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학년도 연세대학교 수시 2학기 논술(인문계열)

  
1. 출제 의도

연세대는 논술 시험 설명회 등 수차례에 걸쳐 다면적인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얼핏 상투적 단어로 들리는 ‘다면적 사고’능력의 의미가 이번 시험에서처럼 생생하게 드러난 사례는 없어 보인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문제 유형에서 드러난다. 넓게 보면 이번 문제는 여러 대학이 하고 있는 것처럼 제시문 사이의 연관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나 특이한 두 가지 사항이 눈에 띤다.
먼저 공통주제를 학생들에게 뽑으라는 요구가 아니라, 이미 문제에 명시된 공통주제를 중심으로 제시문들을 비교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간단한 전환이면서 훨씬 치밀한 다각도의 분석을 요한다. 예컨대 어머니와 아버지의 공통점을 뽑으라고 한다면 쉽게 “부모”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부모라는 특성을 가지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비교하시오”라고 한다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제시문들의 의미 자체는 어느 방향으로든 확장될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비교의 다양한 잣대들을 스스로 머리속에서 짜내야 한다.
두 번째로 특이한 점은 인문사회과학과 수학을 통합함에 있어, 유비관계를 이용했다는 점이다. 통계가 논술에 등장할 때 이에 상응하는 지문은 사회적 현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체와 집단이 정확히 정의될 수 있는 것은 철학적 가치나 추상 개념이 아닌 계량 가능한 사회과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용’이나 ‘천재성’ 같은 철학 개념을 통계 용어에 대응시키는 것은 엄밀한 분석력 보다는 상상력이 요하는 영역이다. 말하자면 기존 지식의 입장에선 논리적 도약을 감수하는 대신 독창적 연상능력을 묻는다고 볼 수 있다.
텍스트에 대한 열린 분석과 상상력이 매개되는 유비능력 테스트가 부각된 배경에는 학제연합능력이 점점 중요하게 되는 사회적 흐름이 있다. 학생들에게는 주어진 지적 권위에 기초하여 현상을 분석하는 위에서 아래로의 능력보다는 복잡한 현상으로부터 일정한 질서를 발견하는 아래에서 위로의 능력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분과학문 내에서 누적된 도식적 지식보다는 분과학문을 넘나드는 ‘말랑말랑한 사고’ 즉, 지적 유연성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2. 제시문 분석 (연세대 측 발표 자료에서 인용)

* 제시문 (가)는 자사(子思)가 저술한 『중용(中庸)』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 글에는 공자가 생각하는 중용의 의미가 잘 드러난다. 공자가 말하는 중용은 기본적으로 개인이 내면적 수양을 통해 획득하고 나아가 국가나 사회의 환경 속에서 구현되는 덕목이다. 따라서 중용은 국가에 선행하면서 그 토대가 되는 개인의 덕목이다. 중용의 덕목을 갖춘 개인은 어떤 처지에 놓이든 “그 처지에서 해야 할 일을 함”으로써 마땅한 도리를 다한다. 이러한 덕목은 실천되기 힘들며 따라서 중용의 덕목을 갖춘 군자는 찾기 힘들지만, 이러한 개인이 국가의 인재로 등용될 때 좋은 국가가 될 수 있다.
* 제시문 (나)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정치학』에서 인용한 것이다. 인용문에 나타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중용은 기본적으로 개인적 차원에서 실천되지만 이를 넘어 사회적, 국가적 차원의 것으로 연결되어 해석될 수도 있다. 둘째, 중용은 한 국가에 있어 중간계급(재산의 상태에 따른 중간계급)과 연관되어 생각될 수 있다. 셋째, 중간계급은 다른 어떤 계급보다 수적으로 우세하며, 이런 상태가 국가의 중용이 될 수 있다.
* 제시문 (다)는 존 스튜어트 밀(J.S. Mill)의 『자유론』에서 발췌한 것이다. 인용문에서 밀은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독창성(천재성)이 중요하며 사상과 실천의 두 분야에서 천재가 독창성을 마음껏 발휘되도록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사회에서나 소수이기 마련인 ‘독창성’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에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좋은 것들을 소개하고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생명력을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즉 이들은 새로운 사상이나 실천을 창시하거나 기존의 사상이나 실천이 부패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사회의 관행과 취향을 개선하고 발전시킨다.
* 제시문 (라)는 통계학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대표값들인 평균값, 중앙값, 최빈값을 설명하고 있다. 대표값은 한 집단의 속성을 단 하나의 숫자를 사용하여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고등학생들에게 필수 과목인 수-I 과정에서는 세 가지 대푯값 중 평균값만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제시문에서는 나머지 두 개의 대표값에 대한 정의도 소개하고 간단한 예를 들어 대표값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도왔다.


3. 문제 해제

[문제 1] 제시문 (가)와 (나)에서 ‘중용’이 어떤 의미로 쓰이고 있는지 비교하시오.

공통점과 차이점으로 나누어 비교할 수 있다.

공통점: 내면의 윤리적 가치가 정치적 실천을 통해 구현되고 있다.
(가)는 정치의 성패를 중용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나)는 대다수 국가에서의 최선의 정치질서란 각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중용에 있다고 말한다.

차이점:  (가)는 중용을 어떤 처지에 있건 자신의 자리에 만족하고 남을 원망하지 않는 태도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중용은 사회적 위치가 무엇이든 각각의 자리에서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이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가)의 중용은 만인이 준수해야할 보편적인 윤리이며 각자의 물질적 처지와는 무관한 순수하게 정신적인 차원의 윤리라고 할 수 있다. 백성들의 다양한 처지, 지위의 높고 낮음 같은 것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그가 어떤 처지에 있든 자신의 처지에서 해야 할 일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보편적이다. 또한 그러한 보편적인 가치는 상황이나 처지로부터 독립하여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 정신적이다.  
(나)는 중용을 특별한 재능을 갖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 실천할 수 있는 생활 방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중용이 배제하는 온갖 극단성 (모자람이나 넘침)은 부자나 빈자, 보통이상으로 유능하거나 그 이하로 무능한 사람들의 생활 방식들이다. 따라서 (나)의 중용은 한 사회 안에 각자의 처지에 따라 다양한 생활 방식들이 공존할 수 있으며 그러한 특수한 생활양식들 가운데 하나인, 평범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생활 방식을 중용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가)가 모든 백성이 지켜야 할 보편적 규범으로 중용을 말하고 있는 것에 비해 (나)는 다양한 집단의 여러 가지 생활 규범 가운데 중간계급의 그것을 중용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한 (가)가 순수하게 정신적인 윤리로서 중용을 말하는 것에 반해 (나)의 중용은 각자가 처한 물질적인 생활환경과 분리되지 않는 윤리적 가치이다.
이러한 중용에 대한 입장의 차이는 (가)가 왕으로부터 백성에 이르는 계급 사회의 위계 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반면 (나)는 부자와 중간계급, 빈자의 계급 간 갈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회관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따라서 (가)의 사회관은 보수적이며 정태적이다. 현재의 사회 분업이 세습되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회 안정이 필요할 것이며 모든 사회 구성원이 각자의 처지에 만족해야한다는 중용의 가치는 이러한 사회적 필요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역동적이고 불안정한 사회 질서의 변동을 전제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모든 사람을 그들의 처지와 상관 없이 단일한 가치관으로 덮어 씌우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할 것이다. (나)의 중용이 비교적 안정적인 중간 계급의 생활 방식에 기초한 정치 질서를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회관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 2] 제시문 (다)의 입장에서 제시문 (가)와 (나)의 주장을 각각 평가하시오.

독창적인 소수의 천재가 인류 사회의 활기를 불어 넣어 왔다는 (다)의 입장에 따르면 (가)의 주장은 매우 답답하고 정태적이며 수동적인 자세를 강요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모든 백성이 자신의 상황에 관계없이 만족하고 안주하는 것은 어떠한 종류의 개혁이나 신선한 사고를 허락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독창적인 주장을 괴팍한 것으로 매도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가 ‘소인의 위험과 요행’을 비판하고 ‘천명에 순응’하며 기다리라고 말하는 것은 (다)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사고에 굴레를 씌우며 천재를 둔재로 강요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다)의 입장에서 볼 때 (나)의 중간계급에 기반한 국가의 중요성에 대한 주장은 두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 볼 수 있다. 먼저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찬양한다는 점에서 독창적인 소수들에게는 지루하고 구태의연한 가치로 보일 수 있다. 극단적 민주주의를 꿈꾸는 빈자들이나, 과두 정치를 향해 음모를 꾸미는 집단들과 달리 중간 계급은 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중간 계급에 기반한 정치 질서란 그 정당성과는 상관없이 독창적인 소수에게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고 평범함을 강요하는 진부한 질서로 보일 것이다.
두 번째로, 그러나  중간 계급에 기반을 둔 정치 질서도 시간과 더불어 나날이 새롭게 변신하려면 특별한 재능을 가진 소수의 역할을 인정해야할 것이다. 만일 이것이 인정된다면 (다)의 입장에서 (나)의 입장을 특별히 비판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영재와 천재, 창의적 소수는 중간 계급을 위해 봉사할 수 있고, 그러한 다수의 평범한 대중으로부터 인정받고 존경 받으면서 자신의 역할을 계속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나)에서 주장하는 중용의 주요한 계급적 토양이 중간 계급이라 할지라고 만약 그러한 중용이 소수의 천재들의 역할을 보장하고 그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은 별도의 문제이다. 또한 (다)의 입장이 반드시 천재나 소수 엘리트가 정치 질서의 중심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다)는 그들이 문명의 발전에 기여하는 역할과 그들에게 필요한 자유로운 환경을 말하고 있으므로 (나)의 정치질서가 그들을 위한 특별한 시설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 (다)의 입장에서 (나)의 중용을 충분히 지지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 3] 제시문 (라)에 설명된 대표값들의 특성을 이용하여 제시문 (가), (나), (다)의 주장을 각각 논의하시오.
(가)에서 통계적 집단은 여러 가지 윤리적 가치관들로 구성된 집합이다. 극에서 극으로 스펙트럼처럼 펼쳐진 가치관들이 존재한다면 그 가운데 중앙값에 해당하는 것이 중용에 해당할 것이다. (가)의 저자는 모자람이나 넘침으로 사람들의 가치관이 기울어 있는 것을 개탄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치관들의 변량의 분포는 중앙에는 희박하게 존재하며 극단으로 갈 수록 증가함을 알 수 있다. 최빈값은 양 극단 가운데 어느 한편에서 나타날 것이다. 만약 양 극단이 균형을 이룬다면 역설적으로 평균값은 중앙값 근처에서 형성될 것이다. (가)의 저자는 중앙값과 최빈값 그리고 평균값이 모두 일치하는 상황을 정치가 흥하는 이상적 상황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나)에서 통계적 집단은 사회 각성원의 처지와 상황에 따른 생활방식들이다. 사회 구성원들은 크게는 부자와 중간 계급, 빈자라는 세 가지 집단으로 응집되는 경향이 있다. 양 극단의 계급에서 나타나는 생활 방식이 좌우에 분포한다면 그 중간계급의 가치관인 중용은 중앙값으로 나타날 것이다. 최빈값이 빈자의 생활방식에서 형성될 때 극단적 민주주의가, 반대로 부자들의 생활 방식에서 나타날 때 과두 정치나 폭군 정치가 나타날 것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국가의 안전을 위해서는 중앙값의 변량이 양 극단의 변량을 합한 것보다 크거나, 최소한 어느 한쪽 극단의 변량 보다는 커야함을 (나)는 강조한다. 이를 테면 정규 분포 곡선처럼 중앙에서 최빈값이 형성될 때 국민의 재산이 고루게 분포되어 정치 질서의 선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는 집단의 성격을 단일한 수치로 집약해내는 대푯값이라는 범주의 의미를 격하시키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집단이 아니라 그 집단을 새로운 상태로 이끌 집단 내부의 창조적 소수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대푯값이란 다수의 개체로 구성된 집단을 하나의 개체로 환산하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은 독창적인 소수의 예외적인 생각이 갖는 특별한 의미를 부각시키지는 못할 것 같다. 특히나, 대푯값이란 그것이 평균값이든, 중앙값이든, 최빈값이든 어떤 순간의 정지된 상태나, 지나간 과거의 상태를 묘사하는 것이다. 반면 독창적인 소수는 현재로서는 대중화되지 않았지만 미래에는 모두가 그 이익을 함께 향유할 새로운 발상을 미리 통찰하는 자들이다. 즉, 과거나 현재가 아니라 미래와의 관계에서 의미가 평가되어야 하기 때문에 (다)의 주장을 대푯값으로 환산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