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계절학교 나눔터
음음 음음음 나는 행복해
- 제 9회 여름학교
이연희 | 해오름 어린이 살림학교 교사
새들이 노래 부르네 아침이 왔다고
삘릴리 삘리 쫑쫑쫑 맑은 새소리
오늘도 노래 부르네 즐거운 하루
음음 음음음 나는 행복해
깊은 들숨과 날숨으로 여름학교를 돌아봅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빛을 담은 소나무와 은행나무 아래 평상에서 리코더를 불고 있으면 어느새 뻐꾹새가 와서 화답해 주던 6월의 여름학교 교사연수부터 새록새록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두 달 남짓 어려운 시간을 내서 리코더를 익히고 표현율동을 몸에 실어내며 하나씩 여름학교를 준비하며 마음을 모아 온 살림학교 선생님들의 열정 어린 모습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아름다움을 느껴보고 그 속에서 자기를 만나는 경험은 자신의 내면을 아름답게 만들기도 하지만, 세상에 대한 관심과 생명력을 얻게 하는 바탕이 되기도 합니다.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일은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자기 자신의 몫일 테지만, 특히 아이들은 어른이나 교사에게서 느끼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며 그 느낌을 차츰 자기 것으로 만들어갑니다. 이 경험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스스로 자기의 의지를 갖고 아름다움 속에 자신을 담아내고 그것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 갈 때 비로소 그 느낌과 생각들이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남게 됩니다.
이번 여름학교에서는 리코더에 자기 내면의 소리를 담아 보고, 아름다운 선율에 맞춰 몸을 움직이면서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상 속에 함께 행복해지는 여름날을 꿈꾸었습니다. 짧은 여름학교지만 다양한 경험들 속에서 아이들에게 삶의 크고 밝은 빛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름학교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올해부터는 '우리 학교'를 쓸 수 있다는 설렘으로 '금평분교'에서 처음 치르는 여름학교라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그보다 '우리들의 새로운 터전'이 생겼다는 신바람만 안고 한없이 들떠 있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강당, 모둠방, 주방도 새로 꾸며야 하고 물놀이 장소도 새로 알아봐야 하고 학교 주변도 아이들의 자유로운 활동에 뒷받침되어야 하고…. 여름학교가 열릴 시간이 가까이 올수록 왜 그렇게 준비할 게 많은지 미처 새로 시작하는 보금자리에 대해 세세하게 신경을 쓰지 못한 탓에 막상 여름학교 전날 10여명이나 되는 준비 팀은 하루 전에 가서 몇 년 묵은 쓰레기 더미를 치우는 것에 온 힘을 다 써 버려 여름학교 내내 후유증을 앓아야 했습니다. 오는 날까지 설거지에 매달려 전체 사진도 찍지 못하고 2차를 마무리하고 서울로 돌아오며 진행 팀 모두가 파김치가 되어 버스에 젖은 이불처럼 뉘어져 있던 일이 떠오릅니다.
여름학교는 우리에게 많은 기쁨과 슬픔을 주었습니다.
몇 년만에 훌쩍 커서 "선생님, 저 알아보시겠어요?" 멀찍이서 웃으면서 다가오는 혜주를 보며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엄마에게 꼭 해오름에 보내달라고 졸라서 왔다는 재진이도 선생님들에게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몇 년씩 외도(?)를 하다 오는 아이들의 입에서 한결 같이 들리는 소리는 해오름은 편하다고 합니다.
이 편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이들에게는 해오름이 쉼터와 같다고 합니다. 어떤 부모님의 표현을 빌자면 '한 학기 동안의 스트레스를 풀고 새학기에 또 쥐어짤 준비를 한다'고도 하지만 놀고 싶어도 놀지 못하는 아이들,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어도 하늘 한번 맘껏 보지 못하게 쫓겨만 사는 아이들에게 살림학교는 하나의 희망으로 자리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1주일 내내 지친 모습으로 아이들의 얼굴을 제대로 익히지도 못하고 가까이 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연수를 하면서 고민하고 준비해간 보따리를 채 풀어내지도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마음을 쓴 것은 아닌지 씁쓸하기만 합니다.
계절학교를 할 때마다 많이 배우고 오지만 이번에는 특히 세상살이를 많이 배웠습니다.
죽을 때까지 배움의 길을 간다고 하지만 참 어렵습니다.
한참 바쁜 농사철에 주방에서 일할 아줌마를 구해 달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철부지 같은 생각이었는지 서울에 와서야 알았습니다. 뭐가 중심이고 뭐가 부차적인 것인지 판단하는 것과 물질과 정신의 세계를 스스로 조율해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실하게 깨닫고 왔습니다. 차분히 여름학교의 나날을 되새겨 봅니다.
아이들의 밝은 기운이 금평분교를 일깨운 날
감자밭에 갈 때마다 뱀을 만났기 때문에 뱀이 아주 많을 것 같았는데 아이들 소리에 뱀들도 그렇게 예쁘게 노래하던 새들도 모두 멀리 떠난 듯 했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지 오랜 낡은 분교를 해오름 아이들이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운동장으로 모둠방으로 쓰인 교실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습니다.
아이들과 한 자리에 모여 새로운 노래도 부르고 인사를 했습니다. 선생님들이 미리 만들어간 리코더집을 예쁘게 꾸며 3일 내내 리코더를 잘 감싸 안았습니다. 늘 계절학교에 올 때마다 만들어 가는 공책인데 이번에도 흐름꼴을 더 잘 그려보기 위해 큼지막하게 만들었습니다. 저학년이나 고학년이나 잘 안 되는 바느질, 한 땀 한 땀 떠가면서 모양을 갖춰 가며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내가 만든 공책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들숨과 날숨을 토해 내는 결과물이 되었습니다.
몇 해 동안 고민하며 발도르프 학교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참으로 가슴에 와 닿은 점은 아이들 성장의 흐름에 교육의 기본 바탕을 둔다는 점이었습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든 아이들이 같이 어우러지지만 저마다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움이 있고, 또 개개인마다 느끼는 느낌과 감정이 다 다를 텐데 대부분 그 동안 별 차별성 없이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고민을 하고, 프로그램도 각각이 따로 독립되어 있되 전체 흐름 속에서 호흡과 리듬을 익히고 충분히 느껴보도록 표현율동, 흐름꼴 그리기, 리코더로 오음계 곡 같이 연주하기, 빛칠하기, 발표하기 등 차츰 축적이 되는 형태로 프로그램을 구성했습니다.
1∼2학년 아이들의 활동
7∼9살까지의 아이들은 아직 대지(현실)에 발을 딛고 선 존재가 아닙니다. 상상의 동화나 우화, 전설 같은 것을 듣고 현실세계와 구별을 못하고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아이들은 표현율동 시간에 '나는 땅을 봅니다. 나는 하늘을 봅니다. 나는 세상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라는 기본동작으로 마음을 모읍니다. 하늘에서 내려와 첫 발을 내딛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걷습니다. 몸의 중심을 느껴보고 세상 속에 나를 바로 세우기 위한 걸음으로 선생님을 따라 아주 조용히 한 걸음씩 뗍니다.
학교에 들어오기 전에는 아이들은 노래할 때 상당히 숨이 가쁩니다. 노래를 배워가면서 그 전의 숨 가쁨에서 벗어나 호흡곡선이 길어지게 됩니다. 땅과 하늘의 소리를 맞아들이고 시작과 끝이 없는 것 같은 오음계를 배웠습니다. 반음이 없는 오음계는 스스로 만들어낸 모든 소리를 긍정하며, 자연스럽게 아이들 내면에 스며듭니다. 아직 손에 익숙하지 않지만 리코더에 흥미가 있는 아이들은 틈만 나면 리코더를 가르쳐 달라고 조릅니다. 영 맘이 내키지 않는 아이들은 제 손이 움직이는 것보다는 다른 친구들이 부는 소리를 못 들은 척하고 듣습니다. 빛칠하기를 처음 해 본 아이들은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꿈을 꾸듯 붓을 놀립니다.
한 어린 천사가 이 세상에 만날 부모에 관한 꿈을 꾸었으며 큰 천사로부터 무지개다리를 건너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습니다. 이때 큰 천사는 어린 천사가 돌아올 때까지 안전하게 어린 천사의 날개를 보관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어린 천사는 마침내 날개를 뒤에 남겨 둡니다.
그런 다음 어린 천사는 수많은 색의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를 건너는데 그 기간은 바로 이 세상의 계절이 세 번 바뀌는 기간입니다.
천사가 눈을 떠보면 거기에는 꿈속에서 보았던 아주 친절한 마음을 가진 사랑이 많은 여자와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 어린 천사는 자기가 이 세상에서 자기 집을 잘 찾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늘에서 천사의 날개를 잠시 맡겨놓고 무지개다리를 타고 내려와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이야기는 어른인 제가 들어도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발표 시간에는 모둠 아이들이 큰 원을 만들어 하나가 되어보기도 하고 짧은 손가락으로 간신히 한 구멍씩만 막아 아름다운 오음계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3∼4학년 아이들의 활동
이제 아이들은 전체로서의 세계가 세분화되고 각 부분마다 다르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됩니다. 아름답고 아름답지 못한 것에 대한 자기 판단이 서고 어른이 자기보다 못하다고 판단하면 종종 어른세계를 비판의 눈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호흡의 리듬과 맥박의 규칙성을 동시에 경험하면서 노래의 빠르기, 호흡, 조절, 흐름을 통해 맥박의 리듬을 느낄 줄 압니다.
1∼2학년이 했던 것처럼 "나는 땅을 봅니다. 나는 하늘을 봅니다. 나는 세상에 중심에 서 있습니다."라는 표현율동을 시작으로 3∼4학년에 맞는 표현율동을 했습니다. 손, 발 박자 옮기기, 박자 치기, 박자 나누어 치기를 하면서 손과 발에 호흡을 옮겨보고 내 호흡에 따라 몸을 움직여 보고 음악에 내 호흡을 실어 보기도 하였습니다.
리코더를 불면서 땅과 하늘의 소리 맞아들여 나와 세상이 조화롭게 만나는 것을 느껴보고 1∼2학년이 했던 오음계를 통해 자신의 소리를 내 봅니다. 한음씩 음의 색깔을 느껴보고 이야기를 만들면서 7음계 노래와 돌림노래를 배웠습니다. 빨강, 노랑, 파랑색으로 빛칠하기를 하며 나와 세상의 들숨과 날숨을 느끼며 조화로움을 찾아보았습니다.
경쾌하고 빠른 리듬에 흠뻑 빠져드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직 1∼2학년의 상태를 못 벗어난 듯 표현율동의 원과 네모 안으로 전혀 들어오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또 아이들의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성장의 역동성을 스스로 주체 못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아주 단순한 것에서도 뭔가를 배운다는 것은 잠깐 동안만이라도 집중과정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축구 외에는 온통 관심이 없는 아이들, 프로그램이 전혀 무색하듯 따로 노는 아이들에게는 아주 천천히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부터 차분히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5∼6학년 아이들의 활동
근육조직이 뚜렷해지고 뼈대가 단단해지는 시기입니다. 점차 추상적 개념에 대한 이해가 생겨납니다. 세계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이 생기고 기쁨과 사랑, 슬픔과 분노가 늘어납니다. 세계와 삶에 대하여 자기 판단이 생기고 비판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교사는 밝고 어두움, 기쁨과 슬픔을 충분히 느껴 스스로 조정능력을 갖추어 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표현율동 시간에 음악을 듣고 형태를 그려 보았습니다. 5∼6학년 아이들도 모두 1∼2학년이 했던 것처럼 "나는 땅을 봅니다. 나는 하늘을 봅니다. 나는 세상에 중심에 서 있습니다."라는 표현율동을 시작으로 5,6학년에 맞는 표현율동을 했습니다. 리코더 연주도 땅과 하늘의 소리 맞아들이기를 시작으로, 5음계를 통해 자신의 소리내기, 음을 이미지화하기 활동과 함께 차분하고 밝은 느낌의 노래를 리코더로 연주했습니다. 나의 몸짓과 소리를 통해 내 안의 나를 밖으로 드러내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진지하게 잘 따라와 주었습니다.
올해는 특히 해오름에서 유치원 때부터 오랫동안 해오름에 머물러 있던 아이들이 이제 고학년이 되어 의젓한 모습으로 성장한 듯 스스로 프로그램을 잘 풀어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같은 학년이어도 너무 빨리 커버린 아이들이나 기질에 따라서 해오름의 흐름을 잘 따라 오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천천히 스스로 과정을 즐기게 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찾아가는 활동은 아이들의 무한한 잠재력으로 남아 훗날 사춘기 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맬 때 자신을 붙들어 맬 수 있는 버팀목이 될 것 있습니다.
2박 3일 동안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뛰어 다닙니다. 학교가 커서 한 바퀴만 돌아도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1, 2학년 어린 아이들 몇 명은 계속 손수레를 끌고 다닙니다. 한 사람이 끌고 뒤에서는 밀고 몇 명은 타고 있고…. 내게 조금만 움직일 힘이 있었으면 같이 밀고 끌고 했을 텐데 그저 아이들 놀이에 구경꾼이 되었습니다. 그냥 구경꾼이 아니라 나이가 든 할머니 같습니다. 그저 아이들 노는 것을 보면서 흐뭇해하는 어느 맘 좋은 할머니 같습니다.
봄에 심은 감자도 캐고 감자부침, 감자 삶은 것, 샐러드, 닭 요리에 감자… 계속 감자 일색입니다. 감자, 감자… 모둠 아이들 중에 '불량 감자'가 생각납니다. 버스에서 처음 만난 사이인데 아주 오랜 친구 같은 아이들입니다. 모두에게 환한 웃음을 안겨준 아주 귀여운 친구들이 다음 겨울학교에도 또 오기를 기대합니다.
첫날밤에는 백현진 선생님과 안정희 선생님과 이주영 선생님이 고운 목소리로 들려준 색깔 이야기와 진주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며 슬라이드를 보았습니다. 환한 빛이 꺼지면 별빛이 쏟아지는 하늘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빛과 어둠이 있음으로 해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아이들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을까? 마음에 심어진 씨앗처럼 고이 간직되었을 것입니다.
1차 때는 비가 안 와서 잊지 못할 추억의 한 장면이라고 하는 트럭타기를 할 수 있었죠. 위험할 정도로 깊은 물에서 물놀이를 하다 저녁 무렵에야 돌아왔습니다. 2차 때는 둘째 날 하루 온종일 비가 와서 강당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땀을 흠뻑 흘리며 또랑물, 올챙이 노래에 맞춘 율동, 도깨비씨름, 쿵쿵짝 등 전체가 한데 어우러져 신나게 웃고 놀았습니다.
마지막 날 아침해가 높이 솟아오르자 아이들은 비가 와서 못 캔 감자도 캐고 동네 한 바퀴 트럭을 타고 옆 개울가에서 잠시 놀았습니다. 2차 아이들이 물놀이 못한 아쉬움은 아마 한이 되어 오뉴월에 서리를 내리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에는 비가 오면 물놀이를 못하는 것에 미리 도장을 받기라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비가 오는데도 왜 물놀이를 안 가냐고 합니다. 그냥 우기는 걸까? 생각이 없는 걸까? 우습기도 하지만 좀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1학년도 아니고 5, 6학년들도 그러니까….
그래서 결국 물놀이 대신 비를 맞으며 축구를 하고 말타기도 했습니다. 물, 불, 흙, 공기만 있으면 아이들은 다른 놀잇감이 필요 없다고 합니다. 그저 자연에서 있으면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놀잇감입니다. 늘 하는 얘기지만 아이들에게 놀 시간과 공간을 주세요.
하나에서 열까지 시간 계획표에 맞춰 아이들을 몰지 말고 스스로를 세워 가는 아이들을 믿는 어른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좀 더 세상을 빨리 경험하기를 바랬을까? 보행기에 태워져 남에 의해 설 수 있었던 아이들은 홀로서기를 오롯이 경험하지 못해 어떤 일에도 의존을 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거의 다 보행기에서 서기를 경험한 아이들입니다.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어려움을 참고 견디고 스스로 일어서는 내면의 강한 힘을 갖는 아이들로 성장하는데 힘이 되어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끊임없이 자신의 성장을 일구어내는 교사일 것입니다.
더운 여름날 가정 일을 마다하고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아이들과 한 여름을 함께 하신 모둠교사와 진행교사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번 겨울학교에서는 밥도 제 시간에 나오고 여유 있게 차 한잔 하면서 아이들과 담소를 나눌 수 아늑한 학교를 만들 꿈을 꾸어봅니다.
해오름 살림학교 아이들에게
백현진 선생님
도담아! 소연아! 해림아! 다솜아! 예진아! 경무야! 문식아! 해오름 살림학교에 다녀와서 모두 잘 지내지?
난 살림학교에서 돌아온 뒤 며칠 동안 너희들 모습이 자꾸 떠오르더구나. 마치 살림학교에서 함께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내 옆에 너희들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살았단다.
살림학교에서 처음 만났는데도 금방 친해져서 항상 재잘거리던 소연이와 예진이, 처음에는 입을 꼭 다물고 있어서 말 안하고 있기도 힘들겠다며 핀잔을 들었던 도담이와 다솜이는 돌아올 때쯤에야 감추어진 모습이 드러나면서 무척 다정 다감한 모습을 보여주었지.
해림아! 해림이는 붙임성이 좋아 여기 저기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남자 아이들과도 친근하게 지내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지. 문식이와 경무는 많은 여자아이들 틈에서도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너무나 활발하게 활동을 하여 마음이 뿌듯하였단다.
살림학교에서 생활하는 내내 난 '음음~ 음음음~ 나는 행복해' 를 부르며 다녔단다.
이번 주제가 나를 위해 있는 것 같았어. 그건 다 너희들 덕분이지.
리코더를 불려고, 운동장 끄트머리로 평상을 옮기고 둘러앉아 '시라솔미레, 레미솔라시'를 부르며 화음을 맞출 때부터 우리 모둠의 화합은 이루어졌었지. 표현 율동을 할 때, 너희들의 진지한 표정은 몸을 통해 느끼는 감동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단다. 빛칠하기를 할 때, 너희만의 빛깔로 나타내는 너희의 색은 하나하나가 다름을 느끼게 하고, 또 모두의 마음이 조금씩은 닮아 있다는 것이 보이더구나.
아마 세상을 살아가는 길은 서로 다르지만 서로가 원하는 삶은 닮았기 때문이겠지.
노랑과 파랑을 가지고 했던 기쁨과 빨강과 노랑색을 가지고 했던 고민과 갈등. 마지막 정리 시간에 다른 아이들이 보고는 '희망'같다는 말을 하자 도담이가 "우리는 슬픔을 표현했는데…." 그랬지. 그래, 슬퍼하고 화를 내고 갈등하고 고민하는 모든 것들은 희망을 위해서 그런 거야. 슬픔이 극복되어 희망으로 가는 모습이 너희들 그림 속에 나타났었나봐.
물놀이하러 갔던 계곡은 참 넓고도 시원하더구나. 너희는 지칠 줄 모르고 물을 뿌려대며 즐거워하였지. 또 발표회 때 말이야. 우린 노래, 리코더 불기, 표현율동을 다 하였는데, 난 리코더 불때 어찌나 떨리던지 글쎄 틀렸지 뭐니! 우리끼리 할 때는 잘 했는데 말야.
그러자 소연이가 "전 선생님 보고 따라했는데요, 어쩌죠." 그랬지.
하지만, 좀 틀리면 어떠니! 우리가 한 것을 그대로 보여주면 되는 것이지.
우리들의 표현율동은 정말 이연희 선생님 말씀대로 '예술'이었어. 음악을 듣고 몸으로 표현하는 너희들의 진지한 표정은 정말 굉장했지. 많은걸 하고 놀았는데 가장 생각나는 것은 수건돌리기야. 두 바퀴 돌고 앉는다는 규칙을 정했을 때 내가 걸려서 '가마솥에 누룽지'를 등에 흠뻑 받았는데 복수를 하기도 전에 징소리가 울려서 무척 아쉬웠지. 어찌나 수건돌리기를 많이 했던지 밑에 깔아 놓았던 돗자리가 찢어져 테이프로 붙여놓기는 했는데 2차 모둠에게 조금 미안하였단다.
즐겁게 놀고 활동을 하면서 지낸 해오름 살림학교. 며칠동안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라'반 친구들 정말 고마워. 아주 건강하게, 그리고 씩씩하게 잘 지내다가 겨울학교에서 다시 만나자!
해오름 살림학교 아이들에게
이주영 선생님
지난 수요일 우리 친구들과 만났구나. 지금이 밤 10시가 다 되어 가는데, 지난주에 슬라이드를 보는 친구들에게 쉰 목소리로 책을 읽고 주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치?
자그마하고 올망졸망한 친구들 눈빛이 떠오른다. 9명의 친구들 이름을 외우느라 더듬거릴 때마다 웃던 모습도 떠오르고. 유난히 비슷한 이름이 많아서 상우, 종우, 성우, 하민, 자민, 호철, 성원, 혜린, 선영… 솔직히 너희들도 둘째 날에도 '쟤 이름이 뭐예요?'하고 물었는데 기억나니?
2박 3일 동안 나는 원없이 놀았는데 우리 친구들은 어땠니? '친구들아 이거 하자' 하면 군소리 없이 다가와서 같이 어울렸던 친구들이 참 기특하고 대견했단다. 성우랑 성원이가 안 보이면 감자 모둠(도 모둠) 가서 보면 있고, 종우랑 자민이는 쉼 없이 바쁘게 움직이면서 모둠방을 지켰고 헤린이, 선영이는 짖궃은 친구들과 섞여 놀면서 투정 부릴 일도 있었다. 하민이는 쉼없이 리코더를 불고 결국 우린 하민이가 완주한 곡을 원없이 들었잖니. 호철이랑 상우도 처음엔 어색해 하다가 둘이서 표현 율동 시간엔 방정맞은 천사 모습도 보여줬지?
냄새나는 화장실을 잘도 참고 왔다 갔다하고 좀 늦은 밥 시간에도 짜투리 시간만 나면 우리 친구들은 놀았던 것 같다. 박쥐와 나방, 수건 돌리기, 봉숭아 꽃물 들이기, 풀피리, 바랭이로 우산 만들기, 임정아 선생님과 함께 한 콩심어라 놀이, 1부터 11까지 완성하기 등등. 리코더를 불때 손가락이 잘 안 잡혀서 같은 '시' 음도 다 달랐지? 또 친구들이 냈던 새 소리 기억나니? 산새, 뻐꾸기, 딱따구리…. 마치 너희들이 조잘대던 소리 같더구나. 무지개 다릴 이야길 듣고는 엄마에게 물어봐야겠다고 했는데 엄마에게 물어봤니?
쓰고 그리는 게 익숙치 않아 리코더집이 뽀얗던, 그래도 늘 웃음을 달고 다닌 상우.
뭘 해도 물어보던 그리고 내키지 않아도 큰 눈 한번 마주치면 꿋꿋이 해내던 호철이.
처음엔 어색해 하다 친구들과 장난도 치고 받던 하민이.
'선생님 저 리코더 못 불어요' 하더니 '피어납니다'를 끝까지 분 선영이.
'물놀이 언제 해요?' 그러다 트럭 타고 신이난 성원이.
가끔 조절 못하는 바쁜 몸놀림으로 친구를 울렸던 종우.
피곤함에 코피가 나서 놀래키고 내 배를 베개삼아 잠든 자민이.
감자 챙기랴 모둠오랴 바빴던 성우.
평화놀이를 기쁘게 해준 혜린이.
모두모두 보고싶습니다!
내가 제대로 챙기지 않아 친구들에게 해오름 인터넷 주소도 안 가르쳐 주고. 친구들아 미안하다. 얼마 안 남은 방학 잘 보내고 우리 또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잘 지내.
- 제 9회 여름학교
이연희 | 해오름 어린이 살림학교 교사
새들이 노래 부르네 아침이 왔다고
삘릴리 삘리 쫑쫑쫑 맑은 새소리
오늘도 노래 부르네 즐거운 하루
음음 음음음 나는 행복해
깊은 들숨과 날숨으로 여름학교를 돌아봅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빛을 담은 소나무와 은행나무 아래 평상에서 리코더를 불고 있으면 어느새 뻐꾹새가 와서 화답해 주던 6월의 여름학교 교사연수부터 새록새록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두 달 남짓 어려운 시간을 내서 리코더를 익히고 표현율동을 몸에 실어내며 하나씩 여름학교를 준비하며 마음을 모아 온 살림학교 선생님들의 열정 어린 모습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아름다움을 느껴보고 그 속에서 자기를 만나는 경험은 자신의 내면을 아름답게 만들기도 하지만, 세상에 대한 관심과 생명력을 얻게 하는 바탕이 되기도 합니다.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일은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자기 자신의 몫일 테지만, 특히 아이들은 어른이나 교사에게서 느끼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며 그 느낌을 차츰 자기 것으로 만들어갑니다. 이 경험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스스로 자기의 의지를 갖고 아름다움 속에 자신을 담아내고 그것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 갈 때 비로소 그 느낌과 생각들이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남게 됩니다.
이번 여름학교에서는 리코더에 자기 내면의 소리를 담아 보고, 아름다운 선율에 맞춰 몸을 움직이면서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상 속에 함께 행복해지는 여름날을 꿈꾸었습니다. 짧은 여름학교지만 다양한 경험들 속에서 아이들에게 삶의 크고 밝은 빛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름학교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올해부터는 '우리 학교'를 쓸 수 있다는 설렘으로 '금평분교'에서 처음 치르는 여름학교라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그보다 '우리들의 새로운 터전'이 생겼다는 신바람만 안고 한없이 들떠 있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강당, 모둠방, 주방도 새로 꾸며야 하고 물놀이 장소도 새로 알아봐야 하고 학교 주변도 아이들의 자유로운 활동에 뒷받침되어야 하고…. 여름학교가 열릴 시간이 가까이 올수록 왜 그렇게 준비할 게 많은지 미처 새로 시작하는 보금자리에 대해 세세하게 신경을 쓰지 못한 탓에 막상 여름학교 전날 10여명이나 되는 준비 팀은 하루 전에 가서 몇 년 묵은 쓰레기 더미를 치우는 것에 온 힘을 다 써 버려 여름학교 내내 후유증을 앓아야 했습니다. 오는 날까지 설거지에 매달려 전체 사진도 찍지 못하고 2차를 마무리하고 서울로 돌아오며 진행 팀 모두가 파김치가 되어 버스에 젖은 이불처럼 뉘어져 있던 일이 떠오릅니다.
여름학교는 우리에게 많은 기쁨과 슬픔을 주었습니다.
몇 년만에 훌쩍 커서 "선생님, 저 알아보시겠어요?" 멀찍이서 웃으면서 다가오는 혜주를 보며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엄마에게 꼭 해오름에 보내달라고 졸라서 왔다는 재진이도 선생님들에게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몇 년씩 외도(?)를 하다 오는 아이들의 입에서 한결 같이 들리는 소리는 해오름은 편하다고 합니다.
이 편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이들에게는 해오름이 쉼터와 같다고 합니다. 어떤 부모님의 표현을 빌자면 '한 학기 동안의 스트레스를 풀고 새학기에 또 쥐어짤 준비를 한다'고도 하지만 놀고 싶어도 놀지 못하는 아이들,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어도 하늘 한번 맘껏 보지 못하게 쫓겨만 사는 아이들에게 살림학교는 하나의 희망으로 자리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1주일 내내 지친 모습으로 아이들의 얼굴을 제대로 익히지도 못하고 가까이 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연수를 하면서 고민하고 준비해간 보따리를 채 풀어내지도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마음을 쓴 것은 아닌지 씁쓸하기만 합니다.
계절학교를 할 때마다 많이 배우고 오지만 이번에는 특히 세상살이를 많이 배웠습니다.
죽을 때까지 배움의 길을 간다고 하지만 참 어렵습니다.
한참 바쁜 농사철에 주방에서 일할 아줌마를 구해 달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철부지 같은 생각이었는지 서울에 와서야 알았습니다. 뭐가 중심이고 뭐가 부차적인 것인지 판단하는 것과 물질과 정신의 세계를 스스로 조율해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실하게 깨닫고 왔습니다. 차분히 여름학교의 나날을 되새겨 봅니다.
아이들의 밝은 기운이 금평분교를 일깨운 날
감자밭에 갈 때마다 뱀을 만났기 때문에 뱀이 아주 많을 것 같았는데 아이들 소리에 뱀들도 그렇게 예쁘게 노래하던 새들도 모두 멀리 떠난 듯 했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지 오랜 낡은 분교를 해오름 아이들이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운동장으로 모둠방으로 쓰인 교실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습니다.
아이들과 한 자리에 모여 새로운 노래도 부르고 인사를 했습니다. 선생님들이 미리 만들어간 리코더집을 예쁘게 꾸며 3일 내내 리코더를 잘 감싸 안았습니다. 늘 계절학교에 올 때마다 만들어 가는 공책인데 이번에도 흐름꼴을 더 잘 그려보기 위해 큼지막하게 만들었습니다. 저학년이나 고학년이나 잘 안 되는 바느질, 한 땀 한 땀 떠가면서 모양을 갖춰 가며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내가 만든 공책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들숨과 날숨을 토해 내는 결과물이 되었습니다.
몇 해 동안 고민하며 발도르프 학교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참으로 가슴에 와 닿은 점은 아이들 성장의 흐름에 교육의 기본 바탕을 둔다는 점이었습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든 아이들이 같이 어우러지지만 저마다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움이 있고, 또 개개인마다 느끼는 느낌과 감정이 다 다를 텐데 대부분 그 동안 별 차별성 없이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고민을 하고, 프로그램도 각각이 따로 독립되어 있되 전체 흐름 속에서 호흡과 리듬을 익히고 충분히 느껴보도록 표현율동, 흐름꼴 그리기, 리코더로 오음계 곡 같이 연주하기, 빛칠하기, 발표하기 등 차츰 축적이 되는 형태로 프로그램을 구성했습니다.
1∼2학년 아이들의 활동
7∼9살까지의 아이들은 아직 대지(현실)에 발을 딛고 선 존재가 아닙니다. 상상의 동화나 우화, 전설 같은 것을 듣고 현실세계와 구별을 못하고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아이들은 표현율동 시간에 '나는 땅을 봅니다. 나는 하늘을 봅니다. 나는 세상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라는 기본동작으로 마음을 모읍니다. 하늘에서 내려와 첫 발을 내딛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걷습니다. 몸의 중심을 느껴보고 세상 속에 나를 바로 세우기 위한 걸음으로 선생님을 따라 아주 조용히 한 걸음씩 뗍니다.
학교에 들어오기 전에는 아이들은 노래할 때 상당히 숨이 가쁩니다. 노래를 배워가면서 그 전의 숨 가쁨에서 벗어나 호흡곡선이 길어지게 됩니다. 땅과 하늘의 소리를 맞아들이고 시작과 끝이 없는 것 같은 오음계를 배웠습니다. 반음이 없는 오음계는 스스로 만들어낸 모든 소리를 긍정하며, 자연스럽게 아이들 내면에 스며듭니다. 아직 손에 익숙하지 않지만 리코더에 흥미가 있는 아이들은 틈만 나면 리코더를 가르쳐 달라고 조릅니다. 영 맘이 내키지 않는 아이들은 제 손이 움직이는 것보다는 다른 친구들이 부는 소리를 못 들은 척하고 듣습니다. 빛칠하기를 처음 해 본 아이들은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꿈을 꾸듯 붓을 놀립니다.
한 어린 천사가 이 세상에 만날 부모에 관한 꿈을 꾸었으며 큰 천사로부터 무지개다리를 건너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습니다. 이때 큰 천사는 어린 천사가 돌아올 때까지 안전하게 어린 천사의 날개를 보관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어린 천사는 마침내 날개를 뒤에 남겨 둡니다.
그런 다음 어린 천사는 수많은 색의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를 건너는데 그 기간은 바로 이 세상의 계절이 세 번 바뀌는 기간입니다.
천사가 눈을 떠보면 거기에는 꿈속에서 보았던 아주 친절한 마음을 가진 사랑이 많은 여자와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 어린 천사는 자기가 이 세상에서 자기 집을 잘 찾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늘에서 천사의 날개를 잠시 맡겨놓고 무지개다리를 타고 내려와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이야기는 어른인 제가 들어도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발표 시간에는 모둠 아이들이 큰 원을 만들어 하나가 되어보기도 하고 짧은 손가락으로 간신히 한 구멍씩만 막아 아름다운 오음계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3∼4학년 아이들의 활동
이제 아이들은 전체로서의 세계가 세분화되고 각 부분마다 다르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됩니다. 아름답고 아름답지 못한 것에 대한 자기 판단이 서고 어른이 자기보다 못하다고 판단하면 종종 어른세계를 비판의 눈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호흡의 리듬과 맥박의 규칙성을 동시에 경험하면서 노래의 빠르기, 호흡, 조절, 흐름을 통해 맥박의 리듬을 느낄 줄 압니다.
1∼2학년이 했던 것처럼 "나는 땅을 봅니다. 나는 하늘을 봅니다. 나는 세상에 중심에 서 있습니다."라는 표현율동을 시작으로 3∼4학년에 맞는 표현율동을 했습니다. 손, 발 박자 옮기기, 박자 치기, 박자 나누어 치기를 하면서 손과 발에 호흡을 옮겨보고 내 호흡에 따라 몸을 움직여 보고 음악에 내 호흡을 실어 보기도 하였습니다.
리코더를 불면서 땅과 하늘의 소리 맞아들여 나와 세상이 조화롭게 만나는 것을 느껴보고 1∼2학년이 했던 오음계를 통해 자신의 소리를 내 봅니다. 한음씩 음의 색깔을 느껴보고 이야기를 만들면서 7음계 노래와 돌림노래를 배웠습니다. 빨강, 노랑, 파랑색으로 빛칠하기를 하며 나와 세상의 들숨과 날숨을 느끼며 조화로움을 찾아보았습니다.
경쾌하고 빠른 리듬에 흠뻑 빠져드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직 1∼2학년의 상태를 못 벗어난 듯 표현율동의 원과 네모 안으로 전혀 들어오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또 아이들의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성장의 역동성을 스스로 주체 못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아주 단순한 것에서도 뭔가를 배운다는 것은 잠깐 동안만이라도 집중과정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축구 외에는 온통 관심이 없는 아이들, 프로그램이 전혀 무색하듯 따로 노는 아이들에게는 아주 천천히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부터 차분히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5∼6학년 아이들의 활동
근육조직이 뚜렷해지고 뼈대가 단단해지는 시기입니다. 점차 추상적 개념에 대한 이해가 생겨납니다. 세계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이 생기고 기쁨과 사랑, 슬픔과 분노가 늘어납니다. 세계와 삶에 대하여 자기 판단이 생기고 비판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교사는 밝고 어두움, 기쁨과 슬픔을 충분히 느껴 스스로 조정능력을 갖추어 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표현율동 시간에 음악을 듣고 형태를 그려 보았습니다. 5∼6학년 아이들도 모두 1∼2학년이 했던 것처럼 "나는 땅을 봅니다. 나는 하늘을 봅니다. 나는 세상에 중심에 서 있습니다."라는 표현율동을 시작으로 5,6학년에 맞는 표현율동을 했습니다. 리코더 연주도 땅과 하늘의 소리 맞아들이기를 시작으로, 5음계를 통해 자신의 소리내기, 음을 이미지화하기 활동과 함께 차분하고 밝은 느낌의 노래를 리코더로 연주했습니다. 나의 몸짓과 소리를 통해 내 안의 나를 밖으로 드러내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진지하게 잘 따라와 주었습니다.
올해는 특히 해오름에서 유치원 때부터 오랫동안 해오름에 머물러 있던 아이들이 이제 고학년이 되어 의젓한 모습으로 성장한 듯 스스로 프로그램을 잘 풀어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같은 학년이어도 너무 빨리 커버린 아이들이나 기질에 따라서 해오름의 흐름을 잘 따라 오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천천히 스스로 과정을 즐기게 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찾아가는 활동은 아이들의 무한한 잠재력으로 남아 훗날 사춘기 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맬 때 자신을 붙들어 맬 수 있는 버팀목이 될 것 있습니다.
2박 3일 동안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뛰어 다닙니다. 학교가 커서 한 바퀴만 돌아도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1, 2학년 어린 아이들 몇 명은 계속 손수레를 끌고 다닙니다. 한 사람이 끌고 뒤에서는 밀고 몇 명은 타고 있고…. 내게 조금만 움직일 힘이 있었으면 같이 밀고 끌고 했을 텐데 그저 아이들 놀이에 구경꾼이 되었습니다. 그냥 구경꾼이 아니라 나이가 든 할머니 같습니다. 그저 아이들 노는 것을 보면서 흐뭇해하는 어느 맘 좋은 할머니 같습니다.
봄에 심은 감자도 캐고 감자부침, 감자 삶은 것, 샐러드, 닭 요리에 감자… 계속 감자 일색입니다. 감자, 감자… 모둠 아이들 중에 '불량 감자'가 생각납니다. 버스에서 처음 만난 사이인데 아주 오랜 친구 같은 아이들입니다. 모두에게 환한 웃음을 안겨준 아주 귀여운 친구들이 다음 겨울학교에도 또 오기를 기대합니다.
첫날밤에는 백현진 선생님과 안정희 선생님과 이주영 선생님이 고운 목소리로 들려준 색깔 이야기와 진주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며 슬라이드를 보았습니다. 환한 빛이 꺼지면 별빛이 쏟아지는 하늘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빛과 어둠이 있음으로 해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아이들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을까? 마음에 심어진 씨앗처럼 고이 간직되었을 것입니다.
1차 때는 비가 안 와서 잊지 못할 추억의 한 장면이라고 하는 트럭타기를 할 수 있었죠. 위험할 정도로 깊은 물에서 물놀이를 하다 저녁 무렵에야 돌아왔습니다. 2차 때는 둘째 날 하루 온종일 비가 와서 강당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땀을 흠뻑 흘리며 또랑물, 올챙이 노래에 맞춘 율동, 도깨비씨름, 쿵쿵짝 등 전체가 한데 어우러져 신나게 웃고 놀았습니다.
마지막 날 아침해가 높이 솟아오르자 아이들은 비가 와서 못 캔 감자도 캐고 동네 한 바퀴 트럭을 타고 옆 개울가에서 잠시 놀았습니다. 2차 아이들이 물놀이 못한 아쉬움은 아마 한이 되어 오뉴월에 서리를 내리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에는 비가 오면 물놀이를 못하는 것에 미리 도장을 받기라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비가 오는데도 왜 물놀이를 안 가냐고 합니다. 그냥 우기는 걸까? 생각이 없는 걸까? 우습기도 하지만 좀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1학년도 아니고 5, 6학년들도 그러니까….
그래서 결국 물놀이 대신 비를 맞으며 축구를 하고 말타기도 했습니다. 물, 불, 흙, 공기만 있으면 아이들은 다른 놀잇감이 필요 없다고 합니다. 그저 자연에서 있으면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놀잇감입니다. 늘 하는 얘기지만 아이들에게 놀 시간과 공간을 주세요.
하나에서 열까지 시간 계획표에 맞춰 아이들을 몰지 말고 스스로를 세워 가는 아이들을 믿는 어른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좀 더 세상을 빨리 경험하기를 바랬을까? 보행기에 태워져 남에 의해 설 수 있었던 아이들은 홀로서기를 오롯이 경험하지 못해 어떤 일에도 의존을 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거의 다 보행기에서 서기를 경험한 아이들입니다.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어려움을 참고 견디고 스스로 일어서는 내면의 강한 힘을 갖는 아이들로 성장하는데 힘이 되어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끊임없이 자신의 성장을 일구어내는 교사일 것입니다.
더운 여름날 가정 일을 마다하고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아이들과 한 여름을 함께 하신 모둠교사와 진행교사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번 겨울학교에서는 밥도 제 시간에 나오고 여유 있게 차 한잔 하면서 아이들과 담소를 나눌 수 아늑한 학교를 만들 꿈을 꾸어봅니다.
해오름 살림학교 아이들에게
백현진 선생님
도담아! 소연아! 해림아! 다솜아! 예진아! 경무야! 문식아! 해오름 살림학교에 다녀와서 모두 잘 지내지?
난 살림학교에서 돌아온 뒤 며칠 동안 너희들 모습이 자꾸 떠오르더구나. 마치 살림학교에서 함께 있었던 것처럼 지금도 내 옆에 너희들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살았단다.
살림학교에서 처음 만났는데도 금방 친해져서 항상 재잘거리던 소연이와 예진이, 처음에는 입을 꼭 다물고 있어서 말 안하고 있기도 힘들겠다며 핀잔을 들었던 도담이와 다솜이는 돌아올 때쯤에야 감추어진 모습이 드러나면서 무척 다정 다감한 모습을 보여주었지.
해림아! 해림이는 붙임성이 좋아 여기 저기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남자 아이들과도 친근하게 지내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지. 문식이와 경무는 많은 여자아이들 틈에서도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너무나 활발하게 활동을 하여 마음이 뿌듯하였단다.
살림학교에서 생활하는 내내 난 '음음~ 음음음~ 나는 행복해' 를 부르며 다녔단다.
이번 주제가 나를 위해 있는 것 같았어. 그건 다 너희들 덕분이지.
리코더를 불려고, 운동장 끄트머리로 평상을 옮기고 둘러앉아 '시라솔미레, 레미솔라시'를 부르며 화음을 맞출 때부터 우리 모둠의 화합은 이루어졌었지. 표현 율동을 할 때, 너희들의 진지한 표정은 몸을 통해 느끼는 감동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단다. 빛칠하기를 할 때, 너희만의 빛깔로 나타내는 너희의 색은 하나하나가 다름을 느끼게 하고, 또 모두의 마음이 조금씩은 닮아 있다는 것이 보이더구나.
아마 세상을 살아가는 길은 서로 다르지만 서로가 원하는 삶은 닮았기 때문이겠지.
노랑과 파랑을 가지고 했던 기쁨과 빨강과 노랑색을 가지고 했던 고민과 갈등. 마지막 정리 시간에 다른 아이들이 보고는 '희망'같다는 말을 하자 도담이가 "우리는 슬픔을 표현했는데…." 그랬지. 그래, 슬퍼하고 화를 내고 갈등하고 고민하는 모든 것들은 희망을 위해서 그런 거야. 슬픔이 극복되어 희망으로 가는 모습이 너희들 그림 속에 나타났었나봐.
물놀이하러 갔던 계곡은 참 넓고도 시원하더구나. 너희는 지칠 줄 모르고 물을 뿌려대며 즐거워하였지. 또 발표회 때 말이야. 우린 노래, 리코더 불기, 표현율동을 다 하였는데, 난 리코더 불때 어찌나 떨리던지 글쎄 틀렸지 뭐니! 우리끼리 할 때는 잘 했는데 말야.
그러자 소연이가 "전 선생님 보고 따라했는데요, 어쩌죠." 그랬지.
하지만, 좀 틀리면 어떠니! 우리가 한 것을 그대로 보여주면 되는 것이지.
우리들의 표현율동은 정말 이연희 선생님 말씀대로 '예술'이었어. 음악을 듣고 몸으로 표현하는 너희들의 진지한 표정은 정말 굉장했지. 많은걸 하고 놀았는데 가장 생각나는 것은 수건돌리기야. 두 바퀴 돌고 앉는다는 규칙을 정했을 때 내가 걸려서 '가마솥에 누룽지'를 등에 흠뻑 받았는데 복수를 하기도 전에 징소리가 울려서 무척 아쉬웠지. 어찌나 수건돌리기를 많이 했던지 밑에 깔아 놓았던 돗자리가 찢어져 테이프로 붙여놓기는 했는데 2차 모둠에게 조금 미안하였단다.
즐겁게 놀고 활동을 하면서 지낸 해오름 살림학교. 며칠동안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라'반 친구들 정말 고마워. 아주 건강하게, 그리고 씩씩하게 잘 지내다가 겨울학교에서 다시 만나자!
해오름 살림학교 아이들에게
이주영 선생님
지난 수요일 우리 친구들과 만났구나. 지금이 밤 10시가 다 되어 가는데, 지난주에 슬라이드를 보는 친구들에게 쉰 목소리로 책을 읽고 주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치?
자그마하고 올망졸망한 친구들 눈빛이 떠오른다. 9명의 친구들 이름을 외우느라 더듬거릴 때마다 웃던 모습도 떠오르고. 유난히 비슷한 이름이 많아서 상우, 종우, 성우, 하민, 자민, 호철, 성원, 혜린, 선영… 솔직히 너희들도 둘째 날에도 '쟤 이름이 뭐예요?'하고 물었는데 기억나니?
2박 3일 동안 나는 원없이 놀았는데 우리 친구들은 어땠니? '친구들아 이거 하자' 하면 군소리 없이 다가와서 같이 어울렸던 친구들이 참 기특하고 대견했단다. 성우랑 성원이가 안 보이면 감자 모둠(도 모둠) 가서 보면 있고, 종우랑 자민이는 쉼 없이 바쁘게 움직이면서 모둠방을 지켰고 헤린이, 선영이는 짖궃은 친구들과 섞여 놀면서 투정 부릴 일도 있었다. 하민이는 쉼없이 리코더를 불고 결국 우린 하민이가 완주한 곡을 원없이 들었잖니. 호철이랑 상우도 처음엔 어색해 하다가 둘이서 표현 율동 시간엔 방정맞은 천사 모습도 보여줬지?
냄새나는 화장실을 잘도 참고 왔다 갔다하고 좀 늦은 밥 시간에도 짜투리 시간만 나면 우리 친구들은 놀았던 것 같다. 박쥐와 나방, 수건 돌리기, 봉숭아 꽃물 들이기, 풀피리, 바랭이로 우산 만들기, 임정아 선생님과 함께 한 콩심어라 놀이, 1부터 11까지 완성하기 등등. 리코더를 불때 손가락이 잘 안 잡혀서 같은 '시' 음도 다 달랐지? 또 친구들이 냈던 새 소리 기억나니? 산새, 뻐꾸기, 딱따구리…. 마치 너희들이 조잘대던 소리 같더구나. 무지개 다릴 이야길 듣고는 엄마에게 물어봐야겠다고 했는데 엄마에게 물어봤니?
쓰고 그리는 게 익숙치 않아 리코더집이 뽀얗던, 그래도 늘 웃음을 달고 다닌 상우.
뭘 해도 물어보던 그리고 내키지 않아도 큰 눈 한번 마주치면 꿋꿋이 해내던 호철이.
처음엔 어색해 하다 친구들과 장난도 치고 받던 하민이.
'선생님 저 리코더 못 불어요' 하더니 '피어납니다'를 끝까지 분 선영이.
'물놀이 언제 해요?' 그러다 트럭 타고 신이난 성원이.
가끔 조절 못하는 바쁜 몸놀림으로 친구를 울렸던 종우.
피곤함에 코피가 나서 놀래키고 내 배를 베개삼아 잠든 자민이.
감자 챙기랴 모둠오랴 바빴던 성우.
평화놀이를 기쁘게 해준 혜린이.
모두모두 보고싶습니다!
내가 제대로 챙기지 않아 친구들에게 해오름 인터넷 주소도 안 가르쳐 주고. 친구들아 미안하다. 얼마 안 남은 방학 잘 보내고 우리 또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잘 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