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더듬이 선생님』
외톨이를 위한 희망의 메신저
김건영 논술교사
kgyjaju@dreamwiz.com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왕따’라는 말에 익숙해졌다. 심지어 왕따로 인한 비관 자살 소식에도 그다지 놀라지 않게 되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왕따현상이 보편화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80년대 중반 일본에서 이지메로 인한 중학생들의 자살이 잇따르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왕따 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이래, 90년대 말 외톨이로 진단되는 아이가 네 명에 한 명꼴로 나타났고, 외톨이 둘 중 하나는 왕따이거나 폭력을 당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최근 집단 따돌림 현상에 대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8.1%가 왕따를 시킨 경험이 있고, 30%는 자신이 왕따를 당해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적어도 응답자의 52.9% 왕따현상을 목격했다고 대답했다. 오차범위를 감안해도 우리 아이들 중 많은 수가 매년 왕따를 당하거나, 왕따를 시키거나, 왕따를 목격하면서 성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일상적으로 보편화된 만큼 은따, 전따, 선따, 핸드폰 왕따, 셔틀 등 그 양상도 다양해졌다.
이러한 왕따 현상은 비단 학교에 한정되지 않는다. 최근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의 동기 역시 ‘기수 열외’라는 해병대 내 왕따 문제였다. 정치계에도, 연예계에도 왕따는 꼭 있다. 하다못해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직장인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문제도 업무가 아니라 대체로 인간관계라는 대답들 역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인지 깨닫게 해준다.


『말더듬이 선생님』은 외톨이들의 이야기이다. 외톨이라고 해서 모두가 왕따는 아니다. 왕따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은 되어 있지만 작가는 왕따들을 내세워 교과서적인 훈계를 늘어놓지 않는다. 오히려 왕따를 시키거나 자기 스스로 왕따의 길을 택하는 아이 등 자의건 타의건 여러 가지 배경에서 다양한 이유로 외톨이가 된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외톨이가 된 이유를 외톨이 자신에게서 찾거나 외톨이로 만드는 다른 아이들의 문제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외톨이들이 양산될 수밖에 없는 더 크고 본질적인 구조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무라우치라는 말더듬이 기간제 교사를 통해서 말이다. 

 

아침 10시. 우리나라의 모든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교실에서. 수백만 명의. 학생들이 모두. 자리에. 앉아서. 칠판을 본다. 모두 서쪽을 향해서, 모두 왼쪽에서. 들어오는 햇빛을. 받으며. 상상했다. 처음에는 웃었고, 그리고 곧바로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얼굴이 일그러졌다.
- 「진로는 북쪽으로」 중에서

 

교실에 볕이 잘 들려면 창문은 남쪽으로 나야 하고, 해가 오른쪽에서 비치면 공책에 손 그림자가 지기 때문에 창문을 왼쪽에 두고 앉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칠판은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을 모델로 근대 학교제도를 수립한 우리나라 역시 이 작품의 배경인 일본과 별반 다르지 않다. 왼손잡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도.
모두 서쪽을 보고 앉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전국의 수백만의 학생들이 동시에 서쪽을 본다는 사실조차 의식을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것이 더 오싹하지 않는가?
다민족 사회로 이루어진 중국에 비해 사회의 동질성이 강한 한국과 일본에서 왕따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군국주의적 전통이 강한 일본은 그렇다 치더라도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우리나라에서 이토록 내부의 적을 양산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박노자는 ‘우리’에 대한 ‘남’의 폭력 즉 자본주의와 세계적 종속의 거대담론은 거부하면서도 국가와 민족에 봉사해야 한다는 ‘대가족적’논리가 우리의 자유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인 개인적 공간과 개인적 시간들을 억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군부독재 시절의 체제유지 이데올로기이자 획일주의적 군사문화의 사회화에 다름없음을 갈파한 것이다. 

어찌 보면 획일적인 지배질서를 구축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왕따와 외톨이들에게 의존하는 측면이 있다. 그래야 외톨이와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중심부로 편입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라우치 선생님은 왕따를 통해 자신의 제국을 유지하는 아야짱에게 “…외톨이가 아니니까 아이들을 모으지 않아도 돼. 초조해하지 않아도 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처음부터 다들 외톨이가 아니니까.” 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조용한 악대」중에서)


그런데 사실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왕따의 원인은 피해자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과연 왕따는 개인의 호불호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파랑새」를 읽어보자.
노구치의 별명은 ‘편의점’이다. 남자아이들 중 가장 덩치가 큰 이노우에가 붙여준 별명이다. 이노우에 패거리는 편의점 주인 아들인 노구치에게 처음엔 지우개, 초콜릿, 감자칩 따위의 소소한 물건들을 요구했다. 노구치는 “어려워요, 그건 장난 아니에요.” 라고 높임말을 쓰며 웃는 얼굴로 대답했지만 자기 용돈으로 다른 편의점에서 사온다. 아이들의 요구는 점점 커지고 나중엔 이노우에뿐 아니라 반 아이들 모두가 그에게 주문을 하기 시작한다. “위험해요, 부모님한테 걸리면 죽어요.” “이게 마지막이에요, 다시는 안돼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대답하지만 결국엔 자신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자 부모님 가게에서 물건을 훔쳐오는 노구치.
2학기가 시작된 뒤에도 “이젠 힘들어요, 지쳤어요. 이젠 죽는 수밖에 없어요.” 노구치는 웃으며 말했고 그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도 웃는다. 그러던 9월 어느 날 노구치는 자기 방에서 목을 맨다.
그의 자살기도는 미수로 그쳤지만 긴급 전교모임, 학부모 모임이 잇따라 열리고, 전교생은 ‘왕따’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토론과 작문을 한다. 노구치네 반 아이들은 노구치의 유서를 돌려 읽고 전원이 반성문을 쓴다. 노구치는 전학을 가는 것으로 일단락된다.
여기까지는 매우 전형적인 왕따 이야기이다. 그런데 10월 어느 날 무라우치 선생님이 노구치네 반 임시 담임으로 부임한다. 그는 이미 치워버린 노구치의 책상과 걸상을 다시 교실에 갖다 놓게 하고 조회나 종례시간마다 “노구치 안녕”하고 빈자리를 향해 말을 건다.
“벌주기 게임이라도 하는 거야?” 아이들은 불쾌할 뿐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도 왕따일까?
아니면 좋고 싫은 건 개인의 자유니까 괜찮은 걸까?

 

왕따 방지를 위해 학교 차원에서 만든 투고함, 이른바 ‘파랑새BOX' 를 개봉하자 온갖 쓰레기들에 섞여 있던 쪽지의 내용이다. 다수결로 해결할 수도, 이유를 조목조목 따져 의견을 낸다고 해결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은 묻는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도 왕따입니까?”
여기에 무라우치 선생님이 대답한다. 왕따는 한 사람을 싫어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많은 사람이 싫어한다고 왕따가 되는 것도 아니라고. 남을 짓밟고 괴롭히려고 생각하거나, 괴롭힌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괴로워서 내지르는 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 왕따라고.
무라우치 선생님은 마지막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쓴 반성문을 다시 나누어준다.
“다시 읽어보고 이대로 괜찮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시 나한테 가져오고, 다시 쓰고 싶은 사람은 지금부터 새 원고지에 쓰기 바랍니다.”
원고지를 넘기는 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난폭하게 의자를 뒤로 빼고 이노우에가 불쾌한 얼굴로 나와서 새 원고지를 뜯어간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교탁으로 향한다. 책상 위에 놓인 예전 글을 다시 읽는 학생은 아무도 없다. 
무라우치 선생님은 학생들이 반성문을 씀으로써 속죄하고 잊어버릴 것이 아니라, 노구치가 이 일을 평생 잊을 수 없듯이 학생들도 이 일을 잊지 말고 누군가 괴롭다고 말할 때 못 알아듣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바로 ‘책임’임을 일깨워준다.

「파랑새」는 일본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형식적인 대응 방안들이 실질적인 해결이 될 것인지 묻고 있다. 나아가 왕따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또 다른 폭력이 될 수도 있음을 경고하는 작품이 바로 「손수건」이다.

 

우정의 맹세, 일기검사, 추억의 한마디, 우정맹세조합, 아버지 모임, 마음의 우편함, 마음의 시간……

 

시로야마 중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던 한 학생이 자살한 뒤 전 시로야마 학생이라면 누구나 참여해야 하는 일들이다. 치바는 평범한 소녀였다. 또래 아이들이 흔히 그러듯 직설적인 말로 친구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마음에 맞지 않는 친구에게 욕도 했다. ‘마음의 시간’에 사이가 좋지 않은 친구로부터 ‘우정의 맹세’를 위배했다는 지적을 받은 치바는 일주일동안 반성문을 쓰고 학급회의 시간에 반성문을 낭독하게 된다. 선생님은 마음을 담아서 읽으라고 하지만 갈수록 목이 잠겨 소리를 내기 힘든 치바. 결국 그 일 이후로 치바는 선택적 함구증을 얻게 된다. 대신 주머니 속 손수건만 만지작거릴 뿐이다.
그렇다면 왕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이고 집단적인 노력은 무의미할까? 요스케의 학교에서는 연례적으로 학급대항 지네경주를 한다. 10인 1조인 지네는 모두가 호흡을 맞추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오래전 교내 집단 따돌림으로 인한 자살이 문제가 되었을 때 당시 교장선생님이 제안한 행사라고 한다. 요스케는 지네시합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구토 증세를 느낀다. 그는 학년 전체가 참여하는 역전시합 때도 대회 전날 시 교육위원회에 전화를 걸어 “대회를 열면 자살하겠다”고 말해 시합을 전면 취소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지네경주에서 우승하고 싶은 학급 친구들은 수업시간까지 선생님의 양해를 구해 지네시합 연습을 하려고 한다. 학급연대감, 협동심을 위해 하는 행사이지만 요스케는 경주의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과 함께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싫다. 회사를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다가 결국 업무 과중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아버지 때문이었을까? 결국 비협조적인 요스케 대신 후쿠모토가 더 뛰기로 한다. 아버지도 저렇게 했을 테지. 전체의 이익을 위해.

 

“왜 사람들은 ‘모두’와 ‘하나’가 되어야만 하는 건가요?”
“‘모두’가 되는 게 싫으니?”
“네”
“나도야. 나도 싫단다, ‘모두’인 건.”
“정말요?”
“그래, ‘모두’가 ‘모두’라면 역시 싫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전부 ‘모두’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걸까? ‘모두’라고 뭉뚱그려서 부르지 않아도 되는 아이도 있지 않을까?“
“아는 사람도 있죠. 고가라든지, 후쿠모토라든지. 메구미라고, 제 옆자리에 앉아요.”
“봐라. 벌써 세 사람이나 ‘모두’가 아니잖니.”
- 「친애하는 쥐 대왕마마」 중에서

 

요스케는 자신이나 엄마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마음대로 죽어버린 아버지에게 생각이 미치자, 역전시합을 기다렸을 아이들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역전시합을 취소시킨 자신에 대해 용서할 수가 없다. 지네시합 연습을 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키를 맞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요스케는 새로운 전략을 가르쳐 주기 위해 고가에게 전화를 건다.
이 이야기는 외톨이들 역시 자신의 틀에만 갇혀 있지 말고, 전체를 보고, 또 그 속의 사람들을 살펴보라고 조언한다. 왕따 문제를 당사자의 문제로 떠넘기는 태도나 제도적·형식적인 대응에 맡겨버리는 태도는 모두 스스로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사람들을 포함해서-을 이해하며 살아야 한다. 아이들이 제일 어려워하는 「히무리루 독창」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모두 등을 꼿꼿이 세우고 앉아 선생님이 개그를 날릴 때만 웃는 아이들. 그러나 말도 없고 매사에 소극적인 사이토는 선생님의 이야기가 조금도 우습지 않다. 분위기를 못 맞추는 사이토를 아이들과 선생님은 불편해한다. 사이토는 그들 속에 끼고 싶지만 마음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복도에서 아이들과 웃고 있는 선생님을 우발적으로 칼로 찌른다. 시골로 보내진 그는 논두렁에 난 풀을 베다가 우연히 개구리를 죽이게 된다. 미안한 마음과 달리 개구리 죽이는 일에 빠져드는 사이토. 아무리 죽여도 수가 줄어든 것 같지 않다. 개구리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112마리째 죽였을 때 이 사실을 알게 된 할머니는 사이토를 돌려보낸다.
다시 학교에 돌아온 사이토는 무라우치 선생님이 권해준 쿠사노 신페이의 시집을 읽게 된다.
시집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이름을 가진 개구리들이 많이 나온다. 사이토는 자신이 죽인 112마리의 개구리 중에 ‘구리마’처럼 사랑하는 이가 있거나 ‘루루루’처럼 아름다운 개구리도 있었을 것임을 깨닫는다. 고독해서 자신을 자해하듯,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기라도 하듯 개구리를 죽였던 사이토는 시집 속에서 자신과 닮은 히무리루를 만난다. 
히무리루는 그 시집에 나오는 하얀 개구리이다. 몸 색깔이 달라 처음에는 다들 신으로 추대하지만 신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자 무서워서 무리에 끼워주지 않는다. ‘나는 혼자입니다’라고 되풀이해서 말하는 히무리루. 삶의 의욕을 잃은 히무리루는 인간에게 잡혀 박물관의 표본이 된다. 하얀 개구리의 몸은 알코올 덕분에 동료 개구리와 똑같은 파란색을 띄게 된다.
무라우치 선생님은 자신이 좋아하는 신페이의 시 두 편을 들려준다.

 

모두 고독해서.
모두의 고독이 서로 통하는 분명한 존재를 어렴풋이 의식하고
꾸벅꾸벅 조는 날을 보내는 것은 행복이다.

 

개구울 개구울 개구르르르

 

무라우치 선생님은 누구나 고독한 존재라는 것, 그것을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의 언어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시를 통해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오른손만을 써야 한다고 강요되는 사회에서는 왼손잡이는 어쩔 수 없이 외톨이가 된다. 오른손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사회에서 자신이 왼손잡이 임을 자각하는 사람도 외톨이가 된다. 더구나 오른손만을 써야 하는 게임의 룰 속에서 오른손잡이만큼 오른손에 힘이 없어 조직의 효율을 떨어뜨리면 왕따가 된다. 오른손의 권위에 권력을 쥐어주고 순순히 굴복하면 폭력과 수탈의 대상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다수의 오른손잡이를 위해 구축된 질서 속에서 왼손잡이로 살아가는 일은 외로운 일이다. 바로 히무리루 처럼. 자신이 왼손잡이라고 해서 혼자만 책상을 돌려놓을 수는 없지만, 남과 다른 자신을 인식하면서 타인과의 조화를 위해 맞추어나가는 것과 아무 생각 없이 남들 하는 대로 무작정 따라가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한 사람만. 책상을 뒤로 향하게 놓을 수는. 없단다.”
“ 비록 책상은 서쪽을 보고 있지만 저는 아래를 보고 있어요…… 옆이나 밖을 보고 있어요…….”
- 「진로는 북쪽으로」 중에서

 

왼손잡이든 오른손잡이든, 파란 개구리든 하얀 개구리든 서로가 소통하고 공존할 수 있는 열린사회, 외톨이들이 더 이상 왕따가 되지 않고 서로 연대할 수 있는 따뜻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희망의 메신저가 되어야 한다. 무라우치 선생님처럼.
수업을 끝내면서 아이들에게 내 주변의 외톨이에 대한 아홉 번째 이야기를 써보게 했다. 소설가가 꿈인 두 아이의 글을 옮겨본다.


아홉 번째 이야기
 
01
 
인생이 무료하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니 세상은 얄짤없이 참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천재적인 두뇌를 준 대신에 인생의 재미라는 것을 빼앗아 간 것을 보니 말이다. 나와 같은 반 ‘친구’ 라고 불리는 녀석들은 정말이지 신기한 생물들 같다. 같은 인종이라고 말하고 다니고 싶지 않을 정도로 멍청하고, 덜떨어진 짐승들처럼 행동한다. 저 한심한 족속들이 웃고 떠들 시간에 얼마나 유익한 행동들을 할수 있는가를 나열해보자니, 다시한번 한숨을 날 수밖에 없었다. 몇몇 저능아들의 이목이 내 얼굴로 집중된다.
“뭘 봐.” 처음에 아이들이 다가왔을 때 같은 거만한 얼굴로 한마디를 내뱉자 “저럴 줄 알았어.” “정말 꼴불견이라니까?” “쟤는 뭐 공부 좀 잘하는 것 가지고 자기가 최고인줄 알아.” 라는 둥 인생의 패배자들의 불만들이 들려온다. 여우가 포도밭에서 포도를 따먹지 못하게 되자 괜히 심술을 부리며 저 포도는 분명히 실거야, 라고 말하는 이야기가 딱 이 꼴 인 것만 같아서 살짝 입술 끝을 둥글게 말며 이어폰을 꼈다.
“역시 히라가키는 재수없어.”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캐논락보다 더 큰 목소리가 내 귓전을 울린다.
 
02
 
“모토코 히라가키” 하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더니 살짝 잠긴 내 목소리가 수십 대의 덜컹거리는 의자소리가 들리는 교실에 퍼진다. 사십 쌍의 눈동자가 둔하게 꿈뻑거리며 나를 쳐다보는 것은 별로 상쾌한 경험이 아니다. 눈을 살짝 감았다가 다시 뜬다. 뿌옇고 캄캄하던 시야가 빛에 익숙해지면서 다시 몇 십년은 된 것 같은 내 ‘새로운 교실’이 눈에 들어온다. 저번 학교와 별반 다를 것 없군.
“더 말할 것 없니?” 담임이 가능한 최대로 상냥하게 나의 의사를 물어본다. 뭐, 나는 그 예의에 보답해야 할 의무는 없으니까 대답 없이 빈자리에 가서 앉는다. 모두가 일제히 나를 쳐다본다. 오차범위는 대략 0.5초 정도. 옆에 있는 좋게 말하자면 순박해 보이는, 사실대로 말하자면 많이 둔해 보이는 여자애가 말을 건다. “난 나카야마라고 해. 친하게 지내자” 생긋하고 웃어 보이는 게 꽤나 기분을 불쾌하게 만든다. 저 아이는 인생에 대한 걱정이라는 게 없는 건가, 어떻게 저렇게 편한 표정을 지을 수가 있는 거지?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은 그닥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고 대답하자, 대략 3초 동안은 멍하니 눈을 천천히 꿈뻑이더니 갑자기 상처받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아, 물론 나와는 상관없는 감정이야, 난 저 아이보고 상처받으라고 시킨 적도 없는데 자신 혼자서 상처 받은 거니까.
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우르르 다 나에게 몰려온다. “어디서 왔어?” “친하게 지내자” “너 되게 과묵한 편이구나?” “선생님이 말해주셨는데, 너 되게 공부 잘한다며?” 라는 둥 쓸데없는 질문을 해온다. 역시 나와 대화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는 여기에도 없는 듯싶군.
시험이 끝났다. 모토코 히라가키, 전학 오자마자 전교일등이라는 타이틀을 걸다, 라는 게 아이들 사이에서 이슈가 된다. 역시 여기도 별다를 게 없군. “와, 모코토짱 대단해” “정말 공부를 잘하는구나?” “부럽다” 반응도 똑같아, 재미없어. 왜 사람들은 자신보다 잘난 사람에게는 꼭 들러붙으며 아부를 떨고 친한 척을 해야지 않으면 숨이 막히는 건가? 나를 좀 내버려 두면 저 아이들에게 별 감정이 생길 것 같지는 않은데, 이 아이들은 날 너무 귀찮게 만든다. 내 미간에 줄이 세로로 그어진다.
“아아, 무뇌충들이 입만 뚫려 있나, 왜 이렇게 시끄러워?” 아이들이 빤히 쳐다본다. 마치 내가 한말을 엎어진 레고블럭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시 주워담으라는 듯이, 혹은 자신의 멀쩡한 고막이 갑자기 파열되었다는 듯이 말이다. 고요한 소란 속에서 내가 살짝 입꼬리를 올리자, 문뜩 정신이 들은 듯한 마흔 쌍의 눈동자들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쟤 왜 저래?” 벌레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이래서 사람은 잘나면 힘들다니까.
 
03
 
“ㅇ여여여여러분, 아아안녕하세요, 무,무무,무라우,우우치 라,라고 하,합니다. 이,이번 하,하하한달도,도도동안 여,여러러러부,분 드,들의...구...국어...르..를...ㅁ..마마...맡게 되..되어었...스...습니다. 바,바바,반가워요.” 몇몇의 불만스러운 투덜거림도 들렸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박수를 보내주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박수갈채를 받을만해 보이지 않는다.
“모토코 히라가키 입니다.” 저 멍청한 말더듬이가 출석부 볼 생각은 안 하고 출석 번호대로 일어서서 이름을 말하라고 하는 바람에 남들의 시선을 받으며 일어서서 내 이름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ㅁ..모토토토토코...히히히라가키...” 저 선생이라는 말더듬이가 내 이름을 부르며 씨익 하고 웃자 그닥 나쁘진 않다고 할 수 있었던 내 기분이 저조해졌다.
“으,으으,뜨,뜸인 아,아아이라...이,이름 차,참 조,좋네요” 저 장애인이 내 이름 뜻도 아네...기분나빠. 내가 반항하듯 아무런 대꾸 없이 자리에 풀썩 하고 주저앉자, 아메바들의 눈썹이 올라간다. 그러나 말더듬이 대장 아메바는 아무 말도 없이 씨익 하고 웃기만 한다.
 
지금 내 앞에서 성인군자 행세라도 하겠다는 거야?
 
04
 
“이....이번 수...수수숙제는...조...조별로....할 거에요” 지금 더듬이가 무슨 말을 하는거야, 조별이라니? 다른 아이들은 서로 짝을 지어가며 신나하고 있다. 둘이서 하면 의견차이도 나고, 오히려 더 오래 걸리기만 하는데 대체 왜 같이하는걸 좋아하는 거지? 이해할 수가 없다.
“여..여여여러...부부분...에게게게...는...미..미미안...하..하지만... 이..이번..조..조조조...는...제..제가 펴..편성할 거에요” 뭐, 그룹으로 하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태양충이 처음으로 괜찮은 소리를 하는군.
“아 왜 히라가키랑 같은 조가 된 거야!” 수돗물 소리가 들리고, 꼬질꼬질한 손때가 묻은 화장실 문을 열려다가 멈칫했다. 아니 내가 왜 눈치를 봐야하는 거지?
“그러니까 말이야, 히라가키가 아무리 공부를 잘한다고 해도 사람을 그런 식으로 무시해서 되겠느냐고.” 시끄럽다. 나한테 거절당한 것들이 말이 많다. 내 성을 그런 식으로 멋대로 부르는 것도 마음에 안 든다. 지금 눈앞이 부옇게 되는 건, 슬퍼서, 억울해서가 아니라 화가 나서다. 저 아이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 말이다. 그리고, 지금 밖에 나가서 따지지 않는 이유가 절대 두려워서는 아니다.
주먹을 꽉 쥐고 속으로 파이를 외운다. 3.141592653538979324…
 
05
 
“저, 이 숙제 조별로 말고 혼자서 하겠습니다.” 말더듬이 선생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존댓말이지만 오만한 말투로 말해도, 무라우치는 씨익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정말 왜 저리도 착한척인지 모르겠다. 역시 꼴불견.
“다..다른..아...아아아이..드드들..에겐...마...말했니?” 저 아메바는 말도 더듬는 주제에 왜 사람 기분까지 불쾌하게 만들고 난리야. 무슨 숙제를 조별로 시키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다른 애들과 안 친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게, 마치 괜히 날 약 올리고 싶어서, 혹은 무례하게 군것에 대하여 보복하고 싶어서 이렇게 유치하게 나오나 싶기도 하다. 손바닥에 붉은 초승달 자국 네 개가 난다.
“카즈야마양, 우츠미양, 나 이 조에서 나가도 되지?” 교실 책상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는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물어봤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의사를 물어보는것을 가장한 발표라고나 할까. 둘이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가 “으, 응 알았어 히라가키상!” 이라고 대답한다. 내가 먼저 말건 것이 그렇게나 신기한가, 어차피 내용은 평소 내 의사와 비슷한데 말이야. 당당히 대장 무뇌충에게 아이들이 된다고 말했다고 하자 빙그레 웃으며 그러면 내가 알아서 하라고 했다. 겉으론 웃고있지만 속은 쓰리겠지, 이번엔 내가 이겼어, 말더듬이 선생.
꽤나 대단한 승리감을 느낄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뭐가 문제인 걸까, 순열공식이 아직 잘 이해가 안가서 그런 건가?
 
05
 
“…이상입니다.” 나에게도 꽤나 만족스러운 발표였다. 물론 다른 얼간이들과는 다르게 혼자서 했는데도 저 실용성 떨어지는 아이들보다 훨씬 나은 발표를 해 보이자 아이들 표정이 멍하다. 짝짝짝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그래, 저 얼뜨기 선생보다야 나한테 박수가 더 잘 어울리지. “ㅎ..후후훌륭..해..해해했..어어어...요...” 당연히 훌륭하지, 난 모토코 히라가키 인걸. “그..그그그그렇지만... 다...다다다른...아..아아아..이...드드들..처처처처럼 즈..즈즈즐거거거...워..보보보보..이..지지지..는...아아않...더더더..구구군..요.” 발표를 할 때 꼭 즐거워 보여야 해? 학생에게는 공부가 공이라고. 공과사를 구분해서 제대로 딱딱 해내기만 하면 되는 거지 왜 참견이야.
점수는 분명히 만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나빠진 채로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번에도 1등이더구나. 계속 그 성적 유지하고.” 칭찬은 없다. 우리 집안은 탑클래스라는 게 당연한 사실이니까. 방으로 들어가서 핀탄 왈츠를 크게 튼다. 평소에는 신나게 들렸는데 지금은 그냥 복잡하고 추접스러운 현을 끽끽거리는 소리로밖에 안 들린다. 다시 볼륨을 낮추고 책상에 앉아서 영단어 공책을 연다. Companion… 정말 내 인생의 동반자를 찾을 수 있을까?
잠깐 바람좀 쐬고 오겠다고 한 다음에 학교 담벼락에 쪼그리고 앉아 워크맨에서부터 철사 등으로 연결되어 내 고막까지 울리는 진동을 느낀다.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다닌다, 아니면 쌍을 지어 다니던가. 불협화음. 저 아이들은 매우 다르다. 그런데도 같이 있고 싶을까? 다툴 거면 왜 같이 다니지? 도,미,솔은 하모니다. 하지만 도, 도샾, 레는 전혀 맞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그 사실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함께 웃고 떠들며 함께 생활한다. 나는…피아노의 오른손이다. 중요하긴 하지만, 반주는 없는 멜로디.
 
사실대로 말하자면 외롭다.
 
06
 
“히...히라...가가가..키키키...야야양...여..여기서....뭐..뭐해요?” 우리 반 말더듬이 선생이다. 올려다 보는 것이 자존심 상해 시선을 땅으로 돌려 개미들의 행진을 보았다. 옆에 그 둥글둥글한 몸뚱아리가 자리잡는게 느껴진다. 살짝의 니코틴 냄새가 나는 게, 어릴때 안겨보았던 아버지의 체취 같다. “개....개개개개...개미드드들..은... 차...참.. 혀혀협...도도동...시심 이이...대..대단한 것 가..가같아...요...”쳇, 저선생은 항상 훈계만 하려 든다니까.
“어..어어...어...리리린...와...왕...자...으의...자...자장...미...느느는... 자...자시신...으으의...아...아아름...다다움...만...미미믿...고...가가가...시...를...세세세...우...다...가...사사사... 랑...하...느는... 사...사람...을... 노노놓... 쳐쳤어어...요...” 누구는 어린왕자 안 읽어 봤나. 왜 책도 못 읽는 어린애 취급이야? 고개를 획 돌리고, 주머니에 살짝 손을 넣어 워크맨 볼륨을 낮춘다.
“…외로운 거 아니에요.” 슬쩍 고개를 돌려 말더듬이 선생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이건 변명이 아니야, 그냥 말하고 싶었던 것뿐이라고.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홱 하고 돌리는데, 뒤에서 후훗,하고 웃는 소리가 들린다.
“아,아아...아이들...도도도...하..하한...버버번...쯔쯔쯤...은....다..다다가...오.. 기기길....기..기다릴...거...거거...에요...”
태어나서 한 번도 남들 앞에서 운 적이 없다. 물론 어릴 때는 엄마아빠 앞에서 많이도 징징거렸겠지만, 적어도 내 기억 한도 내에서는 난 울지 않았다. 우는 것은 패배자들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자신보다 우월한 사람 앞에서 흘리는 것이 눈물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변명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는데, 지금 40대에 말까지 더듬거리는 선생의 품에서 흘리는 눈물은, 그저 이 지치는 일상에 시들은 장미 같은 내 맘을 위로하기 위해 흘리는 것이었다. 눈물은 내 목에 걸려있던 뜨거운 덩어리들을 다 쏟아내는 액체였는지, 내 볼을 후끈하게 달궈주었다.

07
 
어젯밤에는 꽤나 많이 울었는지 쌍꺼풀이 사라졌다. 눈가가 따끔따끔하고 코도 따갑지만, 그래도 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꽤나 부드럽게 얼굴을 감싸준다. 첫번째로 교실에 도착하는 기분도 나쁘지 않군. 드르륵 하고 낡은 미닫이문이 열린다. 내 짝 나카야마다. 처음에는 누군가 먼저 와 있다는 사실에 놀란 듯이 두리번거리다가, 나라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다시 신경을 끄고 옆자리로 와서 의자 끄트머리에 걸쳐 앉는다. 한번 심호흡을 해보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에 살짝 웃으며 말해본다.

“좋은 아침이야, 나카야마”

김지현 (상해 미국 국제학교 푸동캠퍼스 8학년)

 

공기 같은 존재

“아, 아..안녕?”
2년만이었다. 누군가 나의 존재감을 의식해 준건. 나는 얼빠진 얼굴로 한 남성을 바라보았다.
“지금 저…한테 인사하신 거예요?”
“그..그럼 너 마..마..말고 누구하..한테 하니?”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기쁨의 환호라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곧 마음을 가라앉히고서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네가 소스..케케지?”
“아니요. 제 이름은 소스케이지 소스케케는 아니에요.”
“나..나도 아..알아.”
나는 고개를 기우뚱거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한테 소스케케냐고 물었는데 자기는 내가 소스케인걸 안다니…… 순간 나는 이 남자 분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오늘 아침 엄마가 전화로 나를 잠시 동안 가르칠 선생님이 오늘 오신다고 알려주었는데, 그 분이 말을 더듬는다는 것이다. 내가 “혹시…무라우치 선생님이세요?”라고 묻자, 그 분은 “에..이..벌써 들켜버..버렸네.”하고는 허허 웃는 것이다. 나는 당황해 하며 같이 따라서 웃었다. 내가 웃은게 얼마만이 였더라… 이렇게 생각하니까 2년 전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2년 전, 나는 그 유명한 사립고에 갓 입학한 17살의 소심한 아이였다. 나는 적극적이지 않아서 1학년 1반으로 반을 배정받은 후, 혼자서 점심시간에 학교를 돌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그때 내가 강당 쪽으로만 지나가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현재 나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웃고 떠들고, 재미있는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아니다. 생각하지 말자.
나는 갈 곳이 없어 강당으로 갈지, 아니면 도서관으로 갈지 헤매다가 결국 강당 쪽으로 발을 옮겼다. 혼자서 아주 천천히 걷고 있는데, 갑자기 히로라는 우리 반 애가 나를 향해 농구를 하다 말고 달려왔다. 나는 그가 나를 향해 뛰어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히로는 나에게 오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말을 건넸다.
“야! 너 우리 반이지? 우리가 지금 3반하고 농구시합하고 있는데 우리 반 인원수가 한 명 모자라서 그러는데, 너 같이 시합 안 할래?”
나는 친구가 생길 수 있다는 희망에 곧바로 “응!”이라 대답하고 시합에 참여했다. 하지만 역시나 내가 작은 체구와 매우 힘없고 마른 체구를 가지고 있어서, 매번 누군가와 부딪힐 때마다 나 혼자 멀리 튕겨 나갔다. 다행히 히로가 그런 나의 역할을 대신해주어서 우리 반은 3반을 29대 24로 이길 수 있었다.
그날부터 나는 히로와 어울려서 놀았다. 히로는 성격도 밝고 공부와 운동도 잘 한데다가 얼굴도 잘생겨서 아이들 사이에선 언제나 인기 짱이었다. 물론 나는 그와 친구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그는 내게도 매우 잘 해주었고, 나를 언제나 데리고 다녔다.
만약 그때 히로가 돈을 얻으려고 나에게 말을 건 사실을 좀 더 일찍이 알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지만 그에 대해서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히로는 거의 한 달에 한번 씩 나에게서 큰돈을 빌려 가는데, 매번 빌리고 나서 계속 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에게 물질적으로라도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뿌듯했지만, 이런 일이 계속 반복해서 일어나자 뿌듯함보다는 걱정이 더 앞섰다. 그는 매번 큰 액수의 돈을 요구했고, 일하느라 바쁘셔서 거의 한 달에 한번 씩 오시는 부모님께서 내게 주시는 생활비도 거의 바닥나 라면이나 빵으로 끼니를 때우는 등 종종 굶었다. 이런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자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의 부탁을 거절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그의 부탁을 거절했던 날, 그나마 친구들에게 있었던 나의 존재감마저 모두 먼지처럼 사라졌다.
햇빛이 내리쬐었던 5월 16일, 나는 한 달 만에 집에 오신 부모님과 식사를 했다. 부모님은 예전에도 그랬듯이 무뚝뚝하게 내게 하는 말 3종 세트 중에 하나인 “밥 먹어라”를 말하셨고 나 역시 부모님께 하는 말 2종 세트 중 하나인 “예”를 말했다. 우리 가족이 하는 대화는 고작 “밥 먹어라.”, “돈 여기 있다.”, 와”잘 있어라.” 뿐이다. 그 만큼 부모님은 내게 관심조차 없었고, 그저 나를 자신과 같은 피가 흐르기에 돌봐야 할 생명으로 생각하시고 계신다. 그런 나는 지난 17년 동안 부모님의 무관심 속에서 살아왔고 이제는 부모님의 얼굴도 기억을 잘 못 했고 오히려 부모님이 안 계시는 게 더 편했다. 밥을 다 먹은 뒤, 아버지께서 내게 돈을 주시며 두 세트를 연달아 말씀하셨다. “돈 여기 있다.”, “잘 있어라.”
나는 학교에 도착해서도 히로가 나를 부르기를 계속 기다렸다. 드디어,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히로가 나를 따로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내게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히로가 이번에 내게 부탁한 돈의 액수는 더 이상 내가 빌려줄 수가 없는 액수였다. 그래서 나는 계속 연습했던 말을 최대한 당당하게 꺼냈다. “미안하지만 더 이상 네게 돈을 빌려줄 수가 없어.” 그것이 내 존재감의 최후였다.
순간 무라우치 선생님이 혼자 가만히 생각하고 있던 내게 말을 걸었다.
“무..무슨 생각을 그렇...렇게 심각하..게 하..하니?”
나는 당황해 하며 대답했다.
“그..그냥..옛날 생각이 좀 나서요”
“소스케..케의 예..옛날은 해..행복했니?”
이 질문에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과연 내 과거가 행복했을까? 부모님의 무관심 속에서 자라온 나,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그나마 있었던 내 존재감마저 사라진 내 과거가 행복했을까?
“…그러면..선생님은 선생님의 과거가 행복했다고 생각하세요?”
“다..당연하지!”
“그렇군요..”
이 후 대화가 끊겼다. 선생님께서도 자신의 옛 생각에 잠기셨는지, 묵묵히 계셨다. 나 역시 다시 그날로 되돌아갔다.
내가 히로의 부탁을 거절하자마자 히로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나를 친구들과 때렸다. 나는 이유도 모른 체 반항할 힘이 없어 계속 맞기만 했다. 그날 이후로 그들은 나를 아는 체도 하지 않고 내가 마치 이 세상에 없는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워낙 히로와 그 패거리가 세서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없는 것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학교에서 거의 없는 존재가 되었고, 심지어 2학년이 되어서도 1학년들에 의해 무시 되었다.
그 때 차라리 나를 때리기라도 하지. 그건 그나마 너희가 내 존재를 인정한다는 거잖아”
그들이 나를 무시함으로써 나는 더 외로워졌고, 관심을 받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것이 비극을 낳았다. 누군가로부터 관심을 받는 것이 너무나도 그리워진 나는 마침내 관심을 받기 위해 나만의 방법을 쓰기 시작했다.
잠시 생각을 멈춘 뒤, 나는 무라우치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은 저에 대해 아세요? 그 사건도요?”
“으..응”
“그렇구나..”
“하지만 소스..케케는 굳이 그..그런 방법을 써가면서 과..관심을 받아..아야만 했을까?”
“……”
“다른 방법을 써도 되지 않았을까?”
그렇다. 내가 지금 생각해도 내가 관심을 끌기 위해 그 방법을 쓰기 시작한 날부터 나는 거의 미친 상태에 가깝다.
나는 관심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기 위해서 내가 누군가에 의해 협박당하고 위협 받는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흰 종이에 빨간색 펜으로 “너를 죽일 거야.”나 “너를 지켜보고 있어.”같은 문구를 써놓고서 누군가 내 책상에 놓고 같다는 것처럼 해놓거나, 누군가 내 방을 뒤지고 간 것처럼 방을 난장판으로 해놓고서 엄마에게 알렸다. 다행히 엄마는 경찰에 신고를 하고, 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주변 이웃과 부모님으로부터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관심을 받으면 받을수록 욕심이 생겨 더 받으려고 점점 더 심한 행동을 했고, 심지어, 내 팔에 흉터를 만들어 놓고 누군가 나를 끌고 가려고 했는데 몸부림쳐서 도망쳐 나오다가 칼에 베인 것처럼 위장도 했다.
하지만 내가 이 행동을 한 지 두 달 후, 내 행동들은 모두 들통 나버렸다. 경찰이 CCTV로 사건이 터진 날 하루를 돌려봤는데 우리 집에는 나 말고 어느 누구도 들어가지 않았고, 우리 집 현관문 손잡이에도 내 지문 밖에는 검출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들의 질문에 다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는 내게 따로 잠시 동안만 가르칠 선생님을 붙였고, 부모님도 더 이상 내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의 존재감은 다시 사라진 것이다.
갑자기 내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무라우치 선생님은 이를 보고서 당황하는 눈치였지만 이내 조용히 내 등을 다독여 주셨다. 안정감을 느꼈던 건지 나는 곧 소리 내서 울기 시작했고, 눈물은 하염없이 내 두 볼을 타고 흘렀다.
잠시 후, 울음을 그친 나는 무라우치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 만약에 제가 그러한 방법을 쓰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그들은 저에게 관심을 줄 수 있었을까요?”
“그건 소스케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렸단다.”
“…”
“이제부터는 더 이상 혼자서 괴로워하지 말고 그들에게 소리쳐. 나 여기 있다고, 당신들이 사는 세상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고.”
“만약에 제가 그렇게 말한다면, 외친다면, 정말로 그들이 저를 봐줄까요? 부모님도요?”
“그건 나도 잘 모른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그러면 네가 바뀌면 그들이 너를 봐주지 않을까?”
“제가요?”
“그래. 공기는 아무리 우리 눈에 안 보인다 해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매우 소중하듯이 그들이 너에게 관심을 주기 위해서는 그 방법이 더 낮지 않을까?”
“정말요?”
“그렇겠지. 사람이 변하면 세상도 변하니까.”
딩동댕동
“어이쿠.종 쳤네. 이만 들어가 봐야지?”
“네..”
“네 자신을 바꿔봐.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그 날, 내가 무라우치 선생님을 만났던 날, 내 마음 안이 간지러웠다. 새싹이 피기라도 한 것처럼.

박수진 (상해 미국 국제학교 푸동캠퍼스 8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