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 글쓰기 강의 나눔터
-해마다 꽃빛 더욱 붉어지는 것은 나이 사십에 이미 알았는데,
뻐꾹새 우는 소리의 울림이 해마다 커지는 건 쉰이 되어서야 알았다.-
어떤 이가 쓴 책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봄, 여름 들판에, 길가에 피었던 작은 꽃들이 그리 어여쁘더니,
가을이 되면서 집앞 단풍나무잎만 바라봐도 눈물이 나더니 그게 그런 거 였나봐요.
아침 산책길, 길섶 작은 풀 위에 하얗게 서린 서리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면 그것도 어여쁩니다. 산길은 낙엽이 쌓여 걸음마다 버스럭거립니다. 소리도 정겹지만 그 푹신한 느낌은 말 할 수 없이 아늑하고 고맙지요.
올 해는 참 풍성했습니다. 절기를 따라 살아 보려 먹은 마음이 어설프지만 실행이 되는 듯해서 마음도 기뻤습니다.
이른 봄에 땅을 일구고 거름을 주었지요. 그리고 제일 먼저 콩을 심었어요. 오월쯤이었던가, 꼬투리가 토실한 콩을 걷어서 저녁마다 쪄 먹었습니다. 콩을 걷은 그 땅에 고추, 가지, 고구마 모종을 심었지요. 아마 올 여름 먹은 풋고추, 가지가 일생 먹은 것 보다 더 많을 듯 싶습니다.
여름부터 붉게 물드는 고추를 하나, 둘 따다가 햇볕에 말렸습니다. 그게 모여 한 바구니가 되었어요. 고구마를 걷을 때는 참 가소로웠습니다. 잎이 어찌나 무성한지 큰 기대를 했는데 뿌리는 몇 개 안되더군요. 덕분에 고구마 줄기 나물은 여러 번 해 먹었지요.
그 땅에 또 배추와 무를 심었어요. 한참 자랄 때 비가 안와서 물 주느라 좀 힘들었지만 벌레도 많이 생기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주어 얼마나 대견했던지요. 며칠 전 그 배추와 무로 김장을 했습니다. 참으로 뿌듯했습니다.
조그만 땅에서 한 해 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자라났는지 놀랍습니다. 이제 그 땅은 잠잠히 숨을 고르게 되겠지요. 그것도 농사라고 어쩔 때는 귀찮기도 하고 힘들기도 해서 모른 척 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요. 그래도 내가 들인 정성보다 훨씬 더 많이 받았어요.
며칠 전에는 집앞 감나무 밑에 거름을 묻어주었어요.
이사와서 보니 거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더라고요. 그래도 감나문데 싶어 지난 가을에 나무를 휘감고 있는 덩굴도 잘라주고 거름도 조금 뿌려주고 했더니 올 해, 감이 얼마나 많이 열렸는지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어요. 익어서 떨어지기 전에 따서 소금물에 담궜다가 햇볕에 두었더니 달콤한 홍시가 되었지요. 이웃들과 나눠 먹으면서 즐거웠습니다. 내년에 더 많이 먹을 욕심이 아니라 죽을 듯 보이더니 그렇게 풍성한 해산을 한 나무가 고마워서 거름을 듬뿍 묻어주었습니다.
감나무도 가지만 남아 이 겨울을 나겠지요. 사철 푸른 대나무 틈새에서 자리를 지키느라 몹시 힘들텐데도 살아남을 겁니다. 늘 푸른 나무들은 별로 마음이 가지 않습니다. 감나무 밑에 바싹말라 있는 국화줄기도 잘라주어야 겠지요.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며 지난 열 한 달을 돌아봅니다. 그리 나쁘지 않은 날들이었습니다. 아니, 좋았습니다. 자연의 리듬에 귀기울여 한없이 신기했고 또 그 부산스러움과 고요함을 잘 누렸습니다.
십여년 만에 소박한 이웃과 사귀어 함께 밭을 가꾸고, 산길을 걷고 밥을 나눠 먹었습니다. 안하던 일이라 어떤 때는 힘에 부치기도 했지만 즐거움이 더 커서 어디든 따라 다녔지요. 그러느라 책읽기는 저만치 뒷전이었고 말씀도, 기도도 건성이었습니다. 큰 기도를 하지 않는 대신 작은 일에도 많이 기뻐하면 하나님이 좋아하실 거라는 얄팍한 마음으로 살았는데 좀 얄밉기는 하셨겠지만 그래도 잘 봐 주신 듯 합니다.
이제 땅도 쉬고 나무도 쉬는 이 겨울, 부산스럽던 일상을 돌려 독서와 묵상에 마음을 두려하는데 가뭄에 개천 바닥처럼 훤한 이 마음밭으로 얼마나 할 수 있을런지 스스로 믿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일상'을 '태양과 떳떳함' 으로 풀이한 어떤 이의 말처럼 늘 뜨고 지는 해 아래 떳떳하게 서 있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2008.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