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내 마음에
- 해오름 어린이 살림학교 들공부
이연희 | 해오름 어린이 살림학교 교사

한 지역을 정해 1년 동안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사계절 변화와 자연의 흐름을 느끼며 갇혀있는 감각을 깨우고 온 마음으로 자연을 만나며 자신을 찾아가려는 들공부의 한 학기를 마감했습니다.
1회 봄의 '생명 느끼기'에서는 낯설은 자연을 대하며 나의 나무를 정해 인사를 하고 봄 숲의 기운을 느끼며, 2회 '자기를 열어 있는 그대로 보기'에서는 변화되는 나무의 성장을 함께 느끼고, 3회 '조금씩 가까워지는 자연세계'에서는 내 나무만이 아니라 그 주변 세계를 같이 알아보았습니다.
4회에서는 1회부터 3회까지의 내용을 마무리하며 모둠별로 내 나무 관찰한 것을 토대로 생태지도를 만들려고 했는데 관찰지역에 서식하는 종도 다양하지 않고 또 식물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바탕이 되지 않은 채 지도를 그리기에는 좀 형식적이라고 생각하여 프로그램을 일부 수정하게 됐습니다. 머리 속으로만 그림을 그린 탓에 오는 오류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로 아이들과 관찰한 풀꽃들을 채집해 꽃 카드를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생태지도는 2학기까지 활동을 한 후 아이들과 뛰어놀았던 소나무 숲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모습의 소나무를 그리거나 모둠별로 나누어진 구역에서 좀 더 세심한 관찰을 한 후 1년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그리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궁금한 것도 많고 신기한 것도 많아 날개단 듯 날아다니며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모르고 한 곳에 집중하기 어려운 아이들에게 사물 하나에 온전히 마음을 주는 일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본듯 만듯 1년을 두고 느긋하게 만나다 보면 어느새 마음 한 구석에 나무가 자리하고 있지 않을까요? 이제 막 싹이 오른 잎에서 무성한 가지를 쳤던 나무가 가을이 되면 잎을 떨구는 모습 속에서 또 다른 나무를 만나며 어느새 커버린 자신을 만나겠지요.  

생태지도 대신 꽃 카드 만들기

그런데 모든 일이 생각한 대로만 이루어지지 않듯이 꿈꾸는 자에게 선물이 아닌 고민거리를 안겨주는 일이 생겼습니다. 해마다 겪는 태풍과 장마입니다. 예전에는 굳이 날을 연기하지 않아도 들공부 날은 그럭저럭 큰 비를 피해갔는데 이번에는 비 때문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6월 26일에는 디앤무 태풍과 집중호우까지 겹쳐 한 주 연기했는데 정작 다음날은 비만 좀 흩뿌리더군요. 다시 물릴 수도 없고 갑갑할 따름입니다.
비가 와도 활동은 할 수 있는 날이라 더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밤새 논에 물이 넘쳐나면 어쩌나, 비닐하우스의 비닐이 날아가면 어쩌나, 빨리 태풍이 지나가기를 바라며 가슴 졸이면서 새벽을 맞는 농민의 간절한 마음을 닮으라고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거센 폭풍우가 와도 놀라지 말고 차분히 기다리며 좀더 진중한 선택을 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들공부를 연기한 7월 4일에는 전날부터 밤새 비가 많이 오더니 강화도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바깥활동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밤새 인천지역에 비가 많이 와서 걱정하면서도 비가 좀 오더라도 꼭 가려고 했으나 아이들도 많이 안 오고 가도 활동하기가 어렵다니 할 수 없이 해오름 강당에서 들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을 내 마음에' 라는 4회 들공부는 많은 아쉬움을 남긴 채 해오름 사무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해오름 강당에서 마무리를

영등포구청역에 비는 많이 내리고 아이들도 많이 오지 않고, 전화를 걸어보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안 간다고 합니다. 못 오면 미리 전화를 좀 주면 좋을텐데 비가 오면 안 가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주로 바깥활동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직 함께 한다는 생각이 부족한 탓이겠지요. 교사와 학부모와 함께 만들어가는 틀을 만드는 것은 고스란히 해오름의 몫이겠지요. 여름학교를 앞두고 있어 더 연기할 날도 없고 비가 좀 그쳐주면 좋은데 도저히 방법은 없더군요. 나무를 관찰 못한 것은 아쉽지만 다행히 사무실 공간이 있어 실내 활동으로 마무리를 하기로 했습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많이 와 본 아이들은 제 집처럼 뛰어다니며 벽에 붙어있는 사진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보고, 처음 온 아이들은 신기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초등과정 수강생들의 노작 작품과 그림을 보고 정신없이 뛰어다닙니다.
모두 모여 앉으니 20여명 밖에 안 되었습니다. 비가 와도 부지런히 나온 아이들이 기특합니다. 장소가 바끤 사정을 설명하고 활동 내용도 나누고 노래도 부르는데 시간이 좀 흐르니 어수선하기만 합니다.
"선생님 비가 와도 강화도에 가지 그랬어요."
"내 나무가 바람에 쓰러졌으면 어떡해요."
여기저기서 나무 걱정입니다. 나무 관찰할 때는 대충 보고 지나가는 것 같더니 속으로는 진중하게 보아 왔나 봅니다. 물론 나무가 어찌됐건 옆 친구들과 장난치고 떠드느라 정신없는 아이들도 있지만 모두 나무가 궁금한 건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두 번 세 번 가니까 이제 좀 편한 곳이 되고 자신도 모르게 나무와 좀 더 가까워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노래를 더 배우고 2층, 3층으로 나누어 모둠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내 나무의 변화를 떠올리며
    
모두 공책을 꺼내어 자기의 나무를 봅니다. 1, 2학년에게는 좀 어려운 과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씨 쓴 것을 보니 공책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맞춤법은 거의 다 틀려있습니다. 3월의 나무는 가지만 굵어 나무의 형상을 볼 수 있는데 잎이 무성해진 5월의 나무는 시커멓게 칠해져 있습니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 처음엔 잎을 하나하나 그리다가 너무 많아 동글동글하게 그리고 나중에는 시커멓게 칠했다고 합니다. 아이다운 발상입니다.
보고 느끼는 것은 고학년보다 진솔하고 표현도 독특한데 손으로 그리고 쓰기에는 힘에 부칩니다. 쓰려다 보면 자기 마음에 드는 생각이 벌써 달아나 버려 또 다른 생각이 들고 그러면서 마음이 급해지고 그냥 공책을 덮어버리게 됩니다. 대부분 아직 자기에게 다가오지 않은 나무나 사물을 억지로 집어넣으려고 할 때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좀더 자세히 보면서 새로운 사실을 접하거나 어느 한 군데 마음을 빼앗기면 그때부터는 스스로 하게 되는 걸 많이 봅니다. 그러기까지 교사가 곁에서 지켜보고 지원을 해야겠지요. 공책에 그려진 그림보다 숲에서 놀며 편안함을 주던 나무를 마음에 그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더 예뻐 보입니다.
그런데 3회 중 한 번이라도 빠진 아이는 앞 뒤 연결이 잘 안됩니다. 각기 따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면 모르지만 연속적인 프로그램은 되도록 결석이 없어야 합니다. 다른 일도 아니고 아이들이 아파서 안 오는 경우가 많은데 참 대책이 없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아파도 오는 아이가 있습니다. 갔다 오면 오히려 낫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아토피나 감기가 심한 아이들이 나아서 오기도 합니다. 이것도 소중한 경험입니다. 온 몸을 지배하던 도심의 공해로부터 아이들은 자유로움을 느껴봅니다.
3, 4학년 아이들은 초록잎을 문질러 색을 입히기도 하고 나무 관찰을 한 자기의 나무 그림도 보고 한 모둠에서 만난 선생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자연을 만나고 새로운 선생님을 만난 아이들의 기쁨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5, 6학년은 꽃카드를 만들고 나서 한 학기 활동을 그림이나 시로 표현을 했습니다. 다음은 한 5학년 아이의 만화 내용입니다.

나무

나무에게는 조용한 나날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언제인지 모르게 시끄럽기 시작했습니다.
"와" 시끌벅적
아이들이 자기 나무를 정한다고 떠들며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나무로 해야지"
"이 나무는 어떨까?"
나무는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알 수 없었습니다.
잠시 후 조용해졌습니다.
조용한 날이 다시 계속되던 어느 날
잎이 무성해졌습니다.
다들 나를 부러워하였습니다.
"와, 이 나무 좀 봐."
"잎이 참 많다."
시간이 흐른 후 나무는 낙엽을 떨구고 가지만 드러냅니다.
나무는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갔습니다.
바람이 휭휭 불어옵니다.  

꽃 카드를 만들어볼까요

준비물 : 채집된 꽃, 고정 본드, 색지, 한지, 가위, 풀, OHP 용지

① 채집된 꽃을 받아 책상 위에 놓습니다. 꽃잎이 상하지 않게 조심해서 다룹니다.  
② 꽃의 크기에 맞게 색지를 오립니다.
③ 색지와 어울리는 한지를 손으로 잘라내어 색지에 붙입니다.
④ 꽃 뒷면에 고정 본드를 뿌려 한지에 붙입니다.
⑤ 꽃잎이 떨어지지 않게 비닐용지를 씌웁니다.

꽃 카드를 만들고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종이를 접어 비행기를 날리고, 딱지를 치고, 말뚝박기를 하고 박쥐와 나방 놀이를 했습니다. 문득 '강남에는 한창 놀이 과외가 무성하다던데 내가 그런 격이 아닌가?' 그러든 어쩌든 아이들과 소리지르며 박쥐와 나방을 외칩니다. 온 몸이 땀에 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놉니다. 뭘 하고 놀아도 즐거운 아이들, 집에 갈 때 보니 가방에 종이비행기와 딱지가 하나 가득입니다. 집에 가서 엄마와 형제들을 붙들고 2탄을 했겠지요. 시험이 코앞에 있어도 딱지치기를 하고 싶은 아이들, 누군가 곁에서 같이 놀 친구가 있다면 아이들은 습관적으로 컴퓨터 앞에 앉지는 않겠지요.

한 학기의 들공부가 남긴 것들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을 자기의 취향대로 사고 싶은 것을 사는 것과 비슷한 모습의 체험학습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체험은 되어도 어느 것 하나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모습을 종종 발견합니다. 유행처럼 번진 체험학습의 끝자락이라도 붙잡으려는 부모들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 나오는 체험학습 상품들을 보며 저 또한 그 언저리에 있는 것은 아닌지…. 자칫 고민을 게을리하면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에 그 대열에 서게 되는 현실이 두렵기도 합니다.
새학기를 시작하며 일회적으로 또는 결과적으로 얻어지는 교육보다는 되도록 과정 중에 아이들이 스스로 깨달아 가는 교육을 이끌려고 했는데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갔을까 궁금합니다. 올해는 특히 5, 6학년 아이들에게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교사를 가르치는 아이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로 어울려 노는 가운데 암묵적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는 아이들, 나무를 관찰하며 세상을 조금씩 알아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은 해오름에 오면 편하고 행복하다는 얘기를 합니다. 철부지 같던 아이들이 이제 속이 좀 여물은 것 같습니다. 말없이 저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기도 하고, 놀다가 힘에 부쳐 잠시 쉬고 있으면 어느새 곁에 와서 교사들을 돕습니다. 내면에서 움트는 씨앗이 꽃을 피워내려는가 봅니다. 나무 하나를 봐도 건성으로 보지 않고 좀더 세심하게 관찰하고, 자신의 온 감각을 열어 자연과 하나가 되어 보려고 합니다. 새로운 느낌을 고스란히 자신에게로 가져가려고 합니다. 의젓해 보입니다. 중학생이 된 아이들이 지금도 들공부나 여름학교에 도우미로 오겠다고 하듯이 지금 아이들도 그럴 것 같습니다. 선생님에게서 배운 걸 그대로 따라해 보고 싶겠지요.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그런데 저학년 아이들이나 처음 들공부에 온 아이들은 도시적 삶에만 길들여 있어 바깥활동이 그리 자유롭지 않은지 선생님을 무척 찾습니다. 자기 옆에 선생님이 꼭 있어야만 합니다. 몇 해 다닌 친구들은 대조적으로 하루가 바쁩니다.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같이 하기로 한 활동도 해야지 틈틈이 구석구석 뒤지고 다녀야지….
그런데 처음 온 아이들이 이기적이라거나 의존적이라서 그러기보다는 놀이감도, 놀이기구도, 학습도구도 주어지지 않은 자연이라는 공간에서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나오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집에서는 깨끗한 곳에서 컴퓨터나 텔레비전이나 책을 보면서 혼자서 시간 가는 줄 모르면서 노는데 나무나 풀이나 벌레만 있는 깔끔하지 못한 이 자연이라는 공간은 아이들이 혼자 있기에 부담스럽고 낯설은 곳입니다. 호기심에 이끌려 스스로 찾아가기가 쉽지 않아 바로 선생님만을 찾습니다. 서로 다른 나무를 보면서 '우리들의 모습처럼 참 다르게 생겼구나, 이 나무들은 몇 년이나 살았을까?' 등등의 나무에 대한 궁금증도 없습니다.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강화도에 사는 나무일 뿐입니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나 발견하기

우리는 들에 나가 나물을 캐고 큰 아카시 나무 위에 누가 먼저 올라가나 내기도 하고, 아카시 잎을 따다 운명을 점치기도 하면서 놀던 때가 있었습니다. 저도 어릴 적 도시개발을 해야 한다고 해서 아카시 나무를 들어낼 때 놀라고 슬프기도 해서 한없이 울던 기억이 납니다. 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한 길게 뻗어있던 뿌리를 가진 아카시 나무는 사라지고 그 위로 아스팔트가 뒤덮이고 아카시 그늘에서 구슬치기를 하던 어린시절도 뒤덮였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아카시 나무가 외래종이건 어쩌건 간에 마음에 한 폭의 그림처럼 담겨있습니다. 그 아카시는 더 이상 나와 상관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 세상 천지에 나와 관계없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아이들은 잘 모릅니다. 물론 저도 어렸을 때는 그랬겠지요. 강화도에서 만난 나무나 풀들이 우리 아파트에도 있고 뒷산에도 있다는 것을 찾아냈을 때 순간 아이들에게는 큰 희열을 느낄 것입니다. 혹 어디나 볼 수 있는 것들이라 실망을 할 수도 있지만 스스로 발견해 냄으로써 늘상 내 곁에 있는 아파트 화단을 이제는 무심코 지나치지만은 않겠지요. 이제 새로 입주한 아파트는 나무가 엉성하게 있어 볼품이 없지만 오래된 아파트는 나무가 무성해져 장관을 이루는 곳도 많습니다.
아이들은 점차 사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그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존재들이 아니라 나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하게 됩니다. 고학년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이 토대가 되어서 좀더 차분하게 자신의 내면을 찾아갈 수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저학년이나 고학년이나 아이들의 마음에 든든한 고향이 되어준 것 같습니다. 어린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무조건 다양한 체험보다는 하나하나 채워가는 과정에서 사물의 연관을 알아가겠지요. 아이들에게 좀 더 다가가게 하기 위해 다음 학기에는 참여 교사를 늘려 아이들과 긴밀한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가시를 잘라 코에 붙이고 도깨비가 되고 풀밭에 드러누워 하늘도 보고 나무 사이로 비쳐오는 햇빛을 보며 즐거워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가을엔 그 나무들이 어떻게 변해 있을까? 비가 많이 와서 강화도에 못 간 날, 아이들은 더 나무 타령을 합니다. 내 나무가 비바람에 안 쓰러졌을까? 꼭 갔어야 하는데…. 그 간절한 마음이 한 학기를 끝내는 아이들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몇몇 부모님들이 너무 똑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프로그램을 해서 아이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부모님이 생각한 것과 좀 다르다고 해서 마음이 쓰였는데 아이들이 답을 준 것 같습니다.
비바람에 나무 걱정을 하며 2학기에도 계속해서 나무를 만날거라고 합니다. 들공부를 연기한 탓에 아이들과 4회 들공부를 하면서 한 학기 마무리를 했습니다. 말만 거창하게 하고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아이들하고만 마무리를 하다 보니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없어 7월 9일 부모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평일 저녁에 모이는 거라 시간 내기가 어려워 몇 분만 참여하셨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길 바랬는데 비가 와서 들공부를 못 간다고 하루 내내 나무 걱정을 하는 아들을 보며 많이 배운다고 하십니다. 또 자기의 마음을 주고 스스로 관계를 맺어가는 아이의 모습이 대견하다고 하십니다. 또 처음엔 목사님댁이 낯설었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점점 편하게 느끼는 딸아이를 보고 마음이 뿌듯하다고 하십니다.
한학기 동안의 들공부를 마치고 2학기 때 만나면 아이들이 좀 더 커있겠지요.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고 기다려주는 부모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아이들에게 보낼 엽서를 앞두고 아이들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 봅니다. 환한 빛이 느껴집니다.