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서 남주자 다시보기
미술 작품, 내 눈으로 읽기
- 『위험한 미술관』
대상: 고등학교 2학년
시간 : 3시간
함께 읽은 책 : 위험한 미술관(조이한, 웅진 지식하우스)
참고자료 :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이택광 / 아트북스)
『센세이션展』(이명옥 / 웅진지식하우스)
『미학오디세이』(진중권 / 휴머니스트)
학습목표
1.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맥락 속에서 미술 작품을 이해한다.
2. 미술작품 감상과 이해를 통한 비판적 사고력을 기른다.
3. 우리 삶에서 예술이 갖는 본질적인 가치에 대해 생각해본다.
미술 교과서에는 “국민 공통 기본 교육 과정으로서의 미술 교육은 다양한 미술 활동을 통하여 심미적 태도와 상상력, 창의력, 비판적 사고력을 길러 주고, 미술 문화를 이해하며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전인적 인간을 육성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다양한 미술 활동을 통한 상상력과 창의력 고양’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미술과 비판적 사고력의 조합은 영 낯설다. 다양한 미술의 기법을 외우고 서양 미술의 중요한 사조와 각 사조의 대표적 미술가들과 그들의 대표작을 잘 연결시키는 것만이 미술공부라고 여겼던 터에 비판적 사고력이라니, 도대체 어떻게 미술을 통해서 비판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일까?
그러나 모든 예술 작품이 그 사회의 역사, 경제, 정치, 문화적 환경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생각해 보면 미술 작품 감상과 이해를 통한 비판적 사고 또한 충분히 가능함을 짐작할 수 있다. 미술 작품에는 작가가 살던 당대의 사회상이 어떤 식으로든 반영되어 있고 작가는 자신이 살던 시대의 고민과 그 속에서 부대끼는 자신의 내면을 작품에 담아낸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작품들을 전시회에서 만나고 학교에서 배우며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안다’는 것은 이른 바 ‘명작’이라고 불리는 미술 작품들에 대한 무조건적, 무비판적 수용이 아니라 작품 속에 담긴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읽어내어 작품이 갖는 함의를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단편적 지식 습득이 아닌 통합적 이해를 통해 미술 작품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가능하고 창의적 사고력 또한 증진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수업은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선정하여 그것이 왜 미술사에서 의미를 갖는지, 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자유롭게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수업의 텍스트로 선택한 『위험한 미술관』은 카라바조, 프리드리히, 마네, 뭉크, 뒤샹, 워홀, 보이스 등 근대 이후 작가들의 작품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중학생 고학년부터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특히 각 장의 도입부가 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어 아이들이 부담을 갖지 않고 주제에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더 흥미로운 수업을 위해서는 책에 실린 그림들을 더욱 자세히 볼 수 있는 화집을 준비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마음열기
지루한 중간고사를 치룬 아이들은 좀 지쳐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라고 권해준 책인데도 끝까지 못 읽은 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다양한 화집들과 자료를 함께 보면서 익숙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작가들의 세계를 탐험하는 동안 아이들은 다른 어떤 시간보다 즐겁게 수업에 임했다.
·자, ‘위험한 미술’이라, 좀 낯선 주제인데, 먼저 책을 읽은 소감을 말해볼까?
- 재미있었어요. 근데 잘 모르겠는 부분도 있어요. 좀 어려워요.
- 미술 작품에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어요. 특히 마네 그림은 아무렇지도 않게 봤었는데 알고 보니까 좀 다르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해요.
- 제목을 참 잘 지었어요. 뭔가 우리가 모르는 게 있는 것 같고. 말하려는 주제를 딱 보여주는 것 같아요.
- 현대 미술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워요. 특히 보이스 같은 사람은 지금 생각해도 미친 것 같은데⋯⋯.
·그래, 미술이 위험하다니 이상한 말이지. 미술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배웠고 또 그렇게 생각했는데 말이야. 하지만 지금 우리가 아름답다고 혹은 명작이라고 인정하는 작품들 모두 당대에도 그렇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라고 해. 오히려 비도덕적이라고 손가락질 받거나 사회 체제를 전복하려는 의도를 숨기고 있는 위험한 것이라고 비난받았다고 하지. 보이스의 작품이 아직도 낯설고 괴상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아직 우리가 그런 작품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뜻인가? 하나씩 천천히 감상하고 이야기하면서 풀어가기로 하자.
*펼치기
1. 미술사 최고의 스캔들 메이커 - 마네
·먼저 마네의 이야기를 해볼까? 마네라면 너희들도 잘 알고 있지?
- 모네 친구라는 거랑 인상파 화가라는 건 알았어요.
- 마네 그림을 교과서에서 보기는 했는데 무엇이었는지 기억은 안 났어요. 그런데 책 보니까 <풀밭 위의 식사>였던 것 같아요.
·맞아. 마네는 모네와 함께 초기 인상파를 대표하는 화가지. <풀밭 위의 식사>는 <올랭피아>, <피리부는 소년> 등과 함께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이고. 그런데 당대에는 <풀밭 위의 식사>나 <올랭피아> 모두 굉장한 비난을 받았다고 하지. 그 이유는 무엇이었지?
- 옷을 다 벗은 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똑바로 쳐다보는 것이 뻔뻔스럽게 느껴졌대요.
- <올랭피아>는 당시에 흔했던 창녀의 이름인데 창녀를 그린 것도 기분 나빴대요. 그 전에는 주로 신화에 나오는 여신을 그렸는데 모델이 너무 천하다는 거죠.
- 색채를 사용하는 방법이 그 전까지의 그림들과는 다르다는 것도 비난받았어요. 그런데 왜 꼭 전과 같은 방법으로 그려야 되요? 그건 좀 웃기는 것 같아. 그럼 발전이 없잖아요.
- 솔직히 요즘 그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 그 때에는 굉장한 충격이었나 봐요.
·좋아, 그럼 우리 두 그림을 비교해보기로 하자. 마네의 <올랭피아>와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보고 어떤 작품이 더 마음에 드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솔직히 말해보자. 조금 야한 듯하지만 순수한 예술작품으로 감상하는 거야.
마네 <올랭피아>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 전 티치아노 그림이 좋아요. 더 자연스럽고 부드럽고 잘 그린 것 같아요.
- 저도요. 마네 그림은 저를 째려보는 것 같아서 기분 나빠요. 그리고 흑인이 등장하는 것도 좀 이상해요. 티치아노 그림은 보기 편해요.
- 저도 티치아노 그림이 더 나아요. 책에서 설명을 읽었어도 이상하게 이 그림은 불편해요.
- 저도 티치아노 그림이 더 잘 그린 것 같은 데 <올랭피아>는 좀 남다른 데가 있어서 그것도 괜찮아요. 좀 현대적인 느낌도 들고.
·두 그림에서 색깔의 쓰임이나 구도는 어떤 것 같아?
- 티치아노 그림이 더 자연스러워요. 색깔도 은은하고. 마네 그림은 뭔가 딱딱하고 어색한 것 같아요.
- 마네 그림은 흑백을 일부러 대비시킨 것 같아요. 그래서 까만 고양이랑 흑인도 등장시킨 것 같고. 책에서 보면 구도도 일부러 2차원적으로 설정했대요. 전통적이고 이상적인 미에는 더 이상 관심 없고 자기 식대로 그리겠다는 배짱이 있는 것 같아요.
- 마네는 다른 그림에서도 일부러 색을 두드러지게 사용했대요. 그래서 전통적인 그림들과 달라졌고 사람들이 싫어하게 됐다는데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낯설고 이상한 것을 보면 일단 좀 피하고 싶어요.
- 난 새롭고 이상한 게 좋은데. 그런데 마네 그림이 비난 받은 건 색깔 때문이라기보다 자기 시대의 경험을 담았기 때문이라는 건 무슨 뜻이에요? 예술 작품은 모두 그 시대를 반영하는 것 아닌가요?
·글쎄, 예술작품은 분명 시대의 산물이지만 반드시 그 시대를 투명하게 반영하지는 않지. 사회구조가 예술작품에 분명히 영향을 끼치기는 하지만, 사회구조의 기제들이 예술을 억압하거나 왜곡시키기도 하지. 그래서 그림이 드러내는 세계 혹은 그림이 감추고 있는 세계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읽어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겠지.
마네가 활동했던 19세기는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전쟁을 예비하는 폭력적인 축적을 한창 진행하던 시대여서 근대 도시에는 삶의 양식이 파탄을 맞은 몰락한 군상들이 넘쳐나고 있었대. 넝마주이, 거지, 소매치기, 몰락한 부르주아, 그리고 마네의 그림에 등장하는 매춘부까지. 당시 파리의 근대화를 추진하던 세력들에게는 이들이 얼마나 눈엣가시였겠니. 그런데 마네가 그들을 그림으로 그려낸 거야. 당대 사람들이 그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하층민, 노동 계급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냈으니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불편했겠지. 게다가 앞에서 본 것처럼 마네의 <올랭피아>는 전통적인 비너스 그림 구도에 창녀를 버젓이 등장시키고 그 창녀는 그림을 보는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잖아. 마치 “당신이 나의 몸을 사러 온 사람이군요, 당신이 잘 알고 있는 신화 속 여신이 사실은 곧 저랍니다.”라고 말을 걸듯이 말이야. 어쩌면 그 그림을 보는 순간 당시의 부르주아 신사는 거창하고 고상하게 한껏 폼을 잡고 다니지만 고작 여자의 몸이나 사러 다니는 자신의 추악한 내면을 정면으로 마주치게 된 것이지도 몰라. 그것도 자신이 무시하고 없애고 싶어 하던 하층 계급의 여자에 의해서. 어때, 화가 날 만하지?
이렇게 생각해 보면 당시에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던 매춘부를 ‘순수한’ 예술 속에 당당하게 그려 하나의 계급으로서의 여성을 드러내고 근대화로 인해 그늘로 밀려나버린 삶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마네는 참 대단한 인물이지. 자신의 그림에 대한 비난 여론 때문에 괴로워하기도 했지만 마네는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지. 그림은 마네가 산업 자본주의에 항의하는 방식이었고 이렇게 당대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마네의 그림은 당시로서는 참 위험하고 불편한 존재였을 거야.
2. 공장에서 생산한 예술품 - 뒤샹
· 자, 지금부터 만날 작가는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지. ‘뒤샹’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어떤 작품이 떠오르니?
- 변기요. 제목이 <샘>인 건 이번에 알았어요.
- 제목이 너무 웃겨요. 변기가 샘이면 변기에 있는 물은 샘물인가? 아, 더러워.
- 샘은 물이 솟아나는 건데 변기는 물이 빠져 나가는 거니까 이름도 일부러 거꾸로 붙였나 봐요.
- <L.H.O.O.Q>도 웃겨요. 모나리자에 수염이 있으니까 남자 같아요. 잘 어울려요.
- 근데 뒤샹의 <샘>처럼 이미 만들어진 걸 작품이라고 하면 세상에 작품 아닌 것이 어디 있어요? 아무 거나 사다 놓고 이것도 작품이라고 주장하면 그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잖아요.
- 맞아. 길거리에서 돌멩이 주워다 놓고 이것도 작품이다 하면 작품이 되는 거겠네.
·변기가, 그것도 자신이 만들지 않은 기성품이 예술 작품일 수 있다는 생각은 뒤샹 이전엔 없었던 것이겠지. 이미 만들어진 변기를 자신의 작품이라고 주장한 뒤샹의 근거는 무엇일까?
- 일상의 사물들이 모두 예술 작품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예술작품은 사회적 맥락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대요. 그런데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 작가가 ‘이건 작품이다’ 라고 말하면 그게 작품이라는 뜻 아닌가요?
- 그게 아니라 수많은 변기 중에서 작가가 선택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 작품이 될 수 있다고 하던데요. 원래 변기로 쓰이는 것이지만 예술가가 작품으로 선택해 줌으로써 원래의 용도와는 다른 의미를 갖게 되니까 그게 바로 예술이 되는 거라고요. 전처럼 장인적인 솜씨나 기량에 의해서 작품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나오게 되는 과정이 바로 예술 작품이 되는 거래요. 책에서 그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그래. 사실 뒤샹은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샘>을 출품했다고 하지. 그 후에 <샘>이 논란의 대상이 되니까 뒤샹은 <샘>의 전시를 거부한 근거를 집요하게 추궁하는 글을 써서 미술작품의 예술적 가치 판단에 관한 주최 측의 통념을 비판하며, 미술의 존재와 존재의 방식에 관한 대단히 중요한 문제들을 피력했다고 해. 뒤샹의 말을 들어보자.
“어떤 이들은 그것을 부도덕하고 상스럽다고 말하지만, <샘>은 부도덕한 것이 아니다. R. Mutt가 그것을 직접 제작했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는 기성제품에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으며, 그것의 본래 기능과 의미를 소거하여 제시했다. 그는 이 사물을 통해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것이다.”
(The Blind Man이라는 잡지에 실린'미국인들에게 보내는 공개장'이라는 제목의 뒤샹의 글)
뒤샹 <샘>·어때? 뒤샹의 주장에 공감할 수 있니?
- 그럴 듯하기는 한데요, 그래도 좀 억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럼 예술가가 모든 것들에게 예술품의 지위를 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잖아요. 예술가가 신도 아니고 좀 거만한 것 아닌가요?
- 그래도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했으니까 뒤샹 말도 맞는 것 같아요.
- 그럼 사물에다 원래의 용도와 다른 의미를 부여하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거겠네. 그게 말이 돼?
- 처음엔 뒤샹이 변기를 예술품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예술가가 신 같은 존재라고 말하는 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아무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그러니까 예술가도 별 거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 같은데 어떤 게 맞는 거예요?
·글쎄. 뒤샹은 양 쪽 다 주장하는 것 아닐까? 기존의 선택받은 천재적 예술가상을 파괴하는 시도이자 사물에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극단적 창조주로서의 예술가상을 다시 세우는 양면성 말이야.
-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수염 그린 모나리자를 그린 <L.H.O.O.Q>를 보면 기존의 권위에 대한 도전인 것 같기는 해요. 감히 모나리자에다가 장난치는 걸 상상하다니 참 대단해요.
- 그렇지만 나 같은 평범한 애가 모나리자에 수염 그리면 장난친다고 혼만 날걸요. 전에 미술 시간에 스님 얼굴에 아이에게 젖먹이는 사진 오려 붙였다가 선생님한테 혼났어요. 장난친다고. 뒤샹이 했으면 난리 났을 거야. 새로운 예술작품이라고.
뒤샹 <L.H.O.O.Q>
·아주 기발한 작품을 만들었었구나. 뒤샹이 보았으면 칭찬했을 텐데. 생각해 보면 뒤샹의 작품 활동을 통해 기존의 미술 개념에 일대 변화가 일어난 거지. 뒤샹은 공산품에 불과한 변기를 예술작품의 범주로 끌어들이고 절대적 권위를 지닌 <모나리자>를 향한 대중들의 맹목적 숭배를 비웃으며 예술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 거야. 그럼 뒤샹의 이런 시도는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 아무나 예술 작품을 만들 수도 있고 아무리 유명한 작품이라도 내 맘에 안 들면 가치가 없다고 말해도 된다는 것 아닐까요?
- 좁게 생각하지 말고 좀더 폭 넓게 예술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 같아요.
-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는 것 같아요.
- 특별히 무슨 생각을 하라는 것이 아니고 네 맘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라는 것 같은데요.
·그래. 모두 일리가 있구나. 뒤샹은 미술의 전통적 가치와 그것을 향한 대중의 통념을 냉소적으로 비판했지만, 절대적인 가치의 숭배에서 벗어나, 대중 스스로 미술문화의 주체가 될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예술가들이나 대중들이 뒤샹의 새로운 미술 읽기에 영향을 받았다고 해. 미술이 기존의 무거운 권위를 떨쳐버리고 가볍고 자유로운 세상에서 스스로의 판단을 믿는 자유로운 대중과 만나게 된 것이지. 어찌 보면 관객도 수동적인 수용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고 고민함으로써 예술 활동에 동참하는 의무가 생긴 것이라고도 볼 수 있어. “예술은 사회적으로 공인해 주는 것이다”라는 뒤샹의 말은 예술에 대한 정의가 내려져 있는 것은 아니며 예술은 그때그때 그 사회에서, 관객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공인해 주는 관습적인 것일 뿐이라는 뜻일 거야. 예술이 심오한 본질을 가진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습일 뿐이라는 뒤샹의 발언은 예술적 창의력을 억압하는 기존의 관념을 뒤엎음으로써 예술의 개념을 활짝 열어젖힌 것이라고 볼 수 있지. 하지만 기존의 예술관을 전복시켜버리는 뒤샹의 시도는 당대에는 불온한 시도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아.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것에 비해 뒤샹의 생전 활동은 대중은 물론 미술 평론가들에게도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다고 하니 지금 뒤샹이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하면 시대를 너무 앞서간 작가의 비애가 아닌가 싶기도 해. 자, 이제 예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기존의 미술관 중심의 예술관을 파괴함으로써 관습적인 맥락을 파괴한 뒤샹의 후계자를 한 명 더 만나보자.
3. 내가 예술이다 - 요셉 보이스
요셉 보이스((1921~1986)
·이 책에서 가장 현대 작가인 보이스를 만난 느낌이 어땠니?
- 이해할 수 없어요. 제일 이상했어요. 특히 토끼를 끌어안고 다니는 게 무슨 작품이 되는지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워요.
- 코요테랑 함께 생활하는 것도 작품이라고 하니까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그래도 보이스의 예술관은 멋있는 것 같아요. 사회적 무당이라는 표현도 멋지고요.
·예술가가 사회적 무당이라는 표현은 무슨 의미일까?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수 있을까>- 예술은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고 사회적인 기능을 가져야 하고, 예술가는 예술과 사회를 연결하는 고리라는 뜻이에요.
- 예술을 통해 사회를 인식할 수 있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고 하던데요.
·그래. 보이스는 지금까지 만난 어떤 예술가보다 독특한 위상을 갖고 있지. 아직 우리에게 낯선 작가이기도 하고 말이야. 보이스의 작품 세계를 통해서 이번엔 예술의 본질적 가치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보기로 하자.
·아까 너희가 말한 것처럼 보이스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행위 예술 활동을 주로 했지. 보이스의 행위 예술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수 있을까>라고 해. 얼굴에 꿀과 금박을 바른 보이스가 죽은 토끼를 팔에 안고 갤러리를 돌아다니면서 토끼와 대화를 시도하는 모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나치 치하에서 공군에 복무한 개인적인 경험이 큰 영향을 주었대요. 전쟁의 가해자로서 자신이 할 역할을 찾아 전후 독일인들의 죄의식과 피해의식을 치유하려던 것이라는데요. 솔직히 그런다고 무슨 위로를 받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 그럴싸하게 설명하니까 그냥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만일 제가 저런 걸 직접 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요.
·그래. 보이스의 행위예술이 우리 같은 일반인에게 쉽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지. 하지만 우리가 히틀러 치하에서 전쟁을 치른 독일 국민이라면 전쟁의 광기와 파괴에서 깊은 상처를 받고 어디에서든 상처를 치유 받고 싶었을 거야. 하지만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독일 국민이 쉽게 상처를 드러내고 도움을 청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보이스는 이러한 시대적 아픔을 감지한 예술가였던 것 같아. 부활을 상징하는 토끼를 안고 소곤거리며 대화를 시도함으로써 현대 독일 사회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고 인간 스스로 부활을 위한 노력을 통해 삶의 완성을 추구하자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실제 독일 관객들은 보이스의 뒤를 조용하게 따라 걸으며 깊은 생각에 침잠한 모습을 보였다고 하지. 화해와 치유를 시도하는 보이스의 진정성이 낯선 예술형식을 넘어서서 대중들에게 전달된 감동적인 순간이었을 것 같아.
·자, 이번엔 보이스의 예술이 또 어떤 영역으로 확대되었는지 살펴보자. 보이스는 사회적 치료자로서의 무당을 넘어 현실적인 사회 개혁가로서 직접 정치 활동을 하기도 했다고 해. 학생 정당을 설립하기도 하고 직접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토론을 주도하면서 사회적 공론을 불러일으켰다고 하지. 도대체 이런 활동이 예술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일까?
- 예술이 정치라든지 사회적인 것들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니까 사회를 바꾸는 것도 예술가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 하지만 예술가가 사회적인 일이나 특히 정치에 관여하면 예술이 정치의 수단이 되어 버리는 것이잖아요. 그건 위험한 것 아닌가요?
- 그렇지만 보이스가 자기 이익 때문에 정치를 하거나 다른 정치인들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주장했으니까 괜찮은 것 같은데요.
- 예술가도 사회의 구성원이니까 사회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 같아요. 솔직히 사회는 상관하지 않고 고상한 척 하는 예술가가 더 문제인 것 아닌가요?
- 맞아. <7000그루의 떡갈나무 프로젝트> 같은 건 평범한 예술가는 생각조차 못할 거예요.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의식의 결정판인 것 같아요.
·그래. 보이스는 삶이 곧 예술이고 실천이 곧 작품이라는 입장을 견지한 작가이고 일상에서 살아가는 보편적 행위에서 예술을 찾아내고자 노력한 작가라고 해. 보이스의 정치 참여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보이스는 우리 삶 자체를 거대한 순환과 소통으로 보았고 예술이 사회 속에서 소통을 도와주고 가능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대. 따라서 모든 사람이 예술가이며 사회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건전한 노력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조화로운 사회의 흐름을 도와준다면 바로 그것이 예술이라는 것이지. <7000그루의 떡갈나무 프로젝트>의 경우도 사막화되어 가는 현재의 우리 삶의 조건을 지적하는 상징적인 행위이고 예술이란 “지금, 여기”에 가장 필요한 걸 하는 것이라는 보이스의 생각이 극명하게 드러난 예라고 생각할 수 있어. 그리고 예술 활동에 대중들의 참여를 끌어들임으로써 열려있는 전시 공간인 삶 안에서의 예술적 행위에는 모든 사람들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을 호소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어. 이렇게 보면 보이스는 뒤샹이 열어젖힌 예술의 개념을 극대화한 뒤샹의 후계자라고 볼 수 있겠지. 또, “모든 사람은 예술가이고 예술은 노동의 세계에서 소외를 극복하게 해 주는 치료의 과정이면서 따뜻함의 과정”이라는 보이스의 예술관은 예술이 살 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회를 재조정하고 재형성하는 장치이며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술을 넘어 예술에 도덕적, 윤리적 접근을 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어. 예술의 놀라운 확장이 일어난 거지. 예술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기도 하고 말이야.
참고 - 보이스의 떡갈나무 프로젝트
카셀 도큐멘타 메인 전시장에 7000개의 현무암을 뿌려놓고 500마르크를 주면 현무암 하나와 떡갈나무 한 그루를 카셀시에 심게 한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는 5년 후에 완성되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오염되고 각박해지는 사회에 대한 책임감에서 생각하고 고안한 프로젝트.
*마치며
·자, 낯설거나 익숙한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간단하게 둘러본 소감이 어때?
- 재미있었어요. 잘 모르던 것도 알게 되었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 솔직히 예술은 나랑 별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런 것 같지 않아요. 특히 보이스에 대해서 좀더 알고 싶어졌어요.
- 저는 마네의 그림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지금은 정말 평범한 그림인데 당시엔 그렇게 파격적이었다는 게 신기해요.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것 같아요.
- 맞아요. 전에 전시회 가도 한 번 휙 둘러보고 나왔는데 이젠 좀 잘 봐야겠어요. 그러려면 미리 정보를 알고 가는 것이 좋을 것도 같고 아니면 뒤샹 말처럼 보이는 대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래. 관심을 가지면 비로소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아는 만큼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 예술이 우리 삶과 동떨어져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만큼 우리 삶 속에 들어와 있는 예술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사회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함께 호흡한다는 의미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 수업이 너희들의 예술적 인식 확장에 조그만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실, 예술 활동의 중요한 의미 중 하나는 기존의 편견, 통념에 도전하는 것이야. 도발적인 작품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이에 따라 인식의 확장이나 새로운 시각을 선사하는 거지. 그 동안 우리는 아름다워서 예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다고 배웠기 때문에 아름답게 인식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까지 함께 살펴본 것처럼 현대 예술은 추하거나 모호해지거나 산업화 속에서 무한하게 복제되면서 도식화된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가 주체적으로 느껴야 하는 예술로 바뀐 거야. 이제 우리는 단순한 이데아적 완전함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바라보고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생각하면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된 거지. 현대 예술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이 자유로운 사고의 확장이 바로 우리가 느끼는 아름다움이고 진정한 예술의 가치가 아닐까?
- 『위험한 미술관』
대상: 고등학교 2학년
시간 : 3시간
함께 읽은 책 : 위험한 미술관(조이한, 웅진 지식하우스)
참고자료 :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이택광 / 아트북스)
『센세이션展』(이명옥 / 웅진지식하우스)
『미학오디세이』(진중권 / 휴머니스트)
학습목표
1.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맥락 속에서 미술 작품을 이해한다.
2. 미술작품 감상과 이해를 통한 비판적 사고력을 기른다.
3. 우리 삶에서 예술이 갖는 본질적인 가치에 대해 생각해본다.
미술 교과서에는 “국민 공통 기본 교육 과정으로서의 미술 교육은 다양한 미술 활동을 통하여 심미적 태도와 상상력, 창의력, 비판적 사고력을 길러 주고, 미술 문화를 이해하며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전인적 인간을 육성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다양한 미술 활동을 통한 상상력과 창의력 고양’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미술과 비판적 사고력의 조합은 영 낯설다. 다양한 미술의 기법을 외우고 서양 미술의 중요한 사조와 각 사조의 대표적 미술가들과 그들의 대표작을 잘 연결시키는 것만이 미술공부라고 여겼던 터에 비판적 사고력이라니, 도대체 어떻게 미술을 통해서 비판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일까?
그러나 모든 예술 작품이 그 사회의 역사, 경제, 정치, 문화적 환경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생각해 보면 미술 작품 감상과 이해를 통한 비판적 사고 또한 충분히 가능함을 짐작할 수 있다. 미술 작품에는 작가가 살던 당대의 사회상이 어떤 식으로든 반영되어 있고 작가는 자신이 살던 시대의 고민과 그 속에서 부대끼는 자신의 내면을 작품에 담아낸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작품들을 전시회에서 만나고 학교에서 배우며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안다’는 것은 이른 바 ‘명작’이라고 불리는 미술 작품들에 대한 무조건적, 무비판적 수용이 아니라 작품 속에 담긴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읽어내어 작품이 갖는 함의를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단편적 지식 습득이 아닌 통합적 이해를 통해 미술 작품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가능하고 창의적 사고력 또한 증진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수업은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선정하여 그것이 왜 미술사에서 의미를 갖는지, 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자유롭게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수업의 텍스트로 선택한 『위험한 미술관』은 카라바조, 프리드리히, 마네, 뭉크, 뒤샹, 워홀, 보이스 등 근대 이후 작가들의 작품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중학생 고학년부터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특히 각 장의 도입부가 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어 아이들이 부담을 갖지 않고 주제에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더 흥미로운 수업을 위해서는 책에 실린 그림들을 더욱 자세히 볼 수 있는 화집을 준비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마음열기
지루한 중간고사를 치룬 아이들은 좀 지쳐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라고 권해준 책인데도 끝까지 못 읽은 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다양한 화집들과 자료를 함께 보면서 익숙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작가들의 세계를 탐험하는 동안 아이들은 다른 어떤 시간보다 즐겁게 수업에 임했다.
·자, ‘위험한 미술’이라, 좀 낯선 주제인데, 먼저 책을 읽은 소감을 말해볼까?
- 재미있었어요. 근데 잘 모르겠는 부분도 있어요. 좀 어려워요.
- 미술 작품에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어요. 특히 마네 그림은 아무렇지도 않게 봤었는데 알고 보니까 좀 다르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해요.
- 제목을 참 잘 지었어요. 뭔가 우리가 모르는 게 있는 것 같고. 말하려는 주제를 딱 보여주는 것 같아요.
- 현대 미술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워요. 특히 보이스 같은 사람은 지금 생각해도 미친 것 같은데⋯⋯.
·그래, 미술이 위험하다니 이상한 말이지. 미술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배웠고 또 그렇게 생각했는데 말이야. 하지만 지금 우리가 아름답다고 혹은 명작이라고 인정하는 작품들 모두 당대에도 그렇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라고 해. 오히려 비도덕적이라고 손가락질 받거나 사회 체제를 전복하려는 의도를 숨기고 있는 위험한 것이라고 비난받았다고 하지. 보이스의 작품이 아직도 낯설고 괴상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아직 우리가 그런 작품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뜻인가? 하나씩 천천히 감상하고 이야기하면서 풀어가기로 하자.
*펼치기
1. 미술사 최고의 스캔들 메이커 - 마네
·먼저 마네의 이야기를 해볼까? 마네라면 너희들도 잘 알고 있지?
- 모네 친구라는 거랑 인상파 화가라는 건 알았어요.
- 마네 그림을 교과서에서 보기는 했는데 무엇이었는지 기억은 안 났어요. 그런데 책 보니까 <풀밭 위의 식사>였던 것 같아요.
·맞아. 마네는 모네와 함께 초기 인상파를 대표하는 화가지. <풀밭 위의 식사>는 <올랭피아>, <피리부는 소년> 등과 함께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이고. 그런데 당대에는 <풀밭 위의 식사>나 <올랭피아> 모두 굉장한 비난을 받았다고 하지. 그 이유는 무엇이었지?
- 옷을 다 벗은 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똑바로 쳐다보는 것이 뻔뻔스럽게 느껴졌대요.
- <올랭피아>는 당시에 흔했던 창녀의 이름인데 창녀를 그린 것도 기분 나빴대요. 그 전에는 주로 신화에 나오는 여신을 그렸는데 모델이 너무 천하다는 거죠.
- 색채를 사용하는 방법이 그 전까지의 그림들과는 다르다는 것도 비난받았어요. 그런데 왜 꼭 전과 같은 방법으로 그려야 되요? 그건 좀 웃기는 것 같아. 그럼 발전이 없잖아요.
- 솔직히 요즘 그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 그 때에는 굉장한 충격이었나 봐요.
·좋아, 그럼 우리 두 그림을 비교해보기로 하자. 마네의 <올랭피아>와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보고 어떤 작품이 더 마음에 드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솔직히 말해보자. 조금 야한 듯하지만 순수한 예술작품으로 감상하는 거야.
마네 <올랭피아>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 전 티치아노 그림이 좋아요. 더 자연스럽고 부드럽고 잘 그린 것 같아요.
- 저도요. 마네 그림은 저를 째려보는 것 같아서 기분 나빠요. 그리고 흑인이 등장하는 것도 좀 이상해요. 티치아노 그림은 보기 편해요.
- 저도 티치아노 그림이 더 나아요. 책에서 설명을 읽었어도 이상하게 이 그림은 불편해요.
- 저도 티치아노 그림이 더 잘 그린 것 같은 데 <올랭피아>는 좀 남다른 데가 있어서 그것도 괜찮아요. 좀 현대적인 느낌도 들고.
·두 그림에서 색깔의 쓰임이나 구도는 어떤 것 같아?
- 티치아노 그림이 더 자연스러워요. 색깔도 은은하고. 마네 그림은 뭔가 딱딱하고 어색한 것 같아요.
- 마네 그림은 흑백을 일부러 대비시킨 것 같아요. 그래서 까만 고양이랑 흑인도 등장시킨 것 같고. 책에서 보면 구도도 일부러 2차원적으로 설정했대요. 전통적이고 이상적인 미에는 더 이상 관심 없고 자기 식대로 그리겠다는 배짱이 있는 것 같아요.
- 마네는 다른 그림에서도 일부러 색을 두드러지게 사용했대요. 그래서 전통적인 그림들과 달라졌고 사람들이 싫어하게 됐다는데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낯설고 이상한 것을 보면 일단 좀 피하고 싶어요.
- 난 새롭고 이상한 게 좋은데. 그런데 마네 그림이 비난 받은 건 색깔 때문이라기보다 자기 시대의 경험을 담았기 때문이라는 건 무슨 뜻이에요? 예술 작품은 모두 그 시대를 반영하는 것 아닌가요?
·글쎄, 예술작품은 분명 시대의 산물이지만 반드시 그 시대를 투명하게 반영하지는 않지. 사회구조가 예술작품에 분명히 영향을 끼치기는 하지만, 사회구조의 기제들이 예술을 억압하거나 왜곡시키기도 하지. 그래서 그림이 드러내는 세계 혹은 그림이 감추고 있는 세계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읽어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겠지.
마네가 활동했던 19세기는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전쟁을 예비하는 폭력적인 축적을 한창 진행하던 시대여서 근대 도시에는 삶의 양식이 파탄을 맞은 몰락한 군상들이 넘쳐나고 있었대. 넝마주이, 거지, 소매치기, 몰락한 부르주아, 그리고 마네의 그림에 등장하는 매춘부까지. 당시 파리의 근대화를 추진하던 세력들에게는 이들이 얼마나 눈엣가시였겠니. 그런데 마네가 그들을 그림으로 그려낸 거야. 당대 사람들이 그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하층민, 노동 계급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냈으니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불편했겠지. 게다가 앞에서 본 것처럼 마네의 <올랭피아>는 전통적인 비너스 그림 구도에 창녀를 버젓이 등장시키고 그 창녀는 그림을 보는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잖아. 마치 “당신이 나의 몸을 사러 온 사람이군요, 당신이 잘 알고 있는 신화 속 여신이 사실은 곧 저랍니다.”라고 말을 걸듯이 말이야. 어쩌면 그 그림을 보는 순간 당시의 부르주아 신사는 거창하고 고상하게 한껏 폼을 잡고 다니지만 고작 여자의 몸이나 사러 다니는 자신의 추악한 내면을 정면으로 마주치게 된 것이지도 몰라. 그것도 자신이 무시하고 없애고 싶어 하던 하층 계급의 여자에 의해서. 어때, 화가 날 만하지?
이렇게 생각해 보면 당시에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던 매춘부를 ‘순수한’ 예술 속에 당당하게 그려 하나의 계급으로서의 여성을 드러내고 근대화로 인해 그늘로 밀려나버린 삶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마네는 참 대단한 인물이지. 자신의 그림에 대한 비난 여론 때문에 괴로워하기도 했지만 마네는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지. 그림은 마네가 산업 자본주의에 항의하는 방식이었고 이렇게 당대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마네의 그림은 당시로서는 참 위험하고 불편한 존재였을 거야.
2. 공장에서 생산한 예술품 - 뒤샹
· 자, 지금부터 만날 작가는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지. ‘뒤샹’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어떤 작품이 떠오르니?
- 변기요. 제목이 <샘>인 건 이번에 알았어요.
- 제목이 너무 웃겨요. 변기가 샘이면 변기에 있는 물은 샘물인가? 아, 더러워.
- 샘은 물이 솟아나는 건데 변기는 물이 빠져 나가는 거니까 이름도 일부러 거꾸로 붙였나 봐요.
- <L.H.O.O.Q>도 웃겨요. 모나리자에 수염이 있으니까 남자 같아요. 잘 어울려요.
- 근데 뒤샹의 <샘>처럼 이미 만들어진 걸 작품이라고 하면 세상에 작품 아닌 것이 어디 있어요? 아무 거나 사다 놓고 이것도 작품이라고 주장하면 그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잖아요.
- 맞아. 길거리에서 돌멩이 주워다 놓고 이것도 작품이다 하면 작품이 되는 거겠네.
·변기가, 그것도 자신이 만들지 않은 기성품이 예술 작품일 수 있다는 생각은 뒤샹 이전엔 없었던 것이겠지. 이미 만들어진 변기를 자신의 작품이라고 주장한 뒤샹의 근거는 무엇일까?
- 일상의 사물들이 모두 예술 작품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예술작품은 사회적 맥락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대요. 그런데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 작가가 ‘이건 작품이다’ 라고 말하면 그게 작품이라는 뜻 아닌가요?
- 그게 아니라 수많은 변기 중에서 작가가 선택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 작품이 될 수 있다고 하던데요. 원래 변기로 쓰이는 것이지만 예술가가 작품으로 선택해 줌으로써 원래의 용도와는 다른 의미를 갖게 되니까 그게 바로 예술이 되는 거라고요. 전처럼 장인적인 솜씨나 기량에 의해서 작품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나오게 되는 과정이 바로 예술 작품이 되는 거래요. 책에서 그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그래. 사실 뒤샹은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샘>을 출품했다고 하지. 그 후에 <샘>이 논란의 대상이 되니까 뒤샹은 <샘>의 전시를 거부한 근거를 집요하게 추궁하는 글을 써서 미술작품의 예술적 가치 판단에 관한 주최 측의 통념을 비판하며, 미술의 존재와 존재의 방식에 관한 대단히 중요한 문제들을 피력했다고 해. 뒤샹의 말을 들어보자.
“어떤 이들은 그것을 부도덕하고 상스럽다고 말하지만, <샘>은 부도덕한 것이 아니다. R. Mutt가 그것을 직접 제작했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는 기성제품에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으며, 그것의 본래 기능과 의미를 소거하여 제시했다. 그는 이 사물을 통해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것이다.”
(The Blind Man이라는 잡지에 실린'미국인들에게 보내는 공개장'이라는 제목의 뒤샹의 글)
뒤샹 <샘>·어때? 뒤샹의 주장에 공감할 수 있니?
- 그럴 듯하기는 한데요, 그래도 좀 억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럼 예술가가 모든 것들에게 예술품의 지위를 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잖아요. 예술가가 신도 아니고 좀 거만한 것 아닌가요?
- 그래도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했으니까 뒤샹 말도 맞는 것 같아요.
- 그럼 사물에다 원래의 용도와 다른 의미를 부여하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거겠네. 그게 말이 돼?
- 처음엔 뒤샹이 변기를 예술품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예술가가 신 같은 존재라고 말하는 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아무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그러니까 예술가도 별 거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 같은데 어떤 게 맞는 거예요?
·글쎄. 뒤샹은 양 쪽 다 주장하는 것 아닐까? 기존의 선택받은 천재적 예술가상을 파괴하는 시도이자 사물에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극단적 창조주로서의 예술가상을 다시 세우는 양면성 말이야.
-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수염 그린 모나리자를 그린 <L.H.O.O.Q>를 보면 기존의 권위에 대한 도전인 것 같기는 해요. 감히 모나리자에다가 장난치는 걸 상상하다니 참 대단해요.
- 그렇지만 나 같은 평범한 애가 모나리자에 수염 그리면 장난친다고 혼만 날걸요. 전에 미술 시간에 스님 얼굴에 아이에게 젖먹이는 사진 오려 붙였다가 선생님한테 혼났어요. 장난친다고. 뒤샹이 했으면 난리 났을 거야. 새로운 예술작품이라고.
뒤샹 <L.H.O.O.Q>
·아주 기발한 작품을 만들었었구나. 뒤샹이 보았으면 칭찬했을 텐데. 생각해 보면 뒤샹의 작품 활동을 통해 기존의 미술 개념에 일대 변화가 일어난 거지. 뒤샹은 공산품에 불과한 변기를 예술작품의 범주로 끌어들이고 절대적 권위를 지닌 <모나리자>를 향한 대중들의 맹목적 숭배를 비웃으며 예술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 거야. 그럼 뒤샹의 이런 시도는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 아무나 예술 작품을 만들 수도 있고 아무리 유명한 작품이라도 내 맘에 안 들면 가치가 없다고 말해도 된다는 것 아닐까요?
- 좁게 생각하지 말고 좀더 폭 넓게 예술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 같아요.
-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는 것 같아요.
- 특별히 무슨 생각을 하라는 것이 아니고 네 맘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라는 것 같은데요.
·그래. 모두 일리가 있구나. 뒤샹은 미술의 전통적 가치와 그것을 향한 대중의 통념을 냉소적으로 비판했지만, 절대적인 가치의 숭배에서 벗어나, 대중 스스로 미술문화의 주체가 될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예술가들이나 대중들이 뒤샹의 새로운 미술 읽기에 영향을 받았다고 해. 미술이 기존의 무거운 권위를 떨쳐버리고 가볍고 자유로운 세상에서 스스로의 판단을 믿는 자유로운 대중과 만나게 된 것이지. 어찌 보면 관객도 수동적인 수용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고 고민함으로써 예술 활동에 동참하는 의무가 생긴 것이라고도 볼 수 있어. “예술은 사회적으로 공인해 주는 것이다”라는 뒤샹의 말은 예술에 대한 정의가 내려져 있는 것은 아니며 예술은 그때그때 그 사회에서, 관객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공인해 주는 관습적인 것일 뿐이라는 뜻일 거야. 예술이 심오한 본질을 가진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습일 뿐이라는 뒤샹의 발언은 예술적 창의력을 억압하는 기존의 관념을 뒤엎음으로써 예술의 개념을 활짝 열어젖힌 것이라고 볼 수 있지. 하지만 기존의 예술관을 전복시켜버리는 뒤샹의 시도는 당대에는 불온한 시도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아.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것에 비해 뒤샹의 생전 활동은 대중은 물론 미술 평론가들에게도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다고 하니 지금 뒤샹이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하면 시대를 너무 앞서간 작가의 비애가 아닌가 싶기도 해. 자, 이제 예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기존의 미술관 중심의 예술관을 파괴함으로써 관습적인 맥락을 파괴한 뒤샹의 후계자를 한 명 더 만나보자.
3. 내가 예술이다 - 요셉 보이스
요셉 보이스((1921~1986)
·이 책에서 가장 현대 작가인 보이스를 만난 느낌이 어땠니?
- 이해할 수 없어요. 제일 이상했어요. 특히 토끼를 끌어안고 다니는 게 무슨 작품이 되는지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워요.
- 코요테랑 함께 생활하는 것도 작품이라고 하니까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그래도 보이스의 예술관은 멋있는 것 같아요. 사회적 무당이라는 표현도 멋지고요.
·예술가가 사회적 무당이라는 표현은 무슨 의미일까?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수 있을까>- 예술은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고 사회적인 기능을 가져야 하고, 예술가는 예술과 사회를 연결하는 고리라는 뜻이에요.
- 예술을 통해 사회를 인식할 수 있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고 하던데요.
·그래. 보이스는 지금까지 만난 어떤 예술가보다 독특한 위상을 갖고 있지. 아직 우리에게 낯선 작가이기도 하고 말이야. 보이스의 작품 세계를 통해서 이번엔 예술의 본질적 가치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보기로 하자.
·아까 너희가 말한 것처럼 보이스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행위 예술 활동을 주로 했지. 보이스의 행위 예술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수 있을까>라고 해. 얼굴에 꿀과 금박을 바른 보이스가 죽은 토끼를 팔에 안고 갤러리를 돌아다니면서 토끼와 대화를 시도하는 모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나치 치하에서 공군에 복무한 개인적인 경험이 큰 영향을 주었대요. 전쟁의 가해자로서 자신이 할 역할을 찾아 전후 독일인들의 죄의식과 피해의식을 치유하려던 것이라는데요. 솔직히 그런다고 무슨 위로를 받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 그럴싸하게 설명하니까 그냥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만일 제가 저런 걸 직접 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요.
·그래. 보이스의 행위예술이 우리 같은 일반인에게 쉽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지. 하지만 우리가 히틀러 치하에서 전쟁을 치른 독일 국민이라면 전쟁의 광기와 파괴에서 깊은 상처를 받고 어디에서든 상처를 치유 받고 싶었을 거야. 하지만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독일 국민이 쉽게 상처를 드러내고 도움을 청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보이스는 이러한 시대적 아픔을 감지한 예술가였던 것 같아. 부활을 상징하는 토끼를 안고 소곤거리며 대화를 시도함으로써 현대 독일 사회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고 인간 스스로 부활을 위한 노력을 통해 삶의 완성을 추구하자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실제 독일 관객들은 보이스의 뒤를 조용하게 따라 걸으며 깊은 생각에 침잠한 모습을 보였다고 하지. 화해와 치유를 시도하는 보이스의 진정성이 낯선 예술형식을 넘어서서 대중들에게 전달된 감동적인 순간이었을 것 같아.
·자, 이번엔 보이스의 예술이 또 어떤 영역으로 확대되었는지 살펴보자. 보이스는 사회적 치료자로서의 무당을 넘어 현실적인 사회 개혁가로서 직접 정치 활동을 하기도 했다고 해. 학생 정당을 설립하기도 하고 직접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토론을 주도하면서 사회적 공론을 불러일으켰다고 하지. 도대체 이런 활동이 예술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일까?
- 예술이 정치라든지 사회적인 것들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니까 사회를 바꾸는 것도 예술가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 하지만 예술가가 사회적인 일이나 특히 정치에 관여하면 예술이 정치의 수단이 되어 버리는 것이잖아요. 그건 위험한 것 아닌가요?
- 그렇지만 보이스가 자기 이익 때문에 정치를 하거나 다른 정치인들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주장했으니까 괜찮은 것 같은데요.
- 예술가도 사회의 구성원이니까 사회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 같아요. 솔직히 사회는 상관하지 않고 고상한 척 하는 예술가가 더 문제인 것 아닌가요?
- 맞아. <7000그루의 떡갈나무 프로젝트> 같은 건 평범한 예술가는 생각조차 못할 거예요.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의식의 결정판인 것 같아요.
·그래. 보이스는 삶이 곧 예술이고 실천이 곧 작품이라는 입장을 견지한 작가이고 일상에서 살아가는 보편적 행위에서 예술을 찾아내고자 노력한 작가라고 해. 보이스의 정치 참여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보이스는 우리 삶 자체를 거대한 순환과 소통으로 보았고 예술이 사회 속에서 소통을 도와주고 가능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대. 따라서 모든 사람이 예술가이며 사회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건전한 노력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조화로운 사회의 흐름을 도와준다면 바로 그것이 예술이라는 것이지. <7000그루의 떡갈나무 프로젝트>의 경우도 사막화되어 가는 현재의 우리 삶의 조건을 지적하는 상징적인 행위이고 예술이란 “지금, 여기”에 가장 필요한 걸 하는 것이라는 보이스의 생각이 극명하게 드러난 예라고 생각할 수 있어. 그리고 예술 활동에 대중들의 참여를 끌어들임으로써 열려있는 전시 공간인 삶 안에서의 예술적 행위에는 모든 사람들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을 호소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어. 이렇게 보면 보이스는 뒤샹이 열어젖힌 예술의 개념을 극대화한 뒤샹의 후계자라고 볼 수 있겠지. 또, “모든 사람은 예술가이고 예술은 노동의 세계에서 소외를 극복하게 해 주는 치료의 과정이면서 따뜻함의 과정”이라는 보이스의 예술관은 예술이 살 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회를 재조정하고 재형성하는 장치이며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술을 넘어 예술에 도덕적, 윤리적 접근을 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어. 예술의 놀라운 확장이 일어난 거지. 예술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기도 하고 말이야.
참고 - 보이스의 떡갈나무 프로젝트
카셀 도큐멘타 메인 전시장에 7000개의 현무암을 뿌려놓고 500마르크를 주면 현무암 하나와 떡갈나무 한 그루를 카셀시에 심게 한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는 5년 후에 완성되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오염되고 각박해지는 사회에 대한 책임감에서 생각하고 고안한 프로젝트.
*마치며
·자, 낯설거나 익숙한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간단하게 둘러본 소감이 어때?
- 재미있었어요. 잘 모르던 것도 알게 되었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 솔직히 예술은 나랑 별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런 것 같지 않아요. 특히 보이스에 대해서 좀더 알고 싶어졌어요.
- 저는 마네의 그림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지금은 정말 평범한 그림인데 당시엔 그렇게 파격적이었다는 게 신기해요.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것 같아요.
- 맞아요. 전에 전시회 가도 한 번 휙 둘러보고 나왔는데 이젠 좀 잘 봐야겠어요. 그러려면 미리 정보를 알고 가는 것이 좋을 것도 같고 아니면 뒤샹 말처럼 보이는 대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래. 관심을 가지면 비로소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아는 만큼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 예술이 우리 삶과 동떨어져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만큼 우리 삶 속에 들어와 있는 예술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사회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함께 호흡한다는 의미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 수업이 너희들의 예술적 인식 확장에 조그만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실, 예술 활동의 중요한 의미 중 하나는 기존의 편견, 통념에 도전하는 것이야. 도발적인 작품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이에 따라 인식의 확장이나 새로운 시각을 선사하는 거지. 그 동안 우리는 아름다워서 예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다고 배웠기 때문에 아름답게 인식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까지 함께 살펴본 것처럼 현대 예술은 추하거나 모호해지거나 산업화 속에서 무한하게 복제되면서 도식화된 아름다움에서 벗어나,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가 주체적으로 느껴야 하는 예술로 바뀐 거야. 이제 우리는 단순한 이데아적 완전함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바라보고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생각하면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된 거지. 현대 예술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이 자유로운 사고의 확장이 바로 우리가 느끼는 아름다움이고 진정한 예술의 가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