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음     바 꾸 기  02

                                             가방하르제야 지음.  박영철 옮김


  주제 41: 어떤 마음의 원리도 깔보지 말고 무엇이든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라


  우리는 자기 능력에 가장 잘 맞는 마음공부의 체계를 따라야 하며 다른 전통을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각기 다른 성질의 사람들이 각기 다른 전통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따르는 체계와는 다른 전통을 따른다고, 남을 그가 택한 길에서 실망하게 하며 비판하고 의심을 품게 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다른 종교 체계를 비웃고 헐뜯는다면 그것은 다르마를 저버리는 심각한 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종교를 차별하는 것은 성인들을 죽이고 갠지스강의 모래알처럼 많은 종교의 기념물들을 파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쁘다”



  주제 42: 삼세(三世) 동안에 모아진 덕은 무엇이든지 모두 더없이 큰 깨달음에 바쳐라.모든 중생들을 위해 복을 나누어 주어라.


  우리가 하는 능숙한 행위들을 우리 자신과 또한 모든 중생들의 성불(成佛)을 위해 바치는 것은 마치 누군가에게 그것들을 보관해달라고 청하는 것과 같다. 만약 우리가 능숙한 행위의 덕을 이 최고의 목표에 바치지 않는다면 거기에서 비롯되는 복이 그저 세속적인 이익으로 끝나버리거나, 아니면 노여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의해 아깝게 파괴되어 버리고 말 수도 있다.


주제 43 : 항상 일곱 갈래의 기원과 길을 가려는 뜨거운 소원을 올려라.

  우리는 매일 일곱 갈래의 기원이라 불리는 예비수행을 해야 한다. 이것은 제단에 물그릇 일곱 개를 올리는 것으로 상징된다. 마음을 지닌 모든 존재는 안으로 부처의 성품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감정의 갈등과 어리석음이라는 장막에 가려져 있지만, 일곱 갈래의 기원 속에 담긴 방법으로 그것을 드러나게 할 수가 있다.

   일곱 갈래의 첫 번째는 몸을 내던져 절하기인데, 이것은 보통‘세 가지 가장 귀한 보배’속으로 피난해 들어가는 일과 이어진다. 절을 함에 있어서는 마음이 그 육체적 동작이나 회수(回數)를 헤아리기에 머물게 하지 말고, 우리가 그렇게 하는 동기에 마음이 모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절을 하는 데는 무릎과 손과 이마를 땅에 대는 반절을 하거나 온몸을 완전히 던져 펴는 온 절을 한다. 그리고는 재빨리 몸을 일으키면서 이것은 바로 세상의 미혹과 비참에서 재빨리 몸을 뺌냄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절하기는 자만심을 꺾는 가장 강한 무기이니 이것은 바로 굴복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아띠샤는 이 수행을 크게 강조했다. 모든 특별한 예비수행 가운데서도 이 것은 장애를 씼고 복을 쌓기에 가장 효과적인 수행이다. 우리들 자신의 스승이 가르쳐주신 바에 따라 ‘참회의 수트라’같은 글이나 말을 절을 하면서 욀 수도 있다.

   둘째 갈래는 공양 올리기 이다. 이것은 인색함을 물리치는 강력한 무기이다. 때에 따라 특정의 공양을 바칠 수도 있으나 대개는 깨끗한 물, 꽃 촛불, 향, 과자, 과일, 향수 등 무엇이든 아름답고 깨끗한 것을 올린다. 그러나 그것들은 여덟 가지 세속적 감정에 걸림이 없이 고른 것이어야 한다.

  셋째는 참회이니 이것은 세 가지 괴로움의 근원 곧 노여움과 애착과 어리석음을 무찌르는 힘이다. 먼저 우리는 자신이 저질러온 그릇된 행위들에 대한 강한 후회를 느끼고 마치 독을 마신 것처럼 느낀다. 그리고는 독을 마셔본 사람이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맹세하듯 미숙한 행위를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을 다짐해야 한다. 다음에는 진지하게 의지처를 향하여 보리심을 일깨워내야 한다. 우리가 온전치 못한 행위를 저지르는 것은 오직 우리의 의지처인 귀한 세 가지 보배에 대해서이거나 다른 중생들에 대해서이니, 의지처로 진지하게 향하는 것과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이 그 허물을 씻어주는 것이다. 다음으로 절을 하거나 바즈라사트바(金剛薩埵)의 명상을 함으로써 미숙한 행위를 저지르려는 본능을 말한다.

기뻐하기가 네 번째 갈래이다. 이것은 바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착한 행위를 기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질투를 무찌르는 힘이다. 진정으로 기뻐하면 다음 생에 아주 좋은 얼굴을 타고나게 된다고 한다. 성자들과 깨달은 이들의 얼굴이 아주 보기 좋은 까닭이 이것이니, 그들은 과거에 다른 사람의 착한 행동을 보면 아주 기뻐하여 마지 않았고 항상 자비를 내뿜었던 것이다.

  다섯째 갈래는 깨달은 이들에게 법(法)의 바퀴를 돌리기를 계속하며 가르침을 베풀어 달라고 요청하기이다. 이것은 우리의 앎을 부추겨 주니, 우리가 참모습의 깨달음이 부족한 어리석을 무찌를 마음의 칼을 마련하는 것은 다르마(法)를 들음으로써인 것이다. 마치 등잔에 불을 켜려면 성냥이 필요한 듯이 안에 들어있는 지혜에 불길이 타오르게 하기 위해 정신적인 스승들의 이끎이 필요하다. 이런 실천들이 그릇된 견해를 고집하고 자기가 아는 것만을 내세우는 미숙한 행위를 막아주는 것이다.

  여섯째는 깨달은 이들에게 오래 살며 돌아가시지 말라고 부탁하기이다. 이것이 스승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는 따위의 마음의 스승들에 대한 미숙한 행위를 없애주며 또한 우리 자신의 삶을 길이를 늘려주는 결과가 된다. 그러기에 이 수행은 ‘불멸의 감로’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끝으로 우리는 자신이 얻은 복을 자기 자신의 불지(佛地)에 이르고 모든 생명있는 존재들이 괴로움에서 풀려나도록 바치는 일이다.

  이 모두를 마친 뒤에 우리는 또한 길을 따르려는 소원의 기원을 드려야 한다. 다음 삶에는 보다 영향력 있는 자리로 환생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해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를테면 다음 삶에는 ‘가르침의 왕’ 곧 온 나라의 일들을 항상 백성들의 이익을 위해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비추어 판단하는 지도자로 태어나기를 바라는 소원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