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서 남주자 다시보기
여행, 그 설레고 아름다운 유혹
오래전부터 바라기는 했지만 우연히 그리고 느닷없이 감행한 유럽 여행 이야기
"정말 루브르 박물관에 성배가 묻혀있을까?"
독서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좀처럼 책과 친하려 하지 않는 아들 녀석이 『다빈치코드』를 열심히 읽고 나서 하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한번 보러 가볼까? 이렇게 시작된 여행이었다.
비오는 서울의 오후, 흔들리며 이륙했던 비행기는 13시간 정도의 비행 끝에 파리에 내렸다. 준비하면서 피곤하고 귀찮아지기도 했었는데 막상 낯선 이국의 하늘 아래 내리고 보니 가슴이 두근두근, 흥분을 감추기 어려웠다. 오후에 비행기를 타서 하루의 반을 뒤척이다 내렸는데 다시 오후라니 시차라는 것은 역시 머리로는 알아도 몸으로 인내하기는 힘든 이치가 아닌가 싶었다. 낯선 이국의 공항이 주는 생경함에 두리번거리다가 마중 나온 버스를 탔다.
'아, 여기가 파리구나!' (ㅎㅎ)
버스를 타고 숙소까지 이동하면서 본 파리 시내의 모습은 조용하고 이색적이고 약간 지저분했다. 서울의 아파트촌에 익숙한 내 눈에는 고풍스럽고 멋진 모습이었다. 시내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가는 일정이었는데 사실 한국에서라면 새벽인지라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어디든 내리는 즉시 현지 적응하는 태규는 바로 식사 가능하고, 아주 맛있게 내 밥까지 먹어주는 성의를 보였다. 정말 부러운 식성이다.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식성이라고 해야겠다. 식사까지 마치고 밤이 되어가도 거리는 도대체 어두워질 생각을 안한다. 한여름의 백야 현상이란다. 세상에 밤 10시가 되어가니 느닷없이 어두워지는데 정말 이상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을 가족, 친구들을 생각하니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이 공간의 느낌이 이상스러웠다. 다음날 루브르 박물관을 본다고 흥분한 아들 녀석은 계속 들썩거리고 나는 나대로 피곤하고 예민해져서 거창하게 시차적응이라는 말을 써가면 애써 눈을 붙였다.
한여름의 유럽은 몹시 덥다고 했다. 정말 많이 덥구나 싶었다. 뭐 한국의 찌는 듯한 무더위에서 살다오기는 했지만 이 멋진 도시에서 느끼는 더위라는 것이 만만치는 않았다. 우선 오전에는 파리 시내 관광을 하고 오후에 박물관을 가기로 했다. 일찍 아침식사를 마치고 떠난다기에 서둘러 식당을 찾았는데 유럽식 아침식사에 태규는 입맛부터 다신다. 정말 부럽다. 신선한 우유, 햄, 치즈, 여러 종류의 빵들, 그리고 과일 등을 아침 식사가 무색하게 양껏 먹고 테라스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니 어제의 긴장감보다는 오늘 일정에 대한 기대가 슬며시 살아났다. 테라스에서 느껴지는 햇살의 상쾌함, 이런 게 아침이야 하면서 서둘러 일행들을 쫓아갔다.
세월을 기억하는 건축물들
프랑스 북서부를 흐르는 센 강을 따라 파리 시내로 들어갔다. 서울의 한강을 봐도 그 넓고 시원한 풍경이 아름다워 많은 사랑을 받지만 파리의 센 강은 아름다운 다리와 그 양쪽으로 자리한 많은 역사적인 건물들이 도시의 역사를 말해 주었다. 하나하나 다 특색 있고 아름다운 다리들을 보니 정말 이곳에 살면서 매일 그 다리를 건너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많아지기 전에 먼저 그 유명한 에펠탑을 보기로 했다. 유치원에 다니는 꼬마 아이들에게도 파리라는 도시를 말할 때 에펠탑을 그 상징으로 말해줄 만큼 유명한 그 탑을 보러 강을 지나 파리 시내의 서쪽 끝까지 갔다. 멀리서부터 그 탑을 보며 그 높이와 견고함에 놀라고, 줄을 지어 올라간 그 탑에서 보는 파리 시내의 아름다움에 다시 한번 놀랐다. 좀 더웠지만 쾌청한 날씨 덕분에 우리는 멀리까지 파리 시내의 사방을 둘러볼 수 있었다. 에펠탑은 원래 만국박람회를 기념해서 만들어졌고, 초기에는 미관을 해친다는 비판도 받았었다고 한다. 지금 이렇게 파리의 상징물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갖는 애정과 긍지를 느끼게 된다. 파리의 시가지를 보면 19세기 말 건설된 건물들이 그대로 외형을 유지하며 사용되고 있다. 어디를 보나 아름답고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기억을 간직할 수 없는 서울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은 추억을 품어주지 않는다. 오랜만에 가는 어느 길, 학교 다닐 적 친구들과 어울려 왔던 그 어디를 찾아보면 영락없이 길을 잃고 만다. 그런 곳은 대부분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 못하고 심지어 길이 나 있거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아 지난날의 기억을 서글프게 한다. 어느 시인의 젊은 날이 담겨 있는 하숙집, 어느 화가의 손때가 묻어 있는 화실, 이런 장소들이 우리에게는 참 찾기 어렵다. 그런데 파리 시내의 길모퉁이마다 자리 잡고 있는 노천카페들은 그런 역사들을 잘 간직하고 있어 참 인상적이었고 부러웠다. 에밀졸라가 원고를 썼던 자리, 어느 화가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카페들, 유럽의 문화에 한껏 부러움을 가지고 있는 이방인의 눈에 너무 낭만적으로 보인 걸까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런 기억들을 품고 사는 이 도시가 참 부러웠다.
한여름의 유럽에서 참 많은 여행객들을 만났다. 우리 같은 여행객들도 많고, 휴가를 온 다른 나라의 사람들도 평생의 꿈인 것처럼 유럽 여행을 나선 것 같다. 개선문을 보러 샹제리제 거리를 지나가는데 어디선가 "태규야!"하는 익숙하지만 전혀 낯선 소리를 들었다. 흠짓 놀란 우리 모자는 눈앞에 나타난 같은 반 친구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친구도 방학을 맞아 가족여행을 왔다고 한다. 그 먼 나라에서 그 시간에 그렇게 만난 인연에 감탄하며 반가움에 펄쩍 뛰었다. 서울에서 같은 동네에 살아도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가던 사이였는데 거기서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각자 본 것과 앞으로 볼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들은 신났다.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며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정말 요새 우리나라에서 유럽여행이 유행인가 보다. 샹제리제 거리에는 심심치 않게 한국어를 들을 수 있었고, 한국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샹제리제 거리는 서울의 광화문처럼 개선문으로 통하는데 마침 명품 세일기간이라 전세계에서 쇼핑객들이 모여든다고 했다. 글쎄 그런 명품사러 이 도시를 오다니, 이곳은 도시 자체가 역사이고 명품인 듯한데 말이다.
도시자체가 역사이고 명품
개선문은 원래 나폴레옹1세가 승전 기념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보는 순간 서울 서대문에 있는 독립문을 떠올렸다. 실제로 구한말 서재필박사가 개선문의 모습을 본떠 독립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어지러운 나라를 걱정하던 애국지사의 마음이 느껴졌다. 개선문은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로마의 개선문 양식을 따른 프랑스 근세 고전주의의 걸작으로 꼽힌다고 한다. 각부를 장식한 조각들은 프랑스의 자유와 저항 정신을 표현하고 아치 중앙 밑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무명용사 묘비가 세워져 있었다. 개선문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여러 갈래로 나눠지는데 교통 편의를 위해 자리가 옮겨진 서울의 독립문을 생각하니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한 것이 아쉽고 안타까웠다. 독립문의 아치 안쪽에 보이는 다른 색의 벽돌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콩코르드 광장에서 이집트로부터 기증받았다는 룩소르의 오벨리스크를 보았다. 오벨리스크는 고대 이집트 왕조 때 태양신앙의 상징으로 세워진 기념비를 말하는데 사실 이전에 사진으로 볼 때는 참 멋있다고, 다음에 꼭 파리에 가서 봐야지 마음먹고 그랬었는데 파리 시내 한 복판에서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보니 사막 한 가운데서 왕들의 분묘를 지키며 위용을 자랑할 오벨리스크가 여기 있을 것이 아닌데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오후에 갈 루부르 박물관에 가면 또 얼마나 많은 다른 나라의 문화재들을 보게 될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우리나라가 찾아오려 애쓰고 있는 직지심체요철도 쉽게 되돌려 받지 못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지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우리 땅에 있는 것도 잘 보존하지 못하고, 우리의 것을 잘지키지 못해 다른 나라에 빼앗기고 찾아오지도 못한다는 생각을 하니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물랑루즈 근처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달팽이요리란다. 서울에서도 먹어본 적은 있었는데 더운 날 시원한 냉면 생각이 간절했기에 별로 달가운 메뉴는 아니었다.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냉랭한 서울의 식당들이 그리웠다. 이렇게 더운데 여기 사람들은 거의 벗은 듯 시원하게 옷을 입고는 노천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식사를 한다. 햇살이 뜨겁고 눈이 부셨다. 얼굴 타면 안된다고 썬크림 바르고 선글라스 쓰고 난리를 떠는 나의 눈에 햇살을 반기며 몸을 맡기고 느긋하게 테라스에 앉아 오후를 즐기는 이 여유로운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 사람들은 여름 동안 이렇게 일광욕을 해야만 한단다.
프랑스 공부의 시작, 박물관
오후의 햇살이 더욱 뜨거워질때 우리 일행은 드디어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했다. 이곳은 원래 루브르 궁을 여러 번 고쳐서 지금의 박물관이 되었다고 한다. 역대 왕실이 수집한 각종 미술품이 소장되어 있는데 나폴레옹이 유럽과 이집트 원정을 다니면서 수집해 온 물건들이 대부분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박물관 뜰에 유리피라미드가 얼음처럼 빛나고 있었다. 고풍스런 궁전 뜰에 현대적인 유리피라미드는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지하로 통하는 입구로 들어서니 작은 역피라미드를 볼 수 있었다. "여기구나...." 무심한 듯 중얼거리며 올려다보니 유리피라미드를 통해 하늘이 보였다. 『다빈치코드』의 결말이 남긴 여운이 갑자기 다가와 전혀 다른 시공간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태규는 유리 피라미드를 보며 들뜬 목소리로 계속 이런저런 말을 이었고, 나 역시 그 말에 끄덕이며 관람을 시작했다. 곳곳에 학생들이 눈에 띄었는데 이곳에서는 학생들의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학생들은 공부하는 사람이고, 박물관은 공부하는 곳이므로 언제라도 와서 공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곳의 학생들은 참 좋겠다 싶었다. 전시실은 크게 리슐리외 관, 쉴리 관, 드농 관으로 구분되어 있다고 한다. 유리 피라미드를 중심으로 북쪽에 있는 리슐리외 관에는 프랑스의 조각과 이슬람의 미술품 등이 전시되어 있고, 1층은 중세실, 르네상스실, 나폴레옹3세실, 2층은 회화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에 있는 쉴리 관은 지상층에는 고대 이집트, 그리스, 지중해 및 페르시아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고, 1층에는 그리스의 토기 작품과 테라코타, 이집트 유물 등이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피라미드 남쪽에 있는 드농 관은 지상층에 에트루리아와 로마의 고대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고 이탈리아 회화 전시실에서는 유럽의 문예 부흥 시대였던 '르네상스'의 그림들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실 입구에서 안내인을 만났고 우리는 너무나 크고 넓은 박물관 내부에 압도되어 두리번거리기에 바빴다. 루브르 박물관은 하루 이틀에 볼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보름 정도 체류하면서 차분히 살펴보면 좋겠다는 배부른 소리를 했다. 이곳에서 꼭 봐야하는 전시물을 세 개만 꼽으라고 하면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라는 작품이라고 한다. 전시실은 어디나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안내인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도 시선 가는 곳마다 신기해하며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드농관 주계단 2층 계단마루에 있는 <사모트라케의 니케>는 머리와 양팔이 없는 조각상으로 치마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지만 마치 뱃머리에 서서 바닷바람을 맞고 있는 듯 치마의 휘날림이 생생하다. <밀로의 비너스>는 전시실 한 가운데 놓여 있었다. 약간 어두운 듯한 실내에서 하얀 대리석의 조각상은 빛나고 있었다. 균형미의 교과서라고 하는 이 조각상을 이렇게 실물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고, 조각상 주변에는 비너스의 미를 찬미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 조각상들은 다 기원전 2, 3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약 4, 5천 년 전의 작품인데 지금 이렇게 내가 마주하고 있다니 떨리고 흥분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외에도 많은 조각상들을 볼 수 있었고, 우리는 <모나리자>를 만나러 바쁘게 움직였다. 회화 전시실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한다. 아쉽게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서양화가의 대명사처럼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이름을 들었고, 그의 작품인 <모나리자>를 봤었는데 실제 그 작품 앞에 서고 보니 생각보다 작은 그림이었다. 시간이 멈추고 소란이 잦아든 듯한 정적 속에 모나리자의 미소를 마주하였다. 방탄유리에 갇힌 <모나리자>는 조금 먼 듯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그 미소를 전하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모나리자>라는 작품에 대해 내가 평가할 필요를 느끼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 속에 잠자고 있던 그 작품 속에 숨어있는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었고, 그 자체로 행복할 것 같았다.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그린 다비드는 프랑스 대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인물로 나폴레옹의 수석 화가였다고 한다. 그는 혁명에 대해 열정과 진정성을 가지고 있었고, 현실에 대한 투쟁과 비타협성이라는 시대정신을 이후 프랑스 화가들에게 전하였다. 7월 혁명을 소재로 한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혁명의 승리, 삼색기를 든 자유의 여신 등을 표현한 대작이다. 프랑스 낭만주의의 현실 참여적인 전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한다.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삼색기를 들고 민중을 이끄는 여신의 힘찬 모습이 프랑스 사람들이 혁명에 담고 싶었던 정신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봤다. 이렇게 작품마다 살펴보려면 정말 보름은 이곳에 머물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전시실을 나왔다. 박물관을 나와 루브르와 이어져있는 튈르리 정원을 산책하며 조금전까지 느꼈던 감동을 되새겨봤다. 눈이 부셔 제대로 하늘을 볼 수 없을 만큼 덥고 화창한 오후였다. 아름다운 정원의 한 그늘을 찾아 앉은 우리들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대한 조각상이 있는 분수, 케이사르 동상, 야외 카페,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너무 평화롭게 보였다.
낭만이 숨쉬는 밤풍경
저녁을 먹으러 한식당으로 향하면서 우리는 저녁 일정에 대해 의논했다. 어차피 해가 늦게 지기 때문에 에펠탑의 야경은 10시가 넘어서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물랑루즈에서 쇼를 보거나 몽마르뜨르 언덕에 가보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당연히 몽마르뜨르 언덕을 가겠다고 했다. 버스에서 내려 언덕을 올라가는 길에는 여행객들을 위한 상품들을 파는 가게들이 줄을 지었고, 특색 있게 꾸민 카페들도 있었다. 두런두런 가게들을 구경하면서 천천히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사크레 쾨르 성당이 보였다. 언덕 위에 자리잡은 백색의 사크레 쾨르 성당은 마치 아라비아의 어느 왕궁처럼 보였다. 이 성당은 1876년에 기공하여 1910년 L. 마뉴가 완성하였고, 과거의 여러 성당 모양을 본뜬 절충적 성당으로 비잔틴 로마네스크 양식이라고 할 만한 건축이라고 한다. 종루에는 세계 최대의 종(26t)이 있다고 하는데 부지런히 계단을 올라 성당 안으로 들어가 봤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창문이 무척 아름답고 성스럽게 보였다. 성당 내부는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고, 내가 기독교인이라면 정말 경건하게 예배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은 지금 이곳에서 어떤 기도를 드릴까 생각하며 잠시 내 마음 속에도 경건함이 찾아들었다.
성당을 나와 길게 돌아가니 몽마르트르 언덕이 나왔다. 입구에는 카페들이 즐비했고, 정말 화가들이 모여 앉아 그림을 그려주고 있었다. 언덕 너머로는 멀리 시가지가 보였고, 노천 카페에는 여행객들이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나도 그림 한 장 그려갈까 싶어 가격을 물어봤다. 아들 녀석 초상화를 그리려는데 얼마면 되겠냐고 흥정을 시작하니 지금 가격은 생각나지 않지만 생각보다 비싸서 그 돈으로 목을 축이는게 낫겠다고 하면서 그만두었다. 그래도 그 때 한번 그려볼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여행 후에 뒤늦게 들기는 했지만 항상 의식주에 급급한 생활을 하다보니 늘 문화적인 선택은 뒷전이다.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태규는 화가들이 모여 앉아 있는 모습, 늘어서 있는 카페들을 보면서 여기에 고흐가 있었을까, 누가 있었을까 부산을 떨며 좋아한다. 그래 이런 모습을 보러 여기 온걸까 생각하며 언덕을 내려왔다.
다시 에펠탑의 야경을 보기 위해 우리는 유람선을 타러 갔다. 조금 춥겠지만 그래도 밖에서 보자고 2층으로 올라갔다. 조금씩 어두워지는 센 강변에는 유람선도 많지만 보트를 타는 사람들도 있고 강변에서 파티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참 여유 있게 삶을 즐기는 모습이어서 보기 좋았다. 유람선을 타니 그야말로 센 강변을 유람할 수 있었는데 낮에 보고 지나간 다리들, 파리의 <자유의 여신상>, 강변을 따라 노트르담 대성당, 오르쉐 미술관 등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퐁뇌프는 '새로운 다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고, 영화의 배경의 되어 익숙한 이름이었기 때문에 다시한번 눈여겨봤다. 알렉상드르 3세 다리는 번쩍이는 금장식이 화려한 느낌을 주었고, 앵발리드 교는 견고하게 보였다. 센 강은 강폭이 한강보다 훨씬 좁기도 하지만 강변을 따라 역사가 흐르고 다리마다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에 비해 한강은 광대하고 메마른 풍경이 아닐까, 즐비한 현대식 건물들, 아파트들이 보이는 풍경, 그래서 그 도시가 품고 있는 역사가 보이지 않는 풍경이 아닐까 한다. 파리, 이 아름다운 역사 도시는 오랫동안 살아온 삶의 경륜을 고스란히 담아 보여주면서 이렇게 현재를 살아내는데 말이다. 조금씩 어두워지면서 바람도 시원해지고 춥기까지 했다. 멀리 에펠탑이 보였다. 조명이 들어와 환하게 빛나는 탑은 낮과 다른 멋이 있었다. 훈훈하고 정겨운 이국의 여름밤이 아름답게 기억되는 것도 에펠탑의 이 불빛 때문일 것이다. 불빛을 받아 은은하게 흐르는 센 강을 따라 파리에서의 첫날을 기억 속에 담았다.
오래전부터 바라기는 했지만 우연히 그리고 느닷없이 감행한 유럽 여행 이야기
"정말 루브르 박물관에 성배가 묻혀있을까?"
독서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좀처럼 책과 친하려 하지 않는 아들 녀석이 『다빈치코드』를 열심히 읽고 나서 하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한번 보러 가볼까? 이렇게 시작된 여행이었다.
비오는 서울의 오후, 흔들리며 이륙했던 비행기는 13시간 정도의 비행 끝에 파리에 내렸다. 준비하면서 피곤하고 귀찮아지기도 했었는데 막상 낯선 이국의 하늘 아래 내리고 보니 가슴이 두근두근, 흥분을 감추기 어려웠다. 오후에 비행기를 타서 하루의 반을 뒤척이다 내렸는데 다시 오후라니 시차라는 것은 역시 머리로는 알아도 몸으로 인내하기는 힘든 이치가 아닌가 싶었다. 낯선 이국의 공항이 주는 생경함에 두리번거리다가 마중 나온 버스를 탔다.
'아, 여기가 파리구나!' (ㅎㅎ)
버스를 타고 숙소까지 이동하면서 본 파리 시내의 모습은 조용하고 이색적이고 약간 지저분했다. 서울의 아파트촌에 익숙한 내 눈에는 고풍스럽고 멋진 모습이었다. 시내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가는 일정이었는데 사실 한국에서라면 새벽인지라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어디든 내리는 즉시 현지 적응하는 태규는 바로 식사 가능하고, 아주 맛있게 내 밥까지 먹어주는 성의를 보였다. 정말 부러운 식성이다.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식성이라고 해야겠다. 식사까지 마치고 밤이 되어가도 거리는 도대체 어두워질 생각을 안한다. 한여름의 백야 현상이란다. 세상에 밤 10시가 되어가니 느닷없이 어두워지는데 정말 이상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을 가족, 친구들을 생각하니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이 공간의 느낌이 이상스러웠다. 다음날 루브르 박물관을 본다고 흥분한 아들 녀석은 계속 들썩거리고 나는 나대로 피곤하고 예민해져서 거창하게 시차적응이라는 말을 써가면 애써 눈을 붙였다.
한여름의 유럽은 몹시 덥다고 했다. 정말 많이 덥구나 싶었다. 뭐 한국의 찌는 듯한 무더위에서 살다오기는 했지만 이 멋진 도시에서 느끼는 더위라는 것이 만만치는 않았다. 우선 오전에는 파리 시내 관광을 하고 오후에 박물관을 가기로 했다. 일찍 아침식사를 마치고 떠난다기에 서둘러 식당을 찾았는데 유럽식 아침식사에 태규는 입맛부터 다신다. 정말 부럽다. 신선한 우유, 햄, 치즈, 여러 종류의 빵들, 그리고 과일 등을 아침 식사가 무색하게 양껏 먹고 테라스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니 어제의 긴장감보다는 오늘 일정에 대한 기대가 슬며시 살아났다. 테라스에서 느껴지는 햇살의 상쾌함, 이런 게 아침이야 하면서 서둘러 일행들을 쫓아갔다.
세월을 기억하는 건축물들
프랑스 북서부를 흐르는 센 강을 따라 파리 시내로 들어갔다. 서울의 한강을 봐도 그 넓고 시원한 풍경이 아름다워 많은 사랑을 받지만 파리의 센 강은 아름다운 다리와 그 양쪽으로 자리한 많은 역사적인 건물들이 도시의 역사를 말해 주었다. 하나하나 다 특색 있고 아름다운 다리들을 보니 정말 이곳에 살면서 매일 그 다리를 건너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많아지기 전에 먼저 그 유명한 에펠탑을 보기로 했다. 유치원에 다니는 꼬마 아이들에게도 파리라는 도시를 말할 때 에펠탑을 그 상징으로 말해줄 만큼 유명한 그 탑을 보러 강을 지나 파리 시내의 서쪽 끝까지 갔다. 멀리서부터 그 탑을 보며 그 높이와 견고함에 놀라고, 줄을 지어 올라간 그 탑에서 보는 파리 시내의 아름다움에 다시 한번 놀랐다. 좀 더웠지만 쾌청한 날씨 덕분에 우리는 멀리까지 파리 시내의 사방을 둘러볼 수 있었다. 에펠탑은 원래 만국박람회를 기념해서 만들어졌고, 초기에는 미관을 해친다는 비판도 받았었다고 한다. 지금 이렇게 파리의 상징물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갖는 애정과 긍지를 느끼게 된다. 파리의 시가지를 보면 19세기 말 건설된 건물들이 그대로 외형을 유지하며 사용되고 있다. 어디를 보나 아름답고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기억을 간직할 수 없는 서울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은 추억을 품어주지 않는다. 오랜만에 가는 어느 길, 학교 다닐 적 친구들과 어울려 왔던 그 어디를 찾아보면 영락없이 길을 잃고 만다. 그런 곳은 대부분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 못하고 심지어 길이 나 있거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아 지난날의 기억을 서글프게 한다. 어느 시인의 젊은 날이 담겨 있는 하숙집, 어느 화가의 손때가 묻어 있는 화실, 이런 장소들이 우리에게는 참 찾기 어렵다. 그런데 파리 시내의 길모퉁이마다 자리 잡고 있는 노천카페들은 그런 역사들을 잘 간직하고 있어 참 인상적이었고 부러웠다. 에밀졸라가 원고를 썼던 자리, 어느 화가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카페들, 유럽의 문화에 한껏 부러움을 가지고 있는 이방인의 눈에 너무 낭만적으로 보인 걸까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런 기억들을 품고 사는 이 도시가 참 부러웠다.
한여름의 유럽에서 참 많은 여행객들을 만났다. 우리 같은 여행객들도 많고, 휴가를 온 다른 나라의 사람들도 평생의 꿈인 것처럼 유럽 여행을 나선 것 같다. 개선문을 보러 샹제리제 거리를 지나가는데 어디선가 "태규야!"하는 익숙하지만 전혀 낯선 소리를 들었다. 흠짓 놀란 우리 모자는 눈앞에 나타난 같은 반 친구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친구도 방학을 맞아 가족여행을 왔다고 한다. 그 먼 나라에서 그 시간에 그렇게 만난 인연에 감탄하며 반가움에 펄쩍 뛰었다. 서울에서 같은 동네에 살아도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가던 사이였는데 거기서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각자 본 것과 앞으로 볼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들은 신났다.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며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정말 요새 우리나라에서 유럽여행이 유행인가 보다. 샹제리제 거리에는 심심치 않게 한국어를 들을 수 있었고, 한국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샹제리제 거리는 서울의 광화문처럼 개선문으로 통하는데 마침 명품 세일기간이라 전세계에서 쇼핑객들이 모여든다고 했다. 글쎄 그런 명품사러 이 도시를 오다니, 이곳은 도시 자체가 역사이고 명품인 듯한데 말이다.
도시자체가 역사이고 명품
개선문은 원래 나폴레옹1세가 승전 기념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보는 순간 서울 서대문에 있는 독립문을 떠올렸다. 실제로 구한말 서재필박사가 개선문의 모습을 본떠 독립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어지러운 나라를 걱정하던 애국지사의 마음이 느껴졌다. 개선문은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로마의 개선문 양식을 따른 프랑스 근세 고전주의의 걸작으로 꼽힌다고 한다. 각부를 장식한 조각들은 프랑스의 자유와 저항 정신을 표현하고 아치 중앙 밑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무명용사 묘비가 세워져 있었다. 개선문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여러 갈래로 나눠지는데 교통 편의를 위해 자리가 옮겨진 서울의 독립문을 생각하니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한 것이 아쉽고 안타까웠다. 독립문의 아치 안쪽에 보이는 다른 색의 벽돌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콩코르드 광장에서 이집트로부터 기증받았다는 룩소르의 오벨리스크를 보았다. 오벨리스크는 고대 이집트 왕조 때 태양신앙의 상징으로 세워진 기념비를 말하는데 사실 이전에 사진으로 볼 때는 참 멋있다고, 다음에 꼭 파리에 가서 봐야지 마음먹고 그랬었는데 파리 시내 한 복판에서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보니 사막 한 가운데서 왕들의 분묘를 지키며 위용을 자랑할 오벨리스크가 여기 있을 것이 아닌데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오후에 갈 루부르 박물관에 가면 또 얼마나 많은 다른 나라의 문화재들을 보게 될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우리나라가 찾아오려 애쓰고 있는 직지심체요철도 쉽게 되돌려 받지 못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지만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우리 땅에 있는 것도 잘 보존하지 못하고, 우리의 것을 잘지키지 못해 다른 나라에 빼앗기고 찾아오지도 못한다는 생각을 하니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물랑루즈 근처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달팽이요리란다. 서울에서도 먹어본 적은 있었는데 더운 날 시원한 냉면 생각이 간절했기에 별로 달가운 메뉴는 아니었다.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냉랭한 서울의 식당들이 그리웠다. 이렇게 더운데 여기 사람들은 거의 벗은 듯 시원하게 옷을 입고는 노천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식사를 한다. 햇살이 뜨겁고 눈이 부셨다. 얼굴 타면 안된다고 썬크림 바르고 선글라스 쓰고 난리를 떠는 나의 눈에 햇살을 반기며 몸을 맡기고 느긋하게 테라스에 앉아 오후를 즐기는 이 여유로운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 사람들은 여름 동안 이렇게 일광욕을 해야만 한단다.
프랑스 공부의 시작, 박물관
오후의 햇살이 더욱 뜨거워질때 우리 일행은 드디어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했다. 이곳은 원래 루브르 궁을 여러 번 고쳐서 지금의 박물관이 되었다고 한다. 역대 왕실이 수집한 각종 미술품이 소장되어 있는데 나폴레옹이 유럽과 이집트 원정을 다니면서 수집해 온 물건들이 대부분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박물관 뜰에 유리피라미드가 얼음처럼 빛나고 있었다. 고풍스런 궁전 뜰에 현대적인 유리피라미드는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지하로 통하는 입구로 들어서니 작은 역피라미드를 볼 수 있었다. "여기구나...." 무심한 듯 중얼거리며 올려다보니 유리피라미드를 통해 하늘이 보였다. 『다빈치코드』의 결말이 남긴 여운이 갑자기 다가와 전혀 다른 시공간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태규는 유리 피라미드를 보며 들뜬 목소리로 계속 이런저런 말을 이었고, 나 역시 그 말에 끄덕이며 관람을 시작했다. 곳곳에 학생들이 눈에 띄었는데 이곳에서는 학생들의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학생들은 공부하는 사람이고, 박물관은 공부하는 곳이므로 언제라도 와서 공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곳의 학생들은 참 좋겠다 싶었다. 전시실은 크게 리슐리외 관, 쉴리 관, 드농 관으로 구분되어 있다고 한다. 유리 피라미드를 중심으로 북쪽에 있는 리슐리외 관에는 프랑스의 조각과 이슬람의 미술품 등이 전시되어 있고, 1층은 중세실, 르네상스실, 나폴레옹3세실, 2층은 회화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에 있는 쉴리 관은 지상층에는 고대 이집트, 그리스, 지중해 및 페르시아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고, 1층에는 그리스의 토기 작품과 테라코타, 이집트 유물 등이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피라미드 남쪽에 있는 드농 관은 지상층에 에트루리아와 로마의 고대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고 이탈리아 회화 전시실에서는 유럽의 문예 부흥 시대였던 '르네상스'의 그림들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실 입구에서 안내인을 만났고 우리는 너무나 크고 넓은 박물관 내부에 압도되어 두리번거리기에 바빴다. 루브르 박물관은 하루 이틀에 볼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보름 정도 체류하면서 차분히 살펴보면 좋겠다는 배부른 소리를 했다. 이곳에서 꼭 봐야하는 전시물을 세 개만 꼽으라고 하면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라는 작품이라고 한다. 전시실은 어디나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안내인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도 시선 가는 곳마다 신기해하며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드농관 주계단 2층 계단마루에 있는 <사모트라케의 니케>는 머리와 양팔이 없는 조각상으로 치마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지만 마치 뱃머리에 서서 바닷바람을 맞고 있는 듯 치마의 휘날림이 생생하다. <밀로의 비너스>는 전시실 한 가운데 놓여 있었다. 약간 어두운 듯한 실내에서 하얀 대리석의 조각상은 빛나고 있었다. 균형미의 교과서라고 하는 이 조각상을 이렇게 실물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고, 조각상 주변에는 비너스의 미를 찬미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 조각상들은 다 기원전 2, 3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약 4, 5천 년 전의 작품인데 지금 이렇게 내가 마주하고 있다니 떨리고 흥분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외에도 많은 조각상들을 볼 수 있었고, 우리는 <모나리자>를 만나러 바쁘게 움직였다. 회화 전시실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한다. 아쉽게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서양화가의 대명사처럼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이름을 들었고, 그의 작품인 <모나리자>를 봤었는데 실제 그 작품 앞에 서고 보니 생각보다 작은 그림이었다. 시간이 멈추고 소란이 잦아든 듯한 정적 속에 모나리자의 미소를 마주하였다. 방탄유리에 갇힌 <모나리자>는 조금 먼 듯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그 미소를 전하고 있었다. 새삼스럽게 <모나리자>라는 작품에 대해 내가 평가할 필요를 느끼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 속에 잠자고 있던 그 작품 속에 숨어있는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었고, 그 자체로 행복할 것 같았다.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그린 다비드는 프랑스 대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인물로 나폴레옹의 수석 화가였다고 한다. 그는 혁명에 대해 열정과 진정성을 가지고 있었고, 현실에 대한 투쟁과 비타협성이라는 시대정신을 이후 프랑스 화가들에게 전하였다. 7월 혁명을 소재로 한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혁명의 승리, 삼색기를 든 자유의 여신 등을 표현한 대작이다. 프랑스 낭만주의의 현실 참여적인 전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한다.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삼색기를 들고 민중을 이끄는 여신의 힘찬 모습이 프랑스 사람들이 혁명에 담고 싶었던 정신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봤다. 이렇게 작품마다 살펴보려면 정말 보름은 이곳에 머물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전시실을 나왔다. 박물관을 나와 루브르와 이어져있는 튈르리 정원을 산책하며 조금전까지 느꼈던 감동을 되새겨봤다. 눈이 부셔 제대로 하늘을 볼 수 없을 만큼 덥고 화창한 오후였다. 아름다운 정원의 한 그늘을 찾아 앉은 우리들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대한 조각상이 있는 분수, 케이사르 동상, 야외 카페,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너무 평화롭게 보였다.
낭만이 숨쉬는 밤풍경
저녁을 먹으러 한식당으로 향하면서 우리는 저녁 일정에 대해 의논했다. 어차피 해가 늦게 지기 때문에 에펠탑의 야경은 10시가 넘어서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물랑루즈에서 쇼를 보거나 몽마르뜨르 언덕에 가보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당연히 몽마르뜨르 언덕을 가겠다고 했다. 버스에서 내려 언덕을 올라가는 길에는 여행객들을 위한 상품들을 파는 가게들이 줄을 지었고, 특색 있게 꾸민 카페들도 있었다. 두런두런 가게들을 구경하면서 천천히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사크레 쾨르 성당이 보였다. 언덕 위에 자리잡은 백색의 사크레 쾨르 성당은 마치 아라비아의 어느 왕궁처럼 보였다. 이 성당은 1876년에 기공하여 1910년 L. 마뉴가 완성하였고, 과거의 여러 성당 모양을 본뜬 절충적 성당으로 비잔틴 로마네스크 양식이라고 할 만한 건축이라고 한다. 종루에는 세계 최대의 종(26t)이 있다고 하는데 부지런히 계단을 올라 성당 안으로 들어가 봤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창문이 무척 아름답고 성스럽게 보였다. 성당 내부는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고, 내가 기독교인이라면 정말 경건하게 예배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은 지금 이곳에서 어떤 기도를 드릴까 생각하며 잠시 내 마음 속에도 경건함이 찾아들었다.
성당을 나와 길게 돌아가니 몽마르트르 언덕이 나왔다. 입구에는 카페들이 즐비했고, 정말 화가들이 모여 앉아 그림을 그려주고 있었다. 언덕 너머로는 멀리 시가지가 보였고, 노천 카페에는 여행객들이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나도 그림 한 장 그려갈까 싶어 가격을 물어봤다. 아들 녀석 초상화를 그리려는데 얼마면 되겠냐고 흥정을 시작하니 지금 가격은 생각나지 않지만 생각보다 비싸서 그 돈으로 목을 축이는게 낫겠다고 하면서 그만두었다. 그래도 그 때 한번 그려볼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여행 후에 뒤늦게 들기는 했지만 항상 의식주에 급급한 생활을 하다보니 늘 문화적인 선택은 뒷전이다.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태규는 화가들이 모여 앉아 있는 모습, 늘어서 있는 카페들을 보면서 여기에 고흐가 있었을까, 누가 있었을까 부산을 떨며 좋아한다. 그래 이런 모습을 보러 여기 온걸까 생각하며 언덕을 내려왔다.
다시 에펠탑의 야경을 보기 위해 우리는 유람선을 타러 갔다. 조금 춥겠지만 그래도 밖에서 보자고 2층으로 올라갔다. 조금씩 어두워지는 센 강변에는 유람선도 많지만 보트를 타는 사람들도 있고 강변에서 파티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참 여유 있게 삶을 즐기는 모습이어서 보기 좋았다. 유람선을 타니 그야말로 센 강변을 유람할 수 있었는데 낮에 보고 지나간 다리들, 파리의 <자유의 여신상>, 강변을 따라 노트르담 대성당, 오르쉐 미술관 등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퐁뇌프는 '새로운 다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고, 영화의 배경의 되어 익숙한 이름이었기 때문에 다시한번 눈여겨봤다. 알렉상드르 3세 다리는 번쩍이는 금장식이 화려한 느낌을 주었고, 앵발리드 교는 견고하게 보였다. 센 강은 강폭이 한강보다 훨씬 좁기도 하지만 강변을 따라 역사가 흐르고 다리마다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에 비해 한강은 광대하고 메마른 풍경이 아닐까, 즐비한 현대식 건물들, 아파트들이 보이는 풍경, 그래서 그 도시가 품고 있는 역사가 보이지 않는 풍경이 아닐까 한다. 파리, 이 아름다운 역사 도시는 오랫동안 살아온 삶의 경륜을 고스란히 담아 보여주면서 이렇게 현재를 살아내는데 말이다. 조금씩 어두워지면서 바람도 시원해지고 춥기까지 했다. 멀리 에펠탑이 보였다. 조명이 들어와 환하게 빛나는 탑은 낮과 다른 멋이 있었다. 훈훈하고 정겨운 이국의 여름밤이 아름답게 기억되는 것도 에펠탑의 이 불빛 때문일 것이다. 불빛을 받아 은은하게 흐르는 센 강을 따라 파리에서의 첫날을 기억 속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