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를 통해  현대문명의 위기를 진단해 보고자 하는 토론문제입니다.

토론에 관한 발문과 관련 논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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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샘 논술 배움의 숲 -유유자적 도반 논술문 모음

주제 : 현대과학기술문명 성찰   2006년 3월15일


1. 정혁수

  현대과학기술을 많이 발전하였다. 옛날에는 꿈만 꾸고, 생각만 하던 것들을 실제로 할 수도 있게 된다. 우리는 무조건 현대과학기술의 발전을 긍정적으로 보면 안 된다. 우리에게 도움을 많이 주는 반면 부정적면도 있다. 현대과학기술은 우리 인간이 더 오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인간이 덜 아프면서까지 수술을 할 수 도 있게 되었다. 예를 들자면 남의 내장을 나에게 옮기는 수술까지 가능해 졌다. 무언가에 긍정적 면이 있으면 부정적면이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자면 도덕적 문제와 인간 정체성이 문제가 된다.

  현대의학이 나갈 수 있는 방향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현대의학은 우리 인간에게 도움을 주면서 도덕적 문제와 인간 정체성을 건드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남을 살리기 위해 장을 자발적으로 본다면 도덕적으로 정당한 행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에게 줄 생각도 없는데 오직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강제로 가지고 간다면 도덕적으로 정당한 행의라고 볼 수 없다. 그리고 동물들이 많이 복제가 됐었다. 예를 들자면 개, 소, 늑대 등의 동물들을 복제를 했었다. 그 다음으로 인간복제를 시도했었지만 사람들은 인간 정체성의 문제가 있다면서 반발이 거셌다. 그 이유는 우리 인간은 각자 만의 개성이 있는 특별한 존재이다. 그 특별한 존재를 특별하지 않은 존재를 만든다는 것은 옳지 않다.

  현대의학은 사람들에게 많이 도움을 주면서 인간의 정체성을 지키며 도덕적으로 정당한 일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면서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도덕과 인간의 정체성에 불편을 끼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2. 김가온

오늘도 습관적으로 발걸음은 병원으로 향하고 있다. 타이레놀을 비타민이라도 되는 듯 하루에 한번씩은 꼭 먹는다.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과 함께 병원에 다녀오면 다 나을 수 있다는 것처럼.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비단 나뿐이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현대인들의 머릿속에는 현대 과학기술은 위대하며 현대 의학기술은 어느 병이든 다 고칠 수 있다거나, 혹은 상태를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병원에 다녀오면서 몸 안에서의 눈에 보이는 병의 호전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무엇을 더 얻어 올 수 있을까.

현대인이 습관적으로 병원에 다녀오는 것 또한 일종의 병이다. 대범함과 믿음과 죽음에 대한 의연함이 극히 부족함으로써 생기는 병인 것이다. 현대 의학은 인간을 존중하는 철학이 남아있지 않다. 단지 어떠한 기술이 최첨단이고 어떠한 것들이 이론적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들어맞아서 치료가 완성될 때, 그 기점을 최고로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개발된 의학으로 인해 평균 수명이 연장되었다는 이점도 있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잃고 있다. 지금 우리시대에는 의학에 인간을 존중하는 철학을 도입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진정으로 사람을 위하고 인류를 위해 단기적인 병의 치료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무언가를 생각해야한다는 것이다. 의사들은 단지 자신의 기술을 자랑하기 위해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병을 치료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외적인 것들을 하나하나 생각하며 환자를 대해야 한다.

인간은 분해하고 조립할 수 있는 기계가 아니고 질병은 물질적 대상이 아니다. 질병을 물질적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그것을 치료해 나간다면 분명 생명의 연장이라는 한 측면에서만의 이점을 가질 수 있겠지만, 루소의 말처럼 인류 전체에게는 유해한 것이 될 수 있다. 육체적으로 건강한 삶만이 건강한 삶은 절대로 아니다. 사람들은 보통 병원에 다녀오면 그들의 정신마저도 편안해 지고 치유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이나, 왜 그들이 잃는 것들이 그리 많은지를 생각하지 못하는지 납득할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현대사회. 시설과 의사들의 납득할 수 없는 권위로만 똘똘 뭉쳐져 황금만능 주의적 의학은 더 이상은 필요 없다. 우리는 의학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잊고 살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의학에서도 나타나는 것일까. 가난한 자들은 일차적인 병의 예방조차 하지 못하고 있으며 하찮다고 생각하는 감기로 죽는 사람들도 여럿이다. 시설과 권위는 조금 미뤄두고 만인을 위한 의료를 행해야 하지 않을까.

이상 내가 생각하는 현대 의학의 방향을 제시해 보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간을 존중하는 철학을 의학에 조금 더 많이 가미시키는 것. 그리고 의료 그 이상의 것을 갖고 도덕적인 무언가를 해내는 것을 우리 사회는 원하고 있는 것이다. 시설과 이론, 공식과 무조건적으로 세분화되어 그 의미를 잃어버린 의학이 아닌 참 의학.

3. 조재민

현대 의학은 꾸준히 발전하여왔고 예전에는 어찌할 방법이 없던 많은 불치병, 난치병을 치료하고 있다. 이에 따라 평균 수명이 연장되고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의학에 의지하고 죽음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정신적 건강을 파괴하고 있다. 육체를 치료받는 대신에 우리의 용기를 죽이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의학 기술을 사용하는 것 자체도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예를 들자면 뇌사자 문제가 있다. 뇌사자를 모든 뇌의 활동이 정지되었으므로 죽은 것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숨은 쉬고 있으므로 산 것으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뇌사자를 죽은 것으로 본다면 안락사 시키거나 자연사하도록 내버려 두어야한다. 만약 살아 있는 것으로 본다면 산소 호흡기를 이용해 생명을 유지 시켜야 한다. 이에 대한 논쟁이 상당히 치열했으나 지금은 다소 누그러들었다.


따라서 현대 의학은 이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선 도덕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기술은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되며 사회적인 논의를 통해 이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내야 한다. 자칫 잘못 사용할 경우 한 사람의 인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 도덕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효과와 부작용이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기술 또한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금해야 한다. 이런 기술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거나 평생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물론 기술을 모두 일일이 검증하고 논의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과 기타 피해를 생각 할 때, 우리는 이런 시간을 아까워하지 말고 모든 의학 기술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할 것이다.



4. 전재연   현대의학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

요즈음 현대의학의 발전추세는 눈부실 정도로 발전하고 있고,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현대의학이 발전에 익숙해지고 있다. 현대의학이 우리에게 주는 편리함은 없어서는 안 될 용이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추세이다. 콘텍트렌즈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안경의 불편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콘텍트렌즈를 껴서 안경의 불편함을 해소했다. 그러나 드림렌즈가 출시되면서 밤에만 렌즈를 끼고 낮에는 렌즈를 끼지 않아도 시력이 좋아지는 렌즈를 착용하면서 렌즈의 불편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했다. 그런데 얼마 안 있고, 라식수술이 보급되면서 간단한 레이저 시료만으로 안경, 렌즈가 필요 없는 의학기술을 이뤄낸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삶은 훨씬 편리해 졌지만 과연 이것이 우리에게 미치는 피해는 무엇인지, 의심해 봐야 하지 않을까?

인류의 의학발전을 통해 현대의학이 가져오는 도덕적인 함의와 또 인의 정체성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과연 도덕적인 의학이란 무엇인지, 인간의 정체서 문제가 확립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글 (가)와(나)에서는 의학이 우리에게 미치는 도덕적인 함의와 인간의 정체성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어느 상태에 이르러 시술하는 게 과연 도덕적으로 정당한 행위인지, 의학으로 육체만 고쳐질 뿐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지 못ㅎ게 되는 의학은 인류에게 유해할지를 지각해야 한다.

장기 적출에 관하여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자신이 죽으면서 정말로 남에게 자신의 일부를 기증해서 사회적으로 봉사하고 싶을 때 도덕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볼 수 없는 행위는 장기매매이다. 글 (가)에서 제시된 바가 있듯이 장기는 시신이 죽었을 때 비로소 떼어낼 수 있다고 문제를 제시했다. 그러나 장기매매는 당장 돈이 필요한 일반인들까지 죽는 위험을 무릅쓰고 하나쯤 떼어내도 되는 장기들을 팔면서 장기매매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혼란스러워 지고 있다.

현대의학은 기술이 뛰어나고 편리하다는 점에서 보면 매우 좋지만 반대로 볼 때 문제점들도  많았다. 인간의 정체성을 무시하고 육체만 살아있는 인간은 현대사회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문제가 심각하다. 인간의 본질을 깨닫고 도덕적으로 현대 의학을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현대의학의 문제점과 좋은 점의 절충점을 찾아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 나감으로써 현대사회의 의학을 더욱 풍요롭게 발전시켜 나가야하다. 또한 억지로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거나 편리함만을 추구하려 든다면 역순이 발생할 수 있음을 고려해서 의학을 발전시켜 간다면 훨씬 더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하게 되는 길이 될 것이다.  

5. 조현기
homepage http://www.cyworld.com/butterdak
title 현대과학기술 발전을 바라보는 태도
  

요즘 황우석교수의 줄기세포 논란으로 인해 우리나라 과학계와 의학계 그리고 종교단체에서 많은 논란이 있다. 우리나라 과학에 커다란 오점을 남겼고, 줄기세포로 인해 병을 치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고, 비록 수정란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줄기세포를 얻는 과정이 인간복제의 단계와 앞부분이 같다는 점에서 종교계의 비판을 받고 있다. 여기서 핵치환기술을 이용한 난자를 하나의 생명으로 보느냐 마느냐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크다. 줄기세포 논란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발전하는 현대의학은 여러 가지 면으로 인간의 도덕적 규범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아무리 의학적, 과학적 이론이 완벽하다고 할지라도 그 이론을 사전 실험 없이 바로 환자들에게 사용하는 것은 안될 일이다. 그래서 의학자들은 임상실험을 한다. 여기서 임상실험을 한다는 것 자체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어떻게 사람을 실험대상으로 삼을 수 있겠는가? 생명에서는 가치의 높낮이가 없다. 절대다수를 위해서 소수를 실험대상으로 쓰는 것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다수결의 원칙에 절대로 적용될 수 없는 이론이다. 우리는 현재의 기술을 무조건 따르기 보다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객관적인 시점으로 의학기술과 인간의 도덕성 간의 절충점을 찾아내야 한다. 예를 들어 의학자들이 의약품이나 치료기술에 대한 임상실험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 하는것 등이 있을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약에 찌들어 살게 된다. 갓 태어난 아기는 예방접종을 맞아 왼쪽 어깨 부근에 평생가도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긴다. 그 후 청소년이 되기 전까지 학교에서, 집에서 수많은 예방접종을 맞아 몸에 항체를 형성한다. 여러 가지 예방접종으로 인해서 우리는 여러가지 질병에 대한 내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예방접종이 없었던 조선시대에도 우리 조상들은 잘 살아왔다. 비록 역병이 돌면 그 주변 마을사람들이 모두 병에 감염되곤 했지만 그건 음식저장기술의 부족이나 식수오염 같은 근본적인 기술의 부재로 인한 현상이었다.  반면, 현대사회에서는 병이 병을 낳는다. 질병에 대한 치료제를 끊임없이 나오지만 질병의 수는 우리 조상들이 살던 시대보다 엄청나게 많다. 바이러스들이 항체에 대항해서 끊임없이 진화하여 새로운 돌연변이 바이러스로 성장한다. 이런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개발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약물에 의지하기 보다는 몇 천년간 질병과 싸우고 이겨왔던 인간의 몸을 믿어 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와 과학은 점점 빠른 속도로 발전해 나가고 우리 인간의 생활은 날로 윤택해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사회와 과학의 발전을 이룬 우리들은 아직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끊임없이 발전하는 과학과 의학에게 끌려가는 안일한 태도를 보인다면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세계에 의해서 자멸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발전한 기술과 약품을 인간의 도덕성에 맞게 포용할 수 있는 정신적 성숙을 이루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