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계절학교 나눔터
빛으로 여는 세상
- 제 8회 해오름 여름학교
이연희 | 해오름 어린이 살림학교 교사
내 주변에 있는 빛을 느끼며 받아들이면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빛으로 인해 사물의 존재가 드러납니다. 아이들에게 세상에 한발 내딛을 때 험악하고 경쟁만이 그득한 세상에서 살아 남아야 함을 가르치기보다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그런 바람이 '빛으로 여는 세상'이라는 주제를 탄생시키게 되었습니다. 나무 밑에서 누워서 본 하늘은 나뭇잎을 한층 빛나게 합니다. 주변에 있는 짙푸른 나뭇잎과 또 다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낀 아이들은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연은 어느새 아이들에게 새로운 존재로 가까이 있겠지요.
뭔가 새로 배워야 하고 이루어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던지 교사연수 과정에서는 빛의 아름다움으로부터 오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읽어내는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는데 여름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구체적으로 와 닿게 된 것 같습니다. 빛칠하기와 네모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또 아이들과 아침 산책을 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흠뻑 느꼈습니다. 아이들로 인해 새로운 빛의 세계로 여행을 다녀온 듯합니다. 아이들에게서 배워 더없이 좋은 과정이었지만 좀더 마음 편히 충분한 시간을 갖고 교사연수에서 주제에 대한 고민을 했더라면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번에는 살림학교 교사양성과정 중에 있는 교사들과 여름학교를 같이 준비했습니다. 처음 참여하는 교사가 많지만 함께 고민하며 논의하면서 연수 내내 조심스러우면서도 진지한 과정이었습니다. 늘 주제에 가까이 가려고 자신을 돌아보고 한 부분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긴장된 모습에서 오랜만에 초보 교사의 열정과 순수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한 교사들처럼 미리 꼼꼼하게 준비한 덕에 2박 3일을 온전히 아이들과 함께 한 것 같습니다. 힘들지만 행복했던 3일, 특정한 수업만 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과 같이 생활을 하는데서 오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힘은 아무래도 몇 년 다니면서 몸에 저절로 익혀진 교사에게서 보여지는 노하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쉬운 것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터득되겠지요. 그런데 그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과연 몇 명의 교사가 함께 할까? 제일 큰 과제입니다.
올해도 여지없이 지난 겨울에 이어 새롭게 시작하는 계절학교인데 해마다 치른 이벤트의 연속은 아니었나 돌아보게 됩니다. 회의적인 생각에 무조건 처음으로 돌리려는 것이 아니라 '해오름 살림학교의 교육적 목표는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다시 들춰냅니다. 내가 산으로 가는지 바다로 가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척도라 생각됩니다. 물론 답은 아이들에게서 얻어 옵니다.
교사와 아이들을 스스로 살리는 교육, 스스로 서는 교육, 그래서 서로 같이 살리는 교육이란 무엇일까?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아이들을 제대로 보고 있는 건가?
교사연수 과정에서 공부를 하는 중심 내용입니다. 아직 공부 중이라 답을 명쾌하게 내릴 수 없는 건가? 현실의 장벽 앞에 너무도 넘어야 할 산이 많기에 접고 접은 탓에 아주 조금씩 발전하기 때문에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은 아닌가?
평화를 연습하러 오는 곳, 여름학교
해오름에서는 매년 여름학교 프로그램을 정하고 아이들을 모집합니다. 특정한 아이들을 보고 아이들에 맞게 프로그램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뭔가 우리가 새롭게 시도하는 커다란 틀 속에 아이들의 욕구와는 상관없이 아이들을 집어넣고 거기서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게 합니다. 우리 생각대로 무조건 아이들을 끌어당기는 것은 아닌가? 물론 좋은 내용이고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지만 회의가 드는 순간도 많습니다.
하염없이 물 속에서 놀고 싶거나 어떤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아이들에게는 프로그램이 고통일 수 있습니다. 그 어떤 훌륭한 프로그램도 아이들에게는 벗어나고만 싶을 뿐입니다. 프로그램은 단지 해결해야 할 과제로만 여겨집니다. 그 때부터 충돌은 시작됩니다. 아이들은 틈만 나면 물 속으로 뛰어들고 교사들은 아이들을 불러 모으고 진이 빠집니다. 그냥 물에서 놀게 할까? 아니 미리 정해진 프로그램이 있는데…. 헷갈립니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행복'이라고는 써 있는데 잘 모여들지는 못합니다. 도심의 찌든 때를 날려버리듯 그저 자유롭게 떠서 다니는 아이들입니다. 처음 왔어도 오랫동안 같이 만나 온 아이들처럼 자연스러운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오랜 시간 같이 했어도 나만 즐거운 아이들이 있습니다. 같이 즐거울 수 있는 장치를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빛으로 여는 세상'의 주제에 대한 뜻풀이가 아니라 같이 물에서 놀면서, 빛칠을 하면서, 감자를 캐면서 느끼는 감동으로 같이 즐겁게 지내다 갈 수 있기를 바랬는데…. 그래서 시간이 가면 아이들의 내면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빛'이 되기를 바랬는데…. 늘 그러기를 바라지만 어느 누구도 지금은 답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단지 믿음일 뿐입니다.
처음 온 아이들 중에는 모든 일에 열심히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같이 무엇을 하기엔 어색하기만 하고 한 발을 빼고 멀리서 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다닌 아이들은 스스로 길들여져 있어서 새로운 경험에 자신을 맡기길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오랫동안 만나면서 마음을 열고 지낸 덕에 생긴 서로에 대한 믿음입니다. 노는 모습, 활동하는 모습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모두 다릅니다.
살아오면서 어디서나 제 세상인 양 마냥 자유롭게 지내온 아이들은 해오름의 활동이 억압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에 비친 경쟁 사회의 그늘에 있던 아이들에게는 해방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모두 온전한 아이들의 모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 모습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되 함께 사는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그래서 열심히 평화를 연습하는 곳이 해오름 살림학교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님들께도 좀 색다른 주제에 끌려 아이들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연습하러 오는 곳으로 자리매김되었으면 합니다. 물론 한 두 번의 만남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들공부도 계절학교도 모두 정회원과 준회원이 나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더 깊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물론 구조적인 대 수술이 있어야겠지요. 그러면서 교사들도 한층 커 갈 것입니다. 언제 새로운 형태로 태어날지 모르지만 그 전까지의 해오름 계절학교는 교사와 아이와 부모에게 더없는 행복감을 안겨주는 이벤트에 충실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하루만 더 있자고 합니다. 이틀 놀아보고 그제서야 어떻게 노는지 알겠다는 모습입니다. 어색한 몸짓도 좀 자유로워지고 모둠의 친구들도 헤어지기 아쉽습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봅니다. 행복하고 즐거웠던 순간만큼 책임이 더 느껴지고 고민이 많이 되었던 여름학교였습니다.
더운 여름날 7월 26일부터 30일까지 1, 2차 120여명의 아이들과 20여명의 교사들이 강원도 횡성에서 함께 한 여름학교를 돌아봅니다.
보좌교사와 함께한 교사 연수
다른 해와 달리 중요한 프로그램을 우선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시간 순대로 연수를 했습니다. 처음 참여하는 교사들이 많아 그 흐름을 익히는 게 우선일 것 같았습니다. 처음 아이들을 만나서 얼굴을 익히고 마음을 여는 과정부터 시작해서 여러 활동 속에서 함께 주제를 풀어내도록 흐름을 잡았습니다.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한 것은 1박 2일 연수를 통해서 집중적으로 하기로 했는데 몸짓이나 놀이 등은 한두 번의 연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몸에 익을 때까지 충분한 연습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교사모임에서 지속적으로 공부하면서 채워져야 할 내용입니다.
이번에는 좀더 아이들과 찬찬히 만나기 위해 한 모둠에 되도록 보좌교사를 배치하기로 하고 연수 과정에 몇 분을 모시기로 하여 같이 여름학교를 준비하였습니다. 교사 수도 많고 좀 혼란스러울 수도 있었는데 각자가 가진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즐겁게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여름학교에 가서도 모둠교사와 보좌교사가 서로 논의를 하면서 모둠을 이끄는 모습들은 어렵다 하더라도 이후에 꼭 지속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했습니다.
아이들 맞이하기
여름학교 하루 전날 진행 교사들과 미리 청일주말농원에 갔습니다. 맑은 개울물도 그대로이고 너른 강당도 식당도 그대로인데 통나무집 앞에 큰 창고가 들어서고 개울가에는 아이들이 활동하기에 안성맞춤인 평상이 즐비했습니다. 개울에서 땀도 좀 식히고 물품을 정리하고 강당에는 빛칠한 그림과 네모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을 붙이고 방마다 모둠 이름표도 붙이고 노래 커튼을 두르고 현수막도 치니 여름학교의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드디어 다음날 아이들이 도착했습니다. 차를 오래 타서 지친 탓인지 힘겨운 얼굴로 농원에 들어서다 개울을 보더니 환호성을 지르고 달려옵니다. 모둠별로 점심을 먹고 모두 자기 모둠방으로 갑니다.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이 먼 길을 왔을까? 처음 대하는 낯선 얼굴, 2박 3일 동안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라며 여름학교의 문을 열었습니다.
모둠별로 모여서 인사도 나누고 3일을 머무를 농원도 이곳저곳 둘러봅니다. 조금만 햇빛이 비추어도 다른 빛을 내는 자연은 무수한 빛깔을 갖고 있습니다. 눈에 들어온 그 빛을 마음에 고스란히 담아봅니다.
모둠별로 모여 인사하고 놀고
모둠 마음열기 시간은 아이들과의 첫 만남입니다. 교사도 아이도 특별한 인연으로 만나집니다. 그래서 기대도 되지만 두렵기도 합니다. 한 두 시간 안에 마음을 다 열 수는 없습니다. 시작인 셈입니다. 마음이 열린다 싶으면 집에 갈 날이 성큼 와 있습니다. 그때서야 아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면 작별이지요. 오랜 세월을 같이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서로를 껴안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은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좀 서먹하긴 하지만 금방 어우러집니다. 서울에서 온 아이, 대구에서 온 아이, 안동에서 온 아이 전국 각지에서 모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평화롭게 지낼 수 있게 스스로 원칙도 정하고 마음을 조금씩 열어갔습니다. 콩주머니를 던지며 여름학교에서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 모두가 기원하고 하나로 어우러진 몸짓을 만들며 그 바람을 모으기도 합니다. 또 몇 해 전부터 해오던 그대로 여름학교의 모든 것을 담아가는 공책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이 공책은 아이들이 스스로 만드는 여름학교 자료집이 됩니다. 색연필로 예쁘게 꾸민 공책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보물이 됩니다.
또 자기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나무 이름표를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지난해부터 모둠 마음열기 시간에 해 오던 프로그램인데 처음엔 그저 이름표로서만 의미가 있었는데 점점 나무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고 정성스럽게 만들게 됩니다. 버려진 나무가 내게 와서 새 생명으로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내 안에서 영원히 사는 나무가 됩니다. 들공부 때나 계절학교 때마다 만드는 나무 이름표. 오래 다닌 아이들은 집에 이름표가 몇 개나 됩니다. 어린 시절의 역사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처음엔 거칠었던 나무가 점점 부드러워집니다. 볼에 살짝 대어보면 화장한 듯 얼굴이 뽀얗게 됩니다. 정성스럽게 나무를 갈면서 아이들은 여름학교에 대한 자신의 마음도 가다듬습니다. 즐거우면서도 아주 진지한 시간이었습니다.
★ 나무 이름표 만들기
준비물 : 나무 조각, 사포, 신문지, 색연필, 초, 목걸이 줄
① 나무 조각의 거친 면을 잘 관찰합니다. 이 나무가 어떻게 내게 왔는지도 생각해 봅니다.
② 사포로 나무를 잘 갑니다. 거친 면이 부드러워지고 보얀 가루가 나올 때까지 갑니다.
③ 나무에 해오름 살림학교와 자기 이름을 쓰고 다른 면에 여름학교에 대한 생각과 기대를 간단한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④ 양면에 양초를 입힙니다. 불에 초를 녹이면 코팅의 효과가 있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좀 위험할 것 같아 대부분 초칠만 했습니다.
④ 미리 뚫어 간 구멍에 목걸이 줄과 구슬을 끼웁니다.
여름학교의 문이 활짝 열리다
햇볕
햇볕은 고와요 하-얀 햇볕은
나뭇잎에 들어가서 초록이 되고
봉오리에 들어가서 꽃빛이 되고
열매 속에 들어가서 빨강이 되어요.
햇볕은 따스해요 맑-은 햇볕은
온세상을 골-고루 안아줍니다
우리-도 가슴에 해-를 안고서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되어요
저녁풍경
나른해진 햇님이 저산너머
금빛구름 베고서 잠이 들면
소곤소곤 별들이 달님을 부르며
은하수별 고요히 노래하네
소곤소곤 별들이 달님을 부르며
은하수별 고요히 노래하네
여름학교를 마친지 여러 주가 지났는데도 햇볕과 저녁풍경 노래는 아이들에게 계속 불려집니다. 노랫말만 보아도 따뜻한 마음이 전해집니다. 강당에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모둠이 원으로 모였습니다. 아이들과 햇볕, 저녁풍경, 무지개, 별과 꽃, 종이접기, 또랑물 노래를 불렀습니다. 오는 차안에서 모두 노래에 이미 빠져서 온 듯 거의 노래를 다 외워서 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노래 배우는 시간도 적게 걸리고 온 날부터 가는 날까지 지난해에 배웠던 내 마음에 심은 꽃, 아침을 열며 노래에 이어 새로 배운 노래들이 아이들의 입에 3일 내내 오르내렸습니다. "모두 모여라, 원으로 둘러서자"라는 말 대신에 짧으면서도 재미있는 '꽃은 참 예쁘다. 풀꽃도 예쁘다~~' 노래를 시작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모두 모여 원을 만듭니다. 아니 또 '꽃은'이야 하면서도 노래가 끝날 때면 모두가 예쁜 원을 만듭니다. 아이들을 끊임없이 하나로 엮어주는 보이지 않는 노래의 힘을 새삼 느꼈습니다.
언제 불러도 신나는 '뚬바뚬바'와 '디리디리' 노래와 좀 어려울 것 같았는데 그래도 곧잘 따라 부르던 도나노비스파쳄(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는 아이들에게 울림이 있는 여름학교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전체가 모인 가운데 여름학교를 여는 시를 몸짓으로 배우고 교사들이 교사연수 내내 준비한 몸짓을 선보였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이 움직임을 통해 당겨지기도 하고 끝없이 펼쳐지기도 하는 몸짓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는 즐거움 그 자체'입니다.
지난 해 푸른 숲 학교에서 통전교육을 받으며 발도로프 학교의 유리드미를 배우면서 받은 감동을 아이들과 나누기 위해 선생님들과 같이 해 보게 되었습니다. 원형과는 많이 다르고 그 뜻을 충분히 몸에 익히지 못해 좀 어설프고 쑥스럽기는 하지만 교사연수 때 강물에 비친 그림자를 만들면서 충만했던 감격을 바탕으로 진지하게 몸짓을 선보이자 아이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준 것 같습니다.
몸이 굳어있고 발걸음 하나하나가 부담스러워 내 몸이 아닌 듯 어색하면서도 내게서 만들어지는 선율을 느끼고 별을 만들고, 어느 순간 곡선과 직선의 조화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늘하늘한 치마를 입은 선생님들이 만드는 꽃봉오리는 아이들에게 나도 한 번 해봤으면 하는 마음을 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여럿이 하면서 내 몸의 흐름도 느끼지만 무엇보다 옆 사람의 기운을 느끼고 하나의 형태를 완성해 감을 느끼게 됩니다. 억지로 무엇을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흐름 속에서 만들어지는 감동을 얻게 된 것 같습니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우스운 듯 쳐다보다 선생님들의 몸짓에 집중하며 깊이 빠져들며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여름학교를 여는 선생님들의 마음을 충만히 받았다는 듯이…. 아이들도 고맙고 선생님들도 고마웠습니다.
자연의 빛을 담아
애기똥풀을 끓여 명주에 아름다운 빛의 세계를 담아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의 빛을 느껴보기 위해 애기똥풀만이 아니라 쑥이나 홍화 등에서 다양한 빛을 내보려고 했는데 준비하는데 너무 번거롭고 계절에 맞게 아이들이 염색의 전 과정을 참여할 수 있는 애기똥풀이라 한가지로 집중해서 하기로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노란물이 든 명주를 머리에 두르거나 댕기처럼 머리에 묶기도 하고 마지막날 발표 때 소품으로 활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자신의 손을 거쳐 나온 노란 명주에 아이들을 상당한 애착을 보였습니다.
★ 애기똥풀로 염색하기
① 미리 자른 명주를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어 끓는 가마솥에 모두 넣어 정련을 합니다. 명주는 자연섬유이기는 해도 제품으로 나올 때 풀을 먹입니다. 염액이 잘 스며들도록 끓는 물에 약간 데치듯이 담갔다가 건져내어 풀기를 빼어 그늘에 말립니다.
② 청일농원에 구역을 나누어 아이들과 애기똥풀을 뜯으러 갔습니다. 늦은 봄이면 노란 꽃이 피어 금방 찾아낼 수 있는데 잘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모둠별로 나뉘어 농원 주위를 돌아다니며 애기똥풀을 몇 뿌리씩 캐왔습니다. 아직 꽃이 있는 것들이 있어 꽃도 확실히 보고 잎과 뿌리도 자세히 볼 수 있었습니다.
③ 뿌리를 자르니 주황빛의 염액을 가득 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캐 온 애기똥풀을 가마솥에 불을 지펴 넣고 푹 끓였습니다.
④ 노란 염액에 명주를 넣어 주물거리니 노란빛 천이 되었습니다. 개울에 헹구고 다시 식초를 넣은 염액에 염색을 하여 그늘에 말렸습니다.
⑤ 윤이 나는 노란빛의 새로운 명주가 태어났습니다.
네모 크레용으로 그림 그리기
애기똥풀을 뜯으며 돌아 본 더덕밭, 어슴프레해져버린 개울가에서 노랗게 물이 든 명주를 헹구며 본 개울은 아이들에게 또 다른 빛을 선사했습니다. 아, 참 맑다! 내가 둘러 본 것들을 떠올리며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사람의 얼굴이나 대상을 정확히 그리기 보다는 내게 온 자연의 모습을 느낌 그대로 그려 보았습니다.
아직도 빛이 강렬해서 지기 싫어하는 해, 수줍은 듯 살며시 산을 넘어가는 해, 내 곁에서 언제나 나의 후원자가 되듯 지켜서 있는 든든한 나무, 개울도 그리고 먼 산 그림도 모두 모아 한 곳에 놓고 보니 훌륭한 작품입니다. 아니 모든 아이들에게서 똑같이 느껴지는 예술성에 감탄을 합니다. 네모 모양으로 생긴 것부터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던지 아이들은 흰 종이에 빨노파 3색으로 빛의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색이 겹쳐지며 또 다른 색을 만들며 스스로 놀랍니다. 크레파스에는 없지만 내 마음에는 있는 색,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점점 빠져듭니다. 미술학원이나 학교에서 잘 그려야만 한다는 강박감도 없습니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느낌을 나타내면 됩니다. 뭉툭한 크레파스는 금세 도화지를 가득 메우고 아이들이 마음도 하나 가득 기쁨에 찹니다. 어렵게 녹여 만든 크레용, 거기다 두 시간도 넘게 자르면서 힘겨웠던 시간들이 다 녹아듭니다. 창문과 벽을 가득 메운 그림은 또 다른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빛칠하기 - 젖은 그림 그리기
준비물 : 붓(20호 납작 붓), 물통, 물감통, 스포이드, 스펀지, 도화지, 붓 닦을 천, 도화지를 물에 담글 큰 통, 도화지 판, 빨노파 물감
아침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빛의 위력을 맘껏 과시하듯 희뿌연 안개가 걷혀지며 산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납니다. 구름도 집도 밭도 캄캄한 어둠을 몰고 드러냅니다. 간밤에 찾은 컴컴한 개울은 뭔가 불쑥 튀어 나올 것만 같더니 아침 해를 맞은 개울은 잔잔한 물고기의 놀이터입니다. 키 큰 해바라기와 옥수수의 정겨운 싸움, 밭 한가운데 서있는 허수아비, 강아지풀의 하늘거림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빛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햇볕은 고와요 하얀 햇볕은~~"
노래를 들으며 선생님이 먼저 천천히 젖은 그림에 그림을 그립니다. 환한 빛이 느껴지는 아침 햇살을 그립니다.
"와~ 신기하다"
젖은 도화지의 물과 물감이 만나 또 다른 색을 만들어 내며 나를 끌어들입니다. 내가 의도하는 그림이 아니라 도화지와 물감과 내가 같이 만들어 내는 그림이 됩니다.
산책하며 보았던 자연의 모습을 떠올리며 젖은 도화지 위에 조심스럽게 물감을 떨어뜨립니다. 천천히 번져가며 물감들이 서로 만납니다. 나를 사이에 두고 뭔가를 얘기하더니 지나치며 다른 빛을 남기고 갑니다. 다 완성된 그림을 모두 한데 모아보니 크레용과는 또 다른 살아있는 세상을 만나는 것 같습니다. 감격의 순간입니다. 모두 탄성을 지릅니다. 어느 그림도 못 그렸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이 그대로 녹아 있는 그림입니다. 이야기도 꾸미고 멋진 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빛이 내게 점점 내려와 앉습니다.
모닥불 놀이, 색깔 이야기 슬라이드 상영
아이들과 강당에서 '또랑물' 노래를 배우고 율동을 배웠습니다. 모닥불 놀이의 예행연습인 셈입니다. 둘씩 짝을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앞으로 뛰고 엉덩이도 살짝 부딪치고. 또 '도나노비스파쳄'을 배우고 돌림노래를 몽땅 불렀습니다. 강당 안이 무척이나 더운데도 모두 자기의 순서를 지키고 화음을 맞추며 하나로 모여듭니다. 밖에서는 진행 선생님들이 슬라이드 상영을 준비합니다. 모두 계단에 앉아 슬라이드를 보았습니다.
색깔들이 만든 집, 힘센 빨강과 예쁜 빨강, 색깔들의 뽐내기 세 편의 색깔 이야기가 정아 선생님의 맑은 목소리를 통해 캄캄한 청일농원에 울려퍼집니다. 한여름 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펼쳐지는 영상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감동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색깔들의 어우러짐을 보며 '우리 모두는 색깔들이 만드는 세상에서 하루하루 즐겁게 지내는 거랍니다'라는 마지막 말이 '빛으로 여는 세상' 여름학교를 마무리하는 것 같았습니다.
큰 박수소리가 그치며 모닥불이 피어올랐습니다. 노랑, 주황, 빨강, 보라, 푸른빛까지 띠는 모닥불, 모두 또랑물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합니다. 불이 피워 오르듯이 아이들의 여름밤도 깊어만 갑니다.
모둠별 몸짓 발표
3일 동안 있으면서 모둠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와 율동, 몸짓을 연습해서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름학교 사상 처음으로 진지하고 감동적인 발표 시간이었습니다. 천사같은 모습으로 햇볕 노래를 곱게 부르면서 나뭇잎을 세우고 봉오리를 꽃 피우는 아이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감동을 안겨주어 앵콜을 받게 했습니다. 노래에 맞춰 춤을 추듯 꼬인 손을 풀어가는 모습은 새로운 창작물로 길이 남을 것 같은 작품입니다. 또 모닥불의 지글지글 타는 모습을 온 몸으로 표현한 아이들의 모습도 빛을 온 몸에 담으려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선생님들은 몇날 며칠을 걸려서 했는데 아이들은 몸짓을 두 세번만 하고 그려냅니다. 강물에 비친 그림자, 별, 꽃을 만들며 물론 모양 만들기에만 급급한 면도 있지만 하면서 감동을 느끼듯 아주 진지한 모습입니다. 선생님들에게서 퍼져가는 환한 빛을 아이들이 그대로 담아내는 것 같았습니다. 모두가 하나 되는 감동으로 여름학교는 막을 내렸습니다.
여름학교의 필수 코스, 물놀이
유난히도 더운 여름날 아이들은 농원에 도착하자마자 물 속으로 뛰어들더니 가는 날까지 발에 물을 적십니다. 더 이상 갈아입을 옷이 없어서 젖은 채로 지내는 아이도 있고 그저 물가가 좋아서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듯 나무 그늘에 앉아 쉬는 아이도 있습니다. 개울에 발을 담그고 명주를 헹구면서 잔잔한 물살을 느껴봅니다. 선생님들이 몇 시간씩 땀흘려 만든 녹차와 치자 물을 들인 수제비를 물가에서 먹는 기분은 한마디로 아이들 말대로 '짱'입니다. 올해도 대학생 도우미들은 여지없이 아이들 속에서 수난을 겪었습니다. 맑은 물이 가까이 있어 더욱 편안한 여름학교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겨울이면 꽁꽁 얼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줄 개울이 고맙기만 합니다.
트럭 타기? 감자캐기!
올해에는 설렁설렁 하지 않고 모둠으로 나누어 땀을 비오듯 쏟아내며 감자를 캤습니다. 모자까지 젖어보기는 처음이라고 스스로 대견해 합니다. 날씨도 많이 더운데 아이들은 땅에서 보물을 찾아내듯 한 알 한 알 캐냅니다. 진행을 돕는 선생님들이 아침 일찍 풀도 뽑고 비닐도 걷어내서 그런지 좀 더 계획적으로 된 것 같습니다. 뱀도 출현을 자제한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감자의 잎과 줄기도 보게 했으면 좋겠는데 너무 더워 잎도 줄기도 다 말라버렸습니다. 아이들이 열심히 일을 한 자리를 또 파보니 또 감자가 나옵니다. 선생님들이 미련을 못 버리고 계속 캐고 아이들은 지쳐 내려가서 쉽니다. 트럭을 기다리며 운동장에서 잠깐 놀기도 했습니다.
감자밭을 오가며 트럭을 한 번 탔니, 두 번 탔니 울고 불고 하던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한 번에 다 탈 수 없어서 나누어서 탔더니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그 재미있는 트럭을 나는 한 번 밖에 못 탔는데 다른 아이들은 두 번 탄다고 하니 정말 분할 뿐입니다. 공평하지 않다고 난리입니다. 서로 먼저 트럭에 타려고 하기도 하고 모둠 아이들이 다 모이기도 전에 자기만 훌렁 올라타기도 합니다. 감자를 캐러 가는 건지 트럭을 타러 가는 건지 아이들은 그저 즐겁기만 합니다. 들뜬 마음이야 왜 모르겠냐만 순간 얼굴을 붉히고 힘으로 눌러버립니다. 교사라는 힘으로! 분명 먹혀들지 않는 것은 알면서도…. 다같이 행복한 시간이 되기 위한 연습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여름 노래와 놀이들
이번만큼 노래가 주는 힘을 느껴보기는 드문 것 같습니다. 여름이라는 계절에 딱 맞아떨어졌던 주제와 거기에 맞게 구성된 노래. 잔잔하게 읊조리는 노래에서부터 신나고 경쾌한 노래에 아이들은 점점 빠져들어 갑니다. 재진이의 흥에 겨운 몸짓과 또랑물 노래에 맞춘 두 여자 아이의 몸짓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아이들의 아픈 마음을 다독거려 주고, 나만을 드러내려던 행동들이 노래에 맞춰 어우러짐으로 꽃피웁니다.
'감자에 싹이 나서 삭삭삭!' 단순한 놀이인데도 아이들은 금방 빨려듭니다. 모둠에 따라 온 종일 노는 모둠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노는 모둠도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노는 소리가 나고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녀야 하는데 그런 모습은 덜 보입니다. '박쥐와 나방'놀이를 하려고 큰 수건까지 준비해 갔는데 끝내 해 보지 했습니다. 프로그램이 참 빡빡했구나, 끝나갈 때서야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몇 년동안 많은 놀이를 해 보았는데 한 해에 머무를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몇 년 전의 '쿵쿵짝'의 열기와 '실뜨기'의 호기심, '어부와 상어'의 반전이 그립습니다. 지속적으로 해 보면서 몸에 익혀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게 해야겠습니다. 어떤 프로그램보다 몸으로 부딪치며 놀던 과정에서 아이들은 계절학교를 기억합니다. 또한 교사들은 노는 과정에서 아이들을 제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겨울을 기약하며
올 해 처음으로 모둠교사가 되어 보았습니다. 전체 진행과 모둠이 얼마나 잘 어우러지고 있나 보고 싶기도 하고 들공부 때 모둠에서 만난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만나고 싶었습니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사람이 모둠을 맡으면 얼마나 잘 할까? 다른 교사들이 눈여겨 볼 수도 있고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모둠을 맡는 순간 그런 생각들을 할 새도 없이 바쁘더군요. 3일 동안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투영된 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교사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아이들에게 참 중요한 거구나' 아이들은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합니다. 물론 틈만 나면 빠져나가려고 하는 아이도 있지만 대부분 선생님을 잘 따릅니다. 3일인데도 모둠교사를 닮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봅니다.
1차에 진행을 맡다가 2차에서 모둠을 맡았는데 자꾸 전체 아이들을 보게 됩니다. 아이들이 너무 산만하고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고 다른 모둠 아이들에게 큰소리를 많이 쳤는데 사진 속의 아이들의 맑은 얼굴을 보니 마음이 좀 무겁습니다. 방도 대충 치우고 주로 바깥을 다녔습니다. 개울도 건너고 농원 위쪽을 거슬러 오르기도 하고, 아이들과 오랜만에 편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들공부 때 서로 내 팔을 잡아끌던 아이들 때문에 고민을 했었는데 여름학교에서는 자율적으로 잘 놉니다. 이제 스스로 놀 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언제나 모둠이 모여야 무엇이든지 한다고 했습니다. 같이 만들어 가는 기쁨을 맛본 아이들은 친구를 필요로 하고 친구들을 보듬을 것입니다. 처음의 어색한 몸짓에서 마지막날 완성된 몸짓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이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프로그램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챙기지 못한 것 같아 좀 미안한데 아이들은 알아서 잘 놀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많이 배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여러 선생님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던 아이들의 진지한 발표의 몸짓이 눈에 선합니다. 청일농원에서 전에 늘 같이 계절학교를 만들어 오던 선생님들의 얼굴도 스치고 그동안의 선생님들의 노고가 온 몸에 저며 듭니다.
"선생님, '도나노비스파쳄' 노래를 부르면 평화가 오나요?"
한 아이의 물음에 "음 아마 그럴거야" 라고 답을 하시던 이우선 선생님이 지금 병원에 계십니다. 여름학교에서 온 마음으로 아이들을 사랑하신 선생님의 쾌유를 빕니다.
여름학교를 위해 몇 년째 방학의 일부를 헌납하는 슈렉 현우, 정아를 비롯해 초등학교 때 계절학교에 와보고 고등학생이 되어 도우미가 되어 다시 찾은 윤익이와 생전 처음 타 보는 트럭의 맛을 느끼게 해준 슈렉 투 박형만 선생님과 해오름의 식구들, 여름학교 진행을 위해 수고하셨습니다. 또 3일 내내 아이들 곁에서 생활한 모둠 선생님들과 무엇보다 이번에도 또 한 깨달음을 던져준 우리의 아이들, 모두 고맙고 수고하셨습니다.
겨울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납시다.
- 제 8회 해오름 여름학교
이연희 | 해오름 어린이 살림학교 교사
내 주변에 있는 빛을 느끼며 받아들이면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빛으로 인해 사물의 존재가 드러납니다. 아이들에게 세상에 한발 내딛을 때 험악하고 경쟁만이 그득한 세상에서 살아 남아야 함을 가르치기보다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그런 바람이 '빛으로 여는 세상'이라는 주제를 탄생시키게 되었습니다. 나무 밑에서 누워서 본 하늘은 나뭇잎을 한층 빛나게 합니다. 주변에 있는 짙푸른 나뭇잎과 또 다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낀 아이들은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연은 어느새 아이들에게 새로운 존재로 가까이 있겠지요.
뭔가 새로 배워야 하고 이루어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던지 교사연수 과정에서는 빛의 아름다움으로부터 오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읽어내는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는데 여름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구체적으로 와 닿게 된 것 같습니다. 빛칠하기와 네모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또 아이들과 아침 산책을 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흠뻑 느꼈습니다. 아이들로 인해 새로운 빛의 세계로 여행을 다녀온 듯합니다. 아이들에게서 배워 더없이 좋은 과정이었지만 좀더 마음 편히 충분한 시간을 갖고 교사연수에서 주제에 대한 고민을 했더라면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번에는 살림학교 교사양성과정 중에 있는 교사들과 여름학교를 같이 준비했습니다. 처음 참여하는 교사가 많지만 함께 고민하며 논의하면서 연수 내내 조심스러우면서도 진지한 과정이었습니다. 늘 주제에 가까이 가려고 자신을 돌아보고 한 부분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긴장된 모습에서 오랜만에 초보 교사의 열정과 순수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한 교사들처럼 미리 꼼꼼하게 준비한 덕에 2박 3일을 온전히 아이들과 함께 한 것 같습니다. 힘들지만 행복했던 3일, 특정한 수업만 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과 같이 생활을 하는데서 오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힘은 아무래도 몇 년 다니면서 몸에 저절로 익혀진 교사에게서 보여지는 노하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쉬운 것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터득되겠지요. 그런데 그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과연 몇 명의 교사가 함께 할까? 제일 큰 과제입니다.
올해도 여지없이 지난 겨울에 이어 새롭게 시작하는 계절학교인데 해마다 치른 이벤트의 연속은 아니었나 돌아보게 됩니다. 회의적인 생각에 무조건 처음으로 돌리려는 것이 아니라 '해오름 살림학교의 교육적 목표는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다시 들춰냅니다. 내가 산으로 가는지 바다로 가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척도라 생각됩니다. 물론 답은 아이들에게서 얻어 옵니다.
교사와 아이들을 스스로 살리는 교육, 스스로 서는 교육, 그래서 서로 같이 살리는 교육이란 무엇일까?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아이들을 제대로 보고 있는 건가?
교사연수 과정에서 공부를 하는 중심 내용입니다. 아직 공부 중이라 답을 명쾌하게 내릴 수 없는 건가? 현실의 장벽 앞에 너무도 넘어야 할 산이 많기에 접고 접은 탓에 아주 조금씩 발전하기 때문에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은 아닌가?
평화를 연습하러 오는 곳, 여름학교
해오름에서는 매년 여름학교 프로그램을 정하고 아이들을 모집합니다. 특정한 아이들을 보고 아이들에 맞게 프로그램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뭔가 우리가 새롭게 시도하는 커다란 틀 속에 아이들의 욕구와는 상관없이 아이들을 집어넣고 거기서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게 합니다. 우리 생각대로 무조건 아이들을 끌어당기는 것은 아닌가? 물론 좋은 내용이고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지만 회의가 드는 순간도 많습니다.
하염없이 물 속에서 놀고 싶거나 어떤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아이들에게는 프로그램이 고통일 수 있습니다. 그 어떤 훌륭한 프로그램도 아이들에게는 벗어나고만 싶을 뿐입니다. 프로그램은 단지 해결해야 할 과제로만 여겨집니다. 그 때부터 충돌은 시작됩니다. 아이들은 틈만 나면 물 속으로 뛰어들고 교사들은 아이들을 불러 모으고 진이 빠집니다. 그냥 물에서 놀게 할까? 아니 미리 정해진 프로그램이 있는데…. 헷갈립니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행복'이라고는 써 있는데 잘 모여들지는 못합니다. 도심의 찌든 때를 날려버리듯 그저 자유롭게 떠서 다니는 아이들입니다. 처음 왔어도 오랫동안 같이 만나 온 아이들처럼 자연스러운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오랜 시간 같이 했어도 나만 즐거운 아이들이 있습니다. 같이 즐거울 수 있는 장치를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빛으로 여는 세상'의 주제에 대한 뜻풀이가 아니라 같이 물에서 놀면서, 빛칠을 하면서, 감자를 캐면서 느끼는 감동으로 같이 즐겁게 지내다 갈 수 있기를 바랬는데…. 그래서 시간이 가면 아이들의 내면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빛'이 되기를 바랬는데…. 늘 그러기를 바라지만 어느 누구도 지금은 답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단지 믿음일 뿐입니다.
처음 온 아이들 중에는 모든 일에 열심히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같이 무엇을 하기엔 어색하기만 하고 한 발을 빼고 멀리서 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다닌 아이들은 스스로 길들여져 있어서 새로운 경험에 자신을 맡기길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오랫동안 만나면서 마음을 열고 지낸 덕에 생긴 서로에 대한 믿음입니다. 노는 모습, 활동하는 모습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모두 다릅니다.
살아오면서 어디서나 제 세상인 양 마냥 자유롭게 지내온 아이들은 해오름의 활동이 억압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에 비친 경쟁 사회의 그늘에 있던 아이들에게는 해방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모두 온전한 아이들의 모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 모습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되 함께 사는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그래서 열심히 평화를 연습하는 곳이 해오름 살림학교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님들께도 좀 색다른 주제에 끌려 아이들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연습하러 오는 곳으로 자리매김되었으면 합니다. 물론 한 두 번의 만남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들공부도 계절학교도 모두 정회원과 준회원이 나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더 깊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물론 구조적인 대 수술이 있어야겠지요. 그러면서 교사들도 한층 커 갈 것입니다. 언제 새로운 형태로 태어날지 모르지만 그 전까지의 해오름 계절학교는 교사와 아이와 부모에게 더없는 행복감을 안겨주는 이벤트에 충실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하루만 더 있자고 합니다. 이틀 놀아보고 그제서야 어떻게 노는지 알겠다는 모습입니다. 어색한 몸짓도 좀 자유로워지고 모둠의 친구들도 헤어지기 아쉽습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봅니다. 행복하고 즐거웠던 순간만큼 책임이 더 느껴지고 고민이 많이 되었던 여름학교였습니다.
더운 여름날 7월 26일부터 30일까지 1, 2차 120여명의 아이들과 20여명의 교사들이 강원도 횡성에서 함께 한 여름학교를 돌아봅니다.
보좌교사와 함께한 교사 연수
다른 해와 달리 중요한 프로그램을 우선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시간 순대로 연수를 했습니다. 처음 참여하는 교사들이 많아 그 흐름을 익히는 게 우선일 것 같았습니다. 처음 아이들을 만나서 얼굴을 익히고 마음을 여는 과정부터 시작해서 여러 활동 속에서 함께 주제를 풀어내도록 흐름을 잡았습니다.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한 것은 1박 2일 연수를 통해서 집중적으로 하기로 했는데 몸짓이나 놀이 등은 한두 번의 연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몸에 익을 때까지 충분한 연습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교사모임에서 지속적으로 공부하면서 채워져야 할 내용입니다.
이번에는 좀더 아이들과 찬찬히 만나기 위해 한 모둠에 되도록 보좌교사를 배치하기로 하고 연수 과정에 몇 분을 모시기로 하여 같이 여름학교를 준비하였습니다. 교사 수도 많고 좀 혼란스러울 수도 있었는데 각자가 가진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즐겁게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여름학교에 가서도 모둠교사와 보좌교사가 서로 논의를 하면서 모둠을 이끄는 모습들은 어렵다 하더라도 이후에 꼭 지속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했습니다.
아이들 맞이하기
여름학교 하루 전날 진행 교사들과 미리 청일주말농원에 갔습니다. 맑은 개울물도 그대로이고 너른 강당도 식당도 그대로인데 통나무집 앞에 큰 창고가 들어서고 개울가에는 아이들이 활동하기에 안성맞춤인 평상이 즐비했습니다. 개울에서 땀도 좀 식히고 물품을 정리하고 강당에는 빛칠한 그림과 네모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을 붙이고 방마다 모둠 이름표도 붙이고 노래 커튼을 두르고 현수막도 치니 여름학교의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드디어 다음날 아이들이 도착했습니다. 차를 오래 타서 지친 탓인지 힘겨운 얼굴로 농원에 들어서다 개울을 보더니 환호성을 지르고 달려옵니다. 모둠별로 점심을 먹고 모두 자기 모둠방으로 갑니다.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이 먼 길을 왔을까? 처음 대하는 낯선 얼굴, 2박 3일 동안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라며 여름학교의 문을 열었습니다.
모둠별로 모여서 인사도 나누고 3일을 머무를 농원도 이곳저곳 둘러봅니다. 조금만 햇빛이 비추어도 다른 빛을 내는 자연은 무수한 빛깔을 갖고 있습니다. 눈에 들어온 그 빛을 마음에 고스란히 담아봅니다.
모둠별로 모여 인사하고 놀고
모둠 마음열기 시간은 아이들과의 첫 만남입니다. 교사도 아이도 특별한 인연으로 만나집니다. 그래서 기대도 되지만 두렵기도 합니다. 한 두 시간 안에 마음을 다 열 수는 없습니다. 시작인 셈입니다. 마음이 열린다 싶으면 집에 갈 날이 성큼 와 있습니다. 그때서야 아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면 작별이지요. 오랜 세월을 같이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서로를 껴안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은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좀 서먹하긴 하지만 금방 어우러집니다. 서울에서 온 아이, 대구에서 온 아이, 안동에서 온 아이 전국 각지에서 모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평화롭게 지낼 수 있게 스스로 원칙도 정하고 마음을 조금씩 열어갔습니다. 콩주머니를 던지며 여름학교에서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 모두가 기원하고 하나로 어우러진 몸짓을 만들며 그 바람을 모으기도 합니다. 또 몇 해 전부터 해오던 그대로 여름학교의 모든 것을 담아가는 공책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이 공책은 아이들이 스스로 만드는 여름학교 자료집이 됩니다. 색연필로 예쁘게 꾸민 공책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보물이 됩니다.
또 자기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나무 이름표를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지난해부터 모둠 마음열기 시간에 해 오던 프로그램인데 처음엔 그저 이름표로서만 의미가 있었는데 점점 나무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고 정성스럽게 만들게 됩니다. 버려진 나무가 내게 와서 새 생명으로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내 안에서 영원히 사는 나무가 됩니다. 들공부 때나 계절학교 때마다 만드는 나무 이름표. 오래 다닌 아이들은 집에 이름표가 몇 개나 됩니다. 어린 시절의 역사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처음엔 거칠었던 나무가 점점 부드러워집니다. 볼에 살짝 대어보면 화장한 듯 얼굴이 뽀얗게 됩니다. 정성스럽게 나무를 갈면서 아이들은 여름학교에 대한 자신의 마음도 가다듬습니다. 즐거우면서도 아주 진지한 시간이었습니다.
★ 나무 이름표 만들기
준비물 : 나무 조각, 사포, 신문지, 색연필, 초, 목걸이 줄
① 나무 조각의 거친 면을 잘 관찰합니다. 이 나무가 어떻게 내게 왔는지도 생각해 봅니다.
② 사포로 나무를 잘 갑니다. 거친 면이 부드러워지고 보얀 가루가 나올 때까지 갑니다.
③ 나무에 해오름 살림학교와 자기 이름을 쓰고 다른 면에 여름학교에 대한 생각과 기대를 간단한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④ 양면에 양초를 입힙니다. 불에 초를 녹이면 코팅의 효과가 있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좀 위험할 것 같아 대부분 초칠만 했습니다.
④ 미리 뚫어 간 구멍에 목걸이 줄과 구슬을 끼웁니다.
여름학교의 문이 활짝 열리다
햇볕
햇볕은 고와요 하-얀 햇볕은
나뭇잎에 들어가서 초록이 되고
봉오리에 들어가서 꽃빛이 되고
열매 속에 들어가서 빨강이 되어요.
햇볕은 따스해요 맑-은 햇볕은
온세상을 골-고루 안아줍니다
우리-도 가슴에 해-를 안고서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되어요
저녁풍경
나른해진 햇님이 저산너머
금빛구름 베고서 잠이 들면
소곤소곤 별들이 달님을 부르며
은하수별 고요히 노래하네
소곤소곤 별들이 달님을 부르며
은하수별 고요히 노래하네
여름학교를 마친지 여러 주가 지났는데도 햇볕과 저녁풍경 노래는 아이들에게 계속 불려집니다. 노랫말만 보아도 따뜻한 마음이 전해집니다. 강당에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모둠이 원으로 모였습니다. 아이들과 햇볕, 저녁풍경, 무지개, 별과 꽃, 종이접기, 또랑물 노래를 불렀습니다. 오는 차안에서 모두 노래에 이미 빠져서 온 듯 거의 노래를 다 외워서 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노래 배우는 시간도 적게 걸리고 온 날부터 가는 날까지 지난해에 배웠던 내 마음에 심은 꽃, 아침을 열며 노래에 이어 새로 배운 노래들이 아이들의 입에 3일 내내 오르내렸습니다. "모두 모여라, 원으로 둘러서자"라는 말 대신에 짧으면서도 재미있는 '꽃은 참 예쁘다. 풀꽃도 예쁘다~~' 노래를 시작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모두 모여 원을 만듭니다. 아니 또 '꽃은'이야 하면서도 노래가 끝날 때면 모두가 예쁜 원을 만듭니다. 아이들을 끊임없이 하나로 엮어주는 보이지 않는 노래의 힘을 새삼 느꼈습니다.
언제 불러도 신나는 '뚬바뚬바'와 '디리디리' 노래와 좀 어려울 것 같았는데 그래도 곧잘 따라 부르던 도나노비스파쳄(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는 아이들에게 울림이 있는 여름학교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전체가 모인 가운데 여름학교를 여는 시를 몸짓으로 배우고 교사들이 교사연수 내내 준비한 몸짓을 선보였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이 움직임을 통해 당겨지기도 하고 끝없이 펼쳐지기도 하는 몸짓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는 즐거움 그 자체'입니다.
지난 해 푸른 숲 학교에서 통전교육을 받으며 발도로프 학교의 유리드미를 배우면서 받은 감동을 아이들과 나누기 위해 선생님들과 같이 해 보게 되었습니다. 원형과는 많이 다르고 그 뜻을 충분히 몸에 익히지 못해 좀 어설프고 쑥스럽기는 하지만 교사연수 때 강물에 비친 그림자를 만들면서 충만했던 감격을 바탕으로 진지하게 몸짓을 선보이자 아이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준 것 같습니다.
몸이 굳어있고 발걸음 하나하나가 부담스러워 내 몸이 아닌 듯 어색하면서도 내게서 만들어지는 선율을 느끼고 별을 만들고, 어느 순간 곡선과 직선의 조화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늘하늘한 치마를 입은 선생님들이 만드는 꽃봉오리는 아이들에게 나도 한 번 해봤으면 하는 마음을 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여럿이 하면서 내 몸의 흐름도 느끼지만 무엇보다 옆 사람의 기운을 느끼고 하나의 형태를 완성해 감을 느끼게 됩니다. 억지로 무엇을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흐름 속에서 만들어지는 감동을 얻게 된 것 같습니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우스운 듯 쳐다보다 선생님들의 몸짓에 집중하며 깊이 빠져들며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여름학교를 여는 선생님들의 마음을 충만히 받았다는 듯이…. 아이들도 고맙고 선생님들도 고마웠습니다.
자연의 빛을 담아
애기똥풀을 끓여 명주에 아름다운 빛의 세계를 담아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의 빛을 느껴보기 위해 애기똥풀만이 아니라 쑥이나 홍화 등에서 다양한 빛을 내보려고 했는데 준비하는데 너무 번거롭고 계절에 맞게 아이들이 염색의 전 과정을 참여할 수 있는 애기똥풀이라 한가지로 집중해서 하기로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노란물이 든 명주를 머리에 두르거나 댕기처럼 머리에 묶기도 하고 마지막날 발표 때 소품으로 활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자신의 손을 거쳐 나온 노란 명주에 아이들을 상당한 애착을 보였습니다.
★ 애기똥풀로 염색하기
① 미리 자른 명주를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어 끓는 가마솥에 모두 넣어 정련을 합니다. 명주는 자연섬유이기는 해도 제품으로 나올 때 풀을 먹입니다. 염액이 잘 스며들도록 끓는 물에 약간 데치듯이 담갔다가 건져내어 풀기를 빼어 그늘에 말립니다.
② 청일농원에 구역을 나누어 아이들과 애기똥풀을 뜯으러 갔습니다. 늦은 봄이면 노란 꽃이 피어 금방 찾아낼 수 있는데 잘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모둠별로 나뉘어 농원 주위를 돌아다니며 애기똥풀을 몇 뿌리씩 캐왔습니다. 아직 꽃이 있는 것들이 있어 꽃도 확실히 보고 잎과 뿌리도 자세히 볼 수 있었습니다.
③ 뿌리를 자르니 주황빛의 염액을 가득 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캐 온 애기똥풀을 가마솥에 불을 지펴 넣고 푹 끓였습니다.
④ 노란 염액에 명주를 넣어 주물거리니 노란빛 천이 되었습니다. 개울에 헹구고 다시 식초를 넣은 염액에 염색을 하여 그늘에 말렸습니다.
⑤ 윤이 나는 노란빛의 새로운 명주가 태어났습니다.
네모 크레용으로 그림 그리기
애기똥풀을 뜯으며 돌아 본 더덕밭, 어슴프레해져버린 개울가에서 노랗게 물이 든 명주를 헹구며 본 개울은 아이들에게 또 다른 빛을 선사했습니다. 아, 참 맑다! 내가 둘러 본 것들을 떠올리며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사람의 얼굴이나 대상을 정확히 그리기 보다는 내게 온 자연의 모습을 느낌 그대로 그려 보았습니다.
아직도 빛이 강렬해서 지기 싫어하는 해, 수줍은 듯 살며시 산을 넘어가는 해, 내 곁에서 언제나 나의 후원자가 되듯 지켜서 있는 든든한 나무, 개울도 그리고 먼 산 그림도 모두 모아 한 곳에 놓고 보니 훌륭한 작품입니다. 아니 모든 아이들에게서 똑같이 느껴지는 예술성에 감탄을 합니다. 네모 모양으로 생긴 것부터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던지 아이들은 흰 종이에 빨노파 3색으로 빛의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색이 겹쳐지며 또 다른 색을 만들며 스스로 놀랍니다. 크레파스에는 없지만 내 마음에는 있는 색,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점점 빠져듭니다. 미술학원이나 학교에서 잘 그려야만 한다는 강박감도 없습니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느낌을 나타내면 됩니다. 뭉툭한 크레파스는 금세 도화지를 가득 메우고 아이들이 마음도 하나 가득 기쁨에 찹니다. 어렵게 녹여 만든 크레용, 거기다 두 시간도 넘게 자르면서 힘겨웠던 시간들이 다 녹아듭니다. 창문과 벽을 가득 메운 그림은 또 다른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빛칠하기 - 젖은 그림 그리기
준비물 : 붓(20호 납작 붓), 물통, 물감통, 스포이드, 스펀지, 도화지, 붓 닦을 천, 도화지를 물에 담글 큰 통, 도화지 판, 빨노파 물감
아침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빛의 위력을 맘껏 과시하듯 희뿌연 안개가 걷혀지며 산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납니다. 구름도 집도 밭도 캄캄한 어둠을 몰고 드러냅니다. 간밤에 찾은 컴컴한 개울은 뭔가 불쑥 튀어 나올 것만 같더니 아침 해를 맞은 개울은 잔잔한 물고기의 놀이터입니다. 키 큰 해바라기와 옥수수의 정겨운 싸움, 밭 한가운데 서있는 허수아비, 강아지풀의 하늘거림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빛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햇볕은 고와요 하얀 햇볕은~~"
노래를 들으며 선생님이 먼저 천천히 젖은 그림에 그림을 그립니다. 환한 빛이 느껴지는 아침 햇살을 그립니다.
"와~ 신기하다"
젖은 도화지의 물과 물감이 만나 또 다른 색을 만들어 내며 나를 끌어들입니다. 내가 의도하는 그림이 아니라 도화지와 물감과 내가 같이 만들어 내는 그림이 됩니다.
산책하며 보았던 자연의 모습을 떠올리며 젖은 도화지 위에 조심스럽게 물감을 떨어뜨립니다. 천천히 번져가며 물감들이 서로 만납니다. 나를 사이에 두고 뭔가를 얘기하더니 지나치며 다른 빛을 남기고 갑니다. 다 완성된 그림을 모두 한데 모아보니 크레용과는 또 다른 살아있는 세상을 만나는 것 같습니다. 감격의 순간입니다. 모두 탄성을 지릅니다. 어느 그림도 못 그렸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이 그대로 녹아 있는 그림입니다. 이야기도 꾸미고 멋진 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빛이 내게 점점 내려와 앉습니다.
모닥불 놀이, 색깔 이야기 슬라이드 상영
아이들과 강당에서 '또랑물' 노래를 배우고 율동을 배웠습니다. 모닥불 놀이의 예행연습인 셈입니다. 둘씩 짝을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앞으로 뛰고 엉덩이도 살짝 부딪치고. 또 '도나노비스파쳄'을 배우고 돌림노래를 몽땅 불렀습니다. 강당 안이 무척이나 더운데도 모두 자기의 순서를 지키고 화음을 맞추며 하나로 모여듭니다. 밖에서는 진행 선생님들이 슬라이드 상영을 준비합니다. 모두 계단에 앉아 슬라이드를 보았습니다.
색깔들이 만든 집, 힘센 빨강과 예쁜 빨강, 색깔들의 뽐내기 세 편의 색깔 이야기가 정아 선생님의 맑은 목소리를 통해 캄캄한 청일농원에 울려퍼집니다. 한여름 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펼쳐지는 영상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감동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색깔들의 어우러짐을 보며 '우리 모두는 색깔들이 만드는 세상에서 하루하루 즐겁게 지내는 거랍니다'라는 마지막 말이 '빛으로 여는 세상' 여름학교를 마무리하는 것 같았습니다.
큰 박수소리가 그치며 모닥불이 피어올랐습니다. 노랑, 주황, 빨강, 보라, 푸른빛까지 띠는 모닥불, 모두 또랑물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합니다. 불이 피워 오르듯이 아이들의 여름밤도 깊어만 갑니다.
모둠별 몸짓 발표
3일 동안 있으면서 모둠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와 율동, 몸짓을 연습해서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름학교 사상 처음으로 진지하고 감동적인 발표 시간이었습니다. 천사같은 모습으로 햇볕 노래를 곱게 부르면서 나뭇잎을 세우고 봉오리를 꽃 피우는 아이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감동을 안겨주어 앵콜을 받게 했습니다. 노래에 맞춰 춤을 추듯 꼬인 손을 풀어가는 모습은 새로운 창작물로 길이 남을 것 같은 작품입니다. 또 모닥불의 지글지글 타는 모습을 온 몸으로 표현한 아이들의 모습도 빛을 온 몸에 담으려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선생님들은 몇날 며칠을 걸려서 했는데 아이들은 몸짓을 두 세번만 하고 그려냅니다. 강물에 비친 그림자, 별, 꽃을 만들며 물론 모양 만들기에만 급급한 면도 있지만 하면서 감동을 느끼듯 아주 진지한 모습입니다. 선생님들에게서 퍼져가는 환한 빛을 아이들이 그대로 담아내는 것 같았습니다. 모두가 하나 되는 감동으로 여름학교는 막을 내렸습니다.
여름학교의 필수 코스, 물놀이
유난히도 더운 여름날 아이들은 농원에 도착하자마자 물 속으로 뛰어들더니 가는 날까지 발에 물을 적십니다. 더 이상 갈아입을 옷이 없어서 젖은 채로 지내는 아이도 있고 그저 물가가 좋아서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듯 나무 그늘에 앉아 쉬는 아이도 있습니다. 개울에 발을 담그고 명주를 헹구면서 잔잔한 물살을 느껴봅니다. 선생님들이 몇 시간씩 땀흘려 만든 녹차와 치자 물을 들인 수제비를 물가에서 먹는 기분은 한마디로 아이들 말대로 '짱'입니다. 올해도 대학생 도우미들은 여지없이 아이들 속에서 수난을 겪었습니다. 맑은 물이 가까이 있어 더욱 편안한 여름학교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겨울이면 꽁꽁 얼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줄 개울이 고맙기만 합니다.
트럭 타기? 감자캐기!
올해에는 설렁설렁 하지 않고 모둠으로 나누어 땀을 비오듯 쏟아내며 감자를 캤습니다. 모자까지 젖어보기는 처음이라고 스스로 대견해 합니다. 날씨도 많이 더운데 아이들은 땅에서 보물을 찾아내듯 한 알 한 알 캐냅니다. 진행을 돕는 선생님들이 아침 일찍 풀도 뽑고 비닐도 걷어내서 그런지 좀 더 계획적으로 된 것 같습니다. 뱀도 출현을 자제한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감자의 잎과 줄기도 보게 했으면 좋겠는데 너무 더워 잎도 줄기도 다 말라버렸습니다. 아이들이 열심히 일을 한 자리를 또 파보니 또 감자가 나옵니다. 선생님들이 미련을 못 버리고 계속 캐고 아이들은 지쳐 내려가서 쉽니다. 트럭을 기다리며 운동장에서 잠깐 놀기도 했습니다.
감자밭을 오가며 트럭을 한 번 탔니, 두 번 탔니 울고 불고 하던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한 번에 다 탈 수 없어서 나누어서 탔더니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그 재미있는 트럭을 나는 한 번 밖에 못 탔는데 다른 아이들은 두 번 탄다고 하니 정말 분할 뿐입니다. 공평하지 않다고 난리입니다. 서로 먼저 트럭에 타려고 하기도 하고 모둠 아이들이 다 모이기도 전에 자기만 훌렁 올라타기도 합니다. 감자를 캐러 가는 건지 트럭을 타러 가는 건지 아이들은 그저 즐겁기만 합니다. 들뜬 마음이야 왜 모르겠냐만 순간 얼굴을 붉히고 힘으로 눌러버립니다. 교사라는 힘으로! 분명 먹혀들지 않는 것은 알면서도…. 다같이 행복한 시간이 되기 위한 연습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여름 노래와 놀이들
이번만큼 노래가 주는 힘을 느껴보기는 드문 것 같습니다. 여름이라는 계절에 딱 맞아떨어졌던 주제와 거기에 맞게 구성된 노래. 잔잔하게 읊조리는 노래에서부터 신나고 경쾌한 노래에 아이들은 점점 빠져들어 갑니다. 재진이의 흥에 겨운 몸짓과 또랑물 노래에 맞춘 두 여자 아이의 몸짓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아이들의 아픈 마음을 다독거려 주고, 나만을 드러내려던 행동들이 노래에 맞춰 어우러짐으로 꽃피웁니다.
'감자에 싹이 나서 삭삭삭!' 단순한 놀이인데도 아이들은 금방 빨려듭니다. 모둠에 따라 온 종일 노는 모둠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노는 모둠도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노는 소리가 나고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녀야 하는데 그런 모습은 덜 보입니다. '박쥐와 나방'놀이를 하려고 큰 수건까지 준비해 갔는데 끝내 해 보지 했습니다. 프로그램이 참 빡빡했구나, 끝나갈 때서야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몇 년동안 많은 놀이를 해 보았는데 한 해에 머무를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몇 년 전의 '쿵쿵짝'의 열기와 '실뜨기'의 호기심, '어부와 상어'의 반전이 그립습니다. 지속적으로 해 보면서 몸에 익혀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게 해야겠습니다. 어떤 프로그램보다 몸으로 부딪치며 놀던 과정에서 아이들은 계절학교를 기억합니다. 또한 교사들은 노는 과정에서 아이들을 제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겨울을 기약하며
올 해 처음으로 모둠교사가 되어 보았습니다. 전체 진행과 모둠이 얼마나 잘 어우러지고 있나 보고 싶기도 하고 들공부 때 모둠에서 만난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만나고 싶었습니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사람이 모둠을 맡으면 얼마나 잘 할까? 다른 교사들이 눈여겨 볼 수도 있고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모둠을 맡는 순간 그런 생각들을 할 새도 없이 바쁘더군요. 3일 동안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투영된 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교사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아이들에게 참 중요한 거구나' 아이들은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합니다. 물론 틈만 나면 빠져나가려고 하는 아이도 있지만 대부분 선생님을 잘 따릅니다. 3일인데도 모둠교사를 닮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봅니다.
1차에 진행을 맡다가 2차에서 모둠을 맡았는데 자꾸 전체 아이들을 보게 됩니다. 아이들이 너무 산만하고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고 다른 모둠 아이들에게 큰소리를 많이 쳤는데 사진 속의 아이들의 맑은 얼굴을 보니 마음이 좀 무겁습니다. 방도 대충 치우고 주로 바깥을 다녔습니다. 개울도 건너고 농원 위쪽을 거슬러 오르기도 하고, 아이들과 오랜만에 편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들공부 때 서로 내 팔을 잡아끌던 아이들 때문에 고민을 했었는데 여름학교에서는 자율적으로 잘 놉니다. 이제 스스로 놀 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언제나 모둠이 모여야 무엇이든지 한다고 했습니다. 같이 만들어 가는 기쁨을 맛본 아이들은 친구를 필요로 하고 친구들을 보듬을 것입니다. 처음의 어색한 몸짓에서 마지막날 완성된 몸짓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이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프로그램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챙기지 못한 것 같아 좀 미안한데 아이들은 알아서 잘 놀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많이 배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여러 선생님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던 아이들의 진지한 발표의 몸짓이 눈에 선합니다. 청일농원에서 전에 늘 같이 계절학교를 만들어 오던 선생님들의 얼굴도 스치고 그동안의 선생님들의 노고가 온 몸에 저며 듭니다.
"선생님, '도나노비스파쳄' 노래를 부르면 평화가 오나요?"
한 아이의 물음에 "음 아마 그럴거야" 라고 답을 하시던 이우선 선생님이 지금 병원에 계십니다. 여름학교에서 온 마음으로 아이들을 사랑하신 선생님의 쾌유를 빕니다.
여름학교를 위해 몇 년째 방학의 일부를 헌납하는 슈렉 현우, 정아를 비롯해 초등학교 때 계절학교에 와보고 고등학생이 되어 도우미가 되어 다시 찾은 윤익이와 생전 처음 타 보는 트럭의 맛을 느끼게 해준 슈렉 투 박형만 선생님과 해오름의 식구들, 여름학교 진행을 위해 수고하셨습니다. 또 3일 내내 아이들 곁에서 생활한 모둠 선생님들과 무엇보다 이번에도 또 한 깨달음을 던져준 우리의 아이들, 모두 고맙고 수고하셨습니다.
겨울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