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모의재판
알렉산더, 위대한 영웅인가 잔인한 침략자인가

윤운하 | 논술교사 unha08071@gmail.com

 

대상: 중학교 1~2학년
함께읽은책:
『마주보는 세계사 교실 1』 (강선주 / 웅진주니어)
『알렉산더 왕』 (마리 테제즈 다비드슨 / 종이비행기)
『알렉산더』 (닉 맥카시 / 루비박스)
학습목표
1. 알렉산더가 위대한 영웅인지 잔인한 정복자인지 평가해 본다.
2. 알렉산더 제국 성립과정과 헬레니즘의 세계사적 영향에 대해 알아본다.
참고한 영화: <알렉산더>
참고도서:
『알렉산더』 (폴 카트리지 / 을유문화사)
『고대 그리스의 역사』 (토마스 R. 마틴 / 가람기획)

주)
루비박스에서 나온 『알렉산더』가 중 1~2학년 학생들이 읽기 좋고, 내용도 풍부해서 권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절판 상태다. 영화 <알렉산더>를 계기로 쓰여진 책이라는데, 영화와 시각이 일치하고 영화에서 본 장면이 많이 나온다. 영화 <알렉산더>는 ‘18세 관람가’지만 중학생들이 보기에 큰 무리는 없다. 부모님과 함께 보도록 권장하는 것도 한 방법!


#1.
스페인 지역의 총독 카이사르는 어느날 알렉산더의 전기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 이유를 묻는 친구들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알렉산더 대왕은 지금 내 나이에 수많은 민족을 다스렸는데, 나는 아직 내세울만한 명예로운 업적이 없으니 어찌 울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후, 그는 갈리아와 브리타니아 지방을 정복하고 로마로 돌아와 거의 황제와 같은 독재관의 지위를 누리다가 암살되었다.
 
#2.
2007년 1월 도서관에서 방학특강으로 초등학교 5~6학년을 대상으로 한 독서논술프로그램 진행할 때였다. 민화 그리기 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민화의 의미, 특징, 당시 사회적 배경 이해 한 후, 직접 민화를 그려보는 내용이었다. 민화를 그리기 전에 조상들이 민화를 그리고 집에 걸어두었던 것은 간절한 소망을 기원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나서는 민화에 나타난 동물들의 상징성에 대해 추론해 보았다. 예를 들면 잉어 그림은 다산과 자손의 출세를 소망하고, 원앙새는 부부 간의 화목, 거북은 장수의 소망을 담고 있다는 것 등이었다. 그리고 난 후 민화를 모사하기 전에 자신의 소망을 먼저 생각하고 발표하는 순서를 가졌다. ‘학원 안 다니고 싶어요. 공부 잘하게 해 주세요. 우리 할아버지 건강하게 해 주세요.’ 등 일상적인 대답이 나왔다. 그런데 문득 6학년 남학생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세계 정복요.”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정복하면 모두 제 발 아래 있는 거잖아요. 저는 명령하고…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그러면 얼마나 좋아요?” 그 아이는 당당하고 확신에 찬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는 그 아이의 노골적인 지배욕, 무한대로 확장된 소유욕을 보면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아이들은 그 틈을 이용해서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었다.
“미국 짱 아냐? 후세인 결국 잡아서 사형시켜 버렸잖아.”
“스텔스 전투기 들어봤냐? 레이다 망에도 걸리지 않고 폭격을 할 수 있대.”
“E폭탄은 더 놀라워. 전자파 무기인데 적의 컴퓨터, 레이더 통신망을 마비시킨대. 이라크는 공격 한 번 제대로 못하게 해 버린 거지.”
“정찰로봇도 등장했잖아. 이라크군이 숨어있던 곳을 알려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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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소망을 세계 정복이라고 말하고 동조하는 많은 남학생들을 보면서 왜 이런 일이 생겨날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 때는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이 숨어 지내다가 미군에게 체포되어 사형을 당한 직후라서 아이들이 이라크 전쟁에 대해 관심이 많을 무렵이었다. 미국의 패권에 무릎 꿇은 초라한 독재자의 말로를 보면서 아이들은 미국의 힘, 신형 무기에 더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였다. 이라크 전쟁 당시에는 언론에서도 미국의 전쟁을 올림픽 중계 방송하듯 보여주며 새로 투입된 무기의 파괴력과 천문학적 가격을 여러 차례 알려주었다. 아이들에게는 이라크 전쟁이 게임과 같은 일, 텔레비전 뉴스 속의 먼 나라 이야기 일뿐이었다. 처참하게 죽어가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별로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혹, 기회가 있었다고 해도 학생들에게도 엄연히 강요되는 ‘우승열패’의 질서 속에서 희생자들의 고통에 시선이 가지 않는 것이리라. 카이사르가 알렉산더의 전기를 보고 그의 정복에 경탄하고 동경하는 그 마음이 요즘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후 세계사 수업에서 침략 전쟁과 그 전쟁에 짓밟혀 삶이 파괴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보고 싶었다. 그래서 가장 유명한 정복자 중 한 사람인 알렉산더에 대해 알아보고 모의재판을 통해 평가를 내려보기로 했다.
 
1차시
 
들어가기
 
1. 책과 영화를 보기 전, 알렉산더에 대해 알고 있었던 내용은 무엇이었나?
 - 알렉산더의 애마였던 부케팔루스를 만난 일요.
 - 고르디온의 매듭이야기요.
 -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만났던 이야기요.
 
2. 영화에서 알렉산더가 바빌론에 입성하는 장면 있잖아? 우리가 메소포타미아 문명 수업할 때 다루었던 유적이 보이던데 뭐였을까?
 - 이슈타르 문요.
 - 공중정원과 바벨탑인듯한 것도 봤어요.
☞ DVD로 같이 한 번 볼까?
 - 독수리 날개 문양이 보이던데 그거 혹시 조로아스터교의 아후라마즈다 신 모습인가요?
☞ 알렉산더가 죽어갈 때, 천정에서 흔들리던 날개 문양 말이지? 그래, 아후라마즈다 형상같아 보이네.
 - 샘, 그런데 독수리가 꽤 많이 나왔어요. 가우가멜라 전투 직전에 상공을 비행하던 독수리가 기억나요.  그것도 아후라마즈다의 모습일까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 그건 제우스의 상징 아닐까요? 영웅 알렉산더는 신들의 왕 제우스가 보살피는 인물이라는 그런 뜻일 거 같아요.
       
3. <알렉산더> 책과 영화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무엇이었나?
 - 알렉산더 동성애자였어요? 친구이자 부하인 헤파이션과 좀 이상했어요.
 - 그리스에서는 남자끼리 동성연애가 흔한 일이었다잖아요.
 - 알렉산더 엄마인 올림피아스 분위기도 특이해요. 영화에서는 안젤리나 졸리가 이 역할을 하잖아요. 방에서 뱀을 키우고, 뱀을 쓰다듬어 주는 장면에서 경악했어요. 엄마가 이러면 진짜 무서울 것 같아요.
 - 아버지도 폭력적이고 바람둥이고……. 알렉산더는 성장기에 꽤 힘들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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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맞아요. 그 사람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장배경을 알아보아야겠지요. <알렉산더> 영화는 당시의 역사는 아니에요. 역사에 근거한 자료에 감독의 상상력을 입혀 형상화한 인물들을 보여주고 있지요. 실제로 올림피아스가 뱀을 애지중지하며 키웠는지는 알 수 없어요. 그러나 뱀을 다루는 이미지에 대한 언급이 있고, 필립포스와 정략결혼을 했기에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을 가능성은 높아요. 알렉산더의 부모에 대해 조사한 바를 알아봅시다.
 
어머니(올림피아스): 이웃 나라 에페이로스의 공주였다. 스스로 아킬레우스의 후손이라 주장하였고 디오니소스 신을 숭배하였고, 뱀을 다루는 신비하고 위험한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무녀였을 가능성이 높다. 여러 명의 아내를 두고 있는 남편 필립포스와 불화 상태였다. 아들 알렉산더를 왕으로 만들고자 하는 야망 하나로 살아간 인물이다. 필립포스의 어린 아내, 클레오파트라의 산달이 가까워오자 극도의 불안감을 느껴 필립포스 암살을 부추겼을 것이라는 의혹을 받았다.
아버지(필립포스): 애꾸눈 왕, 스스로 헤라클레스의 후손이라 주장했다. 그리스 폴리스들을 정복하여 속국으로 만들 난 후 소아시아 원정 준비 중 암살당했다. 알렉산더에게 페르시아 정복이라는 유업과 강력한 군대(보병밀집부대-4.5미터의 긴창과 검과 방패로 무장한 부대)를 남겨주었다. 강한 리더십을 보여준 지휘관이었고, 외교적 수완이 뛰어난 정치가이기도 했다. 그리스 문예를 숭상하여 그리스 철학자, 예술가들을 궁정으로 초청하기를 즐겼다. 특히 알렉산더의 교육을 위해 당시 그리스 최고의 철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를 초빙하였다. 알렉산더는 스승으로부터 토론기술, 리더십, 논리학, 종교학, 예술론, 문학, 동물학, 식물학까지 전수받았다. 필립포스는 여러 명의 아내를 두고, 술을 좋아하여 광기 어린 행동을 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2. 마케도니아는 그리스 폴리스 국가 중 하나였을까요?

 - 필립포스가 그리스 반도를 장악하였을 때. 테베와 아테네 등이 마케도니아를 야만족이라고 경멸하고 하는 것으로 보아 그리스 폴리스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 지리적으로 보아도 그리스 북부 산악지역이잖아요.
 - 그런데 필립포스가 그리스 문화를 동경하고 학자와 예술가를 불러들인 걸로 봐서는 그리스와 문화적으로 공통점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 그래요, 마케도니아는 펠레폰네소스 반도 북부의 산악지대에 자리잡고 있었어요. 필립포스가 강한 군대로 그리스 폴리스들을 정복하기 전에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 야만족 국가로 취급되었지요. 하지만 마케도니아인들은 그리스 문화를 동경하며 적극 받아들여 스스로 그리스인이라고 생각했지요.
 
3. 알렉산더는 그리스 신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으며 살았던 인물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그러한지 찾아보세요.

 - 어머니 올림피아스는 아킬레우스의 후손, 아버지는 헤라클레스의 후손이라고 했어요. 진실여부를 떠나 부모 모두 그리스 신들을 숭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 알렉산더도 자신은 아킬레우스, 친구인 헤파이션은 파트로클로스로 생각하기도 했잖아요.
 - 영화에서는 프로메테우스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도 했어요.
 - 그리고 항상 <일리아드>를 끼고 살았대요.
 - 자신도 신화 속의 인물처럼 되고 싶었나 봐요.
 
4. 알렉산더가 서쪽이나 북쪽이 아닌 동쪽으로 원정을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 아버지의 유업이었어요.
 - 당시 페르시아인들이 아버지의 암살의 배후였다는 의심도 있었어요.
 - 페르시아 전쟁에 대한 복수, 소아시아에서 페르시아의 지배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그리스 도시들을 구하고 싶었대요.
 - 당시 가장 강하고 큰 나라였던 페르시아를 정복하여 명예를 드높이고 싶어했어요.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넘어서고 싶었고 <일리아드>에 나오는 아킬레우스처럼 살고 싶어했어요.
☞ 당시 유럽 지역은 어떤 상황이었을까?
 - 별 다르게 강력한 나라나 문화가 없었을 거 같은데요.
 - 음, 알았어요. 아직 강한 나라가 없으니까 약탈할 것도 없고, 당시 그리스의 적수가 될만한 나라는 대제국 페르시아밖에 없었겠네요.

5. 알렉산더 제국을 지도를 통해 알아봅시다.
 
알렉산더 제국의 성립 : BC334년 동방원정 시작, BC 324년 인더스에서 수사로 돌아감.
BC 323년 열병으로 사망(3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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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 출처 : 세계사 에세이 1권 / 백산서당)
 
6. 알렉산더는 왕이면서 동시에 군대 지휘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군인들의 충성을 얻어낼 수 있었나요?

 - 누구보다 앞장서서 싸웠어요.
 - 뛰어난 전략이 있었어요.
 - 병사들에게 용기를 주는 연설을 잘했어요.
 - 의지와 용기, 무엇보다도 운이 따르는 지휘관이었어요.
 - 병사들 한 사람 한 사람씩을 아끼고 귀하게 생각한다는 느낌을 주었어요. 죽은 병사들 장례를 잘 치뤄 주고, 그 가족들에게는 세금을 면제해 주었지요.
 - 전투 직후, 죽어가거나 다친 병사들을 다독거리고 위로하는 장면도 있었어요.
 - 병사들에게 전리품을 잘 나눠 주었어요.
 - 『사기열전』에 나왔던 사마양저와 비슷한 면이 있네요. 
 
7. 그를 믿고 따르던 부하들 중 일부가 그를 암살하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 알렉산더는 페르시아 왕처럼 행동했어요. 예를 들면 신하들이 왕을 만날 때는 몸을 낮춰 절(부복 관습)을 하도록 했어요. 페르시아인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마케도니아인들은 참기 어려운 모욕으로 느꼈어요.
 - 이집트 아몬 신전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통치자가 되리라는 신탁을 받고는 스스로 신처럼 행동했어요.
☞ 알렉산더는 아몬신전을 다녀온 후 아몬 신의 아들이라며 스스로를 신격화시켰어요. 이런 자신감으로 인해 페르시아식 관습(부복관습)을 쉽게 받아들였지요. 마케도니아에서는 왕위가 반드시 세습에 의해 추대되는 것이 아니고, 추대했던 그 세력에 의해 밀려날 수도 있었습니다. 알렉산더가 페르시아의 전제적 왕처럼 군림하자 그의 부하들 사이에서는 반감이 일어나고 독재자가 되어가는 알렉산더를 암살하고자 하기도 했죠. 그의 최측근인 필로타스가 가담한 시해 음모가 발각되기도 했어요.

 

8. 알렉산더는 테베나 티루스처럼 그에게 저항하는 지역 사람들을 어떻게 했나요?

 - 그 지역 사람들을 학살하고 도시를 초토화시키고 생존자들을 모두 노예로 만들어 버렸었어요. 특히 티루스는 7개월을 저항했지만 결국 무너지고 말았어요.
- 주변 지역 사람들에게 저항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려고 더 강하게 행동했어요.
- 알렉산더로의 정복욕으로 인해 삶이 완전히 파괴됐어요.
 
9. 다른 정복자들과 다른 알렉산더의 모습은 무엇이었나요?
 - 페르시아인들을 훈련시켜 군대, 심지어 왕실 근위대에도 넣어주었어요.
- 군인이 모자라니까 할 수 없이 그렇게 한 것 아닐까요?
-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군대로는 쓸 수 있지만(당시에 용병도 많았으니까) 왕실근위대로까지 쓴 것은 페르시아인들을 믿고 자기 백성으로 생각한 것 아닐까요?
- 자신에게 저항하면 철저하게 파괴했지만, 순순히 항복하는 지역에서는 기존 지배권자의 지배권을 그대로 인정하고 종교나 풍습도 인정했어요. 알렉산더에게 세금을 내고 충성을 다짐하면 이전과 별 다름없이 살 수 있었지요.
- 자신도 페르시아 여성들과 결혼했고, 부하들의 결혼도 권장했어요.
- 결혼을 통해 피가 섞여야 진정하게 하나의 나라가 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 복종, 협조하는 지역에는 기존 지배자들의 지배권을 인정하고, 종교나 풍습도 인정하는 정복자들의 사례는 많아요. 예를 들면 페르시아 키루스 왕, 몽골제국도 넓고 다양한 지역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러한 면이 필요했어요. 알렉산더가 차별화되는 점은 왕실근위대와 결혼에 있지요. 일정기간 그리스식 훈련을 받은 이들은 군대(보병 밀집 부대, 기병대)에 넣어주기도 했습니다. 또 페르시아인들 중 일부를 군대의 장교로 임명하고, 페르시아인으로 구성된 왕실근위대도 만들기도 했어요. 또 페르시아 궁중의 복식과 예절을 받아들이고, 페르시아 여성들(록산느, 페르시아 공주인 스타테이라, 파리사티스)과 결혼을 했어요.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하들에게도 페르시아 여성과의 결혼을 권장하여 합동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어요. 정복한 나라의 공주나 왕비를 전리품처럼 다루거나 첩으로 삼는 경우는 많이 있어도 알렉산더처럼 정복지의 여성들과 결혼한 인물은 드물지요. 덕분에 페르시아인들의 마음은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었지만, 생사고락을 함께한 마케도니아인 부하들로부터는 많은 반감과 저항을 받기도 했어요.
 
10. 알렉산더는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죽었습니다. 그의 사후에 알렉산더 제국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봅시다.
 
알렉산더의 죽음 후 부하들 사이에서 치열한 내전이 40여 년 간 계속되었다. 그 결과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본토를 다스리는 안티고노스 왕국, 메소포타미아 이란 지역을 다스리는 셀레우코스 왕국과 이집트 지역을 다스리는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이 만들어졌고, 이후 2세기 동안 균형을 유지하였다.
알렉산더가 사망한 기원전 323년부터 나중에 로마의 옥타비아누스가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이김으로써 지중해 세계를 통일한 시점인 기원전 30년까지를 헬레니즘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이 세 왕국은 정치적으로는 분리되었지만 경제적 문화적으로는 알렉산더의 유산을 그대로 따른다. ‘코이네’라 불린 국제적으로 통용되던 그리스어가 쓰이고 아테네의 화폐가 국제 통화로 유통되었다. 아시아 이집트에 정착했던 그리스인 병사, 관리와 상인들은 그리스 관습과 생활양식을 전파시켰고, 이들 나라의 지배층은 그리스인이거나 그리스화한 사람들이었다. 알렉산더가 제국을 이루었던 시간은 약 1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의 사후에 민족과 인종을 초월한 문화의 교류와 결합의 이상은 현실화되어 헬레니즘이라는 문명을 만들었다. 비록 그리스인 주도로, 그리스인들이 지배층으로 존재하기는 했지만……. 알렉산더는 정복지 각 지역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해서 그리스식 교육과 문화가 보급되도록 했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이다. 이곳은 헬레니즘 시대에 학문의 중심지였다. 지구의 둘레를 계산한 에라토스테네스, 천동설을 체계화한 프톨레마이오스 등이 유명하다. 헬레니즘 시대 문화는 그 이후 로마제국으로 흡수되며 유럽문화의 뿌리가 되었고, 이슬람 학자들도 이 시대 학문적 성과를 계승하여 이슬람 과학의 꽃을 피웠다.
 
11.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은 인도뿐 아니라 우리 민족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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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출처: 금성출판사 중학교 1학년 사회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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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출처: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1권 / 휴머니스트
 
☞ 기원전 321년 경 갠지즈강 유역에서 마우리아 왕조가 성립되었다. 마우리아 왕조는 3대 아소카 왕 때 인도 대부분을 통일하였다. 아소카 왕은 전쟁으로 인한 수 많은 사람들의 희생에 대해 뉘우치고 불교를 믿으며 죄를 빌었다. 그는 불교를 국교로 지정하고 주변국에 불교를 전파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불교가 동남아시아, 중국, 한국, 일본에 이르는 세계 종교로 성장하게 되었다. 아소카 왕은 불교의 진리에 기초한 이상 국가를 꿈꾸었고, 전륜성왕으로 불리게 된다. 전륜성왕(轉輪聖王)이란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 진리의 수레바퀴를 끌고 가는 성스러운 왕이란 뜻이다. 마우리아 왕조 다음의 쿠샨왕조에서 대승불교가 출현했고, 주로 티베트, 중국, 한국, 일본에 전파되었다. 소승불교는 주로 동남아시아에 전파되었다. 불교는 그리스 미술의 영양을 받은 간다라 불상과 함께 전파되었다.
 
2차시
 
1. 알렉산더는 어린 시절 그리스 신화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다. 헤라클레스를 좋아했고, 아킬레우스가 되고자 했다. 그러나 그가 진정 되고자 했던 것은 ‘프로메테우스’였다. 그는 그의 원정이 모든 인간 모든 국가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리스, 서남아시아, 이집트 지역의 문명을 혼합한 헬레니즘 문명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그에게 저항하는 곳에서는 학살, 파괴, 노예화를 망설이지 않았다. 또, 그의 부하들이 반대하지 않았다면 인도 정복을 계속했을 것이다. 알렉산더는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영웅인가? 아니면 야망으로 가득 찼던 잔인한 정복자인가? 모의 재판을 해 보자.
 
☞ 1차시에 모의재판 역할을 미리 나누고, 준비해오도록 한다. 판사, 검사 등의 이름표를 착용하도록 한다. 학생들이 열심히 준비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부모님을 법정 방청객으로 초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형사 재판의 절차에 따라 모의재판을 진행한다.
 
▣ 알렉산더 모의재판
 
등장인물
판사 ? 논술샘
검사 ? 김도영 (대안여중 2학년)
변호사 ? 강승희 (대안여중 2학년)
피고(알렉산더) ? 정다혜 (대안여중 2학년)
검사 측 증인(클레이토스) ? 김태이(대안여중 2학년)
변호사 측 증인(프톨레마이오스) ? 김태이(대안여중 2학년)
해설 - 김태이(대안여중 2학년),
 
재판순서 :
①  재판장의 인정 신문
②  검사의 공소제기(기소요지), 심문
③  변호사의 변론
④  증인의 증언(검사 측, 변호사 측)
⑤  검사의 논고
⑥  변호사의 최후 변론
⑦  피고의 최후 진술
⑧  재판장의 판결
 
해설자: 저희는 알렉산더 모의재판을 준비했습니다. 그는 동서양의 문화를 통일하고자 했던 위대한 영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 자신의 야망에 충실한 정복자, 그것도 가장 악랄한 침략자였다는 평가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알렉산더는 서양인이 최초로 동양권을 정복한 사례로, 서양 사람들이 쓰는 세계사 책에서는 위대한 의지와 추진력을 가졌던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21세기 한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알렉산더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고민해보기 위해 알렉산더 모의재판을 준비했습니다.
 
#1.
서기: 재판장님이 나오십니다. 일동기립!
(판사가 들어와 앉으면) 착석!
판사: 0000년 0월 0일  모의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사건번호 1번, 피고인은 알렉산더!
판사: 피고인 알렉산더 맞습니까?
피고: 예.
판사: 피고인 생년월일은 어떻게 되죠?
피고: 기원전 356년입니다.
판사: 피고인 주소가 어떻게 되죠?
피고: 마케도니아 수도 펠레입니다.
판사: 검사측, 기소 요지를 말씀하세요.
검사: 피고 알렉산더가 일으킨 페르시아 정복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는 채 죽고, 다치고, 재산을 잃어야 했습니다. 피고를 믿고 따르던 그의 부하들 역시, 전쟁터에서 가족을 그리워하며 죽어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정복을 영웅적 행동으로 평가하지만 그 뒤에 가려진 억울한 죽음, 분노, 고통을 생각해 본다면 그는 살인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에 본 검사는 그를 피고로 내세웠습니다. 이번 재판을 통해 그의 잔혹하고 무자비한 행동을 파헤치고 그의 오점을 낱낱이 공개하고자 합니다. 아직도 전 세계는 끊임없는 전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모든 전쟁은 도덕적인 명분으로 포장하지만 그 시작은 인간의 탐욕입니다. 이에 본 검사는 잔인한 정복자였던 알렉산더의 탐욕과 광기를 밝혀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자 합니다.

 

#2.
판사: 지금부터 피고인 심문에 들어가겠습니다. 심문에 앞서 피고인은 본 법정에서 검사나 변호사, 재판장의 심문에 대해여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고 질문에 대해 피고인에게 이익이 되는 사실을 진술할 권리가 있습니다. 검사는 피고인을 심문하여 주십시오.
검사: 기원전 334년, 피고는 페르시아를 침략했습니다. 맞습니까?
피고: 네.
검사: 피고가 그 전쟁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피고: 아버지의 유업이기도 했고, 그리스인들을 침략한 페르시아에 대한 복수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인간, 모든 국가를 위해서입니다. 세계를 하나의 나라로 만들어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검사: 피고는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피고의 침략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약탈당했습니다. 특히 티루스에 대한 공격은 잔인할 정도였지요. 모든 병사를 학살하고, 도시를 불태우고, 남아있던 3만 명 이상의 시민들을 모조리 노예로 팔아버렸지요. 피고 맞습니까?
피고: 맞습니다. 하지만 제게 항복하고 복종하는 지역 사람들은…….
검사: 피고, 네 / 아니오로만 대답하세요.
피고: (침묵)
검사: 피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친구이자 부하였던 인물이 헤파이션이지요?
피고: 네.
검사: 헤파이션 죽음의 원인은 무엇이었나요?
피고: 갑작스런 열병이었습니다.
검사: 헤파이션이 죽었을 때, 피고는 세상이 무너지는 절망과 분노 슬픔을 느꼈습니다. 맞습니까?
피고: 네.
검사: 피고가 일으킨 정복전쟁으로 인해 다치고 죽어가야 했던 많은 사람들, 그 가족들도 피고와 같은 고통과 절망을 느꼈을 것입니다. 피고는 이런 생각 해본 적 있습니까?
피고: (침묵)
검사: 피고의 광적인 살인 행각은 계속되었습니다. 
변호사: (책상을 치고 벌떡 일어서며) 재판장님, 검사 측의 편파적 단어 사용에 이의 있습니다.
판사: 인정합니다. 검사 측 주의하세요.
검사: 죄송합니다. 피고는 친구 헤파이션이 죽고 난 후, 그의 의사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인근도시를 공격해서 어린아이에서 노인까지 남자란 남자는 모두 학살했습니다. 헤파이션에게 바치는 제물이었다고 했는데 사실입니까?
피고: 그 땐 제가 친구를 잃은 슬픔을 가눌 길이 없어서…….
검사: 바로 그 점입니다. 피고가 느꼈던 그 슬픔과 절망을 많은 사람들이 겪었습니다. 피고가 일으킨 바로 그 전쟁으로 인해서요.
피고: (침묵)
검사: 피고는 또, 피고의 목숨을 구해주기도 했던 친구 클레이토스를 죽였습니다. 왜 죽였습니까?
피고: 그가 왕인 저를 비하하는 발언을 계속하고 또, 제가 만취 상태라서…….
검사: 만취 상태라고 해서 사람을 죽인다고요? 만취상태가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습니까?
피고: (침묵)
검사: 피고는 인더스강에서 더 동쪽으로 나아가고 싶었지만 지친 병사들의 반대로 돌아옵니다. 그 때 피고의 부하들이 반대하지만 않았다면 세상 끝까지 가고 싶었지요?
피고: (머뭇거리며) 네.
피고: 피고는 탁월한 지휘관이고 전략가였지만 사람들의 목숨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정복 전쟁을 통해 가는 길마다 죽음과 고통을 선물했습니다. 때로는 술에 취해서 또는 슬픔에 취해서 무고한 사람을 죽인 광적인 인물입니다. 또, 부하들의 반대가 없었다면 인도를 지나 중국까지 갈 수도 있었을 인물입니다. 그것이 세계 통합, 인류의 평화를 위한 일이었다고 피고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피눈물 위에 세워진 나라에서 그런 평화와 행복이 싹틀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피고가 백성들의 평화와 행복을 운운한다면 나라를 잘 다스릴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피고는 미지의 땅을 정복하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세계 끝까지 정복하겠다는 욕망으로 가득했습니다. 이로써 피고가 주장한 세계통합과 인류의 행복은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악랄한 정복자 중 한 사람일 뿐입니다.

 

#3.
판사: 변호사측, 반대 심문하세요.
변호사: 피고는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맞습니까?
피고: 네, 맞습니다.
변호사: 그런데 피고는 왜 아시아의 공주들과 결혼을 하셨습니까?
피고: 예. 저는 페르시아인들을 피정복민이 아닌 저의 백성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의 진정한 통합을 위해서는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많은 부하들이 왜 야만적인 페르시아 여성들과 결혼을 하냐며 마케도니아 귀족의 딸과 결혼을 하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국의 통합을 위해서 마케도니아 백성들의 원망을 무릅쓰면서까지 아시아 여인들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 부하들에게도 아시아인과의 결혼을 권장했습니다.
변호사: 피정복민인 페르시아인들을 군대와 왕실근위대에까지 넣어준 이유는 무엇입니까?
피고: 페르시아인들을 군대에 왕실근위대에 쓴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많이 우려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페르시아인도 나의 백성들입니다. 페르시아 여성들과 결혼한 것과 같은 이유지요. 더 나아가 그들을 확실하게 믿고, 또 믿음을 주기 위해 저를 가장 가까이서 호위하는 왕실근위대로 임명한 것입니다.  
변호사: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피고를 전쟁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잔인한 정복자라고 평가합니다. 이런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피고: 저에게 항복하고 협조하는 지역은 절대로 파괴, 학살, 약탈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페르시아 시절보다 관습이나 종교에 간섭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도록 배려해주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페르시아 인들은 열등하고 미개한 종족이라고 배웠으나, 저는 그들도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들의 문화도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강하게 저항하는 지역은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들어도 초토화 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래야 다른 지역들이 감히 봉기를  꿈꾸지 못할 것이니까요. 제가 저의 부하를 죽인 것은 반란을 모의 하거나 저에게 엄청난 모욕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후환이 두렵기도 하고, 언제 뒤에서 공격할지도 몰랐기 때문이죠. 멀리 보내자니 그곳에서 군대를 키워 반란을 일으킬 것 같고, 그냥 가까운 곳에서 살려두자니 제가 하루도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변호사: 피고께서는 한 문화를 형성하는데도 큰 영향을 끼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문화가 무엇이죠?
피고: 기원전 4세기 후반부터 기원전 1세기까지 이어졌던 헬레니즘 문화입니다. 저는 페르시아 원정을 단행하고 이를 넘어 인도까지 이르는 대원정을 실시했습니다. 이러한 원정 과정에서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가 자연스럽게 접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정복한 땅에 70개 가량의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만들어 도서관을 만들고 그리스 문화를 전파하도록 했습니다. 제가 건설한 이 헬레니즘 문화의 틀을 마련했지요. 그리스문화와 오리엔트 문화가 결합된 헬레니즘은 제가 꿈꾸던 나라에 잘 맞는 모습이지요.
변호사: 그렇다면 피고께서 틀을 마련하신 헬레니즘은 인류 역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피고: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꽃을 피운 헬레니즘은 동서간의 문화의 교류와 통합의 상징입니다. 이후 로마문화의 뿌리가 되었고 이슬람 문화권에서도 헬레니즘 시대의 과학이 계승되었습니다. 또 한 때 저의 제국의 일부분이었던 간다라지역의 미술이 불교 보급과 함께 아시아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었지요.
변호사: 간다라 미술에 대한 참고 자료를 보여 드립니다. (판사와 방청객에게 보여준다.)
첫 번째 사진은 그리스 조각품이고 두 번째는 불상은 간다라 미술, 세 번째 불상은 중국의 룽먼석굴, 네 번째는 석굴암의 본존불입니다. 헬레니즘과 오늘날  우리들과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자료였습니다.
변호사: 피고가 동방 원정을 떠나 페르시아를 무너뜨리고 알렉산더 제국을 만든 최종적인 목표는 무엇이었습니까?
피고: '위대한 자가 꿈을 꾸는 게 아니라 꿈을 꾸는 자가 위대하다'라는 말과 '역사는 꿈을 쫓는 사람을 기억한다'라는 말이 있죠. 간략하게 말하자면, 전 세계를 하나의 나라로 만드는 것이 제 꿈이었습니다. 인류가 하나의 나라에서 평화롭게 행복하게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여러 도시가 번영하는 나라, 찬란한 문화를 꽃을 피우는 나라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변호사: 예, 알겠습니다. 전쟁에서 살생을 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고, 피고가 동방 원정 중에 죽인 사람들은 피고를 배신한 사람들이거나 항복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항복한 사람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또, 피고는 누구보다도 용맹하고 부하들을 아끼는 위대한 지휘관이었고, 페르시아인들 진정으로 자신의 백성으로 껴안고자 했습니다. 페르시아 여성들과 결혼하고 페르시아인들을 왕실근위대로까지 쓰면서 입증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편견이 없었던 인물입니다.  당시 피고의 꿈은 세계 통합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피고의 꿈은 헬레니즘 문명으로 꽃피면서 인류에게 찬란한 문화적 유산을 남겨주었습니다. 그를 영웅으로 인정하고 존경하지는 못할망정 잔인한 정복자라고 호도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합니다.  이에 본 변호인은 피고의 무죄를 주장하는 바입니다.

 

#4.
판사: 이상으로 피고인 심문을 마치겠습니다. 증거 조사하겠습니다. 검사측 증인 신청하시겠습니까?
검사: 피고의 잔인한 정복자로서의 면모를 증언해줄 클레이토스를 증인으로 요청하는 입니다.
판사: 변호사측 증인 신청하시겠습니까?
변호사: 당시 피고와 함께 전투를 이끌었고 피고의 사후에는 이집트 지역에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세웠던 프톨레마이오스를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5.
판사: 증인 채택을 인정합니다. 증인 클레이토스 앞으로 나오십시오.
증인: 선서!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 없이 사실 그대로를 말하고, 만일 위증할 시에는 위증의 벌을 받겠습니다.
판사: 선서하고 거짓 증언하면 위증죄로 처벌받습니다.
검사측 심문하세요.
검사: 증인은 피고와 어떤 사이입니까?
증인: 저는 소아시아 첫 전투부터 피고와 함께 했던 사람으로 피고의 친구이자 부하입니다. 또 그라니코스 전투에서 그를 구해주었기에 각별히 저를 아꼈습니다.
검사: 피고는 어떤 지휘관이었나요?
증인: 그는 항상 가장 앞장서서 전투를 이끌었고, 전략이 뛰어났으며, 용기를 불어넣을 줄 아는 장군이자 왕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를 존경하고 따르고 믿었지요. 그런데 그가 이집트에서 아몬신의 신탁을 받은 후부터 달라졌습니다. 마치 아몬 신의 아들인듯 행동했지요.
검사: 부하들의 반발이 있었나요?
증인: 반감이 있지만 드러낼 상황은 아니었지요. 그런데 그는 페르시아를 무너뜨리고 바빌론 수사 페르세폴리스를 정복한 후에는 페르시아식 부복 관습을 받아들였습니다.
검사: 부복 관습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증인: 부복이란 페르시아 왕 앞에 신하가 나아갈 때 엎드려 절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에서는 그런 행동은 노예에게나 해당되는 것입니다. 자유민인 그리스 시민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사실에 치욕을 느꼈습니다.
검사: 마케도니아에서는 왕권이 페르시아만큼 강하지는 않았나 보죠?
증인: 우리 나라에서는 귀족들이 왕을 추대하는 형식으로 왕이 결정되었습니다. 따라서 왕의 아들이라 해서 반드시 왕이 되는 것도 아니고 왕으로 추대되었다 하더라고 제대로 하지 못하면 추방될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필립포스 왕 때부터 이런 모습은 약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페르시아인들처럼 왕을 신처럼 떠받드는 것은 아니었지요.
검사: 피고의 최측근인 필로타스가 관련된 암살음모가 그래서 생겨났나요?
증인: 저는 그들과 생각을 나눈 적은 없지만 제가 앞에 말씀 드린 불만이 싸여 그런 일도 일어났을 겁니다. 피고는 스스로를 새로운 제국을 이끄는 신격화 된 왕으로 인정해주길 바랬지만 우리는 그가 마케도니아에서 출발한 왕임을 잊지 않길 바랬지요.
검사: 증인은 피고의 신임과 총애를 받은 부하였는데 어떻게 하다가 피고의 칼에 찔려 죽게 되었나요?
증인: 어느 술자리에서 피고가 자신은 아버지 필립포스를 능가한 존재이고 모든 업적을 자신의 위대함으로 이야기해서 제가 울컥하는 마음에 입바른 소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불시에 칼로 저를 찔러서…….
검사: 페르시아 정복에 성공하면서 피고가 독선적이고 스스로 신이라고 믿는 인물로 변해갔다는 말씀입니까?
증인: 네, 스스로 신화를 만들어간다고 생각하며 세상 끝까지 정복하고 하는 야욕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는 신화 속의 인물을 꿈꾸면서 그들처럼 되고자 했고, 마침내 정복전쟁 성공했을 때는 그들을 능가하고, 자신의 아버지를 뛰어넘은 영웅으로 자신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세상 끝까지 정복하고자 한 야망과 허영으로 똘똘 뭉쳐져 있는 인물이지요.
검사: 이상입니다.

 

#6.
판사: 변호인측 증인 프톨레마이오스, 출석하세요.
증인: 선서!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 없이 사실 그대로를 말하고, 만일 위증할 시에는 위증의 벌을 받겠습니다.
판사: 선서하고 거짓 증언하면 위증죄로 처벌받습니다. 변호인측 심문하세요.
변호사: 증인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세운 분이지요?
증인: 네, 저는 마케도니아인이고 피고의 부하였습니다.
변호사:  어떻게 왕국을 세우게 되었나요?
증인: 알렉산더 대왕께서는 거대한 알렉산더 제국을 세우고 33세라는 나이에 요절하셨습니다. 그때 록산느 왕비께서 임신중이었고, 대왕께서는 돌아가시면서 후계자를 지목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왕의 서거 후 우리 신하들은 제국의 지배권을 두고 치열한 권력 투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국이 세 개의 나라로 쪼개졌는데 제가 지배하게 된 나라가 이집트였습니다.
변호사: 이집트 백성들은 피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였습니까?
증인: 우리 나라 백성들은 대왕께서 페르시아 군대를 무찌르고 들어오셨을 때 페르시아로부터 해방시켜주는 해방군으로 열렬하게 환영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왕이 되어 돌아가신 대왕을 숭배할 때 이집트 백성들도 잘 따라주었습니다. 그 만큼 존경을 받는 분이었습니다.
변호사: 피고가 이집트 백성들의 환영과 지지를 얻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증인: 대왕께서는 백기를 들고 복종하는 지역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관용을 베푸셨습니다. 세금을 내고 충성을 맹세하기만 하면 그 지역의 종교, 풍습은 그대로 인정하셨습니다. 그 지역의 토착 지배세력도 그대로 인정해주셨습니다. 페르시아의 공주와 그녀의 가족을 자신의 가족처럼 대우하는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인이 아니더라도 대왕의 군대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페르시아의 통치보다 더 자유로우니까 대왕을 적극 지지하게 된 것입니다.
변호사: 피고는 그의 군대를 어떻게 이끌었나요?
증인: 명민하고 리더십 뛰어난 지휘관이었던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대왕께서는 병사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분이었습니다. 병사 한 명 한 명을 기억하며 전투가 있기 전 그 이름을 불러주며 독려하셨습니다. 또, 전리품도 넉넉하게 나눠주고 전사자들은 장례를 잘 치뤄주고 그의 가족에게는 세금을 면제하는 등의 혜택을 베푸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왕께서 정복욕에 눈이 어두워 억지로 군대를 이끌었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병사들이 너무 지쳐 돌아가자고 했을 때 그는 신세계에 대한 열망을 접고 우리와 함께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병사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뜻을 존중해주는 왕이 어떻게 정복욕에 눈이 먼 왕이 될 수 있습니까?
변호사: 피고의 원정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요?
증인: 대왕은 아킬레우스, 헤라클레스 등을 동경했지만 그가 진정으로 원하던 모습은 프로메테우스였습니다. 인간에게 불을 준 프로메테우스처럼 대왕도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나라를 만들고 싶어하셨습니다. 국경선 없는 하나의 나라에서 모든 백성들이 편안하고 행복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동서가 결합한 헬레니즘 문화를 만들었고, 우리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는 그 후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그 젊은 나이에 그렇게 단시간 내에 어떻게 그렇게 큰 업적을 세우셨는지 지금도 놀라울 뿐입니다.
변호사 : 이상입니다.

 

#7.
판사: 검사측, 변호사측 최후 진술 하십시오.
검사: 피고 알렉산더가 세계사에 중요한 한 획을 그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치뤄야 할 것은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삶의 터전을 파괴당해야 했습니다. 많은 피고의 병사들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피고가 그토록 끔찍한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행복한 생을 보낼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생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무참히 짓밟고도 그가 일으킨 전쟁을 인류를 위한 일이었다고 주장하는 피고의 몰염치에 경종을 울려주시길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변호사: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는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3개 대륙을 정복하여 최초로 동서양의 융합을 이루며 헬레니즘 문화를 만든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에게 저항했던 지역을 잔혹하게 파괴한 일, 반란을 공모한 부하들에 대한 엄격한 대처는 그 시대의 왕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모습입니다. 이로 인해서 그의 업적이 덮어지고 그가 잔인한 정복자로만 평가된다는 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재판장님의 현명한 판결을 기대합니다.
판사: 피고는 마지막으로 할 말 있으면 하세요.
피고: 저는 어린 시절부터 영웅을 꿈꾸었습니다. 그 영웅은 용감하고 단호한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영웅이 되고자 열정적으로 살았고 군대를 이끌었습니다. 오늘 재판에서 저를 탐욕으로 타인을 불행에 빠뜨린 사람으로 몰아붙이시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제가 정복 야욕에 미쳐있던 사람이라면 왜 힘들여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했겠습니까? 그리고 왜 마케도니아인들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페르시아인들을 제 백성으로 껴안으려고 노력했겠습니까? 하나로 통합된 나라를 건설하고 이끄는 영웅이 되는 것이 제 꿈이었습니다.
 
2. 각자 판사가 되어 판결문을 작성해 봅시다.
 
<판결문 1>                                                     
이연우 (평촌중 2학년)
알렉산더는 유죄이다. 우선, 그는 자신에게 저항하는 자들과 도시(혹은 국가)들을 처참하게 짓밟았다. 항복하는 곳에는 화평책을 펼쳐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고 해도, 저항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건물을 불태우는 행패를 부리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자신이 사는 곳을 정복하려고 하는 자에 대한 반감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심리이다. 그러한 심리를 무시하고 사람들을 참혹하게 파괴한 것은 명백한 죄이다.
그리고, 그는 정복지에 알렉산드리아를 세우고, 그리스인이 지배층이 된 헬레니즘 문화를 퍼뜨리기도 했다. 정복지를 미개한 곳이라고 불렀지만, 그들도 나름의 문화가 있었다. 헬레니즘 문화를 퍼뜨려 문화 생활을 할 수 있게 한 것은 좋은 의도이나 원래 문화를 지킬 기회를 상실하게끔 하고 그리스인이 주도가 된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런 면에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는 유죄이다.
 
<판결문 2> 
김소영 (평촌중 2학년)                                                               
피고인 알렉산더는 BC334년에 동방원정을 시작하여 BC324년 인더스를 거쳐 BC323년 열병으로 사망하기 까지 그리스 폴리스들을 정복하고, 이집트, 페르시아 등을 정복하면서 수 많은 군인들과 민간인들을 살해하였으며, 많은 외국의 문화재들을 약탈하고 파괴하였다.
피고인이 전쟁을 하면서 많은 군인들을 전쟁터로 내몰아 죽게 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과 문화재 등을 죽이고 파괴한 사실은 인정된다. 그러나 피고인의 이러한 행위는 나라를 넓히고 백성들을 보다 잘 살 수 있게 하기 위한 행위로 피고인의 정치적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만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 피고인이 정복한 나라의 법률로는 침략자이고 약탈자일 뿐이지만, 피고인의 행위는 마케도니아 법률로는 애국적 행위이다.
피고인이 생존할 당시 주변국을 침략하면 안 된다거나, 침략과정에서 상대국가의 백성들을 살해하여서는 안 된다는 법률이 없었으므로 피고인의 행위는 피고인의 나라 법률에 따라 심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피고인의 행위에 대하여 국제법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피고인의 나라 법률인 마케도니아 법률에 따라 무죄로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