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논술 강의 나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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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독서논술 바탕과정 52기 강영란
돌
하얀 돌, 돌 표면에 햇살이 들어와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는 돌. 강물에 햇살이 비치면 강 표면이 반짝 반짝 일렁이는 모습과 닮았다. 손으로 이리 만져보고, 저리 만져 보니 하얀 돌에 손때가 탈까 걱정이다. 돌 아래쪽을 보니 이끼색깔의 연두 빛 점들이 오른쪽 위쪽에 있고, 왼쪽 위쪽에는 검은 점들이 있다. 사실 돌에 위, 아래가 어디 있겠는가? 돌은 정형화되지 않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돌의 위, 아래, 왼쪽, 오른쪽은 나의 시점일뿐, 돌은 돌 그대로 나에게 왔다.
손에 돌을 꼭 쥐어 본다. 딱딱한 돌이 어떻게 잡으면 편안하게 잡혀 쥔 것 같지 않은데, 어떤 방향으로 쥐면 돌의 형체가 궁금해 질 정도로 이물감이 느껴진다. 내가 만지기 전에 만들어진 돌을 왼손에도 쥐어 보고, 오른손에도 쥐어 본다. 돌이 왼손에서 오른손,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여행을 한다. 단단한 이 돌은 이제까지 어떤 세월을 견뎌 이렇게 둥글고, 하얀 돌이 되었을까? 얼마나 큰 돌에서 손 안에 꼭 쥘 수 있는 작은 돌이 되었을까? 돌의 시간과, 돌의 경험이 궁금하다.
소라
결이 있는 것과 달리 만지면 부드럽다. 시간이 흘러 경계가 희미해진 결이 잊혀져가는 기억과 닮았다. 꽁무니가 뭉퉁하게 잘린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나선형의 길 안 쪽 밝은 곳에 우주로 통하는 길이 열려 있을 것 같다. 나선형의 구조는 항상 궁금증을 유발한다. 매끄러운 곡선 뒤로 숨겨진 공간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소라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 또한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길이다.
구멍이 하나 있는데, 이 구멍은 새부리가 쪼아 만들 구멍일까, 아님 파도에게 길을 내어준 구멍일까? 소라의 공간을 상상하는 것이 즐겁다. 나선형의 길들에 생명체가 살고 있었을 것이고, 생명체가 죽었을 때는 또 누군가의 집이였을 지도 모른다. 집이 버려졌을 때는 파도가 지나다니다, 해변가로 소라를 밀었을지도 모른다. 소라의 공간과 생명체가 지나간 길과 소라의 여행에 대해 생각해 본다.
모래
관찰 대상 중 가장 흥미로운 물질이다. 확대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니 동글동글한 모래 세상이 펼쳐진다. 모래 한 알 한 알 같은 것이 없다. 검정색, 노란색, 붉은 색, 하얀색, 투명한 색 등 여러 가지 색의 모래다. 둥근 모양은 비슷하지만 크기도 모양도 다 다르다. 투명한 모래의 구멍 안쪽에 붉은 모래가 자리를 잡고 있다. 둥근 모래 마을 같다. 펼쳐진 모래가 언덕을 이루고 길을 만들고 길 가에 집들이 서있다. 그 작고 동글동글한 집에 날개를 달고 반짝이는 작은 지팡이를 든 모래 요정들이 숨어있다 내 눈 앞에서 날아오를까 눈을 뗄 수가 없다. 이 모래 세상에 이야기가 숨어 있는 걸 느낀다.
눈으로 봤을 때 제법 큰 모래 알갱이들도 있지만, 보드라운 작은 알갱이는 피부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것도 있다. 이 모래 병의 모래가 수업 후 점점 없어진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손에 붙은 모래 알갱이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작은 조개껍질 일부가 보여 바다에서 왔나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나무껍질도 보인다. 이 모래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바람이 많이 불어 모래 알갱이들이 서로 부딪쳐 동글동글해 졌을 것 같다. 모래 안쪽이 비워져 있어 가볍게 느껴진다.
짝꿍의 모래는 내 모래와 달리 각진 모래였다. 내 모래가 모래 요정이 사는 둥근 작은 집이 있는 마을처럼 보였다면 짝꿍의 모래는 건축물을 닮았다. 갈색 계열이지만, 이 모래 또한 한 가지 색으로 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건 보석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만졌을 때는 까끌까끌했다.
나뭇잎
내가 가지고 온 나뭇잎은 집에서 기르는 아이비다. 이 아이비는 아들이 학교에서 기르다, 죽기 직전에 집으로 데려왔다. 물을 주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두었더니, 잎에 생기가 돌며 되살아났다. 아이비는 겨울 내내 베란다에서 추은 겨울을 이겨냈다. 봄 햇살이 들기 시작하자 초록 잎이 짙어지고, 갈색을 띄는 곳이 생겼다. 아이비 잎을 확대경으로 관찰하니, 잎 뒷면에 있는 잎맥이 더 자세히 보였다. 잎맥의 붉은 색이 피가 돌아 붉은 것처럼 보였다. 앞면의 하얀 잎맥은 물길인 것처럼 보인다. 잎맥들이 만든 길로 무언가가 지나간다고 생각하니 마냥 신기하다. 줄기는 덩굴 식물답게 어딘가를 감으려는 듯 휘어있다. 가장자리를 다시 보니 테두리를 만들듯 짙은 색을 하고 있다. 초록 잎에 가는 잎맥들이 정형화되지 않는 작은 방을 만든 것이 보였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공간의 구분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보고 오니, 세상에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무엇을 보든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자세히 듣지 않으면 들을 수 없다. 이제까지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던 것들이 내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 내 준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흥미롭다. 재밌기도 하다. 이렇게 흥미롭고 재밌는 세상을 아이들에게도 알려 주고 싶다. 그리고 나도 모래를 모으고 싶다. 모래 세상을 들여다 보고 그 속에 있는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듣고 싶다.
읽고 있으니 너무 기분이 좋아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