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계절학교 나눔터
농사체험에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느낄까?
- 해오름 어린이 살림학교 보고서
이연희 해오름 어린이 살림학교 교사
아이들이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더 넓어지기를 바라며, 10월과 11월에 강화도로 농사체험을 다녀왔습니다. 남들은 1년 내내 땀흘리며 제 값도 안 쳐주는 농산물을 부여잡고 일하기 바쁜데, 기껏 하루 잠깐동안 일을 하는 것이 무슨 농사체험이람. 좀 염치가 없긴 하지만 온통 아스팔트 천지인 곳에서 벗어나 흙을 밟는 것만으로도 족할 아이들에게 땅 속에서 뭔가를 직접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입니다.
농촌에 몇 번 일을 하러 다녀본 적이 있는 아이들에게는 농사체험이라는 건 좀 신선한 감이 떨어지나 봅니다. 그리고 부모님 중에도 농사체험이라는 제목만 보고선 애들이 몇 번 해 봤는데 하고선 보내지 않으신 분도 계십니다. 가봤자 뻔하다는 생각이겠죠. 유치원 때 해보고 주말농장에서도 해 보고…. '그게 다 그거 아니야'라는 식으로.
하지만 '고집쟁이 농사꾼' 전우익 님은 이런 말을 합니다. 땅이라고 다 같은 땅이 아니라고. 모래땅, 진흙땅, 힘있는 땅, 힘없는 땅, 살이 깊은 땅, 얕은 땅… 그리고 그런 다양한 땅의 자기 역할이 있을진대 자기가 바라는 모과가 안 된다고 나쁜 땅이라고 해서는 안된다고 말입니다. 즉 다양한 풍토를 한 가지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자기에게 이로우면 좋은 땅이고 안 좋으면 나쁜 땅이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합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이해관계에 얽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 중심적으로만 생각해서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하나하나의 특성에 따른 그 가치를 인정하기보다는 그저 자기식 대로 평가하고 말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도 그런 면이 많습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한 번 해 본 일은 다 아는 것처럼 얘기하고, 아주 즐거웠던 기억이 있는 일 말고는 다시는 하지 않으려고, 하고 늘 새로운 일을 찾으려고 합니다. 호기심을 갖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아이들을 건강하게 하지만, 어느 하나 진득하게 하지 못하는 것은 되려 아이들을 헛똑똑이로 키우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아이들은 열심히 고구마도 캐고 순무도 뽑아보고 하면서 집에 갈 때 '어땠냐'고 물어보면 '좋은 경험이었다'고 하고 '재미있었다'고는 하지만 너무 힘들어 농촌에서는 절대로 살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발에 흙을 묻히고 사는 것이 구질맞고, 떨어내려 해도 떨어지지 않는 흙을 보며 짜증이 나고, 파리 떼도 많고 어느 것 하나 깔끔하게 정리된 게 없는 농촌을 아이들은 절대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번 씩 와서 뭘 해 보는 건 재미있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겐 놀이고 재미지요. 처절한 삶의 한 부분으로 인식되지 않습니다. 고구마 캐는 재미와 순무를 뽑는 재미 김치 담그는 재미, 하지만 그 놀이는 자기의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됐다 싶으면 그 때부터는 지겨워집니다. 그래서 대부분 농사체험을 한다고 하면 농촌에서도 애들이 뭘 한다고 하냐고 놀다 가라고 합니다. 그들에겐 아이들의 손놀림은 놀이로 비춰집니다. 분명 놀이처럼 즐겁게 하는 것도 좋지만 일은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이들의 입에서 '에구에구' 소리가 나올 때까지 일을 시켰습니다. 분명 농촌에서는 낮 시간대는 일을 하지 않지만 우리야 시간 상 어쩔 수 없어 낮에 주로 일을 하다보니 아이들이 더 지치기도 하지만 땀 흘려서 일을 해 봤습니다. 그러니 농촌에선 절대 안 산다는 얘기가 나올 만도 하지요.
요즘엔 도시의 삭막한 삶이 싫어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전원에 묻혀 한가롭고 여유있게 사는 모습이 좋고 먹을 만큼만 농사지으면 된다고 떠난답니다. 하지만 이민가서도 과외공부 시키던 버릇 못 버리고 과외 시키는 것처럼, 농촌에 가서 도시에서의 소비의 삶을 그대로 살다간 얼마 못가 다시 도시로 나오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삶의 뿌리를 바꾸는 일에는 자기와의 싸움이 만만치 않을텐데 겁 없이 도전한 셈이죠. 하지만 또 그러면서 자기를 알아가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거겠지요.
어떤 선생님은 아이들이 절대 농촌에서 살지 않겠다는 얘기를 듣고 아이들이 들공부에서 얻은 게 없고 잘못 가르친 게 아니냐고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고구마를 집에 가서 쪄 먹을 마음만 있는 아이는 눈에 고구마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고구마 잎도 보이지 않고 땅 속에 파묻힌 고구마를 어서 빨리 내 손 안에 넣는 게 급선무입니다. 그래서 고구마의 꼭지만 보이면 성급하게 호미로 찍거나 억지로 캐냅니다. 그러다 보니 땅 속에 살던 애들은 한바탕 난리가 나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전혀 모릅니다. 땅에서 살아가는 자기 보다 힘이 약한 존재를 모릅니다. 지렁이의 몸이 두 동강 나도 자기의 손에 고구마만 주어지면 만족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들이 원래 악해서 그런 게 아니라 모르는 것이지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생물, 그들도 숨을 쉬며 살까? 그들이 내가 살아가는데 어떤 관계가 있지? 우리에게 무엇을 주지? 알아도 머리 한 구석에 쳐 박혀 있다가 시험 때만 되면 자기 목적을 위해 떠올리는 지식의 한 켜로 자리하기 때문에 알고도 모르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물론 전혀 모르는 아이들도 있겠구요. 아이들에게는 농촌에서 살고 안 살고의 문제가 아니라 고구마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게 뭐고, 그 속에서 그들이 같이 살아가는 존재를 배워가는 게 들공부의 참 맛이라고 봅니다.
너무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지금껏 이런 생각들이 정착되지 못해 늘상 프로그램에만 연연했는지도 모릅니다. 저도 농촌에서 살 자신은 없으면서 아이들의 그런 솔직한 말에는 왠지 씁쓸하기도 한 게 사실입니다. 농촌 사람들은 전원주택에서 멋있게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힘들게 삽니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떠나지 못해 산다고는 하지만 땅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어 내가 있음을 알고 그런 산과 들이 있어 내가 살고 있음을 느끼는데 더 의의가 있지 않을까요? 물론 엄마에게 갖다 준다고 작은 손으로 고구마를 가방에 넣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참 예쁩니다. 그 예쁜 마음에 고구마에만 마음을 쓰지 않고 고구마 줄기도 자세히 보고 땅 속도 자세히 살피면서 대지가 주는 선물에 감사할 줄 아는 아이로 큰다면 더 좋겠지요.
1. 고구마 캐기 (10월 13일)
봄에 심은 모가 얼마나 자랐는가도 보고 메뚜기도 잡으려고 했는데, 갑작스럽게 내린 무서운 폭우로 논에 물이 차고 메뚜기는 어디론가 다 도망을 가고, 도저히 논에 들어갈 수 가 없어 고구마만 캐고 진강산에서 도토리를 줍기로 했습니다.
어렵사리 지은 농사인데 아이들이 논에 가서 벼를 봐야 된다고 차마 말을 할 수 없어 프로그램을 돌렸는데 원성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메뚜기 잡아보겠다고 들떠서 왔는데…. 선생님들도 그 무거운 후라이팬을 여러 개를 준비해 갔는데….
하는 수 없이 목사님 댁에 올라가면서 다른 논에 있는 벼를 잠시 보았습니다.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벼를 보고 아이들이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을 이해하겠다고 하더군요. 누가 그런 말을 만들어냈을까? 황금들판이라고 불릴 만큼 누런 논을 보며 아! 또 이래서 황금들판이라고 하는구나. 냄새나는 시골길을 걸으며 이 얘기 저 얘기 하다보니 목사님 댁에 다 왔습니다.
모둠을 나누고 한 고랑씩 맡아 고구마를 캤습니다. 제가 좀 늦게 밭으로 가 보니, 성미 급한 아이들은 고구마 캘 욕심에 벌써 호미로 아무 곳이나 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이 비닐과 줄기를 걷어내면 목사님을 도와 아버님들이 삽으로 땅을 파 주셨습니다. 새벽에 내린 비가 서서히 개이더니 우리가 일할 때는 한여름 땡볕 같았습니다.
땅을 파 보니 지렁이도 나오고 이름 모를 벌레들이 많았습니다. 무섭다고 도망가는 아이도 있고 신기하다고 머리 들이밀고 벌레만 보는 아이도 있고 살살 파라고 하는데도 급하게 호미를 들이대서 고구마를 파다 벌레도 죽이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몇 번 주의를 듣더니 제법 살살 잘 파냅니다. 빨간 고구마가 땅 속에서 나오니 아이들의 함성이 여기저기서 터집니다. 고구마가 제법 큰 것이 많았습니다. 살살 잘 파보니 주렁주렁 덩이뿌리가 달려나왔습니다. 신이 나서 땀을 뻘뻘 흘리며 하다가 몇 번 일해 봤다는 아이들이 "선생님, 이 고구마 밭은 다른 밭하고 달라요" 그러더군요.
무슨 말인지를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곳에서는 아이들이 고구마를 쉽게 캐 가도록 줄기를 미리 걷어내고 땅도 좀 파놓는다고 하더군요. 아니 그게 무슨 일이람. 아무튼 쉽게 일을 해 본 아이들이 힘들다고 투덜거리기 시작하니 처음 재미있게 해 보던 아이들도 힘들어하고 축축 쳐집니다. 거기다 워낙 초보 농사꾼들이라 물도 준비 안 해가고 1시간 남짓하자 힘들다고 나가 떨어지고, 목마르다고 한 두 명 빠지고 눈치만 슬슬 봅니다. 점점 하기 싫다고 투덜대는 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수확한 만큼 비용을 내기로 했기 때문에 캐낸 만큼 가져갈 수 있는데 애들은 이젠 관심 밖입니다. 집에는 그래도 좀 가져가야 할 텐데 캔 고구마가 너무 적어 선생님 한 분이 제안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캔 건 똑같이 나누고 이제부터 캔 거는 자기가 다 가져가는 거다."
그러니 갑자기 시들어가는 풀마냥 축 쳐져 있던 아이들이 밭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러더니 금새 몇 개씩을 파가지고 왔습니다. 원시시대에서 잉여농산물이 생기는 것은 아마 이랬을 것입니다. 반짝이는 눈으로 스스로 대견해 하는 아이들,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저렇게도 좋을까? 욕심이 없어서도 인생을 살아갈 수 없지만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타인에게 불이익을 줘서는 안되겠지요. 아이들이 오늘 일한 만큼만 자기 욕심을 갖고 열심히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어느 인디언 부족장의 말처럼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쌓아두고 싶어한다고 합니다. 욕심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은 너무도 많습니다. 욕심을 제어할 줄 아는 사람이 참 잘 사는 게 아닐까요?
고구마를 다 나누고 점심도 맛있게 먹고 진강산에 도토리를 주우러 갔습니다. 올해는 다른 해와 다르게 도토리가 대풍이라고 합니다. 산에 오르면 가끔 도토리를 줍게 되는데 이렇게 도토리묵을 쑤기 위해 도토리를 줍는 것은 저도 처음이었습니다. 도토리는 보통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에서 나는 열매를 통틀어 부르는 말입니다. 진강산은 워낙 상수리나무가 많은지라 한 발 떼어놓을 때마다 누군가 꼭 도토리를 뿌려놓은 듯 금새 주머니가 불룩하고 봉지에도 가득 쌓여 갔습니다. 미리 계획을 하고 왔더라면 다 다르게 생긴 도토리를 잘 관찰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돌아갈 시간이 다 되가는데 아이들은 도토리 줍기에 신이 나 있었습니다. 한 주먹 집에 가져 가봤자 아무 쓸모도 없는데 부지런히 주머니에 집어넣습니다. 목사님 사모님께서 다음에 올 때 도토리묵을 쑤어 주신다고 하셔서 다 두고 오긴 했지만요.
뭔가 수확을 하는 기쁨은 대단합니다. 하지만 좀 더 제대로 하려면 주말농장처럼 씨 뿌리고 가꾸는 전 과정을 함께 하며 그 참 맛을 느껴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은 인원에 그리고 바쁜 농가에 피해를 안 주려다 보니 실재로 더 자세히 관찰할 기회가 줄고 자꾸 수확에만 관심이 쏠리는 것 같습니다.
※ 고구마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고구마는 메꽃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에요.
우리가 먹는 고구마는 덩이뿌리입니다. 이른 봄 해가 잘 드는 곳에 구덩이를 깊게 파고 거름을 듬뿍 준 다음 고구마를 심어요. 그리고 왕겨나 짚을 덮어두면 싹이 터요. 요즘은 비닐을 덮어두기도 하지요. 4∼5월쯤 되면 줄기가 한 뼘쯤 자라나는데 이 순을 잘라서 밭에 심지요. 이렇게 고구마 순을 밭에다 심는 것을 '고구마 순낸다'고 해요. 고구마는 순을 심어야 덩이가 굵게 열립니다. 자주색 고구마 줄기는 땅 위를 이리저리 기면서 자라지요. 늦가을에 메꽃을 닮은 엷은 분홍색 꽃이 핍니다. 그러나 보통 꽃이 피기 전에 캐기 때문에 꽃을 보기는 힘들어요.
고구마는 맛이 달아서 구워 먹거나 쪄서 먹고, 연한 줄기와 잎자루는 나물로 많이 먹어요. 녹말로는 식초나 술을 빚기도 하고 엿을 고기도 해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곡식이 모자라서 감자나 고구마를 밥 대신에 먹고 자란 분들도 많아요, 그래서 고구마를 구황 식물이라고도 해요. 흉년을 이겨내는 먹을거리라는 뜻이지요.
고구마는 남아메리카 열대 지방이 원산지인데 15세기에 콜럼버스가 스페인으로 가져가서 온 유럽에 퍼뜨렸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영조 임금 때 일본에 통신사로 갔던 조엄이 가져와서 널리 길러먹기 시작했대요.
고구마는 보통 밤고구마, 물고구마가 있는데 우리가 강화도에서 캔 고구마는 물이 많은 호박고구마예요. 집에 가서 바로 쪄 먹어본 사람은 무슨 고구마 맛이 이러냐고 난리였을 거예요. 고구마는 본래 바로 쪄 먹지 않고 오래 놔둘수록 단맛이 살아난대요. 거기다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단맛이 좀 덜하다고 해요. 그러니 고구마가 아무런 맛도 없었던 거예요. 미리미리 알려줬어야 했는데 거기까지는 몰랐었네요.
그림은 고구마 잎과 줄기와 고구마가 달려 있는 사진이에요. 고구마가 워낙 커서 직접 캐면서도 뿌리 같지 않았는데 사진으로 보니 고구마가 뿌리의 한 부분인걸 알겠죠?.
아이글
김석민(1학년)
오늘 들공부에서 고구마를 캤습니다. 뿌리가 엄청 많았습니다. 짤려 있는 것도 있었고 깊게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밭에 곤충들이 많았습니다. 도롱뇽, 사마귀, 거미 등이 있었습니다.
박진아(2학년)
강화도에서 제일 먼저 고구마캐기를 했는데 도우미 아빠께서 삽으로 고구마가 있는 곳을 파 주셔서 내가 진짜 큰 고구마를 짚었다. 나느 계속 도우미 아빠를 따라다니면서
"이거? 저거?"
하고 물어봤다. 그래서 도우미 아빠가 "그만 좀 따라 다녀라."라고 해서 내가 직접 모종삽으로 파서 고구마 큰 것을 발견했다.
친구들과 선생님이 지적해 주시는 곳을 같이 파봤더니 아주 큰 고구마가 나왔다. 그리고 고구마를 상자에 다 넣은 다음에 친구들과 같이 그 상자를 들어서 다른 곳에다가 가져다 놓았다. 고구마를 5개씩 나눈 후, 밥먹으러 갔다가 다 먹고 도토리를 줍고 나서 집으로 갔다.
도토리 줍기와 고구마캐기가 정말 재미있었다.
이승연(2학년)
해오름에서 강화도에 있는 고구마밭에 갔다.
처음엔 힘들었는데, 갑자기 스피드도 붙고, 재미있었다.
또, 잘 익은 고구마를 생각하니까, 힘이 절로 났다.
고구마를 캐고 나서 도토리를 주우러 산에 갔다. 주머니에 꽉 차서 한발짝씩 걸으면 떨어지곤 했다. 그 모습이 재미있으셨는지 이연희 선생님께서 욕심많은 다람쥐 같다고 하셨다.
또 내가 열심히 하니까 엄마도 기분이 좋으신지 활짝 웃으셨다. 집에 오니 팔다리가 쑤시다고 하니까 아빠께서 어깨를 주물러 주셨다. 나는 커서도 농사일은 절대 안하고 싶다.
2. 순무로 김치 담그기 (11월 3일)
11월에 접어드니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습니다.
예전에도 순무를 한 번 뽑아 본 적이 있는데 오랜만에 다시 한번 해 보았습니다. 아이들도 많이 바뀌다 보니 순무를 캐는 일을 처음 해 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순무로 김치를 담가온다는 말에 군침이 절로 났다나요? 2학기 세 번째 들공부에 잔뜩 기대를 걸고 또 강화도로 갔습니다.
도착해서 김정택 목사님께 순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일단 순무를 잘 고르는 것부터 배웠습니다. 우선 밭고랑에 서서 순무를 찬찬히 살펴보라고 하셨습니다. 좀 큰 놈을 골라야 잘 익은 거고 더 맛있다고 하셨습니다. 고른 다음 순무 둘레의 흙을 살살 파내고 순무를 잡고 앞 뒤로 흔들어 주면 순무가 쏙 뽑힌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많아 모둠별로 밭에 들어가 순무를 뽑았습니다. 가르쳐 주신대로 눈에 띄는 큰 놈을 고르고 살살 흔들었더니 순무가 잘 뽑혔습니다. 어떤 것은 땅 깊이 박힌 듯 잘 나오지 않는 것도 있었지요. 전에 갔을 때는 비온 뒤라 순무가 썰렁할 정도로 쉽게 뽑혔는데 이번에는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두 세 뿌리씩 뽑아서 목사님 댁으로 올라와 다듬고 씻고 마루에 들어가 순무를 썰어서 김치 담글 준비를 마쳤습니다.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을 끼고 정성껏 하는 모습이 참 예쁘더군요. 누가 시키면 그렇게 신나게 할 수 있을까?
밖에서는 아빠들과 선생님들이 무청을 다듬고 아이들은 안에서 순무를 썰었습니다. 모둠별로 나누어 다 썰어보기로 했는데 처음 칼을 잡아보고 어찌 할 줄 모르다가 용기를 내서 해 보니 재미있다나요. 계속 무를 집어 먹으면서 저만 계속 하겠다고 합니다. 집에서는 위험하다고 잡아보지도 않은 칼을 잡아보더니 이젠 겁이 안나고 재미있다고 하고 난타 공연을 하자고 합니다. 겁내 하던 것에 자신의 승리감을 느낀 듯 얼굴들이 환해졌습니다.
다 썰어놓고 점심을 먹고 김치를 담갔습니다.
큰 그릇에 썰은 무와 여린 순무 이파리를 넣고 밴댕이젓, 까나리액젓, 마늘, 파, 설탕, 고추가루를 넣고 비비면서 소금으로 간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생선이 징그럽다고 하더니 맛을 보며 맛있다고 몇 번 씩 집어먹었습니다. 집에 가져갈 비닐에 순무 김치를 담고 무우청까지 달린 순무를 한 뿌리 담았습니다. 가방에 한 봉지씩을 넣고는 뿌듯해 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보니 아이들이 직접 김치 담그는 전 과정을 하는 건 좋았는데 아이들은 틈틈이 신나게 놀고 선생님들은 그릇을 씻고 뒤처리를 하느라 온종일 바빴던 것 같습니다. 고학년 아이들 몇몇이 선생님을 도와주었는데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같이해서 힘들고 어려움을 같이 느껴봐야 일의 즐거움도 고됨도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순무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1. 순무의 유래
순무는 겨자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또는 두해살이 풀로서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에서 서아시아이며 전세계에 걸쳐 넓게 재배되고 있어요. 순무가 재배된 것은 4천∼5천년 전으로 그 기원이 매우 오래된 작물의 하나예요. 중국에는 2천년의 재배역사가 있다고 하며 우리 나라에는 중국에서 건너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2∼3세기경의 기록에 이미 중요한 채소로서 남아있어요. 그래서 각지에서는 많은 독특한 품종이 생겼으며 종류로는 재래품종군, 유럽계품종군, 잡종군이 있어요. 뿌리의 색은 흰색, 담녹색, 보라색, 선홍색의 여러 가지가 있으며 일반적으로 순무는 무보다 섬유질이 적어요.
고대 이집트의 노예들이 피라미드를 쌓으면서 먹었던 식량으로 무가 나와요. 이 무가 로마와 유럽을 거쳐 영국에 들어온 것이 1548년 이후라고 전해져요. 무를 뜻하는 'Radish'는 뿌리라는 라틴어가 어원이라고도 하고, 그 뿌리 색깔이 붉다 해서 얻은 이름이라고도 해요. 이 영국의 무를 1895년 전후 강화도에 문을 연 한국 최초의 해군사관학교에 교관으로 초빙된 콜웨이 대위의 부인이 강화에 심었다고도 전해져요. 그 텃밭에 심은 영국 무가 토착화하여 강화도의 명물인 순무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한편 동양에서도 순무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순무는 옛날 중국의 제갈량이 군량미 대신 사용하였다 하여 일명 '제갈채'라고도 불리웠어요. 고대의 의서인 '향약집성방'을 근거로 이미 1,000년 전부터 순무가 약재로 이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어요. 이규보 선생의 '동국이상국집'에 무나 배추보다 먼저 순무로 장아찌를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고려시대 때부터 강화도에서 순무가 재배되었으리라는 추측도 있어요.
2. 순무의 효능
중국의 옛날 의학책인 본초강목과 우리 나라의 동의보감에 보면 '순무는 구황 식품의 하나로 숙취를 제거하고 소화를 도와주어 만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으며 눈과 귀를 밝게 하고 황달을 치료한다’고 밝히고 있어요. 덧붙여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순무는 결핵 및 호흡기 질환, 피부 질환에 탁월한 효과를 나타낼 뿐 아니라 황색 유액인 라파인(rapine)이 함유되어 기생충의 번식을 억제하는 것으로 밝혀졌어요.
순무가 더욱 주목을 받게 된 것은 항암 작용을 한다는 글루코시노레이트(glucosinolate)라는 성분 때문인데 특히 폐암 치료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어요. 또한 예로부터 민간요법에서는 종기가 난 곳에는 순무를 짓이긴 것에 소금을 약간 섞어 하루에 세 번 정도 발라주었으며, 기침이 심할 때에는 순무의 잎과 뿌리를 함께 넣고 삶아서 수시로 먹는 등 약 대신 사용했어요. 또 순무를 말렸다가 가루낸 것을 과음으로 속이 좋지 않을 때 조금씩 물에 타서 마시면 속이 편안해지며, 설사가 심할 때는 순무를 갈아 즙을 낸 다음 꿀에 타서 뜨겁게 마시면 좋다고 해요.
순무 씨로는 기름을 내는데 하루에 한 숟가락씩 먹으면 시력이 좋아진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그래서 옛날 궁녀들은 반짝이는 눈빛을 갖기 위해 이 기름을 먹었다고 해요. 이 순무 씨 기름을 얼굴에 바르면 기미와 주름 방지에 탁월한 효과를 볼 수 있으며, 머리에 바르면 새치가 생기는 걸 막을 수도 있다고 해요.
아이글
이승연(2학년)
순무를 뽑으러 강화도에 갔다. 밭에서 순무를 바로 뽑자고 올라갔다.
순무를 원래는 5개를 뽑았는데, 선생님께서 순무가 무겁다고 하시면서, 선생님이 많이 가지고 올라가시고, 우리는 2개씩 가지고 올라갔다.
순무를 뽑으면서 목사님께서는 흙을 한번 쓰다듬듯이 하니까 잘 되었는데, 우리는 흙을 힘을 줘서 파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역시 농사 일 하시는 분들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무 뽑은 것을 깨끗이 씻었다. 또 순무를 칼로 또닥또닥 썰었다.
그리고 나서 갖가지 양념을 넣고 모둠별로 김치를 담궜다. 직접 담궈보니 참 재미있었고, 친구들이랑 담그니까, 더 맛있을 것 같다.
최혜빈(2학년)
해오름에서 강화도에 가서 순무를 뽑아서 깍두기를 만들었다.
순무를 뽑을때 클 거 같아 보이는 것은 무의 줄기를 잡아서 뽑으면 된다. 나는 너무 세게 뽑아서 뒤로 자빠질 뻔 하였다.
순무는 일반 무보다 맛이 달아서 비싸고, 강화도에서만 쉽게 볼 수 있다. 깍두기를 만들때 순무를 깍두기 모양데로 썰어서 벤댕이, 마늘, 생강, 파, 고춧가루, 물 2번, 소금, 설탕을 넣어서 잘 비비면 된다. 김치를 담글 때는 배추를 절여서 만들어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깍두기는 절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깍두기는 만들고 바로 먹어도 된다. 하지만 깍두기를 더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냉장고에 넣어서 먹으면 더 맛있다. 선생님이 순무를 가지고 와서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물컹물컹 하다고 하시는데 강화도에서 만들어서 집에 가지고 와서 냉장고에 넣어 먹으면 맛있다고 하셨다. 순무의 색깔과 모양은 분홍색과 하양, 노랑색이고, 모양은 둥그런데 뿌리 때문에 조금은 뽀족한 부분이 있다. 꼭 그것 뿌리가 순무의 수염이 된 것 같았다.
예섭이는 오늘 아파서 못 왔다. 그것도 이렇게 재미있는 날에…. 오는 차안에선 졸려서 비디오 보는 시간에 잠을 잤다. 그래서 비디오를 뭐 보는 지도 몰랐다. 내 생각에는 지렁이 비디오를 보다가 땅에 관한 비디오로 바꾼 것 같았다. 순무를 먹어보니 아주 달고 맛있었다. 간을 볼 때 모두가 먹어 보았더니 무맛밖에 나지 않았다. 차에 타서 꿀떡도 먹었다.
신마적 오빠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처음엔 정말 엽기적인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무서운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 모두다 정말 재미있었다. 뒤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뒤에도 재미있는 일이 있었나보다.
처음에는 깍두기를 만들기 힘들었을 것 같았는데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순무도 우리가 썰었다. 손이 벨까봐 겁이 조금은 났다. 하지만 안전하게 썰 수 있었다. 순무를 썰을 때마다 딱딱 소리가 났다.
옛날에 어린이 난타를 본 것이 기억났다. 나도 난타를 해보고 싶었는데 칼을 가지고 장난을 하면 위험하고, 옆에 사람이 다칠까봐 하지 못하였다. 다 하고 나니 잠이 솔솔 왔다. 오늘 정말 피곤해도 재미있고, 즐거운 하루였다.
조혁주(4학년)
순무는 특별히 강화도에서만 자란다. 씨를 다른 곳에 심어봤자 자라지가 않는단다. 그래서 우리는 강화도까지 가서 순무를 뽑았다. 일인당 2∼3개 정도인데 나는 순무를 5개씩이나 뽑았다. 그 다음에는 무를 씻어야하는데 줄기와 잎은 다 떼어내고 뿌리만 씻는다. 뿌리는 원뿌리와 곁뿌리가 있고 윗부분은 보라색을 띈다.
그 다음은 잘 씻은 순무를 썰어야 한다. 난 순무를 5개씩이나 뽑았는데 2개 밖에 못 썰어서 되게 서운했다. 이제부터는 양념이다. 다진 마늘, 다진 생강, 밴댕이, 고추가루, 물, 설탕, 까나리 액젓 등 여러 가지가 들어간다. 순무에서는 물이 별로 안 나오기 때문에 물을 꼭 넣어주어야 한다. 밴댕이를 보니까 밴댕이 소갈딱지가 생각나서 그렇게 불렀다.
순무는 일반 무보다 작다. 무는 각 지방에서 다 나니까 가격이 싼데 순무는 강화도에서만 나는 것이라 대전에서 먹으려면 비싼 돈 주고 먹어야 한다.
순무는 버릴 것이 아무것도 없다. 뿌리, 씨앗, 줄기는 한약으로 쓰이고 또 뿌리는 깍두기로 해 먹기도 한다. 씨앗으로 만든 기름은 시력을 좋아지게 한다.
견주지 않고 자신의 특성대로 제 모습을 지닐 때 꽃은 그 꽃답게 순수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법정스님의 말을 떠올리며 아이들에게 자기를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데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들공부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이들도 선생님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이번에는 특히 시간을 내서 도와주신 아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 해오름 어린이 살림학교 보고서
이연희 해오름 어린이 살림학교 교사
아이들이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더 넓어지기를 바라며, 10월과 11월에 강화도로 농사체험을 다녀왔습니다. 남들은 1년 내내 땀흘리며 제 값도 안 쳐주는 농산물을 부여잡고 일하기 바쁜데, 기껏 하루 잠깐동안 일을 하는 것이 무슨 농사체험이람. 좀 염치가 없긴 하지만 온통 아스팔트 천지인 곳에서 벗어나 흙을 밟는 것만으로도 족할 아이들에게 땅 속에서 뭔가를 직접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입니다.
농촌에 몇 번 일을 하러 다녀본 적이 있는 아이들에게는 농사체험이라는 건 좀 신선한 감이 떨어지나 봅니다. 그리고 부모님 중에도 농사체험이라는 제목만 보고선 애들이 몇 번 해 봤는데 하고선 보내지 않으신 분도 계십니다. 가봤자 뻔하다는 생각이겠죠. 유치원 때 해보고 주말농장에서도 해 보고…. '그게 다 그거 아니야'라는 식으로.
하지만 '고집쟁이 농사꾼' 전우익 님은 이런 말을 합니다. 땅이라고 다 같은 땅이 아니라고. 모래땅, 진흙땅, 힘있는 땅, 힘없는 땅, 살이 깊은 땅, 얕은 땅… 그리고 그런 다양한 땅의 자기 역할이 있을진대 자기가 바라는 모과가 안 된다고 나쁜 땅이라고 해서는 안된다고 말입니다. 즉 다양한 풍토를 한 가지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자기에게 이로우면 좋은 땅이고 안 좋으면 나쁜 땅이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합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이해관계에 얽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 중심적으로만 생각해서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하나하나의 특성에 따른 그 가치를 인정하기보다는 그저 자기식 대로 평가하고 말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도 그런 면이 많습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한 번 해 본 일은 다 아는 것처럼 얘기하고, 아주 즐거웠던 기억이 있는 일 말고는 다시는 하지 않으려고, 하고 늘 새로운 일을 찾으려고 합니다. 호기심을 갖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아이들을 건강하게 하지만, 어느 하나 진득하게 하지 못하는 것은 되려 아이들을 헛똑똑이로 키우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아이들은 열심히 고구마도 캐고 순무도 뽑아보고 하면서 집에 갈 때 '어땠냐'고 물어보면 '좋은 경험이었다'고 하고 '재미있었다'고는 하지만 너무 힘들어 농촌에서는 절대로 살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발에 흙을 묻히고 사는 것이 구질맞고, 떨어내려 해도 떨어지지 않는 흙을 보며 짜증이 나고, 파리 떼도 많고 어느 것 하나 깔끔하게 정리된 게 없는 농촌을 아이들은 절대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번 씩 와서 뭘 해 보는 건 재미있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겐 놀이고 재미지요. 처절한 삶의 한 부분으로 인식되지 않습니다. 고구마 캐는 재미와 순무를 뽑는 재미 김치 담그는 재미, 하지만 그 놀이는 자기의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됐다 싶으면 그 때부터는 지겨워집니다. 그래서 대부분 농사체험을 한다고 하면 농촌에서도 애들이 뭘 한다고 하냐고 놀다 가라고 합니다. 그들에겐 아이들의 손놀림은 놀이로 비춰집니다. 분명 놀이처럼 즐겁게 하는 것도 좋지만 일은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이들의 입에서 '에구에구' 소리가 나올 때까지 일을 시켰습니다. 분명 농촌에서는 낮 시간대는 일을 하지 않지만 우리야 시간 상 어쩔 수 없어 낮에 주로 일을 하다보니 아이들이 더 지치기도 하지만 땀 흘려서 일을 해 봤습니다. 그러니 농촌에선 절대 안 산다는 얘기가 나올 만도 하지요.
요즘엔 도시의 삭막한 삶이 싫어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전원에 묻혀 한가롭고 여유있게 사는 모습이 좋고 먹을 만큼만 농사지으면 된다고 떠난답니다. 하지만 이민가서도 과외공부 시키던 버릇 못 버리고 과외 시키는 것처럼, 농촌에 가서 도시에서의 소비의 삶을 그대로 살다간 얼마 못가 다시 도시로 나오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삶의 뿌리를 바꾸는 일에는 자기와의 싸움이 만만치 않을텐데 겁 없이 도전한 셈이죠. 하지만 또 그러면서 자기를 알아가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거겠지요.
어떤 선생님은 아이들이 절대 농촌에서 살지 않겠다는 얘기를 듣고 아이들이 들공부에서 얻은 게 없고 잘못 가르친 게 아니냐고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고구마를 집에 가서 쪄 먹을 마음만 있는 아이는 눈에 고구마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고구마 잎도 보이지 않고 땅 속에 파묻힌 고구마를 어서 빨리 내 손 안에 넣는 게 급선무입니다. 그래서 고구마의 꼭지만 보이면 성급하게 호미로 찍거나 억지로 캐냅니다. 그러다 보니 땅 속에 살던 애들은 한바탕 난리가 나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전혀 모릅니다. 땅에서 살아가는 자기 보다 힘이 약한 존재를 모릅니다. 지렁이의 몸이 두 동강 나도 자기의 손에 고구마만 주어지면 만족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들이 원래 악해서 그런 게 아니라 모르는 것이지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생물, 그들도 숨을 쉬며 살까? 그들이 내가 살아가는데 어떤 관계가 있지? 우리에게 무엇을 주지? 알아도 머리 한 구석에 쳐 박혀 있다가 시험 때만 되면 자기 목적을 위해 떠올리는 지식의 한 켜로 자리하기 때문에 알고도 모르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물론 전혀 모르는 아이들도 있겠구요. 아이들에게는 농촌에서 살고 안 살고의 문제가 아니라 고구마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게 뭐고, 그 속에서 그들이 같이 살아가는 존재를 배워가는 게 들공부의 참 맛이라고 봅니다.
너무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지금껏 이런 생각들이 정착되지 못해 늘상 프로그램에만 연연했는지도 모릅니다. 저도 농촌에서 살 자신은 없으면서 아이들의 그런 솔직한 말에는 왠지 씁쓸하기도 한 게 사실입니다. 농촌 사람들은 전원주택에서 멋있게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힘들게 삽니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떠나지 못해 산다고는 하지만 땅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어 내가 있음을 알고 그런 산과 들이 있어 내가 살고 있음을 느끼는데 더 의의가 있지 않을까요? 물론 엄마에게 갖다 준다고 작은 손으로 고구마를 가방에 넣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참 예쁩니다. 그 예쁜 마음에 고구마에만 마음을 쓰지 않고 고구마 줄기도 자세히 보고 땅 속도 자세히 살피면서 대지가 주는 선물에 감사할 줄 아는 아이로 큰다면 더 좋겠지요.
1. 고구마 캐기 (10월 13일)
봄에 심은 모가 얼마나 자랐는가도 보고 메뚜기도 잡으려고 했는데, 갑작스럽게 내린 무서운 폭우로 논에 물이 차고 메뚜기는 어디론가 다 도망을 가고, 도저히 논에 들어갈 수 가 없어 고구마만 캐고 진강산에서 도토리를 줍기로 했습니다.
어렵사리 지은 농사인데 아이들이 논에 가서 벼를 봐야 된다고 차마 말을 할 수 없어 프로그램을 돌렸는데 원성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메뚜기 잡아보겠다고 들떠서 왔는데…. 선생님들도 그 무거운 후라이팬을 여러 개를 준비해 갔는데….
하는 수 없이 목사님 댁에 올라가면서 다른 논에 있는 벼를 잠시 보았습니다.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벼를 보고 아이들이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을 이해하겠다고 하더군요. 누가 그런 말을 만들어냈을까? 황금들판이라고 불릴 만큼 누런 논을 보며 아! 또 이래서 황금들판이라고 하는구나. 냄새나는 시골길을 걸으며 이 얘기 저 얘기 하다보니 목사님 댁에 다 왔습니다.
모둠을 나누고 한 고랑씩 맡아 고구마를 캤습니다. 제가 좀 늦게 밭으로 가 보니, 성미 급한 아이들은 고구마 캘 욕심에 벌써 호미로 아무 곳이나 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이 비닐과 줄기를 걷어내면 목사님을 도와 아버님들이 삽으로 땅을 파 주셨습니다. 새벽에 내린 비가 서서히 개이더니 우리가 일할 때는 한여름 땡볕 같았습니다.
땅을 파 보니 지렁이도 나오고 이름 모를 벌레들이 많았습니다. 무섭다고 도망가는 아이도 있고 신기하다고 머리 들이밀고 벌레만 보는 아이도 있고 살살 파라고 하는데도 급하게 호미를 들이대서 고구마를 파다 벌레도 죽이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몇 번 주의를 듣더니 제법 살살 잘 파냅니다. 빨간 고구마가 땅 속에서 나오니 아이들의 함성이 여기저기서 터집니다. 고구마가 제법 큰 것이 많았습니다. 살살 잘 파보니 주렁주렁 덩이뿌리가 달려나왔습니다. 신이 나서 땀을 뻘뻘 흘리며 하다가 몇 번 일해 봤다는 아이들이 "선생님, 이 고구마 밭은 다른 밭하고 달라요" 그러더군요.
무슨 말인지를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곳에서는 아이들이 고구마를 쉽게 캐 가도록 줄기를 미리 걷어내고 땅도 좀 파놓는다고 하더군요. 아니 그게 무슨 일이람. 아무튼 쉽게 일을 해 본 아이들이 힘들다고 투덜거리기 시작하니 처음 재미있게 해 보던 아이들도 힘들어하고 축축 쳐집니다. 거기다 워낙 초보 농사꾼들이라 물도 준비 안 해가고 1시간 남짓하자 힘들다고 나가 떨어지고, 목마르다고 한 두 명 빠지고 눈치만 슬슬 봅니다. 점점 하기 싫다고 투덜대는 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수확한 만큼 비용을 내기로 했기 때문에 캐낸 만큼 가져갈 수 있는데 애들은 이젠 관심 밖입니다. 집에는 그래도 좀 가져가야 할 텐데 캔 고구마가 너무 적어 선생님 한 분이 제안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캔 건 똑같이 나누고 이제부터 캔 거는 자기가 다 가져가는 거다."
그러니 갑자기 시들어가는 풀마냥 축 쳐져 있던 아이들이 밭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러더니 금새 몇 개씩을 파가지고 왔습니다. 원시시대에서 잉여농산물이 생기는 것은 아마 이랬을 것입니다. 반짝이는 눈으로 스스로 대견해 하는 아이들,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저렇게도 좋을까? 욕심이 없어서도 인생을 살아갈 수 없지만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타인에게 불이익을 줘서는 안되겠지요. 아이들이 오늘 일한 만큼만 자기 욕심을 갖고 열심히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어느 인디언 부족장의 말처럼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쌓아두고 싶어한다고 합니다. 욕심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은 너무도 많습니다. 욕심을 제어할 줄 아는 사람이 참 잘 사는 게 아닐까요?
고구마를 다 나누고 점심도 맛있게 먹고 진강산에 도토리를 주우러 갔습니다. 올해는 다른 해와 다르게 도토리가 대풍이라고 합니다. 산에 오르면 가끔 도토리를 줍게 되는데 이렇게 도토리묵을 쑤기 위해 도토리를 줍는 것은 저도 처음이었습니다. 도토리는 보통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에서 나는 열매를 통틀어 부르는 말입니다. 진강산은 워낙 상수리나무가 많은지라 한 발 떼어놓을 때마다 누군가 꼭 도토리를 뿌려놓은 듯 금새 주머니가 불룩하고 봉지에도 가득 쌓여 갔습니다. 미리 계획을 하고 왔더라면 다 다르게 생긴 도토리를 잘 관찰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돌아갈 시간이 다 되가는데 아이들은 도토리 줍기에 신이 나 있었습니다. 한 주먹 집에 가져 가봤자 아무 쓸모도 없는데 부지런히 주머니에 집어넣습니다. 목사님 사모님께서 다음에 올 때 도토리묵을 쑤어 주신다고 하셔서 다 두고 오긴 했지만요.
뭔가 수확을 하는 기쁨은 대단합니다. 하지만 좀 더 제대로 하려면 주말농장처럼 씨 뿌리고 가꾸는 전 과정을 함께 하며 그 참 맛을 느껴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은 인원에 그리고 바쁜 농가에 피해를 안 주려다 보니 실재로 더 자세히 관찰할 기회가 줄고 자꾸 수확에만 관심이 쏠리는 것 같습니다.
※ 고구마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고구마는 메꽃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에요.
우리가 먹는 고구마는 덩이뿌리입니다. 이른 봄 해가 잘 드는 곳에 구덩이를 깊게 파고 거름을 듬뿍 준 다음 고구마를 심어요. 그리고 왕겨나 짚을 덮어두면 싹이 터요. 요즘은 비닐을 덮어두기도 하지요. 4∼5월쯤 되면 줄기가 한 뼘쯤 자라나는데 이 순을 잘라서 밭에 심지요. 이렇게 고구마 순을 밭에다 심는 것을 '고구마 순낸다'고 해요. 고구마는 순을 심어야 덩이가 굵게 열립니다. 자주색 고구마 줄기는 땅 위를 이리저리 기면서 자라지요. 늦가을에 메꽃을 닮은 엷은 분홍색 꽃이 핍니다. 그러나 보통 꽃이 피기 전에 캐기 때문에 꽃을 보기는 힘들어요.
고구마는 맛이 달아서 구워 먹거나 쪄서 먹고, 연한 줄기와 잎자루는 나물로 많이 먹어요. 녹말로는 식초나 술을 빚기도 하고 엿을 고기도 해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곡식이 모자라서 감자나 고구마를 밥 대신에 먹고 자란 분들도 많아요, 그래서 고구마를 구황 식물이라고도 해요. 흉년을 이겨내는 먹을거리라는 뜻이지요.
고구마는 남아메리카 열대 지방이 원산지인데 15세기에 콜럼버스가 스페인으로 가져가서 온 유럽에 퍼뜨렸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영조 임금 때 일본에 통신사로 갔던 조엄이 가져와서 널리 길러먹기 시작했대요.
고구마는 보통 밤고구마, 물고구마가 있는데 우리가 강화도에서 캔 고구마는 물이 많은 호박고구마예요. 집에 가서 바로 쪄 먹어본 사람은 무슨 고구마 맛이 이러냐고 난리였을 거예요. 고구마는 본래 바로 쪄 먹지 않고 오래 놔둘수록 단맛이 살아난대요. 거기다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단맛이 좀 덜하다고 해요. 그러니 고구마가 아무런 맛도 없었던 거예요. 미리미리 알려줬어야 했는데 거기까지는 몰랐었네요.
그림은 고구마 잎과 줄기와 고구마가 달려 있는 사진이에요. 고구마가 워낙 커서 직접 캐면서도 뿌리 같지 않았는데 사진으로 보니 고구마가 뿌리의 한 부분인걸 알겠죠?.
아이글
김석민(1학년)
오늘 들공부에서 고구마를 캤습니다. 뿌리가 엄청 많았습니다. 짤려 있는 것도 있었고 깊게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밭에 곤충들이 많았습니다. 도롱뇽, 사마귀, 거미 등이 있었습니다.
박진아(2학년)
강화도에서 제일 먼저 고구마캐기를 했는데 도우미 아빠께서 삽으로 고구마가 있는 곳을 파 주셔서 내가 진짜 큰 고구마를 짚었다. 나느 계속 도우미 아빠를 따라다니면서
"이거? 저거?"
하고 물어봤다. 그래서 도우미 아빠가 "그만 좀 따라 다녀라."라고 해서 내가 직접 모종삽으로 파서 고구마 큰 것을 발견했다.
친구들과 선생님이 지적해 주시는 곳을 같이 파봤더니 아주 큰 고구마가 나왔다. 그리고 고구마를 상자에 다 넣은 다음에 친구들과 같이 그 상자를 들어서 다른 곳에다가 가져다 놓았다. 고구마를 5개씩 나눈 후, 밥먹으러 갔다가 다 먹고 도토리를 줍고 나서 집으로 갔다.
도토리 줍기와 고구마캐기가 정말 재미있었다.
이승연(2학년)
해오름에서 강화도에 있는 고구마밭에 갔다.
처음엔 힘들었는데, 갑자기 스피드도 붙고, 재미있었다.
또, 잘 익은 고구마를 생각하니까, 힘이 절로 났다.
고구마를 캐고 나서 도토리를 주우러 산에 갔다. 주머니에 꽉 차서 한발짝씩 걸으면 떨어지곤 했다. 그 모습이 재미있으셨는지 이연희 선생님께서 욕심많은 다람쥐 같다고 하셨다.
또 내가 열심히 하니까 엄마도 기분이 좋으신지 활짝 웃으셨다. 집에 오니 팔다리가 쑤시다고 하니까 아빠께서 어깨를 주물러 주셨다. 나는 커서도 농사일은 절대 안하고 싶다.
2. 순무로 김치 담그기 (11월 3일)
11월에 접어드니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습니다.
예전에도 순무를 한 번 뽑아 본 적이 있는데 오랜만에 다시 한번 해 보았습니다. 아이들도 많이 바뀌다 보니 순무를 캐는 일을 처음 해 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순무로 김치를 담가온다는 말에 군침이 절로 났다나요? 2학기 세 번째 들공부에 잔뜩 기대를 걸고 또 강화도로 갔습니다.
도착해서 김정택 목사님께 순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일단 순무를 잘 고르는 것부터 배웠습니다. 우선 밭고랑에 서서 순무를 찬찬히 살펴보라고 하셨습니다. 좀 큰 놈을 골라야 잘 익은 거고 더 맛있다고 하셨습니다. 고른 다음 순무 둘레의 흙을 살살 파내고 순무를 잡고 앞 뒤로 흔들어 주면 순무가 쏙 뽑힌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많아 모둠별로 밭에 들어가 순무를 뽑았습니다. 가르쳐 주신대로 눈에 띄는 큰 놈을 고르고 살살 흔들었더니 순무가 잘 뽑혔습니다. 어떤 것은 땅 깊이 박힌 듯 잘 나오지 않는 것도 있었지요. 전에 갔을 때는 비온 뒤라 순무가 썰렁할 정도로 쉽게 뽑혔는데 이번에는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두 세 뿌리씩 뽑아서 목사님 댁으로 올라와 다듬고 씻고 마루에 들어가 순무를 썰어서 김치 담글 준비를 마쳤습니다.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을 끼고 정성껏 하는 모습이 참 예쁘더군요. 누가 시키면 그렇게 신나게 할 수 있을까?
밖에서는 아빠들과 선생님들이 무청을 다듬고 아이들은 안에서 순무를 썰었습니다. 모둠별로 나누어 다 썰어보기로 했는데 처음 칼을 잡아보고 어찌 할 줄 모르다가 용기를 내서 해 보니 재미있다나요. 계속 무를 집어 먹으면서 저만 계속 하겠다고 합니다. 집에서는 위험하다고 잡아보지도 않은 칼을 잡아보더니 이젠 겁이 안나고 재미있다고 하고 난타 공연을 하자고 합니다. 겁내 하던 것에 자신의 승리감을 느낀 듯 얼굴들이 환해졌습니다.
다 썰어놓고 점심을 먹고 김치를 담갔습니다.
큰 그릇에 썰은 무와 여린 순무 이파리를 넣고 밴댕이젓, 까나리액젓, 마늘, 파, 설탕, 고추가루를 넣고 비비면서 소금으로 간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생선이 징그럽다고 하더니 맛을 보며 맛있다고 몇 번 씩 집어먹었습니다. 집에 가져갈 비닐에 순무 김치를 담고 무우청까지 달린 순무를 한 뿌리 담았습니다. 가방에 한 봉지씩을 넣고는 뿌듯해 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보니 아이들이 직접 김치 담그는 전 과정을 하는 건 좋았는데 아이들은 틈틈이 신나게 놀고 선생님들은 그릇을 씻고 뒤처리를 하느라 온종일 바빴던 것 같습니다. 고학년 아이들 몇몇이 선생님을 도와주었는데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같이해서 힘들고 어려움을 같이 느껴봐야 일의 즐거움도 고됨도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순무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1. 순무의 유래
순무는 겨자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또는 두해살이 풀로서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에서 서아시아이며 전세계에 걸쳐 넓게 재배되고 있어요. 순무가 재배된 것은 4천∼5천년 전으로 그 기원이 매우 오래된 작물의 하나예요. 중국에는 2천년의 재배역사가 있다고 하며 우리 나라에는 중국에서 건너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2∼3세기경의 기록에 이미 중요한 채소로서 남아있어요. 그래서 각지에서는 많은 독특한 품종이 생겼으며 종류로는 재래품종군, 유럽계품종군, 잡종군이 있어요. 뿌리의 색은 흰색, 담녹색, 보라색, 선홍색의 여러 가지가 있으며 일반적으로 순무는 무보다 섬유질이 적어요.
고대 이집트의 노예들이 피라미드를 쌓으면서 먹었던 식량으로 무가 나와요. 이 무가 로마와 유럽을 거쳐 영국에 들어온 것이 1548년 이후라고 전해져요. 무를 뜻하는 'Radish'는 뿌리라는 라틴어가 어원이라고도 하고, 그 뿌리 색깔이 붉다 해서 얻은 이름이라고도 해요. 이 영국의 무를 1895년 전후 강화도에 문을 연 한국 최초의 해군사관학교에 교관으로 초빙된 콜웨이 대위의 부인이 강화에 심었다고도 전해져요. 그 텃밭에 심은 영국 무가 토착화하여 강화도의 명물인 순무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한편 동양에서도 순무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순무는 옛날 중국의 제갈량이 군량미 대신 사용하였다 하여 일명 '제갈채'라고도 불리웠어요. 고대의 의서인 '향약집성방'을 근거로 이미 1,000년 전부터 순무가 약재로 이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어요. 이규보 선생의 '동국이상국집'에 무나 배추보다 먼저 순무로 장아찌를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고려시대 때부터 강화도에서 순무가 재배되었으리라는 추측도 있어요.
2. 순무의 효능
중국의 옛날 의학책인 본초강목과 우리 나라의 동의보감에 보면 '순무는 구황 식품의 하나로 숙취를 제거하고 소화를 도와주어 만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으며 눈과 귀를 밝게 하고 황달을 치료한다’고 밝히고 있어요. 덧붙여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순무는 결핵 및 호흡기 질환, 피부 질환에 탁월한 효과를 나타낼 뿐 아니라 황색 유액인 라파인(rapine)이 함유되어 기생충의 번식을 억제하는 것으로 밝혀졌어요.
순무가 더욱 주목을 받게 된 것은 항암 작용을 한다는 글루코시노레이트(glucosinolate)라는 성분 때문인데 특히 폐암 치료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어요. 또한 예로부터 민간요법에서는 종기가 난 곳에는 순무를 짓이긴 것에 소금을 약간 섞어 하루에 세 번 정도 발라주었으며, 기침이 심할 때에는 순무의 잎과 뿌리를 함께 넣고 삶아서 수시로 먹는 등 약 대신 사용했어요. 또 순무를 말렸다가 가루낸 것을 과음으로 속이 좋지 않을 때 조금씩 물에 타서 마시면 속이 편안해지며, 설사가 심할 때는 순무를 갈아 즙을 낸 다음 꿀에 타서 뜨겁게 마시면 좋다고 해요.
순무 씨로는 기름을 내는데 하루에 한 숟가락씩 먹으면 시력이 좋아진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그래서 옛날 궁녀들은 반짝이는 눈빛을 갖기 위해 이 기름을 먹었다고 해요. 이 순무 씨 기름을 얼굴에 바르면 기미와 주름 방지에 탁월한 효과를 볼 수 있으며, 머리에 바르면 새치가 생기는 걸 막을 수도 있다고 해요.
아이글
이승연(2학년)
순무를 뽑으러 강화도에 갔다. 밭에서 순무를 바로 뽑자고 올라갔다.
순무를 원래는 5개를 뽑았는데, 선생님께서 순무가 무겁다고 하시면서, 선생님이 많이 가지고 올라가시고, 우리는 2개씩 가지고 올라갔다.
순무를 뽑으면서 목사님께서는 흙을 한번 쓰다듬듯이 하니까 잘 되었는데, 우리는 흙을 힘을 줘서 파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역시 농사 일 하시는 분들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무 뽑은 것을 깨끗이 씻었다. 또 순무를 칼로 또닥또닥 썰었다.
그리고 나서 갖가지 양념을 넣고 모둠별로 김치를 담궜다. 직접 담궈보니 참 재미있었고, 친구들이랑 담그니까, 더 맛있을 것 같다.
최혜빈(2학년)
해오름에서 강화도에 가서 순무를 뽑아서 깍두기를 만들었다.
순무를 뽑을때 클 거 같아 보이는 것은 무의 줄기를 잡아서 뽑으면 된다. 나는 너무 세게 뽑아서 뒤로 자빠질 뻔 하였다.
순무는 일반 무보다 맛이 달아서 비싸고, 강화도에서만 쉽게 볼 수 있다. 깍두기를 만들때 순무를 깍두기 모양데로 썰어서 벤댕이, 마늘, 생강, 파, 고춧가루, 물 2번, 소금, 설탕을 넣어서 잘 비비면 된다. 김치를 담글 때는 배추를 절여서 만들어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깍두기는 절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깍두기는 만들고 바로 먹어도 된다. 하지만 깍두기를 더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냉장고에 넣어서 먹으면 더 맛있다. 선생님이 순무를 가지고 와서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물컹물컹 하다고 하시는데 강화도에서 만들어서 집에 가지고 와서 냉장고에 넣어 먹으면 맛있다고 하셨다. 순무의 색깔과 모양은 분홍색과 하양, 노랑색이고, 모양은 둥그런데 뿌리 때문에 조금은 뽀족한 부분이 있다. 꼭 그것 뿌리가 순무의 수염이 된 것 같았다.
예섭이는 오늘 아파서 못 왔다. 그것도 이렇게 재미있는 날에…. 오는 차안에선 졸려서 비디오 보는 시간에 잠을 잤다. 그래서 비디오를 뭐 보는 지도 몰랐다. 내 생각에는 지렁이 비디오를 보다가 땅에 관한 비디오로 바꾼 것 같았다. 순무를 먹어보니 아주 달고 맛있었다. 간을 볼 때 모두가 먹어 보았더니 무맛밖에 나지 않았다. 차에 타서 꿀떡도 먹었다.
신마적 오빠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처음엔 정말 엽기적인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무서운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 모두다 정말 재미있었다. 뒤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뒤에도 재미있는 일이 있었나보다.
처음에는 깍두기를 만들기 힘들었을 것 같았는데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순무도 우리가 썰었다. 손이 벨까봐 겁이 조금은 났다. 하지만 안전하게 썰 수 있었다. 순무를 썰을 때마다 딱딱 소리가 났다.
옛날에 어린이 난타를 본 것이 기억났다. 나도 난타를 해보고 싶었는데 칼을 가지고 장난을 하면 위험하고, 옆에 사람이 다칠까봐 하지 못하였다. 다 하고 나니 잠이 솔솔 왔다. 오늘 정말 피곤해도 재미있고, 즐거운 하루였다.
조혁주(4학년)
순무는 특별히 강화도에서만 자란다. 씨를 다른 곳에 심어봤자 자라지가 않는단다. 그래서 우리는 강화도까지 가서 순무를 뽑았다. 일인당 2∼3개 정도인데 나는 순무를 5개씩이나 뽑았다. 그 다음에는 무를 씻어야하는데 줄기와 잎은 다 떼어내고 뿌리만 씻는다. 뿌리는 원뿌리와 곁뿌리가 있고 윗부분은 보라색을 띈다.
그 다음은 잘 씻은 순무를 썰어야 한다. 난 순무를 5개씩이나 뽑았는데 2개 밖에 못 썰어서 되게 서운했다. 이제부터는 양념이다. 다진 마늘, 다진 생강, 밴댕이, 고추가루, 물, 설탕, 까나리 액젓 등 여러 가지가 들어간다. 순무에서는 물이 별로 안 나오기 때문에 물을 꼭 넣어주어야 한다. 밴댕이를 보니까 밴댕이 소갈딱지가 생각나서 그렇게 불렀다.
순무는 일반 무보다 작다. 무는 각 지방에서 다 나니까 가격이 싼데 순무는 강화도에서만 나는 것이라 대전에서 먹으려면 비싼 돈 주고 먹어야 한다.
순무는 버릴 것이 아무것도 없다. 뿌리, 씨앗, 줄기는 한약으로 쓰이고 또 뿌리는 깍두기로 해 먹기도 한다. 씨앗으로 만든 기름은 시력을 좋아지게 한다.
견주지 않고 자신의 특성대로 제 모습을 지닐 때 꽃은 그 꽃답게 순수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법정스님의 말을 떠올리며 아이들에게 자기를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데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들공부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이들도 선생님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이번에는 특히 시간을 내서 도와주신 아버님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