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신칼럼] ‘나’와 ‘내가 아닌 것’

                                              정혜신 / 정신과 전문의

  
김승연 회장을 둘러싼 보복폭행 사건의 전개 과정은 비현실적이다. 조사 결과 국민 중 열에 아홉은 이번 사건 수사를 보면서 경찰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고 불편한 심정을 토로하지만, 들끓는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주도권은 김 회장 쪽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이할 정도로 충만한 자신감과 든든한 사회적 위상, 막강한 변호인단을 동원한 방어기술은 백만대군과 맞장을 뜨면서도 우세한 국면의 싸움을 펼쳤다는 300명의 스파르타 결사대 수준이다. 오히려 대규모 공세를 펴는 이들이 무기력감을 느낄 정도다. 하지만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고 했던가. 이번 사건을 통해 김 회장은 형사 사건의 피의자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동원할 수 있는 헌법상 권리가 어떤 것들인지를 국민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김 회장이 행한 일종의 사회적 기여다.

문제는 김 회장과 동조 세력들이 사건의 발단과 전개 과정에서 일관되게 보여준 만화적 행태다. 그들은 한 해 200만건 넘게 발생한다는 형사 사건의 하나일 뿐인데, 왜 이렇게 사회 전체가 과민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다. 이번 사건으로 재계 전체가 매도될지 모른다는 걱정이나 언론이 한화를 죽이려 하는 것 같다는 의심은 명백한 과잉자세다. 지금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특정 재벌기업 총수에 대한 표적 공격이 아니라 ‘자연인’ 김승연의 위법 사실을 적법하게 처리하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한화의 글로벌 경영이 위축되거나 그룹의 명예가 실추될 이유가 없다.

정신분석치료의 최종 목표가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별하는 분별력에 있는 것처럼 재벌 회장과 재벌 기업은 별개의 존재다. 그럼에도 김 회장을 비롯해 한화 임직원 중 일부는 기업과 총수가 한 몸인 것처럼 착각한다. ‘나’와 ‘내가 아닌 것’을 분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분별한 분노와 억울한 심정에 빠져서 그러한 자신의 태도가 오히려 타인에게 분노를 유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김 회장과 그 아들을 조사할 때마다 기자들과 몸싸움을 벌이거나 경찰서 한켠에서 밤을 새워야만 하는 한화의 구성원들이 나는 안쓰럽다. 비아냥이나 연민이 아니라 진실로 그렇다. 1980년대에 군에 강제징집된 피해자들은 당시 국군통수권자였던 전두환의 영웅적 전기를 밤마다 읽고 독후감을 써야 했다. 그 고통스런 병영에서 벗어나기 위해 돋보기로 자신의 눈동자를 지졌다는 사람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기 어렵다. 내부자의 자기분열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번 사건도 본질적으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대다수 사람들은 한화의 직원들도 이번 사건의 피해자로 생각한다. 나도 그렇다.

홍보 전문가 과정을 밟고 있는 한 젊은이는 한화의 위기관리 전략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번 사건처럼 총수 개인의 비리와 관련된 사안에서는 총수와 기업을 분리시키는 작업이 가장 우선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현실에서는 오히려 회사 차원에서 회장님의 인간적 면모나 탁월한 경영능력을 앞세우니 의구심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김 회장은 29살에 그룹 회장이 된 이래 지금이 제일 어려운 시기인 것 같다고 토로했단다. 그럴지도 모른다. 한화그룹이라는 보호막에서 벗어나 자연인 김승연으로서 이번 사건에 임해야 회장 취임 뒤 30배를 넘게 키웠다는 기업에 누가 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론 그런 행동이, 구조조정 때 김 회장 자신이 했다는 말처럼 ‘마취도 하지 않은 채 갈비뼈를 들어내는 것 같은’ 고통과 두려움일지라도 꼭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분리할 수 있어야 김승연 회장과 한화그룹이 함께 산다.

출전 : 한겨레 신문 2007년 5월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