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story telling / 박현진

처음 나무를 받았을 땐 거칠거칠하였고, 루뻬로 관찰하니 톱질한 자국도 있고 뾰족뾰족 돋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포로 열심히 갈고 나니 톱밥이 생기면서 나무결은 훨씬 부드러워졌다. 손으로 만졌을 때는 매끈매끈 하였는데 루뻬로 관찰해보니 톱질 자국은 없어졌지만 나무결의 거친 모습이 남아있었다. 손으로 만졌을 때와의 느낌과 루뻬로 본 나무결의 느낌은 또 달랐다. 사포로 갈 때 떨어진 나무가루는 양이 많지 않아서 그냥 가루가 떨어졌네 하는 느낌이었는데 병에 모아진 가루양을 보고 놀랐다. 이렇게 조금 조금이 모여서 병의 반 이상이 채워졌다니... 모아진 가루를 보니 폭신폭신할 것 같이 보였다.

매끈해진 면에 그림을 그려놓고 초를 이용해서 코팅을 하였다. 촛불에 가까이 다가가자 그림위에 문질러 놓았던 초들이 서서히 번지듯 녹아내린다. 그러면서 그 촛물이 나무사이로 가볍게 스며든다. 한 쪽에서 열기가 다른 편으로 물감이 서서히 번지듯이 퍼져나간다. 초가 흘러내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나무가 감싸 안듯이 받아들이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아름답다. 내가 고른 나무는 밝은 색이었는데 촛불을 가까이 대자 살짝 진한색으로 변했다. 처음 그림을 그릴 때보다 한 톤 어두워졌다.

중간중간 밝은 부분이 남아있어서 ‘초가 덜 입혀졌나’하고 한번 더 초를 비비고 녹였는데 그 부분은 여전히 다른 부위와는 다른 밝은 색이다. 처음 만들기 시작할 때는 그림이 생각처럼 예쁘게 그려지지 않아서 조금 마음에 안 들었는데 자꾸 자꾸 내 손길과 정성이 들어가자 끈끈한 정이 생기는 듯하다.

나무 이야기 / 강영란

너는 둥근 나무토막으로 나에게 왔을 뿐, 나는 너의 수종을 모른다. 잎사귀와 나뭇가지, 나무 전체를 본다면 단풍나무인지, 소나무인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땅위에 뿌리 내리고 있는 너를, 살아 숨 쉬고 있던 너를, 바람에 흔들리는 너의 잎사귀를, 새들이 날아와 잠시 쉬어가는 너의 나뭇가지를 본 적이 없다. 너는 톱으로 잘려진 거친 나무토막일 뿐이다.

상자 속에 담긴 여러 개의 나무토막 중 나는 껍질이 없는 너를 집어 들었다. 수종은 모르지만 두껍지 않게 잘린 네가 마음에 든다.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네 모습도 좋다. 거친 표면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니, 너의 속삭임이 들린다. 하지만 아둔한 나는 너의 소리를 온전히 듣지 못한다.

거칠게 잘려진 표면에 네가 살던 고향이 그려져 있는 듯하다. 결마다, 작은 집들이 들어 앉아 있고, 거친 표면에 구름이 떠다닌다. 너의 친구들이 네 주위에 있는 듯도 하다. 나뭇결에 깃든 또 다른 세상을 본다. 강을 따라 흐르는 바람결로 너는 잎사귀를 흔들어 먼지를 털어내고, 비를 맞으며 춤도 춘다. 너는 얼마동안 땅에 뿌리를 내리고 지냈을까? 결마다 너의 시간도 보인다. 하지만 나에겐 너의 어린 모습은 보이지가 않는다. 그냥 너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만 들뿐. 거친 표면을 들여다보니 너의 청춘이 보인다.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너는 요동치며 가지를 부여잡고, 뿌리를 지탱하며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만들어 냈을 거친 결들. 너는 아주 오래 살진 못한 것 같다. 네게 보이는 건 청춘의 발랄함, 청춘의 활기, 청춘의 혼돈들이다.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 내는 고요, 적막은 보이지가 않는다.

나는 너의 거친 표면을 곱게 갈아 본다. 거친 숨결이 점점 매끈하게 갈리며, 너의 이야기가 작은 나무토막에 응축된다. 이쪽도 갈아 보고, 저쪽도 갈아 보고, 뾰족해진 각도 갈아 부드럽게 선을 이어 본다. 둥근 너의 나이테가 갈리고, 거칠던 너의 숨결이 부드러워진다.

나는 그 위에 너의 형태를 본 떠 부엉이를 그렸다. 어느 날 부엉이는 네 가지 위에서 어두운 밤을 보내고 산으로 날아갔다. 부엉이가 가졌던 휴식 시간, 그 휴식으로 부엉이는 내일을 날아오를 힘을 비축했을 것이다. 톱으로 잘리기 전 네 모습을 부엉이가 기억한다. 너의 튼튼한 몸통, 가지마다 풍성하게 자란 잎사귀, 바람결에 들리는 네 목소리를 알고 있는 부엉이가 이제는 너를 위로한다. 뒤 쪽에는 풍성한 너의 잎사귀와 꽃을 그린다. 너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 때의 모습을 점점 닮아간다. 잎사귀 사이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이고, 그 틈을 비집고 환한 햇살이 네 뿌리까지 내려온다. 거친 나무토막이 햇살을 받아 살아나고 있다.

나는 네게 양초를 바르고 초에 불을 붙여 초가 네 몸속으로 스며들게 했다. 초의 숨결이 다가갈수록 너는 네 세계에서 만났던 부엉이와 네 가지에 달린 잎사귀와 꽃들이 몸 안으로 스며드는 걸 느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보았다. 그러자 네 모습이 달라졌다. 청춘의 혼돈, 발랄함과 활기 대신 이제는 시간이 만든 고요가 자리를 잡는다. 나는 그곳에 내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 넣고, 너의 모습을 응시한다. 너의 흔적을 뒤좇는 동안, 너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나무토막에서 나만의 이름표가 되어 돌아왔다. 나를 선택해준 네가 고맙다.

<나무이름표를 만들면서>

초등논술 바탕과정 52기 최문주

나는 작은 나무 조각을 골랐다. 내 손에 잘 쥐어지는, 나에게 잘 어울리는 작은 나무가 좋았다. 그런데 너는 처음부터 작은 나무였을까. 큰 나무에서 자란 어느 작은 가지 중 하나였을까. 곧고 길게 자랄 굵은 줄기를 위해 누군가 가지치기 한 곁가지인지, 도시 정비 차원에서 무심히 잘려진 나무 조각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무언가 다른 쓸모를 만들기 위해 어느 공예가가 잘라낸 나무의 일부일지도. 어디서 왔는지 모를 작은 너지만 나는 네가 마음에 들었다. 아래쪽이 약간 둥글넓적한 건 꼭 성격 좋은 사람 모양새고, 조밀하고 촘촘하니 단단한 질감은 왠지 믿음직해 보였다.

작고 동그란 너의 몸, 그 단면에는 또 동글동글 작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점점 크게~ 점점 작게~’ 라는 노래가 그럴 듯 어울리도록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는 나이테. 그렇게 다정한 동그라미들 위로 성난 상처 자국이 보였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지나간 흔적들. 너만의 고운 결과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이리저리 그어진 스크래치. 그건 너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톱날 자국일까.

그렇게 내 손안에 온 너를, 나는 다시 사포로 문지른다. 너를 다시 너답게 만드는 일이라 생각했다. 처음엔 조심스러웠지. 그러다 어느 새 힘을 줘 문지르기 시작했다. 길들이는 건, 길들여지는 건 또 다른 안정을 주리라 믿으며.

한 손으로는 거친 모래종이를 잡고 다른 한 손에는 작은 네가 튕겨나가지 않게 잘 다잡으며 열심히 문질러댔다. 거칠었던 상처에 또 다시 상처가 더해지는데도, 부드러워지는 느낌이었다. 고운 가루들이 쓸려나왔고, 그건 우리 사이가 한층 돈독해지는 느낌을 주었다.

나는 너의 나이테에 발맞춰 그림을 그렸단다. 나이테의 중심을 해의 중심이라 생각하기로 했지. 반대쪽에는 보랏빛 꽃 암술이 그 중심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너의 결을 따라 태양과 꽃잎의 파동도 그려 넣었다. 너의 동그라미가 주는 울림은 태양의 빛처럼, 꽃잎의 흔들림처럼 여전히 살아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초를 입히고 촛불 가까이 대어 촛농이 스며들게 하는 일은 마치 어떤 의식을 치르는 것 같았다. 인디언 텐트에서 조용히 불을 피워놓고 벌이는 경건한 의식 같은 것 말이다.

물기를 촉촉이 머금은 촛농이 순식간에 물처럼 번졌다가 스며드는 순간은 황홀했다. 촛농을 먹으며, 내가 그린 색과 선도 밀착되었고 그제야 나의 손때가, 나의 흔적이 너에게 구석구석 미치는 것 같았다. 가장자리 나무껍질도 이제 나의 손길에 길들여졌는지 검정 색 반질반질한 테두리가 되었다.

애틋하구나. 내게 와줘서 고맙다, 작은 나무야.

나무 목걸이 만들기 스토리텔링

초등독서논술 52기 바탕과정 김미옥

이번 과정을 위해 준비한 루페로 나의 나무 조각을 들여다보았다. 루페 사용이 익숙치 않아 앞쪽으로도 뒤쪽으로도 살펴보았다. 빠르게 휙휙 지나는 것보다 가만히 들여다보아야 잘 보였는데 내가 너무 성급했는지 이리저리 움직이니 잘 보이지 않아 더욱 움직였던 것 같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무 결의 모양이 제대로 보였다.

나무테가 둥글게 둥글게 있는 모양이 보이고 울퉁불퉁 거친 나무의 결이 눈으로 느껴진다.

손으로 만져보아도 약간 거칠게 느껴지는 정도.

쓱싹~ 쓱싹~

모두들 열심히 자신의 나무를 부드럽게 만드느라 교실 안에는 조용한 사포질 소리만 들렸다. 사포질을 하고 나면 투명한 유리병에 나무를 갈면서 나온 가루를 모아 넣었다. 그런데 희한하게 나도 열심히 사포질을 하였건만 나만 가루가 많이 모이지 않았다. 가루라고 털만한 것도 없을 정도로.. 내가 잘못 사포질을 한건지.. 그래도 매끄러운 느낌은 들었는데 말이다. 진짜로 내가 사포질을 잘못한 것인가.

사포질을 마치고 나서 다시 루페로 보는데 나무 조각이 완전히 매끄럽지 않고 약간의 구멍이 군데군데 보인다. 가루가 많이 나오지 않았던 이유가 이것인가보다. 내 힘과 사포질 요령 부족.. 앞쪽에 꾸밀 것은 나의 이름과 이에 어울리는 무늬 꾸미기.

나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내 인생의 숙제. 어질게 풀어간다는 의미로 ‘해인’으로 적었다. 그리고 주변은 심플하게 넝쿨 느낌의 풀을 하나 그리고 주변 테두리를 둘렀다.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좀 더 잘하고 싶은데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초를 하나씩 나누어 주시고 꾸민 곳에 초칠을 했다. 그런 후 초에 불을 붙여주셔서 교실 안의 불을 끄고 촛불로 나무 조각을 코팅했다.

신기했다. 나무 조각을 촛불 위로 아래로 왔다갔다 한참을 하고 나니 나무 조각이 천천히 촉촉해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다고 막 흐르지는 않고 정말 슬며시 촉촉하게 되었다가 그 촉촉함도 스윽 스며들었다. 촉촉해지는 모습을 보았을 때 사우나에서 내게 땀이 나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땀을 많이 흘리지 않는 사람이라 땀이 막 흐르지는 않고 땀이 촉촉이 젖어드는 느낌만 들기에 그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

집으로 돌아와 다시 뒷면에 전통문양으로 꾸미기를 해야 했다. 무얼 할까 한참 고민한 끝에 손거울에 연꽃문양을 한 것을 보고 그렸다. 멋진 문양이라 잘 하고 싶어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며 구도를 잡으며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 네임펜이 없어서 딸의 사인펜과 다른 얇은 꾸밈펜을 가지고 왔다. 사인펜은 생각보다 두껍고 꾸밈펜은 아주 얇았다. 서로 잘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색연필로 할까 하다 색이 연해서 진한 것으로 하고 싶어 사인펜을 집어 들었다. 사인펜은 생각대로 진하고 두껍게 먹혔다. 순간 다시 고민했다. 이걸로 계속 할지 말지를.. 그러다 이미 한 것을 지우기 어려우므로 지금 이 순간 최선의 선택은 사인펜이라 결정하고 사인펜으로 마저 그렸다. 중간 주간 세심한 표현은 사인펜으로 마무리 하면 문양이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 얇은 펜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주변이 허전한 듯해서 고민하다 하늘색과 보라색 사인펜으로 테두리를 두른 후 꾸밈은 마무리를 했다.

꾸미고 난 나무에 촛불로 코팅을 할 적엔 불을 끄고 하면 집중도 잘 되고 무언가 경건한 의식을 치르는 기분이 들어 참 편안했다. 촛불가에 나무 조각을 들고 천천히 돌리면서 고루 고루 코팅이 잘 되는지 살피면서 이 작업에 온전히 몰두할 수 있었다.

무엇에의 몰두, 몰입을 하는 것이 참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만의 일에 오롯이 혼자서 몰입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참 의미가 있었고 작업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사실 꾸미는 일에 자신이 없는 편이다. 그림은 더더욱. 아이들도 커가면서 어른들이 하지 않아도 스스로 남과의 비교를 하게 되더라. 어른인 나는 더욱 그렇겠지. 요즘은 블로그를 보면 잘하는 사람들의 작품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런 작품과 나의 작품을 비교하면 한없이 움츠러드는 자신감..

하지만 마지막 과정을 거치면서 나만의 목걸이이며 아주 잘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문양을 고르고 고민하며 만들어 탄생하게 된 작품에 대한 애착과 뿌듯함이 생기게 되었다. 마지막 과정에서 나무만 코팅이 된 것이 아니라 나의 자신감도 좀더 단단해지는 느낌이랄까? 불빛 속에서 보니 은근한 매력이 있어 보인다. 나만의 착각일지라도 ^^

나무이름표 스토리텔링 / 김수민

너는 작은 상자에 담겨서 내게로 왔어. 너는 동그란 아이들 사이에서 쑥스러운 듯 고개를 떨구고 있었지. 그런 너에게 눈길이 갔던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몰라.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른 모습의 너였기에 한눈에 들어왔지. 네가 들어있던 상자가 내게 오기까지 앞에 4명의 선생님들이 계셨단다. 상자가 바로 내 옆의 선생님에게 왔을 때 얼핏 동글동글 선명하고 또렷한 인상의 아이가 보이더구나. 사실 그 친구를 보고는 짐짓 마음을 정했었단다. 그런데 내 옆의 선생님도 나와 같은 마음이셨기에 그 아이는 내 품에 안기지 않았어. 그때까지도 선택받지 못했던 너는 내 앞에까지 왔었단다. 앞의 선생님들이 저마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아이를 고르는 분주한 손길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림책 ‘꼴지강아지’와 ‘고슴도치아이’가 생각나더구나. 수면 위로 올라온 그림책의 장면들과 네 모습이 겹치면서 고민없이 너를 집어들었단다. 너는 그렇게 나에게 왔단다.

거칠거칠.. 울퉁불퉁한 단면과 껍질..

무엇인가를 품었던 흔적같은 구멍..

그 무엇을 꼬옥 움켜잡고 있었던 것 같은 날카로운 발톱..

그곳들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궁금해졌다. 네가 떨어져나온 그 곳이..

나무들도 인간처럼 살아온 이야기가 고스란히 몸에 새겨진다던데 너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너는 어느 어미로부터 났을까? 네가 피웠을 잎은 어떤 모양이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모래종이에 너의 단면을 문지르는데, ‘벅벅벅’ 소리가 꽤나 귀에 거슬리는 것이 느껴졌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거친소리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단면을 어느정도 매끄럽게 만들고나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방으로 상채기가 나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얼른 눈을 떼고 다음 작업으로 넘어갔다. 고운 단면에 나를 알리는 글자를 새겨넣었다. 엄마아빠가 지어준 내이름 석자 다음으로 많은이들에게 불리워지는 이름을 새겼다.

SOLALA

이 이름과 인연을 맺은지도 어느새 5년이 훌쩍 지났다는 생각을하니 지난 5년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던걸..

영화 일라이, 태양, 계이름, 그림책놀이터..... 이런 단어들이 'SOLALA'라는 이름과 함께 떠오르는데 그 이야기는 차차 들려주기로 할게.

앞으로 우리가 함께 할 시간이 꽤 길 것 같으니 여유를 부려보자.

곱게 색색깔로 새겨 넣은 이름에 초를 문질러서 코팅하는 작업은 매우 인상적이었단다.

불 밝힌 양초와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문질러둔 초를 녹여서 너에게 스며들게 하는 과정이었지.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그을리게 되고,, 너무 멀면 초가 녹지 않는 걸 관찰하면서 ‘적당한 거리두기’라는 말이 생각났단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게 되었던 젊은 날의 어리석은 초상이 겹치기도 하더라구.

훗.. 인간은 늘 뒤늦은 후회를 하면서 지금 아는 것들은 그때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안타까움을 느끼지.. 그래서 인간인가보다. 실수와 후회로 불완전하기에 더욱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는 인간!

집에 돌아와서 너의 뒷면에 이글이글 불타는 듯한 태양을 그려 넣고 코팅을 해서 마무리 지었다.

SOLALA!

한낮에는 열정적으로 너를 불태우고, 달이 뜨면 후회와 아쉬움일랑 접어치우고 푹 쉬자!

반갑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나무목걸이 만들기

<우 서희>

바구니 속의 제각기 다른 모양의 납작한 나무 조각들 속에서도 가장 작은 널 집어 들었을 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사실은 잘 기억이 나질 않아. 아마도 너무 큰 것 보다는 오밀조밀 작고 둥그런 네가, 이것으로 무엇을 만들던 그래도 더 보기에 좋겠지 라는 막연한 감에 그랬던 것 같다는 생각. 그냥 눈으로 보았을 때는 크게 모나고 거친 면 없이 고와보이던 넌데, 돋보기로 자세하게 들여다보니 너에게도 다듬어 지지 않은 거칠고 날 선 부분들이 보여서 어쩐지 나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저 순하고 상냥할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 나에게도 쉬이 꺾어지지 않는 고집 같은 게 분명 있거든.

그런 너를 손에 쥐고 사포에 빙글빙글 돌리며 갈 때 맘속의 뾰족뾰족 뿔이 나 있는 내 마음도 같이 곱게 갈아지면 참 좋을 텐데 하는 마음으로 정성스레 둘레둘레 갈았단다. 만약 네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나에게 아프다고 하진 않을까 맘 한편으로는 미안해하기도 하면서.

곱게 갈아진 너를 돋보기로 다시 들여다보았을 때 사실은 깜짝 놀랐어. 손으로 만지고 그냥 눈으로 보았을 때의 너는 거칠거칠한 면이 다 다듬어져 마냥 부드럽고 고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포에 갈기 전의 너에게는 없던 새로운 상처와 보지 못했던 아주 작은 구멍들이 생겨 있더구나. 그런 너의 한쪽 면에 나를 나타내고 상징 할 수 있는 이름과 작은 그림을 그리면서 궁금해졌어. 나무에는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진다고 하는데, 너는 어떤 곳에서 얼마나 많은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세월을 지내왔을까. 그림 위에 초칠을 하고 교실의 불을 끄고 촛불에 초칠 한 것을 입히는 마치 의식 같은 순서를 거치면서, 작고 볼품없는 나무 조각에 불과 했던 너로 인하여 이 짧은 시간동안 내 안에 참 많은 생각들이 다녀갔구나 싶어서 고마웠어. 스스로를 돌아 볼 수 있는 순간들이 언제나 오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야.

아직은 비어있는 네 뒷면에 무었을 그려 넣을까 고민해본다.

나무 이름표 스토리텔링 / 정언진

여러 개의 나무 조각들 중에 유난히 하얗고 동그란 네가 마음에 들어 선뜻 너를 데려왔어.

루페를 들고 너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내가 보지 못했던 너의 모습들이 눈앞에 펼쳐졌단다.

작은 숨구멍 같은 것들이 보였는데,

이걸 보며 네가 지금은 마치 물건처럼 내 손에 있지만

한 때 넌 숨쉬고 자라던 생명이었다는 것이 느껴졌단다.

그리고 동그랗고 섬세하게 퍼져나가던 나이테를 보며 아름다움을 느꼈지. 덕분에 네 나이도 궁금해졌고.

나이테와 숨구멍이 신기하게도 보면 볼수록 마치 우주처럼 느껴졌어.

수많은 별들과 행성의 궤도가 네 안에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졌거든.

또 네 표면에는 너를 자를 때 썼던 톱자국들이 거칠고 차갑게 나있었어.

너를 사포질 할 때, 네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기대가 되었지만

한편으론 너의 모습이 바뀌는 게 아쉽기도 했어.

우주 같은 모습이 사라질까봐.

한참을 문질러 네 표면이 보들보들 해질 즈음.

갈고 난 가루들을 병에 담아야 했는데,

가루들이 사포 사이로 촘촘히 들어가 별로 모이지 않았어.

그렇지만 가루들을 차곡차곡 모아놓은 유리병의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어.

마치 켜켜이 퇴적된 땅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신비로웠거든.

사포질이 된 너를 루페로 보았는데,

숨구멍들은 나무로 매꾸어져 있었고 톱이 지나간 자국은 흐릿하게 엷어져 있었어.

전처럼 우주 같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따듯하고 부드러운 감각을 느낄 수 있었지.

네게 나의 상징을 그려 넣고,

그 위에 양초를 문질러 촛불에 데워 코팅할 때 나는 이 과정이 어떻게 변해갈까 몹시 궁금했어.

초에 가까이 가져가도 너는 한동안 변하지 않았지.

그런데 어느 순간 네 겉면이 촉촉히 젖어드는게 보였어.

촉촉하게 녹은 양초는 다시 네 안으로 스미고

이전보다는 조금 더 진하고 반들반들 하면서 단단한 느낌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았단다.

너를 만난 과정을 글로 쓰는 이 순간에 알게 된 것인데 말야.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쓰듯 경험을 기록하니

너의 다양한 변화를 매순간 설레는 마음으로 만났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어.

그리고 갑자기 나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긴 것 같아 가슴이 따듯해져.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너지만,

내가 너와 관계 맺는 법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네.

의미 있는 경험을 선물해줘서 고마워.

내 나무 이름표 / 김흥숙

상자 속에서 유난히 매끌매끌한 너가 나의 눈에 띠었고, 난 널 별로 힘들지 않게 사포로 갈았다. 손으로 만져 보니 어느 정도 완성된 듯한 느낌이었지만, 루빼로 자세히 들여다 보니 거친 표면과 상처투성이다.

가루를 조심스레 병에 담고 그림을 그렸다. 이름을 적을까 하다가 두 딸의 이름으로 결정짓고 하트모양으로 테두리 한 뒤 무지개 색으로 마무리 지었다.

초를 켜고 가까이 대며 촛농이 스며드는 모습을 지켜보니 신기하다. 촉촉하게 양초가 녹으며 색이 번져가는 것이 너가 나에게 아주 소중하게 다가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수업 시간 때의 그 느낌, 그 감정을 기대하며 뒷면을 어떤 그림으로 채울지 고민하다 태극무늬로 결정하고 밑그림을 그린 뒤 색연필로 칠하고 양초를 입히는 작업을 했다. 하지만 초를 문지르는 순간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색은 뒤죽박죽 섞여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순간 잠시 혼자 멘붕상태... 되돌릴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매직으로 다시 태극무늬 색을 입히고 나의 실수를 감추려 테두리까지 두텁게 하였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랴...이미 벌어진 일을... 마음을 추스르며 빠른 손놀림으로 코팅작업으로 마무리지었다. 속상한 마음과는 달리 자꾸 눈이 가고 손이 간다.

미안해...널 좀 더 이쁘게 꾸미지 못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