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

                        곽병찬 (한겨레 신문 논설위원)


“한 조각 좁은 배를 타고 술을 들어 서로 권하니, 천지간에 하루살이 인생이요, 창해에 한 알갱이 좁쌀이로다.” 판소리 <적벽부>에서 하루살이는 좁쌀과 함께 그저 덧없는 인생의 상징일 뿐이다. 그러나 장자에게 하루살이는 매미나 참새 사마귀와 함께 소견머리 없고 어리석은 자를 상징한다.
“하루살이가 밤과 새벽을 알 리 없고, 여름벌레는 눈과 얼음을 알 리 없다.”(<장자> ‘소요유’) ‘구름에 올라 해와 달을 타고, 사해 밖을 노닐고’ ‘하늘에 올라 안갯속을 노닐고 무극을 배회하며’ ‘하늘에 올라 해와 달을 곁에 두고 우주를 옆에 낀’, 시공과 생사를 초월한 신인이 되기를 희망했던 장자였으니, 평생 날개 한 번 접지 못하고 버둥대며 살다가 죽어가는 하루살이가 소인배의 상징으로 보이는 건 이해할 만하다.

사실 먹고 마실 입이 없는 상태로 태어나는 하루살이에게는 하루가 오히려 길지 모른다. 하루살이는 오로지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은 뒤 삶을 끝낸다. 물론 하루살이도 매미 유충처럼 애벌레로 물속에서 1~3년 동안 산다. 하지만 유충 때나 성충 때나 하루살이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저 종족을 번식시키고, 다른 곤충의 먹이가 되어줄 뿐이다.

올해 지용회는 하루살이를 소재로 한, 승려시인 조오현의 시조 ‘아득한 성자’를 정지용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야말로 시인에게는 성자였다. 반면 평생 도를 닦았다는 자신은 ‘죽을 때가 지나도록 살아왔지만 …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인생이라고 했다. 장자가 이마를 치겠다. 하루살이를 감히 덧없는 인생, 소인배 정당 정치인에 빗댈 일이 아니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2007년 5월 7일 한겨레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