제여서 그가 토론에 기여할 부분도 많았으며, 그 토론은 결국 몇 달 동안 인류학회의 의제를 지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로카는 그 후의 회의들에서도 틈나는 대로 탕의 뇌를 계속 언급했다. 자신의 뇌 중 톱니바퀴 하나는 계속해서 탕의 언어상실증 주위를 돌았다. 그는 탕의 뇌를 알코올에 담가 보관하다가 나중에는 알코올에 흠뻑 절인 그 뇌를 미래의 연구를 위해 병에 넣어 보관했다. 한편, 브로카는 또 다른 언어상실증 환자를 찾다가 어느 모로 보나 탕만큼 유명해질 만한 환자를 발견했다.

 ‘를로(Lelo)' 역시 탕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을 딴 별명이었다. 도랑 파는 일을 하던 80대의 를롱(Lelong)은 1861년 10월에 뇌졸중이 일어났다. 브로카와 만나기 18개월 전이었다. 그 후유증으로 딱 다섯 단어 빼고는 말하는 능력을 잃었다. 다섯 단어는 자신의 이름인 ‘를로’, 그리고 ‘위oui(예)', ‘농non(아니요)'. ‘투아tois(셋을 뜻하는 트루아 trois를 이렇게 발음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수를 나타내는 단어로 썼다.)', 그리고 나머지 모든 어휘를 나타내는 ‘투주르toujours(항상’였다. 딸이 몇이냐고 물으면, 그는 “투아,”라고 말하고는 손가락 두 개를 치켜세웠다.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투주르.”라고 답하면서 몸짓으로 삽질을 하 는 흉내를 냈다.

 넙다리뼈가 부러져 그 합병증으로 사망했다는 것 말고는 를로에 관한 기록은 남은 게 별로 없다. 하지만 를로가 죽고 나서 브로카는 아마도 앙리 2세 이후로 가장 중요하다고 할 만한 뇌 부검을 실시했다. 부검을 시작하면서 브로카는 몹시 불안하고 초조했다. 만약 를로의 뇌에서 병터를 전혀 발견하지 못한다면(혹은 엉뚱한 장소에서 병터를 발견한다면), 자신은 조롱거리가 될 게 분명했다. 신중하게 뇌를 톱질한 다음, 머리덮개를 열었다. 그러자 불안과 초조는 기우로 드러났다. 탕의 뇌가 광범위한 부패와 함께 분쇄된 것처럼 보였던 반면, 를로의 뇌는 BB탄이 뚫고 지나간 구멍처럼 단 한 군데만 손상이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이번에는 그 장소를 본 브로카의 입에서 ‘사크레 농 드 디외’라는 말이 튀어나왔을 것이다. 그 장소는 바로 이마엽 뒤쪽이었다. 이 장소는 오늘날 브로카 영역이라 부른다.

브로카 영역

 뇌 안에서 언어 노드를 발견했다는 브로카의 발표는 일반 대중 사이에서 별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파리 신문들은 대신에 리하르트 바그너의 〈탄호이저>가 초연에서 야유와 휘파람 소리를 들으며 죽을 쓴 일을 언급하면서 낄낄거렸다.) 하지만 이 발견은 유럽의 쟁쟁한 학회들 사이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키며 퍼져나 갔고, 과학자들을 설레게 했다. ‘국재화가 정말로 실재한단 말인가?' 그 직후에 일어난 두 가지 사건은 그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첫 번째 사건은 브로카가 더 많은 환자들로부터 자신의 발견을 재확인한 일이다. 1861년 이후에 의사들은 추가 연구를 위해 언어상실증 환자들을 브로카에게 보냈고, 1864년까지 브로카는 모두 25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부검을 했다. 단 한 명만 빼고 모든 환자가 이마엽 뒤쪽에 병터가 있었다. 손상의 성격은 종양이건, 뇌졸중이건, 매독이건, 외상이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오로지 장소만이 문제가 되었다.

 두 번째 사건은 뇌 안에서 언어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하는 데 더 큰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1876년에 카를 베르니케(Karl wernicke)라는 26세의 독일 의과대학생(나중에 베르니케-코르사코프 증후군의 연구로 유명해진)이 새로운 유형의 언어상실증을 발견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베르니케는 이마엽 뒤쪽 근처(브로카 영역에서 멀리 떨어진)에 생긴 병터가 환자에게서 언어의 ‘의미’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브로카의 언어상실증 환자들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는 알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제대로 내뱉지 못한 반면, 베르니케의 언어상실증 환자들은 아주 긴 문장을 매력적인 운율을 곁들여 만들 수는 있지만, 말이 안 되는 문장을 만들었다.(일부 신경과학자들은 구절들이 무작위로 마구 뒤섞인 이런 문장을 단어 샐러드라고 부른다. 나라면 ‘피네간의 경야[Finnegans Wake]' 증후군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심한 좌절을 느끼는 브로카형 언어상실증 환자와 달리, 베르니케형 언어상실증 환자는 멍한 상태에 있다. 의사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응수하면, 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는다. 일반적으로 브로카 영역이 손상되면 언어를 만드는 능력을 잃는 반면, 베르니케 영역이 손상되면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을 잃는다,

 기능적으로 브로카 영역은 입에서 단어를 만들고 발음 하는 일을 돕기 때문에, 이 영역이 손상되면 문장이 뚝뚝 끊어지고, 말을 하는 도중에 자주 멈추게 된다. 게다가 브로카 영역은 적절한 문법을 만드는 일을 돕기 때문에, 브로카형 언어상실증 환자는 개념들을 엮어 결합할 때 문법이나 접속사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예컨대 “개 - 여자아이 - 물었다.”라는 식으로 말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베르니케 영역은 단어들을 그 의미와 연결시킨다. 베르니케 영역은 뇌 안에서 기표(記標 : 언어가 소리와 그 소리로 표시되는 의미로 성립된다고 할 때, 소리를 가리킴. 시니피앙signifiant이라고도 한다.)와 기의(記意 : 언어가 소리와 그 소리로 표시 되는 의미로 성립된다고 할 때, 의미를 가리킴. 시니피에 signifie라고도 한다.)를 융합시킨다. 뇌 안의 각 영 역이 어떻게 서로 협력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여러분 옆에 있는 사람이 갑자기 영어로 ‘제플린(Zeppelin)’이라고 말했다고 상상해보자. [Zeppelin이란 영어 단어는 유명한 체펠린 비행선을 가리킬 수도 있고, 영국의 록 밴드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을 가리킬 수도 있다.] 먼저 여러분의 귀가 이 입력 정보를 청각 겉질로 보내면, 청각 겉질은 그 정보를 베르니케 영역으로 보낸다. 그러면 베르니케 영역은 기억 속에서 적절한 연상을 찾아냄으로써 여러분에게 하늘을 올려다보게 하거나, 기타 연주에 귀를 기울이게 하거나, “오, 더 휴매니티!Oh, the humanity!"[힌덴부르크호가 화염에 싸여 폭발하는 것을 지켜보며 생방송으로 보도하던 시카고의 라디오 방송국 기자 허브 모리슨(Herb Morrison)이 내뱉어서 유명해진 말. ‘오, 마이 갓!’과 비슷한 뜻이지만, 감정이 훨씬 많이 실린 표현임]를 생각나게 한다. 그렇게 소리와 의미가 합쳐진다. 만약 ‘제플린’을 큰 소리로 다시 반복하고자 한다면, 베르니케 영역은 먼저 ‘제플린’ 개념을 뇌에 저장된 청각 표상과 짝을 짓는다. 그러고 나서 베르니케 영역은 브로카 영역을 자극하는 신호를 보내고, 그러면 브로카 영역은 입술과 혀를 조절하는 운동 겉질 부분을 자극한다. 만약 베르니케 영역이 단어와 개념을 제대로 짝짓지 못하면, 단어 샐러드 현상이 나타난다. (아주 어린 아이가 말을 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는 베르니케 영역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브로카 영역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말을 더듬거리게 된다.

 베르니케는 새로운 언어 노드를 발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뇌 속의 언어에 대해 더 일반적인 사실을 주장했는데, 이것은 볼드체로 강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주장이다. 뇌에서 ‘언어 장소’는 어느 한 군데만 있는 게 아니다. 기억과 마찬가지로 언어를 이해하고 만들어내는 데 관여하는 지역은 한 군데가 아니라 여러 군데이며,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은 멀쩡한데도 말하는 능력을 잃거나, 말하는 능력은 멀쩡한데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을 잃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만약 다른 언어 노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두 언어 노드 사이의 백색질 케이블이 절단된다면, 언어 기술이 다른 방식으로 손상될 수 있으며, 그중 일부는 놀랍도록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일부 뇌졸중 환자는 명사만 기억하고 동사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반대로 동사만 기억하고 명사를 기억하지 못한다. 두 가지 언어에 유창한 사람이 외상 후에 한 가지 언어 능력을 상실할 수 있는데, 제 1언어와 제 2언어는 각기 다른 신경 회로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언어 능력 부족은 심지어 수학 능력도 방해할 수 있다. 마루엽에는 비교와 크기(산술의 기초인)를 다루는 선천적인 ‘수 회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수학에는 암기를 통해 언어적으로 배우는 것(예컨대 구구단처럼)도 있다. 그래서 언어 능력이 손상되면, 언어에 기초한 기술 역시 손상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세 단어를 결합하는 데 애를 먹는 사람도 노래는 제대로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멜로디와 리듬은 손상된 회로를 우회하여 언어를 만드는 과정을 밀어 시동이 걸리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 햄을 - 좋아해.”라는 문장도 더듬거리면서 간신히 말하는 사람이 잠시 후에 <공화국 전투 찬가(The Battle Hymn of the Republic>를 능숙하게 부를 수 있다.[가브리엘 기퍼즈(Gabrielle Giffords)라는 미국 여성 국회의원은 머리에 총상을 입은 뒤에 <여자들은 그저 즐겁게 놀고 싶을 뿐이야(Girls Just Wanna Have Fun)>를 비롯한 노래 가사로 연습을 한 끝에 말하는 법을 다시 익혔다.] 이와 비슷하게 감정도 죽은 언어 회로를 부활시킬 수 있다. (탕과 같은) 언어상실증 환자는 도발을 받으면 욕을 할 수 있지만, 자기 의지만으로는 절대로 하지 못한다. 노래와 말과 욕이 이렇게 서로 분리된 채 작용하는 상황은 또다시 우리 뇌에 단일 언어 장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우리가 단어들을 저장해두는 신경학적 ‘식료품 저장실’ 같은 건 없다는 이야기이다.

 언어 기능 분리를 보여주는 가장 놀라운 사례는 ‘실서증 없는 실독증[alexia sine agraphia]' 이다. 실독증은 읽기 언어상 실증이라고도 하고, 실서증은 쓰기언어상실증이라고도 한다. 읽기는 말하기보다 더 높은 수준의 신경학적 기술이 필요하다. 활자는 시각 겉질을 통해 아주 쉽게 뇌로 들어오지만, 인간은 진화의 역사에서 아주 늦게 글을 읽기 시작했으므로(기원전 3000년 무렵부터) 시각 겉질은 자연적으로 베르니케 영역과 연결돼 있지 않다. 하지만 <초급 영어 독본>으로 약간 연습을 하면, 뇌에 회로가 새로 생기면서 이 두 지역이 연결된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잉크가 선을 그리며 지나간 자국을 보고서 개념과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다. 읽기는 뇌가 작용하는 방식을 변화시킨다.

 하지만 실서증 없는 실독증 환자는 한 글자도 읽지 못 하는데, 시각 겉질의 축삭돌기 경로가 끊어진 탓이다. 문자의 곡선과 형태는 뇌에 정확하게 들어오지만, 그 데이터는 베르니케 영역에 도달하지 못해 의미 있는 정보로 전환되지 못한다. 그 결과, 단어들이 전혀 모르는 아랍어나 러시아어로 쓰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이 사람들은 글자는 제대로 쓸 수 있는데, 뇌에서 의미를 담당하는 중추가 손글씨를 조절하는 아래쪽의 운동 회로에 여전히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맥주에 알레르기가 있어.”라는 문장을 쓰고서도 자신이 그것을 읽지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나올 수 있다.

 언어는 인간의 속성 중에서 아주 중요한 것으로 꼽히며, 브로카도 대체로 제1언어 노드를 발견한 업적 때문에 현대 신경과학의 거장으로 인정받는다. 그런데 진실을 말하자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언어 지식과 더 일치하는 것은 베르니케의 언어 회로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브로카가 뇌의 국재화를 발견했다고 인정받지만, 국재화 개념을 처음 주장하고 강하게 밀어붙인 사람들은 오뷔르탱과 골상학자들 이었다. 다만, 이들 과학자의 통찰을 과학적 사실로 확고하게 자리잡게 하는 데에는 브로카의 명성과 그의 생생한 임상 보고서, 그리고 특히 탕과 를로를 발견한 행운이 큰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